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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농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고스톱
고스톱
김성기
내가 구리에 있는 처갓집에 자정이 다되어서 도착했을 때 처남은 똥을 먹고 있었다. 처갓집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처남 집이라고 해야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처갓집은 온양에 있다. 그런데 매번 설이나 추석 때마다 장모님은 서울에서 가까운 구리의 처남 집에 와서 명절을 지냈다. 장인이 살아계실 때만 해도 온양에서 설을 쇠었었다. 그러나 장인이 돌아가시고, 장모님도 나이가 많아 음식 장만하기도 힘든 데다 다섯이나 되는 사위들이 모두 서울과 서울근교 신도시 등에 살고 있어서 장모님이 처남댁으로 올라와서 설을 쇠는 것이 모두에게 편했다. 물론 설 음식을 준비하고 그 많은 사위와 딸들 그리고 조카들을 맞이해야 하는 처남네는 제외하고 하는 이야기이다. 처남댁은 싫다 좋다 군소리 없이 매번 그 일을 치렀다.
빨간 똥쌍피를 먹은 다음 팔광을 뒤집어 공산십끗인 고도리짜와 맞춰 가져가면서 처남 얼굴이 달처럼 환해졌다.
“어서 와 매제, 늦었네.”
처남은 나를 올려다보며 반갑게 인사를 한 다음 화투를 피는 피대로 광은 광대로 농부가 줄맞추어 모를 심듯이 가지런히 정리를 했다. 그리고는 마치 어사화를 머리에 꼽고 말을 탄 것처럼 허리를 앞뒤로 흔들며 좋아했다.
“야, 형님 패 좋네!”
내가 내려다보며 말했다. 처남은 겨우 패가 세판 돌았는데도 피가 조커를 포함하여 열피인 데다 고도리짜인 팔과 흙싸리를 물어다 놓고 있었다. 손에 이매조피까지 들고 있으니 고도리를 할 것이라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매조 고도리짜를 큰 처형이 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누가 선인가에 따라 고도리를 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어보였다.
“누가 선이야?”
나는 외투를 벗어 처남댁에게 주며 물었다. 현관문 쪽에 앉은 막내 처제를 기준으로 볼 때 고스톱 방향으로 셋째 동서 → 처남 → 둘째 동서 → 큰처형 순으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화투를 치는 사람은 선인 막내처제와 두번째인 처남과 회인 큰처형이었다.
“형님 고도리나기 힘들겠네!”
내가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나는 이 말을 농담처럼 했지만 사실이었다. 그러나 처남은 연신 몸을 앞뒤로 흔드는 것으로 보아 이 말을 농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하지만 처남은 확실히 고도리를 할 수 없어보였다. 왜냐하면 회인 큰처형이 절대로 고도리짜를 내려놓을 리 없기 때문이었다. 큰처형이 웃음을 감추며 입 다물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십을 바라보는 큰처형은 이번 설에도 혼자 왔다. 아직도 큰동서와 화해를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듣자하니 같이 살기는 산다고 했다. 서류상으로는 이혼을 하고도 같이 사는 특이한 가족이었다. 벌써 십년 전 일이었다. 큰동서에게 여자가 생겼다고 울며불며 하던 큰처형이 어느 무허가 교습소에서인가 춤을 배웠다. 그리고 점점 외출이 잦아졌다. 그럴수록 두 사람은 더 자주 싸웠다. 더러는 시퍼런 멍을 꽃처럼 달고 왔다. 그날 처갓집에서는 장모를 중심으로 처남과 딸들이 다 모였었다. 큰동서가 신혼 초 먹고 살기 힘들 때 처갓집 신세를 많이 졌던 일과 전에도 여자 문제로 속을 썩였던 일과, 대머리가 벗겨지고 키가 작은 것까지 헌옷 보따리에서 철 지난 옷가지를 끄집어내듯이 다 끄집어내어 성토를 하다가 급기야는 모두가 큰동서네 횟집까지 몰려가 손님들도 있는 자리에서 죽일 놈 살릴 놈 하면서 한바탕 난리를 쳤다.
결국 큰동서와 큰처형은 이혼을 했다. 법원에 가서 덜컥 이혼은 했지만 뒷정리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제일 큰 문제는 재산이었다. 재산이라야 집 한 채밖에 없지만, 그들에게는 평생을 다 바친 인생의 전부였다.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오랫동안 법정과 법정 밖에서 싸움을 계속했다. 결국은 그 집을 공동 명의로 해서 한집에서 같이 살게 되었다. 같이 살 뿐만 아니라 횟집도 같이했다. 감정은 감정이고 먹고 살아야 한다는 현실은 현실이었던 모양이었다.
횟집이라고 해야 테이블 열 개도 안 되는 아주 자그마한 횟집이었다. 한때는 주방장을 두고 제법 크게 했는데 돈이 좀 벌리자 큰동서의 여자문제가 복잡해지고 이혼이다 재산분할이다 다른 데 정신 팔려 횟집 문을 닫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새로 횟집을 차린 것이다. 지금은 큰동서가 직접 회를 뜨고 큰처형이 서빙을 하기 때문에 그런대로 인건비는 나오는 모양이었다. 부부간에는 화해랄 것도 없이 그럭저럭 사는데 처갓집하고는 아직까지도 오해가 풀리지 못했다. 장인이 돌아가신 날도 큰동서는 오지 않았다. 그나마 화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친 것이었다.
“큰언니, 빨리 쳐!”
막내 처제가 손에 든 국진피를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바닥에 깔린 국진 쌍피에 눈독이 잔뜩 묻어 있었다. 큰처형은 먹을 것이 없다. 늙은 암소처럼 뭉그적대던 큰처형이 조커 한 장은 내려놓고 떼놓은 패에서 새로 패 한 장을 가져갔다. 비십끗짜리였다. 얼굴에 벌레 기어가는 표정을 지었다. 비쌍피는 이미 광하고 처남이 먹어간 다음이었다. 큰처형은 팔에 힘이 다 빠진 늘어진 동작으로 비십끗짜리를 내려놓고 패를 뒤집었다.
막내 처제가 국진 쌍피를 두꺼비 파리 채가듯이 날름 먹어가며 어깨는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는 매조피를 뒤집어 놓고, 냉큼 손바닥으로 감추는 시늉을 하며 오빠를 올려다보았다.
“어머나, 이를 어째. 오빠가 고도리 하겠네!”
막내 처제가 몹시 난처해했다. 편의점을 하는 막내동서는 낮에 마신 술에 취해 처남댁 딸 방에서 자고 있었다.
그들은 일 년에 딱 두 번 추석날 하고 설날에 같이 쉰다. 그리고 다른 날은 하루 걸러 하루씩 교대로 쉰다. 굿모닝25시를 하는 그들은 24시간 만에 한 번씩 교대를 한다. 그들의 교대시간은 매일 정오다. 낮 12시부터 1시 사이에는 교대를 위해 1시간 동안 같이 일한다. 그들은 24시간 교대에 25시간 일을 한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들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머지 24시간을 편하게 살기 위해서다. 그들은 한사람이 24시간 근무하는 동안 다른 한사람은 24시간 동안 논다. 그들에게는 늘 24시간의 자유가 필요했다. 다행히도 - 정말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 그들이 굿모닝25시를 하는 아파트단지 상가에 엘지마트가 하나 더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편의점은 매우 한가했다.
처제는 손님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 채팅을 한다. 사이버 카페에서 여고 동창이 커피 잔을 들고 컴퓨터 자판기 앞으로 오면, 처제도 음료 온장고에서 카페오레를 꺼내온다. 그리고 같이 버디버디 샤갈 방에서 인터넷 음악 방송을 들으며 커피를 홀짝거린다. 더러는 예술미용실에서 헤어클리닉에 사용하는 윌로타르오일과 백리향오일이 민감하고 약한 두피에 좋다는 말을 믿어도 되느냐는 이야기 따위를 손가락으로 토닥거린다.
그러다 말고 동창이 ‘아 참! 빨래 좀 널고’ 하고 나가면 처제도 밀린 빨래를 상가 내 빨래방으로 가져간다. 돌아오는 길에 ‘운동화 빠는 날’에서 운동화도 찾아온다. 동창이 ‘밥 먹자!’ 하면서 식탁으로 가고나면 처제는 삼각김밥과 오뎅국물을 전자레인지에 데운다.
동창이 ‘피곤하다! 좀 자자.’ 그러면 처제도 편의점에 딸려있는 살림방에서 잠을 잔다. 손님이 오면 전자센서가 ‘머~나 먼 저곳 스와니 강~물’ 하면서 알려줄 것이다. 처제는 ‘이 세~상에 정처 없는 나그네에~길’이 끝나기 전에 편의점으로 나온다. 편의점은 처제에게나 고객에게나 참 편리한 곳이다.
그러는 동안 막내 동서는 게임방에 가서 하루 종일 게임을 하거나. 경마장에 간다. 경마가 없는 날은 경륜장에 간다. 때로는 투견도 한다. 그래도 그는 남들처럼 도박에 빠져서 가산을 탕진하거나 하는 일은 절대 없다. 그는 처제와 교대해야 할 시간에 맞추어 정확하게 돌아와야 했고, 하루에 가지고 나갈 수 있는 용돈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카드도 없는 신용 불량자였다. 그는 영화도 보고 만화도 본다. 다만 소설을 읽지 않고, 연극을 보지 않고, 미술전이나 음악회 같은 데는 가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생각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신경써야 하는 것하고는 놀지 않는 것이 그의 원칙이었다.
막내 처제는 내가 결혼할 때만 해도 고등학생이었다. 키가 크고 얼굴이 하얀 접시꽃 같던 막내 처제의 눈가에도 세월의 강이 몰래 흘러간 자국이 자글자글 나 있었다. 한번은 추석 명절 때 결혼할 남자라고 키가 훤칠하고 후리후리한 청년 하나를 데리고 내려왔었다. 그 날도 우리는 점심에 술 한 잔씩을 나눈 다음 대낮부터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그 잘생긴 청년은 늦은 점심을 마친 다음 고스톱 판에 끼어들었다. 웃음소리가 호탕했던 그 청년은 그날 꽤나 많은 돈을 잃었다.
몇 년 후 막내 처제의 결혼식장에서 본 남자는 그 청년이 아니었다.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내를 돌아다보았다. 아내는 그냥 멋쩍게 웃었다.
아내는 딸이 다섯인 이 집의 넷째다. 예쁘기로 말하면 처남 바로 아래인 셋째 딸이지만, 셋째 딸이 목단 꽃 같다면 아내는 눈이 가느스름하고 얼굴이 창백해, 봄날 산모퉁이에 흐드러지게 핀 조팝나무 꽃 같다. 잔바람에도 흔들리는. 가련하고 수줍은. 최소한 겉으로는 그랬다. 그러나 나란히 걷다가도 만나는 순간 갈라지는 철길의 교차지점처럼 나와는 늘 의견이 평행선을 달렸다. 아내는 결혼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이야기 하나 들어달라며 은근히 내 소맷자락을 끌었다. 모 대통령 영부인 같은 턱을 깎는 것이 소원이라는 것이었다. 지금도 예쁜데 왜 그러느냐며 몇 년을 말려야 했다. 그런데도 아내는 집요했다.
결국 턱을 깎는 대신 약간씩 겹쳐진 이를 교정해 주기로 했다. 2년 동안 이에다 고정쇠붙이를 끼고 다니는 불편을 감수한 결과 조금은 이가 고르게 된 것도 같았다. 그러나 그 고생과 들어간 돈에 비하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아내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눈가에 잔주름을 제거해야겠다는 것은 기본이고, 턱밑에 점을 빼야 잘 산다느니, 양 볼이 약간 꺼졌으니 보톡스를 맞아야겠다느니, 오금에 있는 퍼런 실핏줄 때문에 정맥 수술을 해야겠다느니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중학교를 가고 나이가 들면서는 겉모습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뱃속 어딘가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머리가 지끈거린다며 툭하면 머리띠를 동여매고 누워있고, 어쩌다 재채기 한번 잘못해서 젖은 것을 요실금이라고 산부인과를 몇 군데나 다녔다. 의사가 이상이 없다고 하면 돌팔이라며 욕을 했다. 종합검진을 몇 번이나 받고도 신경성이라는 의사 말을 믿으려 들지 않았다. 어딘가를 고쳐야겠다는 그 집착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무튼 아내는 그런 것만 빼고 나면 다 좋은 여자였다.
아니, 꼭 한 가지 더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별 이유 없이 시작되고 아무런 말썽도 없이 끝나는 시댁 식구들과의 미묘한 신경전이다. 별일 아닌 것 같으면서도 나를 무척이나 힘들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특히 작은댁과의 관계에서는 그 정도가 조금은 심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아내는 처남댁에 들어서자마자 장모와 둘째 처형과 셋째 처형이 모여 있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설날에 있었던 그렇고 그런 시댁 이야기를 밤새는 줄 모르고 할 것이다.
사실 나는 명절만 돌아오면 즐거운 마음보다 걱정이 앞선다. ‘설은 돌아오고 걱정이다 걱정!’ 하시며 두툼한 솜을 넣은 한복 소매에다 양손을 끼어 넣으시던 아버님 말씀이 생각나곤 했었다. 설이 돌아오면 새 옷 입지, 맛있는 음식이 지천이지, 친척들 모여서 놀기 좋지, 세뱃돈 받지, 사촌들하고 어울릴 수 있지, 무엇보다도 학교 안가지, 얼마나 좋은 일이 많은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실까 하는 궁금증이 풀리는 데 줄잡아 30여 년이 걸렸다.
아버님이 살아계시고 명절 때마다 고향을 찾을 때만 해도 나는 설이다 추석이다 하는 대 명절이 기다려졌었다. 그러나 몇 해 전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서울에서 막내딸과 살면서부터 상황은 바뀌었다. 일 년에 두 번의 대 명절과 아버님 제사를 장남인 우리집에서 지내면서부터 아내는 시집에 대해 공연한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언제나 어깨에 묵직한 나뭇짐을 올려놓은 듯한, 한 짐의 나뭇짐을 지고 일어서려 할 때의 그 빠듯한 버거움 같은 것이 이 나라에서 장남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무게라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시집 식구라고 해야 시어머니, 작은집,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시집간 손아래 시누이 부부, 그리고 시집 안 간 막내 시누이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오순도순 고스톱 한판 치기 딱 좋은 숫자지만 그것이 그리 간단하지가 않았다. 이번 설에도 연휴가 긴 것부터가 아내를 짜증스럽게 했다. 설 전날이었다.
“음식 하는 날 하루하고 세배하는 날 하루하고 해서 이틀만 쉬면 되지 무슨 놈의 휴일이 5일씩이나 돼? 토요 휴무제도를 없애버리든가 해야지 경제도 안좋다면서 쉴 것은 다 쉬어요!”
나물이랑 과일 등을 낑낑거리며 사들고 들어오면서 아내가 군담을 했다. 나도 조금은 길다고 생각한 연휴이기는 했다. 나는 집 청소를 하다 말고 냉큼 일어서서 시장거리들을 받아주면서 최소한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춥지!”
“그럼 겨울 날씨가 춥지 더워!”
아내가 내 말을 빈 깡통처럼 차버렸다. 이번 설도 왠지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내의 그 깡통 차는 것 같은 목소리를 며칠 전부터 미리 와 계시는 어머니가 들을까 봐 조바심이 났다. 어머니와 함께 온 막내도 설거지한다 파를 다듬는다 하면서 언니를 도와주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정작 작은집이 아직도 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작은집이 아침 일찍 오면 같이 시장에 가야겠다고 기다리던 아내가 혼자 장을 봐서 올 때까지도 오지 않고 있었다. 아내는 내가 같이 가겠다고 한 것을 기어이 뿌리치고 혼자 다녀왔다.
슬슬 불안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폭풍 전야 같다면 좀 과장된 표현이라고 하겠지만, 내 기분은 정말 폭풍우를 기다리는 기상청과 같았다. 아내는 별거 아닌 작은집의 그런 태도들을 못마땅해했다. 시집간 여동생네야 자기네 시집에서 차례 지내고 오면 되지만 작은집은 일찍 와서 같이 시장도 보고 경비 부담도 하고 그러면 좋으련만 어찌된 영문인지 전화 한 통 없다. 또 느지막이 와서 봉투 하나 내밀며 죄송해요 할 판이었다.
“작은 아는 왜 여즉 안온다냐?”
점심을 먹으면서 어머니가 한말씀 하셨다. 아내가 그것 좀 보라는 듯이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큰 아야, 전화 좀 해봐라.”
내가 전화를 하려고 하자 아내가 시간 되면 오기야 오겠지 오는 사람 맘 바쁘게 전화는 뭐 하러 해. 하면서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속내를 감추었다. 점심 먹고 식구들이 둘러앉아 만두를 빚었다. 나는 자꾸 현관을 쳐다보며 초인종 소리에 신경을 썼다. 아내는 그런 나를 못마땅한 듯이 쳐다보았다.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담배 한 개비를 물고 밖으로 나오면서 핸드폰을 슬쩍 주머니에 넣었다.
“야, 지금 어디냐?”
“어~ 형! 지금 자유로야.”
“한 시간이면 올 텐데 왜 이리 늦냐?”
“어제 늦게 들어온 데다 집사람하고 이야기 좀 하느라고 늦게 잤어. 미안해 형!”
말은 그래도 미안해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늘 이런 날이면 좀 들떠있는 동생의 목소리가 오늘은 뭐 안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착 가라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무슨 안좋은 일이 있는 목소리가 분명했다. 그것이 또 나를 초조하게 했다.
“오늘 같은 날은 좀 빨리 출발하지….”
나도 좀 무덤덤하게 말 꼬리를 자르고, 돌아서려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아내가 창문으로 내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또 그 때문에 설 연휴가 끝나면 아내와 시비를 가려야 할 것이다. 아내는 작은집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자기 말에 동조하지 않고 작은집 변명으로 일관하는 내 태도를 늘 문제 삼았었다. 정작 본론보다 지엽적인 것에 대한 논쟁이 항상 더 길었다. 물론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라 형제애가 남다른 면도 있기는 하지만 꼭이 그래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내 생각이 좀 다른 것은, 나잇값이라도 해야 할 형이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서 아내하고 맞장구를 치며 작은집 흉을 부처님 뱃속에서 삼검불 끌어내듯이 하는 것이 뭐 그리 좋은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형수님! 늦어서 미안해요.”
동생이 현관을 들어서면서 어머니나 나보다 아내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눈이 와서 차가 많이 막히죠.”
아내가 행주치마에 손을 닦으며 말했다. 항상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약간은 무거웠던 분위기가 조금 풀리면서 집안에 부침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런대로 음식 준비는 톡 터질 것 같은 물방울을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끝이 났다. 그런데 설날 아침, 떡국 그릇 수를 놓고 식구 간에 의견이 엇갈렸다.
“큰 아야, 차례는 사대 봉상을 하는 것이다. 고조부모부터 증조부모, 조부모 그리고 시아버지까지 떡국은 일곱 그릇을 올려야 한다.”
아내의 눈이 알전구만하게 커지더니 한마디 했다.
“우리집이 종손도 아닌데 아버님 몫만 올리면 되지 뭐 그리 많이 올려요?”
“종손이 다 망한 데다 교회를 다녀서 차례도 안지내는 모양이더라. 우리집에서 다 올려라. 안그러다간 조상님들 명절에 굶을라.”
“두 그릇만 올리면 고조부모님부터 차례로 드시겠지요. 번잡스럽게 뭘 일곱 그릇씩이나 올려요.”
안방으로 들어오는 음식을 받아 상 위에다 정리를 하며 내가 말했다.
“뭘 두 그릇이야. 아버님 몫으로 한 그릇만 올리면 되지.”
남동생도 끼어들었다.
“어떤 집에서는 남자 자손의 숫자대로 각기 한 그릇씩 올린대요. 그러니까 우리집은 다섯 그릇을 올려야 맞지 않을까요?”
제수가 어디서 들었는지 다소 모호한 상차림 방식을 들고 나왔다. 아내가 제수를 흘겨보았다. 다행히도 제수씨는 아내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아이쿠, 그도 저도 안하는 것이 제일 편해. 귀신이 어디 와서 먹기는 뭘 먹는다고 그 호들갑들인지 몰라.”
뺑뺑이 돌려 들어간 고등학교가 미션스쿨이어서 그때부터 교회에 빠진 막내가 잡채를 집어먹으면서 말했다. 어머니가 ‘저년이…’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결국 아직은 어머니 주장이 서릿발 같아서 떡국을 일곱 그릇이나 올려놓고 차례를 지냈다. 그때부터 아내의 치맛 자락에서 다시 냉기가 돌기 시작했다. 가족간에 세배를 마치고, 윷놀이를 할 때도 아내는 마지못해 하는 시늉만 했다. 그럴수록 작은댁네는 뭐 그리 신이 났는지 더 호들갑을 떨었다. 점심을 먹고 나자 나는 더욱 초조해졌다.
“큰아기씨는 시댁에서 차례 끝났으면 빨리 오지 왜 안올까?”
아내가 시집간 여동생네가 빨리 오기를 기다리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어서다. 여동생네가 다녀가야 비로소 우리 집 잔치는 끝이 나고 우리도 오늘 중으로 처갓집 설 나들이를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동생네가 해거름 무렵에 선물세트를 한아름 안고 들어오자 붕어처럼 나왔던 아내 입이 조금은 들어갔다. 유쾌한 척 떠들며 모두들 함께 저녁 겸 한차례 상을 차려 먹고, 작은집은 처갓집에 간다며 서둘러 돌아갔다. 그리고 여동생 네와 어머니가 돌아가자 우리도 대강 집안 정리를 하고 처갓집에 온 것이었다.
“누구 할 차례야?”
큰처형이 잠시 나와 몇마디 주고받다가 화투판을 돌아보며 말했다.
“오빠 빨리 쳐.”
막내 처제가 오빠를 재촉했다. 처남은 고도리를 할까 아니면 그냥 매조 쌍피를 먹을까 잠시 망설이고 있었다.
“형님이 많이 나겠네!”
한판 쉬고 있는 셋째 동서가 처남 패를 슬쩍 넘겨다보면서 한마디했다. 셋째 동서는 십여 년 동안 택시 운전을 한 끝에 올해 개인택시가 나온다고 했다. 6월에 택시 면허가 나오면 고사를 크게 한번 지내겠다며 벼르고 있었다. 이번에 광파는 데는 지장없겠다고 생각해서인지 셋째 동서는 처남 편을 단단히 들고 있었다.
“고!”
처남이 망설이던 끝에 매조 쌍피를 힘차게 먹으며 고를 외쳤다. 고도리를 포기한 것은 참 잘한 짓이었다. 풍쌍피를 더 집어 가서 점수는 5점이 되었다. 큰처형과 막내 처제의 얼굴 근육이 굳어졌다.
“여보, 여기 넷째네 술상 좀 차리지 그래.”
처남이 한껏 여유를 부렸다.
“아니요, 배부른데요 뭘.”
내가 사양을 했다.
“당신도 고스톱이나 치지 그래.”
아내는 방에서 나와 처남댁과 함께 술상을 차리면서 뭔가 신이 났는지 달가닥거리며 말을 걸었다. 그런 아내와는 대조적으로 처남댁은 언제나 고스톱페이스이다. 그의 패가 좋은지 좋지 않은지 고도리 패를 들었는지 구사 패를 들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처남댁은 친정이 강원도다. 너무 멀고 교통이 막힌다는 핑계로 설 때마다 처남은 가지 않았다. 그래도 처남댁은 1년 전이나 오늘이나 똑같은 얼굴을 하고 아내와 술상을 차리고 있었다. 술상을 차리다 말고 아내가 처남댁 귀에다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아내는 오늘 처남댁으로 오기 위해 차가 내부순환고속도로 진입할 때 뒤에 탄 아이들을 흘낏 돌아보았다. 아이들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는 내 귀를 잡아당기며 한마디 속삭였었다.
“고모네 집 말이야”
고모네 라면 여동생네 말이다.
“왜? 또.”
내가 운전석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뭔가 자못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아이들을 한 번 더 돌아본 다음 아내가 목울대에 가시 걸린 목소리로 물었다.
“나중에 늙어 부부가 모두 죽어서 저승으로 가면, 그곳에서 고모는 지금 재혼한 남편하고 살아야 할까? 아니면 전에 이혼한 종호 아빠하고 살아야 할까?”
뜬금없는 그 질문에 나는 뜬금없이 지난번 여동생으로부터 받은 한통의 전화가 생각났다.
“오빠 저하고 좀 만나요”
근무시간에 사무실로 걸려온 밑도 끝도 없는 여동생의 전화에 나는 당황했다. 여동생의 목소리에는 바람 빠진 공을 차고 노는 아이들처럼 맥이 없었다. 아파트 당첨 소식을 전할 때의 통통 튀던 긴장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였다.
“아니 무슨 일이 있기에……”
여동생은 수화기를 든 채로 한동안 말이 없었다.
“지금 근무시간이라…… 이쪽으로 올래?”
잠자코 있는 것이 답답하여 내가 한마디 더했다.
“그 사람, 여자 생겼어요.”
바람 빠진 타이어가 굴러가다 이내 주저앉는 피시식 하는 소리가 났다. ‘여자가……종호 아빠가?’ 말이 출구를 잊고 텅 빈 머릿속에서만 뱅뱅 돌았다. 어디선가 휑한 모래먼지가 일었다. 페달을 밟아도 자전거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처럼 생각의 체인이 자꾸만 헛돌았다. 긴장감이 팽팽하게 서로의 전화선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내 여동생이 울음을 터트렸다. 전화선이 뚝 끊기는 것 같았다. 나는 뒤로 벌렁 넘어지려는 착각에 빠져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같은 회사 여직원하고……”
“회사 여직원하고?”
그 말꼬리를 따라 오는 기억 하나가 있었다. 작년 가을 강원도로 직장 워크숍을 갔을 때의 일이었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차가 홍천가도를 달릴 때 나는 쓸데없이 클로니아망탈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 끝없는 갈증에 대하여 쓴 시인 이가림의 ‘갈증’에 대하여도 생각하고 있었다. 빨간 바바리를 입고 같이 온 여직원이 서울에서 출발할 때부터 내 옆자리에서 새록새록 잠을 잤다. 나에게는 관심도 없나보다. 나도 사실은 관심이 없다. 아니 조금은 있었다. 나는 이 직원 나이만할 때 지금보다 행복했던가? 요즘 젊은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어제 밤늦게까지 애인과 명동을 돌아다녔다는데, 무엇을 하고 놀았을까? 혹시 요즘 젊은이들은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지나 않을까? 그녀가 가끔은 누에처럼 몸을 뒤척였다.
그녀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잤다. 벌린 입속으로 건강한 혀와 빨간 목젖이 보였다. 그녀의 산도도 저렇게 빨갈 것이다. S자 커브를 돌때마다 탄력 있는 그녀의 어깨가 나에게 와 닿았다. 더러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내 어깨에 닿기도 했다. 헤이즐넛 커피 향냄새가 났다. 아니 모카골드 향인가. 그녀의 꿈속에서 시어들이 기어 나와 내 머리 속에서 현란한 춤을 추었다. 무질서한 시어들의 춤사위가 얽혀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목마를 탄 것처럼 머리가 어지럽다. 그녀 때문에 어지럽다는 것, 어쩌면 그런 것이 연애 감정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강원도에 도착한 우리는 공식 일정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두들 술집으로 몰려갔었다. 맥주로 입가심만 한다는 것이 나이트까지 갔었다. 나이트클럽에서 나와 포장마차로 몰려가는 것을 뒤로 하고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와 누워 있어도 쿵쿵거리던 음악 소리가 귓전을 맴돌고 심장을 뛰게 하여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같은 방을 배정받은, 나보다 다소 젊은 다른 두 직원도 한잔 더 하느라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서울과 강원도, 그리 먼 것도 아닌데 집에서 멀리 왔다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1층에 내려가 로비 귀퉁이에 세워진 자동판매기에서 커피 한잔을 뽑아가지고 올라가다가 빨간 바바리를 입고 왔던 그 여직원을 만났다. 많이 취해 보였다. 한잔 하려거든 따라오라고 했다. 방 번호만 물은 뒤 알았다고 먼저 들어가라고 하고선 테라스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불빛과 달빛이 어우러진 해안선은 괴괴했다. 바다가 한 아름 대지를 품에 안고 사랑의 몸살을 하고, 아내의 속옷자락 같은 파도가 육지의 바지 가랑이를 잡고 가지마 가지마 애원을 하는 깊은 밤, 두 남녀가 해안선을 따라 가며 끝없이 발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바다가 그 발자국을 몇 번이고 다시 지웠다. 그들은 지금 사랑을 시작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별을 준비하는 것일까? 저 멀리 바다 위에는 수도 없이 많은 오징어잡이 배들이 상여의 꽃등처럼 전등을 내걸고 떠있었다. 등대를 벗 삼아 무시로 드나드는 이름 없는 어선들, 거기에도 무수한 사연들이 실려 있을 것이다.
커피가 다 식었다. 방으로 들어와 습관처럼 리모컨을 눌렀다. 영화채널 69번 ‘섹스 스트리트’가 방영되고 있었다. 벌거벗은 두 남녀가 화면 가득히 들어 왔다. 누가 뒤통수를 잡아당기는 것 같아서 돌아다보았다.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다는 것은 누구와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였다.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었다.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나는 왜 그 순간 그 말이 생각났는지 모른다. 천천히 일어났다. 방으로 놀러 오라던 그 여직원의 방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들어갔다. 그녀는 잠옷 차림으로 있었다. 나와 같은 영화를 보고 있었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런 말이 필요없었다.
어제 밤 그 사건 때문에 잠도 오지 않고 해서 새벽같이 일어나 사우나탕에 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을 뒤집어 쓴 다음 비누질로 땀을 한번 닦아 내고 탕 깊숙이 몸을 담갔다. 어젯밤에는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모두가 서로의 시선을 피하며 탕 속에서 목만 내놓고 있었다. 마치 묻지 말라는 듯이. 달빛 아래 수박처럼 침묵하고 있었다. 수건하나로 앞을 가린 남자가 탕으로 들어왔다. 무심코 그 남자의 가랑이 사이로 시선이 갔다. 모든 남성들은 무의식중에 비교하는 습관이 있다고 했던가. 덩치가 만만치 않다. 탕 속으로 들어오자 안의 물이 넘쳐흘렀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내가 일어섰다. 다시 잠잠하던 탕이 출렁대며 내가 빠져나간 자리만큼 물이 줄었다.
나는 샤워기가 있는 쪽으로 갔다. 천천히 온몸에 비누거품을 칠했다. 그리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미지근한 온수 물을 흘려보냈다. 지그시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떴다가 깜짝 놀랐다. 거울 안에 내 모습이 없는 것이었다. 꽉 찬 수증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단 몇 초도 지나지 않았지만 나는 순간 당황했다. 거울의 수증기를 닦아냈다. 두려움이 수증기처럼 사라지고 내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거미처럼 배만 부르고 손발이 가느다란 남자가 서있다. 나에게서 외출 중인 나, 내가 오른손을 내밀자 그가 왼손을 내밀었다. 악수할 수 없는 영원한 타인, 나이면서 내가 아닌 그는 누구였을까? 나도 더 나이 들기 전에 멋진 연애 한번 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전화선 저쪽에서 여동생은 아직도 울고 있었다.
“투고!”
처남이 막내처제가 먹어다 놓은 패를 뒤적거려 보더니 안심했다는 듯이 투고를 외치고 기지개를 폈다. 그러고도 처남에게는 패가 두 장이나 남아 있었다. 쓰리고를 할 자원이었다. 한편으로는 막내처제가 초단짜리 한 장을 먹어다 놓은 것이 조금은 마음에 걸리는 눈치였다.
“쓰리고 찬스네.”
셋째동서가 떼어놓은 패를 바르게 놓으며 말했다. 자신에게는 동전 한 푼 손해날 것 없는 다량 득점의 스릴을 은근히 즐기고 있는 눈치였다. 언제나 구경꾼들은 당하는 사람 기분은 아랑곳없이 고득점자의 편에 서서 그것을 부추겼다.
“상한가가 얼마지?”
막내처제가 혼자 말처럼 물었다.
“상한가 같은 거가 어디 있어?”
처남이 엄숙하게 못을 박았다. 그때 처남댁과 아내가 조촐한 술상을 들고 나왔다. 큰처형이 난초띠를 내려주었다. 아마 막내처제가 초단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막내처제에게는 초가 없었다. 내가 내려다보니 손가갈 사이로 흙싸리띠 한 장이 보였다. 큰처형에게도 흙싸리피가 있었는데 잘못 준 것이었다. 막내처제가 그게 아닌데 하는 표정으로 힘없이 사꾸라피를 내놓고 목단을 까먹었다. 누가 봐도 판은 쓰리고로 가고 있었다. 모두가 처남의 동정을 살피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처남이 힘차게 막내처제가 내놓은 사꾸라피를 광으로 먹으면서 지체 없이 “쓰리고!”를 외쳤다. 그러면서 솔광을 또 까먹었다. 그 서슬에 처남댁이 흠칫 놀랐다.
“광박들 조심해야겠네!”
한동안 잠자코 있던 지방공무원 만년 계장인 둘째동서가 조심스럽게 주위 사람들 눈치를 보며 사뭇 걱정이라는 듯이 무거운 입을 열었다. 분위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야! 보일러 좀 꺼라.”
큰처형이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소리를 질렀다.
“세상 참 불공평해! 되는 사람은 한없이 잘되는데 안되는 사람은 죽어라 하고 안되니!”
누군가 이 말에 한숨을 섞어 내보냈다.
“아직도 희망은 있어.”
막내처제가 초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달달달 떨었다.
“화투 친 사람 어디 갔나.”
“화투 그리고 있어 누나는. 돈으로 때우면 되지.”
큰처남이 어깨를 휘휘 돌려 허리운동을 하는 시늉을 하며 여유 만만하게 웃었다. 큰처형이 늙은 암소처럼 느리게 흙싸리십끗짜리를 내려놓고 풍십오를 먹어 왔다. 정말 영양가 없는 것이었다. 이대로 가면 피박에 광박이다. 거기다가 쓰리고까지. 다행히도 막내처제에게는 한방의 기회가 있기는 했다. 흙싸리초단짜를 먹고 난초띠만 까먹으면 되는 것이었다.
막내처제가 번개같이 흙싸리를 초단짜리로 먹어왔다. 이제 난초만 까먹으면 초단이다. 처남이 고 박을 쓸 수도 있는 판이었다. 막내처제가 가재 잡는 돌을 들추듯이 조심스럽게 패를 약간만 뒤집어 고개를 갸우뚱하며 아래를 들여다보았다. 누군가의 목에서 꼴깍하는 소리가 났다. 내 손에도 땀이 났다. 천정을 올려다보니 왠지 어색한 큰 거실 등이 달려 있었다.
“어머!”
막내처제가 뒤집은 패는 초가 아니었다. 공산피를 높이 올렸다가 나무 잎사귀처럼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뜨렸다. 패가 수직의 파문을 내펴 찰파닥 담요 방석위에 떨어졌다. 그리고는 낚지가 먹이를 놓치고 맨발을 끌어가듯 천천히 공산피를 거두어갔다.
“피박은 면했네.”
둘째동서가 한마디 했다. 이제 처남이 한 점만 올리면 쓰리고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모두들 대충 눈으로 점수를 헤아려 보기에 바빴다. 처남은 느긋한 표정으로 매조띠를 내려놓으며 패를 뒤집었다. 바닥에는 풍피와 초십끗과 자신이 내려놓은 매조띠가 깔려 있었다. 매조를 까먹으면 고도리가 되는데 그것은 큰 처형이 들고 있으니 불가능한 일이고, 초십끗짜리는 십오로 먹게 되어 점수가 안올라간다. 다만 풍 피를 까먹어야 하는 좀 확률이 낮아 보이는 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것을 한눈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내가 보는 상황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설마하니 한 점 못날까 하고들 생각하고 있었다. 처남이 망나니가 칼을 들고 죄수를 훔쳐보듯이 곁눈질로 주위를 쓰윽 둘러보며 패를 뒤집었다. 일순간 우주가 공전을 멈추었다. 높이 올라갔던 처남의 오른손에 들린 패가 번쩍 빛났다. 사무라이가 바람을 가르듯이 화투를 휘둘러 쳤다. 칼바람에 막내처제의 앞머리가 살짝 날렸다. 큰처형의 속눈썹이 치켜져 올라갔다.
“탁!”
“어!”
처남 목구멍에서 단발마의 비명 소리가 탁탁한 거실 공기를 깊게 갈랐다. 모든 시선이 뒤집힌 패에 꽃쳤다.
“나가리네!”
약속이나 했듯이 한 목소리를 내고는 모두 말을 잃었다. 그 단단한 패가 나가리된 데 대하여 아무도 못 믿겠다는 표정들이었다. 모두들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는 듯이 멍하니 화투 바닥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쩌면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판이 돌아가는 모습을 한눈으로 보는 재미에 빠져 한판의 고스톱이 끝날 때까지 앉지도 않고 지켜보던 나도 황당했다. 인간사를 다 내려다보고 있던 신들은 이럴 때 어떤 표정을 지을까.
셋째동서가 불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문 채 화투 패를 다시 점검해 보고 있었다. 바둑처럼 복기해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한판 크게 먹을 것이라고 들떠 있던 처남도, 대박의 즐거움을 곁불로나마 맛보려던 동서들도, 술병을 가지고 오던 처남댁도, 어떻게든 쓰리고를 막아보려고 온갖 힘을 썼던 막내와 큰처형도, 저마다의 눈초리를 방석위에 고정 시키고 망연하게 내려다보며 있었다. 저만치 홀로 떨어져 앉아서 과일을 깎던 아내도 잠시 칼을 멈추고 돌부처처럼 정지해 있었다. 이따금 작은방에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났고, 주전자에서는 커피물이 수증기를 품어내고 있었다. 시계가 자정을 알리는 종을 12번 쳤다. 어제와 오늘이 교차하는 시각이었다.
“흐미, 산다는 게 다 뭣인지?"
그러자 거실에 모여 있던 모든 가족들이 그 뚱딴지같은 말꼬리에 줄을 서서 제각각 정말 산다는 것이 뭣인지…… 그 정답을 찾느라 숙연해졌다. 글쎄, 산다는 게 별거더냐 결혼하고 애 낳고 하루세끼 굶지 않으면 그만이지 하면서도 그 말이 그리 개운하지만은 않아 모두가 제 인생을 재단하기 시작했다.
큰처형은 뭐니 뭐니 해도 머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작은 횟집을 들어서는 사람들 모두가 큰처형에게는 송글송글한 머니로 보였다. 허리를 활처럼 굽히며 꼬부라진 혀를 돌아 나오는 ‘어서 들어오세요.’ 인사말도 따지고 보면 손님에게가 아니라 머니에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젖은 머니 마른 머니 가리지 않고 머니를 모으고 싶었다. 때로는 같은 집안에 남편을 두고 혼자 자야 하는 밤이 절구통 같은 살덩이를 슬프게도 했지만, 이제 그런 것은 아무 소용도 없는 허망한 설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직 숫자로 표시된 만큼만 봉사하는 정직한 머니만이 풍전등화 같은 인생을 보장해 줄 확실한 바람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때로는 취해서 퍽퍽 울기도 하는 큰처형, 그 까닭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둘째동서는 산다는 것이 눈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밖으로는 민원인들 눈치에서부터 안으로 내부 직원들 눈치까지, 위로는 줄줄이 간부들의 눈치를 봐야 하고 아래로는 팔팔한 젊은 직원들까지, 툭하면 성차별 성희롱을 들고 나오는 여직원들의 눈치도 챙기지 않으면 안되었다. 눈치를 봐야 하는 대상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파업을 하자는 공무원 노조와, 파업을 저지하고 직원들을 설득하라는 상부의 지시 사이에서 머리가 빠지도록 눈치를 봐야 했다. 퇴근길 지하철 경로우대석에 앉아서도, 아파트 복도에서 담배를 물고도, 학원비를 걱정하는 아내 앞에서도, 어쩌다가 직원들과 어울린 노래방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를 때도 늘 눈치를 봐야 했다.
아버지가 수저를 들기 전에는 밥을 먹어서는 안 되었던 유년시절부터 빨리 밥 먹고 학교 가야 한다는 아들에게 먼저 밥그릇을 챙겨주어야 하는 오늘까지 일생은 오직 눈치 판이었다. 지금도 쓰리고에 실패한 처남과, 쓰리고를 당하지 않은 큰처형 사이에서서 매우 어정쩡한 표정으로 눈치를 살펴야 했다.
현대전자가 하이닉스로 바뀌면서 해고되어 서울 근교에서 땅을 빌려 유기농을 하고 있는 처남은 산다는 게 누가 뭐래도 지독한 일과 걱정뿐이라고 생각했다. 계절도 없고 출퇴근도 없이 농한기라는 것도 없는 비닐하우스 속에서의 삶, 말뚝에 매인 소처럼 돌고 도는 일과 근심. 농사가 안되면 안돼서 걱정, 잘되면 제값을 못 받아서 걱정, 늘 싸우고 들어오는 아들 걱정, 늦게 귀가하는 딸 걱정, 이런 걱정 저런 걱정 걱정만 하다가 한세상 끝나는 것, 산다는 것이란 결국 갈비뼈가 쑤시도록 일하고 걱정하다가 종래는 죽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택시운전을 하는 셋째동서는 술 취한 손님이라 생각했다. 언제나 말이 많고 불평 투성이인 손님, 어디가 내릴 곳인지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때로는 중간에서 내리거나 요금을 두 번씩이나 치르는 술 취한 손님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아직도 불이 붙어있지 않은 담배에 피어오르지도 않는 연기를 피해 오른쪽 입술에서 왼쪽 입술로 부지런히 담배를 옮기고, 이마에 주름을 폈다 잡았다 하면서 화투 패를 섞었다. 흩어진 삶을 섞어서 판을 다시 짜려는 듯이 골고루 몇 번이고 정성들여 섞었다. 그런 다음 짝짝짝 소리를 내며 양손에다 들고 또 섞어 쳤다. 치고 또 쳐서 당초의 선인 막내처제에게 패를 넘겨주었다. 막내처제가 그것을 받아 큰처형에게 내밀었다. 큰처형이 알맞게 패를 떼어놓기가 바쁘게 막내처제가 능숙하게 패를 돌렸다.
막내처제 네는 애당초 그런 골치 아픈 얘기는 싫어하는 세대의 사람이었다. 돈이 생기면 쓰고 없으면 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굿모닝25시는 고객들에게는 안녕을, 그들에게는 편의를 제공하는 참으로 편리한 편의점이었다. 그들의 편의점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먹고 즐기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그것을 배설하는데 필요한 휴지와 종량제쓰레기봉투와 콘돔까지 있었다. 그들에게 산다는 것이란 참 편리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그들도 때로는 심각하게 싸운다고 하니 그 속을 다 알 수는 노릇이었다.
그러면 나는 뭔가?
어이없는 일로 직장을 잃은 나는 산다는 것이야말로 한판의 고스톱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날 강원도 워크숍 사건의 진실은 사실과 달랐다.
내가 늦은 밤 그 여직원의 방에 들어갔을 땐 ‘섹스 스트리트’가 방영 중이었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서는 그녀를 쓰러뜨렸다. 그때 그녀의 행동이 저항적이었는지 호응적이었는지는 매우 모호하다. 다만, 단호하게 거절하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었다. 맹세코 여기까지가 사실이다. 그런데 그 순간에 노래방 갔던 다른 직원들이 돌아왔다. 그러자 놀란 여직원이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그 애매한 상황에서 그녀가 서럽게 울음으로써 나만 죽일 놈이 되어 버렸다. 그녀의 본능적인 기지에 감탄할 기회도 없이 상황은 순식간에 엉뚱한 곳으로 가버렸다. 이미 사람들은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사실이야 어찌되었건 그들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만이 진실이 되어버렸다. 결국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콘도의 모든 문이 호텔처럼 자동으로 잠길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소한 착각 덕분이었다. 개미구멍이 댐을 무너뜨리듯이 인류의 역사도 그런 사소한 착각 때문에 거대한 물결이 바뀌어왔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지금 나의 직업은 대리운전사다. 주로 남들이 다 자는 밤에 일하고 남들이 다 일하는 낮에 잔다. 가끔 호출을 받고 대리운전을 해주러 가면 아직도 화투판이 끝나지 않고 있는 고객이 있다. 딱 한판만 더 돌리고 가겠다며 잠시만 기다려 달라던 그가 막판에 쓰리고를 맞고 대리운전비 2만원을 겨우 개평으로 뜯어가는 것을 자주 보았다.
그도 나도 산다는 것이 한판의 고스톱 같다는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리라. 섞어서 다시 칠 수 있는 다음 판이 없다는 것만 빼면, 상대방의 패도 모르고, 세상이라는 방석 위에 엎어져 있는 보이지 않는 패를 믿고, 예측할 수 없는 변수와 굴절이 장장이 도사리고 있는, 아아 낙장불입 같은 한판의 고스톱.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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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필,
단편 소설만큼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