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과학] 동식물 '푸드 파이터'
0.2초 만에 먹잇감 식별하고 꿀꺽, 비 오면 육식하는 식물도
입력 : 2023.07.04 03:30 조선일보
동식물 '푸드 파이터'
▲ /그래픽=유재일
요즘 많은 양의 음식이나 신기한 음식을 먹고 그 모습을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방송, 일명 '먹방'이 큰 인기입니다. 그런데 자연에서도 특이한 먹성을 자랑하는 동식물이 있다고 해요. 눈 깜짝할 사이에 빠르게 먹이를 먹는 두더지에서 형제를 먹는 벌레까지, 자연계 푸드 파이터를 만나 봐요.
세상에서 가장 빨리 먹는 별코두더지
처음으로 만나볼 동물은 외모부터 범상치 않은 별코두더지입니다. 얼핏 보면 코에 말미잘 혹은 문어 다리가 붙어 있는 듯한 모습이에요. 과학자들은 이 코가 별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에 '별코'라는 단어를 붙였지요. 또 정면에서 봤을 때 코만큼 시선을 끄는 것이 앞발이에요. 기다란 발톱을 갖고 있어서 마치 사람 손처럼 보이거든요. 기다란 발톱이 있는 큰 발은 흙을 팔 때 요긴하게 쓰여요. 두더짓과에 속한 동물인 만큼, 흙을 파고 땅속에서 생활해요. 물속에서는 발을 지느러미처럼 써서 물살을 가르며 헤엄친답니다.
별코두더지는 세상에서 가장 빨리 먹이를 먹는 푸드파이터예요. 주로 곤충·지렁이를 먹어요. 이때 먹잇감을 식별하고 먹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0.2초에 불과합니다. 25년간 별코두더지를 연구한 미국 밴더빌트대 생물학자 케네스 카타니아 교수는 별코두더지가 민첩하게 사냥하고 식사하는 비법이 별 모양 코에 있다고 설명했어요.
별처럼 생긴 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표면에 10만개 이상의 신경섬유가 벌집 모양으로 촘촘하게 들어차 있어요. 사람 손에 촉감 정보를 받아들이는 신경섬유가 약 1만7000개 있으니, 양만 해도 6배 많은 거예요. 그만큼 코를 이용해 미세한 정보까지 빠르게 알아챌 수 있는 거죠. 카타니아 교수는 별코두더지가 먹이를 사냥해 먹는 0.2초 중에서 눈앞에 있는 대상이 먹을 수 있는 건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시간은 0.0008초에 불과하다고 했어요. 그 어떤 포유류보다 빠른 속도예요. 환경 정보를 뇌로 보내는 신경계의 움직임이 생리적 한계에 근접한 수준이라 표현할 정도지요.
실제로 그동안 과학자들은 별코두더지가 생활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코로 받아들이고 처리한다고 생각했어요. 코로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거예요. 냄새도 기가 막히게 잘 맡아요. 포유류임에도 물속에서 냄새를 맡을 수 있는데, 그 비결은 공기 방울이에요. 카타니아 교수가 별코두더지의 수중 생활을 직접 촬영해 분석한 결과, 어떤 물체를 파악할 때 공기 방울을 내뿜은 뒤 재빨리 도로 빨아들인다는 사실을 알아냈어요. 한번 내뿜은 공기 방울에는 주변 냄새가 들어가거든요. 그래서 물체에 닿은 공기 방울을 다시 빨아들여서 물체의 냄새를 맡는 거예요. 이 원리를 이용해 주변에 먹잇감이 있는지 찾아낸다고 합니다.
비 오는 날 육식하는 덩굴식물
곤충을 잡아먹는 식충(食蟲)식물은 파리지옥·끈끈이주걱 등 여러 종이 알려져 있어요. 이 식물들은 곤충 등 작은 동물을 주 먹이로 삼아 영양분을 얻지요. 그런데 최근 특정 상황에서만 식충식물로 변하는 덩굴식물 '트리피오필룸 펠타툼(Triphyophyllum peltatum)'의 비밀이 밝혀졌어요.
독일 라이프니츠 하노버대 과학자들은 트리피오필룸 펠타툼을 직접 재배하며 관찰했어요. 이 식물은 평소에는 광합성을 하다가 특정 상황에서 식충식물로 돌변해 곤충을 사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지요. 이를 밝혀내고자 연구진은 이 식물 수백 그루를 준비한 뒤, 온도와 영양소 등을 다르게 설정한 환경에 각각 놓고 기르며 변화를 살펴봤습니다. 그 결과 '인(P)' 성분이 부족한 환경에서 식성을 육식으로 바꾼다는 사실을 알아냈어요. 대표적으로 비가 오는 날이지요.
인은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6대 필수 원소예요. 그러나 물에 쉽게 녹기 때문에 비가 오는 날이면 빗물에 씻겨 나가요. 주변 흙에서 인을 섭취하기 어려워지죠. 이럴 때 트리피오필룸 펠타툼은 잎에 분비샘을 만들고, 끈적끈적한 액체를 잎 표면으로 내보내요. 이 끈적한 액체에 지나가던 곤충이 붙으면 날름 잡아먹는 방식으로 사냥을 하죠. 연구진은 식물을 인이 풍부한 환경으로 옮긴 이후 새롭게 만들어진 잎에는 분비샘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답니다.
형제 잡아먹는 콜로라도감자잎벌레
감자를 주로 먹는 딱정벌레 일종인 '콜로라도감자잎벌레'는 태어나자마자 형제들을 잡아먹는다고 알려졌어요. 몸길이는 1㎝ 정도로 매우 작고, 노란색 몸에 굵은 갈색 줄이 세로로 나 있는 귀여운 외모의 벌레가 정말 잔인한 식성을 가진 걸까요?
콜로라도감자잎벌레는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주변에 있는 알을 먹이로 먹습니다. 하지만 먹어 치운 알들은 무수정란이에요. '무수정란'은 이름 그대로 수정되지 않은 알을 말해요. 그래서 어미가 제대로 품더라도 그 안에서 새끼가 자라지 않지요. 같이 태어난 형제 알이지만, 실제로 형제가 태어나지는 않는 알인 거예요.
콜로라도감자잎벌레는 알에서 태어난 뒤 유충 상태예요. 이 시기는 몸집이 매우 작고 연약하므로, 천적에게 노출됐을 때 쉽게 공격을 받거나 잡아먹히죠. 어미는 이를 알고 알에서 깨어난 유충이 빨리 자라도록 무수정란을 함께 낳은 거예요. 덕분에 유충은 영양 가득한 무수정란을 먹고 몸집을 키웁니다. 주로 노린재 같은 곤충들이 천적인데, 몸집이 커지면 쉽게 잡아먹지 못해요. 또 먹잇감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안전하게 지낼 수 있지요. 콜로라도감자잎벌레의 생태를 연구한 미국 코넬대 제니퍼 탈러 교수 연구팀은 콜로라도감자잎벌레가 천적이 있는 환경에서만 무수정란을 낳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답니다.
이윤선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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