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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1221 (월)
- 부처님 10대 제자와 전등 33세 조사 ① - 불교이야기 (5-1)
불교이야기를 앞으로도 몇 번 더 할 계획인데 저는 특별한 종교는 없지만 평소
종교에 대한 제 의문점을 한번 말씀드리고 넘어 가겠습니다.
- 종교란 본시 다른 동물들에게는 없고(진짜 없나???) 오직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데 당초 종교가 탄생한 배경은 이를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고 나의 마음에
평화를 가져오며 또 나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함인데 어찌해서 종교 간에 서로
알력과 반목이 있고 또 서로 배타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며 저주하는지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 이에 대해 어느 분은 가장 큰 문제는 “전도주의(傳道主義 = Evangelism)"이라고
말씀하시던데 저는 그것도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 다음은 인도의 어느 수행자가 말씀하신 내용인데 한번 새겨볼 만합니다.
“종교란 본시 사람의 수만큼 각기 다른 종교가 필요한 것이지요. 종교에 대하여
일원적인 논의를 한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훌륭한 종교의
교사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제각기 다른 종교의 형태를 발견해 주는
것입니다. 마치 옷이 사람마다 그 취향과 색감과 크기가 모두 다르듯이.....“
- 그래서 종교를 찾으며 “기복(祈福)”하는 것을 어리석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남이 찾는 그 마음을 비난하는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종교란 현세나 내세의 “기복(祈福)” 그 자체인데 그것을 부정하는
자체가 이미 거짓인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복(祈福)”의 내용이 무엇인가가 중요하겠지요.
- 그렇다면 우리나라 전통의 “무속(巫俗)”을 신앙으로 하는 “무교(巫敎)”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요???
저는 우리나라 "무속신앙“이 가장 인간적이고 인간의 마음을 가장 잘 그리고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지난번 ”경순왕이야기“에서는 잠간만
언급했습니다만 언젠가는 한번 테마로 할 예정인데 “무속”이라고 꼭 귀신 나오는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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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좀 재미없는 이야기입니다.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야기가 길어서 “10대 제자”와 “33세 조사”를 나누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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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불교식한자읽기” 얘기를 했는데 이왕 한자이야기가 나오고 했으니 앞으로
말씀드릴 불교이야기에서 또는 우리가 살다가 어느 한구석에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오늘은 “부처님 십대제자”와 부처님의 “법(法)“을 이은 지도자인
“33세 조사”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부처님 10대 제자
부처님께는 수많은 제자가 있었으나 통상 다음의 열 분을 “십대제자”라고 부르며
모두가 부처가 되었습니다. 즉 깨달은 분들이 되었습니다.
(1) 지혜제일(智慧第一) 사리불(舍利佛) :
다음에 얘기할 “목건련”과 함께 제자들을 데리고 가장 먼저 부처님께 귀의했는데
부처님 보다 먼저 열반에 드셨습니다.
석굴암에서 부처님을 바라볼 때 부처님 뒤 오른쪽 첫 번째가 이 부처님으로 봅니다.
“사리불다(舍利佛多)”, ”사리자(舍利子)“라고도 부르는데 ”바라문“족 출신으로
“지혜가 무궁하여 모든 의혹을 푸는데 제일”이라고 합니다.
“반야심경(般若心經)”에 등장합니다.
(2) 신통제일(神通第一) 목건련(目建連) :
통상 “위대한, 뛰어난, 많은”의 뜻인 “마하(摩詞)”를 붙여 “마하목건련”,
“대(大)목건련” 또는 “목련존자(目連尊子)”라고 부르는 이 부처님은 효자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 부처님은 신통력으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보고 “우란분재(盂蘭盆齋)”를 올려서 구해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찰에서는 7월 보름을 “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고도 부르는데
우리말로는 “백중(百中)” 또는 “백종(百種)”이라고도 합니다.
이날은 불교 5대 명절중 하나이며 불교에서의 “어버이날”입니다.
“바라문”족 출신으로 석굴암 부처님 뒤 왼쪽 첫 번째에 모셔져 있으며 “신족(神足)이
경거(輕擧)하여 시방(十方)에 비도(飛到)함은 목건련이 제일이다”라고 합니다.
* 불교5대 명절 : 부처님 오신 날(석탄절-釋誕節 : 음력 4월 초파일),
부처님이 출가하신 날(출가절-出家節 : 음력 2월 8일),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날(성도절-成道節 : 음력 12월 8일), 부처님이 열반하신 날(열반절-
涅槃節 : 음력 2월 15일), 그리고 우란분절(盂蘭盆節 : 음력 7월 15일)
(3) 두타제일(頭陀第一) 마하가섭(摩詞迦葉) :
이 부처님께도 통상 “마하”를 붙이며 또는 “대(大)가섭”이라고도 부르는데 “염화미소
(拈華微笑)” 또는 “염화시중(拈華示衆)”의 주인공인 이 부처님은 부처님 제자들 집단을
잘 이끌었던 영도자로서 그리고 세속의 욕망을 떨쳐버리기 위한 고행인 “소욕지족
(少欲知足)의 두타행(頭陀行)“을 가장 잘 했다는 뜻이 담겨 있어서 “십이두타(十二頭陀)
난득(難得)의 행(行)이 제일이다”라고 하지요.
* “염화시중” 과 “염화미소”의 한자는 “拈華” 와 “拈花” 둘 다 씁니다.
또한 이 부처님은 당초 부인과 함께 불교에 귀의했는데 부처님 열반 후 500명의
아라한(阿羅漢)과 함께 제1차 결집(結集)을 가지고 부처님 말씀을 정리하고 편찬하는
일을 지휘했으며 앞의 “사리불“이나 ”목건련“이 일찍 열반에 드셨기 때문에 “가섭”이
불교 선종(禪宗) 법맥(法脈)의 “제일대조사(第一代祖師)”로 불리게 됩니다.
* 조사(祖師) :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부처님의 법(法)을 이을 교단의 지도자를 정해 왔는데
그것은 스승이 제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을 골라 법을 전하고 그 증거로
부처님의 “가사(袈裟)”와 “발우(鉢盂)”를 전해줍니다 이것을 “의발(衣鉢)”을 전한다고
하는데 이 내용은 다음에 “33세조사”편에서 다시 말씀드립니다.
* “마하가섭”이 “선불교(禪佛敎)” 조사로 맨 앞에 나오는 이유는 부처님으로부터
다음의 세 가지 “이심전심(以心傳心)”을 받았다고 해서 더욱 그렇습니다.
* 제1차 결집 때 500명의 “아라한”과 함께 부처님의 말씀을 편찬했다고 하여
지금도 절에 가시면 “500나한상”을 모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 삼처전심(三處傳心) ]
① 다자탑전 분반좌 (多子塔前 分半坐)
부처님이 어느 날 “다자탑” 앞에서 설법을 하시는데 외부로 교화를 나갔다 돌아온
“가섭존자”가 앉을 자리가 없어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를 보신 부처님께서 앉으신 자리의 절반을 내어주어 가섭이 앉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설법을 계속하셨다.
② 영산회상 거염화 (靈山會上 擧拈花)
부처님께서 어느 날 영산에서 설법을 하시는 도중에 연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셨다. 대중들은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하고 말하지 못 했는데 “가섭존자”
만이 짧은 미소를 보여서 그 뜻을 알아챘는데 ”염화미소(拈華微笑)“라고도 하며
즉, ”이심전심(以心傳心)“ 이지요.
# 여기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정법안장(正法眼藏)이 여기 있으니
그것을 ‘가섭’에게 전하노라“라고 말씀하셨다.
③ 사라쌍수하 곽시쌍부 (沙羅雙樹下 槨示雙趺)
부처님께서 “구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드셨는데 마침 멀리 교화를 나갔던
“가섭존자”가 소식을 듣고 울면서 달려왔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이미
입관(入棺)을 마친 상황이었다. 이에 “가섭존자”가 울며 부처님을 부르니 관에서
부처님께서 두 발을 내 보내시어 “믿음(신-信)”을 보이셨다.
# 곽(槨) : 관(棺)을 담는 궤를 말합니다.
# 부(趺) : “발등 부” 또는 “책상다리할 부”라고 하는데 “책상다리하다”
의 의미일 때는 “가(跏)와 뜻이 같습니다.
- “가부좌(跏趺坐)”, “반가부좌(半跏趺坐)”, “결가부좌(結跏趺坐)”,
“반가상(半跏像)” 등의 말을 들으신 적 있지요?
- “국보 제78호 금동미륵반가상(金銅彌勒半跏像)”과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반가상(金銅彌勒半跏像)”이 유명하지요.
전체적인 모습은 비슷하지만 머리에 쓴 보관(寶冠)등이 조금 다른데
사람마다 이쪽이 낫다 저쪽이 낫다 라고들 말하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교대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라고도 합니다.
- 무엇보다도 은근한 웃음이 보는 사람들을 휘어잡는데 사진을 첨부합니다.
➜ 특히 국보 제83호 미륵상은 “선덕여왕”을 나타낸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다음에 올리는 글인 “신라의 불교와 선덕여왕”에서 다시 말씀드립니다.
# 그런데 일본의 국보 제1호는 교또(京都) 교외에 있는 “코류지(광륭사-廣隆寺)”에
있는 “목조 미륵반가상”인데 우리나라 “국보 제83호”와 너무 비슷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것은 금동제인데 일본 것은 목조(木造 = 적송-赤松으로 만든 것)
입니다.
- 학자들에 따르면 일본에는 “적송”이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어서 이 반가상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서 건너간 것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 이에 대하여는 아래 사진에서 다시 설명을 붙입니다.
(4) 천안제일(天眼第一) 아나율(阿那律) :
부처님의 사촌동생으로 다른 말로는 “아니루타(阿尼樓陀)”라고도 부르는데 다음에
나오는 “아난”과 함께 출가하였으며 밤낮으로 수행에 정진하다가 눈이 멀었지만
참지혜의 눈인 “천안통(天眼通)을 얻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 호칭에는 “불멸(不滅) 또는
여의(如意)의 부처님”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5) 해공제일(解空第一) 수보리(須菩堤) :
“수정리(須淨堤)” 또는 “수부리(須扶堤)”라고도 하며 “선(善)”, “선실(善實)”의
뜻입니다. 바라문족 출신으로 지혜가 총명해서 누구도 따를 수 없었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성을 잘 내고 악(惡)했는데 주위에서 싫어하자 산속에 들어가 수도하다가
불법에 귀의하였습니다.
"항상 공정(空定)을 즐기고 공(空)의 이치를 분별하는 데에는 제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공사상(空思想)”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경전에는 꼭 등장하는데
우리나라 “조계종”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인 “금강경(金剛經 = 金剛般若波羅密經
= 能斷金剛般若波羅密經)“에서 부처님과 문답하는 형식으로 등장합니다.
(6) 설법제일(說法第一) 부루나(富樓那) :
바라문족 출신이고 생년월일이 부처님과 똑같다고 합니다. 원래는 “부루나미다라니자
(富樓那彌多羅尼子)”라고 하는데 줄여서 “부루나”입니다. “만원자(滿願子)” 또는
“만자자(滿慈子)”라고도 하는데 “능히 법을 광설(廣說)하여 의리를 분별하는 것이 제일”
이라고 하며 널리 설법하는 능력이 대단해서 난폭한 사람들도 부루나의 설법을 듣고
불법에 귀의하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7) 논의제일(論議第一) 가전연(迦旃延) :
“가연자(迦延子)”라고도 하며 왕족계급 출신입니다. 뛰어난 언변과 논리 정연한
말솜씨로 상대방의 주장을 꺾는 능력이 탁월하였다고 합니다.
(8) 지계제일(持戒第一) 우바리(優婆離) :
다른 제자들이 바라문족이나 왕족 출신인데 “우바리”만이 노예계급인 “수드라”
출신으로 “석가족의 이발사”이었습니다. “우바리(優婆梨)” 라고도 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계율을 잘 지키는 데는 제일이라고 합니다.
(9) 밀행제일 (密行第一) 라훌라(羅候羅) :
부처님이 출가 전에 결혼한 “야소다라” 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입니다. 이 아들이
부처님의 출가에 장애(障碍)가 되었으므로 “장애“라는 뜻의 “라훌라”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라훌라”는 일찍이 “목건련”을 스승으로 하여 출가했는데 나이가 어려서
계율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장난을 많이 쳐서 부처님께서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 발을
씻은 물을 마시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한번 더럽혀진 물은 사람이 먹을 수 없다. 사람도 올바른 지혜와 자신을
닦지 않으면 이 물처럼 버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열심히 수행을 하게 되는데
나중에는 “금계(禁戒)를 깨뜨리지 않고 송독(誦讀)을 나태하게 하지 않음이 제일이다”
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 “야소다라(耶輸陀羅)”는 석가족 출신으로 10대제자중의 하나인 “아난다”의
누이동생인데 나중에 출가해서 최고의 비구니가 됩니다.
(10) 다문제일(多聞第一) 아난(阿難) :
“아난다(阿難陀)”라고도 하는데 부처님의 사촌동생입니다. 부처님의 비서격으로
항상 부처님을 가까이에서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 사유로 부처님 열반 후 500 아라한이 모여 제1차 결집을
할 때 부처님의 말씀을 그대로 외워냄으로써 경전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어느 경전에서나 부처님 말씀을 말할 때에는 마치 상용구처럼 꼭 “여시아문
(如是我聞) - 나는 이렇게 들었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아난존자”가
“나는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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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화시중 (염화미소)
-- 금동미륵반가상
(국보 제78호) --- 높이 83.2cm, 삼국시대 작품
(국보 제83호) --- 높이 93.5cm, 삼국시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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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국보 제1호 : 목조미륵반가상) : 높이 83.3cm
위에서 잠시 말씀드렸지만 이 불상의 재료가 “적송”인 소나무로서 당시인 일본 “아스까
(飛鳥)“ 시대의 불상들은 대부분 녹나무로 만들었는데 이 불상만이 유일하게 소나무로
만든 것인데 당시 신라인이 세운 절에 봉안되어 있어서 신라에서 만들어 간 것이라고
일본학자들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불상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무수한 찬사가 있는데
그 중 가장 멋있게 표현한 것은 독일의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인 ”칼 야스퍼스
(Karl Theodor Jaspers : 1883~1969)“가 1945년 일본에 와서 이 불상을 보고 쓴
”패전(敗戰)의 피안(彼岸)에 남긴 것들“이라는 글에 있는 내용입니다.
-- “나는 지금까지 철학자로서 인간존재의 최고로 완성된 모습을 표현한 여러 형태의 신상
(神像)들을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각들에는 어딘지 인간적인 감정의 자취가
남아있어 절대자만이 보여주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이 미륵상에서
인간존재의 가장 정화되고, 가장원만하고, 가장 영원한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나는 철학자로 살아오면서 이 불상만큼 인간실존의 진실로 평화로운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내용은 “고류지”의 장내안내방송에서도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 그런데 우리나라 불교역사가들에 따르면 이 반가상은 신라 제26대 진평왕 44년(622년)
49세의 나이로 돌아간 “성덕태자(聖德太子 : 574~622)”를 기리기 위하여 신라 제26대
진평왕 45년(623년) 신라에서 조성하여 보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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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길어져서 “전등 33세 조사편”은 다음에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결국 기독교가 말썽이라는 말씀이신데 동감합니다. 사회가 현대화 될수록 강압이라는 것과는 멀어져 간다고 보는데 기독교는 아직도 그 십자군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불신지옥"이 아닐까 합니다만 "니들 예수 안 믿으면 훅간다!" 라는 얘기이므로 한편으론 참 자상도 하시지 하면서도 "너나 잘해" 라는 반감이 생기는 건 어쩔수 없습니다. 기독교 교리에서 전도는 하느님이 점수을 가장 많이 주신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이는 결국 전도자 자신을 위한 것 일 수도 있기 때문에 100% 남을 위한 선행이라고 보기도 어렵지요. 기독교도 이젠 좀 개념정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근데 나 기독교도 마자?
강프로님, 꼭 기독교만 전도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방이 좀 불쾌할 정도가 되면 안되겠지요. 겁주고 불편하게 만들고 시끄럽고 지저분하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종교가 무슨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고 자기종교 이외의 것은 모두 나쁘다고 하는 것이 참 문제입니다. 뭐 교리를 잘못 해석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보면 불쌍합니다. 요즘은 확성기 사용이 좀 줄었는데 밤에 빨간 표시도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모든 종교인들이 마음속으로 조용히 믿으면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