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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양산 백학장원 원문보기 글쓴이: hwd
-써레
써레는 쟁기와 더불어 논농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농기구다. 논에 모를 심기 위해서는 쟁기로 갈아엎고, 갈아엎은 흙덩이를 풀어 헤쳐서 부드럽게 만들어야 하는데, 써레가 바로 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논을 삶는다고 한다.
써레는 길이 일 미터나 일 미터 반쯤 되는 굵은 통나무에 어른 팔목 정도의 굵기와 길이를 가진 단단한 나무 꼬챙이를 박은 모양으로, 소가 끌 수 있게끔 봇줄을 매는 나루채와 손잡이로 되어 있다.
써레질을 하기 위해서는 논을 갈아엎어야 한다. 논은 이른 봄이나 가을에 초벌을 갈고 모를 낼 즈음에 두벌을 갈아야 생땅이 없어지는데, 여기에 물을 대면 흙덩이가 부드러워진다. 이걸 다시 쟁기로 세 번째 갈아야 하며, 이때는 초벌, 두벌처럼 두둑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두둑을 삼등분하여 양옆을 갈아서 고랑으로 흙이 메워지게 한다. 그런 다음에 써레질을 해야 흙덩이가 잘 풀어 헤쳐지며 논이 판판하게 골라진다.
써레질은 종횡무진, 신경 쓰면서 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렇다고 하여 아무런 법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기다란 논이 있다면, 먼저 길이가 짧은 쪽은 시계 방향으로 빙빙 돌면서 ‘곱썰기’라는 것을 해야 되고, 그다음에는 기다란 쪽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장썰기’를 해야 한다. 그래야 흙덩이가 소 발, 써레 발, 사람 발에 고루 밟혀서 빠짐없이 으깨지는 것이다.
써레 중엔 밭에서 쓰는 써레도 있다. 밭 써레도 논에서처럼 흙덩이를 부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무논에서와는 달리 마른 흙덩이를 부수는 까닭에 써레의 몸통을 서너 개 정도 덧붙여서 써레발을 많이 박은 게 다를 뿐이다. 또 회전 써레라 해서 소가 끄는 것에 따라 써레 발을 박은 몸통이 빙글빙글 돌아 흙덩이를 부수는 것도 있다.
-괭이
우리가 아는 연장 중에 괭이만큼 여러 군데 쓰이는 연장도 드물 것이다. 괭이는 우선 땅을 파헤치는 데 많이 쓰인다. 쟁기가 닿지 못하는 논밭의 개자리(가장자리)와 작은 텃밭을 일구는 데는 괭이만 한 연장이 없다. 파헤친 흙덩이를 잘게 부숴서 부드럽게 판판하게 만드는 일도 괭이로 손쉽게 할 수 있다. 씨앗을 뿌리기 위해 골을 타거나 두둑을 만드는 일, 씨앗을 덮는 일, 김매고 북 주는 일 따위도 괭이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괭이는 이렇게 서론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건 날의 모양이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땅을 파는 데는 끝이 뭉툭하며 날이 두꺼운 괭이를 쓰고, 흙덩이를 부수거나 골을 타는 데는 날이 얇고 타원형처럼 생긴 가짓잎 괭이를 쓴다. 김을 매고 북을 주는 데는 넓은 삽괭이로 하는데, 이와는 반대로 한쪽 끝이 뾰족하고 무거운 곡괭이로는 돌이 많은 단단한 땅을 파 일구는 데 쓴다. 한 손으로 쓸 수 있는, 끝이 뾰족하고 자그마한 괭이는 산에서 약초를 캐거나 삼을 캐는 데 쓰는 약초 괭이다.
곡괭이는 단단한 참나무로 해 박아야 한다. 가짓잎 괭이나 삽괭이는 가벼우면서 질긴 붉나무로 해야 좋다. 물론 다른 나무도 자루로 쓸 수 있지만, 붉나무를 해 박으면 괭이질을 오래 하여도 손이 부르트지 않고 도리어 매끈매끈해진다. 옻나무와 비슷한 이 붉나무는 가을이 되면 이파리가 가장 먼저 붉게 물드는데, 오배자라는 벌레가 붉나무에 붙어서 만드는 혹과 같은 덩어리가 약, 물감, 잉크, 광택재로 쓰이는 걸 보면 손이 매끈매끈해진다는 말이 이해가 될 것이다. 약초 괭이의 자루는 백동나무가 적당하다. 이 나무는 가늘어도 단단하고 질겨서, 한 손으로 쓰는 자그마한 괭이 자루로 알맞다.
칡과 띠풀이 잘 자라는 곳은 볕이 잘 들고 땅이 기름지다.
괭이나 괭이처럼 생긴 연장은 쓰고 나면 흙어 털어서, 헛간 벽에 횃대 같은 걸대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걸어 놔야 한다. 그러지 않고 바닥에 세워 놓으면 사람이 밟아서 다칠 염려가 있다.
-태와 물풀매
익기 시작하는 나락은 먼저 껍질 속에 하얀 즙이 생기는데, 이것이 양이 많아지고 굳어져서 쌀이 된다. 그런데 이때 나락 모가지에 참새란 놈들이 우 하고 떼거리로 내려앉아서 낟알을 쪽쪽 빨아먹어 버리면 나락이 쭉정이가 되어 버린 채 여물지가 않는다.
밭의 조는 익어서 고개를 숙였을 때가 중요하다. 이것은 낟알이 나락보다 훨씬 작아서 익기 전에는 빨아먹을 수가 없고 언제든지 익어야 까먹을 수 있다. 조는 특히 메마른 땅에서도 잘 자라고 수확량이 많으므로 쌀과 보리와 더불어 중요한 식량 작물이며, 산간 지방에서 많이 심으므로 역시 새를 쫓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한다.
태는 큰 소리를 내서 새를 쫓는 연장이다. 짚으로 만드는데, 우선 짚을 잘 추려서 한 주먹 정도 덜어낸 다음 밑동을 새끼로 묶고 그것이 태 머리가 되게 반대로 뒤집어서 다시 한번 묶는다. 이것을 멜빵처럼 육칠십 센티 길이로 따 가다가 다시 단단히 묶어서 풀어지지 않게 한 다음, 이어서 약 이백오십에서 삼백 센티가 되게 새끼를 꼬되, 짐승의 꼬리처럼 처음은 굵게, 끝은 가늘게 꼬아 마무리하는 것이다. 이 태는 태 머리를 잡고 머리 위에서 한쪽 방향으로 빙빙 돌리다가 갑자기 반대로 휙 잡아채면 탯줄이 꺾이면서 ‘딱’ 하고 큰 소리가 나서 새들이 놀라 달아나게 한다.
물풀매는 돌팔매질을 하는 연장이다. 이것은 새끼로 국자처럼, 혹은 작은 주머니처럼 망을 떠서 돌을 넣고 양쪽에 줄을 달아서 머리 위에서 빙빙 돌리다가 한쪽 줄을 놓으면 돌이 아주 멀리 날아가서 참새들을 위협하는 것이다. 이것 말고도 두름박(뒤웅박)이라고 하여 반으로 가르지 않고 속을 파낸 박을 나무 막대기 같은 것으로 딱딱 때려서 소리를 내며 새를 쫓기도 하는데, 사람이 목청을 높여 노래를 곁들이기도 한다.
-멱동구미
멱동구미는 짚으로 둥글게 엮어서 곡식이나 고구마, 감자 따위를 담아 나르거나 갈무리해 두는 그릇이다. 크기는 아주 여러 가지여서, 지름이 작은 것은 이십ㅈ오 센티쯤에서부터 큰 것은 백 센티에 이르는 것도 있다. 지름이 넓을수록 운두 또한 높아서, 어떤 것은 곡식을 한 가마 이상 담을 수 있는데, 대부분은 지름이 사오십 센티에 높이 이십오에서 삼십 센티의 것들이다. 둥구미는 홑겹으로 엮기도 하지만 대개는 두 겹으로 엮어서 단단하게 하므로, 낡아도 구부러지거나 주저앉지 않는다.
-깍지와 토시
깍지는 논김을 맬 때 손가락을 보호하기 위해서 끼우는, 대나무로 만든 골무 같은 물건이다. 자기 손가락 굵기에 맞는 대나무를 약 삼 센티 정도의 길이로 잘라, 한 면을 비스듬히 깎아내서 만든다. 이것을 장갑처럼 열 손가락에 끼우고 김을 매면 김도 잘 매지고 손가락도 닳지 않는다.
논김은 보통 세 벌을 매야 한다. 초벌 김과 두벌 김은 넓적한 논 호미로 풀이 난 벼 포기 사이의 흙을 파서 덜퍽덜퍽 뒤집어엎는 것이고, 세벌째는 손가락으로 득득 긁으며 나아간다. 초벌과 두벌은 흙을 파 뒤집으므로 풀도 죽을뿐더러 벼 뿌리에 공기를 통하게 해서 벼가 잘 자라도록 돕는 것이고, 세벌째는 벼가 거의 자란 때 매는 만두레, 즉 마무리 김이므로, 대강대강 손으로만 논바닥을 긁거나 문질러서 흙탕물을 일으켜 여러 생물의 활동을 활발하게 해 주는 것이다. 이때 깍지를 끼고 김을 맨다.
토시는 대오리나 댕댕이덩굴로 짜서 논 김을 맬 때 팔목과 팔꿈치 사이에 까우는 물건이다. 논김을 초벌 맬 때는 벼 줄기가 아직 작고 연하므로 살갗이 베이지 않지만, 두벌 세벌 맬 무렵이면 이파리가 굳세고 날카로워져서 팔뚝의 살갗을 베이기 쉽다. 그렇다고 해서 옷소매를 걷지 않고 김을 매면 옷이 금방 닳아 질 게 뻔하다. 벼 이파리가 스치면서 베인 팔뚝에는 수없이 많은 붉은 실 핏자국이 생기고, 쓰라려서 나중엔 팔뚝을 움직일 수 없이 붓게 된다. 그래서 토시를 끼우는 것이다.
-고무래
고무래 놓고 정( )자 모르는 사람은 많다. 그것은 ‘고무래 정’ 자가 한글과는 달리 우리가 평소에 잘 쓰지 않는 한자이기 때문이다. ‘고무래 정’ 자는 꼭 고무래를 닮았다. 한데 고무래보다는 당그래하는 말이 더 살갑게 느껴진다. 시골 고장 말이어서 그렇겠다. 고무래는 논이나 밭의 흙을 고르고 씨를 뿌리고 덮을 때, 그리고 가을에 곡식을 말릴 때는 멍석 위에 것을 퍼 널거나 끌어 모을 때 쓰는 연장이다. 이처럼 밀거나 당기는 거라서 당그래하고도 했던 것이다.
고무래는 가로 삼사십 센티, 새로 약 이십 센티, 두께 이삼 센티의 판자에 구멍을 뚫어서 길이 백오십 센티 정도 되는 나무자루를 박아 만든다. 부엌에서 아궁이의 재를 긁어낼 때도 쓰는데, 이것은 잿고무래라 해서 크기가 아주 작은 것이다. 논에서 고무래를 쓸 대는 쟁기로 갈아엎고 써레로 썬 다음 조금씩 더 세세하게 흙 고르기를 할 때인데, 물 위로 나온 흙덩이를 끌어다 깊은 곳을 메우는 식이라 괭이보다 더 편리하고 많은 양의 일을 할 수 있다.
고무래는 이제 곡식을 퍼 널어서 말리는 데만 쓰는 셈이다. 곡식을 말리는 것은 썩거나 벌레가 생기는 것을 막으며 오랫동안 갈무리하기 위해서인데 , 이걸 그냥 멍석 위에 고루 퍼 널기만 해서는 안 된다. 처음에 고루 퍼서 넌 다음 햇볕이 좋을 경우엔 약 두 시간 간격으로 저어서 뒤집어 주기를 반복해야 한다. 이것을 좀 더 쉽게 하기 위해서 지금의 고무래는 가벼운 플라스틱으로 만들되, 한 면은 밋밋하게, 그 반대 면은 요철이 생기도록 만들어서 가운데 괴통(구멍)에 자루를 박았다. 그러니까 밋밋한 부분으로는 처음에 퍼 널 때 쓰고, 요철 면은 뒤집어 줄 대 멍석 위의 곡식을 쭈욱 밀거나 끌고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고무래는 마음만 먹으면 집에서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연장이다. 적당한 나무판자와 손잡이로 쓸 막대기, 그리고 판자에 손잡이를 박으려면 구멍을 내야 하니까 끌과 망치와 톱, 그리고 못 한두 개와 사포 한 장이면 충분하다. 연장은 만들어 써 본 사람이라야 아낄 줄 알고, 남의 것을 빌려 쓰기 어려워 할 줄도 알게 된다.
-메
메란 나무 말뚝을 박거나 떡을 치고 방아를 찧거나 짚의 밑동을 바수는 따위의 일에 쓰는, 나무로 만든 망치이다. 망치의 역할을 해야 하므로, 몸통은 참나무, 대추나무, 박달나무, 느티나무처럼 무겁고 단단한 나무로 하며, 자루로는 소나무도 무던하고 백동처럼 단단한 질긴 나무가 많이 쓰인다.
매의 크기는 쓰임새에 따라서 제각각 다르지만, 대개 말뚝을 박거나 떡을 치는 메는 크고, 짚일 할 때 쓰는 짚메는 여러 가지 공예품을 만들 때 쓰는 메는 작다.
특히 짚신을 삼을 때 쓰는 메는 대추나무로 지름 오 센티 정도에 길이 이십 센티 정도로 약간 굽게 하여 팔각 내지 십이각 모양으로 정교하고 아름답게 깎아 만드는 게 보통이다. 공예품을 만드는 데 쓰는 연장이 실은 공예품인 셈이다.
떡메는 어쩐지 푸근한 느낌이 든다. 모양새 또한 큼지막하고 수더분하다. 추석이나 설이 돌아오면 찹쌀을 물에 불렸다가 가마솥 시루에 고두밥을 찌고, 다 쪄지면 넓고 두꺼운 안반에 쏟아부어서, 그다음에는 떡메로, 처음에는 가만가만 내리쳐서 이긴이긴 해서 쌀 알갱이를 으깨다가, 세게 내리쳐도 어디로 튀어 달아나지 않을 정도로 고두밥이 한 덩어리가 되면, 그때는 철푸덕 철푸덕 양쪽에서 두 장정이 신나게 내리친다. 이런 떡메는 솔향기가 나라고 붉은 소나무를 쓰더라.
커다란 돌 절구통에 나락을 쏟아붓고 찧어 왕겨를 벗기거나, 통보리를 넣고 찧어 겉겨를 벗겨낼 때는 지름 십여 센티, 길이 오십 센티가량의 기다란 메를 쓰면 절구공이보다도 훨씬 힘이 덜 든다.(이때는 물을 좀 부어 줘야 보리의 껍질이 붙어서 겨가 잘 벗겨진다) 집을 지을 때는 기둥, 도리, 들보, 상량 들을 짜 맞추는데, 메 없이는 천하 없어도 일이 되지 않는다.
-두레와 용두레
물을 댈 수 없는 논은 하늘에서 비 내리기만을 기다려야 하고, 가뭄이 더 심해지면 하는 수 없이 메밀을 심기도 한다.
가뭄이 심할수록 물은 깊은 곳에만 고여 있기 마련인데, 그 물을 논으로 퍼 올리는 연장이 바로 두레이다. 두레는 기다란 나무 끝에 한 말(이십 리터) 정도 퍼 올릴 수 있는 커다란 바가지 같은 것을 달아 중간을 삼각대나 논둑에 걸치고 물을 푼다. 기다란 나무의 중간에 걸친 삼각대가 지렛대와 같은 역할을 함으로써 힘을 덜 들이고 낮은 곳의 물을 퍼 올릴 수 있다. 두레는 퍼 올려지는 물의 무게를 좀 더 가볍게 하기 위해서 물바가지의 반대쪽 손잡이가 나무의 밑동 굵은 쪽이어서, 한중간을 걸치고 물을 가득 퍼도 양쪽의 무게는 비슷해서 사람의 힘은 조금만 써도 된다.
용두레는 길이가 약 백오십에서 이백 센티쯤 되는 커다란 통나무를, 앞쪽은 넓고 깊게, 뒤쪽으로 갈수록 좁고 얕게 판, 그 자체가 커다란 통나무 바가지인 두레이다. 이 통나무 바가지의 뒤쪽에는 길이가 약 육칠십 센티쯤 되는 적당한 굵기의 손잡이를 달거나 아예 손잡이까지 통째로 한 몸이 되게 깎기도 하는데, 두레와 마찬가지로 서까래 같은 통나무로 삼각대를 세우고 거기에 줄을 매달아 앞뒤로 흔들어서 물을 푼다.
삼각대 위에 올려놓고 쓰는 두레나 삼각대에 매달아서 쓰는 용두레가 서로 모양만 다를 뿐이지 같은 원리를 이용한 것인데,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두레는 물을 퍼서 들고 있어도 새지 않지만, 용두레는 앞쪽이 트여서 새어 버리는 까닭에 푼 물을 앞으로 쏟아붓는 동작이 연달아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물을 푸는 횟수가 많을 수밖에 없고, 무넘이 또한 낮은 곳에서 퍼 올리는 거라 그 양도 두레에 비해 다섯 배에서 일곱 배 정도까지 많다.
무넘이란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에서 물을 대야 하는 논까지의 높이를 말하는 것으로, 무넘이가 낮다는 것은 논 바로 밑에 물이 있어 논으로 퍼 넘기기가 쉽다는 것이고, 높다는 것은 논보다 훨씬 아래쪽에 물이 있어 논으로 퍼 넘기기가 힘이 든다는 것이다.
-나락뒤주
쌀뒤주가 부엌이나 대청 혹은 살림살이를 두는 고방에 놓고 쌀을 담아두는 그릇이라면, 나락뒤주는 마당 혹은 집 한 곳의 적당한 곳에 만들어 두고 잘 말린 나락을 그대로 쏟아 부어 갈무리해 두는 나락 저장고이다.
거의 모든 곡식이 그렇지만, 나락은 한 해 동안 먹을 쌀을 한꺼번에 찧어 두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꺼내어 쬫어 먹기 때문에 나락만 따로 갈무리해 두는 뒤주가 있어야 하고, 보통 헛간 안쪽의 으슥한 곳이 아닌 사방이 트인 울안의 적당한 곳이나 살림집의 벽 한 면을 붙여서 나락뒤주를 만드는데, 이것은 바람이 잘 통해야 습기와 곰팡이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락뒤주는 두지, 두태통, 혹은 둑집이라고도 한다.
-낫과 숫돌
낫은 종류도 여러 가지이다. 연한 풀류를 베는 낫은 왜낫이라 해서 일본에서 들어왔는데, 낫자루가 사십 센티쯤 되게 길고 목(슴베)이 짧으며 날의 두께는 아주 얇다. 나무를 베거나 갈대나 억새, 수수, 옥수수의 완강한 밑동을 베는 낫은 조선낫이다. 자루가 이십에서 이십오 센티 정도로 짧고, 목은 황새목처럼 길어서 황새목이라고도 한다. 날의 두께는 아주 두꺼워 팔뚝 같은 나무를 찍어도 상하지 않는다.
이 조선낫 중에는 낫날의 길이가 십 센티 정도로 아주 짧아서 버들이나 담배, 뽕나무를 베는 데 쓰는 버들낫이 있으며, 낫날 길이가 사오십 센티로 아주 길고 자루도 백 내지 백오십 센티 정도로 길어 갈이나 들풀을 후리면서 베는 벌낫이 있다. 모양새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도 한데, 대개 경기도나 경상도의 낫은 날이 한일 자 형태로 곧고 자루와 거의 직각이며 숨베가 길다. 이에 비해 강원도나 전라도의 낫은 날과 등이 굽고 목이 이들보다 약간 짧다.
낫이 종류가 아무리 많아도 숫돌이 없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숫돌도 면이 거친 것과 몽근 것이 있는데, 이 사이에는 아주 거친 금강석이라는 숫돌과 결이 고운 떡 숫돌 따위 등 여러 종류가 있다. 그래서 무뎌진 도끼나 작두날 같은 것은 금강석에 갈고, 이발소의 면도칼 같은 것은 떡 숫돌에 갈아야 한다. 하지만 날이 무뎌진 정도나 두께에 따라서 거친 숫돌에서 몽근 것으로 옮겨 가며 날을 벼리기도 한다.
이와는 반대로 금강석에다 면도칼을 갈면 칼을 버리게 되며, 도끼날을 떡 숫돌에 간다면 이것도 역시 벼려지지 않을뿐더러 숫돌만 버리게 된다.
낫을 가는 숫돌은 기다란 막숫돌이다. 이 숫돌은 전문 공구점보다는 일반 철물점에서 살 수 있는데, 가능하면 돌이 무른 것을 사 써야 한다. 돌이 단단하면 낫이 잘 갈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철물점에 가서 숫돌을 여러 개 꺼내 놓고 침을 뱉어 보자. 침이 빠르게 번진다는 건 돌의 조직이 치밀하지 않고 성글기 때문이고, 성글면 무른 것이다.
뾰족한 못으로 긁어서 상처를 내 봐도 알 수 있다. 쉽게 긁히는 느낌이 드는 게 무른 것이고, 색깔도 엷다.
숫돌에 낫을 갈 때는 겨울이라고 해도 찬물에 갈아야 한다. 따뜻한 물은 낫이 잘 안 갈린다. 기름을 친 듯 미끄럽고 숫돌과 낫 사이에 서로 비벼지는, 껄끄러운 마찰이 생기질 않는다.
낫을 갈 때는 슴베 부분을 왼손에 잡고 날 끝은 오른손으로 잡아 낫의 휜 면을 숫돌에 대고 힘을 주어 앞뒤로 밀고 당기며 문질러야 한다. 숫돌에 물이 없으면 조금 끼얹고 되풀이한다. 이렇게 해서 적당하게 날이 갈아졌다고 느껴지면 날을 한번 쳐다보자. 숫돌에 닿은 곳이 번쩍인다.
사실 낫은 항상 쓰는 사람이 아니면 잘 갈 수 없기에 잘못하면 낫을 버리는 수가 있다. 처음 슴베 부분을 왼손에 잡고 날 끝을 오른손에 잡고 가는 이유는 낫의 휜 안쪽을 먼저 많이 갈아 줘야 하기 때문이고, 그 바깥쪽은 이제 왼손과 오른손 쪽을 반대로 돌려 잡고 아주 조금만 살살 갈아서 날을 세워 줘야 한다.
날이 섰는 지, 곧 벼려졌는지는 손으로 살짝 만져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엄지손가락의 지문 부분을 낫날에 대고 베이는 방향으로 살짝 밀어 보자. 이때 미끄러지지 않고 베일 듯이 매우 섬찟하고 오싹함이 느껴지면 잘 벼려진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낫을 늘 갈아 본 사람이 아니면 잘 알 수 없고, 처음 해 보는 사람에게는 위험하기도 하다. 그러므로 낫날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데, 잘 갈린 부분은 날이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안 갈린 부분은 가는 실처럼 희게 보인다. 이것은 날카롭게 낫날이 벼려질수록 날 끝 선의 표면적이 줄어들기 때문이므로, 희게 보이는 부분만 조금 더 갈아서 마무리하면 되는 것이다.
낫은 언제나 이렇게 완벽하게 벼려서 써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풀이나 나무는 잘 베어지지 않고 곡식은 뿌리까지 뽑혀서 이삭에 흙이 섞이기 쉬우며 또 자칫 손까지 벤다. 하지만 벼려 쓰는 연장 중에 낫처럼 벼리기 어려운 것도 없다. 그것은 낫날이 안으로 휘어져 곡선을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베는 물건의 저항을 줄이고 충격을 흡수하며 풀이나 나무가 낫 밖으로 흐트러지지 않고 안으로 모아져서 베기 쉽게 하기 위함이니, 조상의 지혜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날을 벼려 쓰는 연장일수록 쓸 때 힘의 강약과 속도의 빠르고 느림, 그리고 선의 직곡이 뒤엉켜서 춤추는 듯한 부드러움과 벼락 치는 듯한 순간이 손끝에서 섬세하게 일어나야 한다. 그렇게 사람과 연장이 한 몸이 되어야 아름다운 것이며, 원하는 것을 이룰 수가 있다.
낫은 가능하면 쓰기 전에 바로 갈고, 미리 갈아 놓고 오래 두지 말아야 한다. 낫날이 녹슬기 쉽다. 조선낫으로는 풀도 베지만 왜낫으로 나무는 베지 말자. 낫 버린다. 쓰고 나서는 항상 짚으로 만든 낫꽂이에 꽂아 두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가마니
가마니는 벼와 보리, 콩과 팥, 조와 기장, 수수나 옥수수, 고구마나 감자 따위의 논밭에서 나는 온갖 곡식들과 자질구레한 살림도구들을 담아 나르거나 갈무리해 두는, 짚으로 짠 촘촘한 그릇이다. 나무로 된 틀에 새끼로 보통 서른두 줄의 날줄을 늘이고 서로 엇갈리게 하여, 바늘대로 지푸라기를 넣은 다음 베를 짜듯 바디로 눌러 짠다. 다 짜면 반으로 접어 양족을 커다란 바늘로 꿰매서 자루처럼 만든다.
가마니에는 보통 팔구십 킬로의 곡식이 담긴다. 장정 한 사람이 어깨에 메거나 지게에 질 수 있는 무게이다. 그러므로 가마니는 농산물을 담아서 보관하거나 많은 양을 먼 곳으로 운반하는데 거의 절대적으로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었다.
가마니가 나오기 전에는 ‘섬’이라고 하는 게 있었는데, 이것 역시 짚으로 짠 그릇이다. 그러나 섬은 가마니처럼 촘촘하지 않을뿐더러 부피가 커서 운반과 보관이 쉽지 않았다. 섬에 들어가는 곡식의 양은 보통 한 가마니 반에서 두 가마니 정도였다.
가마니는 그 이름에서 짐작되듯이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들어온 물건이다. 가마니를 짜는 틀도 함께 들여와서 농한기의 농촌에서 가마니를 짜서 시장에 내다 팔아 가용에 쓰기도 했지만, 일본이 우리나라에 가마니를 들여온 본디 목적은 곡식을 빼앗아 가기 위한 것이었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이래 공출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자원, 그 중에서도 쌀은 생산량의 약 팔십 퍼센트를 빼앗아 갔다.
그러므로 가마니는 우리 민족에게는 수탈의 대명사로 여겨져서 가난가 굶주림을 떠올리게 한다.
-작두와 손작두
작두는 짚이나 풀들을 쇠죽 끓이기 좋게끔 손가락만 한 길이로 써는 연장이다. 생김생김은 우듬지 쪽 가지가 Y자 모양을 갈라진, 길이 백이십 센티, 지름 이십오 센티 정도의 통나무에, 길이 오십 센티 정도, 폭 십 센티 정도의 커다란 칼을 핀을 박아 고정시키고 칼자루 쪽엔 발판을 박고 고리를 달아 거기에 한 발쯤 되게 끈을 매단 모습이다.
이 작두로 두 사람이 풀을 써는데, 한 사람은 높이 삼십 센티 정도 되는 받침대 위에 올라서서 왼손에 작대기 같은 걸 짚고, 오른손엔 고리의 끈을 잡은 다음 오른발을 작두의 발판에 딛고 끈을 끌어올려 작두날을 벌린다. 그러면 또 한 사람은 그 사이에 풀을 먹여서 써는 것이다.
그에 비해 손작두는 땅에 구부리고 선 자세로 삐그덕 삐그덕 두 손으로 손잡이를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썰어야 하기 때문에 발 작두에 비해 힘이 서너 배 더 든다. 또 다른 손작두로, 두꺼운 나무판자 위에 칼날을 거꾸로 박고 홈이 있는 누름쇠의 손잡이를 눌러서 써는 것도 있는데, 한 끼 정도 먹일 적은 양의 여물이나 약초 따위를 썰 때 사용한다.
-배훑이
벼훑이는 씨앗을 뿌리는 일과 거둬서 갈무리하는 일의 마지막에 놓인 안타까운 연장이다. 이것은 쪼갠 대나무나 철사, 수수깡 따위를 반으로 접어서 집게처럼 만들거나 가지가 갈라진 나무줄기로 만든다. 그 줄기 사이에 덜 익은 벼이삭을 끼우고 잡아당겨서 훑어낸다. 너무도 단순하여 연장이라고 할 수도 없는 연장이다.
덜 익은 곡식을 베어서 떨어낸다는 것은 양식이 떨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훑이는 두 가지가 있다. 대오리나 철사, 가지가 갈라진 나무로 만든 것은 가락홀태라 하고, 어른 손바닥만 한 주걱 모양의 나무판자를 빗처럼 깎아서 빗살 사이로 낱알을 훑게 만든 것은 손홀태라고 한다. 홀태란 ‘훑이’의 사투리지만, 대부분 홀태라 부르기에 그대로 굳어진 말이다.
손홀태는 나중에 좀 더 커지고 재료도 쇠로 바뀌면서 그네라는 연장으로 변했다. 하지만 예전 말이 그대로 남아서 그네도 그냥 홀태라고 부르는 지방이 많다. 가락홀태는 하뤠 고작 반 가마 정도의 나락을 훑을 수 있다.
지금도 종자로 쓸 나락은 콤바인과 건조기 대신 낫으로 베고 홀태로 훑어 햇빛에 말려야 좋다.
-주루막
짚으로 짠 그릇 중에서 주루막처럼 정겹고 허물없는 것이 또 있을까 싶다. 이것은 산골에 사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들녘에 살거나 해변에 살거나 항상 몸에 걸메고 다닐 수 있는 것이어서 그렇다. 주루막은 옛 사람들의 배낭이고 핸드백이되 지금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품격이 높아 유행도 타지 않으며, 때가 묻거나 어디에 긁히지도 않고, 어디에 놔두든 무엇을 담든 다 어울리는 몸 그릇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주루막은 심마니의 등에 척 하니 메어져야 제격이다. 피나무 껍질을 꼬아서 짜면 더욱더 최상품인 이것은, 둥구미처럼 엮는게 아니라 발처럼 엮어서 손 너비는 좁고 울은 깊게 했다. 그 속에 산삼이라도 서너 뿌리 캐 담을 수 있으면 그 어떤 보물과도 견줄 수 없다.
주루막을 지역에 따라서는 구럭이라고도 했는데,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어디든지 떠돌아야 삶의 의미를 갖는 방물장수들은 이 주루막과 함께 보이는 듯 보이지 않게 길에서 낡아 가고 스러져 갔을 것이다.
주루막과 비슷한 것 중에는 꼴망태와 망태기가 있다. 망태기는 주루막처럼 엮기도 하지만 아가리를 죄지 않고 그 대신 끈을 달아서, 메고 들에 나갈 때는 호미, 낫 같은 연장이나 새참거리를 담아 갔고, 장보러 갈 때는 요즈음의 장바구니처럼 사용했다. 꼴망태는 소에 먹일 풀을 베어 담거나 솔갈비 따위를 담아서 나르는 데 썼다. 망태라는 말은 ‘망으로 된 자루’라는 뜻이다.
-달구지와 쇠신
달구지는 소나 말이 끄는 수레이다. 바퀴가 네 개인 것과 두 개인 것이 있고, 쇠바퀴이거나 나무에 쇠태를 씌운 나무바퀴였는데, 자동차가 많이 생기기 시작하자 다 없어지고 자동차의 고무 타이어 바퀴를 쓰는 두 바퀴 달구지만 남았다.
쇠신은 달구지를 끌고 다니는 소의 발톱과 발바닥이 닳거나 다치지 말라고 짚으로 만들어서 신기는 네 짝의 손바닥만 한 짚신이다. 뒤쪽에는 두 개의 고리가 있어 신을 신기면 앞축에서 뺀 두 가닥의 새끼를 뒤의 고리에 각각 걸어서 다시 앞으로 돌려 묶는다. 닷새마다 열리는 소장 근처엔 이것을 하루 종일 삼아서 파는 사람도 있었다. 무거운 짐을 실은 달구지를 끌고 뾰족한 돌이 수없이 박힌 신작로를 오가는 소에게 쇠신은 없으면 안 되는 물건이다. 하지만 흙살 무른 논밭에서 일할 때는 굳이 필요 없다.
-부뚜
부뚜는 곡식에 섞여 있는 티 검불이나 재 먼지 따위를 날려 보내기 위해서 만든, 바람을 일으키는 연장이다. 돗자리처럼 생긴 부뚜는 질긴 왕골 풀이나 아주 가는 새끼줄로 폭 오륙십 센티, 길이는 백오십에서 이백 센티쯤 되게 자리틀을 써서 짜고, 양끝은 나무나 대나무 토막을 붙여(부뚜손이라 부르는) 손잡이를 만든 것이다.
사용법은, 부뚜를 반으로 접어서 가운데 발을 넣어 밟고 양손으로 부뚜손을 잡은 다음 적당히 팽팽하게 위로 당겨서 손뼉 치듯, 날갯짓하듯 마주 흔들어서 바람을 일으킨다.
곡식은 어떤 것이든 탈곡을 하게 되면 검불이나 까끄라기, 먼지 같은 것이 생기는데, 그 중에서 나락은 그네에 낟알을 훑기 때문에 먼지가 별로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삭이나 대궁까지 멍석이나 흙 마당에서 도리깨 타작을 하는 보리, 조, 기장, 콩, 팥 따위는 껍질이 바수어지므로 검불과 먼지가 많이 생긴다.
바람이 불어오지 않으면 부뚜질로 이런 것들을 멀리 날려 보내는 것인데, 쌓아 놓은 곡식 앞에서는 제아무리 부뚜질을 해 봐야 먼지가 날아가질 않는다. 그러므로 넉가래로 퍼서 부뚜 앞에 높이 쳐들어 주루루 쏟아지게 하든지, 둥구미나 키, 함지 같은 그릇에 담아서 슬슬슬 쏟아 내리면서 부뚜 바람에 날려 보낸다.
-종다래끼
대나무를 쪼개서 대오리를 만든 다음 밑은 긴 네모가 지게 겯고 위로 올라오면서는 둥글게 겯되 아가리는 단지 모양으로 오무린 것이 다래끼이다. 이 다래끼를 아주 작게 만들어서 멜빵을 달고 그 속에 씨앗을 넣어 놓거나 어깨에 메고 다니면서 씨앗을 뿌리는 데 쓰는 것을 종다래끼라 한다.
아주 작다고 했지만, 사실 큰 것은 그 안에 곡식을 약 이십 리터도 담을 수 있다. 그러니까 좀 커도 끈을 달아서 어깨에 메고 씨를 뿌리는 데 쓰면 종다래끼인 것이고, 좀 작아도 끈을 달지 않으면 종다래끼 감이되 그냥 다래끼인 것이다.
종다래끼는 또 고리버들이나 싸리나무로도 겯는다. 싸리로 결을 때는 칠월쯤 벤 사리로 해야 물 기가 많아서 잘 결어진다. 이때의 싸리는 가지런하게 베어서 밑동과 대궁을 잡고 휘휘 감아 비틀면 부러지지 않고, 올이 꼬이듯 비틀려서 휘어 올리고 감아 붙이기 쉽다. 고리버들도 곧은 것을 베어서 이와 같은 방법으로 겯는다.
씨앗을 담아 뿌리는 것이 종다래끼만은 아니다. 짚으로 멱둥구미처럼 둥글게 엮지만, 두 겹이 아닌 한 겹으로 조그마하게 엮어서 종다래끼처럼 어깨에 멜 수 있게 끈을 달면 씨앗 뿌리는 데 쓰는 씨망태요, 삼태기처럼 엮지만 앞 터진 부분의 운두는 높게 엮어 역시 어깨에 멜 수 있게 끈을 달면 씨앗 뿌리는 데 쓰는 씨삼태다. 씨망태와 씨삼태는 짚으로 엮지만 종다래끼만은 대오리나 버들, 싸리로 겯는 게 다르다.
첫댓글 귀농하시다 남는 연장 혹시 없나요
싸게 기부하실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