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당(一酒黨) 이야기
- 술을 적당히 마시는 방법
김 광 수
술을 적당히 마시는 방법이 없을까? 젊은 날의 큰 과제였다. 삼사십 대 시절, 술 마신 다음 날 후회하기를
수없이 되풀이했다. 과음 후의 속쓰림, 순수로부터 멀어진 욕망의 찌꺼기들, 과다 지출에 따른 후유증,
자신의 의지력 부족에 대한 자책감… 내가 이렇게 별 볼 일 없는 인간인가.
‘술을 아예 끊어버릴까…’ 그러면 당장 직장 생활에 지장이 있을 거 같았다. 한편으로는 술이 좋은 점이
많다는 생각도 났다. 술이 없는 인생은 여유 없고, 삭막하고, 낭만이 없는 그만큼 멋이 없는 삶이 아닐까…
여러 번의 고민 끝에 “술을 알맞게 마시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시 단단히 결심을 하고, 이번에는 명함을 꺼내 뒷면에 “과음 불가”라고 써서 지갑의 돈이 든 곳에
넣었다. 돈을 꺼낼 때마다 결심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랬지만 만족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술을
적당히 마시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가? 술을 좋아하면서 술을 알맞게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존경받을
만하다고 생각되었다. “성을 지키는 것보다 자신을 다스리는 일이 더 어렵다”는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그렇다. 나의 미래, 나의 인생을 잘 가꾸려면 지금의 이 도전에서 어떻게든 성공의 결실을 만들어야 한다.
나의 과음 습관은 초기 직장인 보험사의 영업 활동에서 몸에 밴 것으로 생각된다. 69년 육군에서 만기
제대 후 바로 입사한 곳이 H화재해상보험회사였다. 나는 부산지점에 8년여 근무하면서 주로 해상보험
영업을 했다. 20대 후반, 나의 미래를 힘차게 열어보려는 강한 의욕에 불타던 나는 ‘무에서 유를 창조’
한다는 자신감과 열정으로 보험 영업에 도전했다.
보험 영업의 특색은 품질과 가격이 똑같거나 거의 비슷한 상품으로 경쟁을 한다. 보험의 보상 내용과
보험 요율이 비슷하다는 말이다. 지금은 회사별로 좀 차이가 있지만 수십 년 전 그때는 글자 하나 틀리지
않을 정도로 똑같았다. 그래서 보험 영업, 특히 법인 영업은 오직 섭외력이 좌우했고, 섭외의 중심에는
술이 있었다. 섭외 대상 고객과 식사 약속을 잡는다면 1차 성공이고, 2, 3차 술접대까지 가면 반은
성공이고, 속마음을 터놓는 단계가 되면 거의 성공에 가까워진다. 영업의 접근 단계에서 그렇고, 계약이
성사되면 또 별도의 술자리가 마련된다. 젊은 날 나의 술 습관은 그렇게 길들여졌다.
신규 거래처의 확보, 기존 거래처의 유지를 두고 10개 손해보험사들은 치열한 경쟁을 한다. 업계 전체
보험 계약 내용과 만기일은 재보험으로 연결되어 있어 사실상 공개되어 있다. 그래서 전체 보험 계약을
두고 사돈팔촌까지 동원한 치열한 경쟁이 연중 펼쳐지고, 만기일이 다가오면 빼앗느냐 뺏기느냐의 사투를
벌린다. 수년 공들인 큰 계약 유치에 성공하면 환호하지만, 갖고 있던 큰 계약을 뺏기면 팔 하나가 잘린 것
같은 좌절감에 빠진다.
특히 신경 쓰이는 고객과 2, 3차 술자리가 밤늦게 끝나면 긴장이 풀리며 허탈감에 빠진다. 나는 언제까지
이러기를 되풀이해야 하는가. 내가 정말 노력하고 서 있어야 할 자리는 여기가 아닌데… 나는 다시 근처
술집에서 혼자 술잔을 앞에 놓고 이 알 수 없는 기분과 씨름한다. 여건만 주어진다면 공부를 더 해야 한다.
그리고 글을 써야 한다.
30대 중반, 보험사를 그만두고 증권회사로 직장을 옮겼다. 증권 영업은 그래도 머리를 쓸 일이 많고
창의성을 발휘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 투자에 대해 공부하고 노력하면 상대적으로 더 높은 수익률로
영업을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되었다. 당시 중동 건설붐으로 건설주 투자 열풍이 한 차례 소용돌이를
치고 좀 잠잠해진 시점이었다.
증권 영업은 내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보험 영업처럼 오직 고객 섭외와 접대에만 매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빠르게 증권 영업에 적응했고 유능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증권 시장 호황이 오면서
우리 사주로 받은 주식 시세도 오르고 경제적으로 조금 여유도 생겼다. 세상만사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이 있듯이 증권 영업에도 함정이 있었다. 아차 하면 금전적 손실이 따르거나 잘못하면
패가망신할 위험도 도사리고 있었다.
증권 영업의 스트레스는 주로 투자 손실 때문에 받는다. 어떤 종목이 올라갈 거라고 적극적으로
매수를 권유했는데 떨어지거나 보유 중인 종목을 팔자고 권유했는데 팔고 나서 올라가면 원망을
받게 된다. 심하면 책임지라는 말을 듣게 되고 분쟁이 발생하기도 한다. 참으로 이해심 많은 고마운
고객도 있지만 돈 앞에서 시비거리는 끊이지 않는다.
서울 시청 근처에서 지점장을 할 때, L차장이 그의 주요 고객인 한 회사 사장에게 연일 신나게
오르고 있는 종목을 적극 권유했는데 그만 장이 끝날 때 크게 하락했다. 다음날 아침 장이 막
시작될 무렵 사무실 입구에서 그 고객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고 L차장은 급한 김에 책상 밑으로
숨었다. 내가 간신히 흥분을 가라안치고 그 고객을 근처 일식집으로 모셔 좋아하는 술시중을 들었다.
고객이 하자는 대로만 하면 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기다리는 소극적 영업을
하면 영업 실적은 하위권에 맴돌고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증권사 지점장실에는 시간 단위로
전국 점포 실적 현황과 순위가 나오고 부진 점포에는 독려 전화가 수시로 걸려온다.
40대 초반, 평소 친하게 지내는 회사 내 동료 두 사람을 만나 “술을 알맞게 마시는 일이 참으로
힘들다”고 실토했다. 그들도 이구동성으로 공감했고, 우리들은 좋은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온 게 ‘일주당(一酒黨)’ 아이디어였다. 술을 마실 때 “한 잔만 마신다”는 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우리 세 사람의 섭외로 일주당 창립 회원은 7명이 되었고, 제안자였던 내가 영광(?)스럽게 총재로 추대
되었다. 우리들은 매월 1회 모임을 가지면서 새 습관에 적응하려 노력했다. 첫 모임을 가진 날,
어떤 잔으로 마시느냐를 놓고 토론이 있었는데, “마실 잔은 자기가 정한다”로 정리되었다.
일주당 창립 1주년이 되는 날. 자축 모임을 서울 신촌에서 가졌다. 그날 토요일 오후 신촌 로타리
근처 골목길 입구에 있는 한 식당 겸 주점을 찾았다. 그날은 더웠으므로 맥주가 선택되었고,
회원들은 각자의 잔을 들고 왔다. 백주 잔, 와인 잔, 500cc 잔, 100cc 잔, 병째로 잔 …그런데 한 회원이
부엌에서 양푼이를 들고 왔다. 잠깐 왈가왈부가 있었지만 있었지만 강령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다수 의견으로 허용되었다. 왁자지껄한 웃음 속에 우리들은 서로의 잔을 높이 들고 “일주”를 외쳤다.
일주당 모임은 3, 4년 지속되면서 몇 회원이 지방 발령 등으로 빠지면서 소모임이 되었다. 최초 발기인
이었던 나와 친밀하게 지낸 우리 세 사람은 10년, 20년 동안 오랜 친교를 나누었다. 일주당 모임을
하면서 깨달은 점은 오랜 습관을 바꾸는 일은 결심만으로는 어렵고 실천이 반복되어 쌓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과음 습관은 일주 습관 덕분에 많이 나아졌다. 점차 나이가 들면서 ‘일주’ 훈련
덕분과 함께 오랜 과음 습관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인생에서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