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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21. 11. 17.~19.(수~금) - 음력(10. 13.~15.), 일출 07:09~일몰 17:15
●산행지: 영월지맥 2구간(말영재-피재점)
●산행코스: 화동리-말영재-깍은재-푯대봉(652.7m)-상마암도로-625.8m봉-곧고개-넘은재-검두골임도-검두재-719.7m봉-신선봉-느릅재-칠송고개-산불초소(602m)-황재-고들고개-덕고산갈림봉-피나무재-640.1m봉-영동고속도로암거-584m봉-봉화산-영동고속도암거-641m봉-아래태오지임도-산불초소(686.0m)-낡은터재-688m-653m봉-651.4m봉-새터고개-풍취산(698.8m)-전재(증치)-598m봉-헬기장(879.5m)-매화산(1,083.1m)-수레너미재-어령재-천지봉-세렴재-1,118.3m봉-1,121.5m봉-배너미재-부곡갈림길-치악산-쥐너미재-황골삼거리-원통재-969.6m봉-곧은재-향로봉갈림길-향로봉(1,041.8m)-1,097.1m봉-조망바위-남대봉-1,111m봉-891m봉-대치-963.6m봉-삼면봉(1,000.1m)-길재-응봉산갈림(1,062.9m)-싸리치-산불감시초소-암반봉(693m)-천삼산갈림봉-백련사갈림-감악산-감악봉(883.6m)-재사골재-문바위갈림-석기암-피재점-피재
●먹거리: 생수1.5리터, 옥수수호떡빵, 약과3, 양갱2, 칼로리밸런스3, 단백질바2, 자유시간2, 하리보, 사탕10
●준비물: 텐트, 바람막이, 조끼, 보온상의, 침낭커버, 은박매트2, 스틱, 헤드랜턴, 구급약, 피부연고, 부직반창고 충전지2, 충전짹, 손수건, 면수건, 휴지, 물티슈, 스패츠, 팔토시, 말방울, 세라컵, 비닐우의, 우의바지, 안대, 귀마개, 마스크2, 양말, 여분의류, 띠지30
●거리: 약 85.6Km (탈출 1.3km)
●소요시간: 58.51h
●누구랑: 나홀로
●경비: 기차15,200, 태기산장35,000, 편의점6,500, 횡성휴게소46,750, 택시5,800, 고속버스15,500, 뒤풀33,000
●날씨: -4~13, 잔뜩 찌푸림
●산행경과:
* 11. 17.(수)
- 07:01 : 화동1리
- 07:06 : 말영재
- 07:32 : 깍은재
- 07:49 : 푯대봉(652.7m)/ 면계삼리봉(둔내면 화동리, 청일면 고시리 → 갑천리)
- 08:16 : 상마암고개(525.4m)/ 비닐하우스
- 09:00 : 곧고개
- 09:19 : 넘은재(585.3m)/ 하마암고개
- 10:15 : 검두(劍頭)골임도/ 검두재/ 삼면경계면(둔내면, 청일면 → 갑천면)
- 11:00 : 신선봉 - 11:05 : 느릅재/ 비닐하우스
- 11:08~22 : 행동식
- 12:07 : 철송고개/ 면계(갑천면 → 둔내면)/ 방범CCTV 우측 인가
- 12:40 : 602m봉/ 면계(둔내면 - 우천면)
- 13:00 : 황재
- 13:30 : 고들고개
- 14:12 : 덕고산/ 면계(둔내면 - 안흥면)
- 14:28 : 피나무재
- 14:47 : 영동고속도로암거
- 15:00 : 640.1m봉
- 15:28 : 고속도로암거
- 15:40~16:40 : 횡성휴게소
- 17:00 : 봉화산(烽火山, 해발680.4m)
- 17:16 : 영동고속도로암거
- 17:?? : 아래태오지임도
- 18:43 : 낡은터고개/ 면계
- 20:20 : 새터고개/ 면계(안흥면 - 우천면)
* 11. 18.(금) - 07:00 : 새터고개
- 07:37 : 풍취산(風吹山, 698.2m)
- 08:03~08:25 : 전재(540m), 행동식
- 09:52 : 헬기장/ 삼면봉(우천면, 안흥면 → 강림면)
- 10:33 : 매화산(梅花山, 1,083.1m)/ 시군계삼면봉(강림면, 우천면 → 소초면)
- 11:23 : 수레너미재(716m)
- 12:47 : 천지봉(天池峰, 1,085.8m)/ 시군면계(소초면 - 강림면)
- 12:?0 : 세렴재
- 12:54~13:05 : 행동식
- 13:?0 : 1114.9m
- 14:?8 : 1,121.5m봉
- 14:?0 : 배너미재(1,004m)
- 15:51 : 치악산 비로봉(飛蘆峰, 1,288m)/ 시군면계(원주시 소초면 - 횡성군 강림면)
- 16:13 : 쥐너미재갈림길(1,184m)
- 16:?? : 입석대갈림길(1,130m)
- 16:?? : 원통재(883m)
- 17:15 : 970.6m봉/ 시군계삼면봉(강림면, 소초면 → 행구동)
- 17:33 : 곧은재(860m)/ 고둔치
- 18:08 : 향로봉갈림길/ 시군계삼면봉(강림면, 행구동 → 판부면)
- 18:17 : 향로봉(香爐峰, 1,042.9m)
- 19:35 : 영원사갈림길
- 20:25 : 남대봉(南台峰, 1,181m)/ 시군계삼면봉(횡성군 강림면, 원주시 판부면 → 신림면)
* 11. 19.(금)
- 07:00 : 남대봉
- 09:50 : 1000.6m봉(개념도 상 1000.6m)/ 삼군시봉(원주시 신림면, 횡성군 강림면 → 영월군 무릉도원면)
- 10:20~28 : 행동식
- 11:23 : 응봉산(鷹峰山, 1,093.2m)갈림봉(1,062.9m)
- 12:20~34 : 싸리치재
- 13:47 : 천삼산 갈림봉(816.3m봉)/ 시도계(원주시 신림면 - 제천시 봉양읍)
- 14:48 : 감악산(紺岳山, 956.4m)/ 시도계(원주시 신림면 - 제천시 봉양읍)
- 15:46 : 재사골재
- 16:05~11 : 행동식
- 16:14 : 문바위갈림길/ 헬기장
- 16:46 : 석기암봉(石機巖峰, 906m)/ 시도계삼면봉(제천시 봉양읍, 원주시 신림면 → 제천시 송학면)
- 17:24 : 피재갈림길(784m)/ 시읍면삼면봉(제천시 송학면, 봉양읍 → 모산동), 84km
- 17:55 : 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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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부 구간거리(148.2km)
말영재-(깍은재-푯대봉)-3km-상마암임도-2.8km-(곧고개-절바우고개)-넘은재-3.3km-(검두재)-꼬부랑재-3.5km-(신선봉)-칠송고개-2.5km-황재(6번도로)-2.3km-(고들고개)-덕고산-3.3km-(피나무재-영동고속도로암거)-횡성휴게소-1km-봉화산-0.6km-(아래태오지임도)-영동고속도-3.2km-풍취산/689m봉-1.6km-653m봉-3.2km-전재(42번국도)-3.7km-매화산-1.1km-수레너미재-2km-(어령재)-천지봉-3.4km-(세렴재)-배너미재-4.8km-비로봉(치악산)-1km-황골삼거리-(쥐넘이재-원통재)-2.8km-곧은치-(보문사갈림길)-1.1km-향로봉-3.1km-남대봉-2.7km-대치-2.9km-1,000.6m봉-3.2km-응봉산갈림길-2.7km-싸리치-3.7km-감악산-3.5km-(제사골재)-석기암(906m봉)-1.5km-피재점-1.3km-피재
* 구간거리
- 신대리~전재 56km (접속 6.2)
-. 말영재~횡성휴게소 20.7km
-. 말영재~꼬부랑재 9.1km
-. 꼬부랑재~횡성휴게소 11.6km
-. 넘은재~전재 27.4km
-. 황재~전재 17.8km
- 횡성휴게소~싸리치 44.1km
-. 횡성휴게소~비로봉 24.6km
-. 횡성휴게소~매화산 13.3km
-. 전재~향로봉갈림길 18.4km
-. 전재~비로봉 12.6km
-. 비로봉~남대봉 8km
-. 남대봉~싸리치 11.5km
- 싸리치~해고개(59번도로) 43.3km
-. 싸리치~못재 10.1km
-. 싸리치~동막고개 17.9km
-. 싸리치~배재 20.1km
* 식수 공급지 및 산행 정보
- 횡성군 버스: 명성교통(033-343-4410)
- 횡성택시: 033-920-4549
- 둔내 콜택시: 033-344-8008, 친절콜: 010-4113-2580, 개인: 033-342-0408
- 느릅재: 좌측 인가 보임
- 칠송고개: 방범cctv 우측 인가
- 황재: 좌측 현천4리 보임
- 고들고개: 인가 물보충
- 횡성휴게소: 식사, 보급(편의점)
- 새터고개: 인가 물보충
- 남대봉: 상원사 0.7km, 식수 보충
- 싸리치재: 좌측 2분 유공자의집 식수보충
- 감악산: 백련사: 0.8km, 식수보충
- 신림면 개인택시: 033-762-1817, 신림콜택시: 010-4472-7117
* 서울에서 말영재(화동리) 가는 길
- 청량리역~둔내역 ktx: 05:32, 06:22, 07:22, 08:22, 09:22, 11:22, 13:22,~19:22, 21:52, 15,200, 1.10h
- 둔내버스터미널 희망버스: 둔내~화동리 06:50, 10:25, 13:30, 14:05, 16:45
* 싸리치재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 장촌~장양리: 24번버스 18:20(물안동)
- 신림면사무소 정류장 22번 버스 19:50- 싸리치에서 좌틀 88번국도 1.1km(14분), 좌측 물안동마을 물안휴게소 식당
* 원주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 원주~동서울터미널: 16, 16:20, 16:40, 17, 17:20, 17:40, 18, 18:20, 18:40, 19, 20, 20:30, 21, 7,700~10,800
- 원주역~청량리역: 14:48, 15:27, 16:36, 17:44, 18:41, 19:52, 20:19, 21:34, 22:35, 0.46~1.09h, ~10,100
* 제천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 제천시외버스터미널~동서울: 15, 15:30, 16, 18, 18:30, 13,800, 1.50h
- 제천고속버스터미널~서울강남터미널: 19:10, 15,00, 1.50h
- 제천역~청량리역: 14:32, 15:03, 16:08, 17:27, 18:17, 19:28, 20:01, 21:10, 22:19, 9,200~15,400, 1.03~1.48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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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대를 한겨울에 진행하게 된 영월지맥은 3구간으로 조정합니다. 이렇게 정하고 보니 맘이 편하네요.
금오지맥은 겨울에 두 구간이 가능할까요. 2022년도엔 경북 의성지방을 관통하는 보현지맥에 붙어보고자 합니다. 2월달 중에는 팔공지맥, 그리고 3월에 호미지맥에서 봄꽃을 만날 수 있을지...
정신없이 걸었습니다.
퇴근하고 21:50분 KTX로 둔내에 가서 태기산장에서 숙박했네요. 퇴근길에 집에가서 배낭을 완성해 택실 타고 청량리역으로 뛰어가며 서두르다가 배낭의 배면주머니 쟈크를 잠그지 않아 헤드랜턴, 말방울, 겨울용장갑이 빠져나갔습니다.
둔내터미널에서 06:50분 첫차로 화동리로 가서 말영재에서 07:06경 2구간을 시작하였고,
횡성휴게소에서 아쉰대로 야간산행에 대비해 후래쉬를 구입했지만 역시나 2시간 지나니 밧데리가 아웃되네요. 둘째날엔 치악산을 넘으며 고둔치에서 남대봉까지 약10km를 조명없이 걷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날에도 랜턴만 있었던들 용두산을 넘었을텐데 피재점에서 멈춰야했네요. 피재로 내려서니 택시도 들오지 않고, 버스도 없어 세명대사거리까지 약 6km를 걸어나와야 했습니다.
산행을 잘 한다는건 잘 걷는 것도, 멀리 가는 것도 아닙니다.
사전에 위험요소를 잘 걸러내고 안전하게 걸어야 프로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산행은 무모한 계획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둘째날 오후에 적은 양이긴 하나 비가 들었었거든요. 막 당해 휴가를 변경하긴 어려웠고, 치악산에서 비를 맞을 각오로 보국사로 탈출해 원주에서 쉬고 다음날 다시 이어가려 생각했는데... 헤드랜턴도 구할겸 원주에서 끊었다 가려고 했었는데 그냥 가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수레너머재에서 일기예보를 검색하니 비가 사라졌어요. 오후늦게 1시간 내린다는 비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진행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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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횡성군(橫城郡)
횡성군은 대한민국 강원도 서남부의 군으로 한우와 안흥찐빵 등이 대표적인 특산물이다. 군의 경계는 동쪽은 평창군, 서쪽은 양평군, 남쪽은 원주시와 영월군, 북쪽은 홍천군과 각각 접하고 있다. 군청은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읍하리에 있다. 지형은 백두대간의 오대산에서 분기한 한강기맥이 군의 동부를 남서방향으로 뻗어 동·남·북부가 높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은 완경사를 이룬다. 북쪽에 수리봉(960m)·발교산(髮校山, 998m)·태의산(台議山, 675m)·오음산(五音山, 930m), 동쪽은 운무산(雲霧山, 980m)·봉복산(鳳腹山, 1,022m)·태기산(泰岐山, 1,261m)·청태산(靑太山, 1,180m)·사자산(獅子山, 1,120m)이 있다. 남쪽에는 매화산(梅花山, 1,084m)·치악산(雉岳山, 1,288m)·향로봉(香爐峰, 1,043m), 남태봉(南台峰, 1,182m)·배향산(拜向山, 808m)·삿갓봉(1,030m), 서쪽에는 성지봉(聖地峰, 791m)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군내 산지의 특색은 봉복산을 제외한 모든 산이 군계와 접하고 있어 군역을 둥글게 감싸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고도는 낮은 곳이 횡성읍의 해발 110m이고, 둔내면은 평야지가 해발 500m의 고대지로 되어 있어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적 특색을 나타낸다. 모든 수계는 남한강계(南漢江系)에 속하고, 크게 섬강(蟾江) 수계와 주천강(酒泉江) 수계로 나뉜다. 갑천(甲川)은 태기산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청일면 감천리·유평리를 지나 초현리와 갑천면과의 경계에서 계천(桂川)과 합류한다. 수리봉에서 발원한 계천은 남쪽으로 흘러 갑천과 합류되기 전까지는 유동천(柳洞川)으로 불린다. 계속 서류하다가 태의산에서 발원하여 남류하여 온 대관대천(大官垈川)과 합쳐져 섬강이 되어 남류하여 금계천(錦溪川)과 합류한다. 죽림산에서 발원한 전천(前川)는 서류하여 횡성읍에서 섬강과 합류하고, 섬강은 남서류하여 원주시로 흘러든다. 태기산에서 발원한 주천강은 둔내면의 자포곡리, 둔방내리를 지나 남류하여 안흥면 안흥리를 지나 강림면 강림리에서 동남쪽으로 꺾여 월현리에서 영월군 수주면으로 흘러든다. 고구려시대는 횡천현(橫川縣) 또는 어사매(於斯買)라 하였고, 통일신라 경덕왕 때에 황천현(潢川縣)이라 개칭되었고 삭주(朔州)의 영현(領縣)으로 되었다. 고려시대에 다시 횡천현으로 개칭되어 춘주(春州)의 속현(屬縣)으로 되었다가 뒤에 원주(原州)의 속현으로 바뀌었다. 1389년(공양왕 1)에 비로소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 횡천이라는 명칭은 군의 젖줄인 섬강이 남북으로 흐르지 않고 동서로 가로질러 흐르기 때문에 가로의 뜻인 ‘橫’자를 쓰게 된 데서 유래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감무가 현감(縣監)으로 개칭된 예에 따라 현감이 파견되었다. 다음해에는 홍천(洪川)과 발음이 비슷하다고 하여 횡성현(橫城縣)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2000년 1월 12일갑천면 부동리를 갑천면 삼거리에 통합하였으며, 2002년 1월 10일횡성읍 마산리 일부를 횡성읍 읍상리에 편입하여 1읍, 8면 174행정리, 110법정리, 761개 반을 관할하고 있다. 5·6번 국도가 교차하고 우천면, 안흥면을 통과하는 42번 국도가 있다. 영동고속도로가 군의 중앙을 횡단하고 중앙고속도로가 종단한다. 횡성군은 독자적으로 군내버스를 운영하지 않으며 원주시내버스가 횡성을 연장하는 형식으로 운행한다. 2017년에는 경강선이 군내를 관통하여 횡성역, 둔내역이 신설되고 서울과 횡성을 40분에 이어 줄 수 있게 되어 서울로의 접근이 편리해졌다. [포탈에서 발췌정리]
* 원주시
한반도의 중심부이자, 강원도의 남서부에 있으며, 반도의 백두대간에 남북으로 길게 뻗은 영월지맥을 중심으로 서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동쪽은 영월군·횡성군, 서쪽은 경기도 여주시·양평군, 북쪽은 횡성군, 남쪽은 충청북도 충주시·제천시와 접한다. 강원도 내 행정업무는 춘천으로 옮겨갔으나 중앙선과 영동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상업적인 기능이 활발해졌다. 치악산국립공원과 섬강 등의 자연경관뿐만 아니라 문화유적지가 곳곳에 산재해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세력권에 들어 평원군 또는 치악성을 설치했으나 뒤에 신라의 영역이 되었다. 삼국통일 후 677년(문무왕 17)에 신라가 북원소경을 설치했으며, 757년(경덕왕 16)에 북원경으로 고쳤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원주로 개칭하고, 1018년(현종 9)에 군으로 바꾸어, 영월군과 제천군을 속군으로, 평창현·단산현·영춘현·주천현·황려현을 속현으로 포함한 큰 군이 되었다. 1259년(고종 46)에 일신현(一新縣)으로 강등되었다가 1260년(원종 1)에 원주군으로 복구되었다. 1269년에 정원도호부(靖原都護府)로 승격되고, 1291년(충렬왕 17)에 익흥도호부(益興都護府)로 개칭되었다. 1308년에 원주목으로 승격되었으나 1310년(충선왕 2)에 성안부(成安府)로 강등되었다가 1353년(공민왕 2)에는 원주목으로 회복되었다. 조선에 들어와서도 원주목을 유지했으며, 강원도의 관찰사영이 위치한 행정중심지였다. 원주의 별호는 평량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에 23부를 실시함에 따라 원주군이 되어 충주부 관하에 있다가, 1896년에 도제 실시함에 따라 강원도에 소속되었다. 강원도의 행정중심지가 춘천으로 옮겨감에 따라 이후 행정중심지로서의 역할은 줄어들었으나, 영동지방으로 통하는 도로의 발달, 중앙선과 영동고속도로의 개통 등으로 상업적인 기능이 활발해졌다. 1906년 월경지 정리 때 3개면을 영월에, 1개면을 횡성에, 2개면을 여주에 이관하여 면적이 크게 축소되었으며, 1914년의 군면 폐합으로 14개면이 10개면으로 통합되었다. 1917년에 본부면이 원주면으로 개칭되었다가 1937년에 원주면이 원주읍으로 승격되고, 1955년에 원주읍이 원주시로 승격되어 분리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던 원주군과 중심 도시 기능을 담당해왔던 원주시가 하나로 다시 통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도농통합시인 원주시를 이루었다. 강원도의 남서부에서 경기도와 충청북도에 맞닿아 있는 원주시의 전체적인 지세는 태백산맥의 오대산에서 갈라져나온 차령산맥이 시의 남동부를 뻗어내려 동쪽과 남쪽은 대체로 높은 산이 많고, 서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낮아지며, 곳곳에 침식분지가 발달했다. 치악산은 원주시와 횡성군에 걸쳐 있지만 최고봉인 비로봉(飛蘆峰, 1,288m)을 포함한 대부분이 원주시에 속해 있다. 치악산은 높이 1,000m가 넘는 사무랑산·토끼봉·대왕산·덕가산·남대봉 같은 산을 포함하여 약 24km 정도로 길게 뻗어 있다. 시의 남동쪽에는 향로봉(1,048m)·남대봉(1,182m)·매화산(1,084m)·감악봉(886m)·구학산(983m)·백운산(1,087m)·덕가산(701m)·십자봉(985m)·갈미봉(598m) 등이, 서쪽에는 수래봉(513m)·관모산(362m)·황학산(332m) 등 비교적 낮은 산이 솟아 있다. 산지에서 흘러내린 영랑천·단계천·대안천·매지천·궁촌천·백운천·원주천·서곡천·주포천 등이 남한강의 지류인 섬강에 흘러든다. 섬강은 부론면 흥호리에서 충청북도에서 흘러온 남한강과 만나 경기도 여주군으로 흘러간다. 섬강 주변에는 강원도에서 철원평야 다음으로 넓은 문막평야를 비롯한 많은 평야가 발달해 있다. 교통의 요지에 자리잡고 있어 일찍부터 영서지방의 교통 중심지로 발달했다. 중앙선이 시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며, 영동고속도로가 시의 서북부를 지난다. 평창-여주, 춘천-제천을 잇는 국도와 원주-충주를 잇는 국도가 원주시에서 만나고 중앙고속도로가 완공되었다. 원주는 일찍부터 천주교가 뿌리를 깊이 내린 곳으로, 1965년에는 원주시를 포함해 삼척시·횡성군·영월군·정선군 등 강원도 남쪽 지방과 충청북도 제천시·단양군까지 관할하는 천주교 원주교구청이 개운동에 설치되었다. [포탈에서 발췌 정리]
* 제천시
충청북도 동북부에 있는 시로 강원도·경상북도·충청북도 3개도의 접경지역으로 중앙선·충북선·태백선이 교차하는 지역이다. 관광지로는 의림지와 충주호, 월악산국립공원이 대표적이며, 매년 여름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개최된다. 제천시는 본래 고구려 사열이현(沙熱伊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청풍으로 고쳐 내제군(奈提郡)의 영현이 되었다. 1018년(현종 9)충주에 속하였다가 뒤에 감무를 두었고 1317년(충숙왕 4) 이 고을의 중 청공(淸恭)이 왕사(王師)가 되었으므로 지군사(知郡事)로 승격하였다. 1660년(현종 1) 부(府)로 승격되었으며, 1895년(고종 32)에 군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제천군에 병합시켜 읍내면(邑內面)이라 하였다가 1917년에 청풍면으로 고쳤다. 지명의 유래는 이곳의 산천경개가 빼어나 남도의 으뜸으로 쳐, 이에 따라 청풍명월(淸風明月)이라 한 데에서 따온 것이며 조선시대에는 진산(鎭山)인 인지산(因地山) 부근의 남한강유역에 한벽루(寒碧樓)가 있어 많은 시인 묵객이 즐겨 찾았던 곳이다. 군사적으로는 오현봉수(吾峴烽燧)가 있어 동쪽으로 단양군 소이산봉수(所伊山烽燧)와 서쪽의 충주 심항산봉수(心項山烽燧)에 연결되었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내토군으로 불렸다가 신라의 삼국통일 후인 757년(경덕왕 16)에 내제군으로 개칭했으며, 고려초에 제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으로 1413년(태종 13)에 제천현이 되어 조선시대 내내 유지되었다. 제천의 별호는 대제·의천·의원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6년 충청북도 제천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때 근좌면·근우면·읍내면·백운면·성산면·송학면으로 개편되었다. 이때 충주군 덕산면과, 청풍군이 폐지되면서 청풍군 8개면이 5개면으로 통폐합되어 제천군에 편입되어 면적이 크게 넓어졌다. 이 시기에 통합된 읍내면이 1917년 제천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40년에 제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중앙선과 태백선이 통과하여 교통의 요지가 되면서 강원도와 충청북도 내륙을 연결하는 제천의 역할이 더욱 커져 1980년 시로 승격, 분리되고 나머지 지역은 제원군으로 바뀌었다가 1991년에 다시 제천군으로 환원했다. 1983년 제천시는 당시 제원군의 금성면 일부를 편입했다. 1995년 전국 행정구역 개편으로 제천군과 제천시가 다시 하나로 통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도농통합시인 제천시를 이루었다. 시의 전체적인 지세는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지형이다. 영월지맥이 시의 북부를 지나고, 백두대간이 경상북도와 경계를 이루며 시의 남부를 지나고 있어 북쪽과 남쪽이 높고 서쪽과 동쪽은 상대적으로 낮은 지형을 이루고 있다. 시의 동쪽에는 금수산(錦繡山, 1016m)을 비롯하여 동산(東山, 896m)·가창산(歌唱山, 820m)·작성산(鵲城山, 771m)·마당재산(661m)·무등산(無謄山, 620m) 등이 솟아 있으며, 서쪽에는 십자봉(985m)·시루봉(734m)·오청산(五靑山, 655m)·천등산(天登山, 807m)·대덕산(大德山, 580m)·마미산(馬尾山, 601m)·등곡산(嶝谷山, 589m) 등이 있다. 그리고 북쪽에는 백운산(白雲山, 1,087m)·구학산(九鶴山, 983m)·감악봉(紺岳峰, 886m)·석기암(石機巖, 906m)·청룡산(靑龍山, 575m)·송학산(松鶴山, 819m) 등이, 남쪽에는 월악산(月岳山, 1,093m)·대미산(大美山, 1,115m)·문수봉(1,162m)·매두막(1,100m)·만수봉(萬壽峰, 983m) 등의 높은 산들이 감싸고 있으며, 중앙에는 국사봉(國師峰, 632m)이 있다. 단양군에서 흘러든 남한강이 시의 중앙을 동서로 흐르며 많은 지류를 합하여 충주시로 흘러간다. 봉양읍을 흐르는 용암천이 장평천과 합류하여 주포천을 이루고 고교천이 금성면을 흘러 구룡천과 합류하여 각각 충주호로 흘러든다. 이밖에 송한천·시곡천·원서천·화당천·광천·하소천·용두천 등이 흐른다. 특히 하소천과 고암천의 하천유역은 상당히 넓어 청전동에서 두학동까지 펼쳐져 있으며 신월동 하안에 하안단구가 발달해 있다. 이들 하천들은 대부분 깊은 협곡을 따라 흐르기 때문에 평야의 발달이 미약하여 장평천과 용암천이 흐르는 봉양읍 지역에 약간의 평야가 있을 뿐이다. 이 지역에는 관개용수 공급을 위한 저수지와 소류지가 많은 편으로 의림지(義林池)를 비롯해 백마저수지·월림저수지·안말제·광암제 등이 있다. 충주다목적댐의 건설로 청풍면을 중심으로 한 5개면 61개 동리가 수몰되었다. 단양-제천-태백산지역으로 이어지는 곳에는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했다. 주요농산물은 쌀·보리·콩·팥·수수·옥수수 등이며, 고추·잎담배·마늘·약초·인삼 등이 생산된다. 특히 석회암질 토양에서 재배되는 마늘은 단단하고 맛이 좋다. 우리나라 기후구로 볼 때 중부내륙형 기후구에 속하는 이 지역은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해양의 영향을 받지 못하는 내륙으로 한서의 차가 심한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철도 및 도로 교통의 중심지로, 시가지를 중심으로 철도와 국도 및 지방도가 방사상으로 뻗어 있다. 중앙선이 용암천·장평천을 따라 시의 북부를 동서로 지나고, 시의 북서쪽에 위치한 봉양읍 봉양역에서 충북선과 이어진다. 또한 제천역에서 분기한 태백선이 고암천을 따라 시의 북동부를 지난다. 원주·안동·안성·태백·충주·울진을 잇는 국도가 있다. 중앙고속도로가 완공되어 도로교통이 더욱 편리해졌다. [포탈에서 발췌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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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영재(末影峙), 태기산의 그늘이 여기까지 드리워진다는 걸까요? 예상치 못한 눈으로 퇴각했던, 일주일만에 다시 그 자리에 왔습니다. 건너편 가선대참판 묘지를 확인하고...
♤ 말영재(569m)
말영재는 둔내면에서도 가장 고지대에 위치한 화동마을의 무사골 위에 위치하고 있는 고개로, ‘술(酒)이 내(泉)를 이룬다’는 주천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태기산 정상에 항상 떠다니는 흰구름이 장관을 이뤄 시인묵객들로 부터 태기백운(泰岐白雲)이라 불리기도 했다. 수려한 계곡과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화동저수지를 비롯해 인근에 보광휘닉스파크, 허브나라, 이효석문학관, 성우리조트, 둔내 자연휴양림, 청태산 자연휴양림 등 사계절 관광지가 위치해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고개 아래에 화동리(禾洞里)가 있다. 화동 꽃마을 뒤편 태기산에는 아직도 태기왕이 신라군을 맞아 싸우기 위해 건설한 태기산성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 방개골고개에서 2.9km 거리이다. 말영재 주변에는 멋진 소나무 한 그루와 좌측편으로 가족공원 묘지가 있고 마루금은 말영재를 직진으로 능선을 올라 진행한다.
♤ 횡성군 둔내면(屯內面)
횡성군 둔내면은 동쪽으로 평창군 방림면, 서쪽으로 청일면과 갑천면, 남쪽으로 안흥면, 북쪽으로 평창군 봉평면과 각각 접해 있다. 둔내면이라는 지명은 둔창(屯倉)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둔창이란 둔전(屯田)에서 수확되는 곡식을 군용으로 저장하는 곳으로 둔내면 둔방내리에 둔창이 있었다. 언제 설치되었는지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일반적으로 둔전(屯田)은 고려 후기에 설치되어 조선시대에 성행하였으므로 둔방내리의 둔전도 고려 말, 조선 초기에 설치되었을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둔내면 둔방내리 둔창에서는 주민에게 매년 양곡 300섬 씩을 대여하였데 그 규모가 당시로서는 상당히 컸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둔창이 있는 곳이라 하여 둔창내(屯倉內)라 부르다가 발음상의 편리를 위해 창(倉)자를 빼고 둔내(屯內)라 부르게 된 것이 그대로 굳어져 면명을 둔내면이라 칭하게 되었다.
♤ 깍은재(削峴, 595m)
깍은재는 횡성군 둔내면 화동리와 청일면 고시곡마을 고시리를 잇는 고개로, 고개가 매우 험하고 경사가 급하며 깍아 지른 듯 하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지맥의 우측이 청일면 신대리에서 고시리로 바뀐다. 영진5만 지도와 국지원지도가 가리키는 깍은재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묘지 바로 위에서 직진으로 내려서면 길이 희미하고 잡목이 많지만 원지맥길이다.
- 잘록이 안부이다. 좌측으로 진행해 나가면 화동1리 마을회관으로 연결되고, 맥길은 우측 오르막길이다.
♤ 고시골(古時谷) 임도
고시골은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고시리(古時里)에 있는 임도로 고시리에 대한 정확한 유래는 알 길이 없지만 이웃 지역인 신대리보다 먼저 생겼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라 보여지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청뚜루, 숯대배기를 병합하여 고시리라 불렀으며 청뚜루는 마을 앞에 있는 소(沼)가 깊어서 파랗게 보인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며, 마을사람들은 이 소를 청소(靑沼)라고 불렀다 또는 청평(靑平)이라고 한다. 또 다른 유래는 예전에 강릉에서 횡성으로 갈 때는 봉평에서 화동리, 고시리를 거쳐서 가는 길이 지름길이었는데 그 당시 이 길은 나무가 너무 우거져서 사방이 어두웠으나 고시리 청뚜루에 오면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라고 한다.
♤ 푯대봉(652.7m)/ 삼리봉(화동리, 고시리 → 갑천리)/ 밴치, 육각정자 쉼터
푯대봉은 횡성군 둔내면 화동리와 청일면 고시리에 접해있는 봉우리로, 일제강점기 때에 수탈을 위해 국토 조사사업이 이루어지면서 토지 측량을 위해 산봉우리에 삼각기점을 잡은 푯대를 세웠다 하여 붙은 이름인데, 지도상에는 나와있지 않는 봉우리이다. 우리의 산하에는 푯대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봉우리가 매우 많다. 깃대봉과 유사한 유래이다.
- 판독이 어려운 마모된 삼각점이 있다.
♤ 상마암고개(525.4m)/ 비닐하우스단지
상마암고개는 횡성군 둔내면 마암리 상마암에서 청일면 갑천리, 고사리로 넘어가는 2차선 포장도로(12번 군도)가 지나가는 고개로, 둔내면과 청일면의 면계 이정표가 서있고 청일면 쪽에는 노인요양원이 보인다.
- 갑천 SK 이동통신 중계탑이 있고, 들머리는 도로 건너 낙석방지 펜스가 끝나는 지점 옹벽으로 올라선다. 경사지를 올르면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지며 등로 좌측편으로 횡성군 둔내면 화동리(禾洞里)의 모습이 보인다.
특약작물재배지 파란 그물망 옆으로 진행한다. 민감한 시기에는 소유주의 항의가 있을 수 있다. 특용작물을 재배하는 농부가 외지인을 경계하는 건 당연할 터 행인 또한 신발 끈을 경계할 일이다.
♤ 곧고개(561m)/ 절바우골고개
곧고개는 횡성군 둔내면 마암리 하마암에서 청일면 갑천리로 연결되는 고개로 하마암쪽에는 민가와 밭이 있다. 25,000지형도에 ‘절바우골고개’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어떤 지도에는 따로 있기도 하다.
- 방개골고개에서 8.5km 거리이다.
♤ 넘은재(585.3m)/ 420번 2차선 포장도로
넘은재는 횡성군 둔내면 마암리 '백정골'에서 갑천면 갑천리 '터골(텃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420번 지방도가 지나가며 고개 좌측에는 스마일 노인 전문요양원이 있는데 하마암으로 가는 2차선 도로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넘은재라 부르지 않고 '하마암(下馬巖) 도로'라고 부른다.
- 볼록거울이 있는 옹벽이 낮아지는 곳이 검두재로 이어가는 들머리인데, 그 우측 앞으로 보이는 건물이 '둔내 마암 노인전문요양원'이다.
♤ 검두골 임도/ 삼면경계면(둔내면, 청일면 → 갑천면)
넘은재에서 올라 묘지를 지난 무명봉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지 말고 직진으로 내려서면 임도길이 나오고 임도 건너 능선으로 진행하여야 한다. 면계를 따라 약 1km 진행하면 검두골임도다. 검두골임도는 삼면 경계로 좌측은 횡성군 둔내면 마암리이고, 우측은 횡성군 청일면 갑천리에서 갑천면 상대리로 바뀌어 남쪽으로 맥길이 이어진다.
♤ 검두(劍頭)재(596m)/ 빨딱고개
검두재는 횡성군 둔내면 둔방내리에서 갑천면 상대리로 넘어가는 길에 위치한 고개로, 빨딱고개라고도 부른다. 고개를 경계로 고개를 넘으면 하대리이고, 안쪽은 상대리이다. 예전엔 상,하대리를 합쳐서 검두마을이라고 불렀는데, 마을지명에 ‘칼 검(劍)’자가 붙어서인지 크고 작은 사건이 자주 발생하여, 마을 이름 때문이라고 여긴 고을 원님이 ‘거문고 금(琴), 집 대(臺)’자를 써 금대리(琴臺里)로 바꾸었는데 그 이후로 마을은 평온해졌다고 하며, 지금은 강원도로부터 범죄없는 마을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 꼬부랑재(634m)
횡성군 둔내면 둔방내리 벼락바위골에서 갑천면 상대리 대골을 넘나드는 고개이다. 검두재에서 686m봉과 698m봉을 차례로 넘고 약간 가파르게 올라서면 삼각점이 있는 719.6m봉이고, 삼각점이 있는 국지원 지도상 721.4m봉(719.6m봉)과 664m봉 사이의 잘록이 안부이다. 꼬부랑재에서 올라서는 680m봉 아래로 횡성-둔내간 KTX철로가 지난다.
664m봉을 통과하여 내려서면 갈림길 나오고 갈림길에서 90도 우틀하여 진행하면 신선봉에 도착한다.
♤ 신선봉(622m)
664m봉을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우틀하여 진행하면 봉우리 하나를 우회하는데 이봉우리가 신선봉이다. 정상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이 서울마운틴 산패와 선답자 띠지만 수개 달려있다.
♤ 느릅재(592m)
느릅재는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둔방내리에서 갑천면 상대리를 잇는 고개로 느릅나무가 많아서 붙혀진 지명인데 주변에 느릅나무는 찾아보기 힘들다. 신선봉(622.1m)에서 좌측 둔내면 현천리와 우측 갑천면 상대리로 갈리는 느릅재로 내려선다. 느릅재 조금 지난 곳에 좌측 아래로 전원주택이 내려다 보인다.
♤ 느릅나무
우리나라 특산종인 느릅나무는 9월에 자잘한 꽃이 핀다. 유사종으로 열매가 거의 둥근 것을 둥근참느릅, 잎이 좁은 댓잎피침형인 것을 좀참느릅 또는 좁은참느릅이라 한다. 관상용·공업용·식용·약용으로 이용된다. 재목은 숯의 재료로 쓰이며 어린잎은 식용한다. 나무껍질을 낭유피(榔楡皮) 또는 추유피(秋楡皮), 잎을 낭유엽(榔楡葉)이라 한다. 약으로 쓸 때는 탕으로 하여 사용하거나 술을 담가서 쓴다. 들짐승이 사는 거친 산의 지킴이가 참나무라 한다면, 사람이 사는 대지의 지킴이는 참느릅나무라고 일컫는다. 전 국토의 도시화로 참느릅나무의 서식처가 크게 변형되어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더라도 개체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둔내면 현천리는 서쪽으로 갑천면, 우천면과 경계이고 남쪽으로는 안흥면과 경계를 이루는데, 지맥은 갑천면 면계를 따르다 둔내면 현천리로 들어서고 다시 우천면 면계와 잠시 만났다가 다시 둔내면 현천리로 들어서서 덕고산 직전에서는 안흥면과 만나 서쪽으로 방향을 바꿔 영동고속도로로 진행합니다.
♤ 칠송고개(567m)/ 면계(갑천면 → 둔내면)/ 1차선포장도로
칠송고개는 갑천면 상대리와 둔내면 현천리를 가르며 지나 온 맥길이, 온전히 둔내면 관내로 들어서서 좌우로 현천리와 궁종리를 가르며 진행한다. 좌측 아래 칠송배기에서 이름을 따왔다. 칠송배기는 이 마을에 일곱가지로 뻗은 큰 소나무가 있었다고 해서, 칠송(칠송)에다 동네를 이르는 '-배기'를 붙여 부르게 된 지명이라고 한다. 칠송배기 마을은 횡성축산연구센타가 들어오면서 마을 자체가 통채로 이주 당했는데 6번국도에서 축산기술연구센타로 가는 길을 따라 들어가면 왼편으로 넓은 초지가 펼쳐지며 횡성한우의 종자개량, 육질 등을 연구하는 곳이다.
- 도로 건너 바로 이어가야 하나, 절개지로 인해 동쪽 축산기술연구소 초지 방향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약간 진행한 뒤, 우측사면으로 진입한다.
♤ 횡성군 둔내면 현천리(玄川里)/ 가무내
칠송고개가 있는 현천리는 횡성군 둔내면에 있는 마을로 남쪽으로 주천강이 흐르고, 동쪽에는 신선봉, 쇠돌봉 등이 있다. 골짜기가 많은 중산간지역으로 자연마을에는 가매봉, 물근네, 선락동(仙樂洞), 황우촌 등이 있다. 가매봉은 마을에 가매봉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강감찬장군이 원주 치악산에서 태기산까지 건너뛰다가 이 곳 가매봉에서 칡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고 한다. 화가 난 장군은 부적을 써서 산에 붙이며 칡이 나지 말 것을 주문하였다고 한다. 이후 이 마을과 산에는 칡이 없다고 한다. 이후 장군이 강릉 어느 곳에서 공부를 하는데 개구리가 몹시 울어 부적을 붙이니 개구리가 울지 않았으며 현재도 울지 않는다고 전한다. 현천리의 다른 지명은 가무내라고 부르며 비가 오지 않으면 조금만 가물어도 강물이 잘 마른다는 뜻이다. 이외 현천리를 통과하는 주천강이 ‘검을 현(玄)자’ 모양으로 여러 구비로 꺽어지며 흘러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윗가무내, 아랫가무내 마을이 있다. 칠송배기 마을은 횡성축산연구센타가 들어오면서 마을 자체가 통채로 이주되었는데, 6번국도에서 축산기술연구센타로 가는 길을 따라 들어가면 왼편으로 넓은 초지가 펼쳐지며 횡성한우의 종자개량, 육질 등을 연구하는 곳이다.
♤ 602m봉/ 면계(둔내면 - 우천면)/ 산불감시초소봉
지맥길은 강원도 축산기술연구센터 철조망 울타리를 줄곧 따른다. 초지를 벗어나는 지점의 길가에 군삼각점(NO 027)이 박혀있는 곳(602m봉)에서 좌틀하여 약간 지나면 만나는 산불감시초소봉에서 우천면(隅川面)과 만나 좌 둔내면 우 우천면으로 갈려 고들고개까지 진행한다.
♤ 황재(黃峙, 500m)/ 우천면 - 둔내면 면계
황재는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현천4리와 우천면 정금리를 넘나드는 하궁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면계 교통표지판이 있는 6번국도가 지나는 2차선 도로로 고갯길이 다른 곳보다 진한 황토색을 띠어 황재라는 지명이 유래되었고, 고개 좌측 아래로 현천리(玄川里)가 보인다.
- 산불초소에서 약 15분 진행하여 6번국도에 내려서서 좌틀한다. 도로를 건너 가드레일이 끝나는 지점 우측이 들머리이다.
♤ 고들고개/ 고독현(高禿峴)
연안김공과 인동장씨 합장묘를 지나 지붕의 페인트색이 자주 바뀌는 농가로 내려서면 고들고개이다. 고개가 너무 밋밋하여 고개라는 느낌이 들지 않으나 덕고산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맥의 줄기로 볼 때는 분명히 고개가 맞다. 고들고개는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하궁1리 샘미둔지에서 현천리로 넘어가는 길에 위치한 고개로 횡성에서 둔내장을 보러 드나든 고개라고 한다. 둔내면 십교리를 개척했다는 안삽교가 원주에서 볼일을 보고 현천으로 가는 길에 호랑이새끼를 '고돌'에 끼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 호랑이 새끼를 정패랭이골에 사는 정패랭이가 살려줬다고 하며 고지도에는 고독현(高禿峴)으로 되어있다. 지맥은 이 고들고개에서 우천면 면계를 떠나 둔내면 관내로 들어서서 영동고속도로를 지나 덕고산(德高山) 전위봉까지 이어진다.
고속도로 건너에 덕고산으로 간다. 13번국도를 따라가다 에덴교회 직전 임도로 좌틀, 비닐하우스옆 임도길로 진행하여 영동고속도로를 수로로 통과하고 좌측편 잡목숲이 들머리다. 잠시후 묘지를 통과하여 밭으로 올라선다. 약 30분 빡치게 올라서야 하는데 간벌을 하며 산비탈에 임도를 만들고 있다.
눈에 보이는 가까운 거리라 배낭 두고 잠시 다녀옵니다. 횡성에 있는 덕고산 두개를 다 만나는군요.
♤ 덕고산갈림봉/ 덕고산 동남쪽(좌측) 80m
덕고산 전위봉에서 안흥면과 만나 맥길은 서향으로 바뀌고 위(우측) 둔내면 아래(좌측) 안흥면으로 나뉘어 영동고속도로까지 이어지고 이 곳에서 안흥면 관내로 맥길이 이어져 봉화산 전위봉까지 이어지고, 이 곳에서 우천면과 다시 만나 봉화산까지 진행하고, 봉화산에서 다시 안흥면 안으로 들어서서 아래태오지 임도 이후까지 이어진다.
♤ 덕고산(德高山, 해발702.8m)
덕고산은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현천리와 안흥면 소사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정상석 없고 그린나래 산패와 선답자의 시그널만 휘날린다. 횡성군에는 똑같은 이름의 덕고산이 두군데 있는데 하나는 신대리 버스종점에서 영월지맥의 들머리로 잡은 곳으로, 한강기맥에서 소개한 태기왕의 전설이 스며있는 삼계봉 옆에 있는 봉복사 뒷산이다.
♤ 횡성군 안흥면(安興面)
안흥면은 강원도 횡성군 동남쪽에 위치한 면이다. 안흥은 옛날 ‘보뚠지’에서 조선초에는 ‘웃거리’로, 동국여지승람에는 정곡면으로 불리워져 왔다. 이는 우천면에 편입된 정금리와 가좌곡리의 한 자씩을 따서 붙인 이름이라 한다. 당시 관할구역은 산전, 가좌곡, 정금, 궁중, 대미원, 소사비, 실미, 지구, 상안흥, 하안흥이다. 신라, 고려 시대에는 실미면이라 부른 적도 있다. 치악산 큰 줄기인 매화산, 삿갓봉, 푯대봉과 사자산 등 높은 산이 사방을 에워싼 고원분지로 서쪽은 우천면, 북쪽은 둔내면, 동쪽은 평창군 방림면, 남쪽은 강림면, 영월군 무릉도원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태기산에서 발원한 주천강과 상안천이 합류하여 면 중심부를 지나 남한강으로 흐른다. 민족사관고등학교와 영동고속도로 횡성휴게소의 소재지이다. 과거 대관령을 넘던 유일한 길이었던 42번 국도의 경유지로 기능하여 길손들에게 찐빵을 팔기 시작해, 1990년대부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안흥찐빵이 대표적인 특산물로 되어있다. 현재는 매년 10월 경에 안흥찐빵축제가 개최된다.
♤ 피나무재
안흥면 소사리와 둔내면 한천리의 경계로 덕고산갈림길에서 내려서면 만나는 잘룩한 안부이다. 찐빵 하나 넘어 10분여 진행하면 덕고산 날머리 13번 국도에 이른다.
♤ 덕고산 날머리/ 13번국도
덕고산 날머리 마루금 우회지점은 13번 국도가 지나는 2차선 도로이며 원 지맥길은 도로건너 능선을 타야 하지만 곧바로 고속도로를 넘어서야 하기에 산꾼들은 이 지점에서 도로를 따라서 횡성휴게소 후문까지 진행하기도 한다. 잡풀과 잡목을 헤치며 13번 국도에 내려서서 잠깐 능선으로 올라섰다가 다시 고속도로 옆 임도로 내려선다.(우틀하여 도로를 따르다 태양열집전판에서 좌틀하여 임도를 따라도 된다.) 고속도로 암거를 통과하여 직진으로 가건물을 지나 건너편 640.1m봉을 오른다. 좌측엔 진흥농장 돈사가 보인다.
♤ 횡성군 안흥면 소사리(所思里)
안흥면 소사리는 서쪽에 봉화산이 있고, 동쪽에는 덕고산이 있으며 산자락에 위치한 중산간마을이다. 자연마을에는 동박골, 뒷말, 샛땀, 웃말, 태오지 등이 있다. 소사리는 원래 현감(縣監) 정우주(鄭宇柱)의 ‘애민선정비(愛民 善政碑)’를 세우고, 그를 사모하는 뜻으로 소사비리(所思碑里)라 하였는데서 그 지명이 유래되었다. 소사리에는 영동고속도로 횡성휴게소가 있는데 예전엔 소사휴게소로 불렸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자립고 형태인 민족사관학교가 있고 민사고를 설립한 최명재 회장이 설립한 저온살균법으로 생산하는 피스퇴르 유업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98년에 부도로 한국야쿠르트가 인수하였다가 또다시 롯데삼강이 인수했다. 지금은 법인은 소멸되고 브랜드만 남아있는 비운을 맞이했다.
정상에는 선답자의 띠지만 서너개 펄럭일 뿐 특별한게 없습니다.
♤ 640.1m봉
원지맥길과 우회길이 만나는 지점으로 둔내면에서 안흥면 내로 진입한다. 원지맥길은 13번국도에서 도로건너 능선을 타고 진행하고 다시 영동고속도로를 암거로 통과하여 고속도로 건너편에 있는 640.1m봉을 찍고 내려서서 우측으로 다시 암거를 통해 넘어와 도로를 따르면 좌측편으로 골프연습장과 민사고기숙사가 보인다.
덕고산에서 내려서서 횡성휴게소까지 원지맥길은 영동고속도로를 세번 넘어서야 하기에 우회길을 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회루트는 덕고산 입구 날머리지점-소망동산-소사2리 마을회관-6번, 411번 지방도 삼거리 통과-소사2리 버스정류장-안흥초등학교 덕천분교 입간판-영농조합 인더팜입간판에서 좌측방향(19번 국도에서 13번 지방도로로 변경)-소사라인가압장-안흥면 소사4리마을-민족사관고등학교 입구-소사자율방범대-소사4리 버스정류장-영동고속도로 지하차도 통과후 좌측방향으로 진행(19번 국도)-횡성휴게소 후문으로 진행이다.
640.1m봉에서 내려서서 암거를 통과하여 남쪽으로 나오지 않고 북쪽으로 이동했습니다. 기와집 농가를 지나고 임도를 따르니 임도가 사유지라며 임도에 펜스가 쳐져있는 농가가 또 나옵니다. 펜스를 넘어 농가를 지나니 고속도로 암거가 나옵니다.
후레쉬도 장만할겸 요기도 할겸 휴게소에서 1시간 휴식을 취합니다. 전화기 먼저 충전시켜 놓고, 밧데리 3개 들어가는 조잡한 후레쉬를 2만원에 구입, 편의점 밧데리까지 3만냥 ㅠㅠ 음료를 사서 행동식과 먹고, 떡&쏘시지꼬치 하나 사먹고, 콜라 두병을 구입 장착하고...
♤ 횡성휴게소 상행선 후문
다시 암거를 건너고 직진하여 산으로 올라서야 하지만 임도를 따라 좌틀로 우회하여 봉운사 방향으로 올라가다가 횡성휴게소 후문을 만난다. 후문에서 골목길로 가다 삼거리가 나오면 좌측 봉은사쪽으로 향하고 잠시후에 좌측으로 갈림길이 나오면 우측 숲길로 봉화산에 달라 붙는다. 봉화약수터 방향을 따라 15분 오르면 정상이다.
♤ 봉화산(烽火山, 해발680.4m)/ 봉호뚝
봉화산은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소사리 · 궁종리 · 상대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조선 시대에 봉수대가 있었다고 하며 '봉호뚝'이라고도 한다. 봉화산에 위치한 봉화대는 현재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나, 동서로 태기산 및 치악산이 한눈에 들어와 예로부터 봉화대가 위치한 곳으로 나라에 위급한 일이 발생할 때마다 봉화를 올렸다고 한다. 정상석도 조망도 없다. 봉수대도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삼각점과 봉수대 안내판이 정상을 대신한다.
- 이정표 [←봉화약수터, 시계(연인)바위→]가 있다. 좌틀로 내려선다.
봉화산에서 약 20분 정도 내려서서 갈림길이 나오면 마루금은 우측으로 직진해야 하지만 다시 고속도로를 건너야 하기에 묘지가 있는 좌측으로 내려간다. 좌틀하여 19번 국도와 영동고속도로 암거(지하도 내부)를 통과하고 횡성콩마당 입간판을 지나 좌측 임도를 따라도 되고 산으로 들어서도 된다.
콩마당앞을 통과하지 않아서 지나게 된건지, 밤중이라 그런건지 아래태오지임도는 어딘지 모르고 지났는걸요.
♤ 아래태오지(台五地) 임도
횡성군 안흥면 소사리 소재 봉화산 아래에 자리잡은 태오지(台五地) 마을은 윗태오지와 아래태오지 마을로 나뉘는데 태오지(台五地)란 다섯 군데의 명당자리가 있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다. 지맥은 좌(북) 안흥면, 우(남) 우천면으로 면계를 따라 동남향하다 688.6m봉에서 남향과 남서향으로 이어져 풍취산 전 626.7m봉에서 온전히 안흥면으로 들어서서 U자 형태로 달린다.
- 펜스를 남쪽으로 약간 지나친 곳 좌측 임도가 들머리다.
♤ 688.6m봉/ 삼각점봉
아래태오지마을이 보이는 봉화목장 안부를 지나 641m봉에 오른다. 20분여 꾸준히 올라서면 부서진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688.6m봉이다.
- 4등삼각점(건설부 416, 77. 7재설)과 식별이 되지않는 삼각점 두개가 있다.
♤ 낡은터 고개/ 임도
낡은터는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오원리 논골부락에서 안흥면 소사리 낡은터로 이어지는 고개로 절개지에 포장도로가 있으며 좌측으로 낡은터라는 마을이 있다. 강릉유공과 유인 청주한씨 묘지에서 잠시 내려서면 만나는 1차선 양회임도에 내려선다. 좌측 '삼성포마을'과 삼성목장에서 우측 성진목장으로 연결되는 도로로, 아래태오지임도에서 1.6km 거리다.
♤ 횡성군 안흥면 송한리(松寒里)
횡성군 안흥면 송한리 동쪽으로 주천강이 흐르고, 서쪽에는 풍취산이 위치하고 있다. 자연마을에는 아랫말, 양지말, 음지말, 장자터 등이 있으며 송한리(松寒里)는 산속 골짜기에 마을이 있으므로 속안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송한이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유래로는 소나무가 많아서 송한리(松寒里)라 불렀다고도 전해진다.
♤ 653m봉/ 삼각점봉
나무에 거인산악회 기맥종주대 산패가 붙어 있다. 산불감시초를 지나고, 688.6m봉을 넘고, 여기 651.4m봉에서 우틀하여 새터고개로 내려서야 한다.
♤ 새터고개
새터고개는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오원리와 안흥면 송한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민가와 농촌체험학교가 자리 잡고 있으며 새터고개는 행정구역상 안흥면에 속한다. 새터고개의 지명유래는 신생 마을을 이르는 것으로 풍취산 아래에 폭 파묻혀 있는 마을이다.
♤ 안흥면 새터마을 안흥외국어학교/ 농촌체험학교
재림교회의 교리와 교육철학에 따라 설립된 대안학교인 안흥외국어학교(교장 민승환)는 2006년 20명의 학생으로 개교하여, 현재 입소문으로 찾아 온 90명 가량의 학생이 전원 기숙사생활을 하면서 공부와 체련, 종교와 봉사활동을 병행하며 학생들에게는 수준별 교육이 주어지기 때문에 고등학교 1학년 때 특기자로 대학에 진학한 학생도 있었고 대입검정고시 만점을 맞은 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대학합격자 중에는 국립대 입학자도 많았고, 한때는 고3 전원이 대학에 합격했다고 하는데 현재는 농촌체험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 인가에 수도꼭지가 있어 물보충이 가능하다.
♤ 642m봉/ 새터마을 뒷산 첫번째 봉우리
지맥길은 642m봉에서 다시 좌 안흥면, 우 우천면 면계를 따르며, 전제 이후 매화산(1083.1m)까지 이어진다. 새터마을을 지나느라 잠시 안흥면으로 내려선 것이다.
♤ 풍취산(風吹山, 698.2m)/ 바람부리산, 풍차산
풍취산은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안흥리와 우천면 오원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은 넓은 헬기장 공터로 이루어져 있고 정상석은 없다. KT 이동통신 중계탑 옆을 지나서, 20분여 꾸준한 오르막길을 오르면 바람 풍(風), 불 취(吹), 바람이 부는 풍취산이다. 또다른 지명은 서북쪽이 탁 틔어서 바람이 늘 세게 불어 바람부리산 혹은 풍차산이라고 부른다.
- 군 삼각점(No.048)과 반쪽이 떨어져 나간 3등삼각점(안흥303) 두개가 있다. 30분 내려서면 전재에 도착한다.
♤ 전재/ 증치(橧峙, 540m)/ 42번국도/ 우천면 - 안흥면 경계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안흥리와 우천면 오원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1917년 발행된 지형도에는 증치(橧峙)라 기재되어 있다고 한다. 橧(집 증)은 섶나무를 쌓아 만든 집이란 뜻이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상에는 즌재로 표기되어 있는데, 橧峙(증치)를 한글로 표기하면서 오기한 듯 하며, 이 재 동남쪽 아래 안흥리에 전재골이란 마을이 있고, 이 동네 사람들도 또한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전재가 정확한 지명인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증재일 수도 있겠다. 42번 국도가 넘었으나 아래쪽에 2012년 6월에 전재터널이 개통되면서 전재 구도로는 폐쇄되었다. 우측으로는 안흥찐빵으로 유명해진 안흥면 소재지가 있고 도로 좌우로 교통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설치한 태양열로 작동하는 무인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전재에서 치악산 비로봉까지 약 11km는 비법정탐방지역이라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능선으로 올라 산속으로 신속하게 사라져야 한다. 옛날에는 그 고개가 워낙 높고 험하여 지나가는 소장수를 노리는 산적들이 더러 있었다고 한다.
- 전재에서 좌측으로 도로따라 약간 나가면, 도로 우측편 구진농원(龜進農園) 입구가 들머리이다. '여기는 전재 정상입니다 / 우천면-안흥면 경계 / 횡성군수' 교통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전재 42번 구 국도 구진종합농장방면 횡성축협한우 및 구진종합농장 입간판 뒤편 능선으로 오르면 능선안부에 군진지와 비법정탐방지역 안내판이 있으며 뒤편으로 출입금지 밧줄이 설치되어 있다. 동쪽 아래에 민박집이 있다.
♤ 안흥찐빵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소재지에는 찐빵 가게가 20곳 가량 된다. 찐빵 마을이다. 한국전쟁 이후 찐빵은 전국 어디에나 있는 음식이었다. 이 흔하디 흔한 찐빵이 안흥이라는 조그만 산골에서 '터졌다'. 이 일을 두고 영동고속도로가 나기 전 안흥에 서울-강릉간 버스터미널이 있어 왕래하는 사람이 많아 그 영향으로 유명해진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또, 안흥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통의 찐빵 제조 비법이 있는 듯이도 말한다. 그러나 안흥 찐빵이 유명해진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안흥은 '후치악'(치악산의 동쪽)으로 들어서는 길목으로, 예부터 등산객이 자주 지나치는 곳이다. 1990년대 중반 안흥의 찐빵 가게가 어느 등산 잡지와 신문에 조그맣게 기사로 났다. 심순녀씨가 하는 찐빵 가게였다. 맛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열아홉에 찢어지게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와 온갖 행상을 하다가 찐빵 가게를 차렸다는 심순녀씨의 인생담이 더 눈길을 끌었다. 1997년 한국은 IMF 구제금융 시대를 맞았다. 이때에 가난한 시절에 먹었던 음식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였다. 길거리마다 '옛날 짜장면' 간판이 즐비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20~30년간의 가난을 생각하면 IMF 정도야 별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음식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당시 언론들이 이런 음식을 집중 보도하게 되는데, 여기에 안흥 찐빵이 대표로 '걸려든' 것이다. 그렇게 하여, 안흥 찐빵이 '폭발'한 것은 1998년이었다. 단 1~2년 만에 현재의 찐빵 가게 숫자가 되었다. 안흥 찐빵이 지금도 인기가 있다는 것은 한국 경제 사정이 여전히 좋지 않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참으로 웃픈 이야기다.
♤ 774.7m봉
축사가 있는 구진농원 울타리를 길게 따라 목장 철조망 끝부분의 봉우리이다.
♤ 매화산(梅花山, 1,083.1m)/ 삼면봉(강림면, 우천면 → 소초면)
강원도 매화산은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所草面)과 횡성군 우천면(隅川面) · 안흥면(安興面) · 강림면(講林面)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사면봉으로 보면 된다. 주위에 치악산(비로봉:1,228m) · 남대봉(南臺峰:1,182m) · 배향산(拜向山: 808m) · 삿갓봉(1,030m) 등이 있다. 꼭대기에서 서남쪽으로 능선이 이어지다가 치악산 비로봉과 합쳐지며, 동쪽으로는 백덕산과 마주보고 있다. 울창한 숲이 장관이며 이웃한 치악산의 명성에 가려 일반 등산객들의 발길이 뜸한 산으로서 치악산에 반해 그윽한 여성미를 자랑한다. 예전에 신선이 살았다고 해서 지금도 주민들은 신선봉이라 부른다. 또한 치악산의 최고봉인 비로봉에서 북동쪽으로 약 6km 정도 거리를 두고 우뚝 솟아 있는 산으로서 치악산 국립공원 내에 속하는데 봄철에는 철쭉, 진달래꽃이 가히 장관이다. 매화산 북쪽 기슭의 횡성군 우천면 오원리에는 오원(烏原)저수지가 있으며 남사면은 주천강(酒川江)의 발원지다. 서쪽 기슭에는 구룡사(龜龍寺) · 구룡폭포 등 명승지와 청소년수련장이 있어 관광객이 많다.
옛날 이 산에는 가난한 농부가 늙은 부모님을 모시고 나무장사를 하면서 살았는데 하루는 나무를 하러 갔다가 이상한 새를 만나서 쫒아 다니다 날이 어두워져서 산에서 잠을 자게 되었는데 자다가 목이 말라서 물을 먹었다고 한다. 이상한 새가 필경 봉황일 것이라는 뜻에서 물을 마신 샘을 ‘봉담’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다음날 이 새가 또 나타나서 자꾸 쫒아가다가 한 곳에 이르니 꽃이 활짝 핀 매화나무 밭이었다. 이에 이곳을 매화산이라 불렀는데 그래도 계속 새가 따라 오라는 것 같아서 계속 따라가니 새는 안보이고 신선들이 앉아서 바둑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신선들이 바둑을 두던 자리를 신선봉이라 한다. 바둑을 두는 것을 보고 있던 농부가 갑자기 신선들이 없어져 자신도 집에 가려고하자 손에 들고있던 도끼자루가 썩었다고 한다. 집에 와보니 가족들이 자신이 죽은 줄 알고 3년째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고 한다. 식구들을 이해시키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새덕이라는 벌판을 지나 매화산을 거쳐 신선봉까지 갔다 온 것이다. 새덕이란 지명은 새의 덕으로 신선을 만나 3년을 굶었어도 죽지않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우천면 오원리에 있는 것으로 소개하고 ‘매지산’ 이라는 한글 표기를 하고있다.
- 매화산 정상에 조망은 없다. 정상석과 약간 넓은 공터에 허물어진 묘지 1기가 있다. 지맥은 매화산에서 우측이 횡성군 우천면에서 원주시 소초면으로 바뀌고, 좌측은 안흥면에서 강림면으로 바뀌어 이후 원주시 소초면과 횡성군 강림면의 경계를 따라 치악산을 오른다.
전재에서부터 치악산국립공원(1984. 12. 31. 지정) 비법정탐방로라 등산객이 뜸해 등산로를 나뭇잎이 점령한 상태입니다. 매화산에서 수레너미재까지 내림길이 가파르기도 하구요. 알바도 잠깐 했습니다. 우린 과태료가 부가되는 비법정탐방로를 가지 않습니다. 지맥길을 가는 맥꾼일 뿐이지요.^^
♤ 수레너미재(716m)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에서 횡성군 강림면 강림리를 잇는 고개로 횡성쪽 아래에는 안흥면 강림리 수레너미 마을이 있다. 수레너미재는 치악산과 매화산 사이에 있는 고갯길인데, 걸어서 넘던 옛날에는 현재의 자동차 도로가 나있는 전재보다 더 지름길이었다고 한다. 원래 고개이름은 ‘수리재’인데 강림과 통하는 옛길로 조선시대 태종 이방원이 스승인 운곡 원천석이 있던 각림사라는 절을 찾아 강림으로 갈 때 수레를 타고 넘었다고 하여 유래 하였다. 거대한 노거수(뭐였더라? 소개되어 있던데...)가 있으며 양쪽 등로는 뚜렷하다. 직진 통과하여 완만한 오름길로 진행한다.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와 통하며 각림사는 현재 남아있지 않지만 강림면의 지명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 매화산에서 급경사 내리막으로 약 40분 소요된다.
♤ 치악산둘레길
한반도 중부지방 내륙산간에 위치한 치악산은 1984년 우리나라 16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공원면적은 175.668㎢로, 주봉인 비로봉(1,288m)을 중심으로 동쪽은 횡성군, 서쪽은 원주시와 접하고 있다. 치악산은 남쪽의 남대봉과 북쪽의 매화산 등 1,000m가 넘는 고봉들 사이에 가파른 계곡들이 자리해 예로부터 산세가 뛰어나고 험난하기로 이름이 높다. 2019년 4월 1단계(1~3코스) 33.2㎞의 개통을 시작으로 2021년 5월 2단계(4~11코스) 106.0㎞를 추가 개통하여 전체 11개 코스, 총연장 139.2㎞가 조성되어 치악산 구석구석 찾아가며 역사·문화·생태자원이 어우러지도록 연결하였다. 치악산둘레길 코스는 기존의 걷기 좋은 길들을 연결하는 것으로 교통량이 많은 도로와 포장길을 가급적 피하고, 걷기 편한 흙길, 숲길, 물길, 마을안길 등을 최대한 많이 걸을 수 있도록 하였다. 제주올레길·해파랑길·부산갈맷길 등의 바다를 낀 길들이 섬세하고, 아름답고, 여성스러운 길이라면, 치악산둘레길은 거칠고, 투박하며, 남성스러운 길로, 사계절이 뚜렷한 팔색조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1코스(꽃밭머리길), 2코스(구룡길), 3코스와 11코스에만 해설사가 있다. 횡성군에 속하는 4코스(노구소길)는 26.2㎞에 달하고, 2코스는 산세가 험해 겨울엔 자주 문을 닫는다. 3코스(수레너미길)와 11코스에 흙길이 많다. 아직 공사 중인 일부 구간까지 열리면 11코스가 흙길로는 최장이 될 것이라 한다.
♤ 운곡 원천석(元天錫, 1330~?)
수레너미재는 조선 태종(太宗, 1367~1422)과 그의 스승인 운곡 원천석(元天錫, 1330~?)의 설화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원천석(元天錫, 1330(충숙왕 17)∼?)은 고려 말 조선 초의 은사(隱士)로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자정(子正), 호는 운곡(耘谷)이다. 두문동(杜門洞) 72현 중의 한 사람이다. 일찍이 방원(芳遠 : 太宗)을 가르친 적이 있어 그가 중용하려고 자주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으며, 방원이 태종으로 즉위 전 1415년 직접 그의 집을 찾았으나 미리 소문을 듣고는 산 속으로 피해버렸다. 왕은 계석(溪石: 주필대)에 앉아 스승을 기다렸는데, 이후 태종으로 등극 후 ‘태종대’라고 개칭하였는데 지금도 치악산 각림사(覺林寺) 곁에 있다. 그가 치악산에 은거하면서 끝내 출사하지 않은 것은 고려에 대한 충의심 때문이었음을 그가 남긴 몇 편의 시문과 시조를 통해 엿볼 수 있다. “흥망이 유수(有數)하니 만월대도 추초(秋草)로다 / 오백 년 왕업이 목적(牧笛)에 부쳤으니 / 석양에 지나는 객(客)이 눈물겨워 하노라."와 "눈 맞아 휘어진 대를 뉘라서 굽다턴고 / 굽을 절(節)이면 눈 속에 푸를 소냐 / 아마도 세한고절(歲寒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가 전해진다. 태종이 태종대로 가는 길에 한 노파에게 스승의 행방을 물었다는 빨래터인 노고소(老姑沼)가 지금도 이름 그대로 남아 있고, 노파가 스승이 갔다고 가리킨 곳이 ‘횡가리치재’인데 지금의 가마골 횡지암이다. 또 태종의 수레가 넘어왔다 하여 ‘수레너미’, 태종이 쉬어 넘었다는 ‘대왕재’, 이방원이 떠나기 전 스승에게 큰절을 하였다는 ‘배향산’ 등이 그 연유로 부르는 이름이다.
♤ 해월 최시형(崔時亨: 1827~1898)
수레너미는 동학의 성지 중의 한 곳이다. 즉, 동학의 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崔時亨: 1827~1898)이 동학혁명 이후인 을미년(1895년) 12월(陰)부터 대략 100일 정도 이 곳 수레너미에 초옥을 마련하여 구암(龜庵) 김연국(金演局, 1857~1944), 송암(松庵) 손천민(孫天民, 1857~1900), 의암(義庵) 손병희(孫秉熙, 1861~1922) 등과 함께 기거하다, 이듬해 병신년 2월초 충주 외서촌 마르택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이 곳에서 부터 한동안 3암(庵)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되다, 1897년 최시형은 손병희에게 도통을 전수했고 이듬해 잡혀 처형당했다.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는 ‘시천주(侍天主 : 초월적이면서도 내재적인 천주를 정성껏 내 마음에 모신다는 의미) 사상을 확립하여 포교활동을 하였으나, 혹세무민한다는 죄목으로 잡혀 포교 4년 만에 대구 감영에서 사형을 당하였기에 동학의 세력을 크게 키우지 못하였다. 동학의 이론 정립과 세력을 확장하여 1894년 농민전쟁에 이르기까지 힘을 키운 이는 바로 그의 제자이자 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이었다. 그는 최제우가 강조한 시천주 사상을 뛰어넘어 인간이 곧 하늘이요, 인간을 하늘같이 섬겨야 한다는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으로 확대하였다. 1905년 동학의 3대 교주인 손병희가 동학을 천도교로 재편하면서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뜻의 ‘인내천(人乃天)’사상을 확립하였다. 거장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영화 「개벽」은 동학 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의 삶과 죽음을 다루면서 진한 감동을 준 영화로, 1991년 당시 대종상을 휩쓴 명작이었다.
♤ 966.8m봉/ 삼각점봉
등로에서 우측으로 약 10m 떨어진 곳에 삼각점이 있다. 보통은 산정이나 봉우리에 삼각점이 있지만 때로는 비탈길 중간에 있기도 하여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 4등삼각점(안흥 443/ 1985 재설)이 있다.
어령재라 표기한 무영객님 띠지가 나폴거립니다.^^ 글고보니 영월지맥엔 준희선생님 산패가 자주 없네요.
♤ 어령재
횡성군 강림면 부곡리 어령골에서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구룡사로 연결되는 고개로 좌측으로 내려뻗는 골짜기가 어령골이다.
- 직진으로 진행하여 암릉지대를 통과한다.
♤ 천지봉(天池峰, 1,085.8m)/ 알루미늄 정상표지판/ 지적측량점 안내표지판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과 횡성군 강림면의 경계를 이루는 치악산 천지봉은 비로봉과 매화산 중간에 우뚝 솟은 봉으로, 치악산 정상인 비로봉의 유명세에 밀려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아직도 깨끗함을 간직하고 있다. 천지봉이란 이름은 치악산 비로봉 입구에 있는 구룡사의 전설과 관계가 깊다. 천지봉의 유래는 구룡사의 현 대웅전 터에 원래 커다란 연못으로 아홉 마리 용이 살고 있었는데, 의상대사가 절을 짓기위해 도술로 용을 쫓아낸 뒤 연못을 메워 구룡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때 여덟 마리의 용이 도망을 쳤는데, 용이 도망을 친 앞산이 바로 천지봉이라고 한다. 아홉 마리 용 중에 한 마리는 눈이 멀어 미처 같이 도망치지 못하고 숨어든 곳이 구룡사 앞 계곡에 있는 구룡소라고 전해진다. 구룡폭포 밑의 용소로 도망을 갔다가 1936년대 병자년 대홍수 때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천지봉에서 우측편 구룡사로 펼쳐진 여덟 개의 크고 작은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다.
- 조망도 정상석도 없는 천지봉 정상에는 4등삼각점(안흥 444/ 1985 재설)이 지키고 있다.
천지봉에서 마루금 좌측방향 내림길로 진행하여 앞으로 약 4km 정도의 거리를, 1,100m고지 내외의 여남은 개의 봉우리들을 오르내립니다. 날씨가 좋으면 전망이라도 있으련만...
♤ 세렴재
우측 아래로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세렴골로 내려서는 비법정탐방로라 길이 거의 없다. 그 아래 세렴폭포와 세렴통제소가 있다.
- 천지봉에서 10분 정도 내려선 지점이다. 사거리 안부로 직진으로 진행한다.
♤ 세렴폭포
세렴폭포는 아홉마리 용의 전설이 얽혀있는 치악산 구룡사 계곡에 위치하고 있으며, 생각보다 작지만 2단으로 휘어져 떨어지는 환상적인 물줄기가 일품이다. 인근의 구룡폭포, 칠석폭포와 함께 치악산을 대표하는 곳으로 강원 내륙에 산재한 여러 폭포 가운데서도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 1,109m봉/ 전망대
하얀 차돌빼기 암봉을 지나서 만나는 봉우리로 등로에서 우측으로 약 10m 거리에 전망대가 있다. 좌측 아래가 낭떠러지 암벽인데 비로봉으로 다가가는 길과 지나온 천지봉과 매화산도 건너다 보인다. 비로봉에서 삼봉-투구봉-토끼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바로 앞의 세렴폭포쪽 큰골이 내려다 보인다.
재는 그나마 고봉 중에서 넘어가기에 쉬운 안부를 말합니다. 배너미재 이후 다시 비로봉까지 오름길로...
♤ 배너미재(1,004m)
배넘이재는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세렴골에서 횡성군 강림면 부곡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좌측은 가래골 따라 이어져 부곡리로 내려서는 길이고 우측은 세렴골을 따라 내려서서 세렴폭포로 가는 길이다. 좌우측의 고개길은 인적이 끊긴지 오래됐는지 길의 형태는 전혀 보이질 않는다. 배가 넘었다는 배너미재는 구룡산과 천지봉에 관한 전설과 연관이 있다. 배너미재와 구룡사와 관련된 전설은 신라시대에 의상대사가 원주지방을 찾아와 절터를 찾고 있다가 치악산 구룡골에 멎었다. 의상대사께서 사방을 살펴보니 동쪽으로는 주봉인 비로봉이 솟아있고 다시 천지봉의 낙맥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데다가 계곡의 경치 또한 아름다웠다. 그런데 대웅전을 짓자면 연못을 메워야하는데 그 큰 연못에는 아홉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다. 용을 내쫓으려고 한다는 말을 들은 용들이 의상대사에게 내기를 걸었다. 스님과 서로 내기를 해서 이기는 쪽으로 마음을 정하자는 것이다. 용들은 연못에서 날아 하늘로 치솟더니 뇌성벽력과 함께 우박같은 비를 쏫아 부었다. 이 바람에 근처의 산들이 삽시간에 물에 잠기고 스님 또한 물에 빠져 죽는가 했으나 대사는 태연하게 앉아있다가 비로봉과 천지봉 사이에 배를 메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한 동안 비를 퍼부은 용들은 이만하면 의상대사가 물귀신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비를 거두고 내려왔다. 그러나 뜻밖에도 스님은 배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홉마리의 용들이 다 내려오자 스님은 “너희들의 재주가 고작 그것 뿐이냐 이제 내가 조화를 부릴 것인 즉 너희들은 크게 눈을 뜨고 잘 지켜 보아라”하고 부적 한장을 그려서 연못 속에 넣었다. 얼마 안 있어 연못 속에는 더운 김이 무럭무럭 솟아오르며 큰 연못의 물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물 속에서 뜨거움을 참지못해 용들은 튀쳐나와 한 달음에 동해바다로 달아나 버렸고 용이 달아나자 의상대사는 그 자리를 메우고 구룡사 대웅전을 지었다고 한다.
- 향로봉갈림길까지 7km지점이다.
♤ 비로봉(飛蘆峰, 1,288m)/ 큰 돌탑 3개/ 정상석/ 이정표(상원사10.5km)/ 비로봉 미륵불탑 안내표지판
비로봉(毘盧峰)의 '비로(毘盧)’는 ‘비로자나(毘盧遮那)’의 준말이다. 몸의 빛, 지혜의 빛이 법계에 두루 비치어 가득하다는 뜻으로, '부처의 진신을 일컫는 말'이다. 산봉우리를 영험하게 여겨 불계에서 명명한 지명인데, 금강산의 최고봉과 오대산의 최고봉, 소백산과 팔공산의 최고봉도 비로봉이다. 그러나 유독 이 곳 치악산의 비로봉(일명 시루봉)만이 '도울 비(毘), 목로로(盧)'가 아닌, ‘날 비(飛), 갈대 로(蘆)’자의 비로봉(飛蘆峰)이라 쓰고 있다. ‘飛蘆’라는 말은 없기 때문에 ‘毘盧’의 오기로 보인다. 비로봉은 엎어놓은 시루 같다 하여 시루봉으로도 통한다. 멀찍이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봉우리의 생김생김이 투구 같기도 하다. 누구는 도깨비 얼굴에 비유한다.
- 사다리병창길/영월지맥 갈림길에서 좌 직진으로 진행/ 돌탑에서 좌측편으로 이정표를 보고 진행한다.
♤ 비로봉 미륵불탑
치악산 비로봉에 세워진 돌탑은 원주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던 용창중(일명 용진수)이라는 사람이 비로봉 정상에 3년 안에 3기의 돌탑을 쌓으라는 신의 계시가 있어 혼자서 탑을 쌓았던 것인데, 1962년 9월 처음 쌓기 시작하여 1964년 5층으로 된 돌탑을 모두 쌓았으나 1967년과 1972년에 알 수 없는 이유로 무너졌던 것을 용창중씨가 각각 그 해에 복원하였다. 1994년 이후 두 차례에 걸쳐 벼락을 맞아 무너진 것을 치악산 국립공원사무소가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재에서 치악산 정상에 올라서면 제일 먼저 중앙부에 있는 산신탑이 반겨주고 좌측편 치악산 비로봉 정상부로 이동하면 미륵불탑 중 최고탑인 용왕탑이 나오고 마지막 탑은 사다리병창방향으로 내려서면 칠성탑이 설치되어 있다. 전재 부곡리갈림길에서 올라서면 우측편 내려서는 나무계단 아래로 칠성탑이 보인다. 칠성탑이 보이고 마루금은 탑앞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미륵불탑 중 남쪽의 탑은 「용왕탑」, 중앙의 탑은 「산신탑」, 그리고 북쪽의 탑을 「칠성탑」이라고 한다. (용창중씨는 1975년 작고하였음)
♤ 사다리병창/ 산신탑
거대한 암벽군(岩壁群)이 마치 사다리꼴 모양으로 되어있고, 암벽 사이에 자라난 나무들과 독특한 풍광(風光)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하여 사다리병창길이라 한다. ‘병창’은 영서 방언으로 ‘벼랑’, ‘절벽’을 뜻한다.
- 좌틀하여 진행한다.
♤ 치악산(雉岳山, 1,288m) 유래/ 국립공원 제16호
치악산은 영서지방의 명산이면 원주의 진산이다. 치악산 비로봉은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所草面)과 횡성군 강림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며 원래 이름은 붉은 단풍이 아름다워, 붉을 적(赤)자와 산 악(岳)을 써서 적악산(赤岳山)이었다. 이후 치악산 남대봉 상원사(上院寺) 산신각에 벽화로 전해지는 '은혜 갚은 꿩'의 보은설화에서 연유되었다. 주봉인 비로봉(飛蘆峰)을 위시하여 남쪽으로 향로봉(香爐峰, 1,043m)·남대봉(南臺峰, 1,182m)과 북쪽으로 매화산(梅花山, 1,084m)·삼봉(三峰, 1,073m) 등 1,000m 이상의 산이 남북으로 10km 이상 길게 뻗어 웅장한 산맥을 형성하며 그 사이에 깊은 계곡들을 끼고 있다. 남북으로 뻗은 주능선을 경계로 하여 대체로 서쪽이 급경사를 이루며 동쪽이 완경사를 이룬다. 특히 비로봉에서 구룡사(龜龍寺)를 향하여 뻗은 북쪽의 능선과 계곡은 매우 가파른 것으로 유명하다. 한편 고둔치 동쪽인 부곡리의 신막골 일대는 비교적 넓은 평탄지대를 이루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이 산 서쪽으로 흐르는 계류들은 섬강(蟾江)으로 흐르고, 동쪽으로 흐르는 계류들은 주천천(酒泉川)으로 흘러든다. 북쪽면에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용 9마리가 살던 못을 메우고 지었다는 천년고찰 구룡사가 수량이 풍부한 계곡과 울창한 송림 속에 있다. 거북바위〔龜巖〕와 구룡소(九龍沼) 등의 경승지가 있으며 대웅전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었다. 치악산에는 한때 76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사찰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구룡사·상원사(上院寺)·석경사(石逕寺)·국향사(國享寺)·보문사(普文寺)·입석사(立石寺)가 남아 찬란했던 불교 문화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남대봉 아래의 상원사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절이며 용마바위와 계수나무 고목이 위엄을 자랑하고 있는데 이곳은 꿩의 보은설화로 더욱 유명하다. 조선 시대에는 오악신앙의 하나로 동악단을 쌓고 원주·횡성·영월·평창·정선 등 인근 5개 고을 수령들이 매년 봄·가을에 제를 올렸다. 또 많은 승려와 선비들의 수련장으로 사찰과 사적이 많다. 산세가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많은 문화유적이 있어 1973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1984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큰골·영원골·입석골·범골·사다리골·상원골·신막골·산성골 등 기암괴석과 층암절벽, 천연동굴의 아름다운 골짜기가 있으며, 비로봉·남대봉·매화산·안봉·천지봉·투구봉·토끼봉·향로봉 등의 산봉과 입석대·세존대·신선대·아들바위·구룡폭포·세렴폭포·영원폭포 등의 명소가 산재하여 있다. 또한 고려 말의 충신 원천석(元天錫)의 은거지였기에 그의 묘소, 사적을 기록한 묘갈(墓碣), 재실(齋室)이 있는 석경사, 태종이 찾아와 스승을 기다리던 태종대(太宗臺), 할미소〔老姑沼〕, 수레너미재, 대왕재 등 태종과 원천석에 얽힌 지명과 명소가 많이 널려 있다. 남대봉 서쪽 기슭에는 험준한 산세와 지리적 여건을 이용하여 축조한 세 곳의 옛 산성 터가 남아 있다. 합단(哈丹)의 침입과 임진왜란의 격전지였던 영원산성(鴒原山城), 해미산성지(海美山城址), 금두산성이 그것이며, 이것은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인 원주를 지키는 천연의 요새로서 치악산의 몫을 입증하는 사적들이다. 북원적 양길이 궁예를 맞아들여 병마를 정돈했다는 성남사가 또한 이곳에 있다. 남대봉 동남쪽인 상원골 입구 성남리의 성황림(城隍林)은 천연기념물 제93호로 지정되어 있었다. 이곳은 전나무·들참나무·층층나무·피나무·가래나무·들매나무·귀등나무·느릅나무·소나무 등 20종의 수목이 울창하였으나 보호에 소홀하여 고유 임상이 크게 손상되었다. 이곳과 구룡사 사찰림에는 파랑새·호반새·오색딱다구리·청딱다구리·꾀꼬리 등 희귀한 조류도 서식하고 있다. 등산로는 종주코스와 횡단코스 등 다양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특산물은 송이, 산채, 닥종이〔韓紙〕 등이며 매년 9월에는 예총(藝總) 원주 지부에서 주관하는 치악예술제가 열린다.
♤ 구룡사, 세렴폭포 갈림길/ 임시대피소
세렴폭포와 향로봉이 갈리는 갈림길을 지난다. 우측으로 내려서면 구룡사와 세렴폭포로 가고, 지맥은 직진 방향이다. 세렴폭포갈림길에는 현위치표시목(치악 01-11, 해발 1194m, ↑비로봉 0.3km / ↓곧은재 4.5km)과, 탐방로 안내도, 자동 강우량 경보시설이 세워져 있다.
♤ 구룡사(龜龍寺)
치악산에서 여행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구룡사다. 원주시도 원주팔경 중 구룡사를 첫번째로 꼽는다. 구룡사는 668년(신라 문무왕 8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아홉마리 용과 거북바위 전설이 있다. 오래전 대웅전을 앉힐 곳에 연못이 있었고, 그 연못에 살던 아홉마리의 용을 몰아내고 절을 지었다고 한다. 아홉 마리의 용이 살던 곳이라고 해서 ‘구룡사(九龍寺)로 불렀다. 지금은 ‘아홉 구’(九) 대신 ‘거북 구(龜)’를 쓴다. 조선시대 들어 절 사세가 나빠지자 구룡사의 기를 누르고 있다는 커다란 바위를 쪼갰는데 상황은 악화했다. 거북의 혼이 깃든 그 바위가 절을 보호해 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거북 혼을 달래기 위해 거북 구자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구룡사에 와서 거북모양 바위를 찾는데 전설에 거북 혼이 깃들었다고 했을 뿐이라고 한다.
♤ 쥐너미재(1,184m)
등로 우측으로 지맥 말고 북쪽으로 삼봉(三峰, 1,073.4m)~투구봉~토끼봉으로 이어지는 암릉능선을 하나 더 흘러보내는데 여기가 갈림길이다. 출입을 금한다는 국공파의 경고판이 붙어있다. 삼봉으로 이어지는 이곳이 지형도상으로 쥐넘이재라고 표기가 되어 있는데 실제 쥐넘이재는 좌측 등로 아래로 조금 내려가 삼봉가기 직전의 안부가 정확한 쥐넘이재이다. [치악산 경관 해설판]에 쥐넘이재 유래가 적혀있다. 이 고개는 옛날 쥐 떼가 넘어간 고개라 하여 쥐너미재라고 한다. 옛날 범골에 범사(凡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쥐가 너무 많아 스님들이 쥐 등쌀에 견디지 못하고 절을 떠났다고 한다. 스님들이 떠난 이후 하루는 그 많은 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을 지어 범사를 떠났는데 그 후로는 이 범사를 찾는 사람이 없어졌고 절은 폐사되었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원주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 황골 삼거리/ 전망대
황골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1.2km 내려서면 입석사가 있고, 그 주변에 입석대와 신선대가 자리하고 있다. 입석사에서 다시 1.6km 아래에 황골탐방지원센터가 있다.
- 비로봉에서 1.3km, 향로봉갈림길까지 4.2km이다.
♤ 입석대(立石臺, 1,130m)갈림길
치악산 서쪽 골짜기엔 입석대라는 네모진 돌기둥 모양의 큰바위가 솟아있다. 이 입석대는 태종이 운곡선생을 찾기 위해 이 골짜기를 지나다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이 묘한 바위를 신기하게 바라보느라 발길을 못돌리고 오래 머물렀다는 곳이다. 입석대 밑의 좁고 어두운 골짜기에 지금도 돌이 많고 비탈이 험한 작은 길이 있는데, 이길은 태종이 운곡을 찾기 위해 지난 곳이라 전한다.
- 우측편으로 입석사에서 올라오는 길이 있고 지맥 마루금은 좌측편으로 진행한다.
♤ 원통재(883m)
원통재는 횡성군 강림면 부곡리 원통골에서 원주시 행구동 황골로 이어지는 고개에 있으며 원통골 방향으로 희미하게 등로가 보이고 마루금은 직진으로 진행한다. 치악산은 크게 외치악과 내치악으로 나눠지는데 산세가 가파르고 험난한 원주지역을 외치악이라면 산세가 완만하고 부드러운 횡성군 강림면 지역을 내치악이라 부른다. 원통재로 내려서는 부곡리는 ‘가마솥 부(釜), 골 곡(谷)’ 을 쓰며 가마솥 형태의 지형을 이루고 있는 마을로 다리골, 원통골, 고둔치골이 있는데 치악산의 주봉인 비로봉에서 향로봉, 망경대가 감싸고 있는 부곡리는 조선 초기 태종과 그의 스승 원천석과 관련된 태종대가 있는 곳으로 강림면소재지까지 이어지는 정도의 긴 계곡이 있다. 공정대왕(恭定大王, 태종 이방원의 이칭)이 임금이 된 뒤 스승이었던 운곡 원천석에게 관직을 맡겨 새 왕조의 사직을 굳건히 하려고 하였으나, 적악산(치악산)에 숨은 스승이 벼슬길에 나서지 않자, 직접 적악산에 행차하였으나 스승은 만나주지 않았다. 이 원통재는 스승이 만나주지 않아 태종이 탄식하며 넘은 고개여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 이정표 [←비로봉 3.1km, 상원사 7.4km→]가 있다.
♤ 970.6m봉/ 삼면봉(강림면, 소초면 → 행구동)
갈림길에서 좌틀로 오른다. 여기서 잠시 진행하면 넓은 헬기장(해발946m)이 나오고 원주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지점이다.
- 4등삼각점(안흥 447/ 1985 재설)이 있다. 도엽명이 지워져 잘 보이지 않는다. 15분 정도 진행하면 고둔치다.
♤ 곧은재(860m)/ 고둔치
곧은치는 우측으로 내려서면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 관음사와 곧은재 지킴터가 있고, 좌측으로 내려서면 횡성군 강림면 부곡리 부곡공원으로 가는 잘록이 안부이다. 부곡리쪽은 완만한 등로이지만 행구동쪽은 상당히 급경사이다. 지명의 유래는 옛날 강림면 부곡리 사람들이 치악산을 넘어 원주로 장보러 다닐때 무거운 짐을 지고 험한 길을 돌아가지 않고 편한 길을 다녔는데 그 중 가장 편하고 빠른 길이 이곳이라 곧은재란 지명을 붙인 모양이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강림면 부곡리에 태종대가 있다. 흔히 태종대하면 부산 태종대를 떠올리지만 이곳 부곡리에도 역사가 깃든 태종대가 있다. 태종대(太宗臺)는 조선 태종과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과 관계되는 유적으로, 문화재자료 제16호로 지정되었다.
한번 더 소개하자면, 운곡 원천석은 고려 때 좌명공신(佐命功臣)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역임한 원경(元鏡)의 19대 손이며 충숙왕 17년에 종부사령(宗簿司令)을 지낸 윤적(允迪)의 둘째 아들로 원주 원씨의 중시조이다. 고려의 멸망과 조선조 태조의 왕가 형제간의 살육을 통탄하며 분노를 느낀 나머지 관직을 거부하고 개성(開城)을 떠나 이곳 강림리에 은거하였고 고려왕정(高麗王政) 복고를 위하여 반기를 든 두문동(杜門洞) 72인의 한 사람이며 이양소(李陽昭)․남을진(南乙珍)․서견(徐甄)과 더불어 고려 사처사(四處士)중 한사람으로 유명하다. 원주시 행구동 석경촌(石逕村)에 그의 묘소가 있고 칠봉서원(七峰書院)에 배향되었다. 이방원이 조선조 3대 태종으로 등극하여 왕위에 오르기 전에 스승으로 섬겼던 운곡 원천석을 찾아 다시 관직에 앉히고 정사(政事)를 의논하고자 이곳을 찾았으나, 원천석은 태종이 이곳에 오는 것을 미리 알고 태종과의 만남을 꺼려 피신하여 치악산으로 들어가면서 개울에서 빨래하는 노파에게 자신의 행선지를 거짓으로 알리고 골짜기로 들어갔고, 태종이 이곳에 도착하여 빨래하는 노파에게 운곡이 간 곳을 물었으나 노파는 원천석이 일러 준대로 거짓으로 가르쳐 주었다. 태종은 그곳으로 가서 스승을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이 바위에서 기다리다 스승이 자신을 만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 후 태종이 운곡을 기다리며 머물렀다 하여 뒤에 이곳을 ‘태종대’라 하였으며 ‘주필대(駐蹕臺)’라는 비석을 세워 누각안에 보호하고 있다. 태종대 아래의 기암절벽에는 다음과 같이 각자(刻字)되어 있다.
先生事蹟略記弁岩太宗臺太宗王訪耘谷元先生自覺林避入弁岩上駐
輦于此官其子賞其婢而返篤後人因以名之崇禎後八十年癸卯夏刻
- 이정표(↓상원사 5.7km, ↑비로봉 4.8km, ←곧은재공원지킴터 2.2km, 부곡공원지킴터 상원사 4.1km→)가 있다.
향로봉갈림길 5분여 직전에 이정표(←비로봉 5.4km, 상원사 5.1km→)가 서있습니다.
♤ 향로봉갈림길/ 삼면봉(강림면, 행구동 → 판부면)/ 전망데크, 향로봉안전센터
비로봉과 향로봉으로 갈리는 갈림봉으로, 중간기착지로 보문사쪽으로 많이 내려서 끊어간다. 향로봉에서 우측이 원주시 판부면(板富面)으로 바뀌어 동남향으로 남대봉까지 이어진다. 지맥길은 향로봉을 향해 우측 방향 등로를 따른다.
- 이정표(←비로봉5.7㎞, 상원사 4.8㎞→, ↓보문사 1.0㎞, 현위치표시: 치악 1-21, 해발 1022m, ↑향로봉 0.2㎞, ↓곧은재 0.9km)가 서있다.
♤ 국형사(國亨寺)/ 국향사(國享寺)
치악산 둘레길 마지막을 장식하는 11코스의 종점에 있다. 한가터길로도 불리는 11코스는 크고 작은 고개와 능선이 이어지고, 한가터 인근 잣나무 숲길이 유명하다. 국형사는 송림속 사찰이다. 그만큼 소나무가 많다. 개인사찰이다가 조계종 소속이 됐는데, 도벌꾼이 판칠 때 이곳을 소유한 주지가 도끼들고 도벌을 막아 소나무들을 지켜낸 때문이라고 한다. 신라 경순왕 때 창건해 초기엔 고문암(古文庵)이라 불렸다. 인근 노인들은 여전히 고문사, 고문절이라고 한다. 국형사(國亨寺)는 국향사(國享寺)로도 혼용되는데 나라의 만사형통을 기원하는 절이었으니 국형사가 맞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 향로봉(香爐峰, 1,042.9m)/ 국립공원 안전센터
향로봉은 강원도 원주시와 횡성군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치악산의 한 봉우리를 이루며,치악산 주봉(主峰)인 비로봉(飛蘆峰, 1,288m)에서 남쪽으로 5㎞ 지점에 솟아 있다. 비로봉·삼봉(三峰, 1,072m)·남대봉(南臺峰, 1,182m)·천지봉 등 1,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이루어내는 치악산의 14㎞에 이르는 긴 능선 절반쯤 되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정상에 서면 북으로 비로봉, 남으로 치악평전과 금대리, 그 너머 백운산(白雲山, 1,087m) 줄기 등이 잘 보인다. 남쪽 능선에 있는 치악평전은 정상 바로 아래에 자리한 조금 넓은 평탄한 분지형 골짜기로서, 억새가 그득히 자라고 있으며, 햇빛을 받으면 금빛 찬란하게 빛나는 장관으로 널리 알려져 금두고원(金頭高原) 또는 치악평전이라고도 한다.
- 비로봉은 6km 거리이며 남대봉까지는 3.9km이다. 삼각점은 약 50m 진행한 지점에 작은 돌탑과 같이 있다.
♤ 삼각점봉(1,041m)/ 돌탑봉
정상석이 있는 향로봉에서 잠시 내려섰다가 약간 오르면 돌탑이 있는 또 다른 봉우리를 지난다. 삼각점 안내문판에는 이 봉의 높이를 약 1,041m로 표기하고 있는데, 이 곳에 삼각점이 박혀 있는 것으로 봐서 정상석이 있어야할 자리가 아닌가 싶다.
- 4등삼각점(안흥 456/ 1989재설)이 있다.
♤ 영원사갈림길
우측으로 금대리에서 올라서는 영원사 갈림길 이정표[↓향로봉 2.6km, ↑남대봉 1.3km, 영원산성길→/ 영원사 1.9km→]를 지나고 바윗길을 지나 잘 정비된 계단을 올라서면 조망테크가 나온다. 전망대에서 약 15분 진행하면 남대봉이다.
♤ 남대봉(南臺峰, 1,181m)/ 삼면봉(횡성군 강림면, 원주시 판부면 → 신림면)/ 백운지맥분기점/ 상원사 0.7km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과 판부면, 횡성군 강림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지맥길은 백운지맥분기점인 남대봉에서 우측이 다시 원주시 신림면(神林面)으로 바뀌어 동향하게 된다. 남대봉은 치악산의 주봉인 비로봉(1,288m)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남대봉 아래에는 유서깊은 고찰 상원사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곳부터는 치악산국립공원 지역이라 이정표와 등로가 잘 되어 있다 남대봉 또는 남태봉이라고도 부르는데 표시목에는 한글로는 남대봉으로 표기 해놓고 한문으로는 남태봉(南台峰)이라고 해놨다. 이곳에서 가까운 1,187m봉을 남대봉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1,187m봉은 시명봉이고 이곳을 남대봉이라 부르는데 또다른 이름은 만경대, 망경대로도 부른다. 치악산의 남대봉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시명봉이 치악산의 2봉으로 남대봉이라 불려야 하는데 아직까지 바꿔어지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정상에는 남대봉 통제센터와 정상석이 설치되어 있고 바로 옆으로는 헬기장이 있다. 약간 떨어진 곳에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어 삼각점은 지나칠 수 있다. 실질적인 남대봉 봉우리에 올라서면, [백운지맥 분기점 / ▲ 남대봉 1180.0m / 백두사랑산악회] 팻말이 나무에 달려있고, 앞쪽으로 남대봉 공원지킴터 건물이 보인다. 남대봉 헬기장에서의 지맥길 들머리는 '공원지킴터'와 '탐방로 안내도' 사이로 들어서야 한다. 즉 공원지킴터 우측으로 헬기장에 내려서서 바로 좌틀하여 '탐방로 안내도' 사이 등로로 들어서야 한다. 헬기장에서 남쪽으로 시명봉(1,187m)이 커다랗게 보인다.
- 2등삼각점(안흥 27/ 1989. 7. 재설)이 있고, 넓다란 헬기장에 공원지킴터 건물이 있다. 공원안전센터 우측이 맥길이다. 가까운 거리 상원사에서 물 보충이 가능하다.
♤ 백운지맥(白雲枝脈)이란
한강기맥에서 분기된 영월지맥의 치악산 남대봉(1,180m)에서 남서쪽으로 다시 분기하여, 섬강의 남쪽 분수령을 이루면서 시명봉(1,196m), 가리파재/치악재, 봉화지맥분기봉(850.5m), 백운산(1,086m), 오두재, 천등지맥분기봉(967.5m), 서낭고개, 미륵산(695m), 봉림산(577.5m), 서지재, 비두냄이고개, 긴경산(351m)을 지나 섬강과 남한강 합수점인 원주시 부론면 흥호리 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8.6km 되는 산줄기로 섬강 남쪽과 제천천 서쪽 분수령을 이룬다. 백운지맥 분기점인 치악산 남대봉(x1180m)은 원주시와 횡성군의 경계에 위치해 있고, 지맥은 원주시 판부면과 신림면을 가르면서 출발한다. 중앙고속도로, 가리파재를 넘어 올라선 △937.6봉에서 충북과 도계를 접하다가 백운산을 넘으면서 원주시 귀래면으로 들어간다. 미륵산을 지나고 부론면계를 접하다가 영동고속도로를 잠깐 건넜다가 다시 넘어와 섬강의 하구로 내려가는데 남한강과의 합수점은 원주시 부론면 흥호리 동매마을이다.
♤ 백운지맥 개념도
♤ 상원사(上院寺)
보은의 종으로 유명한 상원사는 치악산 남대봉(南臺峰. 해발 1,181m) 바로 밑 해발 1,084m지점인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성남2리 1060번지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월정사 말사로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義相大師)가 창건한 이 절은 치악산 전설의 주인공인 무착대사(無着大師)에 의해 신라말에 중창되었다. 일설에는 경순왕의 왕사(王師)였던 무착대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오대산 상원사에서 수도하던 중, 문수보살(文殊菩薩)께 기도하여 관법(觀法)으로 이 절을 지었다고 한다. 그 뒤 고려말에는 나옹(懶翁)스님이 중창하였고, 이후 월봉(月峯)ㆍ위학(偉學)ㆍ정암(靜巖)ㆍ해봉(海峯)ㆍ삼공(三空)ㆍ축념(竺念) 등 많은 선사들이 이곳에서 수도했다고 한다. 또 조선조 역대 왕들은 이 절을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한 기도처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나 6.25 때 전소되어 폐허화되었던 것을, 1968년 주지 송문영(宋文永)스님과 의성보살이 중건하였으며, 1988년 경덕(敬悳)스님이 대웅전을 다시 짓고 범종각과 일주문을 신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치악산(雉岳山)의 유래가 된 은혜 갚은 꿩의 이야기는 이 절에서 생겨난 전설이다. 옛날 시골에 사는 한 젊은이가 과거를 보려고 집을 나서서 서울을 향하여 가다가, 강원도 적악산(赤岳山)을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산중에서 꿩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바라보니 꿩 두 마리가 뱀에 감겨 먹히려는 찰나였다. 젊은이는 활로 구렁이를 쏘아 죽이고 꿩을 구해 주었다. 젊은이는 계속해서 길을 가다가 산속에서 날이 저물어 잘 곳을 찾아 헤매다가 한 인가를 발견하고, 그 집에 가서 자고 가기를 청하였다. 그 집에서 한 여인이 나와서 잘 곳을 안내해 주었다. 젊은이가 피곤하여 깊이 잠들었다가 숨이 막히고 답답해서 깨어 보니 큰 구렁이가 자기 몸을 칭칭 감고 입을 벌려 삼키려고 하였다. 구렁이는 젊은이에게 “나는 낮에 네가 죽인 구렁이의 아내인데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해 너를 잡아먹어야겠다. 만약 살고 싶으면 종소리 세 번만 울려 다오. 그러면 풀어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구렁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어디선가 ‘뎅! 뎅! 뎅!’ 하고 종소리가 세 번 울렸다. 종소리를 들은 구렁이는 반가운 빛을 띠고 감고 있던 젊은이의 몸을 풀어주고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용이 되어 승천하였다. 날이 밝아오자 젊은이는 종소리가 난 곳을 찾아가 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종루가 있었는데, 종 아래에는 전날 새끼들을 살리기 위해 울부짖던 꿩 두 마리가 머리가 깨져 죽어 있었다. 젊은이는 꿩이 은혜를 갚으려고 종을 울리고 죽은 것을 알았다. 그래서 과거 길을 포기하고 그곳에 절을 세워 꿩들의 명복을 빌며 일생을 마쳤다. 그 후로 꿩이 죽음으로 보은하였다고 해서 옛날 적악산을, 꿩 치(雉) 자에 큰산 악(岳)자를 써서 치악산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고, 젊은이 무착조사(無着祖師)가 세운 절이 지금의 치악산 상원사이다. 신라말이면 서울에 과거 보러 경주로 내렸간 것으로 이해된다.
♤ 대치(大峙, 848.6m)
폐헬기장을 지나자마자 만나는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상원골에서 횡성군 강림면 부곡리 넘어가는 고개로 우측으로 제법 선명한 등산로가 있다. 대치를 지나고부터는 다시 잔펀치를 오르내리며 고도를 높여, 약 30분 올라서면 삼각점봉(963.6m봉)에 도착한다.
♤ 963.6m봉(개념도 상 964.7m봉)/ 삼각점봉
등로길 중앙부에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는 철쭉나무 군락지이다. 다시 안부를 지나 962m봉으로 올라선다. 우측편은 신림면 성남리 높은다리와 섬바우마을로 내려가는 뚜렷한 등로가 보이지만 영월지맥 마루금은 좌측으로 방향전환하여 철쭉 능선으로 계속 이어간다.
- 3등삼각점(303 복구/ 77. 7. 건설부)이 있다.
우편 성남리 골짜기 아래로 섬바위를 찾아보려 했지만 눈에 띄이지 않더군요.
♤ 860.2m봉/ 선바위봉
선바위는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전불 북서쪽 골짜기에 있는 바위를 말하며 곡식 낟가리인 섬을 쌓아놓은 것 같다 하여 섬바우라 한다. 국지원 지도상 이 봉우리 남동쪽 아래에 선바위 표시가 되어 있지만 잡목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약 50분 정도 진행하면 삼군봉이다.
♤ 996.6m봉(개념도 상 1000.6m)/ 삼군봉(원주시 신림면, 횡성군 강림면 → 영월군 무릉도원면)
지맥의 좌측이 횡성군 강림면(講林面)에서 영월군 무릉도원면(옛 水周面)으로 바뀌고, 우측은 계속 원주시 신림면(神林面)이다. 동향하던 지맥은 삼군봉에서 좌측이 영월군 무릉도원면으로 바뀌면서 맥길도 남향으로 바뀌어 원주시 신림면과 영월군 무릉도원면 시군 경계를 따라 이어진다. 우거진 숲으로 인해 조망은 없다.
- 삼군봉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남향하면서 길재까지 고도를 낮추어 나가야 한다. 정상에는 선바위봉이라는 표지기가 나무가지에 걸려있고 정상석은 없다.
♤ 길재
우측 등로는 신림면 성남리 전불(典佛)마을 성남공원지킴터와 높은다리로 내려가는 길이고, 좌측은 영월군 무릉도원면 두산리 상터마을로 이어지는 길이다. 우측 성남리 높은다리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뚜렸하나 좌측은 희미하다. 향로봉 갈림길에서는 10.8km 지점이다.
♤ 응봉산(鷹峰山)갈림봉(1062.9m)
영월군의 극서점 무릉도원면 두산리 922m봉을 지난다. 삼군봉에서 약 1시간 20분 소요된다. 응봉산갈림봉에서 좌측으로 1.1km 정도의 거리에 응봉산(鷹峰山, 1093.2m)이 있다. 지맥길은 응봉산 갈림봉(1062.9m봉)에서 온전히 원주시 신림면 안으로 들어서서 싸리치 이후 천삼산갈림봉까지 이어지게 된다.
- 응봉산갈림길봉 이후로 거의 500고지를 줄기차게 내려서는데 특징 없는 육산 등로여서 다소 지루할 수도 있다. 우측으로 인가와 마을이 보인다.
좌측 바로 아래 인가에서 물을 구했습니다. 유공자의집입니다. 월남전 맹호부대 1기갑연대 소대 중대까지 말씀하시던데 까먹었어요. 69년도에 참전하셨데요. 장뇌삼을 담근건지 담금술이 가득하네요. 화천 오음리, 다낭, 비둘기부대, 채명신, 이수호, 꽁까이 얘기 하니까... 우째 그리 잘 알아요.. ㅋㅋ~
♤ 싸리치(595m)/ 사각정자, 쉼터/ 싸리치 시비
원주시 신림면 성남골에서 황둔리를 넘어가는, 영월에서 원주로 통하는 유일한 길로 정상은 예전에 차량이 다니던 고개였으나 지금은 이 고개 아래로 88번 국도가 지나가는 신림터널이 뚫리면서 차량통행이 거의없는 잊혀진 고개가 되어 버렸다. 정상에는 싸리치 詩碑와 사각정자, 그리고 휴게용 벤치가 보이며 좌측 황둔리쪽으론 민가와 농장이 보인다 싸리나무가 많다 하여 싸리재, 싸리치재, 싸리고개라고 하며 조선조에 단종 임금이 영월로 유배를 갈 때 울면서 넘었던 고개이고 영월출신인 방랑시인 김삿갓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한양 갈 때 넘었던 한많은 고개이다. 좌측 황둔리 석기동으로 가는 임도이고, 우측 꼬불꼬불 비포장 도로는 신림면 신림리 삼거리로 이어지는 도로다. 좌측 황둔리 방향으로 비포장 도로를 1km 남짓 지나면 곧 88번 도로로 연결되어 진출입이 편하다.
- 싸리치 시비가 세워져 있고, 시비 맞은편 'SK 이동통신 성남기지국'으로 들어서는 양회임도가 지맥 들입구이다. 싸리치에서 조금 오르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 단종대왕 유배길
영월군은 2012년 단종이 영월로 들어오던 솔치고개부터 청령포까지 43㎞ 구간에 ‘단종대왕 유배길’을 조성했다. 단종대왕 유배길은 궁을 떠나는 임금의 비통한 심정을 그린 제1구간 통곡의 길을 비롯해 단종을 향한 충신들의 충정을 그린 제2구간 충절의 길, 정순왕후를 그리는 단종의 마음을 닮은 제3구간 인륜의 길로 구성돼 있다. 창덕궁 대조전에서 유배 교서를 받고 돈화문을 출발해 남한강 뱃길을 따라 닷새 만에 영월 들머리에 도착한 단종은 청령포까지 100리 길을 또다시 걸어야만 했다. 군등치 고갯마루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아름답지만, 유배길에 올랐던 단종의 슬픔과 한을 이해하면 애잔한 마음이 든다. 실제로 15세 어린 단종이 비참한 기분으로 먼 길 힘들고 지친 몸을 이끌고 고개를 고생스럽게 넘었으리니 무거운 마음이 든다.
♤ 천삼산 갈림봉(816.3m봉)/ 도계(원주시 신림면 - 제천시 봉양읍)
잡목과 여러 갈래가 섞인 아름드리 소나무가 어우러져 있는 봉우리이다.
- 지맥길은 천삼산갈림봉에서 우틀하여 내려선다.
♤ 천삼산(天蔘山, 819m)
천삼산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과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경계에 있는 산이다. 감악산과 능선으로 이어져 있으며 예로부터 약초가 많이 자라고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는 천수암 약수가 있어 영험한 산으로 알려졌다. 산자락에 세 곳의 사찰이 있고, 산 아래 신림면 용암리에는 '가나안 농군학교'가 있다. 천수암 약수터에서 조금 떨어진 곳, 용암3리 선터골 상단부에는 늦가을철 비가 내리면 물이 흐르는 철철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 위로 산삼씨앗이 흘러 내려와서 하늘에서 산삼 씨앗을 준다는 전설에 따라 산 이름을 천삼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감악1봉(871m)에서 좌측으로 흘러내리는 능선으로 재사골 아래 원주시 신림면 황둔리 재사동이 위치하고 있고, 그 너머 환상적인 산너울이 펼쳐지고 있다. 우측 암릉봉이 감악산 일출봉(선녀바위)이고, 좌측 네모 모양의 암봉이 감악산 월출봉(동자바위)이다. 그 좌측으로 감악3봉(942m), 감악2봉(918m), 그리고 약간 아래로 감악1봉(871m)이 연이어 펼쳐져 보인다. 우측 멀리 차례로 일출봉에서 좌측으로 월출봉(동자바위), 감악산 3봉, 감악산 2봉 전경이다.
원주에서 신림고개 치악산휴게소를 넘어 제천으로 가는 베론성지 맞은편에 가나안농군학교가 있는데 그 뒷산을 말하는거군요.
♤ 825m봉
와룡농산 / 가나안농군학교→ 이정표시가 붙어있다.
♤ 감악고개(紺岳峴, 876m)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황둔리 장촌마을에서 충북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로 이어지는 고개로 가막재, 감악현으로도 불리며 넓은 공터에 이정표가 있고 백련사로 이어지는 명암리 방향은 차량이 다닐만큼 넓은 임도가 이어지고 좌측 장촌방향으로는 일반 등산객들이 감악산 오를때 거의 이쪽으로 다니는지 시그널이 주렁주렁 바람에 휘날린다. 싸리치에서 3.5km 거리다. 어떤 산행기에는 이 곳을 감악고개로 표기하기도 하는데, GPS 지도상에는 약간 더 진행하면 나오는 산성흔적 능선을 감악고개로 표시하고 있다. 여튼 이 갈림길에서 직진 우측으로 나가면 백련사로 내려서게 되고, 직진 좌측 이정표가 있는 곳으로 오르는 등로가 지맥 길이다. 좌우로도 등로가 열려 있는데, 좌측은 원주 신림면 황둔리 창촌마을로 이어지며, 우측은 충북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로 이어진다. 감악산 정상 방향은 직진으로 올라서야 한다.
♤ 감악산성터
충북 제천시는 성산성, 작성산성, 대덕산성, 소악산성, 황석리산성, 감악산성, 제비랑산성 등 모두 7개의 산성지가 있다. 제천 주변의 산성은 모두 9개에 이르고 있으나 이 가운데 덕주산성과 망월산성 등 2개만이 지표조사를 통해 지방기념물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나 나머지 7개는 성터만 확인됐을 뿐 구체적인 조사없이 방치되면서 갈수록 원형이 훼손되고 있어 복원사업이 시급하다. 감악산성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능선길을 이어가면 산성길을 넘어서서 잘록이 안부를 지나는데 우측으로 백련사로 이어지는 등로다.
행정구역상 원주쪽 정상은 여기서 다녀와야 한답니다. 정상석엔 930M로 되어 있네요.
정상갈림능선에서 동편을 바라보니 가야할 석기암봉이 바라보입니다.
♤ 감악산정상 갈림능선
천삼산 갈림봉에서 원주 신림면은 제천시 봉양읍과 만나 시계를 따라 감악산을 지난다. 우측 로프를 타고 암릉을 올라 감악산 정상을 다녀온다.
♤ 감악산(紺岳山, 956.4m)/ 시계(원주시 신림면 - 제천시 봉양읍)
감악산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과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제천)에 "감암산(紺巖山)이 현의 북쪽 40리에 있다. 감암사가 감암산에 있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에 "치악산(雉岳山)의 동남쪽 가지이다. 관아의 북쪽 40리에 있다. 동쪽으로 뻗어 가서 용두산(龍頭山)이 된다."는 기록이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제천현 북면의 북쪽에 '감악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제천군 봉양면과 원주군 신림면에 걸쳐 있는 '감악봉'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를 볼 때 본래 '감암산', '감암'으로 표기되다가 후에 '감악봉'으로 표기된 것으로 보인다. 감악산 정상인 일출봉의 북쪽 바위봉인 월출봉에서 다시 북쪽으로 갈라지는 암릉상에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를 가리킨다. 주능선을 타고 남쪽으로 가면 황둔리가 내려다 보이는 바위지대와 탑바위가 나타난다. 북쪽의 치악산에서 이어져 내려오며, 남쪽으로 석기암산과 연결된다. 감악산 줄기에는 고개인 감악현(가막재)이 있다. 감암산성터도 남아 있다.
♤ 백련사(白蓮寺)갈림길
백련사는 충북 제천시 봉양면 명암리 감악산(紺岳山)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다. 662년(문무왕 2)에 의상(義湘)이 백련지(白蓮池) 동쪽에 소암자로 창건하고 백련암(白蓮庵)이라 하였다. 1798년(정조 22)에는 처봉(處峰)이 중수한 뒤 절 뒷산의 이름을 따서 감악사(紺岳寺)라 개칭하였고, 1916년 주지 윤인선(尹仁善)이 산성 안인 현 위치로 옮겨 중창하고 백련사라 개칭하였다. 절 남쪽의 백련지에는 예로부터 백련이 자생하였다고 하며, 절 뒷쪽 석굴에는 금수탕(金水蕩)이라는 약수가 있고, 삼성각 밑에는 특히 효험이 많아 구세정(救世井)이라고 불리는 은수탕(銀水蕩)이 있는데, 이와 같은 약수의 명칭은 물탕 속에 늘 금분과 은분이 깔려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큰 가뭄이 있을 때면 은수탕에서 기우제를 지낸다고 하며, 영험이 있다고 하여 많은 병자들이 절에 머물면서 기도하며 약수를 마신다고 한다.
♤ 감악봉(紺岳峰, 883.6m)
충북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황둔리의 경계에 잇는 봉우리로 우측으로는 명암리 요부골로 이어지는 등로가 있다. 봉양읍 명암리는 산이 많고 계곡이 깊어 청정한 지역으로 치악산 줄기인 석기암(905.7m)과 감악봉(883.6m)이 있으며, 감악산 꼭대기에는 바위로 된 두 개의 영봉이 있는데 일출봉, 월출봉이라 부른다. 일(日) 자와 월(月) 자를 합쳐 명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횡치(橫峙)리와 직치(稷峙)리를 병합하여 명암리가 되었고, 자연마을로는 피재, 헌텃골 등이 있으며 특산물로는 사과와 표고버섯이 있다.
- 전망데크 계단으로 내려서기 직전에 883.6m봉이다.
♤ 재사골재698m)/ 석기재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황둔리 제사골에서 충북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 요부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석기암 아래에 있다고해서 석기재라고도 부른다. 전망데크에서 꾸준히 내려선다. 북동쪽으로 재사골을 따라 내려서면 황둔리 재사동이고, 남서쪽으로 내려서면 요부골을 지나 명암리로 내려서게 된다.
- 이정표(↑석기암 2.5km, 요부골 2.1km→, ↓감악산 1.3km, ←재사동)가 있다. 싸리치에서 6.0km 지점이다.
♤ 문바위 갈림길 이정표
문바위는 요부골을 내려가 명암리 마을 쯤인가 본데 다녀오기엔 거리가 너무 멀다. 바로 옆에 헬기장이 있다.
- 이정표 (←감악산 2.2km, ↓문바위 2.8km, 용두산→ / 석기암 1.6km→)가 있다.
♤ 석기암봉(石機巖峰, 906m)/ 삼면봉(제천시 봉양읍, 원주시 신림면 → 제천시 송학면)
충북 제천시 송학면 오미리와 봉양읍 명암리 그리고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황둔리의 경계에 있는 암봉으로 감악산의 동쪽에 솟아있는 산이다. 명칭이 특이하게 ‘봉(峰)이 아닌 암(巖)으로 되어 있으며 정상은 그저 평범해 보이나 아랫쪽 뾰족한 암릉으로 상당히 산의 지세가 험하다. 정상에는 이정표와 제천시에서 설치한 오석(烏石)의 표시석에는 고도가 906m 라고 되어 있다. 석기암봉 정상은 전형적인 육산으로 약 두어 평의 공터를 이루고 있다. 신림면과 봉양읍 경계를 따르던 지맥은 석기암에서 방향을 동남쪽으로 틀며 좌측이 원주시 신림면에서 제천시 송학면으로 바뀌어 피재점까지 이어진다. 감악산에서 진행하다 902.4m봉에서 석기암 정상을 오르지 않고 용두산으로 향하는 우회길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 석기암봉과 감악산의 높이가 거의 비슷해서 두 산을 이어주는 길의 경사가 크지 않아 걷기에 좋다. 석기암봉의 유래는 이 봉 아래에 있는 황둔리 물안골 서북쪽에 있는 석기동 마을에서 유래된 듯 하며 석씨 성을 가진 선비가 은둔하고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주론산과 구학산이 조망된다. 북서로는 재사골재 위로 감악산이 하늘금을 이룬다. 정상에서 북동쪽 능선으로 5분 가면 정상 비석이 있는 가짜 정상인 903m봉에 닿는다. 2등삼각점(제천23)이 있는 903m봉에서는 실제 정상보다 조망이 훨씬 시원하게 터진다.
- 정상석에 (석기암/ 해발 906m/ 충청북도 제천시, ←감악산 2.9km, 피재 2.8km→) 표기되어 있다.
석기암봉에서 내려서며 좌측으로 백덕산과 가리왕산, 우측으로 월악산에서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조망됩니다.
♤ 피재갈림길(784m)/ 삼면봉(제천시 송학면, 봉양읍 → 모산동)
피재 갈림길에 피지점이란 이정표가 서있고 이곳에서 피재까지는 1.3km의 거리다. 정상에는 멋진 금강송 세 그루가 도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피재는 “직티”라는 지명으로 불리며 제천시 모산동에서 봉양읍으로 넘어가는 9번 도로상에 있다. 지맥길은 피재점에서 우측이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에서 모산동으로 바뀌어 동향한다.
- 이정표(←용두산 4.1km, ↑피재 1.3km, 감악산 5.6km→)가 서 있다. 피재 갈림길에 올랐다가 좌측 용두산 방향으로 내려선다.
♤ 제천시
조선조 영조 때 택리지(擇里志)를 저술한 이 종환은 제천땅에 대한 기록을 저술하기를 “만첩 산중에 있는 깊은 산골이므로 참으로 난리를 피하고 속세를 피할 만하다”라고 하였는데, 『동사강목』을 지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안정복이 제천에서 태어났고, 생육신의 한 사람인 원호가 기거했던 곳이기도 한 곳이며 직제학을 지냈던 원호는 단종이 강원도 영월에서 연금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서 벼슬을 내놓고 제천시 송학면 장곡리 번자리에 살면서 관란정(觀瀾亭)이라는 정자를 지었다. 원호는 날마다 이 정자에 올라 단종이 있는 곳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짓고 탄식하다가 날이 저물면 비로소 돌아가고는 하였으며, 철 따라 나는 과물(果物)을 나무 상자에 넣어 정자 밑을 흐르는 시냇물에 띄워서 단종에게 보냈다고 한다.
피재골까지 시내에서 애매한 거리인지 콜택시도 들오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히치를 시도하며 피재3,2,1교, MTB파크를 지나고, 저수지를 지나고 용두산입구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세명대 사거리까지 길게 걸어나갔습니다. 세명대사거리에서 택시를 불러 터미널로 이동~
첫댓글 퐁라라님 영월지맥 2구간 수고하셨습니다~
요즘은 날씨도 산행하시기 딱좋은 시기입니다~
그래도 산행시에는 낙엽속에 복병이 도사리고 있으니
한겨울철보다 더 조심할때가 안인가 생각합니다~
힘들게 산행하신 산행기에 옛추억 되색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나 안.줄산을 응원드립니다~()()()
넵! 법광선배님!
내리막길에 오소리굴이 낙엽에 덮여있어...
무릎이 꺽이기도 했는데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습니다.
오름길이 낙엽에 덮여 있어도 미끄럽지만, 내림길이 낙엽에 덮여있으면 더 위험해 보였습니다.
이번에도 막바지에 서두르는 와중에서도 조심하자 조심하자 주문을 외우며 진행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보통 4구간으로 진행하는 거리를 2박 3일간 비박으로 한번에 진행을 하셨네요 퐁라라님,
곧은치까지 홀로 진행하며 산행 후 많은 지멱 주민들의 도움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진행을 하고 곧은치부터는 강원도의 산친구 3명이 합류해 차량 2대를 가지고 편안하게 진행을 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홀로 매화산 오름길이 힘들었고 급경사 내리막 등로도 위험하게 내려갔던 기억이며 비로봉 정상의 돌탑이 무너져 보수 공사중이었는데 이제는 완성이 된 모습이네요
곧은치에서 당당하게 내려가다 경방기간이라며 주의를 받고 전화번호를 적어 놓은 후 이후부터는 산친구들과 즐기며 쉬엄쉬엄 다녔던 기억이 엊그제인데 벌써 몇년이 흘렀네요
당일 산행을 위해 챙겨야 할 준비물들도 만만치 않은데 2박3일간 산행을 위해 준비를 하다보면 산행 자체보다 준비하는데 더 힘이 들고 어려울 듯 보입니다.
그래도 무탈하게 피재점까지 와 긴 접속구간으로 마지막 고생도 하신 듯 하지만 귀가하면서 마신 이슬이 한병에 삼겹이가 그 고통을 모두 잊게 만들었을 것 같네요
고생 많이 하셨고 무탈하게 또 한 구간 마무리함에 축하도 동시에 드림니다.
칠갑산선배님!
메화산 오름이 약간 길게 느껴지더군요. 하지만 초반이라 힘이 있었습니다.^^
목장 철책을 따라 계속 오르다가 철책 이후 편해져 헬기장에 오르니 다왔구나 싶었습니다.
치악산은 두 군데(고둔치까지 그리고 향로봉부터)가 경방기간이었습니다만...
야간이라 사람 자체가 없었습니다.^^
남대봉에서 비박하는데, 새벽 네시가 되니 상원사 종이 뎅~뎅~ 마흔번이 넘게 울리는거 같더군요.
이제 53km쯤 남아서 한 구간에 종착지에 다달을 수 있을것 같습니다.
청량리에서 6시 차로 7시에 제천역에 도착하여, 택시로 피재골까지 가는데 8,000원 정도 나온답니다.
첫날, 좀 늦게까지 30km 가면 가창산과 삼태산 중간정도에서 비박할 수 있을듯 하고요,
둘쨋날엔 종착지에서, 구인사에서 영월로 나오는 막차 18:50 이내에는 충분히 맞출 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거리가 짧으니 겨울용 텐트와 겨울용 침낭으로 준비해볼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금오지맥도 폭설만 내리지 않는다면 두구간으로 가능할거 같구요., 보현과 팔공은 아직 구간을 끊지 않았습니다.
장거리를 홀로 비박하며 필수품도 잃어버린 상태로 ㅠ
대단하신데
라라님 답사과정에 저희 부자를 대입해보니
不可能이 아니라
시도 자체를 하지 않기로 정리가 ㅎㅎ
어제 산악팀에 끼여 동반 산행을 했는데
앞사람만 쫓아 열심히 걷기만 하는거라...
체력증진이나 또는 한구간 해치웠다는 의미가 있을진 모르지만 그게 과연 그만한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풍광(멋있는 풍경이 아닐지라도)속을 소요하며
사색에 잠기거나 무언가 의미있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만납니다.
산행이 체력검정고시도 아니고
해당 구간을 끝내는 것은 산을 즐기는 가운데 나오는 당연한 결과물이지, 단지 결과만을 얻기 위해 앞사람만 보고 쫓는 산행에 의미가 있을까 싶더군요.
올리신 분의 노력과는 달리 제대로 기억에 담지는 못해 미안한 느낌도 듭니다.
남대봉을 보니 삼부자 산행이 먼저 떠오르니...ㅎ
초등5학년이던 겨우니의 앳된 얼굴이 생소하네요.
이슬하선배님!
군시절 원주에서 파견생활을 3년(89~91) 가까이 한거 같습니다.
남대봉은 원주 금대리 영원사에서 상원사로 오르는게 일반적 등산로이고,
남대봉에서 영월지맥은 비법정탐방로라 맥꾼 아니면 가지 않는 길입니다.
신림에 유격장(장군휴양소)이 있거든요.
신림에서 황둔, 주천으로 영월로 넘어간다는건 알았지만 치악산의 뒤편이 횡성군 강림면이라는 사실, 그리고 거기에 태종 이방원의 발길이 닿았다는 사실은 첨 알았습니다.^^
아쉬운게 있다면 날이 흐려서 야경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밤이라 섬강을 경계짓는 백운지맥 그리고 봉화지맥도 살필 수 없었습니다.
남대봉으로 가며 백운산도 살피고, 멀리 명봉산도 보인다는데 바로 앞의 시명산만 간신히 알아보았습니다. 워낙에 산이 크더군요.
제가 상원사에 올라갔을 땐 양철 지붕의 요사채 하나만 있구 하얀 터만 있는 백지 상태였습니다.
그땐 비로봉에서 고둔치까지도 꽤 먼 거리였는데, 이번에 거리감을 다시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대단하신 풍라라님 이십니다
한발 후퇴 두발 전진 기어히 3구간을 한방에 끝내시니 누가 말리겠습니까?
한걸음 한걸음 걸으신 장도에 길을 보니 지나온 구간도 생각도 나네요
홀로 가면서 무엇을 생각 하시면 걸어 가는지 궁금 하네요
누군가 산이 부르니까 간다지만 그래도 목표가 있으니까 누가 보면 미친사람 취급도
받으면서 올라가면 내려올것을 말라고 가는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그래도 모두 한가지 목표를 삼고 오늘도 내일도 산에 있겠지요
태기산에도 아직 눈이 쌓여 있네요
저희들도 담달부터 성지지맥에 들어 가는데 눈산행이 되지 않나 쉽네요
늘 안산 즐산 하시기를 바랍니다^0^
와룡산선배님!
어찌보면 인생 편력이고, 역마살 아닐까요.
가만히 엉덩이 붙이고 있질 못하니깐요.^^
강박증도 있는것 같습니다.
세월은 가고, 뭔가는 해야겠고...
그래서 맞춤한 목표를 세워두고 스스로를 닥달하는것 같기도 해요.
산이라는게 쉬운 것도 어려운 대상도 아니라서 해볼 만한 상대로 정한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건강, 조망, 역사이야기 등등 산이 주는 또다른 매력도 있구요.
그냥 넋놓고 세월을 보내느니 맞춤한 목표를 세우고 스스로를 목표에 따라 채근하는듯 싶기도 합니다.
거기다가 사람마다 성격과 취향, 사연 등 경우의 수가 다양하기에 한마디로 정답을 말하긴 어려운 문젭니다.^^
성지지맥이면 용문, 지평에서 여주와 만나는 섬강 흥원창으로 내려가는 지맥이죠.
건투를 빌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월지맥 길게도 가셨네요 추억의 치악산 비로봉 남대봉 등 멋진구간들 통과하셨네요 추운데 비박으로 끔찍해요 약주드시고 주무세요 항상 응원합니다 화이팅입니다 ~~~~
세르파대장님!
새터고개에서는 영하 3도쯤 되었구요, 남대봉에서는 바람만 조금 있었을뿐 영상이었습니다.^^
술은 지고갈려면 더 무거워요. 횡성휴게소에서 술을 안 팔았어요.ㅠㅠ
콩마당음식점에 가서 소주병 구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무거워서 그냥 갔어요. ㅋ
랜턴을 찾아볼려고, 카드결재한 택시기사에게 물어보니 말방울만 보관중이랍니다.
현관문에서 배낭을 한번 떨어뜨렸기에 거기에 혹시... 했지만 없었구요.
습득물 lost112 싸이트도 함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네요.
어제 종로5가 나갔더니 크레뮬린 신형 7만냥 짜리가 있길래 질렀습니다.^^
등산화도 전번에 레드페이스 등산화가 가벼워 하나 구입했는데 영 맘에 들지 않아 어제 캠프라인으로 또 구입했습니다. 괜히~ 돈만 날렸어요.
저도 장비 분실 잘합니다 속상해도 그러려니 해야죠 ~~~
퐁라라님이 걸으신 산줄기를 따라서 걸어봅니다.
복습하는 셈치고 보조를 맞춰 졸졸 따라 한 번 더 걸어봅니다.
힘들었던 기억들이 순화되어 기쁨으로 승화되고
그 산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자부심으로 다가옵니다.
산행을 잘 한다는건 잘 걷는 것도, 멀리 가는 것도 아니며,
사전에 위험요소를 잘 걸러내고 안전하게 걸어가는 것이라는 말씀.
어디에 내놓아도 대접받을 실속있는 명언이라 생각됩니다.
벌써 내년 3월까지의 구체적인 산행계획이 서 있군요.
금오, 보현, 팔공, 호미로 이어지는 대장정이 기대됩니다.
이 산줄기 때는 미리 위험요소를 잘 걸러내어서
안전하고 유쾌한 산행이 줄줄이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범산선배님!
격려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범산선배님의 영월지맥 치악산 구간은 전에 읽은 기억이 난답니다.
선배님의 넓은 시야를 닮아 치악산에서 저도 시야를 마음껏 누려보고 싶었지만 바람에 그쳐 아쉬웠습니다.
영월지맥을 꽁꽁 언 한겨울을 맞이하기 전에 마무릴 짓고 싶습니다.
아마 다음주 쯤에는 다른 소식을 전해드리지 않을까 싶네요.
도솔지맥에서 도움을 줬던 친구녀석이 해고개에서 도움을 주는가 싶더니만 부스터샷을 핑계로 철회하네요.
애초 누구의 도움도 없이 미리 계획이 세워줬던 만큼 다소 배낭이 무거울지라도 제 계획대로 독자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랍니다.^^
우와 2박3일간 진행하셨네요..진짜 대단합니다.
며칠전 25일자 한국일보에 치악산에 대해 나오던데...
참 오래 되었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또 비로봉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늘 행복한 산행 기원하겠습니다. 홧팅입니다.
나케님,
영월 졸업하느라 답변 길게 못드렸네요.
운행 중에는 핸드폰 디다 볼 시간이 없습니다.
밧데리 닳을까봐 뱡기모드로 해두고 가끔 급한 메시지 있나 확인하는 정돕니다.^^
치악산 비로봉에서 군인들 세명을 만났어요.
먹을거 있으면 전부 놓고가라고 했더니, 물, 오렌지, 캔커피, 자유시간을 내주고 가더군요.
그 바람에 싸리치재까지 물을 보충하지 않고 갈 수 있었답니다. 감사합니다.^^
어둠에 치악산 구간을 장시간 렌턴없이 밤길을 헤치셨네요.
아무튼 대단하신 행보를 남기셨습니다.
가히 초인적인 모습은 여전히 감탄스럽기만 합니다.
만만치 않은 구간 장도를 마무리하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이어지는 안전한 여정을 기대합니다.
방장님!
염려덕분에 어제 오늘 영월 졸업하고 무궁화열차로 상경 중입니다.
영월은 역사가 왜소하네요.
철도문화유산이라 중축도 안되고, 선로가 낡아 ktx도 다니지 않는답니다.
다행히 마지막 안테나봉 가파른 경사지를 환할 때 내려왔습니다. 감사합니다.^^
퐁라라운영자님의 영월지맥 산행기를 보니 예전 생각이나네요.
어느핸가 6월말쯤 이엇습니다.
넘은재에서 시작해서 전재까지 갔었습니다.
그날 어찌나더운지 시작부터 육수을 짜내며 가다가 횡성휴게소에 들어갔지요.
메뉴판을 보니 막국수가 눈에 들어오데요.
곱빼기를 시켜서 국물까지 시원하게 잘 먹엇지요.
그런데 봉화대를 올랏다 내려서고 고속도로도 건너기전에 배가 꺼지데요.
그렇게 가다가 자연산 마도 두뿌리캐고 무슨 꽃동낸가 별동낸가 민가에서 물을 한바가지 얻어먹고 전재까지 갔었던 기역이 납니다.
오늘 영월지맥 졸업하러 가신다죠.
우리도 오늘밤에 충주.괴산으로 내려가서 신선지맥 마무리짓고 올 예정입니다.
ㅋㅋ 부뜰성님!
제가 가능하면 산행기를 많이 읽어보고 가는데 부뜰성님 산행기도 당근 읽었지요.
아래태오지에서 마를 캐드셨고, 새터마을에서 물을 얻어드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전재 화장실에 가니깐 음악에, 냉난방에, 샤워기도 있더군요.
랜턴만 있었더래면 전재까지 가서 따땃하게 잤을텐데요, 거긴 밤새 올라오는 사람도 없거든요. ㅋ
어제 저도 자기전에 친구가 준비한 춘천 돼지국밥을 두 그릇을 비웠는데 아침에 일나니깐 또 배가 고프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