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달산(雲達山) 김룡사(金龍寺)
경북 문경시 산북면 김룡리 410번지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
창건 및 연혁
588년(진평왕 10) 운달(雲達)스님이 창건하였고, 그때 이름은 운봉사(雲峰寺)였다.
창건 이후 역사는 전해지지 않았다가 조선 후기부터 중창과 변천의 사실을 알 수 있다.
1624년(인조 2) 중창하였으며, 이후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김룡사로 이름이 바뀐 것은 명확하게 언제인지 모른다. 조선 후기 18세기 초부터 운봉사와 김룡사라는 절 이름을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 절 이름 변경에 대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① 조선 후기에 문희(聞喜 : 지금의 문경) 부사 김씨는 산속에 은거하며 득남 불공을 올렸다. 처음에는 딸, 두 번째는 아들을 낳아 용(龍)이라 이름하였다. 이후 가문이 더욱 번창하였다. 그가 불공 올리던 곳을 김룡동이라 하였고, 인근에 있던 운봉사를 김룡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②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죄를 짓고 운봉산 아래에 숨어 살았다. 매일 법당에서 죄를 참회하였다. 어느 날 용추의 용녀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아 용이라 이름하였다. 이후 가운이 부유해져 사람들이 김씨 어른[김장자(金長者)]이라 불렀다. 이로 인해 마음 이름도 김룡리로 바꿨고, 운봉사도 김룡사로 바꿨다.
③ 금선대(金仙臺)의 ‘금(金)’자와 용소폭포의 ‘용(龍)’자를 따서 금룡사라고 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전국 31본사의 하나로서 50개의 말사를 거느린 큰 절이었다. 지금은 옛 말사였던 직지사의 말사가 되었으며, 1940년 요사와 종루를 개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전설로는 산 너머 대승사에 불이 났을 때, 일심으로 염불하면서 바가지에 시냇물을 퍼서 허공에 뿌려 보내 불을 끈 동승(童僧)의 이야기가 있다.
성보문화재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극락전, 응진전(應眞殿), 금륜전(金輪殿), 명부전(冥府殿), 상원전(上院殿), 영산전(靈山殿), 원통전(圓通殿), 첨성각, 범종각, 수월당(水月堂), 만월당(滿月堂), 연하당, 일주문(一柱門), 천왕문 등 전각 48동이 있다.
일주문 : 문 윗부분에 ‘紅霞門(홍하문)’, 아랫부분에 ‘雲達山 金龍寺(운달산 김룡사)’라고 쓴 김규진(金圭鎭)의 글씨가 있다.
대웅전 : 1727년 중건. 목조 석가여래좌상을 본존으로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를 모셨다. 1913년에 조성된, 천장(天藏)·지장(地藏)·지지(持地) 보살상을 묘사한 삼장탱화(三藏幀畫)가 하단에 봉안되어 있다.
극락전 : 조선 후기에 모신 것으로 보이는 아미타여래좌상, 1833년 조성한 신중탱을 봉안하였다.
응진전 :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16나한상과 나한도가 모셔져 있다.
명부전 :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도명존자, 무독귀왕, 시왕, 인왕, (명부)사자 등을 봉안하였다.
금륜전 :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후불탱(칠성탱), 독성탱, 산신탱을 봉안하였다.
봉안 연대를 알 수 없는 석조 약사여래입상, 조선 중기의 것으로 보이는 맷돌·떡시루·쇠북[금고]·범종, 업경대 등이 남아 있다.
부속 암자로는 대성암(大成庵)·화장암(華藏庵)·양진암(養眞庵)·금선대(金仙臺) 등이 있다.
대성암은 1800년(정조 24) 청하당을 옮겨 창건하였고, 1886년 중수하였다. 현재는 비구니스님의 수도처로서, 이곳에는 고승의 진영이 담긴 영정과 동물 그림의 병풍 등 많은 현판이 있다.
김룡사 일원에 있는 운달계곡은 문경8경 가운데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