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스카 하이웨이
우리 모텔을 양쪽에 두고 가운데가 알래스카 하이웨이다.
이 하이웨이는 캐나다와 미국을 연결하는 산업도로로 이용되지만 여름에는 여행객들로 붐빈다. 육로로 그 곳을 찾는 사람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길이기도 하다.
이 길은 미국과 캐나다가 합동으로 닦았는데 1차 완공을 본 것은 1942년이었다. 길을 만드는 동안 위험한 작업등으로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캐나다 DAWSON CREEK에서 알래스카 FAIR BANKERS까지, 전체 거리는 1523마일, 우리 셈으로 약 6200리(2465Km)이니 남북한을 두 번 돌고도 남는 거리이다.
내가 사는 곳은 남쪽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일 101 지점이며 그래서 마을 이름도 WONOWON이다. 이 곳에서 9년이나 살다보니 여름이면 세계 각국 여행객들과 만나게 된다. 알래스카에 여행을 가거나 또는 미국의 더운 지방에서 시원한 북쪽으로 2-4개월간 휴양 차 가는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는 서툰 우리말로 “안녕하세요?” 하며 한국전쟁에 다녀왔다는 할아버지도 있고 군인이나 기술자로 우리나라에 근무했다는 사람도 제법 된다. 얼마 전에는 한국인이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는 스위스에서 왔다고 했다. 88올림픽 주제가를 부른 코리아나가 살고 있는 곳이라며 마치 자기의 누나를 이야기하듯 말하였다. 그런가하면 어떤 이는 한국인 아내를 소개하려고 차에서 데리고 나오기도 하였다. 그냥 지나칠 만도 한 데 자기의 상사가, 친구가 한국인이라며 아는 체를 해 줄 때는 참으로 고맙고 눈물 나도록 반갑다.
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차는 2인승의 소형차부터 시작하여 집채만 한 R. V.(Recreation Vehicle)까지 다양하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사람, 차 위에 카누를 싣거나 자전거를 꽁무니에 매달고 오는 사람, 커다란 보트를 차 뒤에 끌고 오는 사람들도 본다. 온통 여행하기 위해서만 사는 사람들 같다.
많은 차량 중 특히 눈을 끄는 것은 여행용 R. V.이다. R. V.는 차체에 침대, 주방, 식탁, 옷장 그밖에 샤워시설과 화장실까지 모두 꾸며져 있어 장기 여행을 해도 아무런 불편이 없다. 크기는 조그마한 트럭부터 버스보다 훨씬 큰 것까지 있는데 커다란 R. V.에는 대부분 승용차를 연결하여 2대의 차량이 움직인다. 도시에 들어가면 R. V.는 주차장에 세워두고 승용차를 이용하여 시내 구경이나 쇼핑을 하기 때문이다. 주로 빌려서 쓰지만 개인 소유도 많고 젊은 층보다는 퇴직한 분들이 더 애용하는 것 같다.
이들은 모두 건강한 사람만은 아니다. 남편의 건강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데 아내와 교대로 운전을 하며 다니기도 하고 아내가 지팡이를 짚거나 부축을 받아 걷는 경우도 있다. 남편이 움직일 수 있는 한 거동이 불편한 아내를 귀찮아하지 않고 데리고 다니며 기분전환을 시켜주고 음식을 만들어 주는 등 애정을 보인다. 이들은 거의가 애견을 필수품처럼 안고 산다. 노인들만 있는 것보다는 활기도 있어 보이고 덜 외로워 보여 좋은 것 같다.
얼마 전 우리 주유소에 기름을 넣으려고 아주 크고 화려한 R. V. 한 대가 들어 왔다. 호기심으로 쳐다보는 내게 주인은 차안으로 들어와서 보라고 했다. 차 뒷면을 꽉 채우고 있는 우아한 침대, 잘 정돈된 옷장, 간단한 주방용품, 약간의 책. 이것들이 노부부의 살림 전부였다. 몇 년 전 집을 팔아 살림을 정리하고 이 차를 샀다고 한다. 움직이는 집인 셈이다.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참으로 지혜롭고 용기 있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R. V. 주차장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그들이 차창가의 식탁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며 와인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허욕을 버린다면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저녁, 60대쯤의 깡마른 남자가 비를 잔뜩 맞고 반바지 차림으로 모텔에 들어섰다. 그는 몹시 추워 보였고 지쳐 있었다. 플로리다 주에서 자전거를 타고 알래스카까지 갔다 오는 길이라 했다. 길에서 한 시간 전에 승냥이의 습격을 받았다 한다. 납작하게 엎드려서 돌진하는 짐승으로부터 탈출하느라 혼비백산한 모양이다.
알래스카 하이웨이는 차만 달리는 게 아니라 숲 속에 사는 야생동물들도 제 멋대로 돌아다닌다. 엄마 사슴이 새끼를 데리고 아빠 사슴과 함께 길가에 서 있는 것을 보면 너무도 사랑스럽다. 커다란 눈망울이 조용하고 깨끗하여 어린아이의 눈을 연상케 한다. 떼를 지어 다니는 산양은 털이 둥글게 감겨 있어 몽글몽글하다. 냄새가 나고 지저분하지만 사람을 피하지 않고 가까이 다가온다. 지나가던 차들이 줄줄이 멈추어서 사진을 찍느라 야단들이지만 동물들은 오히려 태연하다. Moose(뿔이 큰사슴) 같이 덩치 큰 짐승들이 길을 활보할 때는 교통의 장애가 되기도 하여 무섭다. 캄캄한 밤에 차에 치여 죽어 있는 야생동물이 눈에 띄기도 하는데 늑대나 곰 같은 사나운 짐승들도 멀리서 보면 모두가 평화스럽다.
도로 양쪽에 군데군데 비취색 호수가 바다처럼 탁 트여 시원하고 아름답다. 어찌나 물이 맑은지 물밑의 돌까지도 훤히 내다보인다. 손이나 발을 담그고 싶은 충동이 인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알래스카 하이웨이는 무한대의 자연을 실감하고 호흡할 수 있는 곳이다. 이 곳의 하늘은 타지와는 좀 다르다. 기온이 내려가고 싸늘해지면 밤하늘에서 Northen Light라는 오로라를 볼 수 있다. 무지개 색의 파스텔을 칠한 듯한 얇은 실크천이 이쪽 하늘 끝에서 저쪽 하늘 끝까지 너풀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한 쪽 하늘에 동이 틀 때 마냥 분홍과 남색의 짙고 연한 빛이 눈부시게 나타나기도 한다. 오로라가 조금씩 형체를 바꾸어가며 안개처럼 움직일 때는 무희가 속이 보이는 듯한 의상을 입고 춤을 추듯 황홀하고 매혹적이다. 그러나 늦은 밤 혼자 쳐다보고 있노라면 그 긴 실크 머플러 한 쪽 끝이 내려와 나를 휘감아 갈 것만 같아 섬뜩할 때도 있다.
웅장한 북극광에는 조물주와 과학의 신비가 혼재 되어 있다. 무지개 같은 불꽃들이 북극광에 이어져 번쩍거리고 기층을 따라 움직인다. 광입자가 춤을 추며 북극의 자기권에 발광(發光)을 일으킨 것이다.
알래스카 하이웨이는 희망의 길이다. 사랑을 만들고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며 환자를 호전시킨다. 담력과 극기심을 키우며 체력을 단련하는 길고도 긴 트랙이다. 그 곳에서 과학자는 오로라를 연구하고 예술가는 아름다움을 창조할 것이다.
나는 이 곳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여러 가지를 듣고 보며 인생을 터득해가고 있다. 처음 몇 년은 이 생활이 힘겨워 하루에도 몇 번씩 나 자신과 싸우느라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이제는 어설픈 영어지만 스스럼없이 나오고 WONOWON이 고향처럼 편안해져 간다. 손님들의 작은 미소, ‘Thank you!’ 라는 말 한마디가 용기와 힘이 되고 긍지를 갖게 해 주었다.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곳에서 여행객들의 뒷바라지를 하며 좀 더 살려고 한다. 생동감 있는 그들을 대할 때마다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샘물 같은 활력이 생기는 것 같다.
언젠가 손님이 되어 이 길을 지나갈 때 나도 다른 사람의 친절을 받게 될 것이다. 그 때 지난날의 자신이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여 정성껏 손님들을 맞이하련다.
(2000년 겨울)
첫댓글 글을 읽는 동안 너무나 실감나고 공감 가는 내용들이라 뭉클합니다.
저가 빅토리아에서 RV 리조트를 8년간 운영을 해서 너무나 친숙하게 들려옵니다.
가장 가까이서
백인들의 삶과 문화를 지켜봐 왔기에 더 공감이 갑니다.
"몇 년 전 집을 팔아 살림을 정리하고 이 차를 샀다고 한다. 움직이는 집인 셈이다.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참으로 지혜롭고 용기 있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R. V. 주차장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그들이 차창가의 식탁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며 와인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허욕을 버린다면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
이런 분들을 참 많이 봤습니다. 단순하게 살려고 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구요.
공감가는 글 잘 읽고 또 읽습니다.
감사합니다.
한편으로는 이 얘길 들으면 가슴이 싸아하게 젖습니다. 알래스카 하이웨이 이름만 들어도 떠오르는
참 멋진 품격 있는 정선생님이 떠 올라서요.
글을 읽는 동안 뭉클하면서도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아, 그래요. 정선생이란 사람 제 남편이지만 저에게는 과분한 사람였어요.
외모부터 성품, 어디 하나 ... . 그 사람이 함께 해주었기에 그 황홀한 오로라도 보고 알래스카 체험을 할 수
있었나봅니다.
15년 반을 누워있기는 아까운 사람였지요? 자명 선생님이 누구보다 그 사람을 잘 아시니 그래도 위안이 됩니다.
우리가 만났던 좋은 시간들만 추억합시다.
남편 사고 다음 날 몬트리올로 두분이 놀라 비행기로 달려오셨을 떄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3월 말일이 5주기랍니다. 자명에게 어떻게 사랑을 다 갚아야할 지 ... .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