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버킷리스트’ 그건 꿈일 수 있고 희망의 씨앗일 수 있다. 이 단어를 들으면 막연한 설렘과 함께 심장이 두근거림을 느낀다. 이 문구는 누구나 갖고 있는 단순히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목록' 그 이상의 의미를 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가장 나답게 내 자신에게 충실하게 존재하고 싶다는 인간 본연의 뜨거운 열망이 담긴 자기의 선언문이다.
우리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종종 나를 잃어버리며 내 아닌 삶을 살아간다. 가족을 위해, 생업을 위한 조직의 구성원으로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시간 속에서 문득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될 때가 있다. 이때 버킷리스트는 나침반 역할을 해 준다. 그것은 꼭 해야만 되는 일이 아니지만 언젠가는 해 보고 싶은 영혼이 갈망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죽기 전에 꼭 이뤄보고 싶은 그 목록들은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모험이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기도 하다. 종이 위에 적힌 단어들은 아직 경험하지 않은 나와의 약속이며, 그 목적지는 현실에서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 발을 디딜 용기를 얻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릴 적부터 꿈꾸었던 ‘피아노 연주 배우기’를 적는 순간 손가락 끝에는 벌써 건반의 감촉이 느껴진다. ‘세계 3대 폭포’ 방문을 이어 가면 어느새 폭포의 장엄한 울림이 귀를 때리고 그 경이로움에 감탄을 연발한다.
누구나 하나씩 지니고 있을 버킷리스트의 모든 항목을 달성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아니 절반, 그 이하 몇 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살아오면서 우리가 희망하고 원했던 것들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돌아보면 짐작이 된다. 인생은 늘 예상치 못한 변수로 가득 차 있고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소망했던 것들은 늘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지 않았던가. 그러함에도 꼭 해 보고 싶은 목록들이 중요한 것은 완성이 아니라 막연할지라도 미래에 대한 지향에 더 큰 의미가 있다.
내게도 오랜 버킷리스트들이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실행해 본 것들도 있고 새로 채워 놓는 목록들도 있다. 그중 가장 경험해 보고 싶은 일 하나는 예나 지금이나 첫 번째 ‘단기출가’다. 한국의 오대산 월정사에서 해마다 실시하는 한 달간의 승려 체험은 실제 삭발하고, 스님들의 일상을 그대로 살아보는 고행의 시간이다. 이는 승려 체험이라기보다 행자(출가 전 수행자) 과정에 준하는 수행 정진으로 볼 수 있으며 일반 템플스테이와 비교할 수 없는 깊이와 강도의 프로그램이다. 한 달 동안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환경에서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며, 습관, 감정, 삶의 방향에 대한 깊은 성찰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막연하긴 했어도 청년의 한때, 중이 되고자 몇 곳의 절을 찾아다닌 일말의 미련에 대한 아쉬움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몇 년 전 높은 경쟁을 뚫고 서류 합격을 하고 인터뷰 날짜까지 잡아놨지만 예기치 않은 중대한 일이 생겨 포기했었다. 다니는 성당의 신부님과 수녀 님에게서도 흔쾌히 승낙을 받았던 터이다. 새벽 3시에 기상하여 밤 10시까지 지속되는 공부와 참선, 묵언과 울력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배우고 배려하며 관계를 배우는 과정은 적잖은 인내가 요구되는 시간임을 앞서 경험한 분들을 통해 들었다. 종교를 넘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보통 50명 정도가 입소를 하지만 그중 20%는 힘든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고 10% 정도는 스님이 된다고 하니 그 어느 체험과는 분명 다른 점이 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진정한 나만의 시간과 일상적 궤도를 벗어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단기 승려 체험은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에 대한 어떤 화두를 줄 것만 같은 기대감에 단기출가는 지금도 나의 버킷리스트 1번이다. 그다음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은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 PCT)4,270km 6개월 코스 중 한 달 정도의 구간에 도전해 보는 것이다. 멕시코 국경에서 시작해 미국 서부 산맥을 따라 캐나다 국경 밴쿠버까지 걷는 고도로 어렵고 위험한 트레킹 코스다. 몇 년 전 히말라야 안나프르나 트레킹을 이미 경험했던 터라 어느 정도 자신감도 갖고 있어서다. 그 코스를 선택한 사람들의 사연과 영상을 보면서 크게 감명받아 꼭 실현해 보고 싶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버킷리스트는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성공의 기준이 아닌, 나와 솔직한 대화의 결과물이어야 한다. 거창할 필요도 특별할 이유도 없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심을 담은 편지 쓰기,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실현해 보기, 동경했던 장소로 찾아가 혼자 며칠간 살아보기 등 작고 소박 일도 좋을 것이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버킷리스트 1위는 전 세계를 여행하거나 꼭 가 보고 싶은 특별한 장소를 방문하는 것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각 나라 별로 차이는 있었지만 대체로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나는 계획이 단연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심리학자들이 실시한 조사에서도 ‘행복의 순간은 여행을 갈 때’라고 했듯 수긍이 가는 주제다.
일본인들에게 첫 번째 해 보고 싶은 목록 첫 번째는 북유럽이나 캐나다 같은 곳에서 평생 잊지 못할 자연의 경이로움을 목격하는 것, 오로라의 신비를 통해 느낀 감동이 평생을 간다는 이유였다. 유럽인들은 자신을 시험하는 도전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험 같은 것을 꼽을 수 있다. 저개발국가 사람들의 버킷리스트는 단연코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었다. 가령 한국에서 일을 해 많은 돈을 벌거나 선진국으로 이주가 눈길을 끌었다. 죽기 전에 꼭 실천해 보고 싶은 이 목록들은 자신의 환경과 문화에서도 큰 차이를 보여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쨌든 버킷리스트는 꿈일 수 있고 개개인의 삶의 목표일 수도 있다.
이 글을 읽는 이의 버킷리스트는 지금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그것은 자기의 남은 삶을 설계하는 가장 아름다운 지도다. 지도가 있다면 길을 잃을지언정 방향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펜을 들어 심장이 뛰는 소리를 종이 위에 옮겨 적어 보길 바란다. 그 목록이 바로 당신의 가장 빛나는 삶의 이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끝
첫댓글 저도 버킷리스트 몇 개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인, 시집 출간은 작년에 이루었고요. 나머지 리스트도 언젠간 이룰 것이라 마음먹고 있어요.
버킷리스트는 선생님 말씀대로 꿈이요 희망입니다.
어쩌면 신기루처럼 잡히지 않을지 몰라도 꿈이 있는 한 삶은 더욱더 아름다울 것이라 믿습니다.
좋은 글 잘 감상합니다. 고맙습니다^^
반갑습니다.
늘 하루의 업무가 끝나는 자정 무렵에서야 한번씩
카페에 들어오는데, 오늘은 퇴근해서 급 한일 처리하고 들어오니 이캐 반가운 소식들이 있네요.
심한 갈증에 샘물 같은 소식입니다.
네
꼭 하나씩 버킷리스트를 실행해 보길 빕니다.
현수기 시인님의 글이 날로 성장하고 있음을 글을 보며 느낍니다.
저의 글에 관심 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부 남깁니다.
자명 선생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기술하신 오대산 월정사 체험은 저도 욕심이 나네요. 귀한 추억이 되리라 봅니다. 한달은 너무 짧고 3달정도 하면 어떨까 생각해 봤습니다. 누구에게나 희망과 전망이 있는데 희망과 전망 사이가 크면 참 우울해 지는 거 같습니다. 희망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많지 않아도 그 희망을 달성하기 위해 지금 준비를 하면 그 자체가 설레임이고 기쁨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
무지 반갑습니다. 저의 희망사항 1호에 관심 주셔서 먼 길을 떠나는 동행자를 만난듯
기쁨니다. 요즘 전쟁이다 혼란스러운데, 결산 시즌 마감까지 겹쳐 심신이 모두 지쳐 있는데
이렇듯
반가운 소식에 큰 힘을 얻습니다.
맘과 맘이 만나는 소통의 힘이 정말 큽니다.
변함없이 잘 계시지요? 저 능력에 비해 큰 일들을 벌려 놓은 거 같아 다른 것들을 소홀히 하는 것 같아
저를 돌아보는 요즘 입니다.
소식 감사합니다.
마음 전합니다.
모건 프리먼과 잭 니콜슨이 명연을 펼친 헐리웃 영화가 생각납니다. 자명 선생님의 버킷 목록은 모두를 유혹시킵니다. 저에겐 당장 1위 순으로 '예주' 아기의 순산입니다. 9월이 예정일인데, 어케 할비가 이렇듯 입덧을 합니까ㅎㅎ. 너무 난임 중에 가진 아기라 저절로 벅킷으로 뜨지요.
인생의 심오한 부분이 다 같이 성취되기를 바래봅니다. 그리고 이런 깊은 글로 사색이 비오듯 내리는 오후,밴쿠버의 카페 글방을 열어 보는 혜택이 쏠쏠합니다. 영혼에 빛을 던져주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먼저 답글을 쓰기에 앞서 혼자 웃습니다.
'할비' 선생님과는 좀 어울리지 않습니다만. 최근 여러가지 일들이 겹쳐 참 많이 지쳐있었는데
이런 답글은 진심으로 큰 위안을 얻습니다.
마음 닿는 분들과의 소통이 참 큰 에너지를 얻습니다.
요즘 부쩍
허둥대듯 사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이 잦습니다. 소중한 분들과의 소통을 통해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여전히 잘 계시지요?
종종 뵙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안부와 함께 맘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심현섭 선생님 수필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도 버킷리스트를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그것은 자기의 남은 삶을 설계하는 가장 아름다운 지도다. 지도가 있다면 길을 잃을지언정 방향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정말 공감이 가는 말씀 입니다.
이전에는 사느라고 바빠서 였는지 문협 카페에 잘 들어오지 못했느데 요즘에는 자주 글을 읽고 있습니다. 마음을 충만하게 해주는 좋은 글들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깨우치게 됩니다. 마음 숙연해지는 좋은 글 감사 합니다. 여전히 멋지시고 건강하신 모습 사진으로나마 뵙게 되어 반갑고 감사 합니다 늘 건강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