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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처럼 나비처럼] 이숙연, 김영인
S#1. 프롤로그
화면 밝아오면, 19세기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세계지도가 보이고 그 위로 열강들의 침략 루트가 표시 된다.
자막 : 19세기 말.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미국 등 제국주의 열강들은 식민 지배를 확장하기 위해 동아시아로 향한다.
일본 또한 메이지 유신으로 내부 개혁에 성공, 동아시아 패권국이 될 야욕을 불태운다.
이에 조선은 강력한 쇄국정책으로 나라의 문을 걸어 잠근다.
그곳 조선에서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난다. 조선의 운명이 될 여자를.
나비 한 마리 지도 위를 날으며 바다를 건너 조선으로 다가 가면 마포나루를 지나 회화적인 이미지로 한양의 곳곳이 소개된다.
남산, 남대문 시장거리, 외국인거리, 기와집, 초가집, 청계천 건너 광화문거리, 미로 같은 구중궁궐. 그 깊은 곳에 건천궁.
f.o.
S#2. 양반집-골목. 밤
밤안개 자욱한 어두운 골목길. 흥얼거리며 걸어오는 누군가.
삿갓을 깊게 눌러쓰고 허리엔 도끼 같은 칼을 찬 사내. 무명이다.
어느 양반집 담벽에 멈춰서면 흥얼거리던 것과 같은 멜로디의 노래가 들려온다.
카메라 그 노래를 따라 담을 넘어가면 천주교 비밀 집회.
찬송을 마치고 미사를 마무리 짓는 외국인 신부와 신도들.
호위무사 둘이 신부를 모시고 서둘러 뒷문을 빠져나간다. 급한 발걸음. 황급히 골목으로 꺾어지는데~
섬뜩한 도끼 같은 칼이 한 무사의 목에 꽂힌다.
호위무사1 : 어서 피하십시오 신부님!
순간, 전광석화와 같은 보법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무명.
순식간에 죽은 무사의 목에 꽂혀있는 도끼같은 칼을 뽑아 다른 호위무사의 턱을 빠르고 강하게 쳐올린다.
S#3. 감고당 담/후원. 밤
어느집 담장을 넘고 있는 외국인 신부. 후원으로 넘어 온 신부 숨을 곳을 찾아 허둥대는데 어느새 뒤에서 다가오는 무명.
놀라 엉덩방아를 찧는 신부.
용파를 꺼내 얼굴을 확인하는 무명. 칼을 치켜들면 성호를 그으며 죽음을 준비하는 신부.
자영 : (OS) 멈추세요.
무명 : (보지도 않고) 말로 할 때 사라져라.
자영 : 그 칼이 두렵다고 어찌 남의 곤경을 못 본 척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무명 : 죽고 싶나?
자영 : 보아하니 천주교 신부님인듯 한데 그분을 해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무명 : !
아무 말 없이 뚜벅뚜벅 걸어와 칼을 들어 당장이라도 벨 듯 휘두르는 무명.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빠르게 눈앞으로 다가드는 칼.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는 자영. 그러나 칼은 자영의 눈앞에서 극적으로 멈춘다.
꼭 감은 자영의 얼굴을 노려보는 무명.
잠시, 미동도 없는 긴장감 속에 두 사람.
살며시 실눈을 뜨는 자영. 검을 든 무명의 손이 보인다. 길고 하얀손등에 거미줄처럼 칼자국이 얽힌 무명의 손.
삿갓을 눌러 자영의 눈을 외면하며 무명이 낮게 말을 흘린다. ‘미쳤군’
휙 허공을 휘두르며 칼을 거두고는 돌아서 다시 담장을 넘는 무명.
그제야 길게 숨을 내쉬는 자영.
S#4. 강가 움막 안. 낮
호랑이 가죽이 걸려있는 움막 안.
펼쳐진 복대 위로 수북하게 쌓인 엽전들.
소희 : (돈을 세며) 이백 이십 이냥, 이백 이십 삼냥, 이백 이십 사냥....
갑자기 문이 쾅 열리자 놀라서 몸으로 돈을 막으며 누군가 살핀다.
대두 : (밥상을 들고 들어오며) 또 돈 세?
소희 : (짜증내며) 깜짝 놀랬잖아?
대두 : 오늘 벌써 몇 번째야?
소희 : (돈을 정리하며) 세 번째다. 왜?
대두 : 도대체 얼마나 모아야 성에 찰는지...
소희 : (돈을 담은 복대를 배에 차며) 알고 싶냐? 아침에 깨나면서 동시에 이렇게 돈을 세는 거야. 그런데 밤이 되거든.
그런데도 다 못 세고, 세다가 팍 꼬꾸라져 잠드는 거야. 야, 너무 좋겠지? 얼마나 뿌듯하겠냐?
대두 : 그래그래, 알았으니까 어서 밥 먹자.
소희, 밥상 앞에 앉는데, 큰 그릇과 작은 그릇 두 곳에만 밥이 담겨있다.
소희 : 무명이는?
S#5. 강가 나룻배 위/나루터. 낮
강물위에 일렁이는 자영의 웃는 얼굴.
배 위에서 강물을 내려다보며 술을 마시고 있는 무명.
푹 빠져버릴 것 같은 그 얼굴이 순간 자기를 비웃는 것처럼 느껴지자 술을 벌컥벌컥 들이붓듯 마시고는 빈병을 강물에 던져버린다.
물결은 크게 출렁이지만 자영의 얼굴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자 이번에 노를 들어 강물을 내리치기 시작한다.
강가에서 무명을 보고 있는 대두와 소희.
소희 : 며칠 째 일은 않고 저 모양으로 술이나 처먹고 있으니...완전히 미쳤어. 어쭈? 어쭈? 아예, 똥을 싸라. 똥을 싸!
보면, 씩씩대며 강물에다 오줌을 갈기고 있는 무명.
S#6. 감고당 마루. 낮
세계지도를 보고 있는 자영. 바탕을 가득 메운 바다를 손으로 만져 본다.
그 옆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 어머니.
자영 : 어머니. 보십시오. 조선은 이리도 작은 땅덩입니다. 그런데도 큰 나라들과 견주어 제몫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기특합니까?
자영모 : 벌써부터 왕후같은 말을 하는구나.
자영 : 어머니.
자영모 : 솔직히 나는 하나도 기쁘지 않구나. 대궐이 어떤 곳이냐? 피비린내 나는 정쟁이 한시도 그치질 않는 곳 아니냐?
도무지 나는 그런 곳에 네가...
자영 : (곁으로 가서 눈물짓는 엄마를 달랜다) 걱정마세요.
자영모 : 불쌍한 것.
자영 : 어머니, 결코 부끄럽지 않은 왕비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생각일랑 하지 마세요.
자영모 : 자영아......
자영 : (활짝 미소 지으며) 어머니 오래오래 건강하셔야 해요. 그래서 여기 이 모든 곳 다 가볼 수 있게요.
자영모 : 아서라. 그걸 위로라고 하는 것이냐? 그 말을 들으니 걱정이 더 커지기만 하는데...
자영 : (끌어안으며) 어머니!
S#7. 강가 나룻배 위/길 위. 아침
강 가. 조랑말을 탄 자영. 늙은 종과 몸종이 지나가고 있다.
자영의 시선으로 강 가 움막이 보이고 배 위에 타로카드 애정운을 보고 있는 소희와 낚시하며 사랑가를 부르고 있는 대두.
얼굴을 가리고 드러누운 무명.
대두 : 와아~ 무지하게 아름다운 분이다.
소희 : 저게 보여? 인간 눈깔이 아니구만.
대두, 자랑스러운 듯 안경을 고쳐 쓴다.
무명, 삿갓을 열고 힐끔 쳐다본다.
강을 보다가 장옷으로 얼굴을 가리는 자영.
자영과 무명이 탄 배가 멀어진다.
S#8. 건청궁 어느 방. 낮
두 명의 여자가 비단방석 위에 앉아있다. 커다랗고 휑한 방. 엄숙하고 고요하다.
문 건너편에서 흘러나오는 상궁들의 쑥덕거림.
상궁1 : (목소리) 아비가 없는 것이 저 아이의 장점이라지 않습니까..
고개를 든 채 창밖을 보는 차갑고 꼿꼿한 자영의 얼굴.
상궁2 : (목소리) 하지만, 백년세도 명문가에서 왕후 자리를 빼앗길까...
고개를 숙인 채 상궁들의 말소리에 귀 기울이는 또 한 명의 여자.
상궁1 : 친정 치맛바람에 왕실이 진저리가 난 게지요..
상궁2 : 두고 보세요. 그 세도가에서 쉽게는 양보하지 않을겝니다.
같이 있던 여자가 슬쩍 자영 쪽을 본다. 흐트러짐 없는 자영. 정면만 뚫어져라 본다.
정면, 정원의 바람과 나무. 햇살이 쏟아질 듯 시야로 들어온다.
상궁2 : 아무래도 대원위께서 무리수를 두셨어요.
문 너머로 또 다른 상궁의 목소리가 들리면 뚝 그치는 수근거림.
최상궁 : (근엄한 저음의 목소리) 규수들께 알리오. 곧 대왕대비마마께서 납실 겁니다...간택이 된 규수는 운현궁으로 들어가
왕비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간택받지 못한 규수는 한평생 수절해야함을 명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자영과 간택녀.
S#9. 감고당 후원. 밤
자영모가 후원으로 들어오면 후원에서 생각에 잠긴듯 거닐고 있는 자영.
자영모 : 자영아!
자영 : (돌아보면) 어머니!
자영모 : 이래저래 생각이 많을 텐데 내가 방해를 한 모양이구나.
자영 :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찾아뵐까 했습니다.
자영모 : (무슨 일인가 쳐다보며) 날?
자영 : 어머니, 바다에 다녀올까 합니다.
자영모 : (놀라며) 아니 된다. 바다라니? 떨어지는 낙엽에도 다칠 수 있는 게 세상일이다.
집안에 해괴한 바람이 불어 네가 다칠 뻔 한 게 엊그제인데...
자영 : 걱정 마세요. 어머니.
자영모 : 자영아!
자영 : 이미 결심이 섰습니다.
자영모 : (사이) 정 그렇다면... 알았다. 내가 준비를 시키마....
자영 : 혼자 갈 것입니다.
자영모 : 혼자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그 길을 어찌 아녀자 혼자 갈 수 있단 말이냐?
자영 : 혼자 가야할 길입니다. 이 짧은 길도 혼자 갈 수 없다면 저 먼 길을 어찌 혼자 갈 수 있겠습니까?
사이.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자영모 : 자영아....
S#10. 강가 나루터. 새벽
홀로 나루터에 도착한 자영. 나룻배가 안개 속에서 흔들거린다.
그 위에서 자고 있는 무명.
자영 : 이 배를 움직일 수 있습니까?
무명, 잠결에 또 자영꿈을 꾼 줄 알고 돌아누우며 엉덩이를 슥슥 긁는다.
자영 : (고개를 돌리며) 이보시오. 사공!
자영을 알아본 무명, 놀라 벌떡 일어난다.
S#11. 강 위 나룻배 위. 아침
햇살을 받으며 강물 위를 떠가는 배.
말없이 노를 젓고 있는 무명. 힐끗 쳐다보면, 자영은 아련히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
무명 : 양반댁 규수께서 혼자 길을 나서다니 그곳 바다는 아주 특별한 곳인가 봅니다.
자영 : ...
무명 : ...
여전히 강물만 바라보며 외면하고 있는 자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무명.
유유히 흘러가는 나룻배.
S#12. 강가2 어느 곳. 낮
무명이 도움을 위해 손을 내밀지만 무시하고 혼자 힘으로 올라서는 자영.
자영 : 잠시 이곳에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목례하고 가려는데)
무명 : 저, 아기씨! 여기서 혼자 기다리는 것도 그렇고...왠지 바다도 보고 싶고... 방해하지 않을 테니 따라가면 안 될까요?
자영 : 네? (곤란한 표정을 짓는데)
S#13. 바다 언덕길. 낮
언덕길을 오르고 있는 두 사람.
무명 : 나룻터에서 벌써 한참을 왔습니다. 그런데 계속 올라만 가니 바다로 가는 게 맞습니까?
혹시 산으로 가는 건 아닙니까? 이거?
자영 : (대답은 하지 않고 빙긋 웃는다)
무명 : 왜 웃으십니까? 제 말이 웃깁니까?
자영 : 아닙니다. 어릴 때 아버님께 그렇게 묻던 제 모습이 생각나서요.
무명 : 아기씨도 저같은 바보였다니 믿기지가 않는데요?
자영 : 네?
무명 : (민망한 듯 회피하며) 아싸, 빨리 뛰어가 보자.
깡충깡충 언덕길을 달려 올라가면~
S#14. 바다 언덕. 낮
언덕에 올라서면 드넓은 푸른 바다가 가슴이 탁 터질 듯 시원하게 펼쳐진다.
자영도 언덕으로 올라서고, 바다를 보는 두 사람.
무명이 갑자기 어린애처럼 환호하며 바다를 향해 신나게 뛰어간다. 그대로 모래언덕에 처박히는 무명.
놀라는 자영.
잠시 후, 고개를 쑥 내밀고 아무일 없었던 듯 손 흔들고 다시 뛰어가는 무명.
우스꽝스럽기도 귀엽기도 한 무명을 보며 환하게 웃는 자영.
S#14A. 바다 해변가. 낮
모래 위에 자영(紫英)이란 이름이 한자로 적힌다.
무명 : 뭔 글자랍니까?
자영 : 붉을자 꽃부리영. 제 이름입니다. 어릴 때 이렇게 파도놀이 하는 걸 좋아했지요.
큰 파도가 밀려와 자영의 이름을 쓸어간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자영. 문득 생각에 잠긴다.
생각에 잠긴 자영을 옆에서 지켜보는 무명.
무명 : 잠깐만요.
언덕 위로 뛰어올라간다.
가만히 바다를 느끼는 자영.
꽃을 가져와 자영에게 건네는 무명.
자영, 영문을 몰라 쳐다보면~
무명 : 해당화가 붉으니 아기씨 이름을 닮았단 생각이 들어서...자영. 붉은 꽃....
자영 : (놀라며) 정말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무명 : 안되나요?
자영 : 아닙니다.
무명 : 그럼. 받으시는 겁니까?
자영 : (받으며) 물론이죠. 고맙습니다.
무명 : 정말요?
자영의 반응이 좋자 기분이 좋아지며 으쓱하는 무명.
무명이 준 꽃의 향기를 맡아보는 자영.
자영 : 여기는 돌아가신 아버님과의 추억이 있는 곳입니다. 제가 힘들거나 슬플 때 아버님께서는 절 이곳 바다로 데려와 주셨고,
이곳에서 항상 마음의 위안을 얻어갔지요.
무명 : ...마음의 위안이 또 필요하신 겁니까?
자영 : ...혹시 바다에 산다는 곤이란 물고기를 아십니까?
무명 : 처음 듣는데요.
자영 : 곤은 믿기지 않겠지만 나중에 붕이라는 커다란 새로 변하게 됩니다.
무명 : 물고기가 새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자영 : 상상의 이야기지요. 물고기에서 새로 변하는 믿기지 않는 기적에 대한 상징이죠.
무명 : 믿기지 않는 기적?
자영 : 운명 같은 거요.
무명 : 운명...
자영 : 저는 곧 운명을 따라 먼 곳으로 간답니다. 사실 두려워요... 그 두려움을 없애고 싶어 이곳에 왔습니다.
석양이 지고 있는 바다. 밀려갔다 밀려오며 끝없이 부서지는 파도.
S#15. 강 위 나룻배 위. 석양
노를 젓는 무명. 꽃을 손에 든 채 생각에 잠겨 아련히 강물만 바라보는 자영.
무명 : 저...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자영 : ?
CUT TO
수초들 사이를 지나는 나룻배.
울창한 수초 속 무명이 가리키는 곳을 자세히 보면, 물새알이 있다. 수초를 엮어 물위에 지은 집속의 새알들.
신기하고 놀라워하는 자영. 흐뭇해진 무명.
무명 : 이건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내 동무들도 모릅니다. 새끼 새들은 알에서 나오자마자 몸에 물기만 마르면 바로 날아갑니다.
집에 다시 돌아오지 않지요. 씩씩하지 않습니까?
자영 : ...
잠시 후 환한 미소를 짓는 자영.
자영 : 왠지 힘이 납니다. 고맙습니다.
자영을 아련히 보는 무명.
S#16. 강가 나루터. 밤
헤어져야 할 시간. 서로 마주보고 서있는 두 사람.
자영이 내민 돈주머니를 받지 않고 있는 무명.
자영 : 먼 길 수고하셨는데 사례를 거부하시다뇨?
자영을 바라보며 쓸쓸한 듯 작게 고개를 가로젓는 무명.
그러자 더는 강요하지 못하는 자영. 잠시 더 서로 눈을 맞추는 두 사람.
자영 : 그럼.
자영, 공손히 인사하면 무명도 마주 인사한다.
그런데 갑자기 자영을 노리고 비수가 날아온다.
무명이 자영을 안고 몸을 허공으로 회전하며 비수를 피한다.
그렇게 서로를 안은 채 착지하는 두 사람. 마치 서로를 포옹하듯 가깝게 안은 채 숨을 헐떡인다.
그 헐떡임이 마음에 드는 이성을 안은 때문인지 갑작스런 공격을 피하는 놀라움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착지를 한 후에도 두 사람에게 다른 움직임이 없다.
순간, 자영의 눈에 또 다른 비수가 날아오는 것이 보인다.
뭔가를 알려주려는 듯 자영의 입에서 말이 흐르지만 무명은 자영을 내려 본 채 꿈쩍도 하지 않는다.
비수가 무명의 등에 박힌다.
그러나 무명은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는 놀라운 순간에 매혹된 듯 반응이 없다.
무명, 자영을 나무 뒤에 숨기는데 다시 날아드는 표창 셋.
삿갓으로 표창을 막는 무명, 동시에 숨겨진 비수를 날리는 무명. 순식간에 자객 둘의 목에 꽂히는 무명의 비수.
남겨진 자객 하나. 눈치를 보다가 도망가 버리고~
안전하다고 판단되자 다가와 거친 손으로 자영을 꽉 잡는 무명.
무명의 갑작스런 행동에 자영 놀라는데~
귀공자 같은 하얀 손에 거친 칼자국이 난 무명의 손.
그 손을 기억하는 자영. 하지만 모른척.
무명 :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자영 : 어서 치료를 해야 합니다.
무명 : 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 자들이 왜 아기씨를....
자영 : 우선 상처부터 보겠습니다.
칼을 뽑고 무명의 윗옷을 벗긴다. 온몸에 가득한 크고 작은 칼자국.
무명의 심장위로 얼핏 보이는 십자가 문신. 자영의 시선을 느끼고 슬쩍 가리는 무명.
아무렇지 않게 속치마를 찢어 상처에 묶어 주는 자영.
쑥스러운 듯 뒤늦게 엄살을 떠는 무명.
그때, 거친 말발굽 소리 들리며 말을 타고 달려오는 일군의 무사들.
무명, 긴장하여 자영을 막아선다.
무명 : 이거 참! 아기씨는 무슨 원한이 이렇게 많소?
두 사람 앞에서 멈춰서는 말을 탄 무사들.
무명 더욱 경계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대장인 자가 두 사람을 노려보더니 말에서 내린다.
뇌전 : 혹 감고당 민규수 되십니까?
자영 : 그렇습니다.
뇌전 : 이뇌전이라 하옵니다. 대원위께서 보내셨습니다. (시체들을 보며) 무탈하십니까?
자영 : 이 분 덕분입니다.
뇌전 : (무명을 노려보고) 이제부터 제가 모시겠습니다.
자영 : (무명에게) 먼 길 고마웠습니다.
무명 : 험한 세상. 잘 사시오. 자영...
순간, 매섭게 무명을 돌아보는 뇌전.
자영 : 조선이 천주교인을 박해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사공께서 그럴일은 없겠지만요. 부디 좋은 칼이 되시길 바랍니다.
놀라는 무명. 자영을 보는 뇌전.
사라지는 뇌전일행과 자영.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는 무명.
S#17. 강 가(무명의 꿈). 석양
강 가에 앉아 무명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찬송가를 불러 주는 무명의 어미.
어미의 무릎을 베고 누워 따라 부르는 어린 무명.
그런 무명을 보고 슬픈 미소를 지으며 눈물을 흘리는 어미.
S#18. 강 위 나룻배 위. 밤
나룻배 위에 드러누워 있는 무명. 눈물이 흐른다.
S#19. 박해마을 광장(무명의 꿈). 밤
황사같은 흙먼지와 연기가 안개처럼 뿌옇게 싸여있고
횃불을 든 일단의 병사들이 황급히 움직이고 있는 사이로 십자가 나무틀에 묶인 남과 여. 참혹하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주기도문을 외우는 소리가 주문처럼 웅웅거리는데~
어린무명 : (울면서 군사에게) 살려주세요. 우리 엄마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제발~
아주머니 우리 엄마 좀 살려주세요. 엄마, 엄마~~~
어린 무명 울며 매달리지만 신도들은 고통스럽게 외면할 뿐 나서지 못한다.
사령 : 어디 있느냐? 왜 살려주지 않느냐? 똑똑히 보거라. 너희들이 믿는 신은 없다.
무명의 어미 의연하게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한다.
무명 어미의 목을 향해 칼을 높이 치켜드는 군사.
어린무명 : 엄마. 엄마~~
무명모 : 요한....
휙~ 내려치는 칼.
S#19A. 박해마을광장(무명의 꿈). 새벽. 비
사람들이 사라진 텅 빈 광장.
무릎꿇고 주룩주룩 비를 맞으며 어딘가를 올려다보는 어린무명. 보면, 십자가에 걸린 어머니의 목.
식칼을 쥔 어린무명. 심장 위 가슴에 십자가를 긋는다. 배어나오는 피. 결연한 의지의 눈빛.
S#20. 나룻배 위. 밤
술을 마시며 괴로워하고 있는 무명. 고요히 흔들거리는 배 위.
악몽의 이미지가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순간, 멈칫거린 배의 진동.
동시에 뒤에서 날아드는 칼날. 몸을 굴려 피하는 무명.
뇌전이다.
공격 자세를 취하고 배 난간에 버티고 서서 대치하는 두 사람.
무명 : 뭘 원하지?
뇌전 : 넌 고귀한 분의 지나친 관심을 받았다.
무명 : 고귀한 분?
뇌전 :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지 보겠다.
무명 : 시험인가?
뇌전 : 목숨을 건....
물결에 일렁이는 배.
기우뚱거리며 나룻배가 천천히 회전하는데 어디선가 튀어 오르는 잉어 한 마리.
무명의 집중력이 미묘하게 흔들린 틈을 노리고 깊고 정확하고 빠르게 파고드는 뇌전.
배안, 좁은 동선. 그 안에서 기막힌 중심을 잡으며 이어지는 뇌전의 공격.
뇌전의 칼이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때론 부드럽게 흐르고 때론 날카롭게 찌른다.
워낙 빠른 속도의 무명 몸을 회전하며 피하고 무게 중심을 나누며 난간에 버티고 서는 두 사람.
하지만 아직은 부상이 있는 몸, 호흡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무명.
다시 미간을 향해 다가오는 뇌전의 칼 끝.
순간, 무명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뇌전의 칼을 맞는다.
살짝 몸을 틀어 뇌전의 칼이 어깨에서 가슴을 그어 갈 때 역으로 뇌전의 허점을 찌르는 무명.
그러나 다시 역회전하며 칼끝으로 무명을 잡는다.
무명, 쳐다보면 뇌전의 칼이 찌를 듯 파고들다 멈춘다.
뇌전 : 어깨를 내주고 살길을 찾는다.. 재미있군. 그분을 도운 공은 이것으로 사라졌다.
다시는 그 분 앞에 나타나지 마라! 다음엔 죽일 것이니.
잠시 무명을 바라보다 사라지는 뇌전.
이를 악물고 뇌전을 바라보는 무명. 분해서 어쩔 줄 모른다.
F.O
S#21. 운현궁 대청마루. 낮
난초 잎을 닦고 있는 대원군. 부복하고 있는 뇌전.
대원군 : 예비중전을 죽이려 했다? 세도가들이 미련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군.
뇌전 : 본을 보이시겠습니까?
대원군 : 경사스런 일이 눈앞에 있음이야.
뇌전 : 이대로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대원군 : 알고 있네. 자네 임무가 더욱 막중하게 되었어.
뇌전 : 염려 끼쳐 드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대원군 : 그러리라 믿네. 지금처럼 조용히 처리해주게.
뇌전 : 알겠사옵니다.
대원군 : 참, 용호영 자네 직할로 군기감의 일부편제를 옮겨 별청을 신설하였네.
뇌전 :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으셨습니까?
대원군 : 보안 때문이네. 특별군기개발은 그곳에서 담당할 걸세. 특히 총을 막는 면제배갑 기술을 빨리 실현시켜야 하네.
그래야, 외세의 무력공격을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야.
뇌전 : 명심하겠습니다.
S#22. 간택녀 양반가. 밤
권세 있는 양반가. 잔뜩 주눅이 든 채 엎드려있는 소희.
쳐진 발 뒤의 권세 있는 양반은 뭔가 심기가 불편해 보인다.
발 앞으로 간사해 보이는 일종의 에이전트인 이 생원.
이생원 : 어르신 앞에서도 자꾸 이럴래?
소희 : 여자와 애들은...
이생원 : 시끄러! 넌 왜 이렇게 머리가 없니? (답답한 듯 자영이 그려져 있는 용파를 펼쳐 보이며)
이런 예쁜 여자가 하나 없어짐으로서 네 경쟁력은 한 칸 더 올라가게 되는 거야? 실용적으로 생각 좀 해! 실용적으로!
소희 : (머뭇거리며) 그래도...
그런데 순간 발 앞으로 툭 던져지는 돈주머니.
예상 밖의 액수에 이 생원과 소희 둘 다 놀라 눈이 동그래진다.
씨익 미소 짓는 양반의 딸. 간택 최종 후보 그녀다.
S#23. 강가 움막 안. 밤
자영의 모습이 담긴 용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무명.
용파를 바라보는 무명의 분위기가 심상찮다고 느꼈는지 소희는 미적댄다.
소희 : 힘들다고는 얘기했어. 그냥 보기만 해.
무명 : 이 여잘 왜 죽인다고?
소희 : 우리가 언제 이유 따졌어? 큰 돈 들일 이유가 있겠지. 뭐~
무명 : (용파를 품에 넣으며) 알았다.
소희 : (벙 찐 듯) 일 맡는 거야?
대두 : (책망하듯) 무명 형님!
소희 : 그래, 이 세상에 돈 보다 좋은 건 없지. 글구 예쁜 것들은 죽어도 싸.
S#24. 강가 움막 앞. 밤
강가에 나와 몰래 자영용파를 꺼내보며 흐뭇하게 웃는 무명.
대두가 뒤에서 다가온다.
대두 : 형님.
무명 : 에구머니나.
대두 : 우리가 비록 사람 잡아다 먹고 살았지만 지금껏 여자하고 애들은 안 건드렸잖아요. 돈이 딱히 궁한것도 아닌데
무명 : 대두야!
대두 : 왜 그러슈?
무명 : 소희와 난 비적단에서 컸지만 넌 지체 높은 양반들 댁에 오래 있었으니 양반 여자들에 대해 잘 알지 않느냐?
대두 : 남자도 아닌 듯이, 여자도 아닌 듯이 살아온 인생이라 남녀에 대해 잘 안다고 말 할 수는 있지요. 근데 그건 왜 묻소?
무명 : ...양반 여자들은 뭘 좋아하니?
대두 : 에?
무명 : 선물 같은 거 말이다.
대두 : (빤히 쳐다보며) 에~엥?
무명 : (민망한듯 모른척한다)
S#25. 감고당 대문 앞/마당. 낮
보자기로 싼 커다란 보퉁이를 들고 자영의 집으로 무작정 들어서는 무명.
뇌전의 수하 둘이 강하게 막아선다.
뇌전 : 무엄한 놈! 감히 이곳에 발을 들이다니...
무명 : 뵙기를 청한다 고해주시오.
뇌전 : 죽기를 청하는 것이냐?
무명 : 아니, 누가 죽기를 청한다 했소? 뵙기를 청한다 했지. 귓구멍이 막혔나?
뇌전 : (순간 칼을 뽑는 뇌전)
무명 : 참.. 뻑하면 칼을 뽑네. 누군 칼이 없어 말로 하는줄 아나? 무식하게...
뇌전 : 이 놈!
자영 : (OS) 그만하세요.
누각 위에 선 자영.
뇌전, 칼을 거두고 예를 갖춘다.
자영 : (무명을 보고) 무슨 일이 십니까?
자영의 말에 보퉁이를 내미는 무명.
몸종이 쪼르르 달려가 보퉁이를 받아 자영앞에 풀어보면, 커다란 호랑이 가죽. 놀라는 몸종.
자영과 뇌전 무명을 보면,
무명 : 한때, 너무도 강해지고 싶어서... 그걸 증명하고 싶어서...호랑이에게 덤빈 적이 있습니다. 아기씨께 드리고 싶습니다.
큰소리로 진지하게 말하고 돌아서 나오는 무명.
사라져가는 무명을 바라보는 자영.
뇌전이 그 뒤를 따르려 하자 제지한다.
자영 : 그만두세요. 선물을 가져왔을 뿐입니다.
자영의 제지에 더는 움직일 수 없는 뇌전.
뇌전 : ...
대문을 나서자 머리를 쥐어박고 한숨을 폭 쉬는 무명.
무명 : (스스로에게) 좀 작은놈으로 드릴걸 그랬나? 놀라신것 같던데...
S#26. 감고당 자영방. 밤
묵묵히 짐을 싸는 자영. 그 옆의 천복이(자영몸종).
무명이 선물로 남기고 간 호랑이 가죽을 보는 자영. 무명에 대한 생각들이 순간순간 떠오른다.
바다에서, 강에서, 너룻터에서. 천진난만한 모습, 거친 손과 몸. 왠지 알 수 없게 가슴이 답답한 듯 숨이 가빠 오른다.
가슴에 손을 얹고 큰 숨을 거칠게 내쉬는 자영.
드르륵-.
방문이 열리고 자영모가 들어온다.
자영 : 어머니.
자영모에게 방석을 깔아주고 나가는 천복이.
자영모 : 마마. 짐은 다 정리 하셨습니까?
자영 : 어머니, 아직 혼인 전입니다. 평소처럼 대해주세요.
자영모 : 아니되옵니다. 간택을 받으신 이후부터는 이미 왕가의 몸. 중전마마로 모시겠습니다.
자영 : 어머니... 오늘. 오늘 하루만이라도 절 자영이라 불러주세요.
자영모 : (사이) 내일 운현궁으로 가시면 언제 다시 뵈올지... 오늘이 함께하는 마지막 날입니다.
자영 : 어머니...
자영모 : 어미가 덕이 모자라 그동안 부덕한 말만 한 것 같아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자영 : 아닙니다, 어머니.
반짇고리를 자영에게 전하는 자영모.
안을 열어보면 ‘민자영’이라 이름이 수놓아진 손수건이 있다.
자영 : ...
자영모 : 공경함과 순종함이 부인의 도리니 종신토록 왕의 뜻을 어기지 마시고 어버이를 공경하고 잘하고 못하는 일 없이
오직...편안하게 또 편안하게 부디... 잘 살아다오.. 자영아.
자영 : 어머니...
S#27. 감고당 뜰. 밤
눈물을 철철 흘리는 천복이.
천복이 손을 꼭 잡고 같이 우는 아비.
S#28. 강가 나룻배 위/길 위. 낮. 비
운현궁으로 가는 자영 일행. 자영을 태운 가마. 뇌전과 수하들.
갑자기 쏟아지는 장대비.
수행나인 : 마마. 잠시 비를 피했다 가겠사옵니다.
가마행렬 나무 밑으로 비를 피한다.
자영이 나서면 최상궁이 우산을 들고 다가간다.
최상궁에게서 우산을 자연스럽게 뺏어들고 펼쳐 씌워주는 뇌전.
살짝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는 자영.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자영과 뇌전.
배 위에서 그 모습을 보는 무명.
마치 자기가 뇌전이 된 듯 번듯한 무관복에 우산을 씌워주는 상상하는 무명.
현실.
쏟아지는 빗줄기 속 세 사람.
S#29. 간택녀 양반가 마당. 밤
험상궂은 무사들이 득실댄다.
이 생원이 무사들의 이름을 확인하며 돈과 검은 복면을 건네고 있는데
소희는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린다.
잠시 후, 모퉁이에서 대두가 나온다.
대두의 등장이 의아한 소희, 다가가는데~
소희 : 네가 여기 어쩐 일이냐? 무명이는?
대두 : 그게... 잠깐, 얘기 좀 하까?
소희 : 뭔 얘기?
S#30. 운현궁. 밤
경계상황을 살피며 순찰하는 뇌전. 문득 인기척을 느끼고 걸음을 멈춘다.
뇌전 : 웬 놈이냐? 나서라.
어둠 속 기와지붕 위에서 삿갓으로 얼굴을 가린 대두 등장. 말없이 종이를 꺼내 뇌전에게 건넨다.
대두 : 칼잡이 여럿이 이걸 품고 모여있어. 곧 움직일거야. 어딘지는 짐작하겠지? 귀한 아기씨를 노릴만한데가 많지는 않을테니.
자영의 얼굴이 그려진 용파를 보는 뇌전. 어느새 어둠속으로 사라진 대두.
S#31. 운현궁 별당. 밤
잠들어 있는 자영을 내려다보는 무명. 아름다운 모습.
인기척에 잠에서 깨려는 자영. 혈을 눌러 자영을 기절시키는 무명.
S#32. 운현궁/ 뒷동산 위. 밤
운현궁 뒷곁에 오랏줄로 묶이고 있는 자객들.
그들을 제압한 뇌전과 수하들.
뒷동산에서 보고 있는 대두와 소희.
소희 : 무명이 이새끼. 나까지 속여? 괘씸한~ 하이고 이게 얼마짜리 일인데~ 뒤지게 아까운거~
그때 사색이 된 이생원이 헥헥대며 뒷동산으로 도망쳐온다.
소희 : 이 생원 저 인간 저거 진짜 쥐새끼네. 어떻게 저런 상황에서도 빠져 나오냐?
대두 : 심심한데... 쥐나 잡아볼까?
소희 : (돌아보며) 엥?
자객들을 보고 있던 뇌전 갑자기 생각난 듯 자영의 방 앞으로 빠르게 걸어간다.
뇌전 : 마마. 주무시옵니까?... 뇌전이옵니다.
빠르게 방문을 열어 제치는 뇌전.
S#33. 다리가 있는 마을길. 밤
기절한 자영을 품에 안고 말달리는 무명.
깨어나는 자영. 무명을 알아보고 놀란다.
자영 : 이게 무슨 짓입니까?
무명 : 무명이라 합니다. 어릴 때 요한이란 이름이 있었지만 세상사에 이름을 잃고 무명이 되었습니다.
빛이 없으니 이름도 없다. 그래서 무명입니다.
자영 : ...
S#34. 운현궁 뒷동산 위. 밤
‘너 이놈 어딜 도망치는 것이냐?’
기겁을 하며 땅바닥으로 고개를 처박으며 손이 닳토록 비는 이생원.
잠시 후 이 생원 상황이 어찌 되었나 보려고 고개를 들려 하면 눈앞으로 뭔가 휙휙 지나가는 소리 들린다.
놀라 고개를 다시 파묻고 들 생각을 못하는 이 생원.
보면, 대두와 소희가 장죽을 휘두르며 쇼를 하고 있다.
소희 고개를 파묻고 있는 이 생원을 다급히 흔든다.
소희 : 괜찮으세요? 나리? 큰 일 날 뻔 했습니다.
이생원 : (놀라다가 소희를 알아보고 울먹이며) 자네? 고맙네. 자네가 내 생명의 은인이네. (울음을 터트리며 소희에게 안기면)
소희 : (같이 감동하는 척 하며) 두 말하면 잔소리죠.
S#35. 강가. 밤
달빛아래 무명 말없이 자영을 바라보기만 한다.
그 시선이 왠지 불편한 자영.
자영 : 지난 번 선물은 고마웠습니다.
여전히 말없이 자영을 바라보기만 하는 무명.
잠시 말이 끊기고 침묵이 흐른다.
자영 :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자영이 옆을 스쳐지나가는 순간 확 자영을 끌어안는 무명.
놀라는 자영.
자영 : 무슨짓입니까? 내일이 되면 왕가로 혼인을 해야 할 몸입니다.
무명 : 제겐 오직 처음 보았던 그 모습뿐입니다. 지금 이 모습뿐입니다. 다른 건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자영 : 놓으세요. 저를 모욕하시는 겁니까?
무명 : 아기씨를 모욕하다뇨? 그런 뜻이 아닙니다. (무릎 꿇으며) 오래전, 내 어미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 때 알았습니다. 누구도 날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아기씨는 그곳에 가길 두려워하셨습니다.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자영 : 아니오. 내가 원해서 가는 것입니다.
무명 : 하지만, 바다에서...
자영 : 내일이 되면.. 자영이란 여자는 사라집니다. 다시는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을 것입니다.
사가에서의 모든 일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습니다. 이것으로 우리 만남은 충분한 것 같군요.
무명 : 아기씨....
마주보는 두 사람.
자영을 바라보는 무명의 눈빛이 안타깝다.
이 때 말달려 오는 뇌전. 멈추자마자 다짜고짜 무명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갈긴다. 그러나 무명은 대항하지 않고 맞기만 한다.
치고 또 치는 뇌전.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결국 칼을 뽑아든다.
무명을 찌르려는데 제지하는 자영.
자영 : 그만. 그만 하세요. 잘못을 뉘우치고 있습니다. 없었던 일로 묻어 두고 싶습니다.
뇌전 : 송구하오나 동의할 수 없습니다. 수 백 번 죽어도 씻지 못할 죄를 저지른 자입니다.
자영 : 이 일이 알려지길 바란다는 뜻입니까?
뇌전 : ...
자영 : 내일이 가례일입니다. 저는 물론 이 별장도 책임을 면할 수 없겠지요.
뇌전 : ...죽이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이 자에게 가르침을 주려는 저를 막지는 마십시오.
자영과 뇌전은 말을 타고, 무명은 묶인 채 말에 매달려 끌려간다.
뇌전이 박차를 가하자 속도를 이기지 못해 바닥에 쓸려가는 무명.
안타깝게 돌아보는 자영.
S#36. 운현궁 마당-창고 교차
S#36A. 창고. 밤
대들보에 매달린 채 지치고 핏발선 눈을 부릅뜨고 있는 무명.
S#36B. 별당. 아침
붓이 자영의 맨 얼굴위에 닿는다. 긴장한 듯.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
그 뒤로 머리담당, 화장담당, 예복담당, 장신구 담당 등
수많은 상궁나인들이 순서대로 엄격히 들어오고 나가면서 자영의 시중을 든다.
자영의 머리위에 왕후 혼례용 대수머리장식이 올려 진다.
S#36C. 마당. 낮
운현궁 마당에서 예식이 시작되고 자영등장.
귀공자 같은 풍모의 고종과 맞절을 올리는 자영.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뇌전.
S#36D. 창고. 낮
문틈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자영의 모습을 지켜보는 무명.
S#36E. 마당. 낮
대원군에게 절을 올리는 자영.
대원군도 맞절로 예를 올리고 대소신료들과 절을 주고받는 자영.
S#36F. 창고. 낮
창고 문이 열리고 들어서는 뇌전.
뇌전 : 똑똑히 보아라! 그리고 깨달아라. 감히 넘볼 수 없는 상대임을.
무명 : 넌 지키는 자냐? 해치는 자냐?
뇌전 : 무슨 뜻이냐?
무명 : 네 명예를 걸고 맹세해라. 저분을 영원히 지키겠다고. 내 목숨을 그 맹세의 제물로 주마.
뇌전 : 뭐야?
죽음을 다 받아들이겠다는 듯 눈을 감는 무명.
뇌전, 욱 하는 기분에 칼에 손이 가지만 차마 뽑지를 못한다.
무명 : 왜 주저하느냐?
뇌전 : 나에겐 이미 다른 주인이 있다.
무명 : 역시 넌 해치는 자였군. 해치기 위해 지키는.
휘익. 순식간에 칼을 뽑은 뇌전. 스륵 잘려 나가는 밧줄.
바닥으로 떨어지는 무명.
뇌전 : 네놈 따위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왕후마마를 마지막으로 뵈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할 터. 사라져라.
노려보는 무명.
S#36G. 마당. 낮
운현궁 마당에선 예식이 끝나고 자영이 가마에 오르고 있다.
S#37. 건청궁 첫날밤 처소. 밤
왕과 왕후의 첫날밤. 자영의 눈에 오직 청색예복하단부의 덧단이 보인다.
고종. 그는 아무 말 없이 계속 술을 따른다.
자영이 조심스레 눈을 들어 고종의 얼굴을 본다. 새색시의 부끄러움이 묻어난다.
고종 : 여자가 있습니다. 다른 여자가.
자영 : (고종의 말에 놀라면)
고종 : 벗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고, 신하도 아니고 허나 말은 통하는 어진 사람.
중전이라는 어진 사람을 곁에 뒀다 생각하겠습니다.
자영 : (충격) ...
고종 : 쉬세요. 하루 종일 고생이 많았을 텐데...난 이런 자리가 편치 않아서 다른 침방으로 가보겠소.
고종, 남은 잔을 들이키고는 일어선다.
자영 : 전하..
고종 : (본다)
자영 : 무겁습니다.
고종 : ?
자영 : 제 머리의 이것들을 내려주시지요. 허리가 휠 것처럼 무겁습니다.
조금 놀란 고종 자영의 앞으로 가 머리채를 올려서 내려준다.
그제야 고개를 드는 자영, 고종의 얼굴을 본다. 마주보는 두 사람.
고종 : 과인이 사려가 깊지 못했소. 괜찮으시오?
자영 : 한결 낫습니다.
고종 : 다행이군.
자영 : 전하! 궁 안의 모든 것은 마마의 것. 누구를 더 어여삐 여기신들 따라야겠지요.
고종 : 이해해주니 고맙소. (고종 돌아서 가는데)
자영 : 자치천하 하니 천하기이치야요...
고종 : (자영의 말에 걸음을 멈추더니) 이아유대자하면 오장위명호아?
그대가 천하를 다스려 천하가 이미 다스려졌는데 그걸 대신하는 건 옳지 않다...중전! 지금 아버님을 탓하는 것이오?
자영 : 그럴리 있겠습니까? 왕재는 하늘이 낸다 하였습니다.
제가 왕재의 아내로서 믿고 의지할 것은 오직 하늘의 뜻뿐임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고종, 가만히 자영을 바라보더니 침소를 나간다. 방문 앞에서 슬쩍 돌아보며 기분 나쁘지 않은 헛웃음을 흘린다.
잠시 후, 침방나인들과 최상궁이 들어온다. 더럽혀졌을 요를 갈기 위해서. 하지만 깨끗하다. 서로 눈치를 본다.
꼿꼿한 자영. 최상궁이 눈짓을 한다. 방을 정리하고 약탕을 자영앞에 두고 나가는 상궁들.
넓은 침실. 자영 혼자 남았다.
S#38. 강가 움막 앞. 밤
손이 뒤로 묶인채 스러질 듯 강 가로 걸어가는 무명.
대두와 소희가 황급히 달려가 무명을 부축한다.
달빛이 강 위에 부서진다.
F.O
S#39. 궁 고종 처소. 낮
승경원 놀이. 칸을 옮기며 후궁들을 잡는 재미에 푹 빠져있는 고종.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자영 일행.
내관 : 다시 고할까요?
자영 : 아닙니다. 전하께서 저리 기뻐하시니 그것으로 됐습니다.
발길을 돌리는 자영. 일행들 뒤를 따른다.
자영 일행이 사라지자 내관이 고종에게 다가와 고한다.
내관 : 중전마마 일행이 돌아가셨습니다.
고종 : 그래, 뭐라 하시더냐?
내관 : 전하께서 기뻐하시니 그것으로 됐다 하셨습니다.
고종 : 그것으로 됐다?
고종 자영이 간 쪽을 바라본다.
S#40. 건청궁 연못마당. 밤
침소 마당을 거닐고 있는 자영.
최상궁 : (다가오며) 주상전하께서는 이귀인의 침소에 드셨다하옵니다.
자영 : 이제 그런 보고는 하지 않아도 됩니다.
최상궁 : 송구하옵니다. 마마.
자영 : 아닙니다. 날 위해서 하신 말씀인줄 알고 있습니다.
최상궁, 보면 달을 올려보는 자영의 쓸쓸한 모습.
S#41. 강 위 나룻배 위. 밤
배위에 누워 물속의 달을 보고 있는 무명.
낚시하며 사랑가를 부르는 대두.
매운탕을 끓이며 청승 그만 떨고 일 좀 하자고 둘을 윽박지르는 소희.
S#42. 궁(경희궁). 낮
궁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겨있는 자영.
S#43. 바다. 낮
자영과 함께 간 바다. 해당화를 보고 있는 무명.
S#44. 건천궁 서재. 낮
궁녀들이 방문을 일제히 위로 올린다. 순식간에 광장처럼 넓은 공간이 된다.
자영이 후보였을 때 앉아있던 그 공간. 휑하고 넓은 그 방을 서재로 꾸민다.
벽이 책으로 가득하고 그림과 가구도 서양식으로 놓인다.
그 모든 것을 지시하고 있는 자영.
S#45. 바다. 낮
홀로 검을 휘두르는 무명.
S#46. 건청궁 서재 안. 밤
홀로 불을 밝히고 책을 읽고 있는 자영.
왕의 행차를 알리는 최상궁.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고종.
자영은 예를 갖추고 상석을 비워준다.
고종 :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소. 중전은 부족한 나를 왕이 되게 한 하늘의 뜻이 뭐라 생각하시오?
자영 : 난세를 극복할 혜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고종 : ...병자년 대란으로 청국에 볼모로 가 계셨던 소현세자 마마께서는 200년 전에 이미 양이의 문물을 접하셨고,
조선이 변화해야 함을 느끼셨소. 왕실서고에서 소현세자 마마가 남기신 글들을 읽었을 때
과인에게 그건 글이 아니라 채찍이었소.
자영 : 마마!
고종 : 난 아버님을 존경하오. 국통을 바로잡기 위해 그분이 애쓰신 모든 일들을 사랑하오. 하지만 아버님은...
자영 : 마마! 군주가 생각해야할 것이 무엇입니까? 오직 백성과 그 나라의 안위이옵니다.
고종 : 중전. 하늘이 내게 힘을 주기 위해 중전을 보내준 모양이오. 우리 서로를 믿고 백년지기 친구처럼 잘 지내봅시다.
고종, 자영의 손을 잡으면, 자영 왠지 좋으면서도 씁쓸하다.
자영 : 마마의 뜻이라면...
S#47. 궁 회의실1. 낮
회의를 주재하며 신하들에게 열변을 토하는 고종.
고종 : 나라를 구하는 정치란 별 것이 없습니다. 세력 없고 가난한 백성을 잘살게 해주는 것이 바로 선정입니다.
조선은 바다가 세상을 향해 열려있습니다. 조선의 수많은 항구를 개발하여 서구열강과 적극 교역하겠습니다.
국가 경제를 살찌워 안으로는 백성의 살림을 편안케하고
밖으로는 세상 어떤 나라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국가를 만들겠습니다.
대신들 : 성은이 황공하옵니다. 마마.
신하들 고종의 도전적인 말에 서로 눈치를 보며 당황한다.
상석의 대원군, 자신의 아들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S#48. 석파정. 낮
술 한 잔을 들고 생각에 잠긴 대원군의 얼굴에 살며시 미소가 피어난다.
뇌전 :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대원군 : 주상 말이야. 철없이 구는 게 아닌가 걱정을 했는데 요즘 왕재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어. (또 기쁜 듯 웃는다)
뇌전 : 그렇게 좋으십니까?
대원군 : 좋다 뿐이겠는가? 주상이 성군의 자리에 오르는 게 내 꿈 아닌가?
뇌전 : 너무 많이 양보한 게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원군 : 어리석은 인간들 같으니라구. 내가 권력을 쥐는 것이 주상과 대적하려 함이 아니지 않는가?
그 분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도록 보호하려 함이야. 그 소임을 다하는 데는 군권만으로 충분해.
나머지는 주상의 몫이야. 그나저나 별청에서는 좋은 소식이 없는가?
뇌전 : 별청제조가 조만간 좋은 소식을 전할 거라 귀뜸 해 주었습니다.
대원군 : 이제 면제배갑이 현실화되는 건가?
S#49. 창덕궁 후원. 낮
한 폭의 난 그림이 보여 진다. 절벽에서 고고하게 자란 대원군이 그린 묵란.
고종 : 역시 아버님의 난은 천하일품입니다.
자영 : 과연.. 멋진 난입니다.
차를 마시고 있는 고종과 자영, 대원군, 민승호, 영상, 좌상, 우상, 이판, 병판등. 호위를 책임진 뇌전과 부하들이 서있다.
대원군 : 중전께서도 난에 관심이 있으셨던가요?
자영 : 난은 사대부의 기개와 선비의 고고함을 표현한다 들었습니다.
대원군 : 맞습니다, 놈은 참 특별합니다. 꽃을 피우기 위해 들여야 할 정성이 남다르지요.
조금만 소홀히 하거나, 조급증을 가져도 꽃을 볼 수 없습니다. (고종을 돌아보며) 주상!
고종 : 네, 아버님!
대원군 : 주상께서 양이와의 교류에 관심을 표명하셨지만 그건 안 될 말입니다. 난을 피우는 정성으로 신중해야 합니다.
고종 :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대원군 : 그렇지요. 아셔야 할 겁니다.
자영 : 하오나 아버님. 꽃을 피워보지 않고 어찌 꽃을 피우는 지혜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대원군 : 천주교와 아편을 앞세운 양이에게 나라를 열어주고 몰락의 길을 걸은 청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오.
자영 : 중요한 건 대국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단 점입니다. 양이와의 교류가 없다면 제이의 지혜도 얻을수 없을 것입니다.
대원군 : 중전! 지금 정치를 하려 하심이오? 이 나라 사직이 외척의 득세에 어떻게 유린되었는지 잊으셨소?
중전이 그 전철을 다시 밟으시겠다면 나 또한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오.
대원군의 엄포에 좌중은 사색이 될 정도로 얼어붙는다.
고종은 꿋꿋이 버티며 자영을 본다.
대원군 : 물론 중전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오. 중전을 온전히 보필하지 못한 나의 잘못도 큽니다.
간곡히 부탁드리오니 다시는 이와 같은 모습을 보지 않도록 하여주옵소서.
자영 : ....
대원군 : (소리친다) 금위대장은 이리 가까이 오라!
뇌전 : 예! (다가오면)
대원군 : 나를 대신하여 여기 이 찻잔을 중전 마마께 받치라!
뇌전 : 예!
대원군 : 사죄의 뜻으로 올리는 찻잔이오니 너그러우신 마음으로 간압하여 주시옵소서.
뇌전, 공손하게 찻잔을 들어 중전에게 가져간다. 찻잔을 놓으며 곁의 자영에게 속삭인다.
뇌전 : 대원위 대감과 맞서지 마시옵소서. 마마를 지켜줄 힘을 잃게 될 것이옵니다. 부디....
뇌전, 찻잔을 놓고 예를 갖추고 돌아선다.
차를 드는 자영. 모두의 시선이 자영을 향하고 있는데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차 한 잔을 편안히 마신다.
그 모습을 보는 대원군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찻잔을 내려놓고 대원군을 보면 눈이 마주치는 두 사람.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S#50. 운현궁. 아침
쿵... 장정하나가 얼굴을 싸매고 땅바닥을 뒹굴고 있다. 무명이다. 건장한 대원군의 수하들이 무명을 가로막고 있다.
무명 : 비켜라. 대원군을 뵈러 왔다 하지 않았느냐! 대원위께 아뢰오.
뇌전 다가온다. 무명과 눈이 마주친다.
뇌전 : 네놈이 정녕 죽고 싶구나.
무명 : 대원위께 아뢰오.
대원군 : 무슨 일로 아침부터 이리 소란스러운가.
뇌전 : 황송합니다. 미친자이니 곧 쫒아버리겠습니다.
무명 : 대감! 대감께서는 출신을 따지지 않고 인물을 중용한다 들었습니다.
(뇌전을 가리키며) 만일 저자와 싸워 이긴다면 소원을 들어주시오.
대원군 : (한바탕 웃는다) 자네.. 이 장교가 누군지 아는가? 정말 알고 하는 소린가?
뇌전이 못 참고 나선다. 대원군이 뇌전에게 이른다
대원군 : 자네가 움직이는 것은 곧 내가 움직이는 것. 경솔히 행동 말라. (무명에게) 니 배짱이 진짜인지 한 번 볼까?
(부하에게) 면제배갑을 입히라.
부하들, 순식간에 웅성거린다.
cut to
대원군이 대청에 앉아 있고 한명의 부하가 무명에게 면제배갑을 입힌다.
대원군 : ...그것은 총알을 막아내는 옷이다. 허나, 아직 사람이 실험해보진 못했다. 어떠냐? 할 수 있겠느냐?
무명 : 하겠소.
대원군 : 그래? 죽음도 각오하겠다는 너의 가상한 소원이 무엇이냐?
무명 : 금군이 되어 궁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뇌전 : ...
대원군 : 왜 하필 궁인가?
무명 : 워낙 미천하게 태어난지라 하늘아래 제일 높은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왕 꼬리인데 뱀 꼬리보다는 용꼬리가 좋지 않겠습니까?
대원군 : 그게 전부이더냐?
무명 : 예.
대원군 : 만약 네가 목숨을 부지한다면 네 소원을 들어주겠다.
고개를 드는 무명. 뇌전과 눈이 마주친다.
부장이 총을 들어 무명을 겨눈다.
무명 눈을 감고 힘을 모은다. 구경하는 부하들 긴장한다.
대원군이 뇌전에게 시선을 준다. 뇌전이 신호를 준다.
타타탕~ 세 발이 연속으로 무명을 향한다.
퍽 퍽 퍽. 연이은 총알의 충격에 무명이 고꾸라진다. 고요하다. 사람들 할 말을 잃었다.
웅크리고 있던 무명, 툭툭 털고 일어난다. 하지만 숨 돌릴 틈도 없이.
뇌전 : 재 발사.
사수가 당황하며 대원군의 눈치를 살피다 거총을 한다.
면제배갑은 이미 너덜너덜하다. 영락없이 죽을 판이다. 부하들 웅성거린다. 타타탕~.
총알은 강한 충격으로 무명을 날려버린다.
바닥에 처박히며 죽은 듯 꼼짝 않는 무명. 면제배갑은 완전히 너덜너덜해졌다.
병사들 몇이 달려가 무명의 상태를 살핀다.
대원군 : 총알을 막았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다. 아쉬움이 크다.
부하들 황공함에 부복한다.
대원군 : 죽었는가?
부하 : 아직 숨이 붙어 있사옵니다.
대원군 : 끈질긴 목숨이군. 저자의 소원을 들어주라.
뇌전 : (불쑥)위험합니다.
대원군 : 위험? 자네 입에서 위험이라고 했나? 위험은 눈앞에 있지 않아. 자신의 연약함에 있지...
뇌전 : ...
대원군 : 재밌잖나. 저 친구. 잘 데리고 있게.
대원군, 일어나서 자리를 뜬다.
뇌전 :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을 되씹는다) 위.험.합.니.다.
흙바닥에 버려진 채 죽은 듯 쓰러져 있는 무명의 모습.
F.O.
S#51. 건청궁 서재 안. 낮
자영이 뭔가를 오물오물 씹고 있다.
외국대사의 부인들과 고관대작의 부인과 아이들이 자영에게 집중한다.
자영의 위엄 있는 자태에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손님들.
지경출 : 쵸콜렛. 쵸콜렛이라고 합니다.
자영 : 삼키기가 싫습니다. 이 맛이 너무 달콤해서...삼키기가 싫어요. 그러자니...녹아버리네요. 참으로 안타까운 맛입니다.
각 대사부인들의 뒤에 배석한 남녀 통역관들이 일제히 조용한 소리로 통역한다. 여러 국어가 뒤섞인다.
자영, 혀로 이빨에 남아있던 쵸콜렛을 핥더니 입을 가리며 슬쩍 웃는다.
자영의 손짓에 궁녀들이 달려와 자영의 입을 천으로 가려준다.
궁녀들의 도움으로 입안에 묻은 쵸콜렛을 마저 닦아낸다.
천이 내려지고 이제야 치아가 보이게 웃는 자영.
아이들에게도 어서 먹으라고 권하면 그제야 초콜렛을 맛있게 먹는 아이들.
자영 : 쵸...콜....렛. (이사벨을 보며) 프랑스에서도 이렇게 말하나요?
이사벨의 통역을 맡은 역관, 지경출이 통역한다. 그는 프랑스어가 서툴러 더듬더듬 코믹하다.
이사벨 : 쇼,콜,라.
자영 : 쇼.콜.라. 훨씬 부드럽습니다. 아...처음 보시지요. 법국에서 온 화가이자 의사십니다.
언더우드씨와 함께 왕실진료를 도와주실 겁니다.
같이 있던 부인들. 각자의 통역을 듣고 이사벨을 향해 인사한다.
자영 : 이사벨! 이사벨이 본 조선은 어떤 모습입니까?
이사벨 : 여기 하늘은..바다 같습니다.
자영 : ?
통역 : 자기 눈엔 하늘이나 바다나 똑같다 하옵니다.
자영 : 그래, 조선에 대해 또 어떤 인상을 받으셨습니까?
이사벨 : 어딜 가나 밥 한 끼 얻어먹을 수 있습니다. 조선은 따뜻합니다. 사람의 마음도..바닥도.
자영 : 바닥? 아...온돌 말이군요. 하하하하.
S#51A. 시간경과. 오후
모두 돌아가고 이사벨과 통역관 지경출만 남아있다.
자영과 이사벨 동시에 통역관 지경출을 보면, 무슨 뜻인지 몰라 민망한 지경출.
자영이 나가있으란 신호를 보내자 그제야 뭔 말인지 알아듣고 화색이 된다. 살았다는 듯이 도망치듯 후다닥 나가는 지경출.
그 모습이 우스운지 두 여인의 입에서 작은 웃음이 흘러나온다.
완전히 둘만 남자 자영이 손을 뻗어 이사벨의 손을 소중한 듯 잡는다.
자영 : 이사벨 우린 꼭 해내야 합니다. 이 나라를 위해 꼭 이 일을 성사시켜야 합니다.
(불어로) 부디 좋은 소식을 가져왔기를 바랍니다.
이사벨도 그렇게 행동하는 자영의 속마음을 아는지 환하게 웃어준다.
주변을 살피고 자영에게 은밀히 서찰을 전하는 이사벨.
서찰을 펴서 읽기 시작하는 자영.
S#51B. 동
자영이 편지를 보는 동안 지도 자료화면 등과 함께 서조선만 프로젝트에 대해 검토하고,
회의하는 윈난 신디케이트 오귀스트와 사업담당자들의 모습이 인써트 되며 보여 진다.
“존경하옵는 국왕폐하, 용암포, 진남포, 제물포를 잇는 지역을 동북아 물류센터로 만들어보겠다는
폐하의 놀라운 제안에 저희는 크게 고무되어 있습니다. 서조선만 배후지역의 철도 건설과 관련해서 시베리아 횡단철도나
남만주철도 연결지점과의 접근성을 지적하신 것도 놀라울 따름입니다.
저희는 철도 건설 기술은 물론 탄광 채굴권을 담보로 미화 500만 달라 이상의 차관을 제공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다만 일본이 조선에서의 군사개입문제에 대한 동의를 얻는데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정보가 마음에 걸립니다.
저희 우려가 씻기고, 이 일이 성사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폐하와의 만남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윈난 신디케이트 대표 오귀스트 카잘스 올림 ”
S#52. 궁 회의실1. 낮
승복을 입은 일본공사 미우라와 관료인 혼다가 고종을 기다리며 앉아있다. 오래 기다린 듯 표정들이 굳어있다.
혼다는 그렇게 앉아있는 게 여간 좀이 쑤신 게 아닌 모양이다.
고종 : (들어오며) 어이고, 많이 늦었습니다.
미우라 : 아닙니다. 폐하. 기쁜 마음으로 폐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종 : 그렇게 말해주니 내 마음이 아주 가벼워집니다. 아~
미우라 : 미우라입니다.
고종 : 미우라 공사. 조선에 오신 걸 환영하오.
미우라 : 감사합니다. 저희 일본은...
고종 : 아, 미안하오. 요즘 양이의 문물 배우기에 푹 빠져 지내다 보니 세상일에 좀 소홀했소. 이것저것 재미난 게 많습디다.
미우라 : 무엇이 그렇게 재밌으셨습니까?
고종 : 방금 전에는 양이의 희랍신화라는 책을 읽었는데 거기에 한 악당 이야기가 참 재밌습디다.
그 악당한테는 쇠침대가 하나 있는데 지나가는 행인을 잡아다 그 침대에 묶고는 쇠침대보다 몸길이가 길면
그만큼 잘라서 죽이고, 짧으면 그만큼 늘려서 죽였다고 합니다.
혼다 : 오~ 참 재밌는 얘기입니다. 폐하.
고종 : 그렇지요? 그런데 더 웃긴 게 뭔지 아시오? 그 놈 또한 어떤 영웅한테 똑같은 방법으로 죽는다는 겁니다.
혼다 : 아하하. 정말 웃긴 일이군요.
그러나 미우라는 웃지 않고 가만히 고종을 쳐다본다.
고종도 웃음 띤 얼굴로 그런 미우라를 마주 쳐다본다.
미우라 : 조선의 정치는 전하께서 알아서 해주십시오. 보시다시피 저는 부처님 공덕이나 빌고 조선의 절경이나 즐기겠습니다.
스윽, 웃음을 거두는 고종.
S#53. 궁 회의실1 앞(경희궁). 낮
돌아가고 있는 미우라와 혼다.
혼다 : 공사님. 조선 왕은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때가 어느 땐데 하찮은 이야기책에나 매달려 있다뇨?
미우라 : 그게 그렇게 우스웠나?
혼다 : 아, 아닙니까?
미우라 : 조선왕은 우리 일본에게 경고를 한 것이다.
혼다 : (놀라며) 예~에?
미우라 : 일본 맘대로 조선을 재단하려 한다면 일본 또한 똑같은 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아니, 그건 협박이나 마찬가지지.
혼다 : 그게 정말입니까? 조선왕은 협박을 뭐 그렇게 어렵게 한답니까? 저 같은 놈은 그게 협박인지 뭔지 알아먹겠습니까?
S#54. 운현궁. 밤
대청에서 바둑판에 알을 놓고 있는 대원군.
뇌전이 대원군에게 정보보고를 하고 있다.
뇌전 : 제물포와 대련간의 증기선이 개통된 후로 조선을 찾는 외국인들이 크게 늘었다 합니다.
특히, 항구 주변에는 일본인들이 대거 정착하고 있고 영국인 의사가 제물포 인근에 서양식 별장을 지었는데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모양입니다. 이제 조선 땅에서 양이를 보는 것이 더 이상 신기한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대원군 : 궁의 사정은 어떠한가?
뇌전 : 중전마마께서 외국공관의 대사부인들과 연회를 가지셨습니다. 통례적인 일이라 크게 신경 쓰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발전시설 설비작업을 하는 미국인들이 향원정 주변에서 작업을 시작하였는데 당분간...
대원군 : 내가 그렇게 말렸건만....
뇌전 : 궁에 전기를 들이는 일은 중전마마께서 심혈을 기울이신 일이라 전하께서도 어쩔 수 없었을 것...
뇌전의 뺨을 후려치는 대원군.
대원군 : 언제부터 이 나라가 중전을 중심으로 움직였단 말이냐?
대원군의 표정이 단호하면서도 섬뜩하다. 강한 자극을 받은 뇌전.
S#55. 마을 주막1. 낮
웃음소리.
보면, 장터주막 한켠에서 냉수 한 그릇을 떠놓고 혼례를 올리는 총각, 처녀.
주막의 술 취한 사람들이나 구경꾼들이 놀리고 훼방해도 그저 싱글벙글이다.
주막 다른 쪽 마루에 걸터앉아 구경하고 있는 무명, 대두, 소희.
소희 : 정말 저렇게라도 결혼하고 싶을까? 나는 정말 이해 안된다.
대두 : 왜? 나는 이해되는데? 이런 주막에서 결혼하면 오늘 같은 날 막걸리라도 한잔 얻어먹을 수 있고, 운 좋으면
근사한 저녁상에 뒷방이라도 방 같은 데서 첫날밤을 보낼 수 있는데 없는 청춘남녀가 왜 마다하겠어? 나라도 하겠다.
소희 : 그래, 오늘은 그렇다 쳐. 내일은 어쩌냐? 한 푼도 없는 것들이...
무명 : 왜 내일 걱정을 오늘 해?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소희 : 머?
무명 :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거 아냐? 난 부러운데... (일어나면)
소희 : 어디가?
무명 : 가봐야 돼! 내일 왕비마마의 출궁행차가 있어서.
대두 : 그럼, 내일은 멀리서나마 얼굴이라도 볼수 있어요? 와! 이게 몇 개월 만이우?
무명, 씁쓸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는 혼례식 상에 돈을 좀 올려 주고는 주막을 나간다.
소희 : (무명을 보며) 미친놈! 언제 철들런지...
대두 : (여전히 혼례에 시선이 가서) 아, 참 보기 좋네. 누님은 시집가고 싶지 않아?
소희 : 누구 염장 지를 일 있냐? 난 가고 싶지. 근데 누가 나한테 장가를 오겠냐고? 너라면 오겠냐?
대두 : 왜? 누님이 어때서. 나라면 간다. 근데 내가 가겠다면 나한테 시집은 올 거야?
소희 : (한숨을 쉬며) 아효, 살다보니 이런 것한테도 무시를 다 당하네! 내 팔자가 왜 이러냐?
(버럭) 내가 아무리 못 생기고, 궁해도 그렇지 내가 아랫도리도 안 여문 애한테 시집을 가냐? 내가 병신이냐?
대두 : 뭐? 아랫도리도 안 여문 애?
소희 : 그래!
대두 : 와, 진짜. 사람 우습게 보네?
소희 : 그럼, 네가 우습지 안 우습냐? 쬐그만 것이 계집애 같은 게... 그게 있긴 있냐?
대두 : 내 이름이 왜 대둔줄 알어?
소희 : 그건 알아 뭐해? 쓸데없이.
대두 : 뭐?
열받아 씩씩대며 벌떡 일어나는 대두. 소희가 보게 아랫도리를 확 내린다.
대두 거를 보고 깜짝 놀라는 소희. 허걱!
대두 : 왜 양반댁 마나님들이 날 옆에 끼고 산 줄 알겠어?
소희 : (고개를 끄덕인다. 감격하여) 오메, 실한고... 니한테 이런 게 있는 줄 알았냐? 진작 좀 얘기를 허지. 이리 와!
(대두를 확 끌어 당겨 덮치면)
S#56. 산사 대웅전. 낮
대웅전에서 절을 하고 있는 자영.
수행하는 상궁들과 뇌전을 필두로 호위무사들이 마당에 도열해 있다.
부처상을 향해 온힘으로 절 올리는 자영.
주지스님이 다가와 은밀히 서류 하나를 건넨다.
S#57. 산사마당. 낮
스님들의 합장을 받으며 덩으로 향하는 자영.
도열해 있는 호위무사들과 상궁, 환관.
두 줄로 도열한 병졸들 자리의 뒷줄에 서있는 무명. 앞의 병사를 톡톡 치는데 병사는 꿈쩍도 안한다.
저만치서 자영이 다가오고 갑자기 앞의 병사를 뒤로 확 끌어내고 자기가 앞줄에 선다.
병사들 줄에서 흔들거리는 움직임이 자영의 시선을 뺏는다.
무명을 알아보는 자영. 놀라지만 모른 척 덩으로 향한다.
주시하고 있는 뇌전.
S#58. 산사 앞 숲길. 낮
바람이 불어 숲의 나무들이 쏴아~ 바다 소리를 낸다.
길게 이어지는 왕후의 행렬.
왕후의 덩 옆쪽으로 서있는 무명. 자기를 알리고 싶어 애타는 마음으로 덩 쪽을 힐끗힐끗 쳐다본다.
덩 안.
자영, 조금 열린 쪽문으로 바람을 느끼며 표정이 아련해진다.
나비 하나가 덩 안으로 들어왔다.
‘자영-’그 때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릴 듣는다.
놀라며 밖을 확인해보는 자영. 똑같은 복장들이라 누가 누군지 분간하지 못한다.
나비가 날아가 한 병졸의 어깨에 내려앉는다. 자세히 보면, 무명이다.
덩을 힐끗 보며 몰래 자영을 외치고 모른 척 한다.
그 귀여운 모습에 살포시 미소 짓는 자영.
그러나 이내 자세를 바로 하는데 갑자기 가슴에 손을 얹더니 숨을 고르기 시작한다.
S#59. 건청궁 후원. 낮
자영이 후원으로 나서면 저만치 서 있는 무명을 본다.
천복이 무명에게 달려간다.
신이 나서 달려오는 무명. 기쁜 마음에 입이 벌어진다.
신이 나서 뛰어오는 무명을 보고 있는 자영. 가벼운 미소가 입가에 띤다.
다 와서 자세를 바로 하고 근엄하게 자영 앞으로 나간다.
자영 : 궁에 온지 오래라 들었습니다. 헌데 그동안 보이지 않더군요.
무명 : 아닙니다. 항상 지척에 있습니다. 단지 마마의 눈에 띄지 않았을 뿐 입니다.
자영 : 헌데, 오늘은 잘 보이는 곳에 있네요.
무명 : 오늘은 마마의 곁에도 사람이 있음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자영 : ...무명.
무명 : 하명하십시오.
자영 : 어찌하여 이곳에 왔나요? 이곳의 삶을 원하지 않았을텐데..
무명 : 신의 칼이 어찌 살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자영 : 그게 무엇입니까?
무명 : 왕후마마를 지키는 것이옵니다.
자영 : ....
S#60. 궁(경희궁). 저녁
뇌전 : (놀란 듯 돌아보며) 뭐야?
부관 : 중전마마의 가마가 궐문을 빠져나갔다 하옵니다.
S#61. 숲길. 밤
빠른 걸음으로 숲길을 지나가는 중전의 가마.
뇌전과 부하들이 급히 말을 몰아 추격하고 가마를 막아선다.
말에서 내려, 가마 앞에서 부복하는 뇌전.
뇌전 : 경호 없이 단독으로 출궁하시는 것은 위험한 일이옵니다. 마마께서...
이때, 불쑥 가마 문이 열리고 그 안의 대두.
뇌전 : 넌 누구냐?
대두 : (고개를 숙이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불초소승 중전마마의 시름을 달래드리고자...
뇌전 : 어떻게 된 것이냐?
수하1 : 분명... 중전마마가 타셨다고 보고를 받았습니다.
S#62. 이사벨집 안. 밤
자영과 이사벨, 오귀스트가 마주 앉아있다.
자영, 오귀스트에게 서류 하나를 내민다.
자영 : 니콜라스 2세가 직접 서명한 양해각서입니다. 윈난 측에서 염려하는 군사적 보호조치에 대한
러시아 황제의 확고한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서류를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오귀스트.
자영의 뒤에는 무명이 버티고 서 있다.
오귀스트 : 마마. 어떻게 이런 파격적인 외교적 합의를 끌어내신 겁니까? 대단하십니다. 저희 윈난의 걱정은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자영 : 그럼, 합의는 성사된 겁니까?
오귀스트 : 물론입니다. 가능한 빨리 필요한 후속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오귀스트가 자영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나간다.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자영.
이사벨 : 따뜻한 차를 더 준비하겠습니다.
자영 : 그보다 술 한 잔 마실 수 있을까요?
모두 자영을 본다.
CUT TO
코르크 마개를 따고 와인 잔에 포도주를 따르면 기품 있게 마시는 자영.
자영 : 이제 시작입니다. 서조선만 개발 프로젝트는 서양식 자본을 통해 국부를 창출하려는 것이 목적이지만
열강들 간의 세력균형을 만들려는 전하의 외교적 의지이기도 합니다. 그래야만 날로 커지는 일본의 야욕을
견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어로) 귀국과 우린 동등한 친구가 될 것입니다.
이사벨 : 진정 원하는 바입니다. 마마.
묵묵히 듣고 있는 최상궁과 무명.
자영 : 아! 코르셋. 그걸 입어보고 싶습니다.
이사벨 : (알아들은 듯) 코르셋.
최상궁 : 마마. 여기서는...
자영 : 어떻습니까. 선입관을 갖고 거부하기 이전에 무엇이든 경험해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꼭 입어볼 것입니다.
CUT TO
병풍 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 자영.
이사벨이 코르셋을 조여주고 있다.
힘주어 끈을 당길 때마다 흡~. 호흡을 잔뜩 들이키며 진땀을 빼는 자영.
웃는 이사벨. 최상궁.
CUT TO
이사벨의 서양식 드레스를 입고 나오는 자영.
놀라는 무명.
자영 : 허리가 드러나니 제가 다 드러나는 기분입니다. 한복은 아주 자유롭습니다. 많은 비밀을 감추고 있거든요.
(허리에 팔을 대고 누르는 시늉. 미소)
이사벨 활짝 웃는데 최상궁, 무명 제대로 웃지 못하고 어색하다.
S#63. 일본 공사관 앞. 낮
본국에서 날아온 전신을 들고 다급히 들어오는 혼다.
혼다 : 러시아와 조선 간에 부동항을 제공하는 양해각서가 체결되었다는 첩보가 입수됐습니다.
본국에서는 미우라 공사께서 러시아와 조선의 비밀거래 내용을 파악하고 대책들을 강구하라는 지시가 왔습니다.
생각에 잠기는 미우라.
S#64. 궁 회의실1. 낮
고종 : 친일내각 구성과 궁내 신식군대 배치! 이게 진정 일본의 요구사항이오?
미우라 : 폐하! 일본정부는 조선이 동반자관계인 일본을 저버리고 러시아와 가까이하는 것에 매우 우려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조선이 러시아에 부동항을 제시했다는 터무니없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폐하! 일본의 우려를 씻어줄 적절한 조치를 취하십시오. (고개를 숙이지만 비열한 눈으로) 부탁드립니다.
고종 : ....
S#65. 석파정. 밤
모인 대신들. 일본을 성토하는 분위기다.
묵묵히 대신들의 말을 듣고 있는 대원군.
대신1 : 이건 명백히 내정간섭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협상이라뇨?
대신2 : 박영효, 김홍집 등을 중심으로 친일내각을 구성하는데 일차적인 의견접근이 있었다 하옵니다.
대신3 : 그뿐 아닙니다. 궁내 신식군대 배치문제도 안될 말입니다.
대신1 : 신식군대는 조선인이라고는 하나 현재는 일본의 지휘를 받는 일본군대나 마찬가집니다. 절대 불가합니다.
대신2 :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대원군 : 협상을 주도하는 것이 누구요?
대신1 : 중전의 인척인 민승호입니다.
대신2 : 그 자가 중전의 명을 받아 나라를 팔아먹으려 하고 있어요.
대신3 : 뿐입니까? 조선을 개발한답시고 러시아에 부동항을 팔아먹고
실로 엄청난 돈을 빌려 나라를 빚더미에 올려놓으려 하고 있어요.
대신1 : 대원위께서 나서셔야 합니다.
대신들 : (합창한다) 대원위께서 나서셔야 합니다.
대원군 : ....
S#66. 민승호집. 밤
보름달이 밝다. 마당을 배회하는 무명, 달을 보며 한숨 쉰다.
무명 : 마마를 못 뵌 지 벌써 보름이 넘었군...
자영모 : (식혜주며) 밤늦게 수고가 많아요.
무명 : 고맙습니다.
자영모 : 나같은 사람이 위험한일이 뭐가 있을라고. 괜한고생 하는구료.
무명 : 시원하게 잘마셨습니다.
자영모 : 그래요. 좀 쉬고 그래요.
자영모를 바라보다 집 뒤편으로 가는 무명.
툇마루에 걸터앉아 한숨 쉬는 무명.
무명 : 이러다 영영 궁으로 못 돌아가는 거 아냐?
INS 건청궁 후원
(인써트 - 플래시백)
자영 : 집안일로 어머니께서 민 대감댁에 한동안 머물 것입니다. 요즘같은 시국에 아무래도 마음에 걸립니다.
어머니를 지켜주세요. 믿을 수 있는 건 그대뿐입니다.
S#66A. 민승호집. 밤
한숨을 다시 쉬는 무명.
멍하니 상사병 걸린 사람처럼 얼빠진 눈으로 달을 올려본다.
S#67. 석파정. 밤
대원군과 그 옆의 뇌전.
대원군 : 자네도 내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나?
뇌전 : 소장이 정치에 대해 뭘 알겠습니까?
대원군 : 부정하지 않는 걸 보니 자네도 그리 생각하는구만.
뇌전 : 한편으론 그런 마음이 없지는 않습니다.
대원군 : 내가 역도가 되기를 바라는가?
뇌전 : 설마...
대원군 : 산이 움직임에 있어 명분이 부족하다면 역도나 진배없는 꼴이 되네...명분은 항상 충분함만으로는 부족하지.
넘치고 넘칠 때만이 겨우 채워지는 법이네. 아직은 그저 충분할 뿐이야.
뇌전 : ....
대원군 : 하나 움직이지 못한다는 핑계로 국혼을 팔아먹는 자를 응징하지 못하는 것 또한 죄가 될 것이야.
조선에 법이 있다 하나 그것이 국혼을 팔아먹는 자를 지키기 위함은 아닐 것일세.
뇌전 : 그렇다면...
대원군 : 본보기를 보여주게.
뇌전 : ...알겠사옵니다.
S#68. 궁 후원(경희궁). 밤
궁 담장에 자객처럼 착 붙은 듯 엎드려있는 무명.
그의 시선을 따라가면, 멀리 정원을 홀로 거닐고 있는 자영.
멀리 자영을 보며 그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난다. 자영을 지켜보며 뭔가 가슴이 탁 터질 것 같은 한숨을 쉰다.
S#69. 민승호집 대문 앞/방 안. 밤
대문이 빼꼼이 열리며 꼬마 계집종이 고개를 내민다. 누군가에게 예쁜 보자기에 싸인 물건을 받는다.
주근깨가 송송한 귀여운 아이는 안채로 향한다.
방문 열리면 식사 중인 민승호와 자영모.
보자기를 풀어보는 민승호. 상자와 열쇠가 들어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숨어서 빼꼼이 들여다보는 주근깨 소녀.
역시 궁금한 민승호와 자영모.
상자에 열쇠를 집어넣는 민승호. 찰칵. 열쇠를 돌리자~ 소녀의 얼굴이 붉게 물든다.
화염이 솟구치는 커다란 폭발.
S#70. 건청궁 자영침소 안/밖. 아침
죽은 듯 엎드려 있는 무명.
그 앞으로 지친 기색의 자영.
자영 : (사이) 그렇게 당부를 하였건만...도대체 어디 계셨던 겁니까? 원망스럽습니다. 원망스럽습니다.
자영의 원망 섞인 말이 칼을 찌르듯 무명을 괴롭힌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무명.
자영 : 지금은 더 보고 싶지 않으니 그만 물러가세요.
자영의 말에 예를 갖추고 물러나는 무명.
문득, 자영의 외면한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방 밖으로 나와 문 앞에서 경계를 서는 무명.
자영 : 최상궁. 명심하세요. 오늘 행사가 끝날 때까지 난 이 소식을 못들은 겁니다.
최상궁이 내게 전해주지 못한 겁니다. 알겠습니까?
최상궁 : 예. 마마.
그렇게 말하는 자영에게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최상궁 : 행사에 가시려면 더는 우시면 아니 되옵니다. 마마.
자영 : 알고 있습니다. 잠시만. 잠시만. 더. 어머니를 잃었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나 때문에... 이 못난 딸 때문에....
더는 참을 수 없는 듯 다시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하는 자영.
밖에서 자영의 설움과 통곡을 듣는 무명은 괴롭다. 입술을 깨물며 눈을 부릅뜨고 공감해 오는 슬픔을 참아낸다.
그의 몸에서 분노가 끓어오르며 그의 몸을 흔든다. 어디론가 성큼성큼 무섭게 걸어간다.
S#71. 궁안 여러 곳. 저녁
전기점화 행사장
취주악대가 음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고종이 ‘개화문명’ 이라 외치자 한 문필가가 엄청난 크기의 붓으로 ‘개화문명’ 휘호를 쓴다.
내 외빈들이 휘호를 감상하며 술과 음식을 먹고 있는 자연스런 분위기.
하지만 지켜보고 있는 고종과 대원군과 미우라. 긴장감 흐르는데~
S#71A. 건청궁 자영침소 안.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고 있는 자영.
S#71B. 궁 결투 장소.
마주 서있는 무명과 뇌전.
무명 : 니놈 짓이란 걸 모를 것 같나? 마마의 눈물을 네 놈의 피로 대신할 것이다.
뇌전 : 그렇다면 먼저 네 스스로의 목을 베어야겠군. 제대로 지키지 못한 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냐?
무명 : 비열한 놈!
뇌전 : 아, 이제 지친 것인가? 지킬 수도, 다가갈 수도, 품을 수도 없는 존재 곁에 있는 고통이 그리 크던가?
무명 : 닥쳐. 아가리를 찢어버리겠다.
뇌전 : 건방진 놈! 그 고통을 내... 덜어주지.
뇌전의 입가에서 씨익 미소가 피어나자 순식간에 칼을 빼어들고
동시에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 뇌전과 무명. 칼이 부딪치자 불꽃이 인다.
S#71C. 전기점화 행사장
자영의 등장.
일순 조용해지며 내 외빈이 일어나 자영에게 고개 숙여 예를 갖춘다.
자영과 대원군의 눈이 마주친다.
고종이 손을 내밀어 자영을 맞이한다.
S#71D. 궁 결투 장소.
저돌적인 무명의 힘과 속도에 밀리는 뇌전. 허나 곧 부드럽게 무명의 힘을 역이용, 뇌전의 칼이 반격해온다.
거듭되는 두 사람의 일진일퇴의 공방. 두 사람, 담을 넘는다.
담 아래서 몰래 포옹을 하던 통역관 지경출과 궁녀가 기겁하여 달아난다.
두 사람,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S#71E. 전기점화 행사장
쭈욱 매달린 전등들이 보인다.
귀빈석의 혼다 전등을 보는데 정신이 팔려있다.
혼다 : 전기가 뭔지 너무 궁금합니다. 어떻게 저기 불이 들어올까요? 조선이 어떻게 일본보다 먼저 이런 걸 할 수 있는지..
고종이 오귀스트와 환담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대원군. 미우라.
순간, 북소리가 둥둥둥 울리며 고종이 미국인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서 일어난다.
미국인의 안내로 고종이 전기스위치를 올린다.
환하게 불이 들어오는 무대. 사람들의 감탄사와 환호.
그 때 담을 넘은 무명과 뇌전, 동시에 내려선 곳은 무대 뒤.
순간, 칼을 겨눈 채 무대 위로 튀어나오는 무명과 뇌전.
술렁이는 사람들.
두 사람을 알아보고 놀라는 자영. 고종도 당황한 듯 한데...
상황을 파악한 무명과 뇌전이 황송한 모습으로 왕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그러자 두 사람을 보며 앞으로 나서며 박수를 치는 고종.
고종 : 여러분. 조선 최고의 무사들입니다. 여러분을 위해 특별히 진검승부를 선보입니다.
사람들, 환호와 박수를 보낸다.
동시에 악대의 연주가 커진다.
칼을 들어 자세를 취하는 두 사람.
숨막히는 대치상태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숨을 멎게 만든다. 노려보는 두 사람의 눈빛이 살기로 가득하다.
뇌전을 겨누던 무명의 칼끝이 일합을 향해 뻗는 순간 주위는 순식간에 두 사람만의 공간으로 변한다.
S#72. 상상. 경회루 빙판위. 밤
빙판위로 주르르 미끄러지는 무명. 환상처럼 사위는 고요하고 아무도 없다.
야생마처럼 거친 무명의 칼과 한 폭의 그림처럼 우아한 뇌전의 칼이 부딪힌다.
칼에 서린 살얼음이 보석처럼 흩어진다.
미끄러지고 돌며 빙판 위를 춤추듯 오가는 두 사람. 거친 입김을 쏟아내고 온 몸에선 열기로 인해 김이 무럭무럭 오른다.
이 때 어디선가 나비 한 마리 날아와 뇌전의 눈앞을 스친다.
뇌전의 칼이 나비의 몸을 두 쪽으로 가른다.
S#73. 현실. 전기점화 행사장. 밤
나비의 두 동강 난 몸이 무대 위에 떨어지는 순간, 뇌전의 틈을 무명이 파고든다.
무명의 칼날이 뇌전의 얼굴을 자른다. 스윽~ 피가 배어나오는 뇌전의 얼굴.
여자들,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어느새 무명의 옆구리에도 뇌전의 칼날이 지난다.
고종 : 그만! 그대들의 솜씨 충분히 훌륭하다.
현실로 돌아온 두 사람. 고종의 박수와 함께 이어지는 사람들의 환호성.
혼다도 너무 재밌다며 감격한 듯 미친 듯이 박수를 쳐댄다.
무명과 뇌전과 고종과 대원군과 자영의 시선이 얽힌다.
모든 걸 지켜보고 있는 미우라.
미우라 : 혼다.
혼다 : 하이.
미우라 : 때가오고 있다. 준비한 돈을 풀어라.
혼다 : 그렇습니까? 드디어 시작입니까?
미우라 : 조선의 왕후는 외국에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가 되어 봉기한 백성들에게 처단될 것이다.
S#74. 마을 주막2. 밤
옆구리 상처에 엄살을 떨며 반주에 식사를 하고 있는 무명. 소희가 앞에 앉아있다.
소희 : 쯧쯧. 넌 궁에 가서도 허구 헌날 쌈질이냐? 인생 금방이다, 너. 똑바로 살란 말야. 아름답고, 차카게~
무명에게 막걸리를 따라주고, 빈 반찬 그릇을 챙기더니 소리친다.
소희 : 여보! 낭군님!
대두 : 부르셨어? 마누라.
소희 : 여기 내 친구 반찬 좀 맛있게 더 갖다 주세요.
대두 : 여부가 있나. 얼릉 대령하지.
무명 : 눈꼴 사납구나. 야, 대두야!
대두 : 네. 형님.
소희 : 야. 너 대두가 뭐야? 대두님 이래야지. 너 우리 낭군님한테 함부로 했다간 뒈질줄 알아? 어서, 곱게 처먹기나 해!
무명 : 나, 참 더러워서. (돌아앉으면)
대두 : (좋아서 헤헤헤 웃는데)
손님 술상을 봐서 들고 가는 대두.
사랑채 방문 앞에서 “폭동!” 하는 안의 놀라는 소리를 듣고 문득 걸음을 멈추고 엿듣는다.
소리 : 대원위께 명분을 만들어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네. 폭동으로 우리가 중전을 잡으면....
대두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더더욱 놀라는데
소리2 : 뜻이 좋다하나 방법이 너무 과격한 게 아닐까?
소리3 : 물론 그렇지. 하지만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네.
소리2 : 헌데 대원위의 재가가 정말 있는 것인가?
소리 : 재가라니? 대원위를 곤경에 빠뜨릴 작정인가? 실패하면 책임은 모두 우리가 진다는 각오가 필요하네..
소리2 : 자금은?
소리 : 이미 확보했네. 일본 장사치들 돈인데 거사에 성공하면 교역조건에 특혜를 주기로 약조했네.
어떤가? 자네도 우리와 함께 나라를 위해 큰 일 해보겠는가?
대두, 무명에게 가서 고하면 무명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S#75. 건청궁 자영침소안/밖. 밤. 비
빗소리가 들린다. 어둠속에 누워있는 자영.
격렬한 천둥소리와 번쩍~, 번개가 어둠을 밝힌다.
이불에서 일어나는 자영. 밖을 주시한다. 옷 입은 채 그대로다.
누군가 들어온다. 최상궁이다.
최상궁 : 마마, 속히 피하셔야 합니다.
둥둥둥둥 북소리가 울린다. ‘폭동이다’ 다급하게 외치는 군관.
‘왕비를 잡아라.’ ‘일본의 앞잡이 왕비를 죽여라.’ ‘나라 파는 매국노 민비를 처단하라.’ 폭도들의 고함소리.
잠시 후 비에 젖은 뇌전과 그 수하들, 빗물을 뚝뚝 흘리며 들어선다. 복도를 지나 자영의 방문 앞에 선다.
잠시 망설이던 뇌전, 결심한 듯 방문을 열어젖힌다.
방안에는 최상궁 만이 홀로 앉아있다.
최상궁 : 무슨 짓이오? 여기가 어디라고 이토록 무례하십니까?
뇌전 : 마마는 어디 계시오? 최상궁은 왕후께서 위험하다는 걸 모르시는가?
최상궁 : 내보기엔 장군이 더 위험해 보이오만.
일그러지는 뇌전의 얼굴.
뇌전 : (부하에게) 도성 안 사대문을 봉쇄하고 철저히 검문하라. 생포하되 마마를 반드시 다치지 않게 모셔야한다.
부하 : 존명.
S#76. 마을길3. 밤. 비
빗속을 뚫고 달리는 무명과 자영.
이사벨의 드레스를 입고 무명의 앞에 앉은 자영.
무명, 자영을 안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자영, 손을 내밀어 무명의 팔을 잡는다.
천둥이 몰아친다.
S#77. 성문 앞. 아침
지나는 이들을 검문하는 군사들. 백성들이 온갖 짐을 싣고 줄을 서서 성문을 드나든다.
말을 타고 챙이 큰 모자와 드레스를 입고 부채로 얼굴을 가린 자영.
말을 끄는 무명.
군사 : 처자는 누구요? 어딜 가는 중인가?
무명 : 법국 공사관에서 일하는 누이요. 집안에 혼사가 있어 고향집엘 가는 길이오.
군사 : 이 난리 통에 팔자 좋군. 내려라. 공사관에 확인할 때 까지 못나간다.
돈주머니를 건네는 무명. 묵직한 무게를 느끼는 군사.
문을 빠져 나가는 무명과 자영.
S#78. 일본 공사관 앞. 낮
정원에서 나무를 손질하고 있는 미우라.
혼다 : 왕비는 도망 친 것 같습니다.
미우라 : 명이 길 군.
혼다 : 모두가 폭동의 배후를 대원군으로 알고 있습니다. 흐흐
미우라 : 시아버지와 며느리. 둘 중에 하나는 죽어야 끝나는 집안 싸움으로 보여야 돼. 철저히.
가장 바람직한 것은 저들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야.
혼다 : 걱정마십시오. 이번에 실패해도 우리에겐 피할 수 없는 다음 카드가 있지 않습니까?
혼다 돌아보면, 어둠 속에서 나오는 이생원. 그 뒤로 차가운 표정의 여자. 궁녀1.
S#79. 산속 숲길1. 낮
비가 개인 산속. 햇살이 대각선으로 스며든다.
말을 탄 자영과 무명. 단둘이 햇살 속을 가르며 달린다.
S#80. 산속 계곡. 낮
계곡에서 물을 마시고 얼굴을 씻는 자영.
말에게 물을 먹이고 말의 목을 쓰다듬어주는 무명.
무명이 말을 끌고 큰 바위 뒤로 돌아간다. 잠시 후 낮은 말울음소리와 ‘풀썩’ 말이 쓰러지는 소리 들린다.
무명이 피 묻은 칼을 들고 와 흐르는 물에 씻는다.
자영 : 굳이 죽일 필요까지야.. 그냥 돌려보내면 안됐나요?
무명 : 우리의 길을 알게 됩니다. ..앞으로 길이 험해질 것이니 준비하십시오.
S#81. 산속 산길1. 몽타쥬
험해진 산길을 오르는 두 사람.
자영은 이미 숨이 가쁘다.
S#81A. 산길2. 낮
산길을 걸어가는 두 사람. 지친기색이 완연한 자영.
자영이 절룩이며 한발 한발 이를 악물고 걷는다.
물끄러미 자영을 보던 무명, 앉아서 업히란 시늉을 한다.
난처한 자영.
무명 : 지금 체면을 차릴 때가 아닙니다.
어쩔 수 없는 듯 무명에게 업히는 자영.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S#81B. 산길3. 밤
폭우가 쏟아진다. 흠뻑 젖은 두 사람.
자영을 업고 전진하는 무명.
S#81C. 동굴. 밤
여전한 빗소리. 쿨럭 쿨럭 자영의 기침소리가 동굴을 울린다.
걱정스럽게 기침소리를 듣는 무명.
무명 : ...내일 낮이면 도착할겁니다. 조금만 더 견디소서.
자영 : (힘들게) 무명...
마주보는 둘. 잠시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
무명 : 네..
자영 : 이렇게 도와주어 고맙습니다.
무명 : ...
자영 : 저 빗소리가... 화가 많이 난 바다소리 같습니다. 그대도 화가 많이 난 듯 보입니다. 그런가요?
무명 : ...
자영 : ...
무명 : ...(힘들어하는 자영을 보다가) 높고 높은 고매한 분들, 정치란 것이 저자거리 무뢰배 패싸움보다 못합니다.
왕후께서는 진정 이런것을 원하셨습니까? 이것이 곤이 붕이 되는 기적과 운명입니까?
자영 : 내가... 많이 모자랐나봅니다...(기침)
무명 : 그만 두십시오. 부디 이제라도 다 버리시고 마음 편히 사십시오.
자영 : ...
무명 : 제가 곁에 있겠습니다. 언제까지라도. 그것이 저의 운명입니다.
자영 : ...
무명 : 곁에 있길 원하신다면.. 요한이라 부르소서.
자영이 더욱 기침이 심해지자, 보다 못한 무명. 자영의 곁으로 간다. 자영의 이마에 손을 대본다.
무명 : (심각하게) 몸이 차가워지면...위험합니다.
자영 : 너무... 춥습니다.
무명, 자영의 손을 안타깝게 꼭 쥔다.
이내 자영의 두 손을 가져와 비비기 시작하는 무명. 자신의 입김을 불어가며 정성껏 열을 낸다.
온몸을 떨기 시작하는 자영.
자영 : 요한...
무명, 젖은 자영의 겉옷을 벗긴다. 자영의 팔과 어깨를 쓸어준다.
자신도 젖은 겉옷을 벗고 가슴에 자영을 품는다. 꼬옥 끌어안는다.
자영, 무명의 가슴에서 떨며 가쁜 호흡을 내쉰다.
억수 같은 빗소리가 동굴을, 산 속을 파고든다.
S#81D. 동굴. 새벽
눈을 뜨는 자영. 푸르런 여명.
자영을 품에 안은 채 잠들어 있는 무명.
무명이 깰세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잠든 무명을 바라보는 자영.
무명이 깨려하자 잠든 척 눈을 감는 자영.
잠에서 깨는 무명. 가만히 몸을 일으켜 잠든 자영의 얼굴을 보는 무명.
자영의 이마에 손을 올려보고 자신의 이마에도 손을 대보고 열이 내렸음에 안도하는 무명.
자영을 물끄러미 보던 무명, 가만히 자영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댄다.
반짝. 눈을 뜨는 자영.
싱그러운 새벽이슬이 뚝 떨어진다.
S#81E. 산속 숲길2. 낮
무명이 자영을 업고 숲길을 내려온다.
무명의 입에선 가쁜 호흡이 쏟아져 나오고 얼굴엔 땀이 비 오듯 흐른다.
업혀 내려오던 자영, 무명의 땀을 손으로 훔쳐 준다.
무명이 자영의 손끝을 잡는다. 자영이 당황하지만 손을 빼지 않는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손길을 느낀다.
이윽고 멀리 마중 나온 주지스님과 대두와 소희가 보인다.
S#82. 궁 회의실1. 밤
신하들이 부복해 있다.
민영익 : 대원위께서 다행히 폭동을 진정시켰사오나 연행된 자들이 주동자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함구를 하니
참으로 이상할 따름이옵니다.
말없이 꼿꼿하게 앉아있는 대원군.
고종 : 중전을 해치려던 자들이다. 입을 열지 않는 자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야. (좌중이 싸늘해진다)
중전을 찾아야 한다. 시체라도 꼭 찾아야 한다.
대원군 : 폭동의 원인은 일본과 양이를 끌어들여 나라를 욕보인 중전에 대한 백성들의 불만이옵니다.
서둘러 중전의 죽음을 선포하고 장례를 치루어 민심을 달래소서.
대원군의 말을 들으며 분노를 참느라 얼굴이 일그러지는 고종.
S#83. 산속 암자. 낮
승복을 입은 자영. 머리도 길게 땋아 내렸다.
무명 : 그 집엔 이렇게 생긴 깃발이 흔들리고 있어..
대두 : 알아. 십자가.
소희, 대두를 안으며.
소희 : (방긋) 분명 해 낼 거다. 잘 할 거다. 끝나면 뒤도 돌아보지 말구 달려와. 그저 내 생각만 해. 오직 나. 그래야...살어.
대두 : (방긋) 우리 마누란 너무 걱정이 많아. 까짓 한달음에 달려갔다 올테니 몸단장이나 잘하고 있어.
아님 돈세면서 놀고 있든가.
둘이 윙크를 해대며 간지럽게 군다.
S#84. 이사벨집 앞. 밤
이사벨의 집과 그 옆집. 그 옆집에 옆집.
곳곳을 훑는 시선. 나뭇잎이 흔들린다. 그 사이로 보이는 대두. 군인들이 죽 깔려있지만 별루 상관 않는다.
지붕들을 본다. 뭔가 발견했다.
씨익 웃는 대두. 십자가깃발(병원표시)이 달려있는 이사벨의 집.
S#85. 이사벨집 안. 밤
방을 나서던 이사벨. 모자를 들면 그 밑에 자영의 손수건.
대들보 위 매달려 숨어 있는 대두. 자영의 편지를 보이며 씨익 웃는다.
CUT TO
언더우드에게 자영의 서신을 넘기는 이사벨.
S#86. 궁 고종 처소. 낮
왕의 처소에 들어가는 서양인 의사 언더우드.
왕에게 주사를 놓아준 뒤 뭔가 은밀히 건넨다.
의아하게 보는 왕.
S#87. 광화문 앞. 낮
궁에서 군대가 출발한다. 달리고 또 달린다.
S#88. 이사벨집 외부. 낮
대두가 군사들에게 잡혀 결박당해 있다.
군사들이 윽박지르고 심문을 해도 헤~ 웃으며 바보 흉내를 내고 있다.
뇌전이 온다.
뇌전 : 무슨 일인가?
군사1 : 수상한 잔가 싶어 잡았더니 완전 바봅니다.
뇌전 : 지금이 이럴 땐가! 풀어주라.
바짝 쫄은 군사들. 돌아서던 뇌전, 대두를 알아봤다.
대두도 뇌전에게 들키는가 싶어 긴장하며 풀려난다.
재빠르게 사라지는 대두를 보며
뇌전 : 저자의 뒤를 조용히 밟는다.
S#89. 숲길2. 낮
달리는 왕의 군대들.
S#90. 숲길3. 낮
뒤를 흘깃거리며 빠르게 달리는 대두.
숨어서 뒤를 쫒는 뇌전과 수하들.
S#91. 산속 암자. 낮
초가 방 안에서 밥상을 앞에 두고 앉아 있는 무명, 자영, 소희. 아무도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잠시 후 밖에서 ‘소희야’ 부르는 대두의 목소리 들린다.
활짝 웃는 세 사람. 소희 방문을 벌컥 열면~
S#92. 강가 움막 앞. 낮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뇌전 수하. 아무도 없다.
대두를 보면, 모르는 척 또 바보처럼 헤~ 웃는다.
뇌전, 속았음을 알고 장검을 내리친다. 두 동강 나는 장검.
뇌전의 수하가 대두를 벤다. 피 흘리며 쓰러지는 대두.
대두 : 소희야...
S#93. 숲길4. 낮
왕의 군대가 왕후를 모시고 환궁하는 길.
덩 안에서 길을 보는 자영.
말에 타 있는 무명. 두 사람은 누구도 모르게 눈을 마주친다.
하지만 곧 자영은 눈길을 피한다. 자영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행렬이 숲길에 길게 늘어선다.
S#94. 산속 암자. 밤
대두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소희. 안쓰럽다.
S#95. 건청궁 연못마당. 낮
무명과 호위무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궁으로 돌아 온 자영.
고종이 환한 웃음과 함께 달려 나와 왕후의 손을 맞잡는다.
고종 : 중전... 이게 꿈이요 생시요.
자영 : 전하.
고종 : (감격해서) 죽음에서 살아 돌아오셨군요. 죽음에서.
자영 : 황공하옵니다. 전하.
고종 : 황공하다뇨?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처럼 기쁜데...
뒷짐을 지고 바라보는 대원군과 자영의 눈이 마주친다.
자영, 대원군을 차갑게 본다. 인사하는 대원군.
자영, 형식적으로 답하고 무시하듯 스친다.
고개를 든 대원군, 입술을 깨문다.
보고 있는 무명의 걱정스러운 시선.
S#96. 건청궁 서재 안. 밤
대원군과 독대하고 있는 자영.
자영 : (바로 공격) 당일 폭동을 이끈 자가 뇌전이랍니다. 해서 뇌전을 감옥에 넣었습니다.
여기서 조용히 물러나시면.. 더 이상 따지지 않겠습니다. 왕후를 없애려는 계략도 묻어두겠습니다.
대원군 : (웃음) 허허...거 과장이 좀 심합니다..
자영 : (냉정) 이는 나의 시아버님이시자 내 남편의 부친이었던 분에 대한 최후의 배렵니다. 이 별장... 손님을 모시세요.
미닫이문이 열리고 무명, 나갈 것을 재촉하듯 인사한다.
대원군 : 손님이라... (무명을 보고) 일개 군사가 하루아침에 용호영 최고자리에 오른다?
아무래도 총애가 너무 지나친 듯 싶소. ...부디 몸조심하시오.
일어나 나가는 대원군.
CUT TO
자영과 독대하고 있는 무명.
자영 : ..처음 궁에 왔을 때가 생각납니다. 그 땐 여기서 보이는 게 전부였지요. 그게 다였어요.
헌데 지금은... 보이는 것이 너무 많아요. 더 봐야 할 것두 많구요.
무명 : ...
자영 : 앞으로도 나와 전하를 잘 지켜주세요.... 무명.
자영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문득 자영을 바라보는 무명. 말없이 느껴오는 아득히 먼 것 같은 거리감에 상처받는 모습이다.
자영도 무명을 마주본다. 잠시 말없이 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이때, 상감의 행차를 알리는 최상궁의 목소리가 들리고,
두 사람 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들어오는 고종.
고종 : 이 별장이 와있었던가?
무명 : 예, 마마.
상석에 앉는데 문득 자영과 무명을 번갈아보는 고종. 묘한 생각이 든다는 표정이다.
고종 : 하긴... 자네의 중전에 대한 충성이 지극함이야. 앞으로도 큰 기대를 하겠네.
무명 : 황송합니다.
고종 : 그만 나가있게. 나가서 항상 해왔듯이 오늘도 이 방을 잘 지키게.
무명 : 예. 전하.
예를 올리고 물러나는 무명.
무명이 나가자 다정스럽게 자영에게 다가가는 고종.
고종 : 중전, 중전을 잃지 않아 얼마나 기쁜지 아오?
자영 : 감읍하옵니다. 전하
고종 :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갈 생각이오.
자영 : (놀란 듯) 예?
고종 : 뭘 그리 놀라시오? 우리는 부부가 아니오. 그간에 중전에게 남편으로서는 너무 소홀했던 것 같소.
중전을 잃을 뻔해보니 이제야 중전이 얼마나 소중한지 정신이 번쩍 듭니다. 중전.
자영 : 마마.
S#97. 자영침소. 밤
침소. 밖
흐린 구름이 달 주변을 흘러가고 있다.
침소를 지키고 서 있는 무명.
침소. 안
서양식 침실. 바닥엔 양탄자가 깔리고 침대가 있는.
침구를 정리하는 궁녀. 왕비의 옷을 풀어주는 궁녀도 있다.
얇은 창호지문 밖에도 여러 개의 숨소리가 들린다.
약탕, 목욕물, 침소 시중을 드는 나인들의 작은 움직임들.
최상궁의 ‘음-’하는 소리와 함께 어느 순간, 일제히 동작을 멈춘다.
고요하다. 군불을 때느라 장작이 요란하게 타는 소리만 간간이 들린다.
타닥, 타다닥-.
침소. 밖
슥-옷 벗는 소리가 무명의 귀에 작게 메아리친다. 무명의 어깨가 움찔한다.
침소. 안
옷 벗는 자영을 도와주던 궁녀들.
자영이 알몸이 되자 옆으로 빠진다.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자영.
침소. 밖
고종과 왕후의 침소에서 들리는 소리..
서걱이는 이불소리. 살갗을 쓰다듬는 소리.
고종의 부드럽고 따뜻한 위로의 목소리.. 모든 것이 생생히 들린다.
무명, 무표정하게 자리를 지킨다.
침소. 안
자영을 안는 고종. 진지한 표정.
고종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자영.
격정적인 고종의 눈빛.
고종을 깊이 느끼면서도 밖을 의식하며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리는 자영.
고종에게 들킬세라 목을 끌어안으며 크게 신음을 토한다.
침소. 밖
자영의 소리 들려오고 불끈 쥔 주먹으로 물이 뚝뚝 떨어진다.
달을 쳐다보던 무명의 얼굴위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야참을 들고 궁녀들이 온다.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 무명.
그러다 지나간 궁녀들에게서 살기를 느끼고 왕후의 처소로 달려들어가는 무명.
침소. 안
문 앞에 궁녀하나가 최상궁을 단검으로 찌르고 있다.
활처럼 날아가는 무명의 칼이 궁녀의 등에 꽂힌다.
나머지 한 명이 보이지 않는다. 왕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무명.
왕은 침상에서 소리치고 궁녀가 왕후를 벽으로 밀어붙이며 칼을 든다.
옷 벗은 자영과 눈이 마주친 무명. 순간 흔들린다.
무명의 흔들림을 눈치 챈 궁녀가 왕에게 칼을 던지는 순간-
동시에 무명이 양탄자를 잡아당긴다. 중심을 잃은 칼이 왕의 오른팔을 살짝 스친다.
무명의 칼이 궁녀에게 향하고 곧바로 제압한다. 달려 들어오는 호위병들.
무명, 널러진 이불을 들어 자영을 덮어준다.
시선이 마주치는 두 사람. 복잡한 표정이다.
고종이 두 사람의 미묘한 뉘앙스를 느낀다.
S#98. 궁 회의실1. 낮
고종과 대신들이 도열해 있다. 대원군이 강경한 어조로 얘기한다.
대원군 : 국왕에 대한 암살을 시도한 것은 분명하나 난 이 문제를 정치적인 것으로 보지 않소.
민영익 : 정치적으로 보지 않다뇨? 그게 무슨 뜻입니까?
대원군 : 정치적인 소견을 조금이라도 가진 정파라면 이런 어리석은 짓은 분명 저지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오.
(대원군의 질문에 웅성거리는 대신들.)
민영익 : 그렇다면?
대원군 : 지난 번 난리에 중전께서는 며칠을 연락이 두절된 채 단 한 사람과만 있었습니다.
고종 : (대원군의 예기치 않은 말에 놀라듯 쳐다보면)
민영익 : 대원위, 무슨 뜻입니까?
대원군 : 무슨 뜻이냐구요? 중전께서 호위 군사들도 모두 버린 채 난을 피해 단 한사람만을 데리고 행방을 감추신 점을
의심하여 지적하는 겁니다.
민영익 : 그것은...
대원군 : 그것이... 설사 중전마마를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해도 중전마마와 몇날 며칠을 단 둘이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죽음을 면치 못하는 죄일 것이오. 하지만 그 자는 일개 병사에서 용호군의 최고수장의 자리에까지 올랐소.
견물생심이라 했소. 어찌 더한 욕심이 생기지 않을 수 있겠소?
민영익 :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대원위!
대원군 : 지나치다? 세상물정 모르는 대감께 저자거리 얘기를 들려드릴까? 무명 그자가 중전을 사모하여 난을 꾸미고
중전을 납치하여 자신의 욕정을 채운 것이란 소문이 장안에 파다하오.
고종 : (벌떡 일어나며 소리친다) 닥치시오.
대원군 : 전하.
고종 : 그런 말을 다시 입에 담으신다면 국태공, 아니 내 아버님이라 해도 용서치 않을 것이오.
대원군 : 심기가 불편하시더라도 들으셔야 합니다.
고종 : 닥치라 하였소.
대원군 : 그런 소문을 차치하더라도 무명 그 자는 왕실 호위무사로서 국본의 옥체를 온전히 지키지 못한 죄가 크니
그 죄를 물어 삭탈관직하고 궐에서 추방하시옵소서.
고종 : ..그러지요. 국태공의 말씀대로 그리하겠습니다. 대신 이제부터 국태공께서도 더 이상 국가대사에는 관여치 말아주십시오.
(고종의 말에 좌중이 술렁거린다)
대원군 : ...
고종 : 국태공을 대로로 칭하고 노후를 편히 지내게 할 것이다. 만조백관은 과인의 뜻을 받들어 한 치의 어긋남도 없게 하라.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고종.
경악하는 신하들 사이로 대원군의 가신들은 어명을 거두어 달라고 읍소한다.
대원군 : (씁쓸한 듯) 피하려 했건만 결국 이렇게 마주하게 되는 건가? (그러나 순간 결의에 찬 듯 무서워지는 대원군의 얼굴)
S#99. 건청궁 서재 안. 낮
민영익의 보고를 받고 있는 자영, 입술을 깨문다. 괴롭다.
S#100. 동굴 감옥. 낮
쇠사슬에 묶인 뇌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S#101. 광화문 앞. 낮
대궐을 나오는 무명. 묵묵히 걸어 나가는 그의 쓸쓸한 뒷모습.
S#102. 강가 움막 앞. 낮
외로이 대두의 장죽으로 담배를 피고 있는 소희. 고개 돌리면 무명이다.
소희, 무명의 가슴에 손을 댄다.
소희 : 다쳤네..(가슴을 만지며) 여기가...다쳤어..
무명 : ...
소희 : 잘 왔네.
무명 : 오라비가 왔네.
소희 : 동생..왔나?
무명 : 오라비라니까..
소희 : (운다) 누님이 기쁘네..동생이 살아와서...
S#103. 강가 움막 뒤. 낮
대두의 무덤에 절을 하는 무명. 이윽고 깊이 운다.
S#104. 궁 회의실2. 밤
서신을 들여다보는 고종. 그 옆의 자영.
민영익이 심각한 얼굴로 고종께 의견을 내놓는다.
민영익 : 정확한 날짜와 시간, 병력규모를 알려온 것으로 보아 시위의 성격이 큽니다. 전하께서 먼저 손을 내미신다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것이옵니다.
고종 : 손을 내밀라...
민영익 : 대로의 지위를 거두시고, 모든 걸 원래대로 환원하소서.
고종 : 싫다면?
민영익 : 명분싸움에서 이기셔야 합니다. 대원위께서는 중전마마와 이 별장의 풍문에 의지하여 일을 벌였습니다.
만약 이 풍문이 완전히 틀렸음을 공개적으로 증명한다면 대원위의 명분은 힘을 잃을 것입니다.
고종 : 백성들에게 보여줄 제물이 필요한 것이로군.
민영익 : 그러하옵니다. 대원위께서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다 하나 어차피 군사적인 힘의 우위로 승부가 나는 싸움이 아닙니다.
이 별장이 대원위의 행렬에 홀로 맞서 주상전하를 위해 백성들 앞에 장렬히 전사해준다면
그것이 전하에 대한 충심으로 백성들이 이해해준다면 설사 대원위의 군사행렬이 대전 앞에 이른다 해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옵니다.
고종, 수긍하며 중전을 바라보면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자영.
S#104A. CUT TO
회의실, 자영과 고종 둘만 남아있다. 말이 없이 침묵하는 두 사람.
고종 : 그런 말 따위로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 것인데...그런데...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소.
자영 : 전하.
고종 : 그 순간 참을 수가 없었소. 나 또한 별 수 없는 소인배인가 보오.
자영 : 그렇지 않사옵니다. 전하.
고종 : 중전에 대한 애정이 이리 깊어진 줄은 나도 몰랐소.
자영 : 황공하옵니다.
고종 : (문득) 나를 위해 그 자를 아버님 앞에 세우시오.
자영 : (흠칫하면) ....
S#105. 건청궁 서재 안. 낮
홀로 깊이 고민하는 자영에게 다가오는 최상궁.
최상궁 : 상감마마께서 대답을 기다리신다고 하옵니다.
자영 : ...
최상궁 : ...대원군의 공표는 앞으로 사흘 남았습니다.
자영 : ...
고개를 올려 하늘을 보면 하늘에서 파도가 밀려오는 것 같다.
S#106. 강가 나루터. 낮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나무 짐을 해 오던 무명, 그 자리에 우뚝 선다. 나무 밑에 누군가 꿈처럼 서 있다. 자영이다.
자영 뒤에 부복해 있던 최상궁, 무사들 자리를 피한다.
자영을 바라보는 무명.
자영, 무명의 눈을 피한다.
무명 : ...
바람이 분다.
자영 : 그 싸움에서 살 가능성은 없습니다.
무명 : ......
자영 : ...하지 않으신다 해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영원히 찾을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눈빛이 흔들리는 자영, 돌아서 마음을 추스르며 힘껏 걷는다.
무명 : 하겠소. 후께서 찾을 수 없는데 내가 살아 무얼 하겠습니까. 하겠소. 그리고 살아남겠소.
살아있으니..이리 또 보지 않습니까... 자영.
자영, 무명을 돌아본다. 얼른 가마에 올라탄다. 울컥.
입술을 악물고 참고 참아보지만 그럴수록 눈물이 솟구친다.
남아있는 무명, 자영행렬이 사라지는 걸 본다. 바위처럼 고독하게.
S#107. 광화문 앞. 오전
수 십 필의 말과 무사들의 대열이 길에 들어선다.
평교자에 거만하게 앉아있는 대원군의 모습도 서서히 드러난다.
칼과 창, 깃발, 병사들의 머리가 안개 속을 느릿하게 걸어 나오는 것이 음산하다.
이 때 누군가, 대로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홀로 길을 막고 서 있는 남자. 무명이다.
앞에 서 있는 장군의 손짓에 따라 대원군의 행렬이 멈춘다.
장군 : 썩 길을 비키지 못하겠느냐..
무명 : ....
대원군 : (OS) 무슨 일인가?
보면, 대원군을 태운 평교자가 안개 속으로 느릿하게 나온다.
장군이 옆으로 물러선 자리에 서는 평교자. 교자위에서 대원군이 무명을 본다.
무명 : 대로께서는 궁궐에 입궐치 말라는 어명이 계셨습니다.
대원군 : 어명.. 그 목을 베어버린대도?
무명 : (외친다) 나를 넘지 않고는 아무도 이 길을 갈 수 없다.
대원군 : 전진.
그러자 칼을 뽑으며 대원군의 앞을 가로막는 여러 명의 무사들.
장군 : 쳐라!
무명 : 어명이다. 어명! 이 역도의 무리들아!
칼등으로 상대의 뼈를 부러뜨리는 무명. 무사들이 쓰러지며 고통을 호소한다.
숨을 몰아쉬며 대원군을 노려본다.
대원군 : 역도라 하였느냐...
무명 : (당당한 외침) 그렇소이다. 대원위께서는 지금 영락없는 역도의 모습이외다.
대원군 : 개새끼가. 전진.
이번엔 수십 명의 무사들이 덤벼든다.
S#108. 궁 회의실2. 오전
말없이 긴장된 표정으로 버티고 앉아있는 고종과 자영.
최상궁 : (들어서며) 싸움이 시작됐다 하옵니다. 이 별장이 홀로 군사들과 맞서고 있다하옵니다.
자영 : ...
고종 : 기어코 아버님이...
자영, 그 싸움의 처절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눈을 질끈 감는다.
날카롭게 울리는 칼의 울음소리.
자영, 눈을 뜬다. 고종의 시선을 느끼고 꼿꼿이 버틴다.
S#109. 광화문 앞. 오전
여러 군데가 터지고 베인 광기어린 무명을 보고 군사들이 겁을 먹은 듯 머뭇거린다.
무명 : (섬뜩한 눈빛) 어명. 어명이다. 나랏님의 어명! 난 어명을 지킬 것이다. 어명!! 어명!!! 어명!!!!
골목여기저기에 숨어있는 백성들의 얼굴이 하나씩 나타난다. 호기심과 두려움에 찬 얼굴이다.
무명 : (더욱 큰 소리로) 단 한명도. 아무도. 그 누구도....들어가지 못한다. 이제 움직이는 자는 목을 벨 것이다.
백 여 명의 무사들이 덤벼든다.
무명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파도가 빠져나가듯이 한걸음씩 밀리고 밀려 넘어지고 넘어진 자에 걸려 또 넘어진다.
무명의 칼은 병사들의 급소를 피해 쓰러진 병사들이 계속 고통을 호소한다. 무명도 지쳐간다.
길에 많은 사람들이 얼굴을 내민다. 아이들까지도 나온다.
이 때 사람들을 헤치고 소희가 뛰어든다. 이생원을 끌고.
소희 : 보시오. 이자가 자백을 했소. 금번 왕실암살사건의 배후엔 일본이 있었소.
왕후마마가 왜놈의 앞잡이란 소문은 그 자들이 퍼트린 것이오.
그 말에 사람들 웅성거린다.
소희 : 또한, 지난번 민승호대감과 왕후마마의 어머님을 폭탄으로 숨지게 한 배후도 이 자는 알고 있었소.
이 자의 말로는 그들이 바로 이 자리에 있다 합니다. 저기!
수하1 : 저 미친것이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야! 대감 저희들이 처리하겠습니다. 보내주소서.
대원군 : (끄덕)
수하 여섯이 말을 타고 진격해온다.
무명과 소희가 서로 기대어 그들의 칼을 맞는다.
이생원은 이미 사람들 사이로 납작 엎드려 숨었다. 한바탕 흙먼지가 휩쓸고 지난다.
수하의 칼이 소희의 목을 노리고 먼지사이로 들어올 때
무명, 칼을 휘둘러 막아낸다. 그 틈으로 다른 칼이 무명의 허벅지를 벤다.
주저앉고 마는 무명. ‘무명아’ 소리치는 소희.
무명, 분노의 칼을 새로이 쥔다.
다시 말들이 전열을 가다듬고 돌격해온다.
갑자기 소희가 돌진한다. 쿵쿵쿵.
달려오는 말 위에 긴 창을 든 수하가 찌른다.
가슴 깊숙이 창을 찔린 소희, 그 창을 잡고 엄청난 힘으로 수하를 들어 바닥에 패대기 친다.
무명 : 누이...
가슴에 긴 창이 찔린 채로 서서히 뒤돌아보는 소희, 무명을 향해 씨익 웃더니 고목나무처럼 쓰러진다.
무명, 소희를 외쳐 부르며 다리를 질질 끌고 달려가 끌어안는다.
소희 : 대두... 한테... 간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숨지는 소희.
소리 지르는 무명.
말들이 다시 전열을 가다듬는다.
무명, 소희를 끌어안고 죽음을 기다린다.
이미 칼끝이 땅을 향해 꺾였지만 결코 놓지 않는다.
말들이 무명을 향해 진격한다.
이 때, 보부상 하나가 ‘저 사람을 살려라.’ 외치자 백성들 동요한다.
‘그래. 살려줘라.’ ‘군사들은 물러가라.’ 등의 호응이 산발적으로 터져 나온다.
급기야 ‘역도는 물러가라.’를 외치는 백성들.
대원군의 군사들 당황한다.
순간, 광화문이 열린다. 아무도 없다. 거대한 문이 침묵하듯 입을 벌리고 서 있다.
문 뒤에서는 수백의 군사들이 숨어 대기하고 있다.
대원군 일행, 빈 광화문에 공포를 느끼며 백성들의 시선을 의식한다.
대원군, 무명을 지그시 내려다본다. 무명은 대원군을 똑바로 본다.
대원군 : ...내가 널 영웅으로 만들었구나. 명분은 쌓였으나 하늘이 내 손을 들어주지 않는구나.
S#110. 궁 회의실2. 낮
뛰어 들어오는 민영익.
민영익 : 마마. 해냈사옵니다. 무명 장군이 저들을 물리쳤나이다. 대원군과 군사들이 돌아가고 있사옵니다.
고종 : 오~오~ 정말인가? 그럴 수가... 진정 놀라운 자다.
자영 : 그래, 무명은 어떻게 되었는가? 살았는가?
순간, 고종의 싸늘한 시선. 의식하는 민영익. 자영, 고종의 눈빛을 본다.
민영익 : 마마. 그는 무사하옵니다.
자영 : 그래...
고종 : 그자에게 충분한 보상은 하였는가?
자영 : ?
민영익 : 지금쯤 전달하였을 것이옵니다.
고종 : 만의하나 성공한다면 중전의 이름으로 크게 포상하라 일렀소. 기특한 칼이긴 하나 궁에 다시 들일 순 없지요.
못났다 욕하시오. 허나, 무명 그자가 중전과 다시 함께 있는 날에는 내 기필코 그자를 죽이고 말겠소.
자영 : ......
S#111. 광화문 앞. 낮
말을 타고 한 무리의 군사가 다가와 큰 궤짝을 무명 앞에 놓는다.
군사 : 중전마마께서 내리는 포상입니다.
무명, 뚜껑을 열면 돈과 패물이 가득이다. 사람들 놀란다. 분노하는 무명.
무명 : (칼을 들어 군사의 목에 댄다) 똑바로 말하라. 진정 이 돈을 왕후께서 주셨느냐?
군사 : 그, 그렇습니다.
무명, 광화문 쪽을 본다. 광화문이 굳게 닫힌다.
칼을 들어 궤짝을 가르는 무명. 쏟아지는 돈과 패물.
광분하며 돈을 뿌려 버리는 무명.
사람들 벌떼처럼 돈을 향해 모여든다.
슬픈 눈으로 소희를 실은 달구지를 끌고 가는 무명.
멀리서 미우라와 혼다, 사무라이 스즈끼가 지켜보고 있다.
미우라 : 저 괴물을 상대할 자가 필요하겠군.
스즈끼 : 제가 하겠습니다.
미우라 : 아니. 적임자는 따로 있다. 잊지 마라. 우리는 마지막에 움직인다.
스즈끼 : 하잇.
달구지를 다리를 끌며 멀어지는 무명.
F.O.
S#112. 건청궁 연못마당. 낮.
자영, 뜰에 홀로 서 있다. 발밑에 다가와 낑낑대는 강아지 한 마리.
가만히 쭈그려 앉아 강아지를 쓰다듬는 자영.
자영 :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어렵구나. 누구에게도 무슨 말도 나눌 수가 없구나. ...내 마음이 참 힘들구나...
F.O.
S#113. 동굴 감옥. 낮
'철컹‘ 하는 철문 열리는 소리에 가득 쏟아진 빛이 정상적인 밝기가 되면,
두꺼운 쇠문이 열리고 양 손과 발이 쇠사슬에 묶인 뇌전이 보인다. 머리는 산발이고 벗겨진 윗몸엔 상처투성이.
고개를 들고 온몸에 힘을 주자 ‘으드득’ 뼈가 제자리를 찾는 소리가 울린다.
뇌전이 끌려 나온다. 그곳에는 미우라와 혼다가 기다리고 있다.
미우라 : 조선 최고의 무사라 했던가... 당신은 내가 대원군께 드리는 선물이오.
짧은 머리카락을 문지르며 잔인한 표정으로 뇌전을 바라보는 미우라.
뇌전도 의혹의 눈초리로 미우라를 마주본다.
S#114. 운현궁 대청마루. 밤
난을 치고 있는 대원군. 그 앞에 미우라.
각각 뒤에는 뇌전과 미우라의 호위무사 스즈끼가 서 있다.
부복해있는 통역 앞으로 탁자에 황금색 리볼버가 든 상자가 놓여있다.
대원군 : 나를 돕겠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미우라 : 잘못된 조선의 정치를 바로 잡고자 합니다.
대원군 : ...
미우라 : 대감! 이만큼 손을 내밀었으면 이제 그만 잡아주시지요. 물에 빠진 대감에게 저희가 아니면 누가 손을 내밀겠습니까?
난을 그리던 붓을 미우라에게 흩뿌리는 대원군.
스즈끼 칼을 뽑는다. 동시에 뇌전도 칼을 뽑는다.
얼굴의 먹물을 훔치며 손을 들어 스즈끼를 제지하는 미우라.
대원군 : 어이구! 오늘따라 내 붓 끝에 힘이 넘치는구려.
미우라, 대원군을 노려보면.
대원군 : 이놈! 이 나라가 네놈들 뜻대로 될성 싶었더냐?
분노를 억누르며 물러가는 미우라.
S#114A. 대문. 밤
미우라와 스즈끼를 보내며 버티고 서 있는 뇌전.
미우라 : 자네라도 잘 생각하시게. 우릴 도울 것인지. 이대로 끝날 것인지.
명심하게. 자넬 살린 건 저 고집불통 늙은이가 아니라 우리야.
정원에 서서 굳은 표정으로 미우라의 뒷모습을 보는 뇌전.
S#114B. 대원군방. 밤.
뇌전과 독대한 대원군.
대원군 : 저들에게 가라. 가서 저들의 의중을 알아보라.
뇌전 : 예!
S#115. 강가 움막 뒤. 낮
대두와 소희의 무덤 앞에서 홀로 술을 마시고 있는 무명.
S#116. 이사벨집. 밤
그림 하나를 자영 앞으로 가져온다. 자영의 초상화다.
자영 뒤에는 그림자같은 호위무사가 한 사람 서 있다.
자영 : 이 사람은...
이사벨 : 후의 그림자입니다.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지요.
자영 : Silhouette?
이사벨 : (미소 지으며 가볍게 목례)
자영 : ......
그림자를 손으로 쓰다듬는 자영. 그리움 가득한...
S#117. 광화문 앞. 낮
굳은 듯 서서 광화문을 바라보고 있는 무명. 많은 사람들이 곁을 스치고 지나간다.
이윽고 몸을 돌려 걷는 무명. 다리를 전다.
그런데 문득 스즈끼를 우두머리로 활보하는 일본 낭인들 사이에서 뇌전을 발견하는 무명. 놀란다.
무명이 뇌전일행을 뒤쫓기 시작한다.
S#118. 궁 회의실1. 낮
용상의 고종.
고종 : 과인은 오늘 서조선만 개발 사업의 시작을 만민에게 선포한다. 항구개발과 철도 건설, 자원개발을 통해 조선은
부국의 기틀을 마련할 것이다. 또한 새로운 조선에 걸맞는 국정쇄신을 단행하여 친일내각과 궁내 배치된 훈련대의 해산을
명령하는 바이다. 조선은 세계열강들과의 다각적 외교를 통해 세계국가의 일원이 될 것이며
이 모두는 무력이 아니라 평화를 지지하는 과인의 의지요, 조선이 나아갈 미래다.
S#119. 운현궁. 밤
술상을 앞에 두고 홀로 앉아 있는 대원군.
대원군을 찾아온 자영.
대원군 : 물러들 가라.
숨어있던 호위무사들이 사라지고 두 사람만의 독대.
술상을 앞에 두고 말없이 앉아 있는 두 사람.
이윽고 술을 한 잔 따르는 자영.
하지만 꼼짝 않고 앉아 있는 대원군.
일어서는 자영.
돌아서는 뒤로 술잔을 들어 한잔을 마시고 내려놓는 대원군.
대원군 : 술맛이 달군. ..돌아가는 길, 조심해라. 아가야!
S#120. 일본술집. 밤
문을 박차고 혼다가 허겁지겁 들어온다.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미우라.
혼다 : 공사님. 공사님. 큰일 났습니다. 조선왕이 훈련대를 해산하고 친러파로 개각을 단행했습니다.
미우라 : ...부하들을 모두 소집하라!
혼다 : 하이!
cut to
미우라가 칼을 쓰다듬고 있다. 전체 길이 120㎝에, 칼날 부분이 90㎝ 길이의 장검.
나무로 만든 칼집을 가리키며~
미우라 : 오늘밤 일이 끝나면 여기에 새길 것이다. ‘일순전광자노호(一瞬電光刺老狐 - 늙은 여우를 단칼에 찔렀다)
그걸 보는 뇌전. 통역하는 사람을 본다. 통역하는 사람의 얼굴이 순간 납빛으로 변한다.
뇌전의 눈빛이 그를 누른다. 낮은 소리로 뇌전에게 통역을 한다.
미우라 : 오늘 우리는 대일본제국의 명령에 따라 평화 시임에도 불구하고 타국의 왕비를 암살할 것이다. (웅성인다)
왕비는 본보기로 잔인하게 죽을 것이고, 우리의 만행은 절대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
이 일은 조선내부의 정쟁으로 발생한 비극이며 일본은 이 일과는 아무 상관없을 것이다.
오늘밤. 술은 마음껏 마셔도 좋다. 천황폐하 만세.
‘천황폐하 만세’
일제히 술을 마시는 일인들.
미우라를 분노의 눈빛으로 차갑게 보는 뇌전.
S#121. 운현궁 대원군방. 밤
대원군과 독대하고 있는 이뇌전.
대원군 : ...결국 야만의 정체를 드러내는군. 가게. 가서 내 며늘아기를 살리게.
뇌전 :......
S#122. 운현궁 마당. 밤
마당으로 내려서는 뇌전. 시선을 들면 담장 위에 서서 뇌전을 내려다보는 무명.
말없이 서로를 보는 두사람.
S#123. 궁 담. 밤
궁 담을 넘는 무명. 숨 가쁘게 달려간다.
S#124. 건청궁 연못마당. 밤
달려 들어오는 무명. 막 서재로 들어서려는 자영을 발견하고 소리친다. ‘왕후마마. 피하셔야 합니다.’
놀라는 자영. 돌아본다.
호위무사들이 무명에게 칼을 겨눈다. 무명, 다시 소리친다.
무명 : 왕후마마. 피하셔야합니다!
자영 : (놀람과 감격을 누르며 짐짓 화를 낸다) 출궁한 자가 어찌 함부로 내전엘 들어오는가!
여봐라. 어서 저자를 내쫒지 않고 무얼 하고 있느냐!
무명이 칼을 빼어든다. 주춤 물러서는 호위군사들. 무릎 꿇는 무명.
무명 : 마마... (한숨을 길게 쉰다.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저와 함께 가지 않으신다면 신은 여기서 죽겠나이다.
결연한 무명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몸을 돌려 서재로 들어가는 자영.
최상궁의 신호로 물러가는 호위군사.
S#124A. 서재 안. 밤.
무명 : 놈들이 오고 있습니다. 어서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자영 : 장군은 참 바보요, 어찌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도대체 여기는 왜 오시었소.
지금 장군이 나를 얼마나 괴롭히는지 알고 있소?
무명 : ...
자영 : 지금 내 마음이 흔들린다 이 말입니다. 도망치고 싶어서요. 또, 장군의 목숨에 빚져.. 그래요. 저들을 피할지도 모르지요.
허나 전날과는 다릅니다. 성난 내 백성은 잠시 화를 풀 때 까지 피한다지만
적들을 피해 도망간다면 어느 백성이 믿고 따르겠습니까?
무명 : 그런 거 다 필요 없소. 어떻게든 살아남으시오. 왕후께서 없으면... 이 나라가 다 무슨 소용이오.
쾅~대포 소리와 총소리가 들린다.
무명, 단호한 얼굴로 일어난다. 문 앞으로 가는 무명, 문을 열기 위해 문고리를 잡는다.
자영 : 장군..
무명 : (멈추고)...
자영 : 이 문을 열지 않는 걸 용서하세요..
서재 안. 밤
촛불아래. 희미하게 자영의 표정이 보인다. 두렵고, 긴장된 그녀의 얼굴이.
문을 바라본다. 무명의 형체가 보인다.
서재 밖. 밤
문 앞에 서 있는 무명.
무명 : 두려움이 여기까지도 전해집니다.
서재 안. 밤
주르르 눈물이 흐르는 자영.
자영 : 그래요. 두렵습니다. 너무 두려워서 장군을 볼 수가 없습니다.
무명 : 자영. 두려워 마시오. 아무 일 없을 것이니. 무조건 나만 믿으시오.
S#124B. 연못마당. 밤
마당으로 천천히 내려가는 무명. 하늘을 올려다본다.
무명 : 어머니! 한세상 잘 살았소. 곧.. 만나 뵐 거요. 하늘의 그분께 말 좀 잘해 주시오. 기도하겠다고..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그러니, 후를 살려 주시라고..
검은 갑옷을 전해주는 최상궁.
최상궁 : 후께서 그동안 장군을 위해 손수 지으신 것입니다. 이럴 때 드리게 되어 많이 안타까워하십니다.
무명 : 나는 드릴 것이 없소. 이 보잘 것 없는 육신밖에...
그리고 칼을 빼어 순식간에 손을 벤다. 주먹을 꽉 쥔다. 피가 뚝뚝 흐른다.
S#124C. 서재 안. 밤
자영, 결연한 의지의 눈빛.
S#125. 운현궁. 밤
대원군, 혼자서 바둑을 두고 있고, 미우라가 칼을 대원군의 목에 대고 있다.
미우라 : 대감. 조선을 맡아 주시겠습니까? 여기서 끝을 보시겠습니까?
그 뒤로 일본군의 총칼에 죽어있는 호위무사들.
미우라 : 만일, 가지 않는다면 왕비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오. 당신의 아들. 조선왕을 죽이겠소.
대원군 : 내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움직이기 힘들구나. 기다리거라.
S#126. 궁 근정전. 밤
근정전 계단에 홀로 앉아 갑옷을 입고 한잔 술을 마시는 무명.
말을 탄 일본군관을 앞세우고 들어서는 낭인들.
미우라의 호위무사 스즈끼와 뇌전이 이어서 들어선다.
뇌전과 낭인들, 무명을 발견하고 주춤한다.
무명, 일어서 칼을 들어 특유의 자세를 잡으며 호령한다.
무명 : 이놈들. 내가 있는 한 너희들은 단 한 걸음도 더 나갈 수 없다.
말을 탄 일본군관이 무명을 향해 돌진한다.
거대한 말이 코앞에서 덮치는 순간까지 꼼짝 않고 버티는 무명.
말발굽이 몸을 짓누르는 순간, 빠르게 역회전하며 말의 다리를 부러뜨리며 일본군관의 다리를 자르는 무명.
쿵~. 근정전 돌바닥에 쓰러지는 일본군과 말.
스즈끼가 손을 들어 공격을 명한다. 여섯 명의 낭인이 무명에게 달려간다.
무명, 아름다운 선을 그으며 춤추듯 칼을 휘둘러 빠르고 부드럽게 여섯을 벤다.
다시, 낭인들이 뛰어나가려는 순간, 스즈끼가 손을 들어 중지 시킨다.
직접 나서려하는 스즈끼. 이 때 뇌전이 앞으로 나선다.
뇌전 : 놈은 내 상대다.
무명과 뇌전. 두 사람만의 대결.
잠시 후 뇌전을 향해 달려오는 무명.
뇌전, 공격을 피하는척 물러선다.
무명이 날아올라 일격을 날리는데 뇌전, 갑자기 몸을 반대로 돌려 순식간에 스즈끼의 목을 자른다.
이어 무명의 칼이 스즈끼의 심장을 깊이 찌른다.
미처 칼을 다 뽑지 못한 스즈끼의 목이 바닥을 뒹군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안 되던 낭인들. 곧이어 둘에게 몰려든다.
뇌전, 무명. 한편이 되어 낭인들을 베기 시작한다. 추풍낙엽.
이 때 일본군이 들이 닥친다. 그들과 함께 미우라 등장. 바닥에 널린 무수한 시체들을 보고
무명, 뇌전과 낭인들의 싸움을 향해 발포를 명하는 미우라.
군인들이 멈칫거리자 권총을 드는 미우라. 타앙~.
INS 건청궁 서재 안. 밤
총소리에 무언가 글을 적고 있다가 고개를 드는 자영.
궁 근정전. 밤
무명 앞에 낭인 하나가 피를 튕기며 쓰러진다.
저만치서 일제히 무릎 꿇고 총을 겨누는 소총수들이 보인다. 그들의 총구에서 뿜어 나오는 불꽃들.
퍼억! 한방을 맞고 주춤 뒤로 물러나는 무명.
낭인들이 연이어 쓰러지고 도망친다.
다시 무명의 몸으로 날아드는 총알들.
이 때 뇌전, 무명을 막고 대신 총을 맞는다.
뇌전, 무명, 쓰러진다.
수많은 시체가 뒹구는 돌바닥. 그 속에 무명을 감싼 뇌전도 있다.
낭인들과 군인들이 안으로 몰려가는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근정전 용상위에 올라가 괴성을 지르며 오줌을 갈기는 낭인들.
죽어가는 뇌전의 밑에서 살아나오는 무명.
무명 : 이게 무슨 짓이야?
뇌전 : 가라. 어서 후를 지켜라. 알고 있나? 우리 둘의 싸움이야말로 유일하게 우리 자신을 위한 거였어...
친구...너의 칼은... 즐거웠다.
숨을 거두는 뇌전.
격렬한 감정을 누르며 뇌전의 칼을 드는 무명. 한 손엔 자신의 칼을, 한손엔 뇌전의 칼.
S#127. 궁 고종 침소. 밤
고종이 칼을 휘둘러 낭인 하나를 벤다. 그러나 이내 제압당하고 칼을 떨어뜨린다.
일본군과 낭인들이 고종의 목에 칼을 들이댄다. 이를 갈며 원통해 하는 고종.
S#128. 광화문 앞. 새벽
군대가 궁 안으로 진격해 간 후, 시체만이 즐비한 광화문 앞.
대원군, 꼼짝 않고 복잡한 눈빛으로 말 위에 앉아 그 광경을 바라본다.
S#129. 건청궁 서재 안/밖. 새벽
건청궁으로 난입해 들어오는 낭인들.
품위 있는 옷을 갖춰 입은 자영. 위엄 넘치는 그녀의 앞에는 궁녀들이 결연한 눈빛으로 도열해 있다.
곧 낭인과 일본군이 밀어닥친다. 최상궁이 일어나 엄하게 꾸짖는다.
최상궁 : 이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더러운 발을 들이미느냐! 썩 물러가지 못할까.
미우라 : 중전마마. 대동아의 더 큰 번영을 위해... 부디 잘 가시오.
미우라가 허리를 깊이 굽혀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 때
최상궁이 낭인의 칼날에 쓰러져 간다.
이에 굴하지 않고 그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는 자영.
연이어 궁녀들이 일본의 칼날에 찢기기 시작한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기꺼이 죽어가는 궁녀들의 모습이 장엄하다.
부릅뜬 두 눈에 눈물이 흐르는 자영.
‘멈춰라.’
그 때 한옥의 천정통로에서 무명이 내려온다.
무명이 자영 앞을 막아선다. 모두들 놀란다.
자영을 돌아보고 미소 짓는 무명.
자영이 떨리는 손을 뻗어 무명의 상처 난 등에 손바닥을 댄다.
일그러진 무명의 미소가 정면을 향하며 다시 결연해진다.
상처 입은 허벅지에 자신의 칼을 푹 찔러 횡으로 긋는다.
무명 : 너희들은 단 한걸음도.. 후께 다가설 수... 없다.
미우라 : 신경을 잘라 다리를 포기하고 고통을 줄이겠다.. 좋군. 좋은 무사다. 얘들아. 이분께 정중히 예를 다해라.
지금쯤은 눈앞도 보이지 않을 것이니...
정면에 있는 낭인들이 무명에게 돌진해 온다.
앞이 잘 안 보이는 무명이 소리만으로 자객들을 베어낸다. 하나, 둘, 셋...
하지만 그 때.. 타앙~타앙~타앙. 총성이 울린다.
미우라의 황금색 리볼버 권총에서 연기가 솟아오른다.
무명의 면제배갑이 너덜너덜하다. 하지만 쓰러지지 않는다.
놀라는 자영.
낭인들 당황한다. 미우라 역시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다. 질렸다는 듯 귀신같은 무명의 모습을 보고만 있다.
보면, 뇌전의 칼로 자신의 발을 찔러 바닥에 박았다.
꼿꼿이 서 있는 무명. 눈을 껌벅이며 자영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무명.
충격을 받은 듯 그런 무명을 보고 있던 자영, 비로소 무명에게 다가가 그의 얼굴을 감싼다.
무명, 무슨 말인가 하려고 노력한다. 입술이 달싹인다.
무명 : 신은.. 후의.. 곁에...
자영, 무명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자영 : 그래.. 그대가 곁에 있는 한 두렵지 않아.
꼿꼿이 선 채 비로소 고개가 꺾이는 무명.
자영, 무명을 막아서며 미우라를 똑바로 노려본다.
자영 : 너희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똑똑히 보거라. 절대, 오늘을.. 나를, 잊지 말거라. 나는, 조선의 국모 민자영이다.
낭인들, 미우라를 쳐다보면 미우라, 눈짓을 하고
낭인 토오 가츠야키가 자영을 찌른다. 푹.
연이어 달려든 나카무라 다테오도 자영을 찌르기 시작한다. 푹. 푹. 이어 데라사키도 자영을 찌른다.
칼은 자영을 관통해 무명까지 찔렀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자영. 하늘을 본다. 동이 터 오는 하늘이 유달리 파랗다. 파도 소리가 들린다.
푸른 허공을 향해 꺼져가는 생명의 눈.
자영, 미소를 짓는다. ‘요한...’
자영의 피가 옷에 물들며 하얀 꽃무늬가 붉은 꽃이 피어나듯 배어든다.
무명이 선물한 그 붉은 꽃.
미우라, 다시 총을 겨눈다.
S#129A. 궁. 새벽
타앙~
총성이 궁 전체에 진동한다.
S#129B. 고종 침소. 새벽
고종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하지만 이내 환관과 상궁들의 도움으로 의관을 갖춰 입는 고종. 적의 총칼 앞에 굴하지 않으려는 의연한 얼굴이다.
S#129C. 광화문 앞. 새벽
대원군. 눈에서 흘러내리는 한줄기 눈물.
S#129D. 야산. 새벽
자영과 무명의 시신이 불에 태워진다.
두사람, 마치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듯.. 시선이 마주한다.
불길이 치솟는다.
언뜻 무명의 손끝이 자영을 향해 꿈틀거린다.
그 손끝이 자영의 손끝에 닿는다.
자영을 바라보던 무명의 동공이 비로소 힘을 잃는다. 무명의 얼굴이 미소를 띄고 있는 것 같다.
S#129E. 건청궁 서재 안.
(자영이 고운 종이에 편지를 쓰고 있는 모습과 목소리 들린다. 오랫동안 부치지 못한 편지를 써오던 모습들. 태워지는 편지들)
오늘도 전하지 못하는 편지를 씁니다. 이렇게 썼다가 태우고 또 태우고.. 하고픈 말이 많았나 봅니다.
바다... 지금, 제일 그리운 것이 당신과 함께했던 그 바다입니다.
언젠가 좋은 세상이 오면, 함께 다시 한 번 그 바닷가를 찾아가고 싶었습니다.
장군. 돌이켜보니 귀공의 바램을 한 번도 들어 주지 못했습니다. 지금.. 그것이 후회가 됩니다.
허나 귀공의 그 마음은 평생....(말을 잇지 못한다)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장군은...나의 바다입니다.
S#130. 에필로그. 바다. 낮
나룻배를 타고 바다에 갔던 그 때. 바다를 보고 서 있는 자영.
자영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무명, 햇살에 반사된 자영이 눈부시다.
가만히 걸어가서 자영과 나란히 서 보는 무명. 고개를 내밀어 몰래 그녀의 옆모습을 훔쳐본다.
그런데 그녀의 눈망울이 젖어있다.
그 때 갑자기 자영이 무명의 시선을 의식하고 고개를 돌린다.
눈이 마주친 무명, 당황하여 뒷걸음질 치다가 바닷물에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우스꽝스런 무명을 보고 웃음이 터져 나오는 자영.
무명, 젖은 엉덩이를 털어내며 투덜거린다. 자영, 눈물을 머금은 채 활짝 웃는다.
훅~ 갑자기 불어오는 모래바람.
눈에 모래가 들어간 자영, 눈을 뜨지 못한다.
무명, 머뭇거리다가 성큼 다가가 자영의 눈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혀로 자영의 눈을 닦아준다.
멀리 보이는 무명과 자영.
모래 언덕위에 활짝 핀 해당화 꽃.
나비 두 마리, 꽃을 희롱하며 서로를 희롱하며 팔랑이는 날갯짓.
끝.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