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 펙(Gregory Peck) (1916 ~ 2005)

헐리웃의 영화배우 중에서 그레고리 펙 만큼 오랜 세월 많은 사랑을 받은 배우도
드물었습니다. 수려한 외모의 미남배우인 그는 인기 스타이면서도 항상 좋은
이미지관리에 성공한 배우로 그를 싫어하거나 혐오하는 사람들은 드문 편입니다.
1944년 '영광의 날(Days of Glory)'로 데뷔하였을 때 그는 28세였습니다.
이어 두번째 출연작인 '천국의 열쇠(The Keys of the Kingdom)'이라는 대작에
주인공으로 출연한 그는 두번째 출연작임에도 이런 대 서사극의 주인공을 맡은
행운을 누렸습니다. 이 영화로 그는 이미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것이죠.
이후 '사랑의 결단(Valley of Decision)' '망각의 여로(Spellbound)'
'아기사슴(Theh Yearling, 개봉명 애정)' '백주의 결투(Duel in the Sun)'
'신사협정'등 히트 걸작영화에 계속하여 출연하는 행운을 누렸죠. 이 영화들은 모두 미국내
그해 흥행 베스트 10에 들 정도로 히트하였고, 그레고리 펙은 혜성처럼 나타난 미남 기대주로
떠올랐죠. 이 기간동안 그는 3년연속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로 오르는 기염을 토합니다.
(물론 아깝게 수상은 못했죠) 그가 평생 5차례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는데
그중 데뷔초의 3년에 집중되어 있으니 데뷔하자마자 이런 전성기를 누린 배우는 거의
없었는데 그레고리 펙은 정말 행운과 본인의 실력이 모두 적용된 것이죠.

그는 게리 쿠퍼, 클라크 게이블, 존 웨인, 제임스 스튜어트, 로버트 테일러의 뒤를 이어
'미국을 상징하는 이미지의 배우'로 급격히 떠올랐습니다. 배우가 출세하려면 좋은
여배우와의 공여도 중요한데, 40년대 중후반에 그가 공연한 여배우들만 보아도
'그리어 가슨' '잉그리드 버그만' '제인 와이먼' '제니퍼 존스' 등 아카데미상 수상여배우
들이었으니, 얼마나 여배우 복도 있었던 배우입니까?
50년대에 이미 원숙기에 접어든 그는 많은 영화에 출연하였고, 그중 상당수의 작품은
국내에서도 개봉되어 히트했습니다. 그가 50년대에 출여한 영화들의 제목은
'다윗과 바세바' '킬리만자로의 눈' '로마의 휴일' '세계를 그대품안에' '백경' '빅 컨츄리'등
국내에서도 무척 낯익은 히트작들이죠. 굉장히 대중적인 스타이면서도 그는 좋은 영화에
많이 불려간 배우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는 1952년 하이눈의 배역을 거절하는 '판단미스'를
하기도 합니다. 하이눈의 배역은 그래서 선배인 게리 쿠퍼에게 돌아갔고, 이 영화는 불후의
걸작이 되었고, 게리 쿠퍼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침체를 벗어나며 후반기의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물론 그레고리 펙도 '로마의 휴일' '백경'등 이후 좋은 영화에 출연하기는 했지만
하이눈만한 돋보이는 역할은 아니었죠.
50년대까지 아카데미상과 인연이 없었던 그는 1962년에 출연한 '앵무새 죽이기(개봉명은
알라바마에서 생긴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물론 제가 보기에
이 수상은 전관예우같은 형식의 받을만한 시기가 된 대스타에게 수여한 상이라는 느낌입니다.)
수많은 히트작을 남기고 아카데미상까지 수상한 그는 정말 부러울 것 없는 배우죠.
그렇지만 그는 60년대에도 좋은 영화에 많이 출연하여 대표작들을 만들었습니다.
'나바론' '케이프 피어' '아라베스크' '마켄나의 황금'등은 그의 60년대 대표작이죠.
사실 마켄나의 황금에 출연한 69년이후 그는 50대를 넘어섰고, 한동안 주춤하게 됩니다.
20년이 넘는 전성기가 내리막길에 들어섰던 것이죠. 1976년에 출연한 공포영화이자
오컬트 무비인 '오멘'에서 비로소 다시 주목받게 되죠.오멘 이후에 출연한 영화중에서는
'맥아더'와 '바다의 늑대들'이 국내에 개봉되었습니다. 바다의 늑대들에 출연한
1980년까지 64세가 된 그레고리 펙은 사실상 이때까지가 그의 '주연배우로서의 영화이력'의
대미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1944년부터 무려 36년동안이나 쉬지 않고 달려왔고, 그 기간동안
한번도 '조연배우'로 내려간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서부개척사'라는 유명배우가 대거 출연한
올스타캐스팅 영화에서 한번 조연으로 출연한 것 외에는 전부 주연이었습니다.
아마 헐리웃 배우중에서 좀처럼 '주연양보'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던 배우가 게리 쿠퍼,
클라크 게이블, 존 웨인, 제임스 스튜어트, 폴 뉴만, 스티브 맥퀸 정도인데 그중 그레고레 펙도 포함되는
것이죠.
그레고리 펙이 사망한 것은 2005년입니다. 89세의 나이로 장수하면서 아주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죠.
영화속 삶 만큼이나 모범적인 미국시민이었던 그는 두번의 결혼과 5명의 아이들을 둔 비교적
헐리웃 배우들중에서는 요란스럽지 않은 결혼생활의 이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양한 배역을 많이 맡은 배우로도 유명한데 '군인' '서부의 무법자' '변호사' '교수' '기자'
'선원' '대통령' '외교관' '작가' '성직자' '모험가'등 다채로운 배역을 맡았고, 악역과 선역,
강한남자와 부드러운 남자등 상반된 배역도 여러차례 맡았습니다.
'케이프 피어'나 '앵무새 죽이기'에서는 다소 유약한 엘리트 신사였고, '세계를 그대품안에'나
'나바론'같은 작품에서는 강인한 사나이였습니다. '백주의 결투'나 '백경' '브라질에서 온 소년'에서는
악역이었고, '천국의 열쇠' '신사협정' '빅 컨츄리' '그날이 오면' 등에서는 정의로운 역할이었죠.
그래서인지 그는 '총을 찬 서부극'과 '양복입은 신사' '군복입은 군인' 등이 모두 어울리는 배우였습니다.
다만 '시대물'은 조금 덜 어울려서 '바윗과 바세바'는 실패작으로 생각됩니다.
그는 동시대에 활동한 찰톤 헤스톤과는 많이 대조되는 배우였습니다.
키와 체격은 비슷하지만 찰톤 헤스톤이 상의를 벗고 야성적인 매력을 뿜는 사극의 주인공이라면
그레고리 펙은 윗옷을 단정히 입고 부드러운 매력을 풍기는 현대의 신사같은 느낌이죠.
(찰톤 헤스톤과는 빅 컨츄리에서 한번 공연했고, 상당히 상반되는 역할로 출연했죠)
우리나라에서도 누구보다도 높은 인기를 누린 그레고리 펙은 많은 영화속에서 부드럽고 중후한
매력을 풍기며 오래오래 기억되는 대 스타로 남아 있습니다.
ps : 외모를 가지고 비교할 때 그레고리 펙은 한국의 남궁원과 유사한 이미지로 많이 비교가 됩니다.

영화 권총왕(Gunfighter 50년)의 한 장면

1958년 작품 '빅 컨츄리'

아카데미 상을 수상하게 한 영화 '앵무새 죽이기'의 한 장면

디자이닝 우먼(Designing Woman 56년)

말년의 그레고리 펙
첫댓글 그레고리 펙!
멋진 신사의 분위기를 풍기는
배우입니다, 제가 이분을 접한건 "맥켄나의 골드"
였습니다. 이집트 배우 "오마 샤리프" 와의 불꽃튀기는 연기
압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