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니콜슨 [Jack Nicholson ]
생년월일 : 1937. 4. 22
출생지 : 미국 뉴저지 넵튠
학 력 : 마나스콴 고등학교
신 장 : 177cm
1937년 4월 22일 뉴 저지 주의 넵튠 출생. 대학을 졸업한 후 MGM 영화사의 애니메이션 파트에서 일했는데, 그때 배우가 될 것을 결심하고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첫 영화 출연은 56년 영화 <차와 동정>의 학생 중의 한 명이었다. 그러다가 당시 저예산 아이디어 영화로 코폴라나, 마틴 스콜세지 등을 거느리기도 했던 로저 코먼 감독 밑에서 배우 겸 각본가로 일했다. 그러던 중 히피 운동에 푹 빠져 있던 피터 폰다, 데니스 호퍼를 만나 69년에 독립영화의 대표적인 작품인 <이지라이더>에 출연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술주정뱅이 변호사로 같이 여행을 떠나다 마을 청년에게 맞아 죽는 헨슨으로 나왔는데, 아주 강렬한 연기를 보여 줬다. 이듬해인 70년에는 나중에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에서 다시 작업하게 되는 밥 라펠슨 감독을 만나 <화이브 이지 피시즈>에 출연했는데, 잭 니콜슨은 이 작품에서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후 74년에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차이나 타운>, 이듬해에는 미로스 포먼의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 등의 사회성 짙은 문제작들에 연달아 출연해 헐리우드 최고의 성격파 배우로 자리잡았고, <뻐꾸기...>로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90년에는 <차이나 타운>의 속편격인 <불륜의 반항아>를 직접 감독하기도 했다. 89년에는 <배트맨>에서 죠커 역으로 나오는가 하면 92년 작품 <어 퓨 굿맨>에서는 독선적인 해병장교, <호파>에서는 전설적인 노동운동가 역으로 나오는 등 출연작을 자유자재로 고르면서도 인기와 품위를 잃지 얻는 헐리우드 최고의 배우이다.
안젤리카 휴스턴 (Angelica Huston)
대 배우이자 감독인 존 휴스턴의 딸이자 역시 배우인 월터 휴스턴의 손녀딸.
85년 Prizzi's Honor로 아카데미 상을 수상함으로써
휴스턴가의 3대째 아카데미 수상자로 기록되는 기염을 토했다.
(안젤리나 졸리가 아카데미 상을 타면서
아버지 존 보이트를 이어 2대째 수상한 것이 이슈가 되는 헐리우드에서
3대나 오스카수상을 잇는다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178에 육박하는 늘씬한 키와 호리호리한 몸매를 타고났으며
배우에 전력하기 전 십대시절엔 7년간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다.
엄마를 닮아서 이탈리아인 특유의 뚜렷한 이목구비를 지녔는데
영화 아담스 패밀리에서 그녀의 이런 이미지는 십분 활용된다.
(그 이후로 아담스 패밀리 배우라는 호칭이 계속 따라다닐 정도이다)
현재 그녀의 나이는 59.
이들이 처음 만나게 된 것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연도로 볼 때 1973년부터 그들의 관계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지 라이더'와 '파이브 이지 피씨즈' 등에서의 연기로
떠오르는 청춘 스타이자 배우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잭 니콜슨이
시원시원한 외모에 상큼한 미소가 인상적인 시크한 휴스턴을 만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 지는 이 사진을 보면서 느껴지는 둘의 행복한 미소를 통해
충분히 전달이 될 정도이다.
안젤리카 휴스턴의 키가 좀 크긴 하지만
둘 사이에 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이 아무리 서로를 열렬히 사랑했다 하더라도
워낙 잘나가는 배우들이다 보니
곳곳에서 유혹의 손길이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니콜슨과 휴스턴은 좋은 관계를 꾸준히 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한다거나 가족을 꾸린다는 생각으로 발전하지는 못하고
그저 서로에 대한 감정을 유지하는 것에만 충실했다.
둘의 사랑은 안젤리카의 아버지 존 휴스턴을 비롯
영화계에서 일하는 가족들의 든든한 지지를 받았는데
그래서인지 둘이 같이 출연한 영화가 상당하다.
예를 들어, 잭 니콜슨의 당시 출연작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는
안젤리카 휴스턴이 단역으로 잠깐 등장하고
안젤리카 휴스턴의 주목할만한 첫 작품인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는 역시나 니콜슨의 주연작이었다.
이 사진을 보면 둘이 너무 행복해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안젤리카 휴스턴은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번도 아이를 낳은 적이 없는데
이를 후회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잭 니콜슨의 경우는 달랐다.
둘의 17년간의 이상적이었던 관계가 깨지게 된 단 하나의 이유가
니콜슨이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웨이트리스 때문이었기 때문.
처음 잭 니콜슨이 이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안젤리카에게 달려가서 사실을 고백했다.
그리고 이 얘기를 들은 안젤리카는 한동안 침묵하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 여자를 도와줘.(You should support her.)"
안젤리카는 침착하게 잭과의 결별을 선언했지만
17년간의 연인관계를 엎어버린 니콜슨에 대한 배신감이 극도에 달해서
화를 참지 못해 그를 때리기도 했다.
이 사진은 그들이 헤어지기 2년전의 모습.
안젤리카를 꼬옥 껴안고 있는 잭이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정말 행복해 보이는데
만약 이때 둘이 결혼을 했더라면 끝까지 행복하게 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사랑에 빠져도 3년이라는 유효기간이 지나가면
더 이상의 불꽃같은 사랑은 지속하기 힘들다고들 말하는데
무려 17년간이나 지속된 이들의 사랑은 왜 이런 결말로 치닫게 되었을까.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무슨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니콜슨과 휴스턴.
남자보다 더 강하게 생긴 휴스턴이지만
니콜슨과 있을 때의 그녀는 너무도 여성스럽고 사랑스럽다.
괴팍하고 화내는 신경질적인 연기의 달인 니콜슨 역시
휴스턴과 함께 있으면 사랑에 빠진 온순하고 평범한 남자가 된다는 점에서
이 둘은 정말 서로를 위해 존재하지 않았나 싶다.
둘이 같이 있는 가장 최근 사진.
안젤리카 휴스턴은 니콜슨과 결별한 후(그녀가 먼저 결별의사를 전했다.)
니콜슨을 잊지 못해 꽤 오랫동안 실의의 아픔을 달래야 했는데
92년에 조각가인 로버트 그레이엄 주니어와 결혼하면서 다시 마음의 안정을 찾았지만
남편이 죽으면서 다시 혼자가 되었다.
니콜슨은 이후로 라라 플린 보일 등 여러 여자들과 연인관계를 가졌지만
휴스턴 만큼 꾸준히 유지되는 관계는 더 이상 없었다.
하지만 휴스턴과 니콜슨이 연인이었을 시절
알레그라라는 아이를 입양했는데 그나마 이 딸 덕분에
니콜슨과 휴스턴의 친분관계는 죽을때까지 이어질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이 다시 사랑하는 건 지금 시점에선 무리일까?
잭 니콜슨은 동시대 연기자 중에서도 가장 개성있는 연기자 중 한 사람이다. 잭 니콜슨은 1937년 4월 22일 미국의 뉴저지에서 태어났고 어머니와 할머니가 그를 키웠다. 니콜슨은 플레이어 링 씨어터라는 지역 극단에서 연기 공부를 시작해 텔레비전과 연극무대에 얼굴을 내밀었다. 58년 니콜슨은 'B'급 영화의 대부 로저 코먼에게 발탁돼 <크라이 베이비 킬러>에 캐스팅됐고, 전설적인 컬트 공포 영화 <흡혈 식물 대소동>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당시 무명이었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와 몬티 헬만과 <테러>에서 함께 작업했다. 헬만 아래서 니콜슨은 <지옥으로 가는 뒷문>과 <광란의 비행>에 출연했다. 69년에는 데니스 호퍼와 피터 폰다와 대항문화의 표상이 된 <이지 라이더>에 동반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그 후 로만 폴란스키의 현대판 느와르 <차이나타운>에 탐정 제이크 기티스로 출연해 오스카에 노미네이트 된다.
이듬해는 니콜슨에게 기념비적인 해였다. 세계적인 거장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여행자>와 켄 러셀의 록오페라 <토미>에 연달아 출연하면서 명성을 쌓았다. 75년에는 체코 감독 밀로스 포먼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 출연해 광기어린 정신병자 연기로 오스카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을 휩쓸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이 때부터 니콜슨은 광기에 휩싸인 현대인의 초상을 리얼하게 연기하는 배우로 이름을 날린다. 80년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에서 부터 밥 라펠슨의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 존 휴스턴의 <프리찌스 오너>, <이스트윅의 마녀들>에 이르기까지 니콜슨의 연기는 독보적인 영역을 쌓아왔다.
90년 니콜슨은 <차이나타운>의 속편격인 <불륜의 방랑아>를 연출했지만 이 영화는 재난을 맞았다. 90년대까지 니콜슨의 연기 색깔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팀 버튼의 <배트맨>에서 니콜슨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지하세계의 악동 '조커'역을 훌륭히 소화했고 97년작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는 괴팍한 성격의 중년 남성으로 열연해 다시 한 번 오스카를 정복했다.
최근 <어바웃 슈미트>로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바 있는 그는 아카데미 후보에 가장 많이 오른 남자 배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