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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애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요한1서 2장 12~14절)
우리를 보시는 주님의 눈빛이 따사롭고 사랑스럽고
절대 주님의 눈빛을 오해하지 않길 바랍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고 내 부족함을 다 아시면서
사랑해 주시고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한탄하죠.
왜 나는 이것밖에 안되는 걸까.
왜 나는 누구처럼 잘 안 될까.
그런 아쉬움이 많습니다.
주님도 역시 그런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흐름 안에서 우리는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능하신 주님은 지금 내 모습 이대로
기꺼이 받아주시면서 성장하라고
변화되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격려하십니다.
내가 보기에도 내가 부족한데
주님이 나를 보기에 얼마나 부족하겠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사랑의 대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부족함도 사랑이 됩니다.아멘.
우리는 그 부족함도 사랑이 되지만
그 부족함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성장해 갈 수 있도록
발전해 갈 수 있도록
영적으로 더 주님을 닮아갈 수 있도록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그런 거룩한 소원,
주여 정말 내가 이 말씀 먹으면서
저 말씀대로 성장하길 원합니다.
저 말씀이 내게 들어와서 나를 변화시키고,
나를 성장시키고, 나를 변화시키고,
조만간에 주님의 얼굴을 뵈올 때에
부끄럽지 않도록
주여 이 말씀으로 나를 빚어주시옵소서.
주여, 오늘 이 말씀으로 나를 새롭게 하시고
이 말씀이 내 속에 심어져서 역사하여주옵소서.
이 시간은 주님께 집중하는 시간입니다.
전심으로 말씀으로 집중할 때
주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자녀들, 청년들, 아비들,
아버지들이 나옵니다.
세 부류죠.
이것은 한 교회 안에 있는 육신의 나이의
상태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육신적으로 아이들, 청년들,
아버지들이 있으나 이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니다.
우리 주님의 눈에는 육신적인 나이, 연륜,
육신적인 어떠한 것이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눈에는 영혼의 상태,
영적인 성숙의 상태가 가장 중요합니다.
1. 자녀의 수준
영적인 성숙도, 영적인 거룩한 분량 안에서
아이들이 있습니다.
자녀의 수준, 청년의 수준, 아버지의 수준이
있다 이겁니다.
사도 바울이 고전 4장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다 했습니다.
스승은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비는 많지 아니하다. 그 아비가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여러분들은 자녀의 수준을 넘어서고
자라서 청년들의 수준에 도달하고 그 청년의
수준도 넘어서서 성숙함의 척도가 아비가 될
수 있도록, 아버지가 될 수 있도록 그렇게
늘 발전하고 전진하길 바랍니다.
주여, 오늘 이 말씀 먹고 마심으로 내가
새로워지고 내가 성장하고 내가 영적으로
자라길 바랍니다.
영적 성숙의 정도는 구원의 정도입니다.
구원의 정도, 영광의 정도입니다.
성숙의 정도가, 구원의 정도요, 영광의
정도입니다.
구원의 단계, 영광의 단계입니다.
예수 믿고 똑같이 구원받아 주님께 가지만
그 구원의 누림과 정도와 영광과 반열은
다르단 말입니다.
성숙함의 척도에 따라서 말입니다.
똑같이 예수 믿고 죄인된 상태에서 예수믿고
거듭나고 구원받아서 천국가지만,
아버지 집에 가지만요.
거기서 누릴 구원의 누림과 정도와 영광은
다르단 말입니다.
절대 같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잘 하자,
말씀 먹고 성장하자.
내 영혼아 말씀 잘 먹고, 기쁨으로 잘 먹고
성장할지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다가 나옵니다.
구원은 애굽에서 이뤄졌습니다.
어린양을 잡아서 어린양의 피를 집의 문설주,
인방마다 발랐습니다. 그럴 때에 애굽에서
죽음의 사자가 집집마다 찾아가서 장자를
죽였어요.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바른 집에는
그 죽음의 사자가 넘어가버렸습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그 다음에 구원을 받은 자는 반드시 애굽에서
나와야 합니다.
어린양의 피를 바르고, 구원을 받은 자는
애굽에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반드시!! 나와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어린양의 피를 바르고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나오는데
거기에 수많은 잡족이 섞여 나옵니다.
옛사람이 섞여 나와요.
혈기가 섞여 나와요.
짜증, 성질, 욕심이 섞여 나옵니다.
이것이 죽어야 하는데, 애굽에서 처리가 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구원받아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섞여 나옵니다.
출 12장에 보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수많은 잡족이 섞여서, 주님이 함께 가자고 구원한
자들이 아닌데 함께 옆집에 살았기에,
친구로 지냈기 때문에
이 잡족들이 섞여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넘어집니다.
누구 때문에 넘어집니까?
섞여 나온 잡족들 때문에 넘어집니다.
영적인 의미죠.
실제로 유대인들, 이스라엘은 섞여나온
육적인 잡족들 때문에 죽었습니다.
원망했습니다. 넘어졌습니다. 실패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지만
함께 섞여나온 잡족 때문에 넘어집니다.
우리 옛사람은 죽었고 혈기도 죽었고
자존심도 죽었고 혈기도 죽었고
모든 것이 옛사람이 죽은 자들인데
그런데 이것들이 슬그머니 섞여 나와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분노케 하고
짜증나게 하고 욕심나게 하고
그러므로 넘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섞여 나온 무리들을 날마다 날마다
갈라내어야 합니다.
성질이 구원을 받겠습니까?
욕심이 구원에 들어가겠습니까?
그래서 광야를 살아가면서 섞여 나온 무리들을
처리하고, 그렇다고 광야에 살 것이 아니라
반드시 애굽에서 나온 자는
광야의 과정을 거쳐서 하나님의 목적이 있는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대신에 날마다 섞여 나오는 무리,
이것 때문에 실망하니까, 이것 때문에 낙심하고
짜증나니까. 우리 명절 설이 있었잖아요.
명절에 친정, 시댁에 가면서 친척들 만나고
친구 만나면서 혹시 이것 때문에 섞여 나온
것들 때문에 짜증나오지 않았습니까?
내 속에 섞여 나온 잡족 때문에 걸려
넘어진 적은 없습니까?
과감하게 걸러내어서 함께 가지 않길 바랍니다.
가라지를 갈라내야 합니다.
섞인 무리를 갈라내어야 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구원받았습니까?
주의 생명이 있습니까?
그러면 광야의 과정을 거쳐서 주님의 목적
안으로, 날마다 들어갈 수 있길 바랍니다.
전능하신 주님은
날마다 내가 주님을 가까이 함으로
주님을 먹고 마셔,
주님을 닮아가고 성장하고 변화되길 원하십니다.
지금 이 상태도 주님의 기쁨입니다.
지금 이 상태를 주님이 보실 때도 주님은
기쁨으로 보십니다.
하지만 주님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 상태만으로도 나는 너를 사랑하고
이 상태만으로도 나는 너를 기뻐하고
이 상태만으로도 나는 너를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네가 더 자라길 원한다.
하지만, 나는 네가 더 변화되길 원한다.
더 부드러워지길 원한다.
지금도 좋지만
나는 더 네가 나를 닮아가고
나의 표현이 되어져 가고
그렇게 되어져 가길 원한다.
전능하신 주님이 나를 바라보시고
지금 이 모습도 좋아하시지만은
더 성장하고 더 발전하고
더 변화되길 원하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영원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왜 좀 더 변화되어야 하는가
왜 내가 좀 더 포기해야 하는가,
왜 내가 좀 더 죽어져야 하는가,
왜 내가 좀 더 변화되어야 하는가,
왜 내가 좀 더 집착에서 해방되어야 하는가,ㅇ
이걸 나는 잘 모르지만 주님은 다 아셔요.
그래서 정말 잠시 잠깐 후에는 우리가
주님과 하나가 되고 주님을 만나게 될 겁니다.
그 때 가서 후회해도 소용이 없단 말입니다.
기회가 있고 변화가 있고 새롭게 될 수 있고
성장될 수 있을 때에
주님은 우리가 좀 더 주님을 가까이 하므로
좀 더 주님을 사랑하므로 좀 더 갈망하고
좀 더 내려놓고 좀 더 자신을 포기하고
좀 더 주님이 나를 통해 일하실 수 있도록
좀 더 주님께 드려서 그렇게 변화되어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십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누가 변화되겠습니까?
100%입니다. 주님을 가까이 하는자.
누가 성장하겠습니까?
100%입니다. 주님을 가까이 하는 자.
누가 달라지겠습니까?
100%입니다. 주님을 가까이 하는자.
우리는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뭘 가지고?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좀 해 보다가 안된다고 낙심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주님을 가까이 하고
말씀으로 주님을 가까이 하고
기도로 주님을 가까이 하고
예배로 주님을 가까이 하고
주님과 만남을 통해서 주님을 가까이 함으로
주님을 가까이 하면 답이 나옵니다.
내 영혼아 주님을 가까이 할지어다.
내 영혼아 주님을 가까이 할지어다.
주님을 가까이 하는 자가
주님을 닮아갑니다.
고후 3:17,18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언제 변화되어요? 주님을 바라볼 때.
언제 새롭게 되어요? 주님 바라볼 때.
주님을 가까이 하고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변화됩니다.
전능하신 주님은 주님을 가까이 하고
주님을 바라보는 자를 새롭게 하십니다.
변화시키십니다. 그를 달라지게 하십니다.
그를 주님 닮아가게 하십니다.
세상에서도 가까이 하면 물들어요.
좋은 환경을 가까이 하면 안 좋은 환경을
가까이 하면 어차피 사람은 물들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으로 물들어 갑시다.
주님을 가까이 하므로,
말씀을 가까이 하므로, 기도하므로
주님으로 물들어 갑시다.
오늘날 사람들을 보세요.
그들의 생각과 정신 모든 것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과 세상에 속해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를 가까이 하라,
그러면 내가 너를 가까이 할 것이다,
나를 가까이 하면 네가 나를 닮아갈 것이다,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를 만나주고,
그를 새롭게 하고 나를 닮게 하고
변화시킬 것이다. 아멘.
정말 부디 주님을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가까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가까이 하자고요?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반드시 필요합니다.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주님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하고
먹고 마실 때에 반드시 변화됩니다.
마지막 때는 끈기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흐지부지 않기를 바랍니다.
쉽게 포기하거나 쉽게 낙심하거나
쉽게 안된다고 하지 않길 바랍니다.
주님이 포기하지 않는 이상,
나도 포기하지 말고,
주님이 나를 선택했사오니
나를 변화시키시고
나를 주님 닮아가게 해주세요.
나를 새롭게 해주세요.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세 단계의 영적 수준을 말씀
하십니다.
첫째 단계를 보니까, 아이들, 자녀의 단계가
나옵니다.
요일 2:12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이것이 수준입니다.
이것이 자녀의 수준이니다.
이것이 아이들의 수준입니다.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으며.
영적 아이, 영적 자녀의 수준은
죄사함과 구원의 복음의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죄사함, 구원받았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죄사함과 구원은 가-장 중요한 구원의
기초입니다.
핵심적인 복음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기초에요.
그런데 자라지 않은 사람은
영적 아이들, 영적 자녀의 수준은
죄사함과 구원의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죄를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심을 아는 것입니다.
영적 아이들의 단계는 죄사함 받고 구원받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아요.
이건 너무너무 중요하죠.
하지만 전부입니까? 이제 시작입니다.
죄사함 받으면 완성이 아니고 시작입니다.
죄사함은 문을 여는 것입니다.
그 동안 주님과 내 사이에 죄의 문이 가로막혀서
도무지 주님께 나아갈 수 없고
생명에 가까이 나아갈 수 없는 절망적인 죄인인 우리가
예수의 거룩한 피로, 예수의 거룩한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고 죄사함으로 문을 열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겁니다.
이것은 완성의 수준이 아니고 시작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죄사함 받음에
머물러 있습니다. 문 열어 놓고 있는 거에요.
들어가려고 하지 않아.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70년이 차면은 내가 바벨론에서 너희를 분명히
이끌어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기대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할아버지가 그 말씀을 믿었다면
자기 아들에게, 자기 손자들에게
얘들아, 우리가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지금
포로생활을 하지만 주님이 70년 후면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말씀하셨단다.
그러니, 준비해라, 준비해라 하지 않겠냔 말입니다.
70년이 차니까 주님은 말씀을 이루시려고
고레스를 일으켜서 바벨론을 침략하게 만드시고
바벨론을 점령시키시고 이스라엘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돌아오게 만드십니다.
그런데 1차로 돌아오는 사람이 5만 명이 안됩니다.
2차로 돌아오는 사람이 2천 몇 백 명입니다.
수 백 만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스라엘로
돌아오지 않고 바벨론에서 삽니다.
왜 그랬습니까?
영적 아이들의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길 바랍니다.
죄사함 받은 것이 너무나 귀중하고 소중하지만
그 단계에 머물러 있지 않길 바랍니다.
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받은 것이
너무너무 귀하지만은
그 구원이 목적이 아니고 목적을 위한 과정입니다.
이것이 아비의 수준입니다.
아비는 구원의 목적을 압니다.
구원받으면 목적이 있습니다.
아이들과 자녀는 구원을 목적으로 받아버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구원이 목적이 아니고,
주님이 나를 구원하신 데에는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을 위해 가는 자가 아비입니다.
여러분이 예수의 피를 믿으므로 죄사함을 받고
예수의 이름을 믿으므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고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된 것이 너무너무 감사하지만은
절대로 그 수준, 그 차원에 머물러 있지 말고
전진해 가자, 발전해 가시기 바랍니다.
히 6:1-2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자. 어디로?
완전한 데로 나아가자.
이 원에다가 성숙한 데로,
주님을 닮아가는 온전함으로,
부르시는 목적을 향하여,
구원의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자.
그러니 우리는 자라가야 합니다.
왜 주님이 나를 구원해 주셨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 아이의 단계에
머물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가 너무 사랑스럽고 너무 귀하잖아요?
그런데 그대로 10년 있다고 합시다.
아이 상태로 10년 있다고 합시다.
그것이 부모에게 기쁨이 되겠어요?
병이 되죠. 지금은 기쁨이지만
그 상태로 10년을 기저귀 차고 있다고
생각해 봐요.
그러면 그 부모가 골병 들지 않겠어요?
부모는 아이가 태어난 기쁨 안에서
우유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자라가길 바라는 것입니다.
자고 나면 커가는 것을 볼 때
기쁨이 되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먹고 자고 나면 자라는 것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전능하신 주님은 내 모습이 해가 바뀔 때마다
달이 바뀔 때마다 날이 바뀔 때마다
변화되는 것을 보길 원합니다.
보길 원합니다!
그게 주님의 기쁨입니다.
그런 변화되고 자라가고 성장하고
폭이 넓어져가는 것을 주님이 볼 때마다
얼마나 귀하고 사랑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자라가자!
2. 청년의 수준
요일 2:14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청년들아 내가 너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겼음이라.
요일 2:14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어린 아이 단계에서 말씀을 먹고 마심으로
성장을 합니다. 그럼으로 핵심은
말씀입니다. 먹어야 자라죠.
우리는 말씀을 듣고 먹습니다.
깨닫고 먹습니다. 먹음으로 깨닫고
먹음으로 듣고 들음으로 먹고 들음으로
깨닫고 입니다.
단순하게 지식과 이론의 수준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입을 열어야 합니다.
말씀을 잘 먹어야 합니다.
렘 15:16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예레미야가 얼마나 주는 사람이 없으면
얻어 먹었다고 그럽니다.
이 말씀이 내 영의 힘이요 기쁨이라고 하죠.
시 119:131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주의 말씀을 먹으려고 헐떡거렸다고 합니다.
영이 잘 되길 바라면서 아멘으로 말씀을
먹지 않으면 어떻게 영이 잘 되겠습니까?
어떻게 영이 성장하겠습니까?
말씀으로 다 됩니다.
주님은 다 될 수 밖에 없는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먹으면 변화됩니다.
먹으면 변화됩니다.
내가 먹는 말씀이 내 속에서 실체화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나옵니다.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고, 흉악한 자를 이겼으니.
어린 아이 단계에서 청년 단계로 넘어오니까
뭐가 달라집니까?
말씀이 달라집니다.
아이들의 단계는 "구원받았네-♪" 이러고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입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죄사함 받은 것 같고 동네마다 시끄럽게 떠들어요.
구원받았다고 막 떠들어요.
이 부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 말씀이 없습니다.
청년의 때가 다가오면 성장해서 청년이 되니까
그들이 강하여졌습니다.
강하여졌다는 것은 굳세게 섰다는 것입니다.
주님께 굳게 붙어서 어떤 문제, 어떤 상황이나
어떤 일 때문에 요동하지 아니하고
흔들리지 아니하고 굳게 섰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고 있다.
이것이 차이입니다.
어린 아이와 청년의 차이는 말씀의 차이입니다.
여러분들은 충분히 자랄 수 있습니다.
성장할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는 구원받고 죄사함 받은 것에
그저 기뻐합니다. 죄사함은 말씀을 속에 채움과
관계가 없어요.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는 것은 속에 말씀으로
채움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냥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무나 중요하지만
시작이다! 출발이다!
그 다음부터 자라가야 하기 때문에.
자라는 것은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말씀 속에 거해야 합니다.
말씀 속에 머물러야 합니다.
말씀이 속에서 운동해야 합니다.
말씀이 속에서 역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청년입니다.
말씀이 속에 거하다 보니까
원수가 방해하고 원수가 역사해도
내 안에 거하는 그 말씀으로 이겨나갑니다.
시 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것이니이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이 험악한 시대에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겠습니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가할 것입니다.
말씀 외에 길이 없습니다.
시 119:11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이 말씀이 살아 있습니다.
이 말씀이 역사합니다.
이 말씀이 건져냅니다.
이 말씀이 수많은 타락과 범죄의 유혹에서
나를 이끌어냅니다.
말씀 속에 거하는 자와
말씀 속에 거하지 않는 자는
평안할 때는 모릅니다.
힘들 때, 어려울 때,
죄의 유혹이 올 때
그 때 속에 있는 말씀이 빛을 발합니다.
성령은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말씀은 그 때 살아 꿈틀거립니다.
내가 이러면 안되지,
내가 앉을 자리가 아니지,
내가 갈 곳이 아니지,
내가 설 자리가 아니지,
말씀이 나를 끌어냅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것이니이다.
주여,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말씀이 그들 속에 거한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지식과 이론으로
받은 것이 아니고
주님의 말씀을 영과 생명과 양식으로 받아,
그 속에 역사하는 말씀입니다.
이론과 지식은 힘이 없습니다.
어떤 순간엔 나에게 힘이 없습니다.
이론과 지식은 그림의 떡이라는 겁니다.
그림의 떡은 아무리 봐도 배가 안 부릅니다.
그런데 맛이 없는 빵조각도 먹어버리면
힘이 납니다. 그걸 실제라고 합니다.
이론과 지식적인 말씀은 실제가 안됩니다.
어떤 순간에 나에게 힘이 될 수 없어요.
그러나 내가 먹어버린 말씀,
약속이 된 말씀, 생명의 말씀,
은혜된 말씀은 그 순간 그 순간마다
나를 붙들어, 나를 세워, 이기게 만들어.
왜? 실제가 되었으니까.
그게 말씀이 머문다는 겁니다.
주님의 생명의 거룩한 말씀이 여러분 속에
머물고 거하길 바랍니다.
마음을 열고 입을 열어서
주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먹고 마시길
바랍니다.
정말 주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살아서
거하고 역사할 수 있도록.
그가 자라나서 청년이 됩니다.
그 청년은 내주하는 말씀으로 흉악한 자를
이겨버립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원수 마귀에게 시험을
받을 때에 무엇으로 이기셨습니까.
능력? 힘? 기적과 표적?
말씀! 한 방이면 끝날 마귀,
주님이 힘으로 몰아붙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록되었으되-"
성경을 갖다가 대십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하셨느니라"
그러니까 마귀가 높은 낭떠러지로 모시고
올라가서는 뛰어내려라! 성경에서 네 발을
천사들이 받들어 돌에 닿지 않게 하겠다고
하지 않았냐고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또!
"기록되었으되-"
언제나 또가 나오길 바랍니다.
원수가 말씀을 가지고 시험하니까
주님은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성전 꼭대기에서 주님이 나선형 계단타고
갑니다. 예루살렘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온 천하 만국을 보여주면서 내게 절하면
이 모든 영광을 네게 주겠다 했더니 주님이
하신 말씀이 "주 네 하나님께만 경배하라고
했다"고 하셨습니다.
무엇으로 이겼습니까?
기록된 말씀으로.
주님이 마귀한테 이길 힘이 없어서
기록된 말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누굴 위하여?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주님에게 마귀는 한 방도 안돼.
그런데 기록되었으되, 기록되었으되,
또 기록되었으되, 말씀을 쓴 것은
너희 안에 말씀을 채워서
기록된 말씀을 채워서
그 말씀이 너희 속에 살아서 역사하는
레마가 되게 만들어서
마귀와 세상과 온 정욕을 이기는 사람이 되라.
이겁니다.
마귀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육신의 소욕을 이기는 길은
내주하시는 말씀 밖에 없습니다.
부지런히 무장해야 합니다.
마귀는 힘으로 못 이깁니다.
세상 유혹, 용기로 못 이깁니다.
육신의 정욕, 안 해야지, 결단으로
못 이깁니다.
반드시 속에 말씀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말씀이 채워지면 넉넉하게 이길 수 있습니다.
말씀은 성령의 검입니다.
성령의 검 말씀으로 마귀와 세상과
육신의 정욕을 이기는 자가
영적 청년의 수준입니다.
자라갑시다.
아이와 청년의 차이는 말씀입니다.
이걸 아셔야 합니다.
주님 말씀 내 안에 채워지면 반드시
역사합니다.
3. 아버지의 수준
요일 2:13,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아비들은 다른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것과
태초부터 계신 이로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같다면 나눌 수가 없어요.
본문에서 아이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압니다. 죄사함 받고 구원받고
하나님 우리 아버지구나 알았습니다.
그 차원이 아닙니다.
아비들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두 번이나, 13, 14절 두 번이나 아비에
대해 말할 때- 여기 아비는 영적인 성숙한
자를 말합니다.- 다른 것을 말하지 않고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안다고 합니다.
그럼 아비들은 태초부터 계신 이로
안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태초부터 계신 이로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가졌던 마음,
하나님께서 태초에 가지셨던 갈망,
그 목적을 알고 삶 속에서 그 목적을
이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것은 그냥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태초부터 계신 이로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태초에 가졌던 하나님의 마음, 갈망,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행복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본성과 본질이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을 나누길 원하신다.
그것이 태초에 가졌던 하나님의 갈망이요,
하나님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다 할 수 있지만
전능하신 그 능력으로
할 수 없는 한 가지는 행복입니다.
행복은
기적을 베풀고 병을 고치고 천지를 창조한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사랑을 나눌 대상을 통하여
함께 사랑을 나눌 때 함께 있으므로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본성과 본질이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나눌 대상을 찾는 것이
하나님의 갈망이요, 하나님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목적이요,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은 임마누엘이다.
왜? 사랑하기 때문에. 행복하게 하시려고.
원수하고 함께 할 때는 불행입니다.
함께하는 것 자체가 행복은 아닙니다.
작은 공간에
원수와 3박 4일 있다고 하면
함께 있는 것이 행복이겠어요?
그것 자체가 고통이죠.
주님은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임마누엘입니다.
왜 임마누엘이 행복인가?
그러면 누구와 함께 하길 원하시는가?
그 사랑을 함께 나눌 사랑의 대상.
사랑하는 자녀.
사랑하는 신부, 사랑하는 사람.
그와 함께 하는 것이 하나님의 행복이고
하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갈망이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왜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하길 원하십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으로 이뤄집니까?
혼인잔치로.
신랑신부로 연합됨으로 이뤄집니다.
왜 우리가 신부단장해야 하는가.
왜 우리가 주님을 기다려야 하는가.
왜 우리가 주님을 맞이해야 하는가.
이유를 알고 기다리고 준비하고
가자 이겁니다.
태초부터 가졌던 하나님의 마음이
이뤄지는 겁니다.
태초부터 가졌던 하나님의 갈망이
이뤄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의 수준에서 성장하고
신부의 수준까지, 아비의 수준까지
하나님의 목적을 알고
하나님의 갈망을 알고
하나님께서 태초에 가지셨던 그 마음의
목적을 알고 그것을 이루어가는 자가 되길
바랍니다.
사 54:5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신부로, 사랑의 대상으로
그래서 선택해서 불러서 단장시키고
맞이하시길 원해요.
사람을 지은 목적이 뭐라고요?
신부로.
그런데 모든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
당신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
그것이 너무나 중요한 겁니다.
아마 사람들은요.
하나님이 인생에게 청혼한다는 것을
모릅니다. 왜 하나님을 그렇게
속되게 얘기하냐.
그런 속된 표현을 하냐.
아닙니다. 결혼은 신성한 겁니다.
이 세상의 결혼은 신성하지만
가장 신성한 것은 하나님과 사람,
신랑과 신부의 혼인잔치입니다.
호 2:19,20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주님은 장가들길 원하신다고 해요.
주님 부끄럽게 뭘해요? 그게 아닙니다.
육적인 개념이 아니에요.
영적인 주님과 생명연합니다.
당신의 그 사랑의 본성을 함께 나누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우릴 주님의 형상대로 만들었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주님의 형상대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에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나중에 누구 같이 되요?
예수님같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돌아가는 겁니다.
우리가 받을 복이 되는 것은
주와 같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태초의 마음을 알고
아비가 되자 이겁니다.
요한일서에서 사도요한이 말할 때
많은 수준이 있습니다.
자녀의 수준, 청년의 수준, 아비의 수준.
주님이 변화산에서 변화될 때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그 영광을
봤습니다.
밑에서는 귀신 쫓고 있습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청년의 차원이
대단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그 차원에서 넘어서서
주님의 태초 가진 그 목적, 갈망, 그 마음
말씀을 먹고 마셔서 말씀을 채워서
그 주님의 마음을 알고 그 갈망을 알고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준비시켜 주옵소서.
얼마나 귀합니까?
우리는 태초부터 가진 주님의 마음을 알고
그 갈망과 목적을 알고 날마다 날마다
달려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너무나 저에게 은혜가 되는 말씀이라 정리해서 올려봅니다.
혹시 한글로 프린트하실 분들은 제가 한글 파일로 올렸으니 프린트하세요^^
큰 도전과 기쁨이 되는 말씀에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립니다.
첫댓글 직장에서 급하게 올리다 보니, 정리가 좀 들 되기도 하고 그러네요.^^;;; 죄송.
한글 파일로 뽑아서 보시면 매우 유용하실 겁니다.^^
아멘~!! 참 좋은 양식입니다.감사드려요!!
주님께 영광!!
"나의주님" 님!! 할말을 잃었습니다 이렇게 방대한 말씀을 ㄷㄷㄷ...
그 수고가 그냥 보이고
그 수고가 마냥 헛되지 않을 겁니다 매번 수고에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건 저의 칭찬과 감사지만 무엇보다 주님께서 한없는 기쁨이 되고 "나의주님"님께 감사와 칭찬을 아끼지 않으실것 같습니다
제가 영상을 올리면서 말씀을 문서화 하려해도 워낙 자판이 안돼서 ㅠㅠ(독수리타) 이 댓글 치는데도(겨우198자) 10분이나 지나갑니다 ㅠㅠ 이정도면 말 다했죠ㅎㅎ
다시한번 감사하구요 동영상 플레이가 안되시는 분들(해외)에게 큰 유익과 은혜가 되겠군요
언제 한번 저희교회 오시면 제가 맛있는거 사 드릴께용^^ㅎㅎ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정립이 잘되도록 도와주시는 생명의 양식입니다..할렐루야~~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주님 내가 여기있사오니
나를 준비 시켜 주옵소서
아멘!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대로 주님앞에 돌아갈수 있도록
정결한 신부단장하게 하소서...마라나타
아멘!!! 귀한 글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꼭 필요한 끈기와 인내로 주님을 바라보자.
주님의 이름으로 나의 주님 님 축복합니다.
수고 많이 하셨읍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나의 주님님 참감사합니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마음이 뜨거워집니다
감사합니다...한번더 읽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