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8일. 지금 보지 않으면 70년 후에나 다시 만난다는 개기일식을 보기 위해 한 달 전부터 휴가를 내고 전용 안경도 준비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가족 나들이 겸 5시간을 달려 할리팍스에서 북쪽인 뉴브런즈윅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벅투시(Bouctouche)가 명당이라는 정보를 보고 도착해 해변을 거닐었다. 일식까지 한 시간 남짓 남아 팀홀튼에서 커피를 사고 나오는데, 딸이 인터넷을 다시 확인하더니 최적의 관측 지점이 북쪽으로 이동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우리는 급히 짐을 챙겨 다시 차를 달렸다. 길가 곳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소풍을 나온 듯 제각각 자리를 잡고 일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마다 다른 정보와 생각을 가지고 각자의 자리에서 기다리는 가족과 친구들의 모습이 문득 흥미로웠다. 생각해보면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 각자의 방식과 견해로 최선의 순간을 기다리며 즐기는 삶의 여정 말이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정확한 일직선상의 위치를 찾아 북쪽으로 30킬로미터쯤 더 올라가 스프라우스 포인트(Sprouse Point)에 도착했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바라본 나무들은 봄을 가득 머금은 듯 가지 끝이 발그레하거나 담록색 빛을 띠고 있었다. 소리 없이 눈을 뜨는 봄 새순의 숨결이었다. 넓은 해변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시간이 조금 남아 주변을 거닐며 조개껍데기도 줍고 이국적인 등대 집과 갓 봉오리를 맺은 크로커스 꽃을 구경했다.
자리를 잡으려는데, 한 성급한 운전자가 모래사장 가까이 차를 대려다 바퀴가 빠지는 사고가 났다. 바퀴가 헛돌며 비명을 지르는 소리에 남편은 "계속하면 더 깊이 빠지니 일단 멈추게 하라"며 나를 먼저 보냈다. 가보니 개 두 마리와 동행을 데리고 온 젊은이였다. 남편이 주차를 마치고 달려왔고, 지나가던 다른 젊은이 둘도 기꺼이 손을 보탰다. 넷이서 힘껏 차를 밀어 올리자 차는 가까스로 구덩이를 빠져나왔다. 기분 좋은 웃음과 함께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따뜻한, 이른 봄날씨 치고는 보기 드문 축복 같은 날이었다. 우리는 해변으로 밀려온 통나무에 누워 편안하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후 3시 50분경, 마침내 개기일식이 시작되었다. 관측 안경을 쓰자 둥근 태양의 아랫부분이 조금씩 깎여 나가기 시작했다. 검은 달이 태양을 먹어 들어가며 빛은 서서히 기울어져 반달 모양이 되었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주변에 서늘한 한기가 감돌았다. 서둘러 차에서 코트를 가져와 입고 다시 통나무에 누웠다. 태양은 계속 해서 그믐달처럼 가늘어지더니 마침내 검은 달 속으로 완전히 숨어버렸다.
찰나의 순간, 안경 속 세상이 완전한 흑암으로 변했다. "어? 왜 아무것도 안 보이지?" 하고 당황할 때 누군가 소리쳤다. "안경 벗어봐!"
안경을 벗은 눈앞에는 평생 처음 보는 기적이 펼쳐져 있었다. 검은 공을 둘러싼 하얗게 불타는 빛의 반지. 그것을 맨눈으로 보고 있었다. "God, Thank you!"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나 역시 가슴 가득 환호를 터뜨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천국의 문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달에 가려진 태양의 불타는 테두리는 완벽한 반지의 형상이었다. 지구가 달, 태양과 완전한 일직선을 이룬 순간이었다. 몇 초 혹은 몇 분이었을까. 검은 공과 빛나는 반지를 멍하니 바라보는데, 마치 시간을 거슬러 고요한 밤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했다. 낮의 온기는 온데간데없이 찬 바람이 불어왔고, 개조차 짖음을 멈춘 채 세상은 정적에 휩싸였다. 우주의 다른 차원에 던져진 듯한 착각 속에서, 검은 달 옆으로 밝게 빛나는 금성과 지평선 아래로 순식간에 노을처럼 물든 주홍빛 하늘이 보였다. 모든 시간이 멈춘 듯했다.
이윽고 태양의 아랫부분에서 붉은 혀 같은 불꽃이 너울거리기 시작했다. 붉은 화염이 선명하게 피어나더니 순식간에 눈이 부셔 더는 맨눈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다시 안경을 쓰자 초승달 모양의 빛이 반대편에서 시작되어 반달을 지나 다시 온전한 둥근 태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태양의 붉은 화염을 맨눈으로 목격한 감격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우주는 얼마나 오묘하며, 그 앞에 인간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여행이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듯, 이번 개기일식은 먼 우주에서 나라는 존재를 내려다보게 만든 뜻깊은 여정이었다. 우주가 침묵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행복하라.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들고 갈 수 있는 것은 오직 네가 준 사랑과 행복한 기억뿐이니.'
영원이라는 시간 앞에 먼지처럼 작은 존재로 와서, 삶의 순간들을 아낌없이 느끼고 나누며 성숙해가는 것. 그리고 마침내 내 것이 아니었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영원의 한 부분으로 기꺼이 돌아가는 것. 돌아가는 삶의 수레바퀴 속에서 이 진리를 깨닫는 일은 슬프도록 아름답다.
첫댓글 좋은 글 감명 깊게 잘 읽었습니다. 좋은 추억을 만드셨네요
이형만 선생님 댓글 감사 합니다. 개기 일식은 마치 우주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 충분 했어요. 그래서 그 감격을 나누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답니다. 답글에서 주물과 방짜는 재료면에서 다르다고 하셨는데 저는 아마 주물을 본 것 같아요. 주물도 그토록 아름다운데 방짜는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생각해 봅니다. 이러한 가문의 출생인 점 많이 자랑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이러한 한국의 전통문화가 참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