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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벌종주
...계백장군과 5천결사대...
‘백제‘라는 나라에는 왜 자꾸만 마음이 쓰일까요?
660년 7월 9일, 해가 떠오르고 단 하루
5천 대 5만, 일당백의 싸움
처와 어린 자식마저 단칼에 베고 전장에 나서
4번의 적을 맞아 결사항전이라
적진에 들어온 꽃다운 어린 화랑 하나를
어찌하리, 殺生有擇(살생유택) 계백이라
차마 죽이지 못하고 돌려보내는
그 마음을 어찌할꼬
임전무퇴라 칼날 세우고 외치며 다시 오니
어찌하리, 官洞首落(관동수락) 관창이라
살려 보내지 못하고 죽여보내는
그 마음을 어찌할꼬
계승하려는 자 그 누구인가
오~ 백제여~
차마 저물지 못하고 불리고 또 불리는 그 이름
오~ 계백이여~
통한의 마지막 울부짖음이런가.
_Jiri-깽이 恩敬, 아름다운 나의 이야기_
※ 참고로, 계백의 원래 이름에 대해 찾아보니
성은 부여왕족의 ‘부여’씨이고 이름은 ‘승’
그래서 부여승이라고 하네요^^
"이제 내 나라의 이름을 ‘백제’라 부르겠노라~"
고구려 주몽의 아들이었던 온조
맏형인 유리와의 분쟁이 싫었던지라
새로운 터전을 찾기 위해 남하하고
온조를 따르던 열 명의 신하와 나라를 세웠다 하여
원래 이름 '십제'였던 백제가
같이 남하하여 미추홀(인천)에 터잡았던 비류 형이 죽자
그 백성들을 모두 받아들이며
만백성이 즐겨 따르는 나라라는 뜻의
‘백제(百濟)’로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그곳이 바로 한강 유역~
원래 태생부터가 싸움을 싫어했던 착한 민족~
그런 느낌의 백제이건만
어찌 이리 하루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는지.
산을 다니며, 걷기를 하며
나만의 방식으로 역사를 조금씩 들여다보는 재미.
그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 때론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이번엔 늦은감이 있지만
제가 살고 있는 논산의 황산벌에 대해 궁금하기도하고
그곳을 거닐어 보고 싶기도 하여 나서봤습니다.
^^
호랑이 한반도의 단전에 해당하는 힘의 원천~
바로 제가 사는 논산시(論山市)입니다.
논산시, 그 안에 논산시의 연산면
황산벌전투의 그 곳이 바로 이곳 연산입니다.
논산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분들 은근 많더라고요.
충남의 부여, 공주, 계룡, 금산,
그리고 대전광역시,
전북의 완주, 익산과 이웃입니다.
그리고 이번 황산벌은 논산시 안에서도 연산.
논산시의 연무대(연무읍, 논산시의 남쪽)와 연산(논산시의 북동쪽)도
잘 구분 못하시는 분들 있습니다.
대전에서 간혹 버스 잘못 타시는 분들이 있어요.
계룡산 향적산과 대둔산
그 외는 낮은 구릉지와 평야(논강(논산+강경)평야)구요.
노성천, 연산천, 논산천 등이 강경천으로 금강으로 유입~
제가 일전에 논산천을 걸어보며
쪼매 논산을 들여다봤었네요^^
면적 555.16㎢
2019년 12월말 기준 57,196세대, 122,981명(외국인 포함)
2개읍-강경읍, 연무읍
11개면-가야곡면, 광석면, 성동면, 노성면, 상월면
부적면, 연산면, 벌곡면, 양촌면, 은진면, 채운면
2개동-취암동, 부창동
고려와 조선 때에는 연산, 은진, 노성, 석성 등 4현이 위치
1912년 4현을 4군으로 변경
1924년 4군을 병합 논산군으로 설치
1996년 3월 1일 논산시로 승격
2003년 9월 19일 두마면이 계룡시로 분리
6.25 전쟁 이후 육군 제2훈련소가 들어서며
1963년 전북 익산군 황화면 일원을 편입 연무읍으로 승격
(ㅎㅎㅎ 이곳이 바로 지금 제가 살고 있는 곳. 황화~)
조선 후기 3대 시장의 하나로
서해 최대 포구였던 강경포
육군훈련소의 소재지로 논산역에 ktx 정차하며
국도 3개호선, 천안논산간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
사통팔달~ 사는데 불편함 없이
교통편이 그래도 꽤 편리합니다.
먹거리로는 딸기, 젓갈, 왕주(막걸리) 등이 유명하구요.
황산벌종주
660년 황산벌 전투의 현장 그 연산 지역을 감싸고 돌며
계백장군의 흔적도 찾아서 만나보는 코스로
J3클럽의 배방장님 기획 작품 중 하나.
우째, 이런 시골 논산까지 시야가 미치셨을까나 신통합니다.
의미있는 이런 산길 코스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방장님^^
연산향교(관동리)-깃대봉-함지봉(386.5)-국사봉(442.3)-
향적산-(금남정맥)-엄사리-천마산-천호산-황령재-
함박봉-깃대봉-(금남정맥)-국사봉-명암리-매봉산(매봉)-
고정산-(계백장군묘역)-수락산-돈암서원 <45km>
함께한 이 : 엘리사벳, 아기독수리, 지인 세 분까지 총 6명
날짜 : 2020. 10. 31(토)->음력9월15일 보름날이었습니다.
후기 따로 안쓰려고 했었는데...
다녀온 사진 다시 보니 아까워서, 정리하는 차원으로다가~
크리스마스날인데...
코로나로 어디 가지도 않고 있는 주말이라
이달에 미완의 부분 땜빵 답사도 마쳤고.
후기나 써볼까~ 그렇게 늦은 후기 올립니다.
사진 정리도 좀 해놨었더라고요^^
10월의 마지막 날, 보름달이 휘영청 밝게도 뜬 날
새벽 4시 넘겨
아기독수리 언니가 뜨끈하게 타준 커피 한 잔씩 하고는
몸 뎁히며 기분좋게 출발합니다.
관동리(官洞里) 마을은 배산임수라~
앞으로는 연산천(논산천으로 금강에 합류)이 흐르고.
승자인 신라, 좌장군 김품일은
16살 꽃다운 화랑(花郞)이었던 아들 관창(官昌)을
사지인 적진으로 보내고, 또 보내...
결국 목이 잘려 말에 실려온 아들의 시신을 보고야 마는데.
신라는 과연 그 방법 밖에 없었을까!
꽃같은 어린 아들을 죽인 것은
아버지인가, 계백인가? 신라인가, 백제인가?
과연 누구란 말이더냐...
관동리, 그곳에서 목이 떨어져 죽은
관창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마을
이를 계기로 4전4패에서 벗어나 승리를 이뤄낸 신라.
연산향교(충청남도 기념물 제119호) 살짝 엿보며 갑니다.
1398년(태조7)에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지방 교육의 활성화, 인재 양성, 성인의 제향 기능 담당
사당인 대성전에는 김장생과 김집 부자 외에도
공자를 비롯하여 맹자 등 모두 27위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연산(連山)은 백제시대에는 황등야산군(黃登也山郡)
신라 757년(경덕왕 16)에는 황산군(黃山郡)으로
940년(태조 23)에 연산(連山)으로 고쳐 현이 되었고,
...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논산군에 합하여 연산면이 되었네요.
큰 산들이 연이어 있어서 연산(連山)
국방상의 요지로 괜찮죠?~
근데 가만보면 나한테 요지면
적에게도 또한 요지가 될 수 있어요.
신라의 김유신과 백제의 계백이 최후의 일전을 벌였고,
후백제의 신검이 이곳에서 왕건에게 패하였던 곳.
논산은 수도인 사비성으로 향하는 최종 방어선으로~
산성수가 대략 14개였다고 합니다.
노성산성, 황산성, 황령산성, 청동리산성,
황화산성, 외성리산성, 모촌리(신흥리)산성 등
연산향교 잠시 둘러보고 다시 조금 내려와
대연암 방향으로 길잡아 오르면~
다들 잠든 시간이라 조용한 건물 옆으로
과연 길이 있을까 싶은데...
등산로가 아주 잘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조용조용 살금살금, 신속하게 통과하고~
생각지도 않았는데 임도를 만나게 되네요.
꼬불꼬불 관동리 마을과 표정리 마을을 잇는 임도
여기 바로 위가 황산성이구요.
계백이 바로 이곳에 베이스캠프를 쳤지싶어요.
이곳 아래 관동리 마을에서 관창이 목이 베인것을 보면...
그럴듯 하죠^^
남쪽으로는 연산천이 흐르고
북쪽으로는 계룡산 줄기인 향적산이 든든하게 등을 받치고
동쪽으로는 천호산이 담장이 되니 이 또한 명당이라.
수도 사비성으로의 길목을 차단하기에 적격.
협곡 탄현을 막기에는 너무 늦었던 백제군
황산성이 있는 이곳을
제2의 탄현으로 삼고 적을 막아 싸웁니다.
자~꽤 오르막 등로 올라가 봅니다.
황산성(黃山城)은 충청남도 시도기념물 제56호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와 표정리에 걸쳐 있고요.
등로와 주위 돌들을 보니 황산성이었던 흔적인듯...
자연지세를 최대한 이용하여 만들어진 성곽이며 산성으로
우물터며 건물터가 있고
백제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등로는 마른 흙으로 꽤나 미끌미끌~
헥헥~ 오르막을 오르니 제법 땀이 뿜뿜 올라오고
깃대봉 오름 바람 마중 땀을 식혀주네요. 너무 시원해요.
보름달이 등로 왼쪽에서 불을 밝히며 함께하는데..
어느 순간 바라보니 달님의 붉어진 얼굴~
저런 빛의 달님은 제가 또 처음 만나보네요.
혹시, 그날이 생각난걸까요?
1,360년 전 660년 7월 9일... 아비규환의 황산벌
어둠 속의 함지봉에서 숨 한 번 고르며~
어은리와 도곡리 방향의 사거리를 통과하고.
해 떠오르 전, 계룡의 모습 한 번 담아 보며 갑니다.
향국사300m 이정표를 지나 오르막 오르다 보니...
일출이 시작되네요.
돌탑인지 어지럽게 쌓이고 흘러내린 무더기를 지나
이제 조망이 활짝~ 열렸어요.
우뚝 솟은 산 옆으로 골골이 흐르는 것이 물인지 안개인지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골골이 흐르는 것은 누구의 혼이런가
진짜 용 한 마리 살 거 같은 기운이...
조금 더 올라 암릉구간에서 맞는 일출.
향적산(국사봉)에서의 일출 몇 번 본 적 있는데
거기가 최고인줄 알았어요.
사실 향적산에서 이쪽으로는 와보지도 않았고요.
여기 이 구간도 저는 이번이 첫길~
음~ 좋죠. 일출 조망
조용하게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저 앞의 평평한 바위를 상여바위라고 하던데...
그 앞쪽에 향적산(국사봉) 안테나가 보이네요.
상여바위 옆을 지나~
향적산(국사봉이) 바로 앞으로 다가오고.
으음~~ 계룡산의 향기가 여기까지 전해오는거 같아요.
그래서 향적봉이라고 한다고도 하고.
킁킁~ 깊게 숨좀 들이쉬어 보고.
계룡시 엄사면 방향 함께 잡아 봅니다.
향적산은 논산시 상월면과 계룡시 엄사면의 경계에 위치
금남정맥이 북쪽의 계룡산으로 길을 잡으니
남쪽으로의 곁가지는 이곳 향적산이라.
뒤로 계룡산 머리봉으로부터 이어지는 천왕봉이 중심을 딱 잡고 있네요.
향나무가 많아 향적산이라고도 한다 합니다.
이곳 아래 신도안이 도읍이 되면 왕사나 국사가
나온다 하여 향적산을 국사봉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향적산 국사봉 중앙에는 정상에 두개의 돌비석이 있으니...
오행비(五行碑)
오(五), 화(火), 취(娶), 일(一)
천지창운비(天地創運碑)
천계황지(天鷄黃地), 불(佛), 남두육성(南斗六星), 북두칠성(北斗七星)
나름 뜻풀이들 해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정확하게 뜻풀이 하는 사람이 없다나 뭐라나)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과정이 오롯이 나이고
남에게 피해 끼치지 않고, 나쁜 짓 안하고,
열심히 착하게 살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러면 운세가 펴지고 복 누리고 사는 거일껀데...
그곳이 바로 천국이고, 또 천국으로 가는 길~.
계룡산 정기가 세다고 하는데
저는 그런 기운은 잘 모르겠고요.
그냥 계룡산은 좋아요.
이곳 향적산에 올라 일출 보는 것도 좋고요.
계룡산 천왕봉이 바로 앞에 온 몸을 꿈틀거리며
살아 있는거 보이시죠?!~
헬기장 한쪽에서 잠시 모여 요기좀 하고~
등로의 꽤나 그럴듯한 멋진 바위님들~
이름이 있기는 한데 잘 모르겠네요.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겠죠.
첫번째 녀석은 입 앙~ 다문 악어 같고.
계룡산은 충남의 명산으로 공주, 논산, 계룡에 위치~
삼국시대 때에는 백제를 대표하는 산으로
중국에까지 소문이 쫘~~악~~ 났었대요.
우리나라의 이름 꽤나 알려진 설악산 등 다른 산들을 제치고
지리산(1967년) 다음으로
두 번째 국립공원으로 1968년에 지정.
조선 초기 태조 이성계가 신도안(계룡시 남선면 일대)에
도읍을 정하려고 이 지역에 왔을 당시
같이 왔던 무학대사가 산의 형국을 보고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 금닭이 알을 품는 형국)에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 : 용이 날아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이라~
여기서 계(鷄)와 용(龍)을 따서
그때부터 계룡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청송약수터 방향으로 하산하면 엄사리~
이쪽에 식당이 엄청 많아요.
식사 하시고 가실께요.
양정고개, 계룡지구대 옆 등로 입구가 짜잔
천마산으로 Go~
금남정맥길이라 그런지 사람들 다닌 흔적들 많네요.
동네 뒷산처럼 너무 걷기 좋고, 편해요.
시그널도 처발처발~ 나부끼고.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금남호남으로 갈라져 내려와
무주 주화산에서 북서로 뻗어 계룡산~부여 부소산에서
금강으로 내려서며 맥을 다하는 금남정맥
내년에는 가까운 요녀석들부터~
또 찾아가봐야죵~ 룰루~
기대됩니다. 백두대간의 기운이 낳은 요녀석들.
하나를 만나니 궁금한 건 다섯, 열이니...
이노릇을 어찌할꼬. 몸은 하난데...
엘리사벳, 아기독수리, 깽이
우리 셋은 이번에 같이는 아니었지만
백두대간 졸업한 언니들입니더^^
대간한~ 대간녀들이라 불러다오~ 의쌰의쌰~
이렇게나 멋진 바위가 있는 이곳, 천마산입니다.
우리가 걸어온 능선이 보이며... 계룡산 천왕봉까지 조망~
천마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정자
사실 너무나 멋진 바위 암릉 위, 정자가 따로 필요치는 않을 듯한데.
정자 위에서보다 바위 위에서 보는 풍광이 가슴을 뻥~
이곳 조망, 시설 강탈이네요. 좀 머물며...
계룡시 두마면 너머 뒤로 대전과 금산 ~
꽤 높은 서대산이 조망되어지고요.
지도 이리저리 찾아서 같이 봅니다.
어디서 음악이 나오나 했는데...
어떤 분이 의자에 앉아서 하모니카를 연주하고 계시네요.
^^
'황령재'로 알고 있었는데, 표지판마다 '황룡재'라고 되어 있네요.
어라? 뭐지???
기존 이름은 황령재인 듯 하고,
주위의 황령산성이며
황령재 아래쪽에 작은 저수가 있는데 '황령지'예요.
신도로 이름은 '황룡재로'. 최근 표지판들도 황룡재
'령'이 '룡'으로 둔갑?? 변신술??
어디에서도 근거는 찾을 수 없네용. 모르겠당~
오랜만에 산에 오니 참 좋습니다.
백두대간을 하니 큰 산 오르고 내림의 연속이었던지라...
오름에 대한 두려움도
거리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은 줄었어요.
가다보면 끝나리... 뭐 그런 마음.
내가 백두대간길도 걸었는데.. 또 그런 마음.
거만함? 그건 아니고요.
큰 산을 만나고 오니
앞일에 대한 다짐 그런게 조금은 유~하게 달라진 듯^^
그래도 산은 높으나 낮으나 힘들긴 힘들어유~
헥헥 숨도 차고.
원래 있던 고갯길인건지...아니면 길을 내느라 산을 깎은건지...
잠시 내려섰다가 다시 산으로 진입하고요.
중탈하신다면 농소리 마을쪽으로~
눈이 내려요. 낙엽-눈이 내려요~
미처 떨어지지 못하고 붙어있던...
잠시 서서 낭만도 즐기며.
제가 6살때까지는 전북 익산시 여산면에 살았었는데
그쪽에 천호동굴이라고 있었어요.
익산시 완주쪽에도 천호산, 천호성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천호라는 이름의 이곳이 첫만남이지만
꽤 친근하게 다가오네요.
하늘이 보호한다는 천호산(天護山).
좋은 이름이네요.
『신증동국여지승람』(연산)에
"황산(黃山)은 일명 천호산(天護山)이라고도 하는데
현 동쪽 5리 거리에 있다.
신라의 김유신이 군사를 거느리고
당나라 소정방과 더불어 백제를 공격하니
백제의 장군 계백이 황산 벌판에서 신라의 군사를 방어할 적에,
3개의 병영을 설치하고 네 번 싸워 모두 이겼으나
끝내 군사가 적고 힘이 모자라서 죽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천호산 서쪽 아래로는 개태사 절이 있습니다.
왕건이 천호산 아래 황산벌에서
치열한 전쟁으로 후백제를 정벌하고
신검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냄으로써
후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룬 기념으로 창건된 절로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조계종 호국종찰.
도로로 내려서며, 드디어 황령재(황룡재) 도착~
이곳으로도 김유신의 5만 대군 중 일부가
물밀듯 들이닥쳤었지요.
황령재 주차장에 우리들 먹일 보급품이 도착해 있어요.
저랑 같은 연무대에 사시는 만물님~
만물님도 지리산을 사랑하는 지리산맨
우리는 지원도 대장님급으로^^
완전 1등급으로. 손댈 게 없이 그냥 주워 먹기만 하면 되네요.
만물님 완전 처발처발 지원 감사합니다.
만물님 언제 지리산 가실때 같이 가요. 예약~ㅎㅎㅎ
감사했습니당.
황령재에서 식사 후...
함박봉에 올라 내려다본 황산벌전투의 격전지 되시겠습니다.
이곳에서 5만과 5천의 군사들이
ㅠㅠ 치고 박고... ㅠㅠ
군인들의 함성소리가
드넓은 평야를 가득 채우는 듯하고.
중앙의 논산 탑정저수지
탑정저수지는 1941년에 착공, 1944년에 준공
농업용수 확보하려고 만들어진 저수지입니다.
그당시에는 그냥 논산천 물이 저수지 쪽으로
어느정도 내를 이루어 흘렀었겠네요.
우리가 가야할 매봉이며
계백장군의 목이 떨어졌다는 수락산까지...
백제의 암운의 시작을 잠시 보자면
백제 의자왕이 즉위(640년), 왕권강화를 다지며
642년에 친히 군사를 이끌고 나가
신라의 40여 성을 빼앗았으며 인정을 받습니다.
그리고 고구려와는 연합하게 되니...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를 막아낼 힘은 없고
당나라에게 끊임없이 도움을 요청하여
결국은 동맹을 맺게 됩니다.
사실 당나라도 고구려가 골칫덩이였거든요.
의자왕은 그 기세를 몰아 윤충 장군으로 하여
경주로 가는 길목인 대야성(합천)까지 무너뜨리며 승승장구
(대야성의 성주였던 김품석이 부하 검일의 아내를 범하여
분노한 그가 대야성 문을 적인 백제군에게 열어주었네요)
대야성 전투로
성주인 김품석과 그 부인 고타소가 죽으며
문제는 여기서부터...
그 부인이 다름 아닌 김춘추가 너무도 사랑하는 딸
고타소였던 것이었습니다.
당시 신라의 왕은 선덕여왕이었으며
김춘추는 딸이 죽었다는 소식에
기둥에 기대어 서서 눈도 깜빡이지 않았고
사람이 지나가도 알아보지 못했을 정도로
슬픔이 컸다고 전하며
이로 인해 백제에 원한이 불같이 이글이글~
깃대봉에서 양촌면 산직리 덕목재로
금남정맥길이 갈라지고~
선덕여왕의 유언에 의해 진덕여왕이 다음 왕으로 즉위,
그러나 진덕여왕이 8년 만에 죽게 되니
654년 김춘추(태종 무열왕)가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김춘추는 족보가 상당히 복잡합니다.
25대 진지왕의 손자이자
26대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이 어머니로 왕족
부인은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
암튼 51세의 늦은 나이로 왕이 됩니다.
사진들은 인터넷 발췌 후 합성. 수정보완^^
그때의 삼국 지도와~ 이모저모 참고용.
신라 진격로에는 이런 저런 설이 많아서 참고만.
왕이 된 김춘추가 이제부터 뭘 해야 할까요?
의자왕 잡으러 가야죠.
내 딸 죽인 원수의 나라
5만의 대군을 이끌고도 부족했던지
당나라 13만 대군까지 끌어들여 아주 끝장을 보려고~
국사봉, 이렇게 연이은 좋은 산들이 주변에 많거늘
시간날때마다 산에 오르내리며 운동도좀 하고
그러며 국사도 좀 논하고 그랬으면
이렇게 단 하루만에 허망하게 가진 않았을껀데.
그러니까 부하들의 조언을 잘 들어서
미리미리 준비했었어야지.
백제에 삼충신이 있었으니
성충과 흥수,
그리고 계백이라.
화랑의 임전무퇴 정신에 크게 한방 먹으며 밀리고
그러며 수적 열세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며
백제는 바이바이~ 역사 속으로~
660년 7월 9일
백제가 너무 신라를 몰아붙이지만 않았더라면
대야성만 공격하지 않았더라면
700여년을 이어왔던 백제의 역사가
더 오래 이어지지 않았을런지
비극적인 이 날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아도 됐을런지...
지나온 천호산에서 함박봉으로 능선
신양리와 신암리 마을
연산면 신양리 마을로 내려서서 걸어갑니다.
도로 건너 명암리 마을로.
산길로 진입, 매봉으로 고고~
산에 들어 걷다보니 금세 어두워집니다.
렌턴이 꺼내지고. 무덤가 주변을 왔다갔다 해보지만
매봉으로 진입하는 곳이 보이질 않아요.
나뭇가지도 제법 길막기 서비스중이고.
ㅠㅠ
깜깜하니 매봉 봉우리 인증은 못하고
그냥 진행하게 됩니다.
어둠속에서 찾다가 결국은 못 찾았던 매봉이
내내 목에 가시처럼 마음에 걸렸었습니다.
그놈의 매봉.
그래서 매봉 찾아서 다시 그 구간 찾아가보느라...
후기도 미뤄두고.
어쩐지 불완전한 상태로 후기 쓰기가 거시기해서.
이달에 시간 내서 잠시 다녀왔었어요.
같이 황산벌 종주하셨던 두 분하고 의기투합~
세상에나 그냥 무덤 위로 조금만 올라가면 있었는데
어둠속에서 그 한 발을 못 떼었었네요.
인증석이나 표식도 없을 줄 알았는데
요로코롬 이쁘게^^
논산에서 만들어 달아놨어요.
그랬으면 좀 등로답게 무덤가 한쪽으로 매봉 가는길 표시며
나뭇가지들도 정리도좀 해놓지.
^^
슬슬 정비하는 중인가??
매봉과 계백장군 묘역을 둘러보고
수락산, 충곡서원까지 휘리릭~
다녀오니 마음도 편하고, 이제사 후기도 이렇게^^
이제는 야간산행으로 연산면 고정리의 고정산을 지나~
낮에 다시 와서 만난 탑정저수지의 모습도 담아봤네요.
내년 초면 출렁다리가 완공된대요.
진입구간까지 최대길이 600m인 탑정호 출렁다리
개통하게되면 국내 최장이래요.
내년 3월쯤이면 걸어볼 수 있을 듯.
기대됩니당~
백제계백장군지묘(百濟階伯將軍之墓)
야밤에 찾아뵙지는 못했고요.
그때는 그냥 산길 따라 수락산으로만 이동했었네요.
다시 찾아 뵙고 인사드리며 갑니다.
백제 말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기 위해 나선
5천 결사대와 계백장군의 위패(백제충신계백)와
영정(문화재청 표준영정)을 모신 사당인 충장사(忠壯祠)가
장군의 묘 아래쪽에 있습니다.
코로나로 문은 닫혀 있구요.
계백 장군이 목이 떨어진 곳이라는 이름의 수락산(首落山)
이 아래 충곡서원도 밝은날 잠시 들러 봅니다.
수락산 삼거리에서
생각보다 걸어보니 쫌 멀어요.
충곡서원의 가장 안쪽에 있는 충곡사(忠谷祠)
코로나로 문이 닫혀 있어서 담장 옆으로 돌아
까치발하고 사진으로 담았어요.
일반적으로 서원이라고 하면
선현을 제향하고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인데
이곳 충곡 서원은 좀 특이합니다.
조선 숙종 때인 1692년 백제의 충신인 계백장군을 가운데 주벽(主壁)으로
목숨 바쳐 충의를 지킨 조선의 사육신(死六臣)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를
함께 모신 사당.
점차 추가 배향되어 지금은 총 18위를 모시고 있다고 합니다.
떠나간 벗을 그리워한다는 꽃말을 가진 배롱나무가
그 곁을 말없이 지키고 있었네요^^
한여름 배롱나무에 꽃 필적에 다시 와보면 좋겠네요.
돈암서원(사적 제383호)
연산면 임리에 있는 조선중기 서원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의 문인들이 선생이 타계한지 3년 후인
1634년(인조12) 스승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도 보존된 충청 대표 서원으로
기호문화의 성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중 한 곳입니다.
이 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다른 서원 8곳은
소수서원(경북 영주), 도동서원(대구 달성)
남계서원(경남 함양), 옥산서원(경북 경주)
도산서원(경북 안동), 병산서원(경북 안동)
무성서원(전북 정읍), 필암서원(전남 장성)
아는 언니와 예전에 돈암서원을 다녀오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한 곳씩 가보자며 그랬었는데...
아직까지 ㅠㅠ 뭐가 그리 바빴다고 그걸 못하고 있었네요.
그래도 백두대간 하며 한 곳, 국토종주 하며 또 한 곳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찾아 만나고 있네요.
계백장군과 5천 결사대
황산벌이라는 연산 지역 둘레 산길을 따라 걸어본
황산벌종주
다녀와 후기 쓰며 자꾸 되새김하다보니
이 코스가 논산에 살고 있는 제가 봐도
대단히 멋진 코스예요.
이 코스를 어찌 만들었을까
방장님이 참 신통하기도 하고.
산행 하나로 그날의 백제를
잠시 다녀온 것 같기도 합니다.
방장님 진짜진짜 이 코스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고
기억된다는 것.
어떻게 생각하면 사람들은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항상 기억하려 애쓰는 거 같아요.
잊혀질까 그게 두렵고
잊어버릴까 그게 또 두렵고
싸움에서 지고도 기억되는 장수라니...
오~ 백제의 계백 장군이시여
편히 영면하소서. 애쓰셨습니다.
아~ 좋다. 황산벌종주!!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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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역사를 알고가면 재미있고, 모르고 가면 헛걸음이겠죠
만 하룻동안 일어난 황산벌 전투는 신라가 이겼지만
백제의 계백 장군과 신라의 김품일 장군 그사이에서 어린 관창이 느끼는 부모란 어떤 것일까? 하는 문제가 남는데
비록 처자식은 모두 죽이고 전쟁터에 왔지만 어린 관창을 몇번이나 사로 잡았다 놓아준 계백
적의 사지로 몰아넣은 아버지 김품일
부모라면 자식을 살리고 자신이 죽는걸 택하는데...전투에서는 질 수 있어도 전쟁에서 패하면 나라가 없어지죠
글 잘읽었구요 내년도 벚꽃이 화사하게 피는날 경주 천향에도 한번 걸음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물론 공부는 하고 오셔야겠죠
글 쓰신다고 수고 많으셨고 올한해 많은 도움 감사드립니다.
경주 천향은 매년 가보고 싶었는데.. 못갔었네요. 내년에는 기필코 방문해서 걸음해봐야죵.
방장님도 올 한해 긴거 하시느라 욕 많이 보셨습니당.
건강 늘 잘 챙기시며 걸음하시구요.
새해복 많이많이 받으세용.
늘 응원드립니다. 방장님.
긴글이 지루한 나인데 한편의 역사소설 잘읽고 공부? 잘 하고갑니다. 난 공부랑은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어서 ㅎㅎ 갱이님 올해걸은 발걸음에 경의를 표합니다
ㅋㅋ 제가 후기 쓰고나면 어떤 댓글이 달릴까
이미 쓰윽~ 알고 있었죠.
역사소설 잘 읽으셨죵?!
최대한 줄여서 줄여서 쓴겁니당.
제 걸음이 경의 받을 정도는 아닌듯허고요.
해피맨님 걸어내신 걸음들 봐와서...
^^ 해피맨님 새해복 듬뿍~받으시소!
감사해용.
기회가 된다면 앞장서 주이소~~
과거와 현재는 곳 미래 라고들 하는데, 미래로가기 위한 싸움인가? 아직도 곳곳에서 싸움질이니... 역사공부 재부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싸움질좀 제발 그만했으면 하는 바람~
저는 싸움 잘 못해서...ㅋㅋ
추산대장님도 싸움 못하실듯합니당.
재부팅 한 번 더 눌러드려야할낀데...
^^
내년에는 추산대장님 후기글도 기대해보겄습니당.
새해복 많이 받으세용. 추산대장님~
지난 어느 여름날 폭염속에
황산벌 한바뀌 돌아봤었는데
힘들었지만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역사와 함께 그길 다시 돌아보니
좋네요. 감사합니다.
어제 지리 다녀왔는데
지리보고 싶으시죠?ㅎㅎ
ㅎㅎㅎ 제가 지리산을 안간지가...
졸업식이후~
이젠 예전처럼 꼭 가야겠다~ 그런 생각은 아니들고요.
언제나 그자리에 있을 것을 알기에...
내년에는 올해보다 지리산에 조금은 걸음 더 하길 바랄뿐^^
홀지리산 걸음~ 부럽습니당.
올해는 이리 흘러갈듯하네용.
두건님 새해복 많이 받으세용.
^^ 내년에도 멋진 걸음 기대할께용
일구녀석땜시 연휴의무료함을 달래던중
방가움에 깽샘의 산행기를
읽어봅니다
더욱이 내가 걸었던 구정맥중 금남길이었기에
더욱 반가웠구요
처발처발 나부끼던 나의 시그널까지 게재해주어
더욱 반가웠네요 ㅋㅋ
저무어가는 경자년~
마무리 잘하시고
신축년새해 건강하게 다음
산길을 기대합니다 ~~~^^
아아~ 이 동이님이 동이님이셨구나.
오케이~ 이제 등로에서 만나면 반갑다~ 인사해야죵.
후기 안올리려다가 올린건데...
동이님이 이렇게 기쁘게 읽어주셔서
아~ 참 잘했구나 싶네용.
올 한해 제 후기 같이 즐겨주심에 감사드리며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동이님^^
지난 걸음
다시 봐도 좋으네
시간되면 야간산행에 놓쳤던 계백장군묘역과 기념관 들러봐야겠다
수고했어 깽이야♡~~
우리 엘리언니~ 잘지내고 있지?
내년에도 우리 발좀 맞춰봅시당.
^^
언니랑은 어딜 가도 좋아~ㅎㅎㅎ
건강 잘 챙기며 올해 잘 보내고
내년에 만나서 또 걷자.
새해복 많이많이 받아. 우리 엘리언니~
좋은길 걸으셨네요
금남길 걸으며 기회되면 찾아보고 싶다했는데 대리만족합니다 수고많았습니다~~~
저는 이제 금남길을 걸어야죵.
걸어보니 그 옆길이 또 어떤지 궁금해져서요.
^^
송림 지부장님 새해복 많이 받으시구요.
내년 걸음도 응원드립니당.
오우~ 울 깽이님의 또다른 작품이 한권 출판 되셨네요^^
역사를 하나하나 알고 배우는 지혜로운 한 쟝르입니다. ^^
배방장님의 말대로 자식이냐 나라냐,,, 전투냐 전쟁이냐,,, 전쟁에서는 무조건 이겨야 그 나라가 존속되니...
그 아버지인들 오죽했겠어요. ㅠㅠ
국운이 걸린 전투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가족과 자식까지 희생시킨 리더의 비통한 아픔을.....
깽이님 동네라서 걷는 내내 행복했겠어요, 어느 좋은날 리딩 부탁해요~~~^^
온조를 따르던 열 명의 백제 개국공신중의 한분이신 全攝(전섭)어르신이 나의 시조이십니당^^
좋은 글 사진 설명 즐감합니다. 수고많았습니다^^
^^ 전국구님~ 같이 걸음 맞춘 인연도 꽤 되네요.
요리조리 전국구님도 많은 걸음 이어오고 계심~
대단히 대단하다 생각하고 있고요.
전섭 어르신이라...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집안이 대단~하십니당.^^
전국구님 새해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도 힘찬 걸음 응원드려용.
황산벌종주 잘보았습니다
긴역사소설한편을 읽은듯합니다
수고하셨고 감사합니다
아론님 또 긴이라 올리면서 살짝 여러~분들께 죄송한 마음...
ㅎㅎㅎ
제가 이정도면 짧게 올린건뎅...
올 한해 마무리 잘 하시구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론님.
후기글에 늘 댓글 잘 달아주셔서
아론님 닉네임도 제가 잘 기억하고 있답니다.
올 한해도 감사했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