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함이 가득한 교육장님!!!
이른 아침, 힘이 들고 몸이 무거울 때마다 앞산에서 나를 깨우는 새들의 가벼움이 부럽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다른 이의 무게를 덜어 주기엔 서로 너무 바쁘고 피곤해서 힘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내가 밝고, 건강해야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과 위로를 줄 수가 있습니다.
오월은 우리들에게‘2012 여수세계 엑스포’ 개막으로 국민들에게 바다의 소중함과 함께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선물하고 있습니다. 오동도 너머에서 불어오는 해풍도 신이 난 듯 요트의 끝자락을 힘껏 잡아당기며 바다의 향취를 마음껏 즐기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희망과 신뢰의 틈은 많을수록 서로에게 힘이 되지만, 마음이 통하지 않아 빚어지는 불신, 오해, 미움의 틈은 서로에게 슬픔과 우울함을 안겨줄 뿐입니다. 심지어 어떤 종류의 틈은 큰 소리로 싸우는 것보다 더욱 깊은 괴로움을 안겨 주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마냥 내버려 두어도 안 되고, 너무 성급하게 메우려 해서도 안 되고, 기회를 보아 자연스럽고 슬기롭게 메워가야 할 사람과 사람사이의 틈, 무엇보다도 용서와 화해로 이 틈을 메워가지 않으면 결코 참 된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의 마음속에 평안을 파괴하는 것은 외부에서 쏟아지는 비난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다스리지 못한 자신의 옹졸함에 있음을 누구나 부인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행복’이고,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랍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세 잎 클로버를 짓밟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 가족, 직장, 주어진 환경 등은 나에게 행복을 안겨줄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소유가 행복을 안겨 주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일지라도 이웃과 더불어 나눌 때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현재 주어진 조건들에 감사하면서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고 땀 흘린다면 행복은 언제나 여러분의 가장 친한 친구요, 소중한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행복의 첫걸음은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고, 자신을 가로막는 마음의 빗장을 풀고 쌓인 원망과 미움을 가슴에 품을 때에 비로써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휴 애런슨 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18세의 젊은 나이에 고향 스웨덴을 떠나서 혼자 미국으로 이민을 왔으나 누구 하나 반겨주는 사람도 없었으며 일자리를 찾기도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가지고 있던 돈도 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루는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서 무작정 서부로 가는 기차 화물칸에 올라탔으나 그만 열차 승무원에게 발각되어 실컷 얻어맞고 열차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매 맞은 몸으로 강가에 쪼그리고 앉아있는데 강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도 처량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차라리 저 강물에 몸을 던져 버릴까? 하고 있는데, 그때 불현듯 그의 마음속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나의 인생길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해 뛰어보았는가? 그는 그 자리에서 두 주먹을 쥐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자기의 지나온 모든 과거를 흘러가는 강물 위에 떠내려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는 힘 있게 한번 뛰어보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30년 후, 휴 애런슨은 몬테나 주의 영광스러운 주지사로 선출되었습니다.
이처럼 누구나 희망을 가진 사람은 당장 눈앞에 펼쳐진 상황 때문에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짜증부리지 않습니다. 경제가 불경기라고 주저앉아만 있지 않습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돌보아주지 않는다고 결코 불평하지 않습니다.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애서 상점을 운영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주인은 희망을 가지고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상점에 화재가 발생하여 값비싼 물건들이 전소되고 말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이 주인의 인생이“끝장났다.”고 생각했으나 화재 다음날 상점 앞에 붙은 ‘알림’을 보고 ‘힘찬 출발’을 예감했습니다. 그 글은 “이 상점의 모든 것이 다 타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들의 희망은 결코 타지 않았습니다. 내일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화재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희망을 잃어버리는 것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혹, 당신에게 지금 고난과 아픔이 찾아 왔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불청객이라 여기고 꺼립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것들이 찾아온 이유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난과 아픔이 우리에게 찾아온 이유는 단 한 가지 당신이 과연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지 시험해 보기 위함입니다. 행복은 늘 우리에게 고난이나 아픔 또는 시련으로 변장해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또한 삶에 있어서 논바닥이 갈라져 타들어가는 저수지의 가뭄도 심각하지만 서로 마음을 나누지 못해 멍든 마음의 가뭄이 더 심각하고,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고 살아갈 용기를 잃어버리는 일은 더 더욱 심각한 문제입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비록 그 희망이 작은 것일지라도 결코 놓아서는 안 됩니다.
뇌성마비 아이를 낳은 부부가 하도 속이 상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데 이런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동안 나는 이 아이를 아름답게 키울 가정을 찾고 있었다.” 즉 하나님이 뇌성마비 아이를 주신 것은 그 부부가 충분히 그 아이를 키울 수 있음을 아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생각하기조차 싫은 끔찍한 사고들이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우리 가정입니까? 아니‘나’입니까? 하늘을 보며 원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 상황 너머에는 당신이 미처 헤아리지도 못한 화목함과 정(情)이 기다리고 있어, 이전보다 더 멋진 장면을 연출한다는 사실입니다.
신은 인간을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니 날마다 새로운 시선으로 우리들의 일상을 아름다운 장면들로 채워나가시는 분입니다. 우리 스스로 기쁨과 즐거움으로 반응하면 됩니다.
학교에서도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주는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입니다. 따지고 보면 선생님은 아이들의 꿈을 크게도 작게도 조절하는 특별한 마술사입니다.
날씨가 화창합니다. 그렇지만 내일은 구름이 낄지 모릅니다. 친절한 말 한마디나 사랑의 말이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까지나 곁에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새들이 하늘을 가볍게 날을 수 있는 것은 가금씩 가벼운 것일지라도 깃털을 버리기 때문이랍니다. 우리도 작은 것이라도 버리면 버릴수록 그만큼 더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제나 사모님과 함께 행복한 날들 되소서. 강식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