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내 짝꿍 원주
내가 6학년 갓 올라와 짝꿍이 정해졌다. 6학년 되도록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 낯선 친구가 짝꿍이 되었다. 남자이면서 시골아이 치고는 곱상하고 웃을 때 미소가 참 예뻐서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 다음 순서는 각 구역 청소 당번을 뽑을 차례다.
선생님: "이번엔 화장실 청소 할 사람 손들어!"
현주: "저요.!"
반 친구들 모두 박장대소 깔깔한다. 선생님까지 껄껄 웃으시며
선생님: "현주는 어떻게 화장실 청소를 할 생각을 했어?"
현주: "네. 5학년 때요~ 정동열이가요, 우리는 마룻바닥 왁스칠 한다고 힘들게 청소 할 때, 가는 물 한 양동이 들이 붓고 빗자루 질 쓱~쓱 하고 집에 제일 일찍 가더라구요. 그게 부러워서
6학년 올라가면 화장실 청소는 제가 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흐흐흐"
아하하하하하하~ 교실이 한바탕 더 뒤집어 졌다. 아이들은 책상을 두드리고 난리를 쳤다.
선생님: "보통 친구들이 하지 않으려고 하는 청소구역을 현주가 용감하게 손을 들고 먼저 한다고 해줘서 고맙구나."
"오늘부터 화장실 청소당번은 현주가 맡아라!"
"아! 그런데 현주 혼자 다하면 힘드니까 짝꿍하고 함께하도록 한다."
원주: "네에????????? 싫어요!!"
친구들은 한 번 더 박장대소하며 한바탕 왁자지껄 난리를 쳤고 났었고 원주는 갑자기 맞은 날벼락에 울그락, 불그락 성질이 나서 책상을 주먹으로 치고 나를 꼬나보고 씩씩 거렸다. 나는 너무나 미안했다. 내가 그렇게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괜히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화장실 청소는 보통 잘못을 해서 벌을 받을 때나 하는 거지, 자발적으로 화장실 청소 한다는 아이를 본적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원주 입장에서는 날벼락도 그런 날벼락이 또 어디 있었을까?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 아이한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바로 그 날 오후부터 화장실 청소는 시작되었고, 원주는 양동이를 던지고 발로차고 욕을 하며 비협조적 이었다. 처음 보는 짝꿍아이와 친해지기도 전에 싸움부터 하게 생겼다. 하지만 난 죄 지은 죄인마냥 미안해하며
"넌 안 해도 돼. 나 혼자 다할게. 먼저 집에가."
하며 혼자 묵묵히 화장실 청소를 했다.
일주일 내내 짜증과 화를 내던 원주도 서서히 짜증이 줄기 시작하고 청소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물 양동이도 자기가 두개를 번갈아가며 물 받아오기를 시작했다.
둘이 하니 정말 금방 끝나고 친구들 보다 훨씬 빨리 청소가 끝나고 둘이 놀았다.
우리 둘은 그때부터 서서히 친해져서 아무도 안 믿겠지만 1학기 내내 회장실 청소하며 장난도 많이 치고 술래잡기도 하고, 까르르 많이 웃기도 하고 진짜 친한 친구가 되었다.
솔직히 처음 느껴본 어른들 신혼의 맛이 이런 걸까? 라고 느껴질 만큼 원주랑 짝꿍 하는 것이 행복했고 즐거웠다. 여름방학 내내 원주랑 놀고 싶었고, 보고 싶었다.
2학기 개학 첫날 나에게도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졌다. 반가움도 잠시 바로 짝꿍을 바꾼다는 선생님의 청천벽력 같은 말씀이었다. 난 정말 너무 놀랐고 머리가 하얘졌다. 짝꿍이 바뀔 거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적이 없을 만큼 원주랑 정말 친했고 좋았기 때문이다. 내 인생 제일 행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내 마음이야 그러던지 말든지 짝꿍 바꾸기는 시작되었고
먼저 짝꿍을 만난 원주는 새 짝꿍 윤정이랑 벌써 히 히 낙 낙이다. “문디 새끼”
속에서 열불이 나고 웃고 있는 원주를 보며 마음속에서 질투가 끌어올라 욕이 절로 나왔다.
난 아직 짝지를 맞춘다고 줄을 서서 그 쪽을 바라보는데 도저히 얼굴표정 관리를 못 할 만큼 울그락 불그락 했다.
나의 불타오르는 질투심을 들킬까봐 원주와 눈도 못 마주치고 친구들과 얼굴도 마주치지 못했다. 정말 귀와 콧구멍에서 김이 뿜어져 나올 것 같은 심정이었다.
결국 나도 공부도 잘하고 잘생기고 멋진 석이가 새로이 짝꿍이 되었지만 솔직히 반갑지도 않고 짜증만 엄청나서 씩씩거렸다.
재수 없게 석이도 내 짝지라는 이유로 반년을 나랑 화장실 청소를 같이 하게 되었다. 그 녀석도 처음엔 씩씩대다가 원주처럼 나랑 아주 친하게 되었고 재미나게 청소를 했다.
국민학교 졸업 이후 원주랑 중고등학교가 달라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늘 내 마음에 어디서 어떻게 사나 싶고 궁금했었는데..
6년 전쯤 부터 SNS로 어째 연결이 되어 서로 사는 모습을 보고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외아들 하나 있는데 어찌나 생김이 지 아빠 어릴 때를 닮았던지..
아들이 영특하고, 영재진단 받았다더니 아들 하나 잘 키워보겠다고 마음을 먹고, 아들과 서울에 있는 과학 고등학교로 진학을 해서 이사를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공부도 보통 잘 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아들을 잘 키운 친구가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어제 오후쯤 초등 동창회에서 문자가 와서 원주가 출근길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곧이어 도착한 원주의 톡으로 보낸 그의 아내가 보낸 부고문자가 가슴을 쥐어뜯게 하였다.
'선생님의 친구이자 저의 남편인...'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슬픈 문자였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원주가...내 짝꿍 원주가....
친구 몇 몇이랑 당장에 달려갔다.
장기기증을 위한 수술을 진행한다고 아직 서울에서도 출발도 못한 내 친구.
친구의 시신이 도착한 후에 새벽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안 먹는 술을 100만 년 만에 먹었더니 하루 종일 아파서 뒹굴었다.
몸이 아픈 건지 마음이 아픈 건지 눈물만 계속 흘렀다.
새파랗게 젊디젊고 나이 이제 겨우 48살에 내 친구!
옛이야기 나누며 회포 한번 못풀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가버렸나. 이 친구야.
쌩 때 같은 새끼 두고 어찌 그리 허망하게 갔는가...
부디 이젠 아프지 말고 좋은 곳에 가라.
"원주야~ 사느라고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