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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감영공원 비림에 있는 유명악의 비. 안영선 기자
유명악(兪命岳)[1667~1718]의 본관은 기계(杞溪)이며, 자는 군사(君四) 또는 효경(堯卿), 만휴정 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유대의(兪大儀)이고, 할아버지는 예조참의 유성증(俞省曾)이다. 아버지는 대사헌 유철(俞㯙)이고, 어머니는 한전(韓甸)의 딸 청주한씨(淸州韓氏)이다. 부인은 이두악(李斗岳)의 딸 용인이씨(龍仁李氏)이며, 아들은 영의정과 대구관찰사를 2번이나 지낸 유척기(俞拓基)이다.
조선 후기 대구판관을 역임한 문관 유명악은 1667년(현종 8) 정미 7월 14일 병진일에 서울의 한정리에서 태어났다. 명악 공이 5세 때 아버지를 잃고, 6세때 학질을 앓고 7세 때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16세에 삼연(三淵)김창흡(金昌翕)[1653~1722]에게 수학하였고, 우암 송시열을 존경하고 따랐으며, 1705년(숙종 31)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개령현감을 거쳐 1713년 대구판관으로 부임하였다. 대구판관으로 재임 중이던 1714년 대구부에 처음으로 석빙고를 쌓았고, 이후 선정을 베풀었다. 1716년 순흥부사로 이임하였으며, 1718년 청주목사로 재임 중 사망하였다. 유명악은 지방관으로 재직하며 부임한 고을마다 칭송을 받아 백성들이 비석을 세워 업적을 기렸다.
대구에서는 33방(坊)에서 각각 비석을 세울 정도였다고 한다. 대구광역시에는 경북대학교 교내에 판관 유후명악 청덕선정비(判官兪候命岳淸德善政碑)· 판관 유후명악 영세불지비(判官兪候命岳永世不志碑)· 판관 유후명악 애민선정비(判官兪候命岳愛民善政碑) 등이 있고, 중구 반월당역 부근에는 석빙고 중수비도 건립되어 있다,
현재 대구에는 명악공의 선정비가 13기 남아 있는데, 경상감영공원에 1기, 화원읍 성산리 유명악 공 비각에 8기, 경북대학교 야외 박물관에 4기가 있다. 화원읍 유명악 비각은 1993년 달성군이 화원읍과 달서구 일대에 있던 비를 모은 것인데 본래 9기였는데 2002년 기계유씨 대종회의 요청으로 1기를 대구시 중구 경상감영공원으로 옮겼다.
대구수령 선정비는 명악 공이 13기로 가장 많다.
그가 1713년부터 1716년까지 대구판관으로 재임 중 초개빙고(초가로 만든 빙고로 3년에 한 번씩 백성의 세금을 거두어 지붕을 이었음)를 영남감영미 800석을 원조 받아 9칸의 석빙고로 개축하여 민폐를 덜어 주었다. 석빙고가 준공 준공 되었을 때 사람들이 그의 공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비를 세웠는데 오늘날 ‘석빙고비’라는 이름으로 대구향토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경상감영의 펌프가 있는 장독대에서 첫 번째 비는 유명악공의 아들 유척기의 비이고 두 번째 있는 비가 유명악 공의 비석이다. 유명악의 묘소는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 산140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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