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향기가 진하게 코끝을 스치며, 차창 가에 흐르는 연둣빛은 몸과 마음을 싱그럽게
한다. 강경랑, 김병지 두 친구와 함께 마산을 향하여 달리는 지금 고향을 찾는 듯 설레는
기분이다. 요즘은 일기예보와 꽃물에 관심을 가지고 좋은 날씨에 정다운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산행을 고대 하고 있었으나 날씨의 심술은 확실한 가닥을 잡기 어렵게 한다. 부산,
울산, 대구 어느 곳이든 이슬비라도 오면 순연하기로 하였다. 약속은 그렇게 하였지만 꽃물에 달뜬 마음은 조급함을 금할 수 없었다. 마산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날짜를 맞추지 못하면 만개의 화려함을 놓친다는 생각에 무리를 하여 무학산으로 출발하기로 하였으나 부산은 이슬비가 소나기로 변하였을 뿐 아니라 마산 방향의 교통은 주차장화 되었다는 이종찬, 이건영 두 친구의 낙심한 음성 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나의 불찰 이다. 부산친구들에게 죄송하고 미안하다. 약속 대로 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라 후회 하면서, 마산으로 향하는 지금, 마음 한 켠을
도려낸 듯 싸늘한 심정으로 약속장소에 도착하였다.
낯선 친구들이 보였다. 진주에서 강홍렬, 서청수친구와 마산의 백종흠친구였다.
이것이 몇 년 만인가 이름으로는 알고 있었으며, 마음은 주고받았으나 이렇게 직접
얼굴을 대하는 것은 50년 만이다. 곧이어 울산의 김덕숙, 이광호, 전봉길친구가 도착
하여 산행을 시작하였다. 들머리는 마산 여중 앞 개울가에서 시작하여 서서히
정상을 향하여 올라간다.
겨우내 앙상하던 가지에는 초록이 싱싱하며 산 벚꽃을 비롯한 봄꽃은 진달래 군락을 예고라도 하는 듯 서막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었다. 임도 옆에는 갓 움을 틔운 여린 잎새는 간밤에 촉촉이 내린 봄비에 초롱을 매단 영롱한 자태가 신선하기 그지없다. 일 열로 오르며 그동안 서로간의 궁금함과 졸업한 후의 흔적을 더듬어 보기도 하며,
우리끼리 통할 수 있는 이야기들로 힘들고 가쁜 숨소리도 삭이며 한 발짝 한 발짝
정상을 향한다.
아래로 보이는 마산항은 해무로 희뿌옇게 형체만 드러내고 있으며, 울긋불긋 물던
진달래 터널을 통과할 때는 조금 늦게 찾아온 듯, 나무 밑에 떨어진 꽃잎이 아쉽기도 하였다. 군데군데 만들어 놓은 쉼터는 우리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땀을 몇 번 훔치고 나니 널찍한 동네 앞마당 같은 ‘서마지기’라는 곳에 다달았다. 정상이 바로 앞에 보이며 정상으로 오르는 365계단 양옆으로 화려하게 활짝핀 진달래 군락은 분홍 물감을 뿌려 놓은 듯 화사하며 포근하다.
수려한 산세와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를 즐기면서 정상에 도착한 우리는 잔잔한 마산항 을 바라보면서 노산 이은상님의 ‘가고파’를 흥얼거린다. 정상의 조망은 날씨 탓에 그렇 게 훤하게 탁 트이지는 않지만 발아래로 펼쳐지는 마산 시내와 돝섬 아스라이 바다
위에 걸쳐있는 마창대교는 한 폭의 산수화다.
모든 것을 발아래 하고, 하산 길은 타박하게 정장한듯한 솔숲과 너덜겅으로 이어진다. 은은한 갯바람의 솔향기는 농익은 봄 향기 그대로다. 편백나무의 쭉쭉 곧게 뻗은 기상 은 민주주의 성지로서의 자부심을 대변하는 듯하였다. 대덕산을 둘러 하산하게 되니 하루에 두 봉우리를 오르내렸으며, 무학산 북쪽 기슭에서 출발, 남쪽 끝에 도착하였
으니 종주를 한 셈이다. 하산 길의 종착지점은 공원으로 잘 다듬어져 있으며 모녀지간 의 애닮 푼 전설을 간직한 ‘만날고개’다.
이곳에 도착하니 활짝 핀 산복숭아꽃이 소담스럽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갯바람이 5시간
의 산행으로 지치고 무거워진 몸을 풀어주는 듯하다. 야외무대가 설치되어 여러 행사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마산의 문화광장인 듯해 보이는 넓은 공간이 잘 가꾸어져 있으며 아직도
공사가 한창이다. 길옆에 정목일 친구의 시비를 보니 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 기약 없이
떠난 님을 기다리며, 만날 날을 기원하는 듯한... 내용. 이곳에서 친구시비를 배경으로 나란히 서서 인증샷을 눌렀다.
가슴 두근거린다. 오늘 50년 만에 만나는 친구가 푸짐하게 상을 차례 놓고 기다리는 마산의 9경에 속하는 어시장으로 향한다. 비릿내 물씬 풍기는‘어시장, 손님청하는 아주 머니들의 음성도 정겹고 부드럽게 들린다. 정희경, 맹경렬 두 친구가 두 팔을 활짝 펼 치며 반겨주니 가슴이 뜨거워진다. 有朋이自遠方來면不亦樂乎! 라는 한 구절을 힘차게 외치는 맹경렬 친구의 표현은 마산친구들의 마음이란다. 정이 담뿍 녹아 있는 이곳
에서 누가 무엇을 부담한다는 그런 세속적인 이야기는 부끄러움으로 닥아 왔다. 50년의
풍진세월도 옛날 어린 시절의 그 모습 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 없었던 듯 옛날 모습이
선명하다. 조금 늦게 김남서친구도 합석했다. 정희경친구에게는 항상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인 이야기라 다음기회로 미루어야겠다.
분위기는 고조되고 시간은 흘러 친구들이 마련해 둔 여러 스케쥴을 다 마치지를 못하고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살면서 숱한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하지만 오늘 우리들의
만남과 헤어짐은 더욱 아쉽다. 이제 이렇게 문을 열어놓았으니 자주 더나들면서 못 다한 정담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두 손 불끈 잡았다.
마산친구들아!! 고맙고, 감사하였다.
마산,창원,진해를 통합‘창원시’로 개칭하였으나 그냥 마산으로 하였으며,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상세하게 내용을 쓰지 못했음을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언젠가는 한번 여러 가지를 개인적인 이야기도 포함시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은 서청수친구가 올려 주어 감사하며, 저는 간단히 올리겠습니다.
오늘 같이 산행을 한 강홍렬, 서청수, 백종흠 친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앞으로도 자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