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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일정씨 포은사랑방 원문보기 글쓴이: archi정(鏞和)
◈◈포항시 오천읍 그리고[4]<?xml:namespace prefix = o /> |
정 숙진 “네, 여기가 포항시 오천 읍 문덕 리입니다” “그렇군요 잘 알았습니다” <오천읍(烏川邑, Ocheon-eup)> 경상북도 포항시 남서부에 있는 읍으로 면적은 70. 5㎢이다. 인구는 43, 265명(2008년기준)이다. 동쪽은 장기면(長鬐寅面), 북쪽은 동해면(東海面), 제철동(製鐵洞), 서쪽은 대송면(大松面), 남쪽은 경주시 양북면(陽北面)과 경계를 이룬다. 원래 일월지(日月池)가 있었다 하여 일월면이라 하였으나, 1914년 고현면(古縣面) 지역을 병합하고 영일군의 옛 이름인 오천을 따서 오천면이라 하였으며, 1980년 12월 읍으로 승격하였다. 읍의 남부지역은 침식에 강한 석영반암으로 구성되어 해발고도 400~600m의 산지를 이루고 북쪽은 제 3기 연일층군(延一層群)의 낮은 구릉지를 형성한다. 남쪽경계 부분과 남서쪽 오어지(吾魚池)에서 발원한 냉천(冷川)이 북쪽으로 흘러 영일만으로 유입하여, 그 양안에 충적평야와 하안단구를 형성하여 주요 농경지를 이룬다. 벼농사 이외에 채소 양송이 재배가 활발하다. 철강공단이 인접해 있고 근처에 해병부대가 있어 공단 근로자와 영외거주 군인이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며, 원주민은 17%에 불과하다. 시내와 장기면을 잇는 지방도가 지난다. 운제산(雲梯山)밑에는 신라 진평왕(眞平王)때 창건한 고승 원효대사와 혜공(惠空)대사가 수도 했다는 오어사(吾魚寺)가 있다. 문화재로는 오어사 동종((銅鍾: 보물1280), 영일일월지(迎日日月池: 경북기념물 120), 오어사 대웅전(大雄殿: 경북문화재자료88), 오천 서원, 고현성터, <?xml:namespace prefix = st1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smarttags" /><?xml:namespace prefix = st1 /><?xml:namespace prefix = st1 /><?xml:namespace prefix = st1 /> <오천서원(烏川書院)>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오천음 원리에 있는 서원 고려시대의 문신 정습명(鄭襲明? ~1151)과 경내에는 사우 강당, 동재, 서재, 내삼문, 외삼문, 존서총 등이 들어서 있는데, 사우 상경사(尙敬祠)는 3칸 규모의 건물로 탁자에 명함을 꺼내 보니 상호와 연락처만 있어서 물어 보았더니 식당 아주머님이 친절하게 알려 준다 “밖을 나오니 아직 초저녁이고 배는 부르고 일찍 찜질 방에 들어가서 자라니 잠이 안 오겠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찜질 방에서는 잠도 못 잡니다. 밤새 떠들고 왔다 갔다 하고 각자 알아서들 방을 얻어 자면 좋은데 말이지요” “그러려고 했는데 워낙 인원도 많고 한 숙소를 얻기도 어렵거니와 포항은 방 부족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있는 종인이 찬조로 커다란 찜질 방을 얻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싫으신 분은 각자 알아서들 주무시고 “알겠습니다” 찜질 방 가는 사람도 있고 삼삼오오 흩어 지는 분도 있는데 버스에서부터 아버지 항렬인 기(基) 어르신과 화자 항렬(손자 벌)S님이 부른다. “정화백, 우선 차나 한잔 하면서 잠잘 곳을 찾아 보십시다” S님과 O님이 방을 알아 본다고 나간 뒤 찻집에서 한참을 기다리니 돌아 온다 “방이 없어요 얼마나 헤 메였는지 몰라요 겨우 방 2개 얻었습니다” “왜 방이 없는 건가요?” “포항은 여러 마을을 통합한 신도시에다가 산업화의 상징인 포스코가 존재하고 있고 오천 읍 일대는 해병대의 주둔으로 주말이면 연인들이 외출 나와 방을 많이 잡는 것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또한 바닷가에 놀러 온 행락객들도 방을 차지 할 수도 있고요. 아무튼 새로 지은 호텔과 모텔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방이 주말이면 모자란다고 하는군요” “수고 했습니다. 찜질 방에서 샤워하고 오실 분들은 그렇게 하시고 일단 숙소로 모입시다” 한참을 걸어 멀리 있는 숙소 큰 방에 S님이 사온 복분자와 과일과 안주로 할메, 손자, 아버님 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몇 사람의 종인과 참으로 오랜만에 즐거움이 흘러 밤이 깊다. “이만 가서 자겠습니다” 그 방 아래층 작은 독방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그대로 아무렇게 펼쳐 놓은 채 자유롭게 잘 수 있어 편안한 행복이다. “정화백, 어디서 잤어요? 많이 찾았어요. 우리는 찜질 방에서 잤는데 얼마나 재미 있었는지 몰라요, 글세 어떤 여자들이 내 옆에 와서 자고 있지 뭡니까 그러다가 방구를 붕붕 켜고 좀 있다가 부부가 와서 꼭 안고 자고,” “저도 재미 있었어요. 방을 얻어 주어서 잘 잤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재미 있어서 그 곳에 주무셨군요?” “그럼요, 얼마나 재미 있다고요. 정화백님도 한 번 자보세요” 어떤 종인님 말을 들으며 재미있게 웃었지만 각기 취향들이 다르니 그럴 수도 있을 터, 난 별로 찜질 방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냥 목욕이나 하러 들어 갔다가 나오는 건 괜찮지만 자는 건 별로이다. “다 모였지요? 행사시간이 넉넉하게 남아있는 것 같아 시간을 벌기 위해 포은 선조님 생가 터를 가려고 합니다” “와! 좋아요 어서 가요” 포은 할아버지 생가 터가 어떻게 생겼는지 무척 가 보고 싶었는데 생각지도 않은 일정이 잡히다니, 한참을 차를 달리다 말고 서더니 종인 들이 나가더니 어디론가 걸어간다. “생가 터 다 온 겁니까?” “아닙니다. 차가 잘 못 온 것 같습니다 이곳은 “안돼요. 그래도 약속을 했는데 차를 돌려 빨리 포은 생가 터 가십시다” “버스 기사나 생가 터를 아는 사람들이 버스에 남아 있지 않아서 갈 수가 없어 난감이네요” 우왕자왕 길에서 시간이 계속 흘러가고 사람들은 흩어지고 맥이 탁 풀리는데 “포항에 계시는 OS님이 생가 터를 아시거든요 불러야겠습니다” N님이 전화를 하고 기다리는데 모두 빠져 나가고 몇 사람밖에 없다. 안되겠는지 “일단 생가 터는 취소하고 걸어서 행사장에 들어 가십시다” 아쉬운 발걸음을 터벅터벅 걸어서 승용차가 막 서더니 한복을 입은 어르신이 차문을 열고 나오신다 “정화백, 이 분이 생가 터를 아신다는 포항에 사시는 OS님입니다” “그래요? 전 서울에서 벼르고 별러 이 행사에 따라 나섰습니다. 생가 터를 꼭 가보고 싶습니다. 행사시작 하려면 시간이 좀 있으니까요 저 좀 생가 터를 데려가 주세요” 하면서 그 분 팔짱을 꽉 끼면서 매달렸다 “그러십시다” 나의 기세에 눌려 그 어르신은 승낙을 하고 그 분 막내 아드님이 운전하는 차에 나와 종인 2분이 타고 다른 승용차 한대가 더 따라 붙여 승용차 두 대가 30분쯤 달리니 포은 할아버지 생가 터 푯말이 보인다. 2010, 4, 4 |
[출처] ◈◈포항시 오천읍 그리고[4] (정숙진 팬카페) |작성자 펄디공주 |
첫댓글 미인 이시네요...정숙진화가 기억 할겁니다^^
선그라스꼈을 뿐인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