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계(戒)의 체성(體性)
1) 성계(性戒)와 차계(遮戒)
性戒와 遮戒…性戒는 殺生ㆍ愉盜ㆍ邪淫ㆍ妄語의 四重戒를 말하며 佛制가 아니라도 저절로 罪惡이 되는 戒임. 遮戒는 性戒以外의 戒律을 말함.
계에는 성계(性戒)와 차계(遮戒)가 있습니다. 성계는 계 자체가 악성(惡性)이라는 말입니다. 가사 담배를 피운다던가 술을 먹는다든가 그런 종류는 계 자체가 원래 나쁜 것은 아닌 것이고 다만 많이 먹어서 나쁜 것입니다. 담배도 어떠한 때 한번 피웠다 하더라도 그것이 별로 나쁜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인이 박혀서 중독이 되면 그것은 나빠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차계(遮戒)라고 합니다. 또 대중과 같이 있는데 목욕도 않고 냄새가 역겹게 풍긴다면 이것도 그 자체가 악은 아니겠지만 대중한테 피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계는, 살생한다면 생명을 죽이는 그 자체가 악(惡)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설사 말씀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벌써 다른 생명을 해친다면 가령, 어릴 적에 개구리를 많이 잡는다거나 또는 낚시를 많이 한다면 내생까지 안 가도 금생에 꼭 과보를 받습니다. 악보(惡報)를 받습니다. 재가 불자들을 제도할 때에 우리는 그런 것을 항시 말씀을 하여야 합니다. 또, 고기를 많이 먹는다면 ‘요즈음은 공해가 심하니까 단백질을 많이 섭취해야 하지 않겠는가? 더구나 운동 선수 같은 사람들은 힘을 많이 쓸려니까 많이 먹어야 할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서 그때그때 너무 관용을 많이 해버립니다. 그러나 고기를 많이 먹는 것도 역시 살생하고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살생을 했으니 고기를 먹는 것이지 살생 안하면 고기를 먹을 수 있겠습니까? 살생하는 어려운 일은 남한테 시키고 자기는 그냥 열매만 따먹는 그야말로 이기심까지 곁들어서 용납할 수가 없겠지요. 그런 살생이나 또는 도둑질이나 그 성품 자체가 죄입니다.
불교가 아니더라도 도둑질은 악(惡)이 아니요 죄 아닙니까? 옛날 고대에는 남의 것을 훔치면 그냥 팔을 몽땅 잘라버렸습니다. 그렇게 엄하게 외연적(外緣的)으로도 제재를 가했던 것입니다. 죽은 다음에도 살생하거나 훔치거나 꼭 나쁜 벌을 받는 것입니다.
또는 사음(邪淫)도 자체가 죄입니다. 삿된 음행을 한다면 자기 몸이나 남의 몸도 결국 오염시키는 것입니다. 또는 순결한 마음을 오염시키는 것입니다. 재가 불자들은 배필이 있으니까, 상대적으로 재가 불자들이니까 죄가 안 되는 것이지 부처님 사상으로 본다면 그것도 한 가지 욕심이고 음욕이기 때문에 죄라는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관용을 베풀어서, 재가 불자처지에서는 음행을 완전히 금할 수는 없는 것이고 사음만 안 해야 한다고 한 것이지 음행 자체는 벌써 허물이라는 말입니다. 음행의 허물로 해서 우리가 생사 인연을 짓는 것입니다.
쇼펜하우워 책 가운데에 감명 깊게 남는 말이 있습니다. ‘천상이 있는가 없는가 나는 모른다. 천상이 있다면 천상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속인이면서도 평생 동안 독신으로 지낸 분입니다. 저는 그런 위대한 사람들을 많이 헤아려 봅니다. 칸트나 니이체나 쇼펜하우워나 음악가로 베에토벤이나 슈베르트나 또는 조각가로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드로다빈치나 말입니다. 그 분들은 다 독신으로 지냈습니다. 물론 어떻게 지냈던가 개인적 사생활은 알 수가 없습니다마는 아무튼, 그들의 뜨거운 이상과 소신을 위하여 모든 애욕이나 욕망을 다 바친 사람들입니다.
또는 망어(妄語)라, 거짓말도 역시 자체가 벌써 죄라는 말입니다. 다만 마음 가운데 무겁고 가볍고의 차이만 있습니다. 보통 거짓말은 가벼운 거짓말이지마는 대망어(大妄語)는 4바라이(四波羅夷)죄에 해당합니다. 자기가 진리를 미처 못 깨닫고 깨달았다 하고 못 증(證)하고 증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공부인들이 그야말로 준엄하게 자기 점검을 해야 합니다. 깨닫지도 못하고서 깨달았다고 하고 또는 도인이 아니면서 도인인척 한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반성해 보면 알 일입니다. 나한테 욕심이 있는가 없는가? 나한테 진심(瞋心)이 남아있는가 안 남아 있는가? 우선 대망언은 자기 양심을 속이는 것이고 성자의 법을 속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성한 법의를 입을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마땅히 우리 출가사문은 준엄하게 자기 점검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살생, 투도, 사음 또는 망어 이러한 사중계(四重戒)는 부처님께서 제정한 것이 아니더라도 저절로 그대로 죄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차계(遮戒)는, 성계(性戒) 외에 다른 계들은 성품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닌 것인데 우리가 잘못 행위함으로 해서 남도 싫어하고 자기 공부에 장애도 있는 것입니다. 술을 많이 먹어서 흥분하면 싸우기 쉽고 지혜도 흐려지고 온갖 허물이 있게 되지 않습니까?
2) 정공계(定共戒)와 도공계(道共戒)
定共戒…色界ㆍ無色界의 諸禪定을 修持하면 그 定心과 아울러 身中에 스스로 防非止惡의 戒體를 生하는 것. 此는 有漏定이므로 戒體 또한 有漏임,
그 다음에는 정공계(定共戒)라, 이것은 선정(禪定)과 더불어서 계체가 우리한테 확립이 된다는 말입니다. 색계(色戒), 무색계(無色界)의 제선정을 곧 초선정, 2선정 하는 색계의 4선정과 무색계의 공무변처(空無邊處), 식무변처(識無邊處) 등의 모든 선정을 수지해서, 벌써 선정에 들어갔다고 하면 정심(定心)이 확립이 된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몸 가운데 또는 잠재의식 가운데 방비지악(方非止惡)이라, 비행을 막고 악을 그치게 되는 것입니다. 벌써 마음이 고요한데 함부로 바람 피우고, 함부로 음식을 먹으려고 하겠습니까? 이렇게 방비지악의 계체가 생기는 것입니다. 계체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는 안 보이지만 잠재의식에나 몸에나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그 기운이 베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루정(有漏定)이므로 계체 또한 유루입니다. 성자의 무루청정(無漏淸淨)한, 모든 상(相)을 여읜 경계는 미처 못되나, 외도라도 선정에 들면 살생이나 투도나 사음이나 망어도 못하는 것입니다. 외도에서도 정작 선정을 닦아서 오통(五通)을 통한 사람들은 응당 파계 무참한 짓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삼계를 초월하는 삼매는 우리 성자 밖에는 못 들어가지만 외도라도 색계, 무색계의 삼매에는 들어갈 수 있고 또 삼매에 들어간다면 계율을 범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해탈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유루선정(有漏禪定)이므로 계차 또한 유루입니다.
道共戒…三乘의 聖者가 見道ㆍ修道의 位에 至하여 無漏智를 發하므로 無漏智와 더불어 스스로 防非止惡의 戒醴를 發得한다. 戒體 또한 無漏임.
그리고 그 다음에는 도공계(道共戒)라, 견성오도와 더불어서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계라는 말입니다. 성문승이나 연각승이나 보살승이나 삼승성자(三乘聖者)가 견도 수도의 위(位)에 이르러서 번뇌의 때가 묻어있지 않는 무루의 지혜를 발하므로 무루지(無漏智)와 더불어서 스스로 방비지악(防非止惡)이 되는 계체를 몸과 마음에 발득(發得)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계체는 바로 무루(無漏)입니다. 남을 점검할 때나 자기를 점검할 때나 이것은 다 통용되는 문제입니다.
3) 불성계(佛性戒)
佛性戒…梵綱經所說의 大乘戒로서 佛戒 또는 佛乘戒라고도 함. 一切衆生이 本具한 佛性이 淸淨無垢하여 一切의 허물을 떠났으며 이 佛性을 體로 하여 佛果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는 諸佛이 住하는 一實相의 淨戒이니 一切大乘戒의 都名임.
‘一切衆生皆有佛性이니, 一切意識色是情是心이 皆入佛性戒中이므로 一切有心者는 皆應攝 佛性戒할지니 衆生受佛性戒하면 卽入諸佛位하느니라’ (梵網經下)
‘佛離 一切相하야 而住於戒하니 所謂離諸相인 一相一味라. 若能如是 離一切相하여 而住於戒하면 此戒卽是佛性戒라’ (大日經十七)
그 다음 불성계(佛性戒)는 대승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소승계는 그 가운데에 자동적으로 포함이 되어야 하겠지요. 범망경(梵網經) 소설의 대승계인 십중금사십팔경겐(十重禁四十八輕戒)는 불성계입니다.
불성계는 불계(佛戒) 또는 불승계(佛乘戒)라고도 합니다. 불성계의 불성이라는 말은 일불승(一佛乘)으로서 성문이나 연각이나 또는 보살이나 있지만 사실은 모두가 일불승 뿐입니다. 일불승 가운데 다 들어 있습니다. 일체 만유가 일미평등한 진여불성인지라 본래에서 본다면 모두가 다 하나의 불승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때문에 불승이라 합니다. 법화경에 유유일승법(唯有一乘法)이요, 오직 한 불승만 있고 무이역무삼(無二亦無三)이라, 역시 성문, 연각, 보살로 구분한 것은 중생차원에서 얼마만큼 부처님에게 가까워 있는가? 하는 것으로 구분한 것이지 부처님 차원의 불안(佛眼)으로 본다면 성문승도 연각승(緣覺乘)도 중생도 모두가 다 부처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오직 일불승만 존재하고 다른 것은 모두가 다 가상(假相)이요. 실상은 일불승 뿐입니다.
일체 중생이 본래 갖춘 불성이 청정무구하여 일체의 허물을 떠났으며 이 불성을 체로하여 불과(佛果)에 이르기 때문에 불성계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이는 모든 부처님이 머무는 일실상(一實相)의 일미평등한 진여실상의 청정계율이니 따라서 진여불성, 이것은 바로 우주의 실상이기 때문에 우주의 실상은 그 우주에 따르는 규범(規範)이 있습니다. 봄이 되다가 봄이 안되고 겨울로 되돌아가겠습니까? 이와 똑같이 우주는 우주에 따르는 섭리(攝理)가 있는 것입니다. 다른 생물을 죽이는 것은 벌써 우주의 섭리를 어기는 것입니다. 훔치는 것도 우주의 섭리를 어기는 것이고, 도인이 아니면서 도인인 체 해도 우주의 섭리를 어기는 것입니다. 음행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성계는 일체 대승계의 도명(都名), 즉 모두 한번에 포괄한 계의 이름인 것입니다. 범망경에 ‘일체중생 개유불성(一切衆生皆有佛性)이니,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는 것이니 일체의 뜻(意)과 분별하는 식(識)과 또는 물질적인 색(色)과 또는 우리 망정(妄情)이나 인정(人情)이나 우리 마음(心)이 모두 불성계 가운데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정도 역시 불쌍한 사람, 가엾은 사람을 보고서 가엾이 생각하는 것을 유교(有敎) 정도로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고 좋게 봅니다마는 부처님께서 본다면 한가지 속정(俗情)으로 바로 망정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특수한 사람에게 특별히 생각하는 인정이나, 또는 우리가 쓰고 있는 중생심이라든가 모두가 다 불성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불성 가운데 들어가면 모두가 다 불성이 되어 버립니다. 불안(佛眼)으로 통찰하면 일체 만유가 바로 진여불성(眞如佛性)입니다.
‘모두 다 불성계 가운데 들어가므로 일체 인간이나 기타 유정인 자는 모두 마땅히 불성계를 수(受)할지니 중생이 이 불성계를 받으면 바로 제불의 자리에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불성계를 받고 맹세를 한다면 이미 우리는 불성자리에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대일경(大日經)에 ‘불은 리일체상(離一切相)하고, 모든 상을 여의고 정계(淨戒)에 상주하니 이른바 모든 상을 여읜 일상일미(一相一味)라, 만약 이와 같이 일체상을 여의고 계에 머물면 이 계가 바로 불성계니라’ 고 말씀하였습니다. 여기에 있는 우리 출가사문들은 다 불성계를 받으신 분들이니까 사실은 모두 불성계 중에 지금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체가 모두가 다 청정합니다. 그러므로 청정한만치 청정 불성에 수순(隨順)해야 하겠지요.
4) 수대승계(受大乘戒) 십인(十忍)
受大乘戒十忍…大乘受戒의 精神을 열 가지로 벌린 것.
1. 割肉食騫 2. 投身餓虎 3. 斫頭謝天 4. 折骨出髓 5. 挑身千燈 6. 挑眼布施 7. 剝皮寫經 8. 剌心決志 9. 燒身供佛 l0. 刺血灑地 (順正記)
수대승계십인(受大乘戒十忍)이라. 저는 대승계십인에 대해서 감명이 큰 것이 백양사 운문암으로 6·25사변 전에 출가했습니다마는 그때 법당에 창호지에다 대승계십인이라고 쓴 법문이 붙여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고서 적어 두었는데 나중에 불경에 나온 것을 보고 더욱더 깊이 감동했습니다. 대승계를 받을 때는 다짐을 받습니다. 열 가지로 참는 계율인데 ‘그대가 이것을 참을 수가 있는가?’ 하고, 옛날에는 그렇게 해서 받았다고 합니다. 대승계 계의 정신을 열 가지로 벌린 것입니다.
1에 할육식응(割肉食騫)이라, 비둘기를 살리기 위한 인연설이 있습니다만(智度論, 西域記 等), 부처님께서 과거 전생에 인행시(因行時)에 시비왕(尸毘王 Sibika)으로 있을 때에 비둘기 한 마리가 매한테 쫓겨서 품안에 들어왔는데 매가 쫓아와서 비둘기를 내달라고 간청하므로 시비왕이 비둘기 대신 비둘기만큼의 자기 살을 떼어 주겠다 하고는 저울의 한 쪽에 비둘기를 올려놓고 한 쪽에다 자기 살을 아무리 떼어 놓아도 도무지 비둘기하고 무게가 같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팔뚝을 떼어 놓아도 안되고 나중에는 몸뚱이채 온통 올려놓았다는 설화가 있습니다마는 그대가 이렇게 할 수가 있는가? 하면, 맹세로 다짐을 받으니까 ‘예 할 수가 있습니다’ 하고 대답을 해야 되겠죠.
2에 투신아호(投身餓虎)라, 그대가 주린 범에게 몸을 줄 수가 있는가?
3에 작두사천(斫頭謝天)이라, 부처님께서 과거 설산동자(雪山童子)로 인행할 때 법문 한 귀절을 듣기 위해 나찰(羅刹)에게 몸을 바쳤다는 설화에서, 제석천이 나찰로 변하여 법문을 일러 주었으므로 고맙다고 목을 베어 사례할 수 있는가? 하는 다짐입니다.
4에 절골출수(折骨出髓)라, 이것은 상제(常啼 Sadapralapa) 보살 설화입니다. 반야바라밀을 얻기 위해서 뼈를 분질러서 골수를 낼 수가 있는가?
5에 도신천등(挑身千燈)이라, 그대 몸에다가 부처님을 찬탄하기 위해서 천등을 키울 수가 있는가?
6에 도안보시(挑眼布施)라, 그대 눈을 빼어서 보시를 할 수가 있는 것인가? 도안보시에 대해서는 설화가 굉장히 많습니다. 가나제바(迦那提姿 Kana-deva)존자는 용수보살의 제자로 15대 조사입니다. 가나제바는 얼굴이 잘나서 탁발할 때 여인들이 너무나 지겹게 따라오니까 자기의 한쪽 눈을 빼어서 주었습니다. 그래서 애꾸눈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연화색(蓮花色 Utpalavawi) 비구니는 그의 미모를 사모하는 포악스러운 사람이 자기를 겁탈하려 하니 양쪽 눈을 빼어 주었다고 합니다.
또는 사리불(舍利弗 Sariputra)존자가 전생에 탁발을 나갔을 때에 어떤 바라문이 시험하려고 “부처님 가르침을 믿는 사람들은 자기 몸뚱이도 보시한다는데 그대도 그렇게 할 수가 있는가?” 할 수 있다고 대답했더니 “나한테 필요한 것은 당신 눈이다. 줄 수 있는가?” 한참이나 주저하다가 부처님의 보시 말씀을 생각하고 눈알을 빼서 바라문에게 주었습니다. 바라문은 그 소중한 눈알을 받아 가지고 요긴하게 쓰는 것이 아니라 그냥 땅에다 던지고 자기 발로 밟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때에 사리불은 후회가 되어서 ‘이제부터 중생 보시는 그만두고 내 공부만 해야겠다’고 후회한 허물로 해서 석존회상에서도 오랜 동안이나 성문승이 되었다고 합니다. 부처님 대승계를 받는 것은 이렇게 무서운 계율입니다. 성불을 기약할 때에는 대승계 받을 그런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7에 박피사경(剝皮寫經)이라, 자기 피부를 벗겨서 말려가지고서 경을 베낄 수가 있는가? 요법(樂法)바라문의 설화가 있습니다. 법을 좋아하고 간절히 추구한다고 해서 이름을 요법(樂法)이라고 붙인 것입니다. 요법바라문이 10년 동안이나 법을 얻기 위해 천신만고 별의별 갖은 고행을 다하고 너무나 진실하므로 제석천왕이 감동이 되어 같은 바라문 모습으로 요법바라문 앞에 나타나 “내가 무상법문(無上法門)을 말할테니 그대가 피부를 벗겨서 종이로 하고 피를 먹으로 하고 뼈를 붓으로 해서 내가 말하는 위없는 법을 적을 수가 있는가?” 요법바라문은 주저 없이 자기 피부를 벗겨서 볕에 말리는 것입니다. 그 순간 바라문 모습은 사라지고 허공중에서 제석천의 찬탄하는 소리와 부처님의 법문이 울려 퍼졌다고 합니다.
또 다른 경전에는 요법바라문이 진실하게 법을 구하니까 마구니 파순(波旬 Papiyas)은 저 사람이 결국 공부가 되어서 성취되면 욕계가 하마 무너질까봐서 항시 전전긍긍하였습니다. 악마 파순은 우리 수행인을 파괴시키려고 그때그때 갖은 노력을 다 하는 것입니다. 잠 속에 이상한 꿈을 꾼다거나 또는 몽정(夢精)을 한다거나 그런 것이 생리적인 것도 있지마는 마구니의 침범이 굉장히 많은 것입니다. 마구니는 요법바라문이 깨달아 욕계에서 떠날까봐 공부를 못하게 하려고, 그 목숨을 빼앗아 버리려고 요법바라문 앞에 나타나 “내가 무상해탈의 법을 아는데 그대가 피부를 벗겨서 종이로 하고 피를 먹으로 하고 뼈를 붓으로 해서 이 수승한 법을 적을 수가 있다면 말을 하겠다” 그러니까 요법바라문이 주저없이 피부를 칼로 벗겨 볕에 말리려 하니까 마즉소멸(廳卽消滅)이라, 악마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도를 위해서는 몸을 바치겠다는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생각 외에 다른 생각이 전혀 있을 수가 없을 때에는 마구니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위법망구에 마즉소멸이라’ 우리는 이런 뜻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8에 자심결지(刺心決志)라, 자기 심장을 베어내어 성불을 다짐할 수가 있겠는가?
9에 소신공불(嶢身供佛)이라, 자기 몸을 다 태워서 부처님께 바칠 수 있는가?
10에 자혈쇄지(刺血灑地)라, 가뭄에 말라죽는 식물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 피를 뽑아서 뿌릴 수 있는가? 이상 열 가지 인욕(忍辱)의 다짐이 대승계 십인입니다.
대승이라고 장담하는 분들은 이런 다짐이 있어야 비로소 대승이라고 장담할 수가 있습니다. 그저 걸림 없이 방만하게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대승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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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보리심.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
계에는 성계(계 자체가 악성) 와 차계가 있다.
불안으로 보면 성문 연각 중생 모두다 부처,
따라서 실상으로는 일불승 뿐이고 다른 것은 모두 가상이다.
진여불성은 우주의 실상이고 우주의 실상은 그 우주에 따르는 규범이 있다.
불안으로 통찰하면 일체만유가 일미평등한 진여불성.
'위법망구에 마즉소멸'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