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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7일 주일 메시지 UBF
주는 그리스도
말씀 / 마가복음 8 : 27 - 38
요절 / 마가복음 8 : 29
UBF 우리 센터 허이삭 목자님을 보고 ‘허씨들은 다 웃겨!’ 할 수 있습니다. 이 주장을 확인할 근거도 있는데, 옛날 사람들은 웃기는 진행자 ‘허참’을 예로 들것입니다. 좀 더 그럴 듯한 근거를 찾아 본다면 역대 KBS개그맨 기수별 명단을 조사해 볼 수 있습니다. 22기에 허경환, 허미경 두 사람이 합격하였습니다. 23기에는 허민이 있고 24기에는 허안나가 있습니다. 이런 논리를 통하여 ‘허씨는 웃기는 사람이다’라는 결론을 내릴 것입니다. 하지만 허리브가 목자님은 이 결론에 반대할 것입니다.
UBF 오늘 말씀에는 부분적인 사실을 근거로 결론을 내린 사람들이 나옵니다. 부분적인 지식을 기초로 메시야에 대하여 오해하는 것도 나옵니다. 세상 사는 이렇게 볼 수도 있고 저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이렇다고도 할 수 있고 저렇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UBF 그렇지만, 예수님에 대해서는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길에 대하여서는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생명과 구원이 여기에 달렸기 때문입니다. 평안과 영생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로 만나시기를 기도합니다. UBF
1. 주는 그리스도(27-29)
UBF 2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가이사랴 빌립보 여러 마을로 나가시는 길이었습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픈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들, 말씀에 갈급한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저마다 은혜를 받고 갔습니다. 지금은 제자들하고만 호젓하고 특별한 시간을 가지십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은 당시 새로 조성된 신도시였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분봉왕 헤롯 빌립이 로마황제에게 아부하기 위해서 지은 성이었는데, 이곳은 갈릴리 호수 북쪽의 헬몬산 가까이 위치하여 요즘 같은 찌는 듯한 무더위도 없이 날씨가 좋았습니다. 끊임 없이 몰려 오는 양들도 없고, 날씨도 선선하고 좋을 때 예수님께서 중요한 질문을 하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 말씀은 일반화된 견해를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 시대의 대중들의 여론을 물어보시는 것이며, 그 시대 보편적 인식이 어떤지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그 대답이 무엇입니까? UBF
UBF 28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지식과 경험의 범위에서 보았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가지고 피상적으로 보았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세례 요한이 전한 첫 메시지였습니다. 예수님도 똑같은 메시지를 맨 처음 전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며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세례 요한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밀가루통과 기름통이 끊임없이 채워지게 한 사건과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인 사건이 비슷하고 엘리야가 사르밧과부의 아들을 다시 살리신 사건과 예수님께서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다시 살린 사건이 유사하며, 예수님께서 성전의 장사치들의 상을 뒤엎으시고 종교지도자들과 열정적으로 싸우시는 모습이 450인의 우상 선지자들과 단독으로 싸운 갈멜산 싸움의 엘리야와 닮았으므로 엘리야가 다시 온 것 같다고 보았습니다. 끊임없이 구약말씀을 풀어 주시고 새롭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해주시는 모습을 보고는 선지자가 틀림없다고 보았습니다.
UBF 사람들은 본질적인 문제,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 그분이 어제는 어디에 계셨다더라, 누가 예수님 덕분에 병 나았다더라 이런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그분은 왜 백성들을 섬기시는가? 백성들을 사랑하는 그분의 인격은 어떠한가?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의 본질에 대하여 알 수 없었습니다. 자기 필요를 기초로 생각하고, 자기에게 주는 손해와 이익에 대하여 생각하고, 자기에게 좋은지 싫은지를 기준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예수님 자체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아주 드물었습니다.
UBF 예수님께서 이제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29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질문하십니다. 너희들은 예수님께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느냐? 이때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UBF 그리스도 란 말은 헬라어입니다. 히브리 말로는 ‘메시야’란 말입니다.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란 대제사장이며, 왕이며, 선지자라는 말입니다. 모든 죄를 속죄하고 하나님과 연합하게 해주는 대제사장, 사람들의 내면과 영혼을 의의 도로 통치하는 왕, 앞으로 살아갈 하나님의 길과 뜻을 알려 주는 선지자! 이 모든 일을 연합한 직분이 메시야 입니다.
‘메시야’는 인생의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심각한 문제인 ‘죄’와 ‘사망’에서 모든 사람들을 구원해주시러 오시는 분입니다. 모든 사람의 ‘죄’와 ‘죽음’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 주셔서 모든 사람을 영원히 살게 하시는 분, 무서운 심판과 저주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그분이 메시야 이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UBF 그런데 메시야로 잘 알고 있으면 되었지 꼭 그렇게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로마서 10:9,10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볼 때, “주는 그리스도 이십니다” 믿고 고백하는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이 믿음과 고백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는 기준입니다. “주는 그리스도 이십니다” 믿고 고백하는 사람이 새언약의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을 믿고 고백하는 자에게 심판이 없습니다. 영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이야 구원이냐 결정하실 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했는지를 보고 결정하십니다. 따라서 “주는 그리스도 시니이다” 믿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영생과 구원의 중대한 관건인 것입니다. UBF
“주는 그리스도 시니이다” 이 고백은 우리가 예수님께 대하여 가져야 할 중요한 자세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 좋아’ 라는 분들 많습니다. 그 말이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을 만난 기쁨이 있어서 좋다는 것인지, 교회에 와보니 나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 많아서 좋다는 것인지는 살펴 볼 일입니다. 세례 요한처럼 아주 좋은 메시지 전해주니까 좋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엘리야처럼 큰 능력으로 나의 문제를 해결해주니까 좋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지자들처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쪽집게처럼 잘 알려주니까 좋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게 좋아서, 나를 좋게 해주어서 좋다는 사람들은 반대로 내게 부담을 주면 예수님이 좋지 않다는 것이 됩니다. 나에게 이익을 주고 계속 나를 즐겁게 해주니까 좋다는 사람들은 희생하고 헌신하느라 힘들고 손해나면 좋지 않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UBF
“주는 그리스도 시니이다” 이 고백은 예수님을 경배하겠다는 결단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 좋을 때나 힘들 때나 변함없이 순종하겠다는 결단이기도 합니다. 좋은게 좋다며 양지쪽만 찾아다니는 사람은 성장이 없습니다. 좋은 것을 주고 즐거운 것을 주고 만족함을 주는 것만 원하며 예수님을 찾는 사람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신령한 은사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깊은 은혜의 세계를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주님을 경배하고 섬기겠다는 사람이 더 큰 은혜 더 깊은 영적인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UBF
UBF v그러므로 우리가 다시 한번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고백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2. 메시야의 길(30-38)
UBF 30절을 보십시오.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당시 사람들은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렸지만, 메시야를 죄와 사망에서 모든 인류를 구원해주실 분으로 바라지 않고, 로마의 폭력과 압제에서 유대인만을 해방시켜 줄 정치적, 군사적 독립의 메시야로 기대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었을 때, 강대국으로부터 압제를 받을 때 그 약속을 기억하고 고난 중에서나 압제를 받는 중에서 구원자에 대한 희망으로 인내하였고, 장차 오실 구원자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서 본래의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에서 변질시켰습니다. 자기민족만을 위한 ‘메시야’ 이스라엘만을 구원하는 구원자로 바꾼 것입니다.UBF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라고 알리는 것은 예수님의 진정한 메시야 사역에 큰 지장을 초래하게 됩니다.
UBF 3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앞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로써 가야할 길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가셔야할 메시야의 길이 어떠합니까?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가셔야 할 길은 고난 받고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살아나는 일입니다.
UBF 앞서 예수님을 세례요한인 것 같다. 엘리야 인것 같다. 선지자인 것 같다 라고 한 것은 부분적인 사실을 전체로 만든 오류입니다. 지엽적인 것을 일반화 시킨 오류입니다. 메시야의 길, 메시야의 하실 일이 인류 구원이 대업이 아니라 힘과 군사력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유대인들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라고 믿는 것은 본질을 왜곡하고 사실을 바꾸어서 자기 믿고 싶은 대로 호도하는 오류입니다.
UBF 예수님께서 이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하리라” 메시야의 길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메시야의 길은 십자가를 통하여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일입니다. 메시야의 길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사망을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하여야 하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핵심적이고 가장 본질적인 사명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는 일입니다. 이 것이 메시야로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며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입니다. 십자가와 부활 외에 인류를 구원하는 다른 길은 없는 것입니다.
UBF 32절을 보십시오. 베드로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야인 줄은 믿겠는데, 그 메시야가 하실 일과 가셔야 할 길은 아직 몰랐습니다. 그는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이 죄없이 죽으셔야 하는가? 왜 능력의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겠다고 하시는가? 그는 강력하게 반발하였습니다. 그럴 수 없다고 대들기 까지 했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이런 베드로를 책망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예수님의 길은 고난을 통한 영광, 십자가를 통한 부활입니다. 이 길이 메시야로서 인류구원을 위한 길입니다. 베드로는 그 길을 가지 못하게 말렸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소원보다는 베드로의 소원, 인류의 구원보다는 자기 민족과 자기의 정치적 해방을 강렬히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소원보다 자기 소원을 앞세우는 것이 사단이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단이 베드로를 통하여 역사하는 것을 보고 단호히 책망하신 것입니다.
UBF 34절을 보십시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을 배우는 사람으로써 스승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따라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UBF
UBF 첫째, 자기부인입니다. 인간의 자아는 완전히 부패하였습니다. 인간의 자아는 항상 예수님의 뜻을 거스리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내안에 있는 나는 결코 선하지 않으며 결코 영적이 못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계획하는 것과 내가 소원하는 것이 대부분 예수님의 소원과 하나님의 계획에 어긋난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하여야 합니다. 이것을 부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하여야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겠지요’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익이 되겠지요’ 이런 모든 자신의 계획과 도모하는 것들이 근본적으로 부패했음을 알고 이것을 부정하고 부인하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의 첫 번째 해야 할 일이며 그런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UBF 둘째,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문자 그대로 십자가를 지고 형장으로 가는 모습을 묘사하는 말씀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죽음까지도 각오하여야 합니다. 우리 주님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나의 생명까지 드리겠다는 각오와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믿고 이 한 세상 멋있게 한번 살아보겠다는 생각은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주와 복음을 위해서 살 때 하나님께서 은혜로 높여 주시고 유명하게 해주시는 것이지, 내가 먼저 예수에 기대서 부귀와 영화를 누려보겠다고 하는 것은 타락한 생각입니다. 우리는 주와 복음을 위해서 나의 삶을 모두 드리고자 하는 결단과 각오를 해야 합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서 죽는 것까지 각오하는 것이 제자의 두 번째 조건입니다.
UBF 셋째,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방향을 잘 잡고 위대한 결단만 한다고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버렸다고 사명인이 되었다고 여기면 안됩니다. 내가 무엇인가 주와 복음을 위해서 희생했다고 다 이룬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결단 뿐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실천을 하고 변화를 추구해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지속적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결단할 뿐 아니라 예수님을 지속적으로 따르며 배워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의 세 번째 조건입니다.UBF
UBF 35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여기서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이라는 것은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거부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위한 자기부인과 십자가를 거부하여 이 땅에서 자기 목숨을 부지하고자 하면 하나님의 심판 날에 영원한 생명을 잃을 것임을 말씀하십니다.UBF
UBF 36,37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여기의 목숨은 영원한 생명을 말합니다. 세상의 부귀와 영광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풀의 꽃과 같고 아침 안개와 같습니다. 우리가 이 땅위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영생을 얻기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이라도 치루고자 해야 합니다.
38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UBF 예수님께서 처음 이 세상에 오실 때에는 소리 없이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힘없고 나약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심판자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멸시와 배척을 당하시는 분이 아니라 만왕의 왕으로 온 세상의 심판자로 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음란하고 죄 많은 이 세대가 장차 예수님 앞에 심판받을 비참한 상황에 처한 것을 알고 그들 앞에서 고난받고 십자가를 진다고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대야 말로 그 죄로 인해서 영벌에 처해질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UBF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나를 구원하신 나의 구원자 메시야 이십니다. 예수님은 담대하고 분명하게 메시야의 길을 가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뒤를 따라 주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며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도록 해야 겠습니다.U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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