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46)
잊을 수 없네
잊을 수 없네
세월의 파도 속에 머리를 내맡겨도
기억은 찰나마다 너를 맴돌아
그리움이 파도처럼 휘감겨오네
떨칠수록 파고드는 애달픔이여
잊을 수 없네
폭풍우에 몸을 내달려도
기억은 걸음마다 너를 맴돌아
서글픔이 달빛처럼 휘감겨오네
달릴수록 드세지는 슬픔이여
상처가 아물고 나면
차마 잊을까 두려워
지울 수 없네
너무 깊은 그리움이여
- 신좌섭(1959-2024), 『네 이름을 지운다』, 실천문학사, 2017
**
외치지 마세요/바람만 재티처럼 날려가 버려요.//조용히/될수록 당신의 자리를/아래로 낮추세요.//그리구 기다려 보세요./모여들 와도// 하거든 바닥에서부터/가슴으로 머리로/속속들이 굽이돌아 적셔 보세요.//허잘것없는 일로 지난 날/언어들을 고되게/부려만 먹었군요.//때는 와요./우리들이 조용히 눈으로만/이야기할 때//허지만/그때까진/좋은 언어로 이 세상을/채워야 해요.
- 신동엽(1930-1969)「좋은 언어」, 시선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창작과비평사, 1979
높은 누마루에서 내려와/맨발로 발레리나처럼/세운 발끝을 땅에 깊이 꽂고/들풀이 되어라/그리하여/땅의 온도와/미세한 울림까지도/예민하게 감지하는/땅을 덮은/들풀이 되어라/들쥐가 지진을 예감하듯/들새가 천둥을 예지하듯/역사의 온갖 징후를/선각하여/바람이 불 때마다/그 선각을 소리 높이/함성하는/푸르고 싱싱한/들풀이 되어라
- 인병선(1935- )「들풀이 되어라」, 시집 『들풀이 되어라』, 풀빛, 1989
3편의 시를 연속으로 읽고 아셨겠지만, 신좌섭 시인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껍데기는 가라/사월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의 신동엽 시인의 아들입니다. 시인은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로 신동엽 시인이 신춘문예에 당선하면서 문단에 등단하던 해에 태어났으며,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신동엽 시인의 부인이자 신좌섭 시인의 어머니인 인병선 시인은 우리에게는 짚풀문화학자로 더 알려져 있는 분으로 ‘짚풀생활사박물관’을 열어 운영했습니다. 신동엽 시인 돌아가시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1987년 뒤늦게 등단하고 1989년에 위 시집을 출간했지요. 신좌섭 시인 역시 시집에 실린 시인의 말에 의하면 50대 후반에 시를 시작했다고 하니 시인으로서는 늦깎이입니다. 서울의대에 진학했으나 본과 2학년 때 의사의 길을 접고 13년간 노동운동, 빈민운동을 하다가 다시 복학하여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제가 신동엽 시인의 아들이 시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2019년 신동엽 시인 50주기 때 열린 ‘신동엽 문학제’에 참석해서였습니다. 그때 문학관에 들렀다가 시인의 시집을 보게 되었지요. 그 시집을 이번에 다시 꺼내든 건 시인의 부음을 듣게 되어서입니다. 시인은 지지난달 30일에 별세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시인의 시는 慘慽(참척)입니다. 慘慽은 지난번 허난설헌의 시 「哭子(곡자)」를 소개할 때 설명했듯이 자식이 부모에 앞서 죽는 일을 말합니다. 시인도 이 참척을 당했습니다. 서른여덟에 얻은 아들이 나이 열아홉 살 때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오래 끌어온 탓에 벌금 삼만원/…/십구년 전 너 태어날 때/이름 석 자 눌러쓰던/이 손으로 네 이름을 지운다/용서해다오” 이 시집의 표제시인 「네 이름을 지운다」 역시 아들의 사망 신고를 하면서 느낀 아픔을 노래한 시입니다. 이렇게 쓰다 보니 시인이 뒤늦게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시기가 이 시기와 맞물리는 듯합니다. 3부로 나누어 편집한 이 시집의 1부의 시들은 거의 이 참척의 응어리를 풀면서 쓴 시들로 보입니다. “내달리면 잊을까/꽃구름 헤치고 하늘 길/멀리 날아가면 잊을까/이역만리 낯선/살색 다른 군중 속에/파묻히면 잊을까/혼줄 놓고 미쳐/나뒹굴면 잊을까/퍼렇게 날 세운/총칼 쳐들고/미쳐버린 전장/포성에 묻히면 잊을까/천 길 낭떠러지/수리처럼 날아내려/찬란한 핏빛/거품 되면 잊을까/살아서 보지 못할/천 가지 색/만 가지 형상 속에/잊으려는/때론 잊고 싶은/잊지 못하는/차마 잊을 수 없는/기억들에 둘러싸여/남은 일생을 너/어찌 살아가려니”(「어찌 잊을까」 전문) “잊으려는/때론 잊고 싶은/잊지 못하는/차마 잊을 수 없는” 시인이 반복하여 읊는 절절한 외침이 가슴을 저밉니다. 떠나는 날까지 이 저미는 가슴의 응어리 차마 다 풀지 못했겠지요. 늦었지만 삼가 명복을 빕니다. (20240515)
첫댓글 신동엽ㆍ인병선ㆍ신좌섭의 연대기가 슬퍼지만 환하게 비치네요.
90년대 초에 부여 백마강 근처의 신동엽 생가를 답사한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납니다.
초파일 아침 시인들의 왕생극락을 기원하오며ᆢ((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