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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회]
크릉~! 설아가 만족스런 울음을 토해냈다.
조금 전의 섬광은 바로 설아가 움직이면서 나타난 흔적이었다.
신황의 협박에 적무영이 움찔하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설아가 기습을 해서 무이를 구한 것이다.
한낱 고양이 때문에 소중한 인질을 놓치고 그도 모자라 목숨까지 위험해지자 적무영의 얼굴이 하애졌다.
신황은 무이와 팽관수를 뒤에 다가온 팽주형에게 넘겼다. 그러자 무이가 얼른 바닥에 쓰러져 있는 팽만우에게 뛰어갔다.
“할....아버지!”
이미 숨이 멈춘 팽만우의 몸을 끌어안고 무이는 얼굴을 비볐다.그때 뒤늦게 나타난 초풍영이 무이의 곁으로 다가왔다.
“잠시만 내가 보자.”
그는 무이의 품에 안겨있는 팽만우의 손목을 잡고 상태를 살펴보았다.순간 그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분명히 심장은 멈췄다. 그러나 한줄기 따뜻한 기운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팽가주의 심후한 내공이 심장을 보호한 것이다.!’
그는 급히 외쳤다.
“팽대협, 어서 호법을 서주십시오. 어서요!”
말과 함께 초풍영은 급히 팽만우의 심장으로 자신의 내공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숨은 끊어졌지만, 천만 다행히도 심장 자체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다.”
그는 예전 초관염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인체라는 것은 묘해서 심장이 멈추더라도 촌각 안데 소생을 시킬 수 있다면 뇌에 아무런 손상이 없이 살리 수도 있다.
물론 그 가능성은 아주 적어 만에 한 명도 힘들지만, 대상자가 무림 고수라면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그리고 그 방법은...........’
초풍영의 모습에 팽주형과 팽광형이 급히 호법을 섰다. 그들 역시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신황은 잠시 그들이 하는 모습을 보다 적무영을 바라봤다.
“전에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이젠 봉분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고.”
“오냐! 이렇게 된 이상 나도 끝을 보겠다. 네놈이 죽나, 내가 죽나 어디 끝장을 보자.”
적무영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하지만 분노에 몸을 떠는 그와 달리 천산파의 다른 무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몸을 멀리했다.
이미 기습에 실패했다. 거기다 그 방법이라는 것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비록 문주를 따라 중원으로 왔지만, 그들의 생활터전은 천산이었다.
험하고 많은 것이 부족한 곳이지만 그래도 그곳에서는 이런 모략 따위는 필요 없었다. 그들은 이곳에 나와서 너무 많은 나쁜 짓을 했다.
그런데다 이제 신황이란 절대강자에게 목숨의 위협까지 받자 정말 중원이 지긋지긋해지는 것이다.
자신들 부하들이 물러서는 모습에 적무령이 명령을 내렸다.
“어서 이 녀석을 공격하지 못할까? 어서 공격해라! 이 녀석은 우리의 원수다.”
그의 명령에 천산파의 무인들 얼굴에 갈등의 빛이 어렸다.순간 신황이 차갑게 말했다.
“만약 여기에 끼어드는 인간이 있다면 천산파를 멸문시키겠다.”
평소 이런 말을 하는 인간이 있다면 분명 마음껏 비웃음을 날려줬을 것이다.
그러나 당만천과 싸우는 모습을 보고, 오늘 또 다시 그의 잔혹한 손속을 겪게 되자, 그것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다.
자신들에게 닥친 현실이었고 생존의 문제였다. 더구나 자신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봤자 신황이 눈 하나 깜빡할 것 같지는 않았다.
실제로 그들이 모두 달려든다면 아마 신황을 쓰러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려면 자신들 모두의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몰랐다. 단지 문주를 잘못 만나 억울하게 목숨을 바치기엔 자신들의 남은 삶이 너무 아까웠다.
천산파 무인들에게서 동요의 빛이 나타나자 적무영의 얼굴에 어이없다는 빛이 떠올랐다.
이제까지 자신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던 부하들이 이렇게 동요를 하다니, 차라리 이것이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촤~아~앙!
신황의 장포가 일어섰다. 월영갑이었다.
그는 그 상태로 적무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지독한 살기를 뿌리는 신황의 모습에 적무영은 자신도 모르게 주춤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실태를 깨닫고는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꾸~욱!
검의 손잡이를 고쳐 잡으며 그는 전의를 불태웠다.
“네놈이 어떻게 당만천을 암수로 이겼는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넌 입으로 싸우는가 보군.”
신황이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싸늘히 말했다.
자신을 비웃는 듯한 신황의 말에 적무영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뭉개지는 자존심, 기습을 하고서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자괴감, 그리고 열등감이 이 순간 일시에 폭발했다.
“네놈을 천 갈래 만 갈래 찢어 죽여주마. 대호도.... 헛!”
적무영은 초식명을 외치다 말고 헛바람을 들이켰다.
순간 신황이 무서운 속도로 자신을 향해 쇄도해왔기 때문이다. 미처 준비하기도 전에 들이닥친 신황.
후~우웅!
갑옷처럼 일어선 그의 소매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적무영의 콧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큿!”
겨우 허리를 뒤로 젖혀 피한 적무영, 그러나 신황의 팔이 지나가면서 일어난 칼바람에 의해 그의 콧등이 길게 갈라져나가며 핏물이 허공으로 흩날렸다.
그러나 적무영은 자신의 콧등을 닦아낼 시간조차 없었다. 신황의 반대편 팔꿈치가 맹렬히 회전을 일으키며 이마를 찍어왔기 때문이다.
“큭!”
적무영은 콧바람을 뿜어내며 검을 들어 신황의 팔꿈치를 막았다.
이대로 부딪친다면 신황의 팔꿈치가 적무영의 검에 의해 그대로 잘려질 판국이었다. 그러나 신황은 멈추지 않았다.
파~캉!
신황의 팔꿈치와 적무영의 검이 부딪치며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월영갑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는 신황의 팔은 멀정했다.
오히려 뒤로 밀린 것은 적무영이었다.
쉬~익!
순간 신황이 얼굴을 적무영의 얼굴 가까이 접근하며 양팔을 가위자로 휘둘렀다.. 그러자 월영인이 생성되며 지근에서 적무영의 가슴을 향해 뻗쳐 올라갔다.
“헛~!”
적무영은 자신의 가슴어림에서부터 생성되어 자신의 머리 쪽을 향해 날아오는 빛 무리를 보며 급히 몸을 뒤로 젖혔다.
스~커억!
바람에 일렁이던 그의 앞 머리칼이 송두리째 잘려나갔다.
적무영의 앞머리를 자르고 지나간 월영인은 허공으로 날아가 그 모습을 감췄다. 그에 적무영은 기겁을 하며 급히 비금백팔무의 구명절초를 펼쳐냈다.
“빌어먹을! 적룡간월(赤龍間月).”
그의 검에서 생성되는 빛 무리.
순간 신황의 일어선 소맷자락이 그의 검 끝에 작렬했다.
쩌~어~엉!
“크으~!”
미처 초식을 펼치기도 전에 봉쇄를 당한 적무영의 입 안으로 기혈이 역류했다. 그러나 신황의 상태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시커멓게 변한 그의 얼굴, 제압해 두었던 당만천의 독기가 격전을 치르며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놈도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구나. 놈도 인간인 이상 별수 있나? 좋다!’
적무영 역시 신황의 몸 상태를 눈치 챈 듯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비록 자신이 밀리고 있지만 이대로 장기전으로 간다면 자신에게 희망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휙~!
적무영은 급히 검을 크게 횡으로 휘두르며 뒤로 훌쩍 물러섰다.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는 신황을 너무 쉽게 봤다.
시~이~익!
신황이 적무영이 물러나는 속도와 똑같이, 아니 오히려 더욱 빠른 속도로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푸확~!
갑자기 신황의 입에서 검붉은 독이 뱉어져 나왔다. 독혈은 적무영이 피할 시간도 없이 얼굴에 닿았다.
지지직~!
“크악!”
얼굴이 타들어가는 듯한 통증에 적무영은 처참한 비명을 내질렀다.
콰득~!
순간 신황의 주먹이 그의 옆구리에 작렬했다. 갈비뼈 한쪽이 통째로 부러져 나가는 아득한 느낌에 적무영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퍼~억!
“컥!”
벌려진 정무영의 입에서 다시 신황의 주먹이 틀어박혔다. 강철 같은 신황의 주먹에 앞 이빨이 송두리째 부러져 나갔다.
비칠비칠 뒤로 물러나는 적무영, 그의 얼굴은 이미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독혈에 얼굴 가죽이 녹아내리고 있었고, 입 안도 피투성이로 만신창이 꼴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우두둑!
순간 신황의 발이 적무영의 무릎을 박살냈다. 그러자 적무영이 휘청하며 무릎을 꿇고 말았다.
“네...네...놈이!”
적무영이 부러진 이빨들 때문에 새는 목소리로 신황을 불렀다.
그러나 신황은 대답 대신 수도로 적무영의 어깨를 내리쳤다.
콰지끈!
섬뜩한 파열음과 함께 부러져 나가는 적무영의 쇄골, 적무영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악!”
그 모습을 보며 신황은 자신의 입가를 닦으며 입을 열었다.
“제갈문이 무슨 음모를 꾸미는 것이지?”
“끄으으~!”
우두둑!
적무영이 지독한 고통에 비명만 내지르자 다시 신황이 그의 손목을 비틀어버렸다. 그러자 적무영의 팔이 수수깡처럼 부러져 나갔다.
고통으로 부릅떠진 적무영의 핏발서린 붉은 눈.
만신창이가 되어 대항할 힘을 잃은 적무영의 모습에 천산파의 무인들과 팽가의 무인들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그만큼 적무영의 모습은 처절 그 자체였다.
그러나 신황은 냉정했다.
“고통 없이 죽고 싶으면 말해.”
그의 차가운 목소리에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소름이 온몸에 돋는 것을 느꼈다.
“나...도 모라. 나안 그저 중....워언 진추를 도와준...다고 해서 그의 며엉령을 따랐을 뿌니야.”
적무영이 이빨이 온통 부러져 부정확한 발음으로 필사적으로 변명을 했다.
“속이는 게 있다면 여기에 있는 자들은 모두 죽을 거야. 너 하나로 끝내고 싶으면 솔직히 말해.”
“끄~으! 앙마 같은 놈!”
신황의 지독한 말에 적무영의 눈에 회한의 눈물이 맺혔다.
자신의 처지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정말 후회스럽고 어처구니 없었다.
천산에 있을 때는 제왕이라 불렸던 자신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그러나 신황은 냉혹했다. 그의 눈은 적무영이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정말 자신이 한 말을 실행할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결국 적무영은 자신이 아는 것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나...도 자세한 것은 모라. 내...가 아는 것은 두...두 가지 뿌니야. 그가 무슨 무...덤을 찾고 있다...는 것, 그리고 무...림맹주가 해...동과 연관이 있...다는 것......”
순간 신황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해동, 자신의 고국이다.
그런데 백무광이 그곳과 연관이 있다니 뜻밖의 말인 것이다.
그때 적무영이 다시 말했다.
“나알 죽여라. 그리고 내 부하들을 살....려줘라. 약속을 지킬 것을 믿는다.”
그의 말에 신황이 손을 적무영의 심장에 갖다 대었다.
투~웅!
그의 손에서 음습한 기운이 뻗쳐 나와 적무영의 심장을 관통했다.
“컥~!”
적무영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른 후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의 눈에는 지독한 고통에서 해방된 것이 기쁘다는 빛이 떠올라 있었다.
신황은 그렇게 적무영의 숨을 끊은 후 천산파의 무인들을 보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
“천산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백 년의 봉문을 지켜라. 만을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내가 다시 천산을 찾을 것이니!”
신황의 말에 천산파의 인물들 중 제일 신분이 높은 자가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고맙소! 우리를 돌려보내겠다니, 하지만 우리는 결코 당신을 잊지 않을 것이오! 백 년이 지난 후 우리는 결코 당신의 후인을 찾아갈 것이오.
약속을 받아놓고 이런 말을 한다고 비겁하다 말하지 마시오. 우리도 남자요.
비록 지금은 힘이 없어 이대로 물러나지만 백 년 후에는 우리의 후손이 반드시 당신의 후손을 찾아갈 것이오!”
“장백산으로 와라. 언제든 도전을 받아줄 테니까.”
신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갑게 말했다.
만약 자신이 살아 있거나, 혹은 후손이 남아 있다면 반드시 도전을 받아줄 것이다. 자신이 타고난 핏줄은 결코 싸움을 피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천산파의 무인들은 고개를 끄덕인 후 적무영의 시신을 수습해 조용히 장내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쓸쓸하고 힘들어 보였다.
풍운의 꿈을 안고 중원으로 왔는데 이렇게 처참한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다니,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파오는 것이다.
신황은 잠시 그들을 보다 몸을 돌렸다.
그제야 팽가 무인들의 한숨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을 놓을 사이도 없이 급히 팽만우가 있는 곳을 향해 몰려왔다.
“가주님!”
“가주님~!”
그들의 눈에는 다급한 빛이 가득했다. 그들에게 있어 제일 중요한 사람은 바로 가주인 팽망우인 것이다.
신황은 잠시 그들을 보다 탁 막힌 내기를 뱉어내며 음밀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적무영에게 뱉어낸 독혈은 이제까지 그가 내기로 억누르던 것으로 격렬한 전투를 치르자 자신도 모르게 목으로 넘어오던 것이었다.
그것을 임기응변으로 적무영을 향해 내뱉은 것이다.
신황은 독혈을 뱉어내자 한결 속이 편안해진 것을 느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었다. 아직 그의 몸에 남아있는 잔독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티를 전혀 내지 않고 초풍영과 무이가 있는 곳을 향해 다가갔다.
초풍영은 여전히 맹만우를 붙잡고 내력을 주입하고 있었다.
무이는 그 광경을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바라보다 신황이 다가오자 팔을 벌렸다. 신황은 그런 무이를 안아 올려 품에 안았다.
“괜찮으냐?”
“네.....그런데 할....아버지가..... 흑흑!”
“괜찮을 것이다. 풍영이가 저래보여도 초 어르신의 하나밖에 없는 조카다.”
“하지만.... 하지만.....!”
“무이는 울보구나. 걱정하지 말거라. 반드시 풍영이가 살려낼 것이다. 저 녀석은 자신이 없으면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으니까.”
신황은 초풍영에 대한 신뢰를 짙게 내비쳤다.
이러니저리니 아무리 말이 많고 가볍운 것처럼 보여도, 그래도 실속이 있는 사람이 초풍영이었다. 신황은 그런 초풍영을 믿었다.
그때 초풍영이 급히 외쳤다.
“팽대협, 저 좀 도와주십시오. 내공이 딸려서 그러니 제가 지시하는 대로 도와주십시오.”
“알았소”
팽주형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가부좌를 틀고 팽만우의 몸에 내력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제가 신호를 하면 동시에 팽가주님의 심장부근 전중혈에 내기를 강하게 집중시켜 충격을 주십시오.”
“알겠소이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보다 고개를 끄덕인 후 동시에 내력을 집중시켰다.
두~웅!
팽주형의 내기가 강하게 팽만우의 전중혈을 자극했다. 동시에 초풍영의 내력이 팽만우의 심장을 강하게 강타했다.
‘제발....제발!’
초풍영은 내력을 집중하며 주문처럼 그 말만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그것은 팽주형과 모든 팽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팽주형은 자신의 내력을 모두 동원해 팽만우의 전중혈을 자극했다.
‘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 아버지! 아직 당신의 그림자가 필요합니다. 저에게 아직 팽가란 짐은 부담입니다. 당신이 필요합니다. 일어나세요. 아버지!’
그런 팽주형의 바람이 통했을까?
두~근!
순간 무언가 미묘한 변화가 팽만우의 몸속에서 일어났다.
초풍영과 팽주형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희열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인 후 조금 더 강하게 내력을 유동시켰다.
쿠~웅!
두근두근!
팽만우의 심장이 희미하지만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커헉!”
이어 팽만우가 선혈을 토하며 가쁜 숨을 내뱉었다.
“허억, 허어~억!”
“할아버지!”
“가주님~!”
그 모습에 무이와 팽가 사람들이 일제히 팽만우를 불렀다.
한동안 가쁜 숨을 토해내던 팽만우는 겨우 정신을 차렸는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직 내...가 죽...지 않았느냐?”
“예! 아버지.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데 그리 쉽게 돌아가시겠습니까? 아버지는 아직 돌아가실 때가 아닙니다.”
“허어......!”
팽만우는 아직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힘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내 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초풍영은 그런 팽만우를 보며 급히 말을 이었다.
“일단 응급처치로 숨을 돌렸지만 전신의 상처는 치료하지 못했습니다. 어서 인근의 의원에게 데려가 체계적인 치료를 해야 합니다.”
그의 말처럼 아직까지 팽만우의 몸에는 수많은 비침들이 꽂혀 있었다.
팽만우의 심후한 내공 덕분에 겨우 숨을 돌리 수는 있었지만 아직 그의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다.
그의 몸에 입은 중상은 족히 몇 달은 요양해야 할 정도로 심각했다.
팽주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팽가 무인들에게 명령했다.
“어서 부상자와 사망자를 수습해라. 가주님을 모시고 급히 산을 넘는다.”
“옛~!”
그의 명령에 팽가의 무사들이 급히 움직였다.
팽주형은 팽만우와 팽관수를 나란히 마차에 누인 후 자신이 직접 말고삐를 잡았다.
신황은 무이를 마차 안에 넣으며 말했다.
“네가 두 사람을 보살펴야 한다.”
“네! 제가 돌볼 꺼예요.”
“그래!”
무이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모두 자신 때문에 중상을 입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무이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그런 무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신황이 말했다.
“네 탓이 아니다. 자책을 할 필요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자책이 아니라 저들을 돌봐주는 것이다.”
“넷!”
신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의 문을 닫으려 하자 설아가 훌쩍 무이의 무릎 위에 앉았다. 그제야 무이가 마음의 안정을 찾았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설아가 좀 큰 것 같아요.”
“후후~. 밥 먹고 잠만 자더니 그리 크더구나.”
“에? 여전히 변함이 없네요. 설아는.”
“후후후~!”
무이의 말에 신황은 웃음을 지으며 마차의 문을 닫았다.
“후~!”
그제야 신황의 한숨이 나왔다.
이제야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무이가 위험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며칠 밤낮을 한숨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 그리고 무이를 구하고 나자 아제야 지독한 피로가 밀려왔다.
신황은 잠시 마차 문에 기댄 채 숨을 골랐다. 그리고 잠시 후 비칠거리는 걸음으로 마차에 올랐다.
천하대회의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다.
초청장을 받은 많은 무인들과 사람들이 의창으로 몰려들어 의창은 그야말로 복새통을 방불케 할 정도 복잡한 모습을 연출했다.
사람들은 무림맹이 왜 천하대회의를 여는지 그 이유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관심이 있는 것은 많은 무인들이 모인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한바탕 시끌벅적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무인들도 꽤 있었지만, 아무 생각 없는 무인들에 비해서는 소수에 불과했다.
제갈문은 무림맹의 외성 성벽 위에서 무림맹으로 들어오기 위해 줄을 선 무인들을 바라보며 초조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무척이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평소 표정 없는 얼굴과 냉철한 이중성으로 중무장한 채 자신의 감정을 절대 밖으로 드러내지 않던 그가 이런 표정을 한다는 것은.
‘실패한 것인가? 어찌 이제까지 아무 소식이 없단 말인가?’
신황이 밖으로 나간 것을 감지하고 부하들을 추적대로 보낸 지 이미 여러 날이 지났다.
그러나 그들에게서는 아직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또한 이곳에 들어오기로 한 자신의 가문 사람들도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때문에 여러 가지로 불안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신황은 어떻게 팽가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단 말인가? 그가 이곳에 들어온 지 불과 며칠, 그동안 이곳에 정보망을 구축할 리도 없을 텐데....,
또한 독불장군식의 성격이라 그리 사교성이 좋은 것도 아니기에 그에게 정보를 줄 만큼 친분 있는 사람을 사귀지도 않았을 텐데......?’
그것이 제갈문의 가장 큰 의문이었다.
분명 그들의 감시망에서 신황의 행동에 특별히 이상한 점이나 수상한 사람을 만나는 것을 감지하지 않았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제갈문이 제일 먼저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런 의문스런 점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으니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이 빈민가에서 토설한 일은 염두에 두지도 않고 있었다. 워낙 자신이 완벽하다고 자신하기에 자신에 관해서는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기에 생긴 맹점이었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고민해도 스스로 완벽하다 믿는 자신이 설마 허점이 있을 거라 결코 생각하지 않는 제갈문. 그의 자만심이 유일한 허점인 것이다.
“만약 실패했을 경우를 생각해두어야겠군.”
사람 사는 일이 어떻게 될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그것은 제갈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자신이 계획한 일이 실패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으나,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은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였다.
제갈문은 그렇게 한참을 자신의 발밑에서 보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상단과 함께 들어온 백용후는 그들을 숙소에 두고 홀로 나와 무림맹을 거닐었다.
웃고 떠드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눈에는 앞으로 열릴 천하대회의에 대해 어떤 열망과 기대감이 떠올라 있었다.
백용후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약간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항상 호쾌한 모습만을 보여 왔던 그이지만 왠지 이곳에 있는 사람들과 자신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평지풍파를 사랑하는 사람들.
무림인을 요약한다면 그렇게 짧은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인간들에 비해 강력한 무력을 가지고 있다 보니 자신의 신변에 대해서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다.
때문에 자신들을 흥분시킬 수 있는 사건만 벌어진다면 그 안에 감춰진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일단 열광하고 본다. 그것이 무림인의 속성이다.
‘아마, 이번에도 당신들은 흥분하게 되겠지......’
백용후는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객잔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가 객잔으로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그 자신은 의식하지 않고 있지만 그의 커다란 덩치는 누구에게나 쉽게 눈에 띄었다.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그의 덩치는 무공을 익힌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위압감을 느낄 만큼 대단한 박력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내 그에게서 눈을 돌리고 다시 자신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백용후는 그런 사람들을 잠시 둘러보다 이층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층의 창가에는 이미 서종도가 자리를 잡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백용후는 거침없이 서종도가 앉아있는 탁자로 걸음을 옮겼다.
"알아보셨습니까?“
“네! 하지만 그는 이곳에 없더군요.”
“그래요?”
“예! 잠시 외출을 한 건지, 아니면 아주 떠난 건지 모르지만 얼마 전에 급히 밖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흐~음!”
서종도의 말에 백용후가 아쉬운 눈빛을 뿜어냈다.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의 눈빛에 무심함을 덧입히며 말을 이었다.
“그는 어떻습니까?”
“똑같았습니다. 아마 주군이 살아계셨어도 그 모습이었으리라 짐작될 만큼 완벽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십 년이 넘는 세월을 모든 사람을 완벽하게 속여 왔을 테지요.”
“어떡하시겠습니까?”
“후후~. 이십 년을 넘게 기다려왔는데, 새삼 더 기다린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저들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조금 더 기다려보지요. 부하들한테도 그리 이르십시오”
“알겠습니다.”
서종도가 대답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사실 지금 그의 가슴은 무척이나 설레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노련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고, 그것은 이 순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금 자신이 적지에 들어 와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어느 때보다 오히려 냉정해지려고 최대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나직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술잔을 들었다.
그러나 호쾌하게 마시는 백용후와는 달리 서종도는 그저 마시는 시늉만 하며 주위를 경계하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백용후는 그런 서종도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술을 연신 들이켰다.
자신이 무어라 말을 해도 자신의 숙부는 오직 자신의 임무에 충실할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의 사람들이 이층으로 올라왔다.
청발(靑髮), 청염(靑髥)의 노인과 어여쁜 소녀, 이 부조화스런 일행은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백용후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아빠 무림맹에 온 것은 잘 해결되었나요?”
“후후후, 벌써 해결될 거면 내가 직접 무림맹에 올 이유가 무애 있겠느냐? 지루하더라도 참아라.”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예요? 아빠가 직접 무림맹에 올 일이........, 이제 말해도 될 때가 되지 않았나요?”
“아직이야! 네 녀석은 애비의 일에 신경 쓸 것 없다. 그저 네 일만 하거라. 시간이 되면 알게 될 테니....”
남들의 눈에는 사이좋은 조손(祖孫)으로 보이겠지만 실은 그들은 부녀지간이었다.
그들의 이름은 혁련후와 혁련혜, 혁련후는 마도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남자였고, 혁련혜는 강호사화의 일인으로 화려한 미로를 뽐내는 여인이었다.
사람들은 혁련혜의 화려한 미모에 침을 꿀꺽 삼켰지만, 그녀의 앞에 있는 혁련후의 기세가 한눈에 보기에도 심상치 않아 그저 은근한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혁련후는 사람들의 그런 시선이 불편한지 인상을 찡그렸지만 그 모든 게 자신의 딸이 예뻐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며 자신을 다독였다.
그의 눈에 넣어도 하나도 아프지 않을 만큼 어여쁜 딸이 바로 혁련혜였다. 혁련후는 잠시 흐뭇한 눈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그런데 네가 무슨 바람이 불어 나에게 밥을 다 산다는 것이냐?”
“바람은 무슨 바람이요. 딸이 아버지를 대접하겠다는데, 그게 뭐 잘못됐나요?”
“흐흐흐, 귀신의 눈을 속이거라. 내가 젖먹이 때부터 너를 키워왔는데 너의 속을 모를까?”
혁련후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혁련혜가 샐쭉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빠는 못 속이겠네요. 일단 식사를 한 뒤 이야기해요.”
“흐흐~. 그러자꾸나.”
두 사람은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음식을 주문했다.
시간이 지난 후 음식이 탁자를 가득 채우고 그들은 한동안 음식을 먹는 데만 열중했다.
그들이 음식을 먹는 모습은 매우 독특했다.
탁자 위에 진귀한 음식이 가득 있었지만, 그들은 결코 같은 음식을 몇 점 이상 먹지 않았다. 그들은 음식을 조금씩 골고루 꼭꼭 씹어 먹었다.
그렇게 젓가락질을 하며 음식을 먹다보니 접시에 담긴 음식에는 거의 줄어들은 표시가 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적은 음식을 정말 맛있다는 표정으로 먹었다.
이윽고 모든 식사가 끝난 후 혁련후가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자, 이제 말해보거라. 무슨 부탁을 하려는데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거냐?”
혁련후의 말에 혁련혜가 고래를 가까이 가져가며 입을 열었다.
“아빠는 사윗감으로 어떤 사람을 원하세요?”
“사윗감?”
혁련혜의 말에 혁련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어떤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너 혹시 명왕을 말하는 것이냐?”
혁련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안 된다.”
“아빠......!”
단호히 거부하는 혁련후의 말에 혁련혜가 놀란 얼굴을 하였다.
자신의 생각을 꿰뚫어 보는 것도 그랬지만, 너무나 단호히 말을 하는 혁련후의 태도 때문이었다.
혁련후는 놀라는 혁련혜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는 여인에게 안주할 사람이 아니다. 그런 남자는 결코 여자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
“하지만 아빠, 세상 어디에도 그 같은 남자는 찾아보기 힘들어요. 난 아빠도 좋아할 줄 알았는데.”
“남자로서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일 것이다.
소문이 맞는다면 무력도 그에 걸맞을 것이고..... 하지만 그런 남자는 결코 여인에게 정을 주지 않는다. 그런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 너만 후회 속에 세월을 보내게 될 뿐이야.”
전에 신황을 보았을 때 혁련후는 신황의 눈에서 결코 굴하지 않는 고집과 흔들림 없는 굳은 심지를 엿보았다. 또한 자신의 명성에도 결코 위축되지 않았다.
그런 남자가 자신의 덕을 바라고 딸을 만날 리도 없을뿐더러 행복하게 해줄 리도 없다. 혁련후는 결코 그런 만남을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혁련혜는 그런 혁련후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제까지 자신의 말이라면 무슨 말이든 들어주던 그가 이렇게 적극적인 반대를 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아빠, 그라면 아빠의 일에 도움을 줄 수 잇을 거예요. 그리고 전 그가 마음에 들어요.”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그저 일시적인 호기심 때문이냐?”
“그건...........”
혁련혜는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자신 역시 그게 대한 감정을 확실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집착인지, 아니면 자신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그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 대문인지.
혁련후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혁련혜를 보며 단언했다.
“네가 만약 그를 사랑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내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 녀석을 네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난 네가 그 녀석을 만나는 것을 반대한다.”
“아빠...........”
평상시와 다른 혁련후의 태도에 혁련혜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혁련후는 그런 딸을 잠시 바라보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에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유난히 밝게 빛나는 붉은 별이 눈에 들어왔다.
‘대천마성(大天魔星)이 백 년 만에 다시 빛을 뿌리기 시작했다.
무려 백 년 만에......그리고 대천마성의 반대편에 떠오르는 별은 분명 천살성(天殺星), 하필이면 피의 별이라 일컫는 두 별이 동시에 떠오르다니.’
대천마성이 빛을 발했을 때 천하는 엄청난 피의 바다에 잠겼었다. 그 당시 혁련후는 태어나지도 전이었지만 당시의 상황만큼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당시의 혈겁을 직접 겪은 사람 중 한 명이 그의 사부였기 때문이다.
그의 사부는 백 년 전의 혈겁을 겪은 후 입이 닳도록 혁련후에게 그 당시의 상황을 말해줬다. 때문에 혁련후는 경각심을 가지고 그동안 천기를 살폈다.
그리고 천기의 흐름을 따라 이곳으로 온 것이다. 그런데 오늘 또 다시 천살성까지 보게 되다니.
‘천살성은 그야말로 학살자의 별, 천살성이 나타나면 천하에 살성이 나타났다는 증거, 대천마성에 이어 천살성까지 나타나다니, 도대체 천하에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것인가?’
혁련후의 눈가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가 마도에 몸을 담은 것은 혹시나 후에 있을지 모르는 대천마성의 준동에 맞서 마도의 힘을 결집시키기 위해서였다.
“아빠,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세요?”
그때 혁련혜가 혁련후의 상념을 일깨웠다.
그녀는 혼자 상념에 잠긴 혁련후의 시간이 길어지자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말을 건넨 것이다. 그런 혁련혜를 보며 혁련후는 말을 얼버무렸다.
“으응! 아무것도 아니다. 잠시 다른 생각이 나서 말이다.”
“하여간 아빠는...... 그러나 아빠가 아무리 그래도 전 그를 포기 하지 않을 거예요.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그를 살펴보며 내 마음을 확인할 거예요.
만약 정말 내 마음이 사랑이라면 아빠가 아무리 반대를 하더라도 소용없어요.”
“얘야....”
혁련혜의 단호한 태도에 혁련후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혁련혜의 고집이 자신에 못지않다는 것을 생각해내고 자신이 말을 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을 알았다.
‘후~우! 시간이 흐르면 이 아이도 알게 되겠지. 부질없는 것이라는 것을......... 그때까지는 그냥 두자. 그런데 혹, 신황이란 아이가 천살성의 주인이 아닐까?’
또 다시 혁련후의 상념이 이어졌다.
이제까지 그가 무림맹에서 본 사람들 중 제일 살기가 짙은 사람은 바로 신황이었다. 아직까지 그의 인생에서 신황처럼 살기가 짙은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완벽하게 감춰져 보통 사람은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느낄 수 없지만, 혁련후와 같은 절대고수는 평범함 뒤에 숨겨진 짙은 혈향을 맡을 수 있었다.
그 혈향이 어찌나 지독하던지 혁련후조차도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였다.
그 정도의 살기는 무공을 익힌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천성적으로 타고나야만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혁련후는 혹여 신황이 천살성의 주인일지도 모른다고 짐작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던 혁련후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빤히 자신을 보고 있는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음........!”
혁련후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비록 남자가 다시 고개를 숙여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그 짧은 시간 매우 강렬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잠룡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인가?’
그의 눈에 비친 남자는 그야말로 잠룡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이름이나 얼굴을 모르는 것으로 봐서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존재일 가능성이 컸다.
‘난세구나. 그러나 세상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그렇게 탄식을 하던 혁련후의 눈에 문득 이채가 스쳤다.
“아니, 저 친구가..............”
객잔 밖의 거리를 바라보던 그의 눈에 반가운 빛이 어렸다.
한편 백용후는 혁련후의 모습을 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선(二仙)의 일인이라... 확실히 강해 보이는군요.”
그러자 서종도가 대답을 했다.
“주군과 싸울 자격이 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훗! 이미 지나간 세대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나이든 사람은 저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백용후는 혁련후를 자신의 상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남들이 들으면 광오하다 말할지 모르지만 그 자신은 결코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두 주먹과 젊음, 그리고 자신의 투지를 믿을 뿐이었다.
그에 비해 혁련후는 너무 나이를 많이 먹었다. 그것이 백용후의 자신감이었다.
자신의 두 주먹을 가득 뒤덮고 있는 흉터들, 그것은 그가 살아온 삶을 보여주고 있었다.
홍염화는 무척이나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넓은 별채에 그녀 혼자만 있었기 때문이다. 초관염은 무당파의 사람들을 만나러 갔고, 광불은 소림사의 사람들에게 갔다.
거기에 왠지 자신에게 껄끄럽게 대하는 혁련혜까지 자신의 아버지에게 갔으니 이 넓은 별채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것이다.
“으아아~. 너무해.”
홍염화는 혼자 기지개를 켜다 눈물을 한 방울 흘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루 종일 방 안에서 이리저리 뒹굴어 보기도 했지만 심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무공을 수련할까 생각하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흔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휴~ 혼자 웬 청승이야. 밖에서 사람들 얼굴이나 구경하자.”
결국 그녀는 그렇게 결정하고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홍염화는 별채를 나와 복잡한 거리를 걸었다.
수많은 무인들로 북적이는 거리, 무인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천하대회의에서 있을 비무대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 비무대회에 명왕도 나올까?”
“에끼! 이 사람아, 그래도 이름값이 있지, 명색이 대륙십강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사람이 그런 비무대회에 나오겠나?”
“하긴 그렇지! 난 아직도 그날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니까.”
“누군들 아니 그러겠나? 혼자서 그 많은 군웅들을 압도하는 모습은, 내 생전 다시 보지 못할 걸세.”
무인들의 화제는 온통 얼마 전에 가공할 신위를 선보였던 신황에게 몰려있었다. 천수암제 당만천과 명왕 신황의 대결은 아직까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었다.
그만큼 그들의 대결은 강렬한 인상을 군웅들에게 남겼다.
군웅들은 이번 천하대회의 기간 동안 열리는 비무대회에 신황이 나오길 바랐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그 강렬한 무위와 거칠 것 없는 행보를 보고 싶었다.
그만큼 신황의 인상은 그들의 뇌리 깊숙한 곳에 각인돼 있었다.
“헤에~? 온통 신가가의 이야기구나.”
홍염화의 입가에 절로 기분 좋은 미소가 떠올랐다.
어딜 가도 온통 신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낮설면서도 왠지 자신의 가슴까지 뿌듯해지는 느낌이 드는 홍염화였다.
조금 전까지 우울하던 기분은 싹 날아가고 다시 들뜬 기분이 된 홍염화는 혼자 신이 나서 거리를 헤집고 다녔다.
이제 무림맹에 참석할 무인들은 거의 들어온 것 같았다.
거리에 있는 수많은 무인들은 이제 얼마 후면 천하대회의와 비무대회를 기다리며 설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홍염화는 중얼거렸다.
“나도 비무대회에 참가나 해볼까?”
홍염화 역시 무인이다. 호승심 또한 그 누구에 못지않았다.
단지 요즘은 신황이란 너무나 걸출한 무인과 같이 다니다보니 자신감을 많이 상실한 상태였다. 그녀에게는 자신감을 회복해 줄 만한 계기가 필요했다.
“좋아! 비무대회에 참석하자, 어차피 할 일도 없는걸.”
홍염화는 그렇게 결심을 굳혔다.
“인석아, 뭘 그렇게 혼자서 중얼거리냐? 남들이 보면 실성한 사람인 줄 알겠다.”
그때 홍염화의 귓전을 때리는 익숙한 목소리가 있었다. 순간 홍염화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할아버지!”
“아니? 왜 대로 한복판에서 그렇게 헤죽헤죽 웃는 것이냐? 뭐 좋은 일이라도 있느냐?”
딸기코에 넉살좋은 푸근한 얼굴, 몰골의 주인은 바로 초관염이었다.
초관염은 숙소로 돌아가다 길 한복판에서 무어라 중얼거리는며 혼자 웃는 홍염화의 모습을 발견하고 다가온 것이다.
홍염화는 얼굴 가득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헤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가셨던 일은 잘되셨어요?”
"뭐, 잘되고 할 것이 무에 있겠느냐? 그저 풍영이 그 녀석이 급한 일 때문에 자리를 비웠다고 말하는 것밖에.“
초관염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홍염화의 말에 대답했다.
그때 홍염화의 눈가에 이채가 어렸다. 그녀의 눈은 초관염의 옆에 있는 노도인에게 꽂혔다. 그러자 초관염이 자신의 무릎을 탁치며 말했다.
“허허~, 내 이분을 소개해준다는 것을 깜빡 잊었구나. 인사드리거라. 이분은 무당의 검선이신 적엽진인이시다.”
“아!”
순간 홍염화의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그녀 역시 적엽진인에 대한 이야기는 그녀의 사부로부터 많이 들었다.
자신이 결코 이길 수 없는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검선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홍염화의 사부 때문에 그녀는 검선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고 있었다.
홍염화는 급히 적엽진인에게 인사를 올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호초출인 홍염화라고 합니다.”
“허~! 네가 환존의 말썽장이 제자라는 염화구나, 정말 이름 그대로 활발한 성정이 눈에 보이는구나.”
“헤에~!”
적엽진인의 말에 홍염화는 그만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고 말았다.
그것은 매우 실례되는 행위였으나 초관염이나 적엽진인 그 누구도 그것을 가지고 뭐라 할 만큼 속이 좁지는 않았다.
적엽진인은 홍염화를 보며 잠시 흐뭇한 미소를 짓다 고개를 들어 근처에 있는 건물의 이층을 바라봤다.
“친우가 이곳에 와 있었구나.”
오랜만에 느껴지는 익숙한 시선, 적엽진인은 시선의 주인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에게 이런 시선을 보낼 인물은 천하에 오직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적엽진인은 초관염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급하지 않으면 나와 같이 저곳에 올라가지 않겠는가? 내 친우가 나를 부르고 있어 그곳에 먼저 들러야 할 것 같네.”
“진인의 친우가 계신데 어찌 그냥 지나치겠습니까? 먼저 들르시지요.”
적엽진인의 말에 초관염이 공손히 대답했다.
비록 초관염이 나이를 많이 먹었다 하나 적엽진인에 비하면 많은 손색이 있다.
또 강호상에서 적엽진인이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해본다면, 적엽진인은 가볍게 하는 말이지만 초관염으로서는 거부할 수 없는 절대명령이나 마찬가지였다.
적엽진인은 홍염화에게도 말을 건넸다.
“너도 같이 올라가자꾸나. 너도 내 친우를 보면 놀랄 게다.”
“예! 어르신.”
홍염화는 아무 생각 없이 적엽진인의 말에 대답했다.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잘되었다 생각하면서.
그렇게 일행의 대답을 들은 후 적엽진인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친우의 시선이 느껴진 객잔으로 걸음을 옮겼다.
초관염은 그런 적엽진인의 뒤를 따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적엽진인의 친우라니...... 강호에 그런 소리를 들을 만한 배분의 노고수가 있었는가?’
적엽진인의 배분에서 살아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더구나 명성과 실력 면에서 적엽진인을 능가할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강호의 중론이었다.
적엽진인이 들어간 곳은 그들이 서있던 곳 근처의 객잔이었다.
적엽진인은 자신을 보는 시선이 느껴졌던 곳을 향해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는 이층의 창가에 있는 자리로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이 친구야, 이곳에 도착했으면 제일 먼저 나를 찾았어야지. 이곳에서 혼자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는가?”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굼뜬 것은 알아줘야겠군, 그렇게 느려 터져서야.”
적엽진인의 말에 반가운 표정으로 입을 여는 노인, 그는 바로 혁련후였다.
정도의 대표적인 고수이자 무당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적엽진인의 친구가 마도의 절대자라 불리는 혁련후라니.
초관염의 입이 그만 떡 벌어지고 말았다. 이것은 그조차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아니, 천하에 이런 사실을 아는 자가 몇이나 있을까?
정(正)과 마(魔)는 근본부터 달라 결코 한자리에 뭉칠 수 없다.
그것이 일반적인 강호인들의 견해다.
그런데 정과 마, 그 최고봉에 있는 두 사람이 친우라니, 아마 이 사실을 강호의 사람들에게 말을 한다면 아무도 안 믿을 것이다.
그렇게 정과 마의 두 절대자가 같은 자리에 모여 있었으나 객잔에 있는 군웅들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두 사람이 워낙 강호출입을 거의 하지 않아 얼굴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엽진인과 혁련후는 반갑게 인사를 한 후 자리에 앉았다. 적엽진인이 초관염과 홍염화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네도 알게야. 성수신의하고 환존의 둘째 제자네.”
“성수신의야 전에 만났고....., 환존의 둘째 제자는 오늘 처음 보는구먼.”
혁련후의 말에 홍염화가 앞으로 나서며 인사를 했다.
“홍염화라 합니다. 혼존 홍연후 여협의 저의 사부님이십니다.”
“반갑구나! 이십여 년 전에 너의 사부를 만나고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환존은 잘 지내느냐?”
“여전히 정정하십니다.”
“그렇겠지!”
홍염화의 말에 혁련후는 잠시 아련한 눈빛을 하다 말을 이었다.
“자리에 앉거라. 자네도 자리에 앉게.”
“예!”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초관염과 홍염화가 적엽진인의 곁에 앉았다.
홍염화는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다 자신을 보는 혁련혜의 시선을 느끼고 잠시 움찔했다. 혁련혜의 고양이 같은 시선, 그에 홍염화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도무지 그녀가 왜 자신을 그런 눈으로 보는지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됐든, 그런 시선 따위에 기가 죽을 그녀가 아니었기에 무시를 했다. 그러자 혁련혜의 시선에 더욱 독이 올랐다.
그렇게 두 여인의 소리 없는 기 싸움이 진행되는 동안 적엽진인과 혁련후는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초관염은 그렇게 담소를 나누는 두 거인을 보며 조용히 숨을 죽였다. 이 상황에서 그가 기어들 여지도 없을뿐더러 자격도 되지 않았다.
아니, 세상에 누가 저들의 대화에 끼어들 자격이 있을 것인가? 가히 상상이 쉽지 않았다.
“우리가 만난 지도 벌써 십여 년이 넘었군..........”
“벌써 그렇게 되었는가? 시간은 정말 멈추는 법이 없고 이젠 자네나 나나 죽을 때만 기다리는 나이가 되었으니.”
“죽어도 벌써 죽었어야지. 단지 아직 죽어서는 안 될 시기이기에 죽지 못하는 것뿐이지.”
그들의 얼굴에는 자조적인 웃음이 어려 있었다.
이미 백 세에 가까운 나이를 먹은 그들이다. 이미 죽었어도 예전에 죽었어야 하지만 그들에게 남겨진 사명이 쉬이 목숨을 포기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사명이 그들에게 남겨져 있는지는 오직 그 둘만이 잘 알 것이다. 적엽진인은 잠시 술잔을 들이키다 혁련후를 보며 다시 말을 건넸다.
“맹주를 만나본 느낌은 어떤가?”
뜻밖의 그의 말에 적엽진인뿐만 아니라 초관염과 홍염화, 혁련혜의 시선까지 일제히 집중됐다.
자신의 얼굴에 모아지는 부담스런 시선에 혁련후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을 했다.
“어려워.”
“그 정도인가?”
역시, 무언가 좀 이상해.“
“그게 뭔데?”
“글쎄! 그것을 모르겠어.”
“자네가 구별하지 못할 정도란 말인가?”
“면목 없지만... 사실이 그러하네.”
“여전히 같은 결과로군.”
마치 선문답을 하는 듯한 두 사람의 대화에 다른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말았다. 아무리 집중을 해도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겠기 때문이다.
단지 초관염만이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무림맹주 백무광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짐작했을 뿐이다.
혁련후는 예전의 신황을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분명 덩치나 음성으로 보면, 그가 확실한데 기질로 보면 무언가 미묘하게 다르니...........’
백무광, 이십 년 전에 무림맹의 맹주가 된 남자, 군웅들은 단지 그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엽진인과 혁련후는 군웅들보다 백무광에 대해 조금 더 많은 부분을 알고 있었다.
이십오 년 전의 강호에는 한 명의 절대고수가 등장한다.
지독한 싸움꾼으로 불렸던 투광(鬪狂), 본명도 알리지 않고 얼굴에 투귀(鬪鬼)형상의 가면을 쓴 채 비무행을 걷던 그의 행로에 수많은 고수들이 검을 꺾었다.
커다란 덩치에 자신의 몸통만 한 굵기의 도를 쓰던 그의 엄청난 박력에 많은 고수들이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투광(鬪狂), 싸움에 미친 남자, 그는 그렇게 자신의 도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나갔다.
그런던 차에 그가 마지막 비무 상대로 선택했던 사람들이 다름아닌 혁련후와 적엽진인이었다.
그들은 따로 날을 잡아 비무를 치렀다.
연원을 알 수 없는 정채불명의 가공할 위력을 가진 도법과 끝없는 투지로 덤벼드는 투광, 결국 혁련후와 적엽진인은 그에게 한수 처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비무 후, 혁련후나 적엽진인은 그의 정체를 물었으나 그는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무도에 미친 자일 뿐 명예나 권력을 탐하는 자들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결국 투광은 그렇게 대륙십장의 제일 윗자리를 차지하고 홀연히 몸을 감추었다. 강호에 전설을 남진 채, 그는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갔다.
적엽진인과 혁련후도 흘러가는 시간 속에 투광의 존재를 잊어갔다.
하지만 무림맹의 새로운 맹주가 선출된 후, 그를 만나는 자리에서 잊혀졌던 기억을 되살리게 된다.
‘백무광과 투광, 두 사람은 놀랄 만큼 닮아 있었다. 그 모습이라든지 음성, 모든 것이 똑같았다. 하지만 그 기질은.......’
새로 무림맹주로 등극한 백무광은 혹여 투광이 가면을 벗은 모습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닮아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백무광이 투광이 아닐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전혀 자신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그의 태도에서 무언가 미심쩍은 부분을 느꼈다.
그러나 어차피 그의 진면목을 모르는 것은 그들도 마찬가지라 무어라 말을 할 입장은 아니었다.
그 후 그들은 백무광의 행보를 주시하게 된다.
백무광은 놀라운 수완을 발휘하여 이름만 남아 있던 무림맹을 부활시키고 마교의 잔재를 털어내는 작업에 착수한다.
그의 능력은 그야말로 놀라워 이제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마교와 연관이 있던 가문들을 중원 각문파와 연계해 모두 멸문시킨다.
그 과정에서 백무광이 보여준 뚝심과 결단력은 당시 마교 토벌에 참가했던 무림인들의 뇌리에 강인한 인상을 남기게 된다.
사람들은 백무광의 그런 외적인 모습에 열광했지만, 적엽진인이나 혁련후는 조금 더 근원적인 문제에 집착을 했다.
그들은 과연 자신이 싸웠던 투광과 백무광이 같은 사람인지, 그것을 알아내려 애를 썼다. 하지만 이십 년이 지나는 동안 아직도 그 사실을 알아내지 못했다.
“어쨌거나 이번 만남에서도 확신을 하지 못했으니, 어쩌면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네............”
“그럴 수도 있겠지. 사실 단 한 번의 만남으로 규정을 짓는다는 것은 무리니까. 하지만 천기가 불안하니 나도 모르게 계속 그가 마음에 걸리는구먼.”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네.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안네 그려.”
요동치는 하늘과 불안한 천기는 두 노 강호의 가슴을 무겁게 만들었다.
탄식을 터트리던 혁련후의 눈에 아까 시선을 주었던 덩치 큰 남자가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덩치 큰 남자를 보며 적엽진인에게 말을 했다.
“저 청년, 보면 볼수록 그와 닮지 않았는가?”
혁련후의 말에 덩치 큰 남자를 보던 적엽진인 역시 그의 말에 동의를 했다.
“정말 그렇군. 어디서 저런 청년이...........”
확실히 덩치 큰 남자는 왕년의 그를 연상시킬 만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두 노 강호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덩치 큰 남자는 뒤로 한 번 돌아보지 않고 객잔을 나갔다.
“그러고 보니까 그 신황이란 아이도 대단하다 들었는데.....”
“훗! 배짱 하나만큼은 정말 대단하다네. 천하의 당만천과 당문을 상대로 그렇게 도발을 하다니.”
적엽진인의 물음에 혁련후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대답을 했다.
평소 자신의 친우가 이런 표정을 짓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아는 적엽진인은 생각보다 신황이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혁련후가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은 그가 아직 신황이란 인물에 대해 자신이 없기 때문인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때 초관염이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대단한 사람입니다. 아마 그 혼자 무림맹을 상대하라고 하더라도 충분히 그럴 남자입니다.”
그의 말에 홍염화가 동의를 했다.
“맞아요. 그는 능히 그럴만한 분이에요.”
홍염화의 눈이 몽롱해졌다. 신황만 생각하면 요즘 이런 얼굴이 되는 홍염화였다. 그런 홍염화를 보는 혁련혜의 눈에 순간 불똥이 튀었다.
“흥~! 마치 당신이 그의 부인이라도 되는 듯한 표정이군요.”
순간 주위 공기가 싸늘히 가라앉았다.
홍염화는 어이없는 얼굴로 혁련혜를 바라보았다.
혁련혜는 생각 없이 내뱉은 자신의 말에 아차 하는 얼굴이 되었지만 곧 얼굴을 싸늘하게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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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ㅋㅋㅋ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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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습니다.
잘봅니다^^
감사~~
즐감.. ^ ^
고맙게 잘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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