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개론
마스타니 후미오 지음
이원섭 옮김
2562. 3. 26
정전의 백수자
중국인의 불교 수용 노력은 대략 기원 전후부터 시작하여 실로 천년을 넘는 동안 걸쳐 계속된다. 그 긴 역사를 이제 선종의 성립이라는 한 점에 핀트를 맞추어 바라보면 모든 역사적 영위가 이 한 점청 ㄹ 향해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중국이라는 문화적 토양에 이식된 불교는 결국 여기에 이르지 않을 수 없는 경향을 도처에서 나타내고 있기 때문일까? 아울러 좀 모순된 소리일지는 몰라도, 이 한 점에 서서 바라보면 그때까지의 불교 수용 노력은 모조리 헛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근본 주장인 '교외 별전' 이라는 한 마디는 그런 결연한 전통 부정의 정신인 까닭이다.
어쨌든 이 커다란 꽃의 씨를 중국의 토양에 뿌린 사람은 외국 사문인 보리달마(?~528?)이다. 그는 인도의 승려로 기원 520년경 뱃길로 중국에 이른다. 그 후의 소식에는 확실하지 않은 점이 많거니와, 양의 무제와의 만남이 유명한 설화로 전해지고 있다. 무제는 불교에 깊이 매료되어 스스로 가사를 걸치고 경을 강의하며, 천하에 조서를 내려 절과 탑을 세우고 승려들을 공양한다. 불교를 위해 온갖 정력을 쏟으므로, 당시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불심천자라고 하였다 한다. 이 무제와 보리 달마의 만남은 매우 이색적인 것이었다.
기원 523년 11월 1일, 겨우 양의 서울인 건업에 도착한 달마슨 황제가 보낸 가마를 타고 궁전에 이르러 정전에서 무제와 만났다. 황제가 물었다.
"나는 지금까지 절을 짓고 경을 베끼고 크게 승려들을 공양해 왔소. 이것에는 어떤 공덕이 있을까요?"
달마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무공덕."
"그러면 무엇이 진정한 공덕인가요?"
"정지묘원, 체자공적, 이 같은 공덕은 세상에 구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면 대체 성제 제일의란 무엇이오?"
"확연무성."
이렇게까지 되어서는 아무리 불교에 심취한 무제라도 약간 발끈한 것일까? 그는 언성을 높여 말한다.
"짐을 대하고 있는 이가 누구뇨?"
"모르오."
이리하여 달마는 건업을 떠나 위로 가서, 숭산의 소림사에 숨는다
그로부터 이른바 면벽 구년의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무문관> 의 1장ㅈ에 '정전백수' 라는 제목의 문답이 있어서, 달마와 관련된 것을 다루고 있다.
조주에게 중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래한 뜻입니까?"
조주가 대답했다.
"정전의 백수자."
조사란 달마를 가리키는 말이다. 달마가 서쪽 나라로부터 온 뜻을 중이 묻자, 그것에 대답하여 달마는 "뜰 앞의 잣나무" 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면 그 대답이 뜻하는 것은 무엇이냐고 다시 물으려 든다면, 편자의 이러한 송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
말은 사물을 펴지 못하며
말은 기미를 살리지 못한다.
말을 받는 이는 잃고
구절에 얽매이는 이는 미혹한다.
이렇게 되어 가지고는 그 이상 설명을 늘어놓을 용기도 안 생기지만, 어쨌든 그런 달마의 발자취는 다른 외국 사문의 그것과는 매우 취지를 달리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그가 범어 경전을 가지고 왔다는 말도 들을 수 없다. 번역이나 강의를 했다는 이야기도 없다. 그의 저서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기는 하나 그것도 의심스럽다. 무제 앞에서 '확여무성' 이라고 갈파한 이래, 요컨대 그는 다만 앉아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혜가(487~593)가 나타남으로써 그의 씨는 중국의 토양에 뿌려져서 이윽고 순수한 중국 불교의 크나큰 꽃을 피우게 된다.
선종이 불교로너 큰 모습을 나타내기에 이른 것은 기원 8 세기 육조 혜능 이후의 일에 속한다. 이르바 중국 불교 13종 중에서 시기로 보아 가장 뒤진다. 그러나 그 이후 수 세기 동안 뛰어난 넌승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 중에는 중국 불교 사상 넉넉히 이류에 낄 사람들도 적지 않아 다른 종파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세력이 커진다. 그러다가 끝내는 각기 자기 가풍을 발휘하여, '오가 칠종' 의 여러 유파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선종의 전모를 보이기 위해서 그것들을 열거 하겠다.
1) 위앙종
백장 회해(720~814)의 제자인 위산 영우(771~853)와 그 제자 앙산 혜적(840~915)의 흐름을 따르는 종파이다. 위산과 앙산에서 한 자씩을 따서 위앙종이라 한다. 그 가풍은 '명암교치 채용쌍창' 이라고 일컬어진다. 비교적 일찍 쇠퇴한다.
2) 임제종
백장의 제자에 황벽 희운(?~850)이 있고, 그 제자에 임제 의현(?~867)이 있어서 그 가풍을 대성한다. 할(㿣) 을 쓰고 '법령엄격 수단험절' 이라고 일컬어진다. <임제록>은 그 언행을 적은 것이다.
3) 조동종
청원 행사(?~740) 의 유파이다. 동산 양개(807~869)와 그의 제자 조산 본적(840~901)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 가풍은 '고고면밀' 이라 하여, 정정숙숙한 영위로써 특징을 삼는다.
4) 운문종
청원의 혈맥에 운문 문언(?~949)이 있어서 그 가풍을 일으킨다. '초험온밀' 이라 하여 준엄한 일면과 온화한 일면을 잘 조화한 선풍이다. <벽암록> 의 편자 설두 중현(980~1052)은 이파의 사람이다.
5) 법안종
마찬가지로 청원의 혈맥에 청량 문익이 있어서 그 가풍을 이룬다. 문익의 시호 법안 선사를 좇아 이렇게 부른다. 송의 중기 이후 법등이 끊어진다.
이상을 오가라 하는데, 그 중 임제종이 가장 번창하고 운문종이 그 뒤를 따른다. 또 후일에 임제종 계통으로부터 다시 황룡파ㆍ양기파의 두 종파가 생기므로 아울러 오가 칠종이라고도 한다.
곁들여 말한다면 일본의 선종은 도겐이 조동종을 전하고, 에이사이가 임제의 황룡종을 전하며, 그 밖에 일본 임제의 여러 파는 대개 양기파의 흐름에 속한다. 또 후일의 황벽종은 이 파의 은원융기(1592~1673)가 들어와서 전한 것이다.
법연문 사경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