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항 건설 사망사고, 최근 1심서 발주자 IPA 전 사장 유죄
매일건설신문
기사입력 2023/06/09 [13:10]
실질적 지배 관리하는 발주자를 도급인으로 인정해 처벌
관행적으로 해오던 지시·보고, 통제 내려놓을 가능성 높아
시공사 자율에 맡기지만 감리가 이를 검토하고 확인할 가능성도
시공을 주도하고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발주자를 사실상 도급인으로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행해오던 발주자들의 실질적인 공사관리와 안전관리에 대하여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고된다.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상 발주자와 도급인은 구분돼 사용되어 왔다. 발주자는 건설공사에서만 사용하는 개념으로 건설공사를 도급하는 자로서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해 총괄하거나 관리하지 않는 자라고 규정돼 있다. 그동안 건설공사에서 발주자는 도급인으로서의 책임이 없어 안전조치를 이행할 의무가 없었다. 그러나 건설공사 발주자라 하더라도 건설공사에 대해서 실질적으로 주도해서 지배관리를 할 경우에는 발주자가 아닌 도급인의 지위로서 안전조치 이행에 대한 의무가 발생하게 된다.
이번 판결은 그동안 시공사에 대하여 실질적인 지배 관리를 하고 있던 건설공사 발주자들에게 안전관리를 어떻게 수행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드는 판결이다. 판결 사건은 3년 전 사건이라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아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판결했다. 그렇지만 이 판결은 향후 중대재해처벌법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발주자들의 대응이 필요할 것 같다.
3년 전 인천항 갑문에서 건설공사 중 작업자가 추락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재판부는 이 사고와 관련하여 인천항만공사(IPA)를 발주자의 지위가 아닌 도급인으로 인정했다. 도급인으로서 안전관리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이유로 인천지법 형사1단독 재판부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인천항만공사(IPA) 전 사장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또한 같은 혐의로 기소된 인천항만공사(IPA) 법인에게는 벌금 1억원을 선고했고다. 갑문 수리공사 하도급업체 대표 2명에게도 각각 벌금 5,000만원을 선고했다.
인천항만공사(IPA) 전 사장 측은 산업안전보건법상 건설공사 발주자는 도급인이 아니기 때문에 안전조치를 할 의무가 없고, 이에 따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이 법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사고가 발생한 갑문 수리공사가 인천항만공사(IPA)의 핵심 사업 중 하나이고 IPA의 인력과 자산 규모가 공사를 맡은 민간업체보다 월등히 우월하다는 점 등을 들어 IPA가 공사 시공을 총괄 관리하는 지위인 발주자가 아닌 도급인에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인천항만공사(IPA)는 갑문 정기 보수공사에 대한 업무보고를 월간, 주간으로 정기적으로 지속하여 받아왔고, 해당 작업 역시 업체에게 지속 지시 허가를 내려 진행돼왔기에 시공을 주도해 총괄 관리하는 지위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결국 인천항만공사(IPA)가 실질적으로 건설공사를 주도적으로 지배, 관리했다고 보면서 발주자가 아닌 도급인 그 자체로 본 것이다.
이 판결로 인해 발주자들은 향후 다양한 각도에서 대응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적으로 건설공사 발주자들은 도급인으로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그동안 관행적으로 해오던 지시와 보고, 통제(실질적 지배관리) 등을 내려놓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다 보면 현장의 안전관리와 품질관리 수준은 건설회사 규모나 조직체계에 따라 각기 다르겠지만 지금보다는 현저히 떨어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건설공사 발주처들은 건설사업관리(감리)를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안전관리는 시공사 자율에 맡기지만 감리가 이를 검토하고 확인토록 할 가능성이 높다. 계획했던 것처럼 현장에서 이행이 잘 된다면 안전은 확보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지 않다면 사망사고는 지금보다 더 많이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
특히 시공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지금과는 또 다른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발주자들은 우선적으로 입찰과정에서 시공사가 제대로 된 안전보건역량을 보유하고 있는지 내실 있는 평가를 제대로 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안전보건 역량을 평가하는 체계를 갖추었지만 사실 실무 담당자 혼자서 평가를 한다든지 하는 등의 형식적인 운영이 많았다. 이제부터는 도급, 용역, 위탁 등을 주었을 때 입찰과정에서 안전보건 역량을 평가하는 세부적인 관련 절차나 기법에 대한 수요가 클 것으로 보인다.
시공사 입장에서는 건설공사에 대한 사전 안전보건관리계획서를 작성하고 제출해야 하는 부담감이 더 늘 것이다. 안전보건 역량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발주자들이 입찰과정에서 안전보건관리계획서를 제출토록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발주자는 안전사고 감소를 위해 입찰이나 계약과정에서 시공사로 하여금 일정 경력과 자격 등을 보유한 안전관리자를 배치하여 활동하도록 시공사에 강력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다 보면 시공사는 실질적인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경험이 많고 실무지식과 자격을 보유한 역량 있는 안전관리자를 채용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발주자들의 역할을 대행하는 건설사업관리(감리)들은 중간에 끼여서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 못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발주처는 요구하겠지만 역량이 부족한 시공사는 따라오지 못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이번 판결로 인해 안전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시공사가 자율적인 안전보건관리 역량을 보유해야 하고 이를 스스로 증명하는 시대가 다가온 것 같다. 증명하는 방법은 결국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정답일 것 같다.
작금의 현실은 안전이 선진국으로 가느냐 후진국으로 가느냐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안전이 선진화되기를 기원해 본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공학박사·안전기술사·안전지도사)
[매일건설신문] [기고] 위험을 외주화 한 발주자 처벌과 안전관리 향후 방향 (m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