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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蒙古(몽고), Mongolia]
요약
아시아의 중앙 내륙에 있는 나라.
위치 중앙 아시아 고원지대 북부
면적 156만 4160㎢
인구 249만 3000명(2003)
인구밀도 1.6명/㎢(2003)
수도 울란바토르(Ulanbaator)
정체 공화제
공용어 몽골어
통화 투그릭(Tugrik)
환율 1,126Tug = 1$(2003.9)
1인당 국민총생산 400$(2003)
본문
면적은 156만 4160㎢, 인구는 249만 3000명(2003)이다. 인구밀도는 1.6명/㎢(2003)이다. 정식명칭은 몽골인민공화국(Mongolian People's Republic)이다. 수도는 울란바토르이여, 몽골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국경은 북서쪽으로 러시아 연방과 접하고, 남동쪽으로는 중국과 경계를 이루며 이전부터 '외몽골'이라고 부르던 지역이다.
몽골의자연
본문
몽골은 국토 전체가 아주 높은 지대로, 해발고도 약 1,600m의 고원국가이다. 지형은 대체로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다. 1967년의 통계에 따르면 최고점은 서부 알타이산맥 중의 묀흐하이르한산(4,366m)이며, 최저점은 동부 도르노드 지구의 552m이다. 국토 중앙부에서 동부에 걸쳐 목축에 알맞은 대초원이 전개되고, 서쪽으로 갈수록 높고 험준하지만 이 지역도 천혜(天惠)의 고원성 초원지대를 이루어 목축이 가능하다.
북서에서 남동부에 걸쳐 몽골알타이, 고비알타이의 두 산맥이 이어지고, 중앙부에 한가이·헨티이산맥이 완만한 높이로 이루어지며, 북부에는 탄울 및 사얀산맥이 형성되어 있다. 수계(水系)는 북부지역을 관류하는 셀렝가강(江),
동부지역을 흐르는 오논강, 수도 울란바토르 주변을 흐르는 툴강, 중앙지대를 북류하는 오르혼강, 서부지역의 자브한강·테스강·호브드강·이데르강 등이 주요 하천이다.
하천의 유속(流速)은 비교적 빠르고 물은 맑고 차다. 기후는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로, 여름은 덥고 겨울은 혹한이 계속되는데, 여름의 더위는 내륙이기 때문에 습기가 없어 한국과 같은 무더위에 비해서 견딜 만하고, 겨울의 추위는 수도 울란바토르 등지에서도 -40℃로 내려가는 일이 많다. 봄은 5·6월의 2개월로, 이즈음 몽골 초원의 아름다움은 여행자를 즐겁게 하지만 기압의 변화가 심하고 때때로 돌풍이 일어 추위가 심하다. 9·10월은 몽골에서 가장 기후가 안정된 시기이다. 강수량은 적은 편으로 연간 350mm를 나타낸다.
몽골의 주민
몽골을 형성하는 민족은 할하 몽골족(族)이 3/4을 차지하는데, 북부지역에 부리야트, 서부에 바야드·도르보드·다하틴·토르구트·오르도드·미앙가드·다르하드, 동부에 다리강가, 우제무틴 등이 분포한다. 이상의 몽골어계족이 인구의 90%를 점유하고, 이밖에 서부지역에 투르크계의 울란하이·호튼·카자흐족이 살고 있다. 공용어는 할하 몽골어인데 소수민족 중 인구가 가장 많은 카자흐족이 사는 일부 서부지역에서는 카자흐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문자는 위구르문자를 바탕으로 한 구문자(몽골문자)를 쓰다가 1941년부터 러시아문자(키릴문자)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종교는 라마불교도가 90% 이상, 이슬람교도가 5%이다.
몽골의 역사
몽골의 주요 민족인 할하족(族)은 몽골제국 이래 형성된 몽골족 중 동몽골에 속하며, 15세기 무렵에는 할하강(江) 유역을 중심으로 살고 있었다. 그러나 1688년 청(淸)에 복속하고 그 거주지는 4부(部) 86기(旗)로 세분되어 ‘외몽골’로 호칭하게 되었다. 1911년 중국에서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외몽골의 지도자들은 이를 청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호기(好機)로 잡고 러시아의 지원 아래 그해 12월 우르가(지금의 울란바토르)에서 혁명을 일으켜 몽골의 독립을 선언하였다(몽골 제1차 혁명).
그러나 중국의 강경한 반대에 부딪쳐 러시아·중국의 각서교환에 따라 자치만 인정받았고, 러시아에 10월혁명이 일어나자 그 자치도 중국에 의해서 1920년 철폐되었다. 그러나 10월혁명의 영향을 받은 하급관료·지식인 등은 반중국·민족해방을 목표로 몽골 인민혁명당을 결성했다. 이들은 1921년 혁명군을 조직하고, 소비에트 적군(赤軍)의 원조를 얻어 중국군과 러시아 백위군(白衛軍)을 축출하고 신정부를 수립, 독립을 쟁취하였다(제2차 혁명). 1924년에는 군주제를 공화제로 고쳐 국명을 ‘몽골 인민공화국’으로 정하고 봉건·신권제(神權制) 잔재의 일소, 재산 사유권 금지 등을 규정한 최초의 헌법을 제정함으로써 소련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다. 이로부터 몽골은 소련의 절대적 영향하에 들어가, 그들의 장래를 소련과 함께 하게 되었다.
1946년 국민투표 결과 몽골국민의 독립의지가 확인됨에 따라 중국(국민당정부)으로부터 정식으로 분리, 독립을 인정받아 혁명 후 25년 만에 국제적 지위가 확립되었고, 1961년에는 UN(United Nations:국제연합)에 가입했다. 1960년대의 중·소 대립 때는 소련을 지지, COMECON(Council for Mutual Economic Assistance:경제상호원조회의) 가맹과 소련 및 동유럽 공산국가의 원조로 경제적 난국을 타개했다. 중국과는 1986년에야 영사조약을 체결, 국가관계를 정상화하였고, 1987년에는 미국과도 국교를 수립하여 자유세계에도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하였다.
몽골의 정치
1920년 몽골 인민혁명당이 창설되어 민중을 조직화하여 민족해방운동에 동원하는 한편, 소련 적군에게 원조를 구하여 당시 백위군이 점거하고 있던 우르가를 점령함으로써 몽골 혁명정부는 소련의 원조 아래 독립의 제1보를 내딛게 되었다. 결국 1924년에는 ‘몽골인민공화국’이라는 정식 국명이 정해졌으나, 이 혁명으로 몽골은 사실상 그들의 장래를 소련과 함께 하게 되었다.
그후 몽골 정부는 사회주의 정책수행을 지향하여 극좌적 정책을 수행하였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1932년경부터 점진적 사회주의정책으로 전환하여, 이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소련·중국·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원조를 받아 사회주의국가로서의 기반을 굳혔다. 그러나 1992년 1월 신헌법제정 이후 몽골은 사회주의를 탈피한 대통령중심제의 중립·비동맹국가로 전환하였다.
세계에서 2번째로 사회주의국가가 된 몽골은 1961년 UN에 가입하였으나, 1963년 영국과 수교를 맺기 전까지는 철저한 고립주의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몽골은 시장경제로의 개혁 및 민주화 추진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처음으로 탈사회주의국가를 추구하는 나라가 되었다. 최근의 주요 대외정책은 심각한 경제난 타개와 경제지원 확보를 위한 서방과의 관계강화 및 국제기구 가입, 안보 및 경제적 차원에서 주변국과의 관계증진을 추구하고 있다. 몽골은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개방외교를 추진하고 있다. 외국군대의 주둔을 일체 불허하고 있다.
2000년 12월에는 헌법을 개정하여 이전 대통령중심제와 내각책임제의 중간형태인 이원집정부제에서 벗어나, 의회와 내각의 권력을 대폭 강화한 의원내각제적 성격을 강화하였다. 3권분립을 제도화하고 있으며, 입법기관으로서는 국가최고 권력기관인 국가최고회의가 있고 구성원은 76명으로 임기는 4년이다. 행정부에는 국가의 상징인 대통령(임기는 4년, 연임 가능)을 비롯해서 총리를 수반으로 12개부로 구성된 최고행정기관인 각료회의가 몽골의 주요행정을 집행하고 있다. 그리고 사법기관으로는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및 지방법원이 설치되어 있다. 이제까지 공산당 1당독재체제를 유지해왔으나 1990년 3월 인민혁명당중앙위원회 제8차 총회에서 헌법을 수정하여 공산당 1당독재를 포기하고 복수정당제를 채택하였다.
1993년 6월 몽골 최초의 민선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어 인민혁명당의 푼살마긴 오키르바트(Punsalmaagyn Ochirbat)가 당선되었다. 1996년 총선에서는 야당인 민주연합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어, 인민 혁명당의 75년 통치를 종식시켰으나, 1997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인민혁명당의 후보 N.바가반디(N.Bagabandi)가 61%의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2000년 7월 총선에서 인민혁명당이 76석 가운데 72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었다. 2001년 5월 N.바가반디는 제3대 대통령 선거에 재출마해 전 국회의장이자 야당후보인 민주당(MDP)의 라드나숨베렐린 곤칙도리(Radnaasumbereliin Gonchigdorj)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하였다. 2001년 현재 총리는 남바린 엥흐바야르(Nambaryn Enkhbayar)이다.
2001년 1월 현재 몽골의 정규군은 2만여 명으로, 육군이 1만 8000명, 공군이 2000명이다. 내륙국가인 관계로 해군은 없다. 몽골군은 징병제로서 18~28세의 몽골 남자는 징집대상이 되는데, 군복무기간은 1년이다. 그동안 최고 6만 6000명까지 달하던 구소련군이 1992년 9월 25일 완전히 철수함에 따라 외국군의 주둔은 없다.
몽골의 경제
예로부터 몽골의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기간산업은 목축업이다. 1990년 당시 양 1300만 마리, 소 300만 마리, 말 250만 마리와 염소·돼지·닭 등을 합쳐 약 4000만 마리가 있는데, 이는 몽골인(人) 1명당 20마리를 소유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농업은 대규모적인 기계화농업을 실시하며 그 주체는 국영 농목장인데, 밀·보리·콩 등의 곡류와, 감자·토마토·오이·수박 등의 채소, 사과·귤 등의 과일이 수확된다. 중공업은 발전소를 제외하면 거의 미숙한 상태이고, 식품공업, 축산가공, 피혁가공, 직물제조 등 콤비나트를 포함하는 각종 공업이 발달되어 있다.
그러나 몽골의 경제는 대체로 낙후되어, 구리·몰리브덴·금·석탄·우라늄 등이 매우 풍부해서 세계 10위의 자원부국임에도 경제발전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대외무역은 95%를 소련 및 공산권국가에 의존하여왔고, 소련으로부터는 국내총생산(GDP)의 30%를 매년 원조받아왔으나, 1990∼1991년 사이에 없어졌다. 공산권의 민주화 개혁을 전후해서 공산권 국가와의 교역이 줄어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러한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1990년부터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을 도입하였고,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획기적인 입법조치를 단행하였다.
1997년 WTO(World Trade Organization: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였다. 1999~2000년 겨울에는 30년 만의 한파로 가축 240만 마리 이상이 죽는 등 경제에 큰 타격을 입었다.
1999년 국내총생산은 8억 9700만 달러이고, 2000년 물가상승률은 8.1%이다. 2000년 수출은 4억 3230만 달러, 수입은 5억 742만 달러이며, 주요 수출품은 석탄, 동, 금, 형석, 몰리브덴 등 광물과 캐시미어 등 피혁제품, 수입품은 기계류, 일상 소비재이고 주요 무역상대국은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 한국 등이다.
몽골의 사회
현대의 몽골 사회는, 물론 옛날과 같은 유목사회는 아니지만, 인구 약 50만 명이 사는 수도 울란바토르의 주민 42%가 흔히 몽골 파오[蒙古包]라고 불리는 게르(원형 천막)에서 살고 있고, 국토의 태반을 차지하는 농촌의 초원지대에는 거의 게르를 치고 살고 있다. 현대식 아파트는 1960년대부터 건설되기 시작하였으며 몽골인들의 아파트 거주율은 49.1% 수준이다. 음식은 양고기를 먹고 마유(馬乳)나 몽골주를 마신다. 이것이 농촌 몽골인의 생활기조(生活基調)인데,
지금은 이른바 물과 풀을 찾아 유랑하는 것과 같은 유목 생활은 없고 집단적인 목축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산업발전과 경제개발에 따라 이농과 인구 도시집중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종교는 과거 라마교가 국교였으나 공산화 후 쇠퇴하여 많은 사원이 헐려 100여 명의 승려가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민주화운동 이후에는 공산정권에 의해 제국주의자·전쟁광으로 낙인찍혔던 칭기즈칸의 복권운동이 일어나 칭기즈칸 추모사업회도 발족하였다.
교육은 8년 의무교육에 초등학교 683개교, 고등교육기관 63개교가 있다. 교육여건과 시설의 낙후에도 불구하고 97.8%의 높은 문자 해득률을 보이고 있다.
언론기관은 주요 일간지 《우르딘 소닌》 등과 영자지 등 200여 개지, 잡지가 발간되며 통신사 2개사, 텔레비전방송국 4국이 있고 라디오 방송국은 AM방송국 12국, FM방송국 2국, 단파방송국 13국이 있다(1998).
몽골의 문화
몽골인들은 대부분 티베트 불교인 라마교를 믿는다. 그래서 타종교에 배타적인 편이다. 물가에 비해 급여수준이 너무 낮아 대다수의 몽골인들은 문화, 여가활동을 즐길 수 없는 형편이지만 발레나 연극, 극장 등은 보편화되어 있어 가족단위로 즐기는 편이다. 몽골어로 토요일을 하가스 사잉 어더르(반쯤 좋은 날), 일요일을 부그트 사잉 어더르(완전히 좋은 날)로 부를 만큼 주말을 즐겨 주말에는 시내가 한산해진다.
몽골인들은 대개 여름에는 반팔과 청바지 및 운동화 그리고 모자와 선글래스 등을 착용하며 봄과 가을에는 점퍼차림, 겨울에는 양털로 된 겉옷이나 두껍고 긴 점퍼등의 파커류에 짐승의 털로 된 사각형의 털모자 및 장갑 그리고 무릎까지 오는 부츠 등을 착용한다.
노인들은 대부분 계절에 관계없이 몽골 전통 옷인 델(Del)과 모자인 말가이(Malgai)를 착용한다. 겨울에는 대개 어두운 느낌을 주는 색깔을 즐겨 입고 계절이 따뜻해지면서 색깔은 점점 밝아진다.
몽골인의 음식문화 가운데 가장 특이한 것은 이들이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2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라마교에서는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또 한가지 이유는 몽골에는 바다가 없기 때문에 물고기 문화에 전혀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몽골의 신년인 신찔(12월31일)에는 모든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모든 출가한 자식들이나 친척들-정성스럽게 차린 음식을 선보이고 보드카를 마시며 덕담을 늘어놓는다. 그리고는 새해를 맞아 건강하게 그리고 하는 모든 일이 잘되기를 기원한다. 몽골 정부가 사회주의 혁명이 달성된 1921년 7월 11일을 기념하기 위해 도입한 관제행사 나담(Naadam)축제가 매년 7월 11일부터 3일간 전국적으로 개최된다.
몽골의 과학기술
구 소련의 구조적인 양식에 따라 몽고는 특화된 연구 재단에서 추구하는 연구 분야와 대학에서 교육하는 과학을 분리하였다. 1961년에 설립된 몽골 과학학회는 1982년에 14개의 연구재단을 가지고 있으며 특수한 지리적, 기후적 요건을 반영하여 광물, 토양, 식물, 기후의 측량조사, 지도 만들기, 목록화에 깊게 관여하고 있다.
지리학과 퍼머프로스트 재단은 몽고 국토의 반 이상을 덮고 있는 퍼머프로스트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있으며, 퍼머프로스트 지역의 건설과 광산개발의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유용한 광물을 위한 지리적 지도와 광물의 전망이 높은 중요도를 가지고 있다. 몽골의 기후와 위치는 천문학적 관측과 지진, 조직형태학 연구에 아주 좋은 곳이다. 몽골의 물리학자들은 태양에너지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몽골과 대한관계
몽골은 북한과는 1948년, 한국과는 1990년 3월에 각각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한국은 1992년 외무장관, 1994년 헌법재판소장, 1995년 교육부장관, 서울시장, 1998년 외교통상부장관에 이어, 1999년 대통령 김대중이 몽골을 방문하였다. 몽골은 1991년 10월 대통령 오치르바트가 내한하여 정상회담을 가졌고 1999년 총리, 헌법재판소장, 국방장관 등이 연이어 방한하였다. 2001년에는 대통령 바가반디가 방한하였고 2001년 다시 방한하였다.
1991년에 경제·과학기술협력협정, 어업협정, 항공협정, 문화협정, 무역협정 등이 체결되었다. 이어 양국은 1992년 이중과세 방지협정, 1993년 세관협력에 관한 상호지원협정에 이어 1999년 형사사법공조조약, 범죄인인도조약, 체육분야 협력 약정, 에너지 및 광물자원 분야의 협력에 관한 협정, 기술협력 약정을 체결하였다. 2000년 현재 대(對) 한국 수입은 5446만 달러이고, 수출은 266만 달러이다. 주요 수입품은 자동차·봉제품 등이고, 수출품은 광물·축산품·원자재 등이다. 한국인 체류자는 600명이다.
몽골 관광지
하르허링, 몽골의 옛수도죠. erdene zuu란 사원이 있어요. 유적지치곤 좀 그렇구요, ㅇ옛날에 만주의 청나라 애들이 쳐들어와서 다 불태워버렸거든요...
그리고 huvsgul호수, 몽골인들은 바다라고 하는데요, 바이칼호수보단 작지만 한쪽에서 반대쪽이 안보이니 바다 같죠. 자연은 아릅답구, 물은 아직도 그냥 먹어도 된다고 하더군요.
시내에서 가까운 관광지는 테렐지 terelj, 여기는 관광상품으로 개발된 곳인데, 말탈 수가 있고, 몽골전통 가옥 구경도 가능하고, 거기서 숙박도 가능합니다. 전통음식을 먹어볼수도 있는 곳이기도 하죠.
고비사막, 고비사막은 차로 가면 넘 멀구요, 비행기타고 가시는게 좋아요, 동굴안에 얼음이 있는곳도 있다는데 아직 가보질 못해서 자세한 설명은 못해서 죄송...
Elsen tasarhai(Umongovi aimag) 끊어진 모래란 뜻의 사막, 여기는 약 3킬로미터 정도 모래사막이 있어요, 주위에는 모래가 없는데 3키로 정도만 모래가 있더라구요, 근처에는 관광캠프도 있고, 여기도 관광자원으로 개발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