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시측의 인터뷰를 보면 복싱,K-1,판크라스,가라테,스모등에서 일류 선수부터 차례로 전화해서 복싱 랭킹 6위(혹은 10위)의 애트 짐머슨과 K-1의 제랄드 고르듀, 판크라스의 챔피언 켄 솀락이 캐스팅에 응했다고 한다. 그런데 참가 선수들의 말을 들어보면 차이가 있다. 켄 솀락 같은 경우는 '블렉벨트' 잡지를 보다가 직접 전화를 걸었다고 술회하고 다른 선수들도 호리온의 이야기와는 캐스팅 절차가 다르다. 게다가 요즘의 이종격투대회와 비교해 UFC의 출발은 매우 엉성한데다 불합리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UFC는 이종격투대회 출범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시작한 대회가 아니라 오로지 흥행과 그레이시 주짓수 선전이라는 이해가 맞물려 탄생한 대회이기 때문이다.
우선 초창기 UFC 토너먼트 대회에는 공개적인 선수 추첨의 개념이 없었다. 즉 개최자인 호리온 마음대로 매치업(match up)을 했다는 이야기다. 호이스의 인터뷰를 보면 1회 대회에서 스모선수인 테일라 툴리와 싸웠다면 가장 어려운 상대가 되었을 것 같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테일라 툴리가 강해서라기 보다는 호이스의 격투방식으로 볼 때 툴리 같은 타입은 호이스를 이기진 못하더라도 매우 피곤하게 만들 상대임은 분명했다. 체중이 190kg인데다 옷을 입지 않고 땀으로 번들거리는 툴리의 비대한 몸과 그래플링 기술은 UFC에서 상대를 넘어 뜨린 후 타격하거나 굳히기 기술을 걸어 승리하던 호이스에게 매우 불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호리온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진] 달려드는 테일라 툴리를 펀치로 제압하는 제랄드 고르듀
테일라 툴리 같이 체중이 과도하게 무겁고 발이 느린 그래플러는 발빠르고 타격능력이 뛰어난 선수가 이기기 쉽다. 쉽게 이기지 못하더라도 난투끝에 어느쪽이든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 호리온은 이런 계산끝에 원래 호이스의 첫 상대였던 제랄드 고르듀를 테일라 툴리의 상대로 바꾼다. 바꾼 계기가 재미있는데 원래 고르듀가 어떤 선수인지 몰랐던 호리온이 일본 격투잡지 기자들에게 고르듀의 활약을 듣고 나서 바로 툴리의 상대로 교체했다고 한다. 호이스가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제랄드 고르듀 같이 그라운드에 대한 지식이 없는 타격가는 상대하기가 매우 쉽다. 그래서 첫번째 상대로 지목해 놓은 것인데 일본 기자단의 이야기를 듣고 테일라의 상대로 바꿔버린 것이다. 아마 호이스의 부상의 위험을 덜고 툴리와의 싸움에서 이기더라도 고르듀가 부상을 입길 바라는 계산에 의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추측이 맞다면 결과적으로 호리온의 계산이 멋지게 들어 맞게 된다.
테일라 툴리는 고르듀에게 잔인하게 얻어 맞고 패했고 고르듀는 부상을 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호이스의 첫 상대인 애트 짐머슨은 어떤가. 그는 출전에서부터 다른 선수와 다른 대우를 받았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짐머슨은 출전하기만 해도 2만달러를 출전료 명목으로 받아 챙기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애트 짐머슨이 어떤 생각으로 출전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챔피언이 될 생각으로 출전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는 호이스를 맞아 처음부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다 테이크 다운후 별다른 공격도 받지 않았는데 바로 시합을 포기해 버렸다. 즉 호이스는 그가 상대하기 가장 쉬운 타입인 복서, 그것도 싸울 의사가 별로 없던 선수를 상대로 부상없이 1회전을 통과한 것이다. 물론 호이스의 승부가 주최측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호리온의 조작여하에 관계없이 호이스는 켄 웨인 솀락이라는 걸출한 종합격투가를 아주 쉽게 이겨버렸다. 어쨌든 호이스는 1회 UFC에 출전한 선수 모두를 이길만한 기량이 있는 파이터였고, 호리온은 좀더 안전하고 확실하게 호이스가 챔피언에 오를 수 있도록 주최자로서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것 뿐이다. 물론 그것이 페어 플레이는 아니지만 말이다
[사진] 호이스 그레이시와 애트 짐머슨
브라질의 발레투도를 경험한 호리온 그레이시에게는 UFC룰이 생소하지 않았고, 그레이시 주짓수를 빛내기 위해서라면 시합이 얼마나 잔인해지든 안중에도 없었다. 오히려 UFC가 국내에 출신된 비디오 제목인 '지옥의 링매치'처럼 아무도 간섭 않는 링에 올라가 한쪽이 죽을때까지 싸우는 극한의 싸움이 컨셉이었던 만큼 주최측에서는 오히려 잔인함을 부추기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UFC의 첫 시합인 제랄드 고르듀와 테일라 툴리의 시합만해도 고르듀가 툴리를 펀치로 때려서 철창에 넘어뜨린후 돌려차기로 툴리의 안면을 강타하자 이빨이 부러져 캐스터까지 날아가게 된다. 그로기 상태의 툴리를 고르듀가 가격하려 하자 심판이 제지하는데 호리온은 제지하지 말고 걷어차게 놔두라고 고함을 친다. UFC 초창기 시합은 이처럼 마우스 피스나 글러브 같은 선수 보호장비나 반칙 규정도 제대로 없는 말그대로 무규칙 격투시합이었다. 게다가 초창기 UFC 에 출전한 선수들이 발레투도를 경험했던 브라질 선수들처럼 수준이 높거나 능숙한 올라운드 파이팅을 구사한게 아니라, 일부를 제외하곤 수준이 높지 않고 이종격투에 생소한 격투가들이라 경기는 필요이상으로 잔인해 졌다. 또 경기의 홍보도 권투나 레슬링 같은 스포츠 격투시합이 아니라 '잔인한 싸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관중들도 격투관전보다는 오로지 잔인함을 보려는 경우가 많았고 이것이 UFC가 유혈 이벤트에서 격투 스포츠로 전환하는데 애를 먹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의도야 어쨌든 간에 이런 잔인함이 세계 격투시장에 큰 충격을 준 것만큼은 사실이다.
어쨌든 호리온의 의도대로 테일라 툴리는 탈락했고 제랄드 고르듀는 발등에 부상을 입게 된다. 호이스의 두번째 상대는 켄 웨인 솀락이었는데, 이 시합이 일본에서 이종격투기대회가 만들어지게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켄 솀락은 당시 일본에서 가장 공격적이고 유능한 프로레슬러들의 실전 격투장인 판크라스의 챔피언 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라는 별명처럼 켄 솀락은 미국에서의 프로레슬링은 성에 안차 일본의 종합격투시합에 뛰어 들어 챔피언이 되었고, 그 스스로도 일본에서도 켄이 세계 최강의 파이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사진] 호이스 그레이시에게 조르기를 당하는 켄 샴락
이런 명성에 어울리게 켄 솀락은 UFC 첫 시합에서 덴버 출신의 킥복서 패트릭 스미스를 힐훅으로 가볍게 꺾어 버리고 준결승전에 올라 호이스와 대적하게 된 것이었다. 사실 켄 솀락으로서는 UFC라는 시합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았고 시합장에 오기전에는 호이스 그레이시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경기 이틀전에야 일본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것만 봐도 그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아니 호이스 그레이시라는 이름은 켄 솀락뿐 아니라 그 누구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이 시합이 끝난 후에 더욱 충격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유야 어쨌든 간에 켄 솀락은 경기시작후 57초만에 호이스의 조르기에 의해 치욕적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경기후 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일본의 격투 관계자들이나 팬은 어이가 없다기 보다는 경악에 가까운 상태였다. 일본에서 상대할 자가 없다는 켄 솀락을 허약해 보이는 몸으로 그토록 쉽게 이겨버리는 호이스와 그레이시 주짓수란 기술에 일본인들은 경악하고 열광하기도 했다. 그리고 호이스가 UFC 대회를 3연패하고 힉슨이 발레투도 저팬을 제패하자, 그레이시 주짓수를 연구하고 극복해서 일본 격투의 자존심을 지키자는 의도가 오늘날의 프라이드 FC라는 대회를 탄생하게 된 출발점이 되었다.
결승은 호이스 그레이시와 WKA 킥복싱 삼연패의 케빈 로지어를 두들겨 패고 올라온 제랄드 고르듀가 맞붙게 되었다. 호이스가 쉬운 상대로 꼽은 제랄드 고르듀는 보통 선수가 아니다. 92년 세계 사바트 선수권 우승에다 네덜란드 가라데 7년 연속 우승, 세계 가라데 선수권 6위와 각종 이종격투 출전으로 일본에서도 팬이 많은 격투가다. 특히 UFC 이후 힉슨이 참가하는 발레투도 제팬에서 일본 최고의 주짓수 마스터라는 별칭의 나카이 유키의 눈을 실명하게 만들 만큼 카리스마 넘치는 파이터라 켄과 더불어 일본 격투만화에도 종종 등장할 정도이다. 그러나 제랄드의 치명적인 단점은 그라운드에 무지하다는 점이었다.
[사진] 호이스가 제랄드 고르듀에게 탭(Tap)을 얻어내며 UFC의 우승자가 되는 순간
'그라운드가 바다라면 나는 상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헤엄조차 할 줄 모른다.'라는 장자크 마차도의 말처럼 이종격투에서 그라운드를 모른다면 상어가 우글대는 바다에 맨몸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 게다가 제랄드 고르듀는 테일라 툴리와 케빈 로지어와 싸워서 얻은 부상으로 제 실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링닥터를 통해 고르듀의 상태를 그대로 전해들은 호리온이 호이스에게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다. 이에 대해 고르듀는 '호이스가 좋은 선수인 것은 분명하지만 링닥터와 대전짜는 사람이 도와 준다면 그만큼 우승하기 쉬워지는 것이죠.'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호이스는 고르듀의 부상 부위를 집중적으로 노리며 안전하게 경기운영을 했고 마침내 고르듀를 넘어뜨려 목 조르기로 승리한다. 마침내 미국에서 열린 최초의 이종격투대회에서 호이스와 그레이시 주짓수가 챔피언에 오른 것이다.
UFC의 성공적인 개최는 호리온이 처음에 개대했던 효과를 훨씬 넘어서는 엄청난 것이었다. 호리온은 '그레이시 주짓수'를 특허로 등록했고 비디오 테잎사업과 캘리포니아 토랜스의 그레이시 아카데미 운영으로 매년 200만 달러를 버는 주짓수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리고 그의 가족과 친척들은 그레이시 주짓수의 세계적인 유명세에 힘입어 미국에 건너와 도장을 차렸다. UFC효과는 그레이시 가문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일본과 미국, 유럽에서 UFC와 유사한 이종격투대회가 속속 개최되었고 그에 따라 브라질리안 주짓수와 그레이시 가문의 명성은 나날이 높아져 갔다. 호이스는 UFC제패후 자신이 최강이라고 말하지 않고 형인 힉슨 그레이시가 자기보다 10배는 강하다라는 발언을 해서 그레이시 가문에 대한 선망과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힉슨 자신도 발레투도 제팬에서 우승하고 450전 무패라는 소문과 요가나 식이요법등으로 자신을 신비화하면서 더욱 그레이시라는 상품가치가 높아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켄 솀락을 비롯해 초창기 UFC에 출전한 선수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UFC는 단지 그레이시 주짓수를 선전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그레이시 주짓수의 역사와 성장과정을 훑어봄으로써 지금의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당시 선수들로서는 상당히 억울한 면이 없지 않았던 모양이다. 자신들이 그저 그레이시 주짓수를 빛내기 위한 들러리이자 희생양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만도 하다. 그러나 세상에는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 안 좋게 끝나는 경우가 있고 단순히 속물적인 의도로 시작한 일이 유익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도 많다. 호리온 그레이시가 주짓수를 알려서 잇속을 채우려고 시작한 UFC지만, 결과적으로 현대 이종격투기가 탄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 들러리에 섰던 선수들도 그것으로 노고에 대한 위로로 삼으면 어떨까 않을까 싶다. 마에다 미츠요에 의해 전해진 주짓수가 UFC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 보면, UFC는 자신들의 기술의 강함을 믿고 그것을 증명하는 일을 70년간 지속한 그레이시 가문에게 내린 하늘의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UFC는 브라질리안 주짓수를 세계적인 무술로 도약시켰고 수많은 이종 격투단체를 파생시켰다. 십년이 지난 지금, 수 많은 격투가들이 이종격투라는 무대에서 그레이시 처럼 '챌린지'를 계속하고 있다. 예전의 그레이시家 처럼 자신의 무술이 '최강'이라는 것을 알리기보다는 이종격투경기가 '최강'의 격투흥행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이 다르지만 말이다.
첫댓글 좋은 자료 잘 읽었습니다. 실력을 떠나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제라드 고듀 눈빛이 멋있는 백인 타격가죠 100kg가 넘는 중량차를 가진 툴리에게 사커킥 먹이다가 발등 부상당했죠 초창기ufc가 그레이시가문을 위한 도구인줄은 알았지만 여러가지 이면을 보게 되네요
정말 모르던 신선한 자료네요. 감사합니다.
우와....죽인다..이런점을 알게될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