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기면 사리寺里 유래
마을 안 깊이 들어가서 산을 넘으면 안동 예안으로 이어지는 작은 소로길이 있다. 산간 마을로서 교통이 비교적 불편한데, 논농사는 없고 밭농사를 지어 생업을 삼는다. 본래 영양군 청이면의 지역으로서 절골 또는 사곡(寺谷)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에 행정구역을 고칠 때 군디체, 잿마를 합아여 사리라 하여 청기면에 들게 했다.
[마을의 특징]
자하동천(紫霞洞天)이라는 석각이 있는 큰바위가 절골 입구에 있다. 이곳에는 도깨비가 많아서 사람들은 괴롭히므로 어느 한 도사가 자하동천이라는 글씨를 써 붙인 이후로는 피해가 없어졌다고 한다. 글자 풀이를 하면 붉은 노을이 물든 골짜기란 뜻인데 이르자면 아침에 밝은 해가 떠올랐다는 뜻이다. 새벽이 오면 도깨비들은 자취를 감춘다고 하였으니 이야기가 될법하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유래]
*군디체ㆍ안절골ㆍ사동(寺洞)ㆍ내사동(內寺洞)
옛날 이 마을에 사나운 맹수들이 자주 동리에 나타나 사람들을 해쳤다. 이러한사정으로 인하여 동리 사람들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나날을 보냈다. 어느 날 도승이 나타나 마을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마을의 모양이 그네를 뛰는 모양이므로 땅군디를 매면 그 액운을 피할수 있다고 하였다. 그 후 동리에서는 집집마다 한 사람씩 나와서 땅그네를 매었더니 맹수 걱정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로부터 이 마을에선 3년마다 한번씩 땅그네를 매어오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마을 이름을 군디채라한다. 이 마을은 또한 절골 안쪽에 있어서 안절골ㆍ내사동으로 불린다.(윤성웅(55)제보)
절골을 한자로 뒤쳐 적으면 사동이 된다. 상정하건대 짐승들이 가까이 올 때 그네를 이용하여 순간적인 어려움을 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던 모양이다. 이 지역의 말로는 그네를 '군디'라 한다. 가령 달려드는 짐승을 향하여 그네를 타고 공격을 하면 십상이 될 수도 있다. 마치 호랑이와 아이들 이야기에 나오는 사연과 흡사하다. 지형지물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던 옛 선인들의 슬기가 돋보인다.
*절터골ㆍ사지곡(寺地谷)
본래 영양군 청기면 지역으로서 이 마을에서는 깨끗하고도 아담한 절이 있었다한다 영양 군민들은 이 절에 와서 소원성취의 기원도 하고 축원을 하였다 한다.확실한 연대는 알수 없지만 절은 소실되고 말았다. 지금도 절의 기와ㆍ주추 등의 흔적이 있다. 이러한 연유로 절이 있었던 마을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절터골이라 한다.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이 마을을 중심으로 군디채ㆍ점마 등의 마을을 병합하여 사리(寺里)라 하고 청기면에 편입되었다.(김상호(6) 제보)
물론 절터를 한자로 뒤치면 사지곡이 된다 절터가 본래의 이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점마ㆍ점촌(店村)
이 마을은 새 도로가 나기 전에는 영양과 안동을 잇는 길목이었다. 이 곳에 솥점ㆍ웅기점이 있었고 안동으로 통하는 통로였기에 주막도 많았다. 상점이 서는 마을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점마라 하였다.(윤맹규 (59)제보)
[참고문헌 : 영양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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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말캉 역사 알고 가시더/창태131, 209) 청기면 사리(寺里)가 궁금니껴?
※되집어 보는 영양말(사투리)※ 소잡아, 거들빼기, 군데, 짜아매다, 쪼가리, 주칫똘. ----------------------------------
사리(寺里)는 본새부터 영양군(청이면) 땅으로 옛날에 절이 있었던 산꼴짜기 마실이라꼬 절골 또는 사곡(寺谷)이라 카니더.
마실안쪽으로 난 찔따란 꼴짜기 따라 쑥 들어가 산 때백이를 넘으면 안동시(예안면)로 이까지는 산길이 있는데 소잡아 댕기는데 걸거치는게 디게 많니더.
1914년에 행정구역 바낄때 군디체캉 잿마를 엄체가 사리라 카게 된니더.
(군디채ㆍ사동ㆍ안절골ㆍ내사) 옛날 디게 사나운 맹수들이 거들빼기로 나와가꼬 사람들을 마구 해쳤니더. 그케가꼬 군디(군데=그네)를 매달아 놔면 개안타 케가 군디틀(그네를) 짜아 맨니더. 그후 마실이름이 군디채가 됬따 카기도 하고 풍수상 마실이 군디(그네) 모양을 하고 있따꼬 군디채라 카기도 했니더. 글코, 절골 안쪽에 있는 마실이라꼬 안절골 또는 내사(內寺)라꼬도 카니더. 사리(寺里)는 절골을 한자로 쓴거시더.
(절터골ㆍ사지곡) 사리(寺里)의 중심지 마실이시더. 오랜 옛날에 디게 마뜩꼬 아담한 절이 있었따꼬 절터꼴이라꼬 카니더. 지금또, 절의 흔적으로는 쪼가리난 기와짱캉 주칫똘이 낭가져 있니더. 사지곡(寺址谷)은 절터를 한자로 쓴거시더.
(점마ㆍ점촌) 새 길이 맹글어 지기전에는 영양캉 안동을 이쌋는 중요한 길목이었니더. 과거 안동으로 통하는 통로였기에 주막또 서너개 있었꼬. 솥캉 단지(옹기) 등을 파는 점빵들이 있어 시장이 섰(열려)따꼬 점마(店村)라 카니더. 점촌(店村)은 점마를 한자로 쓴거시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