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 외1편
박혜료
한 그루 나무가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칼날 같은 겨울 벌에 서 있다
각질처럼 갈라지고 부르튼 밑둥은
어느 새 얼음 기둥이 되었다
숨 몰아 쉬는 수맥은
어느 혈관을 타고 흐를 수 있는가
둥지조차 품지 못한 겨울 가슴은
야윌 대로 야위어서
날개 꺾인 한 마리 겨울새로 우는가
눈보라는 자꾸만 빈 가지로 몰려와 부딪히고
옹이 마냥 깊이 패인 내 안쪽에 묻은 꿈은
진눈깨비처럼 사라졌는가
겨울 저녁 추위에 떨고 있는 우주의 미아
그 미아 뿌리 내릴 곳은 어디인가
이제 뿌리에서 뿌리를 찾아 떠나기로 하자
칼날 같은 강바람 마주하고 서 있는
한 그루 겨울나무처럼,
천공 같이 크고 둥그런 하늘 눈 밝혀 들고서
분수(噴水)
박혜료
수직의 뼈를 곧게 세운다
그 뼈 하늘에 닿는다
허공 어딘가에 지어놓은 물의 집
포물선을 그으며 떨어져 내린다
떨어지고 부서져 거품이 된 물줄기
수 천 개의 눈빛을 반짝이면서
다시 솟구쳐 곡선의 꿈을 펼친다
투명한 몸을 읽을 수 없는 바람의 날개가 젖는다
수평의 등뼈는 또 어디에 세워야 하나
무너지지 않는 집 한 채 어느 바위틈에 세울 수 있을까
돌 틈에서 별무리처럼 피어 있는 석상채 꽃잎 속으로 들어가
별꽃이 되어 볼까
수직과 하강이 부딪히는 힘의 절정
뼈 없는 구름꽃을 곧게 세운다
박혜료: 서울예술대학 문창과 졸업
화천문화원 문예창작반, 제2회 DMZ문학상 수상, 현, 화천 문협 사무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