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천봉선 이창원
1) 문학은 사람과 사람간에 글로써 교류하며 하늘 뜻 찾아가는 학문적 행위라고 생각한다.
2) 예술 영화 연극 노래 무용 등 모든 분야의 근본은 문학을 기초로 한다.
3) 미래 문학은 사이버 공간의 활성화로 시 수필 소설 희곡뿐만 아니라, 그림 영화 연극 등을 포함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4) 일상생활을 정리해 가는 일기나 편지의 발전된 형태로 나타난다.
5) 종교적 관념 이전에 인간을 사랑스러이 보는 문학이 발전한다.
6) 사랑의 표현을 다양하게 할 수 있도록 한다.
7) 마음 다스리기에 체계적 도움이 된다.
8) 사람다운 이름을 남기려면 문학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9) 글을 남기는 것은 역사를 사랑하는 적극적 행위가 된다.
10) 처음엔 머리에서 시작하여 몸끝까지 통하고 다시 머리로 돌아오는 과정을 거친다.
11)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며 글 사랑은 선비의 큰 뜻과 같이한다.
12)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하는 노력에도 문학이 살아 숨쉰다.
2.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우리의 마음은 뿌리가 없어 수시로 변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변함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기운이면 좋으련만 나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맘을 추스르는 방편으로 문학을 활용해 본다. 온몸을 던져 문학에 참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글 쓰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깊이 있게 되돌아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계획을 세우고 더욱 희망차게 수정도 해본다.
하면 할수록 그 마력에 빠져들고 헤어나지 못할 정도가 되면 문학의 꽃을 쉬이 피울 수 있으리라.
내가 문학 중에서도 시를 택한 걸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영글어 가는 네트웍 시대, 사이버 공간 안에서 자신을 쉬이 극대화시킬 수 있는 장점을 지닌 시, 인터넷 속에서 많은 활동이 기대된다.
보고 듣고 맛을 보아야 제대로 알 수 있는 시대, 복잡 다변하지만 문학만큼은 가장 옛스러움 속에서 만들어지는 작품이 더욱 영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머리가 경쾌하지 않고서는 결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
생활속에서 문학적으로 가장 쉬이 접근되는 부분이 일기나 편지를 쓰는 일이 아닌가 싶다. 그날그날 일을 기록 정리하므로써 더 나은 미래를 계획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람의 깨우침 없는 행동은 밥만 축내는 밥벌레와 다를 바 없고, 나쁜 행동은 벌레 보다 못해 보인다. 착한 행위나 좋은 글에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모든 분야의 기초가 되는 문학, 문학은 없어서는 안될 밥 먹는 일과 같은 것으로 가까이하면 정신적 양식을 더하게 된다.
이전에는 편지가 서로의 감정을 주고받는 일에 많이 활용되었으나 요즈음은 전자우편이 인터넷을 통해 순시에 전달된다. 또한 전화가 있어 서로 간 글을 쓰는 경우가 많이 줄었다. 말로써 느낌을 주고받는 것은 순간적이 되고 글은 영구적 보전성을 갖는다.
제 갈 길 잃어버리지 않고 좀더 깊이 생각하기 위해 글을 쓴다.
슥슥 써나가는 일은 보이지 않는 정신 세계의 표출로, 생각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문학은 죽어질 때까지 배우고 익혀가는 수도의 장이 될 수 있고, 각 인간의 정신적 수준을 금방 알아볼 수 있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자신을 명료히 들어낼 수 있는 분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그것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래나 연극 무용으로 만들어 간다. 어떠한 것에나 문학은 기초가 된다.
문학 중에서도 나는 시를 가장 좋아한다. 그것은 그 속에 노래와 춤이 있기 때문. 시 하나로써 모든 걸 압축적 표현이 가능하다. 일기나 수필을 압축 리듬화하면 시가 될 수 있다.
가장 인간적이면서 철학적이고 또한 종교적인 문학을 나는 좋아한다. 어쩌면 말에 모순이 있는 듯하나 모순과 같은 상태에서 일종의 희열을 느낄 수 있다. 하나의 색깔만을 주장하는 건 요즈음 같은 세상에 먹혀들지 않는다. 변화변혁이 심한 이 시대, 모든 장르가 파괴되는 듯 하면서도 자기의 위치를 지켜 간다. 어찌 보면 얕고 저속한 느낌이 들 수도 있으나 모든 걸 포용하고 살아야 하는 현실에서 짧고 명료한 느낌의 전달은 삶의 무기가 된다.
문학은 옛 성현들의 느낌을 오늘에 되살리고 오늘의 느낌을 내일에 이어가는 역할도 한다. 본래 모든 것이 한 뿌리에서 나왔으나 손가락처럼 갈라졌으니, 갈라짐은 외로움을 타기 마련. 우리는 큰 하나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내심 원한다. 손가락 하나로 살아가는 건 그 순간 그 일 그 작업에 한 한다. 큰 일을 위해서는 모든 걸 하나로 묶을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고귀하고 묵직한 문학과 가볍고 유치찬란한 문학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나는 철학적이거나 논문과 같은 묵직한 문학을 좋아하지만 때론 유치찬란히 자신의 마음을 유리상자처럼 투명하게 보여주는 문학도 재미있어 한다. 혹시나 남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세계에서 딱 하나 밖에 없는 희귀한 작품성의 문학도 좋지만, 우리가 밥먹듯 늘 볼 수 있는 내용을 사랑의 눈으로 보고 아름다이 표현할 수 있는 그런 문학도 좋다.
내 어렷을 적엔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 놓고 그것에 벗어나면 나쁘게 생각하여 열내 말리고 미워하던 때가 있었다. 이젠 그와 달리 존재하는 것들이 모두 아름다워 보인다.
차라리 유치하고 찬란한 모습이 더 귀해 보이는 건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일방적 문화에서 오는 반사적 작용이 아닌가 싶다.
미완성 인간 삶의 유치함속에서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런 사람들이 더욱 대단해 보인다. 물질의 풍요로움 속보다는 없는 중에 쪼개어 쓰는 사람들이 더 위대해 보인다.
문학도 인생의 깊이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달라지는 게 당연한 일이리라. 그런데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선 나름대로 그와 비슷한 환경이 조성되어져야 한다. 본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작품이고 보면, 인생과정에는 한계가 있고 간접경험으로써 책을 가까이 한다고 하지만 실제 자신이 터득하고 깨우치지 못하면 수박 겉핥기가 되기 쉽다.
문학은 일반 독자를 상대로 하는 게 보편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많은 사람에게 쉬이 읽히는 작품은 살아 숨쉬고, 어렵다고 생각되면 외면당하기 마련이다. 한마디로 너무 깊이 있는 작품은 일반독자와 멀어진다.
누구나 쉽게 다가설 수 있는 문학은 고귀하기보다도 순진무구 유치 찬란하며 무엇보다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것이 우선이다.
나는 독자를 사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다만 나 자신이라도 밝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게 생각한다. 내 좋아서 하는 일이 여러 사람에게도 즐거움을 주게 된다면 그 보다 좋은 게 어디 있으랴만, 현실은 항상 내 뒤에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글 쓰는 걸 의미 없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머리 아픈 일을 왜 하냐는 것이다. 그래, 글 안쓰고 마음 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글을 써야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사람, 술을 마셔야 편한 사람, 그림을 그려야 하는 사람, 두 몸이 하나되어야 좋은 사람 등 사람마다 맺힌 마음 풀어 가는 방식이 다르다. 또한 성장시기에 따라 좋아하는 게 달라진다. 그중 가장 경제적이면서 지속적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이 문학이 아닌가 싶다.
문학은 생명수와 타오르는 불기운을 이용하여 사랑을 키워 가는 작업으로 뜻 있는 일의 기본이 된다. 기본을 갖추고 변화를 줄 땐 큰 어려움이 없다. 문학행위를 너무 치열하게 하면 몸이 약해진다. 현실 세계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 그것이 의식주를 해결하는 방편이 된다해도 정신적으로는 항상 갈등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 그 갈등을 해소시키고 자연스러워지는 것. 어느 분야든 자연을 가까이 해서 스스로 자연스러워지도록 유도하는 건 참으로 지혜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끝으로 우리 문학의 방향은 과거 좋은 역사를 토대로 밝은 미래와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지식을 쌓고 예측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 내어 나름대로의 생명력 있는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첫댓글 저희도 그렇게 가르침을 받았지요. ^^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