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문화 산책(4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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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화백자홍치명송죽문호 靑華白磁弘治銘松竹文壺 ♣
-국보 제176호-
종 목 : 국보 제176호
명 칭 : 청화백자홍치명송죽문호
靑華白磁弘治銘松竹文壺
유 물 : 조자기. 백자.
지 정 일 : 1974.07.09
소유,관리 : 동국대학교 박물관소장
시 대 : 조선시대
조선시대의 청화백자 항아리.
높이 48.7㎝, 입지름 13.1㎝, 밑지름 17.8㎝.
화엄사에 전래되어 왔던 유물로서 구부의 안쪽에
명문이 남아있다. 항아리 전면에 걸쳐 소나무와
대나무를 대담하게 구성하였다
이 항아리는 오랫동안 지리산 화엄사(華巖寺)에
전래되어 왔던 유물로서 발견되었을 당시에는 구
부의 안쪽에 ‘弘治二年□□□’라는 명문이 있었
다. 그러나 그 뒤의 도난사고로 구연부가 훼손되어
현재는 수리, 복원한 상태이며 ‘弘治’ 두자만이
남아 있다. 홍치는 명(明)나라 효종 연간(1488
∼1505)의 연호로서 홍치 2년(1489)이라는 제
작 연대가 분명한 귀중한 편년자료이다.
문양은 구연부에 연당초문대를 두른 이외에 다른
종속문양은 없고 몸체 전면에 걸쳐 소나무와 대나
무를 대담하게 구성하였다. 문양표현은 세필(細筆)
을 사용하여 꼼꼼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였으며
청화의 농담을 가려써서 陶畵에서는 드물게
볼수 있는 회화적인 효과를 얻고 있다.
기면의 정리는 깨끗하고 세련되었으며,
약간 담청색을 띠는 백자유를 입힌 뒤
가는 모래를 받쳐 번조하였다.
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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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근현대회화 100선 ♣
◈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 여기 다 있다 ◈
◎ 이인성의 화실 ◎
김인승의 1937년작‘화실’ 가로 194㎝, 세로 163㎝. /국회도서관 소장
이 절대적인 안정감은 누구의 것인가.
아마 모르긴 해도 작가 자신의 내부에서 뿜어내는
고요 혹은 균형일 것이다. 1937년 작품임에도 지극
히 서구적인 경향을 띤 이 그림은 충격적일 정도로
깊다. 색채 때문만은 아니다. 삶이 익어가는 순간을
그리고 있는 남자가 흰 도화지에 몰두를 하고 있어
서다. 부부의 시선은 화면의 정중앙으로 향하고 있
다. 남편이 스케치북을 세워 그림을 그리고 있어
다행히 그들 얼굴 윤곽도 훤히 볼 수 있다. 어느
오후의 한때이거나 저녁상을 물리고 난 무렵일
시간대에 부부는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순간
을 지나고 있다. 적어도 아내의 눈빛은
사랑이 넘쳐난다.
이상(理想)을 그리려 했던 것일까. 이 정도의
온기가 간절했던 시대를 살았던 것일까. 하나 그
모든 희구하는 것들은 화면 중앙의 스케치북을 표
현하는 거침없는 흰 선에 모여 있다. 단 한 번이 아
니면 도무지 가능할 수 없는 선, 아마도 맨 마지막
붓질이었으리라. 이 지극히 안정적인 분위기도 문
제란 말인가. 나처럼 부박한 사람은 배후에 정적
을 깰 뭔가의 일이 기다리고 있는 듯도 하여서
슬쩍 긴장감도 읽는다. 그만큼 평화가
팽창하는 그림이다.
예술가에게 현실은 발을 붙일 수도, 그렇다고
발을 뗄 수도 없는 땅바닥이다. 예술가에게 땅바
닥은 그 자체로 고통이다. 이 그림 '화실'을 보면
볼수록 마음이 더 깊어 보이고 그윽해지는 것은
작가가 어느 한 시절의 고통을 스친 뒤에 붓을
들었을 거라는 무작정의 예측을 해서 그러할
것이다. 단아한 기품과 상아(詳雅)한 구도,
나는 그 완벽함 속에서 질금 아픔을 읽고
만다. 고혹적인 아름다움은
아프고 또 아프다.
-감상기 : 이병률 시인-
◎ 변관식의 내금강 진주담 ◎ -치열한 寫生… 생생한 금강산-
변관식‘내금강진주담(內金剛眞珠潭)’1960
계곡을 타고 내리는 물이 몇 번
굽이를 거쳐 못으로 흘러든다.
화면은 상하로 3등분되는 구도를 보이는데,
앞쪽의 못과 바위를 타고 내리는 물줄기가 이루는
근경, 바위와 수목으로 이루어지는 중경, 그리고 그
너머로 돌올하게 솟아오른 원산의 전개다. 지그재그
로 이어지는 굴곡 있는 변화로 계곡의 깊이와 돌출하
는 산세의 웅장함이 더해진다. 위로 솟구치는 산세와
급히 흘러내리는 폭포수가 서로 교차하면서 화면은
더욱 긴장감이 넘치는 경관을 만들어 놓는다. 속진
을 벗어난 금강 선경의 맑은 정기가 선뜻 다가온다.
화면 가운데쯤 넓은 바위 위에 두루마기 입은 세
노인네가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시조라도
읊고 있는 모습이다.
금강산은 조선시대부터 많이 다루어지기
시작하여 근대로 이어졌다. 소정(小亭) 변관식
(卞寬植·1899~1976)은 30년대부터 금강산을 답
사하면서 진주담, 보덕굴, 삼선암, 구룡포, 단발령
등 금강의 여러 명소를 실사했다. 조선 후기의 진경
산수 전통이 퇴락할 무렵 소정은 금강산 사생을 통해
우리 산수의 독특한 정취를 구현하는 데 힘을 쏟았다.
광복 후 갈 수 없는 금강산은 그의 오랜 사생 여행을
통해 입력된 기억으로 재현되었고, 진경산수의 맥을
되살렸다. 청전(이상범)이 펑퍼짐한 야산을 무대로
한 넉넉한 한국 산수의 한 전형을 만들었다면, 소
정은 변화가 풍부한 산곡의 풍경을 힘찬 필력과
웅장한 구도로 구현해내었다.
극동 삼국을 통틀어 근대기 수묵산수의 이만한
걸작을 만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금강의 선
경과 더불어 그 속에 약동하는 소정의 치열한
사생 정신 앞에 잠시 넋을 잃는다.
-감상기 : 오광수 한솔뮤지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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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 (포스텍 교수 서양미술사 )
◈ 화가 다비드까지 활용한 '정치인' 나폴레옹 ◈
자크-루이 다비드, 서재의 나폴레옹, 1812년, 캔버스에 유채, 203.9×125.1㎝, 워싱턴 D.C. 내셔널 갤러리 소장
자크-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는 루이 16세의 왕실 화가로 시작해
로베스피에르의 총애를 받는 혁명의 기수가 됐다가
나폴레옹의 제1 화가로서 권세를 누렸던 역사상 가
장 성공적인 미술가 중 하나였다. '서재의 나폴레옹'
을 보면 과연 왜 그토록 많은 권력자가 너 나 할 것
없이 다비드를 찾았는지 확연해진다.
황제 나폴레옹은 튈르리궁의 서재에서 일을 하던
중 불현듯 찾아든 방문객을 맞이하기 위해 무거운
의자를 뒤로 밀고 막 자리에서 일어난 것처럼 자연
스럽게 서 있다. 그러나 그림 속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마치 연극 무대의 배우들인 양 각자
주어진 대사를 충실하게 읊고 있다.
짤막해지도록 타들어간 양초는 나폴레옹이
지난밤부터 계속 깨어 있었음을 알려준다. 시계를
보니 무려 새벽 4시 13분이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단추 풀린 옷소매, 자글자글하게 주름진 바지는
이 시간까지 잠을 잊고 업무에 몰두한 황제의
열정을 증명한다.
책상 주위에 흩어진 펜과 온갖 서류, 두꺼운 책자들
가운데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 의자 위의 두루마
리다. 그 표제 중 일부인 'CODE'가 선명하게 보인
다. 나폴레옹은 지금 역사에 길이 남은 그의 업적
인 프랑스 민법, 즉 'Code Napoleon'을 구상하
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는 새로운 법령에서 신
분의 특권을 없애고, 종교의 자유를 허용했다.
많은 이의 뇌리에 강하게 남은 나폴레옹의 이미지는
불패의 군인이다. 그러나 다비드는 칼을 잠시 풀어
둔 채 프랑스인들의 자유와 평등을 수호하는 지적
이고 성실한 '정치인'나폴레옹을 만들었다. 이토
록 뚜렷한 목적을 위해 그의 그림에서는 떨어진
단추 하나까지도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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