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신학자 조엘 비키는 ‘불가항력적 은혜’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성부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신 백성들을 성령께서 부르시고 거듭나게 하시며 구원하시는 일이며, 그 일에 결코 실패하심이 없다는 것이다.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는 그 의도를 반드시 성취할 것이다. 구원적인 은혜의 대상자들은 틀림없이 구원을 받고 말 것이다.”
‘불가항력(不可抗力)’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힘’이라는 뜻이다. ‘불가항력적 은혜’는 ‘칼빈의 5대 교리(TULIP)’ 중의 하나로 불리기도 한다. ‘불가항력적 은혜’의 교리는 ‘5대 교리’의 네 번째에 해당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나 개혁교회의 구원의 교리에는 이 ‘불가항력적 은혜’에 대한 성경적 설명이 있다. ‘불가항력적 은혜’란,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를 인간은 거절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불가항력적 은혜’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정작 당사자는 싫은데 무지막지한 힘으로 구원까지 끌고 가는 교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불가항력적 은혜’라는 말은 하나님이 비인격적인 힘으로 강제로 끌고 간다는 의미와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이 ‘불가항력적 은혜’는 억지로 끌고 가는 하나님의 강제적인 행위를 말하는 교리는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기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 앞에 담대히 나온다”는 의미의 교리이다. 하나님의 베푸시는 은혜에는 억지스럽거나 강제하는 일이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실패가 있을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이렇게 말한다.
1. “하나님께서는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시되, 자신이 정하시고,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때에 효과적으로 그들을 부르시되(롬 8:30; 11:7; 엡 1:10, 11),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하시며, …또한 그들의 마음을 구원에 관하여 영적으로 깨우쳐서 하나님의 일들을 이해하게 하시며(행 26:18; 고전 2:10, 12; 엡 1:17, 18), 그들의 돌같이 굳은 마음을 제하시고, 그들에게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며(겔 36:26), 그들의 의지를 새롭게 하시고, 그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그들이 선한 것을 결심하게 하시며(겔 11:19; 빌 2:13; 신 30:6; 겔 36:27), 그리고 효과적으로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끄신다(엡 1:9; 요 6:44, 45).”
2. “이 유효한 부르심은 오직 하나님의 값없이 주어지는 특별한 은혜로만 되는 것이며, 결코 사람 안에 있는 어떤 것을 하나님이 미리 보시고서 하시는 것이 아니다(딤후 1:9; 딛 3:4, 5; 엡 2:4, 5, 8, 9; 롬 9:11). 그 점에서 인간은 전적으로 수동적이다. (그러나) 성령으로 말미암아 소생하고 새롭게 된 연후에는 이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게 되며, 또한 이 부르심 가운데서 제공되며 전달된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요 6:37; 겔 36:27; 요 5:25).”
그러나 알미니안(Arminian)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자 해도 우리가 회개하지 않으면 중생이 발생할 수 없다”고 한다. 아무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자 할지라도 죄인이 이를 거부하고 수납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에게 생명을 주실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하나님이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들을 설득하시는 것에서 실패하실 뿐 아니라, 구원을 주시고자 함에서도 실패를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알미니안들의 이런 주장은 성경의 전체 내용인 인간 의지의 ‘완전한 타락’과 ‘전적인 무능’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소생시켜 하나님의 일들을 알게 하심과 동시에,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기쁨으로 수납하게 된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인간의 ‘응답’이 거의 동시적으로 일어난다. 여기엔 인간에 대한 설득의 실패나 구원의 실패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는 구원의 대상을 마치 개 끌듯이 질질 끌고 가서 억지로 구원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여 인간이 기쁨으로 반응하는 방식을 통하여 구원을 이루시는 것을 말한다. 인간의 새롭게 태어난 의지를 통하여 구원을 완성시키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허용할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는 알미니안들의 ‘인간 의지론’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그들은 인간의 부분적인 타락을 말하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인간은 죄로 인하여 죽었다”고 말하지 않고, “인간은 죄로 인하여 부분적으로 손상되었다”고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