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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폭에서 시를 읽다(22)
- 니스(근현대미술관), 생폴드방스(마그재단, 예술인 마을)
김철교(시인, 배재대 명예 교수)
6월 27일 (목)
아침에 니스에 있는 근현대미술관에 들렸을 때, 우연히 한국에서 온 화가 한 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정말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그리십니까?”
“당연하지 않겠소?”
“정말, 정말,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그리십니까?”
“글쎄요......”
“정말, 정말, 정말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그리십니까?”
“......”
“무엇을 그리시나요?
“내 마음속에 펼쳐지고 있는 세상을 그리지요.”
“모델을 직접 보면서 그린다 해도?”
“대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볼 때 내 마음속에 흐르는 세상을 그리는 겁니다. 당신은 무엇을 쓰시나요?”
“저도 바깥세상을 보면서, 내 안에 펼쳐지는 새로운 세상을 글로 씁니다. 내 나름대로 해석하는 세상을 펼쳐 보인다고나 할까요.”
“우리는 모두 자신의 안경으로 본 세상을, 자신 나름대로 해석해서 그리고, 쓰고 있군요. 요즘 저는 초점이 맞지 않은 안경으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건성으로 훑어보고 화판에 옮기고 있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무엇을 그리고 쓰느냐보다는 ‘어떻게’가 중요하겠지요.”
“잘 그린 그림을 보고 있으면, 볼 때마다 새로운 세상이 보여요. 그런데 실패한 그림을 보면 그저 화판에 펼쳐진 세상밖에 보이지 않아요.”
“글도 마찬가지랍니다. 제가 썼어도 그저 잡지사에 보내 버리고 잊고 있다가 시집을 낼 때나 보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항상 두고두고 음미하고 그때마다 다른 전율이 느껴지는 작품이 있어요.”
“누구를 위해서 글을 쓰시나요?”
“남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보다는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지요.”
“내가 나에게 들려주어야 할 이야기?”
“머리와 가슴의 싸움. 마음과 영혼의 싸움. 현실과 꿈과의 싸움.”
“제 앞에 놓여있는 캔버스도 전쟁터이지요. 그 안에서 무수한 싸움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림도 마찬가지겠지만, 시도 읽는 사람마다 자신의 머리와 자신의 가슴으로 재해석하는 것이지요. 그 시를 쓴 시인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고...... 재해석이 읽는 사람마다 각기 달라야 좋은 작품이라 생각해요. 다시 말하면 하나의 그림이나 하나의 시가, 여러 가지로 해석되어, 많은 세상을 펼쳐 보일 때 좋은 작품이 아니겠어요? 예술작품이 편지나 논문과 다른 점이지요.”
“누가 ‘이 그림은 형편없다’고 평을 해도 그분을 나무랄 수는 없어요. 관람객의 눈으로, 관람객의 가슴으로 해석하는 세상과, 내가 캔버스에 펼치고 있는 세상이 다르지 않겠어요? 작품을 대하는 무의식의 기반이 같을 수 없는 것이니까요. 말하자면 내가 그린 그림 한 장이, 보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니까요.”
“혼신의 힘을 기울여 쓴 작품이라면, 지금 어떤 사람에게 혹평을 받더라도 흔들릴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군요.”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자기 자신의 작품에 자신이 없을 때, 남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도인의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는 말씀이네요.”
“그게 예술가의 본 모습 아니겠어요? 그 만큼 자신이 없는 작품을 만들어낼 것이라면 ‘예술’이라는 단어를 붙이면 안 되겠지요.”
“남을 의식하지 않을 순 없잖아요.”
“남을 의식한다는 것은, 남의 ‘평가’를 의식한다는 이야기가 아니지요. 남에게 들려주지 않으면 죽을 만큼 절실한 이야기 일까? 자문하면서 글을 써야 한다는 말이지요. 물론 그 ‘남’이라는 범주에는 나 자신도 포함해야겠지만요.”
“저는 지금 나의 삶이 나의 감격이, 그리지 아니하고는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그림을 그립니다. 그리고 제 삶을 남에게 보여 줌으로써 그 분에게 행복을 주고 싶은 마음도 있답니다. 어떤 관람객에게서 아무리 형편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도 또 다른 사람에게는 위안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정신분석학자들이 ‘똑같은 그림이라 하더라도 각자의 무의식에 잠겨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그 수용이 다르다’고 하는데 위안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게요.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 하더라도 내 무의식의 상처를 건드리는 내용이 보이면 읽기조차, 보기조차 싫어지니까요. 그래서 똑같은 그림이라 하더라도, 보는 사람마다 다른 느낌으로 받아드리는 것이겠지요.”
“예술가는 그저 혼신의 힘을 다해 작품을 만들기만 하면 된다는 것으로 위로를 받네요. 내가 그리는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열심히 보고,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사색하고...... 절차탁마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겠습니다 그려.”
우리가 나눈 대화를 통해, 어쩌면 현대 예술이 기상천외할 만큼 다양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내가 이해하기 어렵고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 앞에 서있을 지라도, 내 나름의 안경으로 초점을 맞추고 작품 속으로 빠져 보리라는 각오를 가지고 미술관 문턱을 넘어섰다.
1. 니스 근현대미술관(MAMAC: Musee D'art Moderne Et D'art Contemporain)
1990년 문을 연 니스 중심부에 있는 미술관으로 신사실주의, 팝아트, 미니멀리즘, 행위예술 등 20세기 중반부터 최근까지의 현대미술작품들을 다양하게 전시하고 있다. 상상력을 뛰어넘는 혁명적인 작품을 앞세운 니스 출신 신사실주의(nouveau réalisme) 화가 이브 클라인(Yves Klein, 1928-62), 포스트 큐비즘을 지향하다 이후 신사실주의 선두에 선 니스출신 아르망(Arman, 1928-2005), 미국 대중 만화를 강렬한 원색 대비의 팝아트 소재로 사용한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1923-97) 등 유명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은 물론, 사진, 문서 등도 소장하고 있다.
도피네(Dauphine, 1959, 자동차를 압착한 것, 410 X 190 X 60Cm, MAMAC Nice)
인상적인 것은, 신사실주의화가 세자르(César Baldaccini, 1921-98)의 ‘도피네’라는 작품(납작하게 눌려진 자동차를 벽에 걸어 놓았다) 앞에서, 어린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선생님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아마 미술현장학습인 모양이다. 프랑스에 예술가들이 많은 것도 이런 교육 때문이 아닐까.
특히 우리가 방문했을 때 마티스 특별 전시회(Bonjour Monsieur Matisse! Rencontre(s) dans le cadre de l'événement "un été pour Matisse" 21 juin-24 novembre 2013)가 열리고 있었다. 어느 미술관에서든 10유로 티켓을 사면 니스에 있는 8개의 미술관 모두 입장이 가능하였다.
니스 근현대미술관에서는 마티스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 보다는 마티스 추종자들이 마티스를 주제로 그린 그림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마티스의 그림 <춤 2>에 있는 장면을 실제 5명의 여인들이 나체로 거리에서 연출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전시하고 있는 것이 이채로웠다.
<마티스의 ‘춤 II’를 누드로 연출하고 있는 여성들과 이를 지켜보고 있는 관객들의 사진. 니스 근현대미술관>
(1) 현대 미술 사조 개요
현대 예술의 현주소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최근 미술 동향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시각예술이 모든 예술의 선도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세계대전 후 미술의 중심을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와 미국으로 하여금 세계 미술의 중심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 액션페인팅으로 대변되는 ‘추상표현예술’이다.
추상표현예술이 시들해지자 대중적이고 미국적인 소재들을 도입한 ‘팝아트’가 등장하여 여전히 미국이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어서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고급문화 개념이 점차 무너져가면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진정한 가치로 여기는 ‘개념미술’이 부상하게 되었다.
이해하기 힘든 추상표현주의 미술과, 경박한 팝아트, 아이디어에만 매달리는 개념미술에서 점차 형상(이미지)을 중시하는 미술의 부활로 이어졌다. 1980년대에는 미국과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신사실주의’나 ‘신표현주의’같은 사실주의적 표현이 유행했고 그 영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모든 것이 국제화되고 있는 가운데 예술도 모든 장르의 벽이 모호해지면서 예술가들은 그 어느 때보다 표현의 자유를 한껏 발산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자신(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세계를 담아내는 예술이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 미술사조의 개념들을 간략히 살펴보자.
(2) 추상표현주의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예술문화의 주도권을 유럽(파리)에서 미국(뉴욕)으로 옮겨 놓았다. 국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경향은 새로운 회화의 이론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세계 미술을 선도하게 되었다. 이전까지의 미술은 실재 존재한 것을 형상으로 표현했다면,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은 무의식을 활용하여 불안한 마음을 화폭에 담았다. 격렬한 동작으로 붓을 휘두르듯이 그리거나, 캔버스를 바닥에 눕혀놓고 물감을 뿌리기도 했으며, 캔버스에 물감이 스며들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적 화가는 쿠닝(Willem de Kooning, 1904-97), 폴록(Paul Jackson Pollock, 1912-56), 로드코(Mark Rothko, 1903-70) 등이다. 파리의 화가들 사이에서도 1950년 무렵에 '앵포르멜(informel: 非定形)'이라는 추상표현주의 미술 운동이 일어났다. 대표적인 미술가인 뒤뷔페(Jean Dubuffet, 1901-85)는 물감을 두껍게 바르고 낙서처럼 자유분방한 선을 그어 표현하였다.
(3) 팝아트
팝아트(Pop Art)는 popular에서 유래한 말로 1960년대 대중 매체에서 자극을 받아서 미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작품의 제재를 대중 매체 광고, 만화, 스타사진, 슈퍼마켓의 제품 등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에서 찾았다. 실크스크린이라는 판화기법을 이용해 찍어 내거나, 만화의 장면을 확대해서 그리는 방법, 일상 용품을 비정상적으로 확대하여 거리에 설치하는 방법들을 활용하였다.
앤디 워홀(Andrew Warhola, 1928-87)은 작품 제재를 슈퍼마켓의 진열대나 대중잡지의 표지에서 구했다. 미국의 유명한 배우 마릴린 먼로의 사진이나 켐벨 수프 깡통같이 대량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들을 실크 스크린 기법을 통해 반복적으로 표현했다.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1923-97)은 만화의 한 장면을 그대로 확대하여 기계적인 인쇄로 생긴 망점은 물론 말풍선까지도 그려 넣었다. 올덴버그(Claes Thure Oldenburg, 1929-)의 작품은 옷핀, 숟가락, 포크, 담배꽁초, 야구 방망이, 립스틱 같은 물건들을 아주 크게 확대시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공원이나 거리에 설치했다.
(4) 미니멀리즘
미니멀리즘(Minimalism)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일어난 미술사조로 기교를 최소화하여 사물의 가장 기본을 표현했을 때, 현실과 작품과의 차이가 최소화된다고 생각했다. 미술가의 생각이나 감정보다는 사물 자체의 성질을 중요시하여, 똑같은 색과 모양을 가진 기하학적이고 단순한 재료를 나열하거나 수직으로 쌓아 올려 전시하였다.
미국 조각가로 미니멀리즘 창시자인 저드(Donald Judd, 1928-94)는 주로 상자 모양의 매우 단순한 조각을 벽에 규칙적으로 붙이거나 바닥에 늘어놓아, 상징적 내용보다는 사물 자체의 성질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르윗(Sol LeWitt, 1928-)은 미국의 조각가로 주로 흰색이나 검은색의 입방체 구조물을, 동일한 모양들의 반복에 의해 표현 효과를 높였다.
(5) 개념미술
개념미술(Conceptual art)은 미니멀리즘 이후 나타난 미술사조로서 완성된 작품보다는, 뒤샹의 <샘>처럼 이미 만들어진 기성제품을 선택하여 예술작품으로 제시하는 예술가의 아이디어를 중시한다. 전통적인 미술에서 사용하지 않던 상투적인 문구, 사진, 물건 등의 시각적 수단들을 이용하여 작품화하였다. 미술가의 창의적인 사상을 강조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개념미술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홀저(Jenny Holzer, 1950-)는 ‘문장'을 재료로 선택해서 인쇄물이나 옥외 광고판, 전광판 등을 이용하여 호소력 있는 메시지를 일반 대중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코주스(Joseph Kosuth, 1945-)는 <하나 그리고 세 의자(One and Three Chairs, 1965)>라는 작품에서 왼쪽부터 의자사진, 실물의자, 사전에 있는 의자설명 글 등 세 가지를 배치해 놓았다. 크리스토(Christo Javacheff, 1935-)와 잔 클로드(Jeanne Clande, 1935-2009) 부부는 계곡에 40킬로미터나 되는 천 울타리를 친 작품을 선보인바 있다. 길버트(Gilbert, 1943-)와 조지(George, 1942-)는 <노래하는 조각(The Singing Sculpture, 1969>이라는 행위예술을 통해, 살아있는 조각으로 자신들의 신체를 전시하여, 모든 삶의 행위가 곧 예술이라고 주장했다.
(6)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은 모더니즘의 반발로 시작되었다. 모더니즘은 19세기에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에서 벗어난 새로운 예술을 추구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기하학적 형태를 띠면서 추상화되어 갔고, 대중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미술이 되었으며, 구상적인 그림은 수준 낮은 미술로 취급하였다. 이에 반발하여 포스트모더니즘은 대중들과 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나 예술로 인정하였다. 포스트모더니즘 미술가들은 과거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주제와 표현 방법으로 개성 있는 작품을 제작하였다. 남의 작품에서 이미지를 빌려오기도 하였으며, 사소한 개인적인 것은 물론 폭력, 인종차별 등 정치, 사회적인 다양한 내용들이 작품의 주제가 되었다. 전시형태도 다양해져 심지어는 관람객이 직접 작품 제작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펄스타인(Philip Pearlstein, 1924-)은 <등나무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모델(Model seated on a Rocking Rattan Lounge, 1984)>에서 감정묘사를 피하여 극도로 사실적이고 냉정한 인물을 표현하였으며, 에스테스(Richard Estes, 1932-)는 “빌딩이나 상점의 투명한 유리를 통해 보이는 내부 모습과, 유리 위에 반사되는 도시 이미지들이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풍경을, 일체의 감정을 배제한 채 극도의 사실주의 화법으로 담아냈다.” 호크니(David Hockney, 1937-)는 <비거 스플래쉬(A Bigger Splash, 1967)>에서 현대 도시와 현대인의 감정을 명랑하고 유쾌하게 그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7) 신사실주의
신사실주의(nouveau réalisme)는 1960년대 초 파리를 중심으로 일어난 전위적 미술운동이다. 당시 유럽과 미국의 화단을 지배한 추상표현주의의 현실도피성을 거부하면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 수용하려는 미술경향을 말한다. 일상적 오브제(Objet)와 산업화의 결과물인 제품을 그대로 작품으로 제시한다.
우리가 이번 여행에서 퐁피두 미술관에서 작품으로 만난 조각가 팅겔리(Jean Tinguely, 1925-91)는 예측 불허의 난해하고 우스꽝스러운 움직임과 소음을 동반한 기계장치를 작품으로 제작하였고, 스포에리(Daniel Spoerri, 1930-)는 자신의 저녁 식탁을 작품화하였으며, 아르망(Armand Pierre Fernandez, 1928-2005)은 그림물감의 튜브나 진공관과 같은 공업제품으로 만든 작품을 제작하였다. 세자르(César)는 자동차와 같은 대형 제품을 압착기로 압축시킨 조각을 보여줌으로써 압축조소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니스근현대미술관(MAMAC)을 관람하고, 미술관 가까이에 있는 니스 해변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400번 버스를 탔다. 생폴드방스(Saint-Paul de Vence)까지 약 한 시간을 버스를 타고 갔는데 요금은 일인당 1유로에 불과했다. 생폴드방스에 있는 마그 미술관(The Maeght Fondation) 입구에서 내려 조금 걸어 미술관에 도착하였으나 내부 전시장은 재정비 중이어서 외부 정원의 조각만 관람할 수 있었다. 입장료 9유로에 사진 촬영비 5유로를 별도로 받고 있었다. 호안 미로의 조각을 비롯한 자코메티 등 현대 조각가들의 작품이 정원에 가득하였다.
2. 생폴드방스 마그 미술관
프랑스 남동부 지방의 아름다운 예술가 마을 생폴드방스에 있는 현대 미술관으로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 건축가 세르트(Josep Lluís Sert, 1902-83)가 설계하였으며, 마그재단(Fondation Maeght) 또는 마그미술관(Musée Maeght)이라 불린다. 예술품 수집가 에메 마그(Aimé Maeght, 1906-81)와 그의 부인 마그리트 마그(Marguerite Maeght, 1909-77) 그리고 프랑스 문화부 장관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 1901-76)의 주도하에 1964년 개관하였다.
생애 후반기를 생폴드방스에서 보낸 샤갈(Marc Chagall, 1887-1985), 피카소와 함께 입체파를 시작한 브라크(Georges Braque, 1882-1963), 스위스 초현실주의 조각가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1-66), 스페인 카탈루나 출신 초현실주의 호안 미로(Joan Miro, 1893-1983), 미국의 조각가 칼더(Alexander Calder, 1898-1976) 등 20세기 유럽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샤갈과 탈 코아트(Pierre Louis Corentin Jacob Tal-Coat, 1905-85)의 모자익 벽화, 자코메티 조각 정원, 호안 미로의 미로(迷路), 브라크의 풀(pool)과 스테인드글라스 등이 유명하다. 특히 나에게는 자코메티 조각정원에 있는 얀 파브르(Jan Fabre, 1958-)의 피에타(Pieta)가 큰 감동을 주었다.
<호안 미로의 조각 작품, ‘별자리’>
<얀 파브르의 조각, ‘피에타’>
원래 <피에타>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Basilica di San Pietro) 입구에 있는 높이 175cm의 조각으로 미켈란젤로가 1499년 추기경의 요청을 받아들여 대리석으로 만든 작품이다. 베드로 성당에 함께 있는 모세상, 피렌체에 있는 다비드상과 함께 미켈란젤로의 3대 조각상 중의 하나이다.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기독교 미술에서는 성모 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무릎에 안고 애도하는 모습으로 그리거나 조각한 작품을 말한다.
그런데 벨기에 작가 얀 파브르는 자기 나름대로 피에타를 재해석하여 흰 대리석으로 조각하였다. ‘자비로운 꿈<Merciful Dream (Pieta V)>’을 2011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와 2012년 고향(Antwerp)에 전시한 후, 여기 마그 미술관 자코메티 정원(Giacometti Courtyard)에 전시하고 있는 것이다. 성모 마리아를 해골로 묘사하고, 작가 자신의 얼굴을 한 예수가 오른손에 뇌(腦)를 들고 있다. 뇌는 얀 파브르에게 중요한 개념으로 이교도(paganism), 세계종교(universal religion), 공감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한다. 자식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어머니의 심정과, 예수님과 한 몸 되어 세상을 구원하고 싶어 하는 작가의 각오를 표현하고 있다고나 할까.
언뜻 보아서는 매우 불경스럽지만 해설을 읽고 보니 그 심오한 뜻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얀 파브르는 조형예술, 안무, 연극감독 등 장르를 넘나드는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가로 <종의 기원>을 쓴 앙리 파브르의 증손자이다. 안내책자에 의하면, 이 조각은 슬픔과 용납, 죽음과 부활을 표상하고 있다고 한다. 축 처진 예수를 무릎으로 안은 마리아의 얼굴은 해골인데, 이는 신성모독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아들이자 메시아인 예수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성모의 슬픔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예수의 시신 위로 나비들이 사뿐히 앉아있다. 얀 파브르는 곤충 움직임의 특질을 잘 파악하여 작품에 반영하였다. 그는 인터뷰에서 바위를 끊임없이 기어오르는 곤충의 움직임을 무용수에게 춤으로 표현한 적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는 것이다.
3. 생폴드방스(예술가의 마을)
예술가들이 생폴드방스를 자주 찾게 된 것은 1920년대 초부터였다. 시냑(Paul Signac, 1863-1935), 뒤피(Raoul Dufy, 1877-1953), 수틴(Chaïm Soutine, 1894-1943) 등은 프로방스의 조용한 이 마을에 이젤을 세워놓고 풍성한 색과 빛을 화폭에 담았다. 이후 마티스와 피카소 등도 자주 찾았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이 마을의 황금시대였다. 영화촬영장소로도 각광을 받았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프레베르(Jacques Prévert, 1900-77)도 15년 동안 살면서 많은 감독과 배우들을 이곳으로 끌어당겼다. 미국 소설가 볼드윈(James Baldwin, 1924-87)과 샤갈도 1966년부터 1985년까지 20년을 머물면서 생폴드방스가 거의 한 세기동안 예술과 문화의 허브로서 입지를 굳혀온 데 일조하였다.
마그 미술관에서 약 1 Km 정도 걸어서 고대 성벽으로 둘러싸인 생폴마을요새(Village fortifie de Saint-Paul) 입구에 도착하면, 여행안내소와 생폴박물관(Musee de Saint-Paul)에 이른다. 성 안으로 들어서면, 16세기의 만들어졌다는 골목길들이 중세의 고풍스러운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마을에서 가장 붐비는 그랑드 거리(rue Grande)와 미로같은 샛길들에는 갤러리와 아틀리에들이 가득하다. 마을 전체를 걸어서 대강 둘러보는 데는 1시간정도의 소요되는 아담한 규모이다.
그랑드 거리 중간에는 1850년에 세워졌다는 분수대가 있고, 중앙광장(place de l'Eglise)에는 지역역사박물관과 성당들이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예술가들이 다니면서 다져놓은 골목길에 들어서면 벽을 뒤덮은 담쟁이와 문 앞에 놓여있는 화분들이 작은 천국에 들어선 느낌을 연출한다. 골목길 바닥은 자갈들로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 예술마을의 진가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샤갈은 한때 니스에 있던 본인의 미술관을 여기 생폴드방스로 옮기려 했으나 소망을 이루지는 못했다고 한다. 생폴 미술관이 있는 성문 입구 반대쪽에는 공동묘지가 있고 샤갈은 이곳에 잠들어 영원히 생폴드방스를 지키고 있다. 마그 미술관을 설립한 마그 부부도 여기에 함께 묻혀있다.
입구로 다시 나오면 콜롱브 도르 호텔(La Colombe d'Or)이 있다. 1920년대 로뱅송(Le Robinson)이라는 이름의 카페로 시작한 이곳은, 1932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으며, 마티스, 샤갈 등 유명한 화가들이 머물던 여인숙이며, 당시 화가들이 숙박비 대신 그림을 주어 지금은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호텔 내부에 화가들의 진품 그림들이 많다. (다음호에 계속)
<생폴 드방스의 예술인 마을 골목>
<생폴 드방스에 있는 예술인 마을의 공동묘지, 샤갈이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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