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샴페인의 도시 샹파울의 랭스로 떠나
역대 프랑스국왕들의 대관식이 열린다는 고딕양식의 랭스 대성당을 관람합니다.
주교가 있는 성당을 <두오모>라 하며 노트르담이란 성모마리아를 의미한답니다.
노트르담이란
totre-dame
우리의(Notre)- Dame(여자) 어머니 즉 성모마리아라는 뜻이랍니다.
이 성당을 건축하는데 거의 300여년이 걸렸다네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렇게 정교하고 이렇게 어마어마한 성당은 드물거얘요. 그러니까 프랑스 국왕들도 여기서 대관식을 갖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몇 백년이 지난 지금도 큰 돈 드려가며 우리가 찾아가는 것 아니겠어요?
일화가 있답니다.
카도릭교회에서는 사순절을 보내게 되는데요.
이때 한 달 동안은 금식을 해야 한답니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고기와 버터를 너무 좋아해서 못 먹고는 못배겨낸다나요?
그래서 머리를 쓴 것이 벌금을 내면 사해준다는 것...
그들은 기꺼이 벌금을 내고 버터와 고기를 마음껏 먹으며 행복해 했으며 교회는 그것을 기금으로 해서 이 교회를 완성하게 되었다는 .........
우리를 돌아봅니다. 우리나라 어느 건물도 이처럼 긴긴 세월에 걸쳐 지은 것이 있는지....
그들이 합심하는 마음이 부럽기만 합니다.
중앙의 문
이 성당에는 정면에 3개의 문이 있습니다.
그 중 왼쪽의 문이 성모마리아의 문(Portal of the Vilgin)으로 1220년에 설치되었다 합니다.
왼쪽 성모마리아의 문 옆을 장식한 조각들입니다.
여기서는 랭스의 미소라고 하는데 작가 미상이지만 아주 유명한 작품이랍니다.
웃고있는 조각이 보이시죠?
너무 웅장하고 정교하고 아름답고 어떤 형용사를 가져다 붙여도 마음이 차지 않는 놀라운 작품
영원히 빛날 것 같습니다.
마르크 샤갈도 이곳 유리창에 작품을 남겼습니다.
이곳 스텐드 글라스(유리창)에 그림을 그린거죠.
대관의 도시, 왕들의 도시로 알려진 랭스의 교회 전경, 다시 한번 올려다 봅니다.
가도가도 푸른 벌판 뿐이더라.......
스위스와 프랑스의 교외 풍경은 거의가 이렇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목초지 아니면 우리가 잘 아는 유채꽃들, 여기서는 아마 카놀라유를 만들기 위해 집단으로 대량생산하는가 봅니다만 파란 도화지처럼 펼쳐진 들판에 형언할수도 표현할 수도 없는 색갈을 칠하고 있습니다.
이런 풍경을 지나서 우리는 쎄느강의 하류 루앙으로 이동합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잔다르크를 만납니다.
프랑스전쟁의 히로인 잔다르크가 마지막 숨을 거둔 도시입니다.
<일은 파리에서, 사는 건 루앙에서>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람들은 루앙을 사랑합니다..
배를 뒤집어 놓은 것 같은 모양의 잔다르크 교회와 잔다르크가 화형당한 구시장 광장이 있으며 클로드 모네의 연작의 배경이 된 루안노트르담 대성당도 들어가 관람합니다.
프랑스 국민적 영웅이자 로마 카톨릭의 성인 잔다르크 (세레명 요안나)
오 잔느, 무덤도 없이 형체도 없이,
그대는 아는가 영웅들의 무덤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다는 것을....
O Jeanne, Sans Sepulcre et Sans Portrait
Toi qui savais que le tombeau des heros est le coeur des vivants....
잔다르크 교회의 지붕은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대칭이거나 같은 모양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마치 배를 엎어놓은 듯한 형상이다.
잔다르크 교회에 붙어있는 곳, 이곳은 성 소보르 교회의 건물터이기도 하고 지난 날 장터(market)엿다고 함
이곳은 장터 옆 건물로 프랑스식 정통 레스토랑으로 1345년에 문을 열어 현재까지 ! 역사가 대단한 곳임
잔다르크의 화형 자리에 높게 설치된 십자가
잔다르크 화형 모습(
** 1999년에 세워진 고뇌하는 모습의 가냘픈 여인상 주변에는 아름다운 촛불
봉헌대가 있다.
교육을 받지 못한 일자무식의 시골 소녀가 달변으로 왕을 설득하고 한번도
승리가 무언지를 모르는 군대를 이끌고 209일 간 영국군의 포위 공격을 받던
오를레앙 성을 구출하고 이어서 무적의 기사로 가는 곳마다 승리하여 고통받던
프랑스 국민을 해방하고 국왕의 대관식을 주도한 국민적 영웅이 되었지만
시기와 권력 다툼의 희생양이 된다.
그로부터 25년 후에 교황 갈리스토 3세로부터 위임받은 종교 재판소는 잔 다르크가
무죄라고 판결하고 그녀를 순교자로 선포하였다.
그녀는 1909년 시복, 1920년 시성되었다. 프랑스의 수호성인으로 추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