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가까운 국립공원이고, 아르헨티나의 36개 국립공원 중에서 가장 작은 곳이다.
'오따멘디 자연보호구역'으로 불리는 이곳은 부에노스아이레스 북쪽의 9번 국도 68킬로미터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넓이가 3,000헥타르인 이 국립공원은 빠라나 강 일대의 습지와, 숲이 우거진 언덕, 호수 등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일대에서 산책하기 좋은 곳은 이 자연보호구역보다도 강 건너편의 섬으로 이루어진 빠라나 삼각주(Delta del Parana)지역이다. 이곳의 장점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어서, 자연의 자연스러움을 편안히 느낄 수 있다.
자동차를 타고 가야 하는 이곳은, 자동차를 탄 채로 배에 올라 물을 세 번 건넌다. 돌아올 때에도 배를 타야 하니까 모두 여섯 번을 배를 타게 된다.
먼저 국립공원을 소개한다.
국립공원 지역의 지면은 빠라나 강의 수면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습지대가 대부분이고, 내륙 쪽 구릉을 따라 길게 형성된 숲이 있다. 습지에는 갈대가 무성하고, 조금 높은 지대에는 잡목 숲이 우거져서 야생 사슴(Ciervo)도 서식한다. 사슴을 직접 보기는 힘들어도 사슴 발자국은 볼 수 있다.
사슴 외에도 돼지와 비슷하고 몸길이가 1미터 가량 되는 까르삔쵸와 물쥐・수달・거북・도마뱀・잉어・도라도 등과 여러 종류의 새들이 살고 있다.
이곳은 곳곳에 강으로 이어지는 물줄기가 있는 곳으로, 사람이 다닐만한 곳도 아니고 허용하지도 않지만,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습지대 본래의 풍요로운 모습이 펼쳐 있다.
공원관리 사무소 주위에는, 전망대가 있는 1.5킬로미터 가량의 산책로와, 6,000여 그루의 나무가 있는 수목원이 있다. 걸어서 두 시간 가량 걸리는 이곳을 직원이 안내하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안내료를 내야 한다.
관리사무소 옆 잔디밭에는 식탁이 여러 개 있어, 가지고 온 음식을 먹으며 쉴 수 있다. 잔디밭 한 구석에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흔한 새 중의 하나인 오르네로(Hornero)의 진흙으로 된 둥지 모형이 있어, 작지만 아이들 놀이터 구실을 한다.
국립공원 입장료는 없고, 잔디밭의 식탁도 아무나 사용할 수 있다.
자동차를 타고 섬으로...
오따멘디 국립공원에서 강쪽으로 아스팔트길을 따라가면 오른쪽으로 사설 오토바이 연습장 겸 경기장이 보인다. 크고 작은 언덕을 파도처럼 많이 만들어 놓은 이 경기장에는 주말이면 많은 청소년이 찾아오는 요란스러운 곳이다.
경기장을 지나 숲길을 조금 가면 낡은 시골 역 오따멘티(Estasion Ingeniero Otamendi)가 나온다. 이곳을 지나는 기차는 레띠로에서 출발해 사라떼까지 운행하는 미뜨레 선(線, Linea Mitre)으로, 이곳까지 요금은 2불 정도.
역사를 조금 지나면 길은 막혀 보이나, 막힌 길의 바로 옆 철길에는 목장의 울타리 문이 설치된 건널목이 있다. 이 문은 항상 닫혀 있지만 아무나 열고 지나갈 수 있다.
건널목을 지나 조금 가면 빨마스 강으로 이어지는 넓고 곧바른 길이 나온다. 포장도로는 아니지만, 포장도로보다 더 상쾌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앞은 물론, 좌우가 확 트인 초지(草地)이고 오직 넓은 흙길만 바르게 나있어, 보기만 해도 가슴이 활짝 열린다.
가을에는 은빛 찬란한 갈대숲이 좋다. 갈대 숲 이어진 길을 걷노라면, 걸음을 따라 바람 이 쫓아오는 듯, 갈잎 사각거리는 소리가 끝없이 들려온다.
길가에 듬성듬성 자란 나무에는 한국의 산길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박주가리가 매달려 있다. 열매를 살짝 벌리고 입으로 '후'하고 불면 하얀 깃털에 달린 작은 씨들이 낙하산 부대처럼 들판에 휘날린다.
가을보다 더 좋은 때는 나뭇잎이 다 떨어진 겨울이다. 지평선과 맞닿은 곳, 갈대밭이 끝나는 곳에 미루나무 숲이 길게 이어져 있고, 그런 회색 들판 위로 한두 점 구름이 흐른다. 넓디넓은 갈대밭 너머로, 잎사귀 한 장 남기지 않은 미루나무 숲의 가녀린 가지를 바라보면, 인생의 고비나 마지막 갈 길을 보는 듯하다. 아우성치던 수많은 잎은 사라지고 그 빈자리만 남은 겨울... 그 텅 빈 겨울이 외롭다.
그 외로움이 나무와 숲을 키운다는 생각도 들지만, 텅 빈 겨울 한가운데에서 나무들과 함께 가만히 바람을 맞고 섰으면, 잎이 사라진 숲은 외로움만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진다. 바라보는 겨울나무 등걸에서 정겨움이 전해온다.
이런 잿빛 숲에서 봄이 살아나는 모습은 참 신비롭다.
나무에 물오르는 이 때는 길가 따라, 물 흐르는 도랑 따라 노란 야생화가 활짝 핀다. 샛노란 꽃무리가 봄바람에 향기 날리며 하늘거리고 아우성친다.
갈대밭 뒤편 긴 언덕의 희끗희끗한 나무들 사이에도 연두색, 연녹색, 파란색 생기가 번져 나온다. 한바탕의 상큼한 잔치이고, 신기한 감동이고, 한 폭의 수채화다. 눈으로 들어온 연두색 파란 생기가 온몸에 퍼지고, 봄바람에 흔들리는 꽃망울처럼 가슴이 부푼다.
봄이 차오를 무렵이 가장 보기 좋다.
강까지는 5킬로미터 가량으로, 길은 바로 도선장에 닿아 있다. 도선장 주변에는 집 한두 채와 간이 매점이 있고, 주말에는 낚시하는 사람들 서너 무리가 있을 뿐이다.
이 도선장에는 화물을 가득 실은 트럭 두 대가 탈 수 있는 배가 정박해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에서 운영하는 이 배를 타려면 승용차는 25뻬소, 사람은 2뻬소를 내야 한다. 이 요금에는 돌아올 때까지 다섯 번의 승선료가 포함됐다
수백 미터 넓이의 빨마스 강 건너편 섬들은 동산 하나 없는 넓기만한 평지다. 이 섬 지역은 대개 조림 지구로, 곧은 나무들이 반듯하게 줄을 잇고 있을 뿐, 볼거리는 없다. 그러나 이곳의 매력은 볼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인적이 거의 없어, 말 그대로 '외딴 섬'인 이곳은, 그런 까닭에 도시인에게는 신천지 같은 느낌을 주는 아주 한가로운 곳이다.
강을 건넌 후, 이 도로의 끝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거리는 50여 킬로미터에 불과하지만, 배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서너 시간이 필요하다. 돌아올 시간이 넉넉하지 않으면 건너지 않는 것이 좋다. 어는 곳도 마찬가지지만, 이곳 역시 마음이 한가한 사람에게만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배에서 내려서 10여 킬로미터 달리면 원목 하치장이 있고, 냇물이 가로막는다. 10미터 가량의 냇물을 건네주는 배는 피스톤으로 움직인다. 배 안에 차가 들어서면 운전자가 피스톤을 작동시켜 배를 대안까지 밀어 준다.
다시 한참 달리다 보면 창고 건물들이 보이고, 그 옆으로 까라벨라(Carabela)라는 작은 강이 나온다. 이 강을 건네주는 배는 쇠사슬로 움직인다. 이십 미터 폭의 강은 쇠사슬로 이어져있고, 배에는 쇠사슬을 당기는 모터가 장치되었다.
강을 건너자마자 세르 수르(Ser Sur)야영장, 오른쪽 길로 5킬로미터 가량 가면 시엘로(Cielo)라는 야영장이 있고, 이 야영장들 사이에는 '희망촌(Pueblo Nueva Esperanza)'이라는 작은 마을도 있다.
배를 타고도 이곳까지 올 수 있다. 삯은 왕복 16뻬소로 조금 비싸지만, 연락선이 띠그레 선착장에서 오전 7시 반에 출발하고 오후 4시에 돌아간다.
이 오따멘디 국립공원과 섬으로 오가는 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올 때면 조금은 허전한 느낌이 든다. 모든 것이 그저 넓기만 한 까닭도 있겠으나, 아마도 그 너른 들판 한 구석에 내 마음 한 조각이 남았기 때문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