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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心琴(심금)을 울린 11편의 글들(26P)
1>.2021.2.16.화.교회 덩치가 커지면, 눈이 나쁜 사냥꾼 사탄, 마귀, 귀신이라도 총으로 사격하기 좋다
- 어느 광야의 외침 -
성도들 가둘 樣式(양식), 自身(자신), 틀, 제도권을 두지 말고
자립, 分家(분가)시키고
개척교회로 흩어, 내어 보내라.
그러지 아니하면,
“네가 교회 주인이냐?” 꾸중하시며
하늘의 주님 괘심히 여기신다.
남북 정치 구조 다 무너진다.
북한 밑바닥으로,
남한 호강하다,
안일의 극을 달리다,
이제 자살, 낭떠러지로 가고 있다.
그 옛적에도 왕족, 귀족들은
나라 자금 안 받고 정치했다.
나라나 교회나
공록을 받으면 고마움 알고,
스스로 낮추어
나라의 일이나,
주님의 일들을
순수하게,
자신 중심적이 아닌,
이타적으로 봉사, 섬겨야 한다.
일본 사무라이도 검소했고,
主君(주군)들 위해 전쟁에 목숨 내걸었다.
국가의 공복이란 자들아!
소위 말하는 牧者(목자)란 자들아!
네 主君(주군)이 누구이냐?
신앙과 영적 헌신도
성령의 부어 주신 것으로 해야
진정한 권위가 세워진다.
자신이 만들어 내는 권위는 오래 가지 못하고,
자칫 잘못하면 무너진다.
하늘 주님이 준 만큼, 권위가 오래 간다.
낮추어 섬기면, 더 오래 간다.
그래!
나도 목사님 존중한다.
오늘날 성령, 은사, 능력 있고,
믿음 선포, 역사 일어 나는 것
다 인정한다.
그러나,
분하고 화 나서 말하는데,
그래! 너희들의 가르치는 이런 말들
다 경청한다.
그러나 말만 하지 말고,
바로 잘 해라.
노 목양자에게
한 시간 동안, 말씀을 듣는다
나는 한번도 헌금 받거나,
대접 받은 일 없었다.
세상에서
다 모양새 있고,
그 활동력에 본이 있는 자들이,
수하에 성도들 크게, 많게 있는 자들이
대접 받는다.
그리고서는 주님 앞에,
세상 사람들 앞에,
성도들 앞에서 사고 친다.
목사, 신학, 제도...
다 개혁 되어져야 한다.
무슨 원장, 당회장, 노회장, 총회장... 없어져야 한다.
현대판 ‘사도’ 란 자들 다 없어져야 된다.
‘지방교회’ 는 일곱 사도가 있다,
이 모든 것들도 다 사람, 제도권이 세운 것이다.
‘신사도 운동’ 도 성령, 은사, 능력이 나타나지만,
그 옛적 초대교회의 순수함이 아니다.
신약 초기에만 선지자, 사도들이 나온다.
주 예수님 말씀에
스스로 지도자, 아비, 선생으로 자칭하지 말라 하셨다.
믿는 이들, 교회 들은 다 형제, 자매 관계이다.
헌금 꼭 이름 쓰고서 내는 것 아니다.
헌금을 위해, 헌금을 긁어 모으지 말라.
모세도 헌물 왠 만큼 모이니,
더 가지고 오지 말라고 했다.
생명의 복음 말씀을
돈 받고 전하고,
돈 받고 가르치는 것 아니다.
헌금은 헌신자의 발 앞에 내는 것이고,
교회란 신앙, 가정, 집안, 대대 손손 잘 되게 하는 것이고,
세상, 정치, 군사, 행정, 문화에 영향력이 되어야 되고,
직임, 직분은
남발, 무분별 주는 것 아니고,
믿는 무리가 곧 교회, 집회소, 예배당, 회당이며,
세상의 이권, 이윤, 마진 남기는 곳, 금융권처럼
교회에 헌금 맡기고,
부동산 투자하고,
교회 사고 팔고,
헌금으로 무리한 교회 건축 고리의 이자 내고,
이윤 창출하고,
그리고 장사 하는 것 정말 아니다.
일개 집사 보다 못한
영적 수준이 한참 아래인 목양자들아!
성도들이 굽신 굽신 예의 지키어 주고,
오로지 내 것으로 헌신하면서도,
어쩌다 바른 말 한번 하면
그만 수 틀어지고,
함부로 된 사람의 본색을 드러 내고 만다.
그게 어찌 목양자이냐?
있는 놈들한테는 쩔쩔 매며 굽신 굽신하면서,
복덩어리 교회 일꾼에게는 함부로 대한다.
이 삯군 목자야!
너를 향한
아름다운 성도의 순종의 댓가가 고작 그것이냐?
돈키호테 같은 나도
교만하지 않고 낮추는데...
너는 어찌 그리도 교만하냐?
주제 파악을 좀 해라.
어찌 그리도 방자하냐?
네가 하나님이냐?
낮추면,
과부의 두 렙돈
유심히 보면,
그 의미를 알게 되지...
주님과
그리고 이 어리석은 나도,
그 옛적의 신앙의 선진들처럼
바보는 아니다.
다 알고 있고,
다 보고 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랴?
‘殉命의사람’ 배종부 목사
2>.2021.2.14.주일. 慾求(욕구)는 장작불과 같다
사람들은 욕구가 만족되면 행복하다고 느끼고,
욕구가 만족되지 못하면,
불행하다고 느낍니다.
행복과 불행은 모두 욕구로부터 파생됩니다.
먹고 싶은 욕구,
입고 싶은 욕구,
가지고 싶은 욕구,
이기고 싶은 욕구,
욕구는 수 없이 많습니다.
욕구는 마치 장작불과 같습니다.
장작불은 타면서, 더 많은 장작을 필요로 합니다.
장작을 집어 넣으면 불이 더 커지고,
불이 커지면 장작을 더 필요로 하죠.
우리 욕구도 만족되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욕구는 점점 커집니다.
그것이 욕구의 성질입니다.
욕구를 채워서 얻은 행복은
금새 더 큰 욕구로 이어집니다.
진정한 행복은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고,
욕구에 얽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 A bad workman blames his tool
서툰 일꾼이 연장 나무란다.
3>.2021.2.14.주일. 네 그릇을 비워야 가볍다
♡베테랑일수록 가볍다♡
이십 대 초반에 동아리 친구들과 지리산 종주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험한 산을 며칠에 걸쳐 종주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던 시절이었습니다.
합리적인 등반 채비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들뜬 나머지 이것 저것 꾸러미만 늘렸습니다.
이틀째였을까요?
급경사인 등산로 앞에서 저를 비롯한 몇 명의 여학생은
그만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체력은 이미 바닥났는데,
무거운 배낭마저 어깨를 짓누르니 설움이 북받쳤던 것입니다.
하지만 강단 있는 대부분의 여학생은
눈썹 조차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남학생들의 도움으로 겨우 종주를 마칠 수 있었지만,
그 일은 제게 꽤 오랫 동안 충격적인 일로 남았습니다.
명강사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습니다.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베테랑일수록 꾸러미가 간소하다는
여행 전문가의 충고가 저에겐 옳았습니다.
이제는 그 옛날 지리산 종주에서 겪었던
고생을 떠올리고 짐을 줄이고 또 줄이고 있습니다.
– 김살로메(소설가) –
나의 삶에 무언가로 가득 채울 필요는 없습니다.
때론 다른 무언가를 채울 공간도 필요하며
때론 지금보다 더 비워 내기도 해야
할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니깐요.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하고 계신 여러분,
내 짐이 무겁다고 느끼고 계신가요?
그럼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릇은 비어 있어야만, 무엇을 담을 수가 있다.
– 노자 –
4>.김형석 어른, 100년 살아 보니 알겠다, 절대 행복할 수 없는 두 부류
김형석(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올해 102세가 됐습니다.
다들 ‘100세 시대’ 라지만, 지금 100세를 넘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소 조심스러웠습니다. 코로나 시국에다 연세가 있으셔서 ‘혹시라도’ 싶어 인터뷰 자리가 걱정되더군요.
[김형석 교수는 누구인가?]
이달 초 커피숍에서 만난 김 교수는 의외로 의연했습니다. 뭐랄까요. 1세기를 송두리째 관통한 사람의 ‘굵직한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삶에 대한 깊은 관조와 함께 말입니다.
지난 인터뷰에서는 ‘이 시대의 진보와 보수’를 다루었습니다.
이번에는 그에게 ‘행복’이란 두 글자를 물었습니다. 모든 이의 삶에서 화두가 되는 키워드이니까요. ‘100년 넘게 살아 봤더니 다른 게 행복이 아니더라. 바로 이게 행복이더라.’ 그런 식의 답을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다들 찾습니다, 행복. 어떡하면 찾을 수 있습니까.
“지금껏 살아 보니 알겠더군요. 아무리 행복해지고 싶어도 행복해지기 힘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행복하고 싶은데,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이 누구입니까.
“크게 보면 두 부류입니다. 우선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물질적 가치가 행복을 가져다 주진 않으니까요. 가령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과연 행복하게 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많은 물건을 가지게 되면 오히려 불행해지고 말더군요.”
돈이나 권력, 혹은 명예를 좇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행복을 찾습니다.
“솔직히 거기서 행복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거기에는 ‘만족’이 없습니다. 돈과 권력, 명예욕은 기본적으로 소유욕입니다. 그건 가지면 가질수록 더 목이 마릅니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배가 고픕니다. 그래서 항상 허기진 채로 살아 가야 합니다. 행복하려면 꼭 필요한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만족’입니다.”
‘만족’을 알려면 어떡해야 합니까.
“정신적 가치가 있는 사람은 만족을 압니다. 그런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더군요.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명예나 권력이나 재산을 거머쥘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불행해지더군요. 명예와 권력, 재산으로 인해 오히려 불행해지고 말더군요. 지금 우리 주위에도 그러한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실감했습니다. 김형석 교수의 메시지는 참 묘한 매력이 있더군요. 언뜻 들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처럼 들립니다. 너무도 당연한 말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행간을 곰곰이 씹다 보면 확 달라집니다. 씹으면 씹을수록 진한 국물이 우러납니다. 그건 100년의 삶, 100년의 안목으로 우려낸 삶에 대한 묵직한 통찰이겠지요.
행복하고 싶은데 행복할 수 없는 삶. 아, 그건 정말 비극입니다. 그런데 우리만 모르고 있는 걸까요. 내가 바로 그 비극의 주인공일 수 있음을 말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부류를 물었습니다. 건너고 싶어도 행복의 강을 건너지 못하는 사람들, 그게 누구인지 말입니다.
“두 번째는 이기주의자입니다. 그들은 절대로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뜻밖의 진단이었습니다. 다들 자신을 챙깁니다. 나 자신을 챙기고, 내 이익을 챙깁니다. 그걸 위해 삽니다. 왜냐고요? 그래야 내가 행복해지니까요. 그런데 김형석 교수는 이기주의와 행복은 공존할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이기주의와 행복, 왜 공존이 불가능합니까.
“이기주의자는 자신 만을 위해 삽니다. 그래서 인격을 못 가집니다. 인격이 뭔가요. 그건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선한 가치입니다. 이기주의자는 그걸 갖추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인격의 크기가 결국 자기 그릇의 크기입니다. 그 그릇에 행복을 담는 겁니다. 이기주의자는 그릇이 작기에 담을 수 있는 행복도 작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말 끝에 김형석 교수는 자신의 경험담을 하나 꺼냈습니다.
“제가 연세대 교수로 갈 때 몹시 가난했어요.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월급이 오르거나 보너스가 나오면 무척 좋아했어요. 동료 교수들도 다들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등록금을 내지 못해 고생하는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승이라는 사람이 자기 월급 올랐다고 좋아한 겁니다. 그건 교육자의 도리가 아니지요.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행복하질 않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행복은 공동체 의식이지, 단독자인 나만을 위한 게 행복이 아니더군요.”
김 교수는 자기가 먼저 큰 그릇이 되어야, 큰 행복을 담을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김형석 교수는 최근 지방 출장 차 김포공항에 갔습니다. 예약자들에게 발권 표를 다 나눠 주는데 김 교수만 빠졌습니다. 문의를 했더니 항공사 직원이 “이상하다”며 급히 매니저를 불렀습니다. 달려 온 매니저가 김 교수에게 “혹시 연세가 어떻게 되시느냐?”고 물었습니다. 알고 보니 컴퓨터 상에 나이가 ‘1살’이라고 떴습니다. 1920년생인 김 교수는 올해 만으로 101세입니다. 컴퓨터가 두 자리 숫자만 읽게끔 설정돼 있었던 겁니다.
“지금까지 대한항공 비행기만 930번 이상 탔어요. 그런데 직원이 보니 1살짜리가 930번 비행기를 탄 겁니다. 사람들이 종종 물어요.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고. 이상하죠. 저도 나이 생각이 없어져요. 내 나이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1살이라고 하니, 올해는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살려고요. 하하”
‘100세 시대’라고 합니다. 다들 100세 인생을 기대합니다.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연세대 교수로 처음 갈 때 30대 중반이었어요. 그 때는 환갑이 되고 정년이 되면 내 인생이 끝날 줄 알았습니다. 당시에는 인생을 두 단계로 봤어요. 30세까지는 교육을 받고, 나머지 30년은 직장에서 일한다. 그럼 인생이 끝난다.”
막상 살아 보니 어땠습니까.
“그게 아니었어요. 가장 일을 많이 하고, 행복한 건 60세부터였어요. 내가 살아 보니까 그랬습니다. 글도 더 잘 쓰게 되고, 사상도 올라 가게 되고, 존경도 받게 되더군요. 사과나무를 키우면 제일 소중한 시기가 언제일까요. 열매 맺을 때입니다. 그게 60세부터입니다. 나는 늘 말합니다. 인생의 사회적 가치는 60부터 온다.”
그럼 60대 이후에는 어떻게 됩니까.
“60을 넘어 90까지는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사회적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럼 90 이후에는 어떻게 되느냐. 되는 사람도 있고, 안 되는 사람도 있더군요. 주로 건강 때문입니다. 의사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혈압, 당뇨, 치매는 주로 60세 이후에 찾아 옵니다. 그걸 60, 70, 80세가 돼서 관리하려고 하니까, 힘이 듭니다. 그러니까 50세부터 잘 관리하면 됩니다. 그럼 90까지는 다 간다고 합니다. 90세까지는 행복하고 보람있게 살 수 있습니다. 의술이 발전하니까 40~50년 후에는 100세까지도 다들 행복하게 살 수 있겠지요.”
대화를 나눌수록 놀랍습니다. 김형석 교수는 지팡이를 짚지 않습니다. 제가 놀란 건 육체적 건강 때문만이 아닙니다. 100세 넘는 연세에도 정신력과 기억력, 사고력과 판단력이 놀랍습니다. 유연하고 열린 사고 역시 젊은이들 못지 않습니다. ‘100세의 건강’ 못지 않게 ‘100세의 정신’도 궁금하더군요.
100세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
“사람은 항상 공부를 해야 합니다. 뭐든지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이 늙어 버립니다. 사람들은 몸이 늙으면 정신이 따라서 늙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자기 노력에 따라 정신은 늙지 않습니다. 그 때는 몸이 정신을 따라 옵니다.”
그때는 퇴직하고 한참이나 지난 뒤입니다. 공부를 어떻게 하면 됩니까.
“강연차 지방에 갈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럼 거기서 지방 유지들을 만납니다. 장관 지낸 사람, 교수 지낸 사람들도 만납니다. 이야기를 해 보면 다들 나보다 정신이 늙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 가만히 생각해 봤습니다. 결국 장관직 끝내고, 정년 퇴직하고 일도 안 하고 공부도 안 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겠더군요. 일과 공부를 안 하면, 몸도 마음도 빨리 늙습니다.”
일과 공부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합니까.
“꼭 직업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공부가 따로 있나요. 독서 하는 거죠. 취미 활동하는 거고요. 취미도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100년을 살아 보니 알겠더군요. 일하는 사람이 건강하고, 노는 사람은 건강하지 못합니다. 운동은 건강을 위해서 있고, 건강은 일을 위해서 있습니다. 내 친구 중에 누가 가장 건강하냐. 같은 나이에 일이나 독서를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가장 건강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자, 겨울 공기가 상쾌했습니다. 참, 값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100세의 언덕’에서 우리들 각자에게 던져 주는 지혜의 알갱이들이 말입니다. 누구에게는 30년 뒤, 누구에게는 50년 뒤, 또 누구에게는 70년 뒤가 되겠지만 말입니다. 결국 모두에게 오게 될 그 언덕에, 미리 서 볼 기회를 주고 있으니까요.
5>.김형석 교수의 진보와 보수
4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서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를 만났다. 올해 한국 나이로 102세다. 1920년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군사정권과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지금까지 몸소 현대사를 관통하며 살아 왔다. 궁금했다.
‘100년의 눈, 100년의 인생’으로 바라 보면 보일까.
한국 사회의 고질병이 돼 버린 ‘진보와 보수의 무조건적 대립과 갈등’. 그에게 그걸 극복할 수 있는 혜안을 물었다.
좌파냐 우파냐 흑백논리는 안돼
냉전시대식 사고가 낳은 잔 유물
현실에는 100% 흑도, 백도 없다
선진국가, 진보·보수 공존 경쟁
한국 사회가 너무 시끄럽다. ‘100년의 눈’으로 바라보면 근본 이유가 뭔가.
“한 마디로 말하면 ‘흑백 논리’ 때문이다.”
흑백 논리, 더 구체적으로 풀어 달라.
“물리학자들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빛의 삼원색이 있다. 빨강, 녹색, 파랑이다. 삼원색이 꼭대기로 올라 가면 삼각형의 정점이 된다. 그 꼭대기를 ‘백색(白色)’이라고 한다. 그런데 꼭대기의 백색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론적으로만 가능하다. 그 반대도 똑 같다.”
그 반대는 뭔가.
“삼원색이 아래로 좁혀지면서 쭉 내려 간다. 그럼 아무 색도 없는 ‘흑(黑)’이 된다. 백(白)은 모든 게 다 있는 꼭대기이고, 흑(黑)은 아무 색도 없는 바닥의 끝이다.
그런데 백과 흑은 이론적으로만 가능하지, 실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없는 색이다.”
그렇다면 실재하는 건 뭔가.
“회색이다. 꼭대기 백에서 출발해, 바닥의 흑으로 가는 중간에는 회색만 있다. 백에 가까운 회색, 아니면 흑에 가까운 회색만 있을 뿐이다. 그럼 우리는 모두 어디에 있는가. 중간에 있다. 그런데 흑백 논리에 빠진 사람은 그걸 못 본다. 백이냐, 흑이냐. 그것만 본다.”
김 교수는 예를 하나 들었다. “젊은 사람들이 말하더라. ‘김형석 교수는 존경할 만하다. 우리가 뒤따라 갈 만한 사람이다.”
이렇게 보면 나는 완전한 사람이다. 그런데 완전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보통은 부족한 게 더 많다. 또 누가 나쁘다고 하면 100에 대한 0으로 나쁜 사람은 없다. 좋은 게 하나도 없는 사람도 없고, 나쁜 게 하나도 없는 사람도 없다. 우리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치에서는 어떤가.
“여당 사람들은 우리 편이 하는 건 선(善)이고, 야당이 하는 건 악(惡)이라고 본다. 똑같은 일도 우리가 하면 선이고, 상대방이 하면 악이다. 너희가 하는 일과 우리가 하는 일 중에 어느 쪽이 더 나은가가 아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0과 100은 존재하지 않는다. 40과 60중에 더 나은 걸 택할 뿐이다. 흑백 논리에 빠지면 이걸 못 본다.”
한국의 현대사 100년을 몸소 체험했다.
그런 흑백 논리의 뿌리가 뭔가.
“나는 해방을 맞은 1945년부터 47년까지 북한의 평양에서 살았다. 그 때 2년 간 공산주의 치하를 직접 경험했다. 그건 흑백 논리의 사회였다. 우리와 같으면 되고, 우리와 다르면 안 되는 세상이었다. 거기에는 큰 소리로 웃는 사람은 있어도, 미소를 짓는 사람은 없었다.”
억지웃음은 있어도 미소는 없었다. 왜 그런가.
“서로 경계하고 서로 배척하니까. 독일 통일 전이었다. 1962년에 서베를린에서 동베를린으로 간 적이 있다. 외국 국적을 가진 사람은 관광이 가능했다. 동독 사람들 얼굴에도 미소가 없더라. 흑백 논리의 사회는 분열은 있어도, 화합은 없다. 지금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정치적 갈등도 흑백 논리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런 흑백 논리가 “냉전 시대의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냉전 시대가 뭔가. 강의 이쪽과 저쪽에서 서로 적대시 하는 사회다. 하나는 남고, 나머지 하나는 없어져야 한다. 사실 그로 인해 한국전쟁이 일어 났다. 그런데 1960년대로 넘어 오면서 냉전 시대는 없어졌다. 더 이상 좌파와 우파로 나뉘지 않는다. 좌파는 이제 진보로 남고, 우파는 보수로 남게 됐다.”
‘좌파와 우파’랑 ‘보수와 진보’는 서로 다른가.
“모든 선진국가를 보라. 흑백 논리의 좌우 대립은 없어졌다. 대신 진보와 보수가 함께 살게 됐다. 더 이상 하나는 살고, 하나는 죽어야 하는 세상이 아니게 됐다. 같이 살면서 누가 더 앞서느냐 경쟁하는 사회가 됐다. 반면 북한은 어떤가. 좌만 남지, 우는 있을 수가 없다.”
한국 사회는 진보와 보수로 갈렸지만 서로 적대시 하지 않나. 마치 냉전 시대처럼 말이다.
“우리나라의 진보 세력은 주로 운동권 출신이다. 군사 정권 하에서 주사파, 혹은 사회주의 혁명론에 젖줄을 댔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라 난 진보가 아니다. 냉전 시대 이후, 그러니까 선진국가에서 자라 난 진보가 아니다. 그들의 사고는 아직도 냉전 시대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그건 시대착오적이지 않나. 그걸 극복하는 해법은 뭔가.
“그 열쇠가 영어 문화권의 앵글로 색슨 사회에 있다. 그들은 600년 전부터 경험주의 사상을 가지고 살아 왔다. 거기에는 흑백 논리가 없다. 선해도 비교적 선하고, 악해도 비교적 악하다. 왜 그렇겠나. 경험주의는 실제 우리의 삶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현실에는 백도 없고, 흑도 없다. 회색만 있다. 서로 더 나은 회색이 되기 위해 경쟁할 따름이다. 그래서 사회적 문제에 대한 그들의 해결법은 투쟁이 아니라 대화다. 의회민주주의는 대화를 기본으로 한다.”
김 교수는 “영국 계통 사람들은 대화를 하고, 독일이나 프랑스 계통은 토론을 하고, 공산주의는 투쟁을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가 있을 때 영국 사람은 약을 먼저 준다. 그래도 안 되면 주사를 놓고, 그래도 안 되면 수술을 한다. 이게 경험주의 사회의 정치관이다. 독일이나 프랑스 사람은 토론을 통해 좀 더 빠른 걸 선택한다. 그래서 먼저 주사를 놓고, 그래도 안 되면 수술을 한다.
공산주의는 다르다. 그들은 처음부터 수술을 한다. 그들이 가장 선호하는 단어가 ‘혁명’이다. 문재인 정부도 ‘촛불 혁명’을 내세운다. 그 동안 많은 정책을 내놓지 않았나. 그게 왜 현실에서 먹히지 않는지, 돌아 봐야 한다.”
수술을 자꾸 하면 어찌 되나.
“환자가 마침내 죽고 만다. 그래서 공산주의 사회가 무너졌다. 남이 무너뜨린 게 아니다. 자기 스스로 무너졌다. 19세기는 좌파와 우파 중 하나만 남으라는 절대주의 사회였다. 20세기 중반에는 진보와 보수가 경쟁하며 같이 가는 상대주의 사회가 됐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 건가. 종교와 정치와 민족이 서로 달라도 여럿이 함께 사는 사회, 즉 다원주의 사회가 올 거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권력만 가지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다수 의석을 가졌다고 뭐든지 힘으로 된다는 생각, 버려야 한다.
그건 권력 사회다. 군사 정권이 그랬다.
그런데 지금 여당도 그렇지 않나.
본질적으로 국민을 사랑하는 것 보다, 정권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김형석 교수는 누구
김형석 교수는 1920년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 났다. 평양 숭실중학교를 다닐 때는 시인 윤동주와 같은 반 친구였다. 학창 시절 도산 안창호의 강연을 듣고서 감명을 받기도 했다. 일본 조치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조치 대학 재학 시절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동창이었다.
‘대한민국 1세대 철학자’로 꼽힌다.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정년 퇴직했다.
1960~70년대에는 사색과 서정을 아우르는 문체로 『고독이라는 병』, 『영원과 사랑의 대화』 등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집필했다.
최근에는 『백년을 살아 보니』, 『예수』, 『김형석 교수의 백세 건강』 등을 출간했다.
인터뷰 끝 부분에서 지금의 여당도 국민 보다 정권을 더 사랑한다는 김교수의 결론에서, 본인의 현 정권에 대한 시각을 보여 준다. 그 점은 본인의 판단이니 뭐라고 할 문제는 아니다. 또한 진보와 보수가 냉전의 부산물이라는 점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한다.
그러나 왜 지금의 보수가 가치론의 관점에서 친일의 뿌리와 기득권의 문제와 언론.검찰.법원.종교.경제 분야에서 권력의 카르텔에 대한 성찰과 비판음 없는가?
철학은 꽃은 올바른 가치관이다. 그러나 존재론과 인식론이 잘못되어 있다면 이론상 올바른 가치론 이라할 지라도 결국 현실의 악이 된다.
저런 분이 하는 말 조차 조금도 받아 들이지 못하고 좌파 비판한다고 댓글 쓰는 사람들 인생 참 궁금해진다. 여기서도 당파 타령이냐. 인격의 성숙함은 전혀 갖추지 못하고 여기서도 당파 가르기나 하고 있다니...
이런 말을 이명박 박근혜 시절에 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 당신도 다분히 흑백 논리에 사로잡힌 또 다른 어용지식이랄 수 밖에...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기득권의 독식에 반대하는 민초의 힘으로 길러졌습니다.
좋으신 말씀입니다. 실제로 진보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없고 진보라고 하는 정치인들의 편이 남는 것 같습니다. 진보든 보수든 편이 되지 않고 나의 삶 속에 항상 혁신을 추구하는 진정한 진보인을 보고 싶습니다.
[출처: 중앙일보] 102세 철학자 김형석 "韓 진보, 민주주의서 자라나지 않았다"
6>.💟 6가지의 꿈은, 이렇게 구분(區分)합니다.
🟢 1. 현몽(現夢). 꿈 속에서 일어난 일이 현실(現實)에서 일어난 꿈이다.
🟢 2. 역몽(逆夢). 꿈과 정 반대되는 현상이 현실에서 일어난 꿈이다.
🟢 3. 길몽(吉夢). 흉몽(凶夢) 좋은 조짐, 나쁜 조짐의 꿈이다.
🟢 4. 태몽(胎夢). 새 생명(生命)을 잉태하는 꿈이다.
🟢 5. 잡몽(雜夢). 심신이 피곤하여 비몽사몽(非夢似夢) 간에 헛 것을 보는 개꿈이다.
🟢 6. 영몽(靈夢).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이다.
💟 이렇게 좋은 설 날!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꿈,
신령(神靈)한 꿈,
사명자의 꿈,
코로나(COVID-19)가 종료되는 꿈,
일상(日常)으로 돌아가는 꿈,
생명력(生命力)이 넘치는 꿈,
믿음이 회복되는 꿈,
예배(禮拜)가 회복(回復)되는 꿈,
교회(敎會)가 성숙(成熟)해지는 꿈!
💟 이렇게 좋은 설 날!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聖靈)의 불을 붙이는 꿈,
소원 성취의 꿈,
만사형통(萬事亨通)의 꿈,
민족(民族) 복음화(福音化)의 꿈을 꾸고, 그 꿈이 이루어지시길요.
가족과 함께 편안하고 행복한 설 되십시오. Immanuel!
㊗️ https://youtu.be/Q0ysbSGL0RQ (2분)
㊗️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요셉)가 오는도다...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창세기 37:19)
7>.2021.2.14.주일. 楚漢志초한지의 결론(7P)
적에게 자비를 베풀지 말라.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네가 살려면 적을 제거하라.
부귀, 영화, 권세, 명예도 다 부질 없는 일
일평생 동안, ‘홍문연’ 에서의 죽음의 위기에서
한나라 고조 ‘유방’ 은 결코 자유할 수 없었다.
그 결과 만고의 충신인 ‘한신’ 장군을 6년 간 감옥에 가두었다가, 미침내 35세에 죽였다.
권력이란 남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것!
이 잔인한 현실을 어찌 부인하리요?
楚漢志 소설중국 고전 소설
1. 개요
중국의 고전소설이자 연의 소설. 《초한연의》(楚漢演義)라고도 한다.
2. 상세
진나라 말기부터 전한 초기까지, 혼란스럽던 초한쟁패기 중원의 정세를 풀어낸 연의 소설. 명나라 때 종산거사(終山居士)견위가 쓴 서한연의가 그 원본이라 하나 그 인물 자체도 정체 불명이기 때문에 진짜 저자는 알 수 없다.
삼국지연의나 수호지 등 중국 사대 기서와 달리, 독립된 작품으로 남아 있지 않다. 시중에 초한지라는 제목이 붙은 책들은 제목만 같을 뿐, 서로 다른 작가들이 쓴 별개의 작품으로, 사마천의 사기를 뼈대로 해서 진말~ 서한 초기까지의 여러 이야기들을 모아, 제각기 살을 붙인 것이다. 초한지라는 명칭 자체도 사실상 고우영 화백이 최초로 소개했다. 물론 서로 다른 작품이라고 해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했으므로 줄거리는 모두 비슷하다.
가장 일반화 된 줄거리는 진시황의 천하통일 후, 억압 받던 민중들이 난을 일으키자, 초나라 귀족이던 항량과 조카 항우가 난세를 틈타 대두하고, 한 켠에선 유방이 몸을 일으켜 세를 불려 천하를 놓고 대립하다가, 유방의 승리로 끝나는 내용이다.
일부 번안가들은 창해공의 진시황 암살 음모부터 시작하거나, 여불위 이야기부터 시작하고, 마지막 부분도 토사구팽에서 벗어나서 오초 7국의 난과 한무제의 즉위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수호지나 삼국지연의와 같이 전형적인 중국식 영웅상인 유방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 자신은 무능하지만 인덕으로 주위에 유능한 사람이 몰린다는 중국식 영웅의 원조가 바로 한고조 유방이다. 그 외에도 한삼걸의 포스, 항우의 먼치킨스러운 무력과 행적, 그리고 비극적인 몰락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다다익선(多多益善), 국사무쌍(國士無雙), 배수진(背水陣), 사면초가(四面楚歌), 토사구팽(兎死狗烹), 금의환향(錦衣還鄕), 금의야행(錦衣夜行) 등 친숙한 숙어가 다수 나온다.
3.등장인물
3.1. 초나라
[편집]
항우
항량
항백
범증
종리말
계포
용저
환초
주란
영포
항백
항장
주은
무섭
우미인
우영: 가공인물.
포장군
조구
정공
우자기: 우미인의 오빠로 설정된 가공인물.
3.2. 한나라
유방
번쾌
진평
장량
한신
소하
조참
여후
역이기
왕릉
주발
하후영
관영
노관
팽월
숙손통
수하
육가
3.3. 진나라
진시황
영호해
자영
이사
부소
몽염
이유
조고
장한
사마흔
동예
왕리
은통
3.4. 기타
진승
장이
진여
위표
사마앙
신양
괴철
창해 역사
묵돌
8>.눈물-며느리와 시어머니
http://cafe.daum.net/stigma50/85wA/425
■난 울고 말았네!
많은 감동을 받은 글이라 공유하고 싶어, 글을 올립니다.
끝까지 읽으시다가, 울지 마시길 바랍니다.
감동 그 자체입니다^^^
내 나이 11살에 아버지가 돌아 가셨다.
내 아래론 여동생이 하나 있다.
전업 주부였던 엄마는
그 때부터 생계를 책임지셔야 했다.
못 먹고, 못 입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여유롭진 않았다.
대학 졸업 후,
입사 2년 만에 결혼을 하였다.
처음부터 시어머니가 좋았다.
시어머님도 처음부터 날 아주 마음에 들어 하셨다.
10년 전,
결혼 만 1년 만에 친정엄마가 암 선고를 받으셨다.
난 엄마 건강도 걱정이었지만,
수술비와 입원비 걱정부터 해야 했다.
남편에게 얘기했다.
남편은 걱정 말라고 내일 돈을 융통해 볼 터이니
오늘은 푹 자라고 얘기해 주었다.
다음 날,
친정엄마 입원을 시키려 친정에 갔지만,
엄마도 선뜻 나서질 못하셨다.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 몇 개 있으니,
4일 후에 입원하자 하셨다.
집에 돌아 오는 버스 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 때, 시어머님께서 전화가 왔다.
"지은아. 너 울어?
울지 말고 ..... 내일 3시간만 시간 내 다오"
다음 날 시어머님과의 약속 장소에 나갔다.
시어머님이 무작정 한의원으로 날 데려 가셨다.
미리 전화 예약 하셨는지 원장님께서 말씀하셨다.
"간병하셔야 한다고요?"
맥 짚어 보시고 몸에 좋은 약을 한 재 지어 주셨다.
그리고 백화점에 데려 가셨다.
솔직히 속으론 좀 답답했다.
죄송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트레이닝복과 간편복 4벌을 사 주셨다.
선식도 사 주셨다.
함께 집으로 왔다.
어머니께서 그제서야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환자 보다 간병하는 사람이 더 힘들어.
병원에만 있다고 아무렇게나 먹지 말고,
아무렇게나 입고 있지 말고.."
말씀하시며 봉투를 내미셨다.
"엄마 병원비 보태써라~.
네가 시집온 지 얼마나 됐다고 돈이 있겠어...
그리고 이건 죽을 때까지 너랑 나랑 비밀로 하자.
네 남편이 병원비 구해 오면 그것도 보태 써...
내 아들이지만,
남자들 유치하고 애 같은 구석이 있어서
부부 싸움 할 때 꼭 친정으로 돈 들어 간 거
한 번씩은 얘기하게 되어 있어.
그니까 우리 둘만 알자."
마다했지만 끝끝내 내 손에 꼭 쥐어 주셨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시어머님께 기대어
엉엉 울고 있었다.
2천만원이였다...
친정엄마는 그 도움으로 수술하시고 치료 받으셨지만,
이듬 해 봄...
엄마는 돌아 가셨다.
병원에서 오늘이 고비라고 하였다.
눈물이 났다.
남편에게 전화했고,
갑자기 시어머님 생각이 났다.
나도 모르게 울면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시어머님은 한 걸음에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남편 보다 더 빨리 병원에 도착하셨다.
엄마는 의식이 없으셨다.
엄마 귀에 대고 말씀드렸다.
"엄마... 우리 어머니 오셨어요...
엄마......
작년에 엄마 수술비 어머님이 해 주셨어.
엄마 얼굴 하루라도 더 볼 수 있으라고..."
엄마는 미동도 없으셨다.
당연한 결과였다.
시어머님께서 지갑에서 주섬 주섬 무얼 꺼내서
엄마 손에 쥐어 주셨다.
우리의 결혼사진이었다.
"사부인... 저예요.. 지은이 걱정 말고.
사돈 처녀 정은이도 걱정 말아요.
지은이는 이미 제 딸이고요....
사돈 처녀도 내가 혼수 잘 해서 시집 보내 줄께요..
걱정 마시고 편히 가세요..."
그 때 거짓말처럼
친정엄마가 의식 없는 채로 눈물을 흘리셨다.
엄마는 듣고 계신 거였다.
가족들이 다 왔고
엄마는 2시간을 넘기지 못하신 채, 그대로 눈을 감으셨다.
망연자실 눈물만 흘리고 있는 날 붙잡고
시어머니께서 함께 울어 주셨다.
시어머님은 가시라는 데도 3일 내내
빈소를 함께 지켜 주셨다.
우린 친척도 없다.
사는 게 벅차서 엄마도 따로 연락 주고 받는
친구도 없었다.
하지만 엄마의 빈소는 시어머님 덕분에
3일 내내 시끄러웠다.
"빈소가 썰렁하면 가시는 길이 외로워..........."
친정 엄마가 돌아 가시고
시어머님는 내 동생까지 잘 챙겨 주셨다.
가족끼리 외식하거나,
여행 갈 땐 꼭~ 내 동생을 챙겨 주셨다.
내 동생이 결혼을 한다고 했다.
동생과 시어머님은 고맙게도 정말 나 이상으로
잘 지내 주었다..
시어머님이 또 다시 나에게 봉투를 내미신다.
"어머님. 남편이랑 따로 정은이 결혼 자금 마련해 놨어요.
마음만 감사히 받을 께요"
도망치듯 돈을 받지 않고 나왔다.
버스정류장에 다달았을 때 문자가 왔다.
내 통장으로 3천만원이 입금되었다.
그 길로 다시 시어머님께 달려 갔다.
어머니께 너무 죄송해서 울면서 짜증도 부렸다.
안받겠다고...
시어머님께서 함께 우시면서 말씀하셨다.
"지은아...
너 기억 안나?
친정 엄마 돌아 가실 때 내가 약속 드렸잖아.
혼수해서 시집 잘 보내 주겠다고...
나 이거 안하면 나중에
네 엄마를 무슨 낯으로 뵙겠어"
시어머님은 친정엄마에게 혼자 하신 약속을 지켜 주셨다.
난 그 날도 또 엉엉 울었다.
시어머님께서 말씀하신다.
"순둥이~ 착해 빠져 가지고 어디에 쓸꼬....
젤 불쌍한 사람이 도움을 주지도,
받을 줄도 모르는 사람이야...
그리고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하고
울고 싶을 땐 목 놓아 울어 버려"
제부 될 사람이
우리 시어머님께 따로 인사드리고 싶다 해서 자리를 마련했다.
시부모님, 우리 부부, 동생네.
그 때 시어머님이 시아버님께 사인을 보내셨다.
그 때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다.
"초면에 이런 얘기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사돈 처녀 혼주자리에 우리가 앉았음 좋겠는데..."
혼주자리엔 사실 우리 부부가 앉으려 했었다.
"다 알고 결혼하는 것이지만,
그 쪽도 모든 사람들에게 다 친정 부모님 안 계시다고
말씀 안드렸을 텐데...
다른 사람들 보는 눈도 있고...."
그랬다.
난 거기까진 생각을 못했던 부분이었다.
내 동생네 부부는 너무도 감사하다며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내 동생은 우리 시아버지 손을 잡고 신부 입장을 하였다.
내 동생 부부는 우리 부부 이상으로 우리 시댁에 잘 해 주었다.
오늘은 우리 시어머님의 49제였다.
가족들과 동생네 부부와 함께 다녀 왔다.
오는 길에 동생도, 나도 많이 울었다.
오늘 10년 전 어머니와 했던 비밀 약속을 남편에게 털어 놓았다.
그 때, 병원비 어머니께서 해 주셨다고...
남편과 난 부등켜 안고
시어머님 그리움에 엉엉 울어 버렸다.....
난 지금 아들이 둘이다.
난 지금도 내 생활비를 쪼개서 따로 적금을 들고 있다.
내 시어머님께서 나에게 해주셨던 것처럼,
나도 나중에 내 며느리들에게 돌려 주고 싶다.
내 휴대폰 단축번호 1번은
아직도 우리 시어머님이다.
항상 나에게 한 없는 사랑 베풀어 주신
우리 어머님이다.
어머님....
우리 어머님...
너무 감사합니다.
어머니 가르침 덕분에 제가 바로 설 수 있었어요.
힘들 시간 잘 이겨낼 수 있었고요..
어머님...
넘 사랑합니다...
그립습니다...
제가 꼭 어머니께 받은 은혜,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고
사랑하고
나누며 살겠습니다....
너무 보고 싶어요...
- 수기공모 大賞 글 -
9>.♡성공한 인생???♡
*10대ㅡ
돈 많은 아버지 뒀으면 성공한 인생.
*20대ㅡ
명문대학 다니는 학생이면 성공한 인생.
*30대ㅡ
연봉 많은 대기업 회사원이면 성공한 인생.
*40대ㅡ
술자리에서 2차를 쏠 수 있으면 성공한 인생.
*50대ㅡ
공부 잘 하는 자녀가 있으면 성공한 인생.
*60대ㅡ
아직도 직장에서 돈 벌면 성공한 인생.
*70대ㅡ
병 없이 몸만 건강하면 성공한 인생.
*80대ㅡ
아직도 본처가 밥 차려 주면 성공한 인생.
*90대ㅡ
전화 걸어 오는 사람이 있으면, 성공한 인생.
*100세ㅡ
자고 나서 아침에 눈 뜨면 성공한 인생.
성공?
그거 별거 있남~!!!
카톡, 주고 받으면
엄청 성공한 인생인기라 애~~(입술)
10>.♡대한민국에서 없어진 것 5가지!
첫째,
귀신과 도깨비는 전기가 들어 오면서 없어졌고,
둘째,
호랑이와 늑대는 6.25전쟁 때 없어졌다.
셋째,
보릿고개와 굶주림은 박정희 덕택에 없어졌고,
넷째,
간첩, 첩자란 말은 김대중, 노무현 때 없어졌다.
다섯째,
2014년 12월 19일에 '통합진보당'이 없어졌다.
11>.# 잡초 #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이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또한 잡초입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 것이지요...
산삼도
원래는 잡초였을 겁니다.
사람도 같습니다.
제가 꼭 필요한 곳,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
산삼 보다 귀하고,
뻗어야 할 자리가 아닌데,
다리 뻗고 뭉개면 잡초가 된답니다.
타고 난
아름다운 자질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잡초로 살아 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지요.
보리밭에 난 밀처럼,
자리를 가리지 못해,
뽑히어 버려지는 삶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각자는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너무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가
타고난 자신 만의 아름다운 자질을
맘껏 펼치시어
"들풀" 같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산삼이라도
잡초가 될 수 있고,
이름 없는 들풀도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자기가 있는 자리가
가장 좋은 자리라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 가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