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산 너머” 73~81
노을 지는 언덕
막내는 두 귀 밑 볼이 부은 듯하고 입술이 두툼하여 뚱해 보이는 것이었으나 실제는 영 달랐다. 그저 눕혀 놓은 대로, 안아 주면 안아 주는 대로 검은 눈동자만 또록또록 굴릴 뿐 좀체로 울지를 않았다.
나이 들어서 낳은 관계로 어머니의 젖은 아기에게 늘 부족하였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웃에 살고 있는 큰딸이 아들을 낳았다 그래서 막내는 누님의 젖을 얻어먹으며 자랐다.
어쩌다 어머니나 누님들이 으르면 배시시 웃기나 하고, 우는 일이 드문 이 막내 이름은 호적에는 수환으로 올렸으나 ㅈ비에서는 순하다고 해서 순환이라고 불렀다.
특히 아버지는 충청도의 독특한 억양으로
“수운하안아”
라고 불러서 이웃 사람들이 따라서 흉내 내며 웃곤 하였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나이층에 앉혀 더러 변한다. 순하던 아이가 때쟁이 울보로 되는가 하면 때쟁이가 부끄럼타는 순한 아이로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집 막내는 도통 변화가 없었다.
말이 적고, 좋으면 그저 씨익 웃기나 하는,
이 막내가 세 살 나던 해에 이 집은 이불 보퉁이에 솥과 식기와 옷 보퉁이 몇 개만을 꾸린 채로 대구에서 선산으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가 큰아버지의 빛보증을 섰다가 망한 것이었다. 이 충격으로 아버지 몸져눕게 되어 이때부터 어머니가 집안의 모든 일을 처리하여만 했다.
어머니는 선산으로 이사한 다음 날부터 국화빵 굽는 가게를 사서 거리로 나가 국화빵 장사를 시작했다. 아침 일찍부터 커다란 옹기 항아리에 밀가루 반죽을 해서 이고, 한 손에는 막내의 손목을 잡고 읍내 공터로 나갔다.
그곳에서는 곡마단이 들어와 굿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던 것이다.
어머니는 첫 빵을 구워 낼 때는 꼭꼭 성호를 그었다. 그러고는 그중에서 잘 익은 빵 하나를 골라서 막내한테 건네주었다.
“먹어려무나.”그런데도 막내는 두 손바닥 위에 빵을 받쳐 들고는 내려다보고 있기만 했다.
“먹으래두.”
“엄마.”
“왜?”
“하느님, 감사합니다. 해야지?”
“그렇지, 그렇게 기도하고 먹어야지.”
“엄마.”
“왜?”
“엄마, 감사합니다. 해야지?”
“원, 녀석도.”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어머니는 얼른 푸른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젓혔다. 곡마단의 막이 열리는지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근처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나팔 소리가 나자 휘장이 처져 있는 곡마단 출입구로 일제히 달려갔다. 막내도 슬그머니 일어나서 쭈빗거리며 그쪽으로 갔다. 아이들 중 몇은 땀에 젖은 돈을 내밀고서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막내는 이내 돌아왔다.
어머니가 구워진 빵을 들어내며 물었다.
“수환아, 너도 구경하고 싶지?”
막내는 의외에도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아까까지 앉았던 자리에 주저앉아 어머니 허리에 머리와 어깨를 기대었다.
어머니는 빵 가게에 반죽을 부으며 다시 물었다.
“수환아, 너는 곡마단이 싫니?”
“아니야.”
“그런데 왜 곡마단 구경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하니?”
“나는 곡마단보다 엄마가 더 좋아.”
“원, 녀석도.”
어머니는 팔을 내려서 아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엄마,”
“응?”
아이 편에서는 그러나 말이 없었다.
어머니가 궁금해서 물었다.
“왜 불러 놓고 말이 없는 거니?”
“그냥 엄마 대답이 듣고 싶어서야, 엄마,”
“원, 녀석도.”
“정말이야, 엄마, 나는 엄마 냄새를 맡는 것이 좋아, 엄마를 보는 것이 좋고.”
바람이 불어서 떨어져 있는 나뭇잎을 굴러올 뿐 어머니와 아이가 지켜보고 있는 국화빵 파는 데는 손님이 없었다. 저쪽 길가 편에 있는 국화빵 파는 곳에만 사람들이 발길이 닿고 있었다.
어머니는 무료하여 막내한테 말을 시켰다.
“수환아.”
“네,”
“엄마가 좋으면 엄마가 좋아하는 분도 수환이가 좋아하겠지?”
“엄마는 누굴 좋아하는데?”
오랜만에 막내가 검은 눈동자를 또록또록 굴렸다.
“엄마가 좋아하는 분은 다른 분이 아니고 천주님이시단다.”
막내의 얼굴이 온통 소리 없는 웃음꽃이 되었다. 모처럼 빵을 사려고 소녀가 하나 와서 손을 내밀었다. 어머니는 두 손으로 돈을 받고 두 손으로 빵을 내밀어 주며 말했다.
“고마워요. 맛있게 먹어요.”소녀 소님이 돌아가자 어머니가 아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수환아, 너는 엄마를 얼마만큼 좋아하니?”막내는 두 팔을 한껏 벌려 보이며 말했다.
“하늘만큼 땅만큼.”
어머니도 두 팔을 한껏 벌려 보이며 말했다.
“나도 천주님을 하늘만큼 땅만큼 좋아한다.”
막내의 얼굴은 다시 소리 없이 웃음꽃이 되었다 하늘에서도 발그래이 꽃물이 번졌다 노을이었다.
어머니는 주섬주섬 주변을 정리했다. 빵틀의 숫불을 끄고 팔다 남은 빵을 종이에 쌌다.
막내가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잡고 흔들었다.
“엄마,‘
“왜?”
“내한테 빵 한 개만 줘요.”
“네가 먹으려고?”
“아니야, 엄마, 저기에 저 아이한테 주려고.”
막내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고 있는 담 밑에는 옷이 남루한 아이 하나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신발도 신지 안은 채 맨발로 있는 것으로 보아서 얻어먹고 다니는 아이 같았다.
막내는 어머니가 건네주는 빵을 가지고 달려갔다. 아이의 손 위에 빵을 놓아 주고는 아내 돌아왔다. 어머니는 혼자 중얼거렸다.
“원, 녀석도.”어머니는 빵이며 밀가루며 도구를 챙겨서 머리에 이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밤길을 걸었다. 막내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잡고 종종종 따라왔다.
“이젠 이 국화빵 굽는 일을 그만둬야 할까 보다.”
“왜, 엄마?”
“한 군데서 두 집이 장사를 하다 보니 두 집 다 밥 굶게 생겼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하지, 엄마?”
“행상을 해야 할까 보다, 등잔 기름도 이고 다니며 팔고, 참기름도 이고 다니며 팔고.”“그러면 엄마, 나 안 데리고 다닐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