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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0편
하나님의 참된 인자하심을 의지하고 찬양
2021-2-12, 금
맥락과 의미
시편 40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을 기다린 사람이 구원을 얻고 새 노래로 주님을 찬양합니다(1-5절).
2. 큰 어려움에서 구원을 얻은 이 성도는 주님의 인자를 항상 찬송하겠다고 말합니다6-11절)
3. 다시 갑자기 어려움을 호소하고 죄를 고백하며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12-17절)
구원을 얻어 주님을 찬송하는 성도도 여전히 죄의 문제와 씨름합니다. 우리의 이러한 형편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 시편으로 바르게 회개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참된 위로를 얻습니다.
1. 구원의 새 노래 (1-5절)
1) 부르짖음과 구원 (1-2절)
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여호와를 내가 바라고 바랐다” 하는 말로 노래를 시작합니다. 이 성도는 오랫동안 오직 주님만을 기다렸습니다. 여호와께서 몸을 굽혀서 살피시고 그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셨습니다.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으로부터 건짐을 받았습니다. “기가 막힐 웅덩이”로 번역된 이 “물이 소리를 치는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캄캄한 우물에 갇혔는데 홍수가 내려와 그 위를 덮었습니다. 죽음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참조. 시편 69:2, 14, 예레미야 애가 3:53-54).
수렁은 점점 빠져 들어가는 늪을 말합니다. 사망의 우물과 수렁에 빠지면 온몸의 힘이 다 빠지고 서서히 죽어 갑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성도는 부르짖었습니다.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손을 내밀어 구원해 주셨습니다.
2) 주님께서 주신 새 노래의 효험 (3절)
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구원을 얻은 성도는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께 드릴 찬송을 자기 입에 두셨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하는 감사의 찬송 조차 자신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립니다.
그 노래를 들은 사람이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찬송은 하나님의 구원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히 13:15).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증언하는 그 노래를 사용하여서 다른 사람을 주님의 백성으로 새로 지으십니다. 그들도 이 성도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신뢰합니다.
3) 복된 자와 교만한 자 (4절)
4 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 성도와 함께 찬양하며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됩니다. 그와 반대되는 사람으로 “교만한 자”와 “거짓된 자”가 있습니다. “교만한 자”는 히브리어는 “라합”입니다. 바다를 흉용하게 한다는 상징적 동물입니다. 이들은 여호와의 율법을 읊조리는 대신 자기의 꾀를 읊조리고, 자기의 꾀를 가지고 사람을 이끌어 가는 자들이 바로 “라합”입니다. 그들의 교만은 여호와를 대적하고 그분이 세우신 왕에게 대적하는 사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교만한 그들은 자신의 말을 잘 따르는 사람에게는 잘해 주지만, 따르지 않으면 라합처럼 흉용한 물을 일으키며 그들을 삼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없는 자는 반드시 교만하고 거짓말하는 자가 됩니다. 야망이 큰 사람들은 사람들을 사로잡는 큰 이야기를 하여 자신을 신뢰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와 다른 약속을 하며 사람을 조직합니다. 교만하고 거짓된 자를 따르는 무리가 만들어 집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러한 무리와 함께하지 않습니다(시 1:1).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4) 우리를 위한 주님의 기이한 일과 생각 (5절)
5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성도는 주님께서 베푸신 기이한 일들을 생각하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자기를 구원해 주신 크신 은혜를 기억하고, 자기 입에 두신 새 노래로 찬송할 때 그 찬송을 통하여 주님을 믿는 자들을 일으켜 주신 일을 생각하며 주님을 높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이한 일”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향하신 그분이 계획하신 “생각” 대로 역사 가운데서 이루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이 셀 수도 없고 파악할 수 없는 신비한 것입니다.
2. 감사의 찬송과 헌신 (6-11절)
6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1) 귀를 열어 들려주신 말씀 (6절)
백성을 구원하시는 생각을 깨달은 시인은 주님의 뜻을 행하고 주님의 율법을 마음에 간직하겠다고 헌신합니다. “귀를 통하여 들린다.” “귀를 열어서 들려준다”는 뜻입니다. 이전에는 귀가 다른 것으로 막혀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그것을 파내어 말씀이 잘 들립니다. 마음과 귀가 새로와 져서 말씀이 마음에 들어갔습니다(렘 6:10; 행 7:51).
귀가 열리자 이 성도는 깨닫았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제사라 아니라 말씀에 대한 순종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와 소제를 기뻐하지도 않으시고,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도 않으신다고 합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통해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셨기 때문에 이 성도가 그 제사드리는 일을 그만 둔 것은 아닙니다. 사울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며 형식적으로 드리는 제사를 받으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사무엘상 15:22-23).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그러한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상한 심령이고(시 51:17) 하나님의 계명을 마음에서부터 순종하는 것이다. 나는 마음에서부터 주의 계명을 지키며 나아가겠다” 하고 고백합니다.
2) 두루마리에 기록된 말씀과 헌신의 다짐 (7-8절)
7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8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두루마리 책에 시인에 대하여 기록된 내용이 무엇일까요? 이 시편을 지은 다윗은 왕이기 때문에 왕이 할 일을 기록한 신명기 17장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루마리책은 율법 전체를 말합니다. 모든 율법은 모든 성도들에게 지키라고 주신 것입니다. 성도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율법이 있습니다. 그것을 행하는 것이 자기의 즐거움입니다. 말씀을 깨달은 시인은 주님의 뜻 행하기를 기뻐하여 그 길로 힘차게 달려갈 것입니다.
3) 찬송과 확신 (9-11절)
9 내가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10 내가 주의 공의를 내 심중에 숨기지 아니하고
주의 성실과 구원을 선포하였으며
내가 주의 인자와 진리를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감추지 아니하였나이다
11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이 성도는 결심대로 하나님의 율법을 마음에 새기고 행했을 것입니다. 9-11절은 자기의 행함과 순종에 대한 말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복음을 많은 성도가 모인 곳에서 전하며 찬양했습니다.
“주님의 의로우심(9,10)”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죄를 징계하시는 데에서 나타납니다. 또 구원을 베푸시는 데에서 나타납니다(10절)
이러한 의로움은 “인자와 진리(신실, 성실)”(9,10)에 기초해 있습니다. 이 두 말은 하나님께서 언약의 신실하심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자에게 징계와 심판을 내리십니다. 언약의 말씀에 호소하며 나오는 자에게는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이러한 주님을 향하여 입을 열고 찬송한 이 성도는(9절), “주님의 긍휼하심을 거두지 않고” 그분의 인자와 진실로써 보존해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11절). 11절은 “보호하소서”라고 기도로 해설될 수도 있지만 “보호할 것입니다.”는 확신의 뜻이 있습니다. 찬송의 결과 그는 큰 확신 가운데로 들어갑니다.
3. 새로운 회개 (12-17절)
12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나를 덮치므로 우러러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13 여호와여 은총을 베푸사 나를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11절에 성도는 언약에 신실하고 자비로운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12절은 머리털보다 더 많은 죄로 인해 셀 수 없는 재난이 자기를 에워쌌다고 고백합니다. 그 재난에서 속히 구원하여 주시기를 주님께 간청합니다.
1) 구원과 회개 (12-13절)
왜 다시 죄의 문제를 말할까요? 어쩌면 구원의 은혜를 맛보았는데 다시금 넘어져 죄를 지었는지도 모릅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말하면 우리가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참조. 요일 1:8-10). 혹은 주님의 사랑을 더 깊이 맛보아 알게 되자 과거에 그냥 지나친 일 가운데 죄악된 것을 발견합니다. 혹은 과거의 죄의 결과로 현재 어려움을 겪으며 그 죄를 더 깊이 깨닫습니다.
이 죄악 때문에 원수들이 자기의 영혼을 잡아채려고 달려드는 일이 일어났다고 고백합니다.
자기의 죄를 있는 그대로 다 고백하고 “셀 수 없다” 하고 인정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를 구원하려는 주님의 생각이 “셀 수 없기에”(5절)는 자기의 “셀 수 없는” 죄도 모두 용서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 은혜 때문에 죄악을 고백합니다.
우리도 죄를 고백하며 회개하는 것은 이미 성령님께서 우리를 은혜의 세계로 들어오게 하셨다는 증거입니다.
2) 세상의 조롱과 수치 (14-15절)
14 내 생명을 찾아 멸하려 하는 자는
다 수치와 낭패를 당하게 하시며
나의 해를 기뻐하는 자는
다 물러가 욕을 당하게 하소서
15 나를 향하여 하하 하하 하며 조소하는 자들이
자기 수치로 말미암아 놀라게 하소서
죄 때문에 이 성도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을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근원적인 증오심을 가진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멸망시키려는 동기로 조롱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네가 이런 어려움에 빠졌으니 하나님이 정말로 있느냐?” 우리가 이런 조롱을 받을 때 앞서간 성도들도 같은 조롱을 받았음을 알고 위로받읍시다.
3) 고난 중의 소원 - 찬송 (16절)
16 주를 찾는 자는 다
주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이런 조롱을 받을 때에 맞대응하지 않습니다. 다른 데서 도움을 구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을 찾습니다. 소망합니다. “여호와는 위대하다”는 찬송을 모든 성도와 함께 부르는 것을 소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들으실 만한 아름다운 소망입니다. 여호와께서 교만한 악인을 심판하시면 “하하” 웃던 악인들은 잠잠하게 될 것입니다.
4) 또 다른 기다림 - 신자의 삶 (17절)
17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시편 40편은 기도로 끝납니다. 성도가 찬양하는 하나님은 높으시지만 성도는 가난하고 궁핍한 존재입니다. 경제적으로 또 다른 면에서도 부족하고 불쌍한 자라는 뜻입니다. “나의 도움”과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을 부르며 도와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성도의 삶에는 계속되는 고난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맛본 후에도 큰 고난의 날이 오고, 더 큰 고난이 올 것이다. 복음이 약속하지 않은 것으로 스스로에게 약속하지 말라”(어거스틴). 더구나 죄와의 싸움은 계속됩니다. 죄와 싸움에서 넘어질 때 하나님의 징계도 있을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만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17절의 고백은 1절로 되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제자리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과 다릅니다. 자신의 불쌍함과 가난함을 고백하고 주님이 도와주시기를 간구하는 성도는 날마다 새로운 구원을 맛봅니다. 새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실패 속에도 계속 다시 일어나며 더 높이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 들어갑니다.
4.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시편
시편 40편에는 “나의 발”, “나의 걸음”, “저의 두 귀”, “저의 입술”, “저의 마음”과 같이 “나”라는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동시에 이 시편은 우리의 구원자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의 성취하심 안에서 내가 구체적으로 주님을 믿고 행하도록 이 시편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1)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심-히브리서 10장(시편 40:6-8, 히브리서 10:1-14)
시편 40편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성취하셨습니다.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왔나이다.”(6-8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계명에 온전히 순종하고 나가시며 40편의 뜻을 충만히 이루셨습니다(히브리서 10:1-15). 하나님의 아들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죽으심으로써 그 이전에 드리던 제사를 다 완성하셨습니다. 그래서 폐지하셨습니다.
그 이전의 제사에서는 제사장도 불완전했고 제물도 불완전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장 온전한 순종을 하셨습니다. 그 분의 몸으로 한 번의 제사로서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백성의 죄를 다 사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순종을 통해서 구약 제사가 필요없게 만들었습니다.
2)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인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시편 40편은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이루어 집니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만을 기다리고 기다리는” 사람이고,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여 주셨을 때에는 새 노래로 주님을 찬양하는 사람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주님의 구원을 맛본 신자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 새 노래를 부릅니다. 이 노래는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사람들 외에는 배울 자가 없는 노래입니다(계 14:3).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 신자만이 이러한 노래를 부릅니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처럼 율법을 마음에 새기고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의 계명을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요 4:34)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의 길로 가셨습니다. 말씀을 깨달은 신자는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걸어갑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을 믿고 본받으며 순종의 길을 걸어갑니다.
셋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구원만을 바라고 살기에 그리스도처럼 조롱받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항상 자기를 살피고 자기의 죄를 회개합니다. 우리의 죄를 보고, 우리가 당하는 고난 가운데 우리의 약함을 체휼하시는 대제사장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서 간구합니다. 날마다 회개하며 새롭게 됩니다. 날마나 고난가운데 건짐받는 체험을 합니다.
믿고 복종할 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편 40편을 노래하며 구원의 은혜를 점점 더 풍성하게 체험합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그 은혜를 찬양합니다. 여러 어려움 가운데 인내하며 이기며 나가게 하신 것을 찬양합니다.
그리스도의 죄용서의 은혜를 받은 후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가는 일에 헌신하겠다고 노래합시다. 형식적인 예배와 종교생활이 아니라 삶 전체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립시다.
그리고 새롭게 죄와 고난과 싸우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립시다.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로 모든 성도들이 구원의 은혜를 찬양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기를 기도하며 찬송합시다.
찬송은 순종과 회개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순종이 없는 찬송은 힘이 없습니다. 회개가 없으면 참다운 순종도, 참다운 찬송도 할 수 없습니다. 깊은 수렁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한 사람만이 주님의 구원을 높이 찬송할 수 있습니다. “구원 - 감사 – 회개”를 가르치는 이 시편이 바로 신자가 부르는 새 노래입니다.
다윗은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이 시편을 지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된 일들을 보고 더욱 즐거운 소리로 이 시편을 부릅니다. 주님의 이름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될 날을 바라며 항상 회개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입술에 두신 이 새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참고> 4절 복되다. 시편의 제1권의 처음 1,2편과 마지막 40,41편은 “복되다”를 선언
4절은 “복되다”로 시작합니다. 1권의 마지막 두 편(40, 41편)에서 “복되다” 하고 선언합니다. 1권의 처음 두 편(1, 2편)에서 똑같이 “복되다” 하고 선언하는 것과 연결됩니다. 1:1에서는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읊조리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선언하였습니다. 2:12에서는 여호와께서 세우신 아드님을 왕으로 믿지 않는 자에게 화가 있지만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하는 말로 끝납니다. 이렇게 시편 제1권의 처음 두 편과 마지막 두 편에서 “복이 있도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1권 전체를 이 말로써 묶어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이 시편 40편을 1-2편과 관련하여 이해하게 됩니다.
1권의 구조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는데, 이것은 4절에 나오는 “교만한 자”와 “거짓된 자”를 더 살피려고 한 것입니다. 교만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라합”인데, 라합은 바다를 흉용하게 하는 신비한 동물로 혼돈의 세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시 89:10). 1편과 2편의 맥락에서 이 단어를 살피면 라합은 교만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읊조리는 대신에 자기의 꾀를 읊조리고, 자기의 꾀를 가지고 사람을 이끌어서 가는 자들이 바로 “라합”입니다. 그들의 교만은 여호와를 대적하고 그분이 세우신 왕에게 대적하는 사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교만한 그들은 자기의 말을 잘 따르는 사람에게는 잘해 주지만, 따르지 않으면 라합처럼 흉용한 물을 일으키면서 그들을 삼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참고> 6절,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제사와 순종을 대비시키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가지가 대립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시를 쓴 다윗은 사울의 실패를 알고 있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면서 형식적으로 제사를 드렸을 때에 사무엘은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밝히 말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邪術)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邪神)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삼상 15: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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