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으레이 이때쯤에는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새 해 첫날의 계획이 얼마나 달성되고 완성도가 높았는지 살핀다. 금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벌써 몇 년째 요양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뵙는 날이다. 비대면과 대면을 오가며 어머니를 만난다.
얼굴을 보지 못할 때에는 언제 볼 수 있으려나 기다려진다. 막상 만나면 마음이 쓰린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초췌한 얼굴이다. 몸은 벌써 굳어져 걷지 못한지 오래다. 오른쪽 손과 발은 마비가 되어 감각이 없다. 오 년 전 어느 가을날 갑자기 쓰러져 119에 실려 병원 응급실로 간 후 지금까지 병원 신세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체 기능과 의사소통까지 어려워진다.
자식이 당신의 이름을 불러도 찾아온 사람이 누구인지 구분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상황에 본인 또한 답답함이 그지 없다. 필담도 안된다. 요양 병원을 찾아가는 시간은 만남의 기쁨보다 답답함이 오히려 밀려온다. 음식물 삼킴이 어려워 콧 줄로 미음을 공급하고 있다. 몸이 점점 웅크러들고 인지 능력이 떨어진다. 근력은 처지고 혼자 힘으로는 몸을 움직이지 못할만큼 쇠잔해졌다. 어쩌면 연명하는 병원 생활을 하고 있다. 만남 자체가 두려워지기까지 한다.
사십대의 나이에 남편을 질병으로 떠나 보냈다. 막내가 초등학교 1학년일때 남겨진 오남매 자식을 부양하기 위해 무작정 도시로 왔다. 생활 방편으로 갖가지 일을 하면서 가정을 지탱했다. 숱한 어려움 속에 밥벌이를 위한 일이라면 행상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 노력 덕분으로 자식들은 장성하여 자신들의 역할을 한다. 이제는 자식의 보살핌을 받고 편안함을 누리는 생활을 하는가 싶었는데 팔순을 넘기면서 갑자기 발병하여 병원에서 지낸다.
발병 첫 해는 관리 보균자여서 자주 만나지를 못했다. 관리 대상에서 제외되자요양병원으로 옮겨 관리를 받아왔다. 그나마 물리치료와 면회를 하면서 이야기를 잠시 나눌 수 있어 다행이었다. 갑자기 코로나19가 창궐 확산되어 사회적 거리두기와 취약의료시설에 속해 면회조차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담당 간호사에게 전화로 어머니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전부일 수 밖에 없다.
‘나뭇가지는 흔들리지 않으려 하지만 바람이 멈추어 주지 않고,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려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했던가. 내가 자식을 키워 결혼을 시키면서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엿본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자신이 작고 초라함을 느낀다.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지나간후면 애달프다 어이하리’.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연말에 한층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언제까지 함께 해 주실지 알 수 없는 유한한 시간이기에 자식의 마음은 늘 긴장하면서 대기상태다. 나 자신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모를 성심껏 모시지 못함에 서글픔을 느낀다.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고 했던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만이라도 어머니와 함께하면서 추억과 정을 쌓아가리라. 어머니! 사랑합니다. 자식의 불효를 용서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