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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사품법문경(佛說四品法門經)
서천(西天) 법현(法賢) 한역
송성수 번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서 대중과 함께 계셨다. 그때 존자(尊者) 아난은 고요한 방[靜室]에 홀로 있으면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세간의 중생들에게 있는 두려움ㆍ재앙ㆍ장애ㆍ질병ㆍ허물은 이미 생긴 것이나 장차 생길 것이나 모두 어리석은 사람[愚人]의 것이지 지혜로운 자[智者]에게는 없다.’
존자 아난은 이런 생각을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로 갔다.
부처님께서 계신 곳에 도착해 머리를 숙여 부처님 발에 절하며 문안을 마치고는 한쪽에 물러서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고요한 방에서 홀로 지내다가 마음에,
‘세간에 있는 두려움 등의 일들은 모두 어리석은 자에게만 있고 지혜로운 자에게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라건대 세존이시여, 저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자세히 들어라. 너에게 말해 주리라.”
아난은 말씀드렸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듣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아난아, 이러한 세간에 있는 두려움 같은 일들은 이미 생긴 것이나 장차 생길 것이나,
이른바 재앙ㆍ장애ㆍ질병ㆍ허물 등은 모두가 어리석은 자들의 것이며, 지혜로운 자에게는 없다.
아난아,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쌓아놓은 마른 풀이 불에 태워지는 것과 같으니,
어리석은 자들의 두려움 등의 일들 또한 이와 같다.
아난아, 이와 같아서 과거ㆍ미래ㆍ현재에서 어리석은 자에게는 재앙이 있고 지혜로운 자에게는 재앙이 없으며,
어리석은 자에게는 장애가 있고 지혜로운 자에게는 장애가 없으며,
어리석은 자에게는 질병이 있고 지혜로운 자에게는 질병이 없으며,
어리석은 자에게는 허물이 있고 지혜로운 자에게는 허물이 없다.
아난아, 어리석은 자의 법을 알고 지혜로운 자의 법을 분명히 알아야 하며,
어리석은 자의 법을 안 뒤에는 마땅히 멀리 여의고 지혜로운 자의 법을 행해야 한다.
이와 같이 아난아, 너는 배워야만 한다.”
아난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자를 어리석은 자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대답하셨다.
“어리석은 자란 어리석어 알지 못하는 자이니, 세간의 어리석은 자는 법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 어리석다고 한다.
알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법의 경계에 네 가지가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
이른바 계법(界法)을 알지 못하고,
처법(處法)을 알지 못하고,
연기법(緣起法)을 알지 못하고,
처비처법(處非處法)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난아, 이러한 법을 분명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자라 한다.”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네 가지 법을 알지 못하면 어리석은 자라 하겠습니다.
그럼 또 어떤 자를 지혜로운 자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지혜로운 자란, 법을 간택하여 옳고 그름을 잘 아는 까닭에 지혜로운 자라 한다.
잘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법의 경계에 또 네 가지가 있음을 아는 것이니,
이른바 계법(界法)을 잘 알고,
처법(處法)을 잘 알고,
연기법(緣起法)을 잘 알고,
처비처법(處非處法)을 잘 아는 것이다.
이러한 법들을 잘 아는 까닭에 지혜로운 자라 한다.”
아난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런 법을 잘 알면 지혜로운 자라 하겠습니다.
그럼 이 지혜로운 자는 어떤 계법(界法)을 아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잘 물었다. 너에게 말하리라.
계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른바 안계(眼界)ㆍ색계(色界)ㆍ안식계(眼識界)와,
이계(耳界)ㆍ성계(聲界)ㆍ이식계(耳識界)와,
비계(鼻界)ㆍ향계(香界)ㆍ비식계(鼻識界)와,
설계(舌界)ㆍ미계(味界)ㆍ설식계(舌識界)와,
신계(身界)ㆍ촉계(觸界)ㆍ신식계(身識界)와,
의계(意界)ㆍ법계(法界)ㆍ의식계(意識界)로서,
이 18계(界)를 지혜로운 자는 여실하게 분명히 안다.
또 6계(界)가 있으니,
이른바 지계(地界)ㆍ수계(水界)ㆍ화계(火界)ㆍ풍계(風界)ㆍ공계(空界)ㆍ식계(識界)이다.
이러한 6계를 지혜로운 자는 여실하게 분명히 안다.
또 6계(界)가 있으니,
이른바 기쁨의 계[喜界]ㆍ즐거움의 계[樂界]ㆍ괴로움의 계[苦界]ㆍ버림의 계[捨界]ㆍ무명의 계[無明界]ㆍ번뇌의 계[煩惱界]이다.
이러한 6계를 지혜로운 자는 여실하게 분명히 안다.
또 6계(界)가 있으니,
이른바 탐욕의 계[貪欲界]ㆍ성냄의 계[瞋恚界]ㆍ성내지 않는 계[不瞋界]ㆍ죽이는 계[殺害界]ㆍ죽이지 않는 계[不殺界]ㆍ벗어나는 계[出離界]이다.
이러한 6계를 지혜로운 자들은 여실하게 분명히 안다.
또 4계(界)가 있으니,
이른바 수계(受界)ㆍ상계(想界)ㆍ행계(行界)ㆍ식계(識界)이다.
이러한 4계를 지혜로운 자는 여실하게 분명히 안다.
또 3계(界)가 있으니,
이른바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이다.
이러한 3계를 지혜로운 자는 여실하게 분명히 안다.
또 3계가 있으니,
이른바 하계(下界)ㆍ중계(中界)ㆍ상계(上界)이다.
이러한 3계를 지혜로운 자는 여실하게 분명히 안다.
또 3계가 있으니,
이른바 선계(善界)ㆍ불선계(不善界)ㆍ무기계(無記界)이다.
이러한 3계를 지혜로운 자는 여실하게 분명히 안다.
또 3계가 있으니,
이른바 유학계(有學界)ㆍ무학계(無學界)ㆍ학무학계(學無學界)이다.
이러한 3계를 지혜로운 자는 여실하게 분명히 안다.
또 2계가 있으니,
이른바 유루계(有漏界)ㆍ무루계(無漏界)이다. 이러한 2계를 지혜로운 자는 여실하게 분명히 안다.
또 2계가 있으니,
이른바 유위계(有爲界)ㆍ무위계(無爲界)이다.
이러한 2계를 지혜로운 자는 여실하게 분명히 안다.
아난아,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계(界)를 모든 지혜로운 자들은 분명하게 잘 알 수 있다.”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지혜로운 자가 이렇게 계법(界法)을 분명하게 알고 나서는 또 어떻게 처법(處法)을 분명하게 압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처법(處法)이란, 이른바 12처(處)이니,
안처(眼處)ㆍ색처(色處)ㆍ이처(耳處)ㆍ성처(聲處)ㆍ비처(鼻處)ㆍ향처(香處)ㆍ설처(舌處)ㆍ미처(味處)ㆍ신처(身處)ㆍ촉처(觸處)ㆍ의처(意處)ㆍ법처(法處)이다. 러한 12처를 지혜로운 자는 여실하게 분명히 안다.”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지혜로운 자가 이렇게 12처를 분명하게 알고 나서는,
또 어떻게 연생법(緣生法:연기법)을 분명하게 압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자는 마땅히 12연법(緣法)의 인연에서 생김을 알아야 한다.
인연으로 말미암아 곧 모든 법이 존재하는 것이다.
인연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무명(無明)은 행(行)의 연(緣)이며, 행은 식(識)의 연이며, 식은 명색(名色)의 연이며, 명색은 6입(入)의 연이며, 6입은 촉(觸)의 연이며, 촉은 수(受)의 연이며, 수는 애(愛)의 연이며, 애는 취(取)의 연이며, 취는 유(有)의 연이며, 유는 생(生)의 연이며, 생은 노(老)ㆍ사(死)ㆍ우(憂)ㆍ비(悲)ㆍ고(苦)ㆍ뇌(惱)의 연이다.
이와 같이 하나의 커다란 괴로움 덩어리가 모인다.
위와 같이 인연하여 생기는 법임을 분명히 알면 인연의 성품은 공한 것이다.
인연이 모이면 있고 인연이 흩어지면 없어지는데, 인연이라는 법이 없는 까닭에 모든 법 또한 없는 것이다.
이른바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하고, 행이 멸하면 식이 멸하고, 식이 멸하면 명색이 멸하고, 명색이 멸하면 6입이 멸하고, 6입이 멸하면 촉이 멸하고, 촉이 멸하면 수가 멸하고, 수가 멸하면 애가 멸하고, 애가 멸하면 취가 멸하고, 취가 멸하면 유가 멸하고, 유가 멸하면 생이 멸하고, 생이 멸하면 노ㆍ사ㆍ우ㆍ비ㆍ고ㆍ뇌가 멸하니,
이와 같이 하나의 커다란 괴로움 덩어리가 멸한다.
이러한 생멸(生滅)의 법을 지혜로운 자는 여실하게 분명히 알아야 한다.”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 지혜로운 자가 연생법(緣生法)을 여실하게 안 뒤에는,
또 어떻게 처비처법(處非處法)을 분명하게 압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비처법(非處法)이란 다음과 같다.
몸과 입과 뜻으로 착하지 못한 업을 짓고서 즐겁고 좋은 과보를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 몸과 입과 뜻으로 온갖 착한 업을 짓고도 좋지 못한 과보를 받는다는 것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시처(是處)란 다음과 같다.
몸과 입과 뜻으로 온갖 착한 업을 짓고서 즐겁고 수승한 과보를 받는다고 하면, 그것은 옳다.
또 몸과 입과 뜻으로 착하지 못한 업을 짓고서 착하지 못한 과보를 받는다고 하면, 그것 역시 옳다.
또 아난아, 비처(非處)란 다음과 같다.
몸과 입과 뜻으로 착하지 못한 업을 지었어도 수승한 과보를 희망하면 그 인연으로 목숨을 마친 뒤에 인간이나 하늘에 태어난다고 하면,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 몸과 입과 뜻으로 착한 업을 지어도 나쁜 세계에 떨어진다는 것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시처(是處)란 다음과 같다.
몸과 입과 뜻으로 온갖 착한 업을 지어 인간이나 하늘에 태어났다고 하면, 이것은 옳다.
또 나쁜 업을 지어 나쁜 세계에 떨어졌다고 하면, 이것 역시 옳다.
또 아난아, 세간에 두 부처님이 함께 출현했다고 하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 부처님만 출현한다고 하면, 이것은 옳다.
또, 세상에 두 전륜왕이 함께 출현했다고 하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 전륜왕만 출현한다고 하면, 그건 옳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인이 전륜왕이 되어 세간을 다스린다거나 또는 사왕천주(四王天主)ㆍ도리천주(忉利天主)ㆍ대범천왕(大梵天王)이 된다거나 연각(緣覺)의 위없는 보리를 이룬다고 한다면,
그런 것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선남자가 대인상(大人相)을 갖추고 복덕으로 장엄하여 전륜왕이 되어 세간에 출현하고 나아가 위없는 보리를 성취한다고 하면, 그건 옳다.
또 아난아, 바른 소견을 가진 사람이 아버지ㆍ어머니ㆍ아라한(阿羅漢)을 죽이거나 화합한 승가를 깨뜨리거나 부처님의 몸에서 피를 내는 이런 5역죄(逆罪)를 짓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생(異生)의 범부가 어리석고 삿된 소견으로 5역죄를 짓는다고 하면, 그건 옳다.
또 아난아, 바른 소견을 가진 사람이 계를 갖춰 받았다가 스스로 계율을 범하고 나서,
아사리(阿諸梨)를 비방하며,
‘이 아사리는 계법에 능하지 못하고 금계를 지키지도 못한다. 나는 다른 아사리를 선택해 계법을 받고 배우리라’고 말하고 나서는,
다른 사문ㆍ바라문을 찾아가 스승으로 삼아 배운다고 하자.
또 그 사람이 온갖 희론(戱論)을 일삼고 율의를 지키지 않는 사문ㆍ바라문을 보고는, 그를 의지해 아사리로 삼아 고요함을 구하고 3유(有)에서 벗어나길 바란다고 하자.
이와 같은 일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어리석고 삿된 소견을 가진 사람이 이를 구한다고 하면, 그건 옳다.
또 아난아, 어떤 사람이 근본번뇌(根本煩惱)와 수번뇌(隨煩惱)를 끊지 못해 그 번뇌로 말미암아 선근을 손상시키고, 지혜를 장애하고, 참되고 고요한 법인 열반을 가리고 덮었다고 하자.
그 사람이 4념처 (念處)를 깨닫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근본 번뇌와 수번뇌를 끊고서 4념처를 잘 이해해 열반에 나아가기를 구한다고 한다면, 그건 옳다.
또 아난아, 어떤 사람이 번뇌를 끊지 않고도 4념처 (念處)를 잘 알고 7각지(覺支)를 증득하여 열반을 향해 나아간다고 하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사람이 번뇌를 끊어버리고 4념처 를 깨달아 7각지를 증득하고 열반으로 행한다고 하면, 그건 옳다.
또 아난아, 어떤 사람이 번뇌를 끊지 않고도 4념처 를 깨닫고 7각지를 증득해 괴로움을 끝까지 없애고 열반으로 나아가 연각의 보리를 이루고 내지 위없는 정등정각(正等正覺)을 이룬다고 한다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번뇌를 끊고서 4념처 를 깨달고 7각지를 증득해 괴로움을 끝까지 없애고 열반으로 나아가 연각의 보리를 이루고 내지 위없는 정등정각을 이룬다고 한다면, 그건 옳다.”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자는 이와 같이 처(處)와 비처(非處)를 여실하게 분명히 안다. 너희들은 이치에 맞게 배워야 한다.”
그때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이런 법을 듣고 감로(甘露)의 맛을 얻었으니 매우 경사롭게 여깁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며, 저희들이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의 이름은 ‘사품법문(四品法門)’ 또는 ‘법경(法鏡)’ 또는 ‘감로고(甘露鼓)’ 또는 ‘다계(多界)’라고 한다. 이런 이름으로 너희들은 받들어 지녀라.”
그때 존자 아난과 모든 대중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