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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 5072 ♧ 이름: 김영배 ( 남 ) ♧ 2008/12/23(화) 18:17 (MSIE6.0,WindowsNT5.1,SV1) 211.216.37.222 1024x768 ♧ 조회: 419 | |
"옛날 얘기" "어떤 제사(祭祀)" 천자문 한편을 쓰는데 독수리 타법으로 치니 오타가 나고,그걸고치며 쳐도 하루가 걸리는데, 자료를 보고 쳐도 마찬가지 일터-,그런데 그런것도 없이 옛날에 읽어 본것을 녹슬은 머리로, 집중해 끄집어 내서 쓸려니 三日 이상 걸린다. 온힘을 다해 句가 되겠금 하룻밤에 완성 했다는 주흥사가 밤새에 백발이 됐다는 말이 짐작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 딴에 한편당 삼일 이상 컴에 매달려 쓰고나면 심신이 탈진 ,기력이 없다. 거기에다 눈이 많이와 연수원 계단만,어제 하루종일 치웠으니,오늘 왼종일 아무것도 안하고 쉬어 오후 중간이 되어서야 회복이 됐나보다. 나머지 踐土會盟 한편은 줄이고 줄여도 전편인 5편보다 더- 길어질 텐데, 어쨌던 6편으로 (이왕 시작한거) 시간을 들여 끝마칠 예정이다. 그래서 전우님들의 글에 부지런히 댓글달고 가벼운 마음으로 옛 얘기를 컴컴해져 가는 이 시간에 하나 써 본다.내가 옛 얘기를 여러개 아는것은 그전에 이런저런 책을 읽다가 부수적으로 얻어들은 얘기다. 조선조때 예조(禮曺)에서 참판을 지냈던 꼬장꼬장한 분이 계셨는데 禮法에 밝기로 유명하다. 당시에 일반 백성들이 관혼상제에 대한 절차를 무시하고 제맘대로 한다는 소문을 듣고 임금이 참판을 불러 각 지방을 순시해 동태를 살펴보라고 지시했다. 참판이 평복을 입고 다니다 보니 소문대로 백성들이 절차를 무시하고 엉터리로 관혼상제의 절차를 모르고 예법을 지키지 않는것을 보고 이대로 가면 큰일 이라고 개탄했다. 그렇게 낙망을 하며 다니다가 경기도 끝자락에 있는 어느 동네에 도착했다.날은 어두워지고 주막은 없고,자세히 살펴보니 멀리 몇채의 초가집이있다. 그중에 한집을 찾아가 하룻밤 잘수 있겠냐고 물으니 젊은 주인이, "오늘 저희집에 제사가 있어 잠인들 주무시겠습니까! 그러니 다른집으로 가보시는게 어떠시 겠습니까!" "그런 일이라면 상관 없으니 하룻밤 재워 주오!" 그래서 그집에서 자게됐다. 젊은이의 부인은 제수 준비에 바쁘고 밤열한시쯤 되어 남자가 부인에게, "다녀 오리다."그리곤 이딘가 가버렸다. 어느정도 시간이 되자 젯상은 다 차려지고 열두시가 가까워지자 대문깐에서, "아버님 여기는 조금 높으니 조심하시고요,여기는 댓돌 입니다.네-신발을 벗으시고 네-마루에 오르십시요. 그리곤 누군가를 젯상에 앉힌다.살펴봐도 아무도 없다.그리곤 두내외가 술잔을 올리고 날아갈듯이 절을 하고는 음식을 드시게 하는데, "아버님 먼저 국을 뜨시고 진지를 드시고 네-산적도 굴비도 대추도 드시고 그리곤 다시 약주를 올리고는, '아버님 생전 보다는 배가 작지만 맛은 좋습니다." 약주를 올릴때마다 저분(젓갈)을 빈 대접에 힘차게 두번반 울리고 잡수실 음식에 올려놓고 잡수실것을 정성들여 권한다. 산 사람도 그만큼 잡수면 배가 부르실 터 이다.그러더니 젯상앞에 요와 이불을 펴고 두내외가 이불속에 들어가 서로 껴앉고 뽀뽀를 하는데 그렇게 다정 할수가 없다. 부인에게 생산공장을 하겠금 열심히?일을 치룬다. 처음부터 옆방에서그런 해괴한 광경을 지켜본 참판은 기기막혔다. 예전부터 남의집 제사에 감놔라 대추놔라!그러면 안되는것이지만,정말 저런 제사는 처음본다. 그리곤 이불을 치우고 옷을 입고는 다시 약주를 권한다. 정말 저런 제사는 처음본다. 한참후,두내외는 , "아버님 이제 돌아가실 시간이 됐습니다."그러더니 아까처럼 대문까지 모시고 나아가 , "안녕히 가시라!"라고 공손히 절하며 두 내외가 그제서야 목놓아 운다. 이제 제사가 끝났다.조그만 소반에 제수에 차렸던 산적과 밥 국을 새로 담아 참판이 있는 방으로 갖고 와서는, "소란해 잠을 못 주무시고 계셨을줄 압니다.죄송합니다.젯상 음식을 안드시는 분들이 계셔서 어떨지 모르지만 괜찮으시다면 좀 드시지요." 그 모습이 공손하다. "젊은이 내가 물어볼게 있소이다!" 그러자 젊은이가 앞에 앉았다. "제사 시간전에 어딜 갔다오는것 같던데?" "네- 귀신 밤길 간다는 말이있지만,제 아버님 께서는 연세가 많으셔서 제가 가서 모시고 왔습니다." "그건 그렇다 하고 들으니 3년 기제사라 들었는데 어찌 울지를 않소?" "음식을 차려 어른을 모시고 그 앞에서 자손이 디립다 울면 산 사람인들 음식이 넘어 갈리가 있습니까! 예법에 어긋나지만,1년에 한번 오시는 아버님에겐 그리 할수가 없어서...." "......그런데 음식에 저분(젓갈)을 그렇게 힘차게 세번 울리고 놓는 이유는 뭐요? 살살 구르게 하는것으로 아는데!" "네- 아버님 생전에 말씀 하시기를 조상을 모시는 젯상 에서는 저분을 힘차게 울려야 자손만대가 병없이 산다고 하셨기에,," "음...그런데 젯상 앞에서 이불을 펴는것은 어찌된 일이요?" 그말에 젊은이가 얼굴을 붉히며, "그것도 보셨습니까!" 그리고 하는 말이, "어머님은 일찍 돌아가시고 저는 미 장가 였는데(혼인을 못하고 있었는데)아버님이 돌아 가시기 전에 "네가 혼인해 행복히 사는것을 못보고 죽는게 한이다."그러셨거든요. 그래서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 드리기 위해." 그러면서, "이제는 아이가 세살이 돼서 내년부터는 이불은 펴지 않을생각 입니다. 모두가 예법에 틀리는 것이지만,죽은 사람도 산사람 처럼 대접해야 한다는 마음에...예법이 별겁니까 정성으로 모시면 된다는 생각에." ".................젊은이는 참으로 효잘세.내가 지금껒 알고 있던것은 말짱 헛거야!"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나 절차도 중요 하지만 정성이 더 중요 하다는 생각에 이런 얘기를 썼는데 어떨지, 수색대: 조선시대 가례에 의한 준칙이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었지요, 형식보다는 성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사상 앞에 부부가 이불 뒤집어쓰고 용쓰고 실리적이네요, 효종이 상을 당하자 차남이라고 서인 송시열은 기년상을(1년) 남인 허묵은 3년상을 주장하여 극단적인 감정의 싸움으로 정쟁으로 확대되고 결국 서인의 기년상을 채택하여 남인이 기세는 크게 꺾이고... 효종비가 죽자 다시 서인은 대공설(9개월)을 남인은 기년설(1년)을 주장하여 이번에는 남인측의 주장이 받아들여 서인이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12/23-18:58]- 수색대: 세월이 흘러 이번에는 현종이 죽자 기년설에 몰락한 서인의 거두 송시열이 다시 예론을 거론하며 자신의 주장이 옳았다고 피력하다 남인의 탄핵을 받아 귀양가게 되고 결국 사약을 받고 죽었는데 상복을 9개월 입으면 어떻고 1년 입으면 어떠냐 말이다. 조상의 고집을 물러 받았는지 여의도 의사당은 연일 난리다 -[12/23-19:05]- 백동기: 옳은 말씀 입니다.죽은 사람 산사람 다 마음 편하면 이것 보다 좋은것 있겠습니까? 눈 치우시느라고 고생 많았습니다.눈온날 새벽에 눈치우려 다니던 군대생활이 생각납니다. -[12/23-19:07]- 보라매 : 12살때 아버님 여의고 장례식을 치루는데 5일장을 치루었습니다 철모르던 시절입니다 마루 한쪽에 제상을 놓았는데 어머니는 매월 초하루 와 보름날 상식제를 드리곤 하셨지요 그때저는 형님과 같이 아이고, 아이고!. 하며 지팡이집고 상제 노릇을 하였으니 큰농우소 한마리는 장례식때 날아가고 넘주었든 소도 팔아 버리니 다음해부터 농사 철마다 농우소 때문에 골탕을 먹었든 그런 세월도 있었습니다 조금씩 간편해 지든 장례식은 이재 삼일 장이면 모두 끝내고 화장하면 삼오제도 없는것 같습니다. 장례식 치루고 아들보는 집을 흔히 보았는데 거기에는 다음과같은 사연이 있을것이라 생각되어 올려보렵니다 조부모님이나 부모님 상을 당하면 아들들도 고생이 되지만 제일 고생하는 사람은 바로 큰 며느리나 큰손주 며느리들이 제일 고생합니다 매끼마다 밥하랴 제상차리랴 정신이없습니다 손님맞으랴 하여 장례식이 모두끝나면 제일 피로가 많이 싸인 사람은 여자인데 남자들은 그동안 참았던 ??을 힘차게 하였으니 아들이 될수밖에 묘자리 잘써서 아들 보았다는 말은 이래서 나온것 아닌지요 아니 그런일이 우리동내에서 있었든 일이거든요 딸만 다? -[12/23-21:01]- 김박사: 김영배 선배님의 글을 읽을 때 마다, 옛 은사(선생님)님이 떠오릅니다... 율곡이이 선생님의 <만언봉사>와<성학집요>에 "진리란, 현실을 떠나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요자,순자,맹자,공자도 시폐를 고치지 않으면, 도리가 없는 것이다." "정치하는 자는 시의와 실공에 힘쓰지 않으면, 치효를 거둘 수 없듯, 부모를 섬기지 못하는 자식은 그 어느 관직에서도 백성을 구할 수 없는 법이다." 가장 평범한 진리가, 최고의 진리인 것 같습니다. 가슴따뜻한 글, 잘 읽었습니다......-김박사 배상- -[12/24-06:36]- 김중위: 이야기속에 깊은 뜻과 철학이 있군요 궁금함으로 계속흥미롭게 끝가지 이끌어 나가시는 글재주가 소설 쓰셔도 베스트셀라 되겠읍니다 눈이오니 집안에서 컴을 많이 할수있는시간이 있어 여유롭게 잘 읽었읍니다 건강 조심 하시고 쌓인 눈이 점점 녹아지니 저는 아쉬움이 들군요 운전하고 교회 갈 남편은 눈이많이녹아 좋다는데 타고갈 나는 눈이녹으니 눈과 이별 하는기분이라 섭섭 하답니다. 강원도는 너무 많이와서 불편 하신점이 많겠읍니다 식사준비에는 어려움이없으신가요 ? -[12/24-07:07]- 심대흥: 논어에「其爲孝也 無違 기위효야 무위 」란 말이 있습니다. 이 글의 뜻은 노나라 대부인 맹의자가 공자에게 '효란 무엇입니까?'하고 물으니 대답하기를【무위 ㅡ바로 어기지 않는것 】이라고 가르친데 연유한 것입니다. 무위란 무엇인가? 부모가 살아 계실때 그 가르침을 어기지 않고 禮로서 모시고, 돌아가신 후에도 생전의 교훈을 잊지않고 뼈에 새겨 이를 어기지 말고 예로서 공경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윗글의 제사 이야기는 바로 이런 효의 본보기를 예시한 것이라 여겨지는 군요. 그러나 요즘과는 너무 동떨어진 얘기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너무 변해버린 세태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12/24-12:30]- 최현득: 부모가 임종이 가까우면 요사이와 달리 집에서 장사를 치를때에는 시신 쟁탈전이 일어나고 장차남 관계없이 유명인사가 부조금 챙길려고 싸움질을 하다가 끝나면 원수같이 되는일들을 많이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면 왠 그리 효자가 많은지요 살아계실때 외면 하던 자식도 이상하리 만큼 달라 집디다. 제사가 문제가 아니라 살아계실때 효성을 다하는 풍조가 일어나야 됩니다 요즈음 생기는 요양병원은 신판 "고려장" 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실제로 한일주일 봉사를 해보면 그런 생각이 납니다 오늘도 문안전화나 방문해 보심이 부모님께는 명약이 될줄 압니다 눈속에서도 줄기차게 올리시는 김 전우님의 열의에 감탄을 합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12/24-16: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