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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장엄경론 제13권
23. 행주품(行住品)[1]
[보살의 모양]
[釋] 이미 보살의 공덕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의 다섯 가지의 모양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속마음에 연민(憐愍)함이 있고
친하고 다정한 말을 하며 용감하고 건실하며
손을 벌리고 아울러 뜻을 해석함이니
이 다섯 가지가 보살의 모양이다.
[釋] 보살에게 다섯 가지의 모양이 있으니,
첫째는 연민이요, 둘째는 친하고 다정한 말이요, 셋째는 용감하고 건실함이요, 넷째는 손을 벌리는 것이요, 다섯째는 뜻을 해석하는 것이다.
‘연민한다’고 함은 보리의 마음으로써 중생들을 거두어 이롭게 함이다.
‘친하고 다정한’이라 함은 부처님의 법에서 바른 믿음을 얻게 하는 것이다.
‘용감하고 건실하다’고 함은 어려운 행과 괴로운 행에도 굴복하여 물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손을 벌린다’고 함은 재물로써 포섭하기 때문이다.
‘뜻을 해석한다’고 함은 법으로써 포섭하기 때문이다.
이 다섯 가지의 모양을 마땅히 알겠으니,
처음의 하나는 마음이요, 뒤의 네 가지는 행이다.
[보샇의 재가와 출가의 분수]
이미 보살의 다섯 가지 모양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의 재가와 출가의 분수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보살은 일체의 때에
항상 전륜의 지위에 있으면서
중생의 작업을 이롭게 하니,
재가의 분(分)이 이와 같다.
[釋] 보살이 세속의 집에 있을 때에는 항상 전륜왕이 되어서 교화하여 열 가지의 착함을 행하게 하고, 열 가지의 악을 벗어나게 하는 이익을 짓는다.
게송으로 말한다.
얻음을 받고 법을 얻고
나타내 보임으로써 이룬다.
이 세 가지는 출가의 분(分)이니
일체의 지(地)에 있다.
[釋] 보살이 출가함에는 세 가지의 분(分)이 있으니,
첫째는 ‘얻음을 받는 분’으로서 이른바 남의 애호를 받는 것이다.
둘째는 ‘법을 얻는 분’이니 이른바 무류(無流)의 보호를 얻는 것이다.
셋째는 ‘나타내 보이는 분’이니 이른바 변화를 짓는 것이다.
얻음을 받는 분은 신행지(信行地)에 있고,
법을 얻는 분과 나타내 보이는 분은 대지(大地)에 들어간 이를 이른다.
게송으로 말한다.
마땅히 알아라. 출가의 분은
한량없는 공덕을 갖추어서
재가한 분과 비교하고자 하면
가장 뛰어나서 비할 수가 없다.
[釋] 재가의 분과 출가의 분을 나누어 비교하여 보니 출가의 분이 뛰어나다. 그것은 한량없는 공덕을 구족하였기 때문이다.
[보살의 극히 큰마음]
이미 보살의 재가와 출가의 분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의 다섯 가지 극히 큰마음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애호하는 과(果)와 선근과
열반을 얻고자 함과
청정하지 못함과 청정함과 극히 청정함은
이른바 여러 지(地) 가운데 있다.
[釋] 다섯 가지의 극히 큰마음이라 함은,
첫째는 즐거움이 극히 큰마음이요,
둘째는 이로움이 극히 큰마음이요,
셋째는 청정하지 못함이 극히 큰마음이요,
넷째는 이미 청정함이 극히 큰마음이요,
다섯째는 극히 청정함이 극히 큰마음이다.
‘애호하는 과’라 함은 이른바 즐거움이 극히 큰마음이니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뒷세상에 애호하는 과를 얻게 함이다.
‘선근’이라 함은 이른바 이익이 극히 큰마음이니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현재에 여러 착함을 행하고 열반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청정하지 못하다’고 함은 이른바 청정하지 못한 것의 극히 큰마음이니 곧 신행지의 보살이다.
‘청정하다’고 함은 이른바 이미 청정함이 극히 큰마음이니 곧 초지로부터 7지에 이르기까지의 보살이다.
‘극히 청정하다’고 함은 이른바 극히 청정하고 극히 큰마음이니 곧 뒤의 세 가지 지위의 보살이다.
[중생을 거둠]
이미 보살의 다섯 가지의 극히 큰마음에 대해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이 네 가지로 중생을 거둠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욕락과 평등과
증상(增上)과 도중(徒衆)의
네 가지의 마음은 여러 지(地)에서
일체의 중생을 거두어들인다.
[釋] 네 가지로 중생을 거둔다고 함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욕락하는 마음으로 거둠이니 보리의 마음으로 거둠을 말미암기 때문이다.
둘째는 평등한 마음으로 거둠이니 초지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자기와 남이 평등한 마음으로 거두기 때문이다.
셋째는 증상하는 마음으로 거둠이니 주체가 되는 지위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자재한 힘으로 거두기 때문이다.
넷째는 도중(徒衆)의 마음으로 거둠이니 거둠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제자를 이루기 때문이다.
[생을 받음]
이미 보살의 네 가지 중생을 거둠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이 네 가지의 생을 받음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업의 힘과 원(願)의 힘과
선정의 힘과 또한 신통의 힘
이 네 가지의 힘을 의지하여
보살이 생을 받는다.
[釋] 네 가지의 생을 받는다 함은,
첫째는 업의 힘으로 태어나고, 둘째는 원의 힘으로 태어나고, 셋째는 선정의 힘으로 태어나고, 넷째는 신통의 힘으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업의 힘으로 태어난다’고 함은 이른바 신행지의 보살이니, 업의 힘이 자재하여 하고 싶은 곳을 따라 생을 받기 때문이다.
‘원의 힘으로 태어난다’고 함은 이른바 큰 지위에 들어간 보살이다. 원의 힘이 자재하여 남을 성숙시키기 위하여 축생들의 몸을 받아 태어나기 때문이다.
‘선정의 힘으로 태어난다’고 함은 이른바 선정을 얻은 보살이다. 선정의 힘이 자재하여서 위의 세계를 버리고 아래로 생을 받아 태어나기 때문이다.
‘신통의 힘으로 태어난다’고 함은 이른바 신통을 얻은 보살이다. 신통의 힘이 자재하여서 능히 도솔천(兜率天) 등에 여러 모양을 나타내 보이면서 생을 받아 태어나기 때문이다.
[머무는 모양]
이미 보살이 네 가지의 생을 받아 남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이 열한 가지로 머무는 모양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공(空)을 증득하고 업의 과[業果]를 증득하고
선정에 머물고 깨달음의 분(分)에 머물고
제(諦)를 관하고 연기(緣起)를 관하고
무상(無相)이고 무공용(無功用)이고
교화의 힘이고 두 문을 청정히 하고
보리를 청정히 함이니
이 여러 가지로써 말한 것은
입지(立地)와 서로 응하는 것임을 알라.
[釋] 열한 가지로 머문다고 함은 곧 열한 가지의 지위이다. 머문다고 함은 지(地)를 이르기 때문이다.
‘공을 증득한다’고 함은 처음 머무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인(人)과 법의 두 가지 무아에 머물기 때문이다.
‘업의 과를 증득한다’고 함은 두 번째의 머무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업을 증득하고 과가 무너지지 않아 능히 계를 보호함을 나타낸 것이다.
‘선정에 머문다’고 함은 세 번째의 머무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그것은 능히 욕계에 태어나면서도 선정에서 물러서지 않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분에 머문다’고 함은 네 번째의 머무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능히 생사에 들어가면서도 깨달음의 분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제(諦)를 관한다’고 함은 다섯 번째의 머무는 상을 나타낸 것이다. 명확한 가르침으로써 번뇌를 교화하니 오직 번뇌의 마음에는 내가 없기 때문이다.
‘연기(緣起)를 관한다’고 함은 여섯 번째 머무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그것은 염오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연기를 의지하여 생을 받아 태어나기 때문이다.
‘무상(無相)’이라고 함은 일곱 번째의 머무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행은 비록 공용이지만 위로는 한 가지 길로 모여들고 주로 무상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무공용(無功用)’이라고 함은 여덟 번째의 머무는 상을 나타낸 것이다. 비록 부처님의 국토를 청정히 하지만 일어나고 지음이 없어서 공용이 없는 데 많이 머물기 때문이다.
‘교화의 힘’이라고 함은 아홉 번째의 머무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네 가지의 말이 자재하여서 능히 일체의 중생을 성숙하게 하기 때문이다.
‘두 문을 청정히 한다’고 함은 열 번째의 머무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삼매의 문과 다라니의 문이 극히 청정하기 때문이다.
‘보리를 청정히 한다’고 함은 열한 번째의 머무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일체지의 장애를 끊어 궁극에 이르기 때문이다.
[보샇의 이름]
이미 보살의 열한 가지의 머무는 모양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이 의지하는 지위를 따라 이름을 세움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처음의 셋은 세 가지의 행이 청정하고
다음의 셋은 세 가지의 아만이 끊어지고
뒤의 셋은 각(覺)과 사(捨)와 화(化)이며,
열 번째에 네 가지의 이름이 있다.
[釋] 10지(地) 가운데서 열 가지의 보살의 이름을 건립한 것이다.
‘처음의 셋은 세 가지의 행이 청정하다’고 함은
초지(初地)는 견(見)이 청정하니, 보살이 인과 법의 두 소견을 대치하는 지혜를 얻었기 때문이요,
제2지(地)는 계가 청정하다고 이르니, 보살이 미세하게 범한 때가 길이 체가 없음이요,
제3지는 선정이 청정하다고 이르니, 보살이 여러 선의 삼매에서 물러서지 않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다음의 셋은 세 가지 아만이 끊어졌다’고 함은
제4지는 법문이 다르다는 아만을 끊는 것이다. 보살이 여러 경의 법에 있어서 차별의 만심(慢心)이 일어남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제5지는 서로 계속함이 다르다는 만심을 끊는 것이다. 보살이 열 가지의 평등한 마음에 들어가면 일체 서로 계속되는 데서 평등을 얻기 때문이다.
제6지는 염오와 청정이 다르다는 만심을 끊는다. 보살은 여(如)의 성품이 본래 청정한 객진(客塵) 번뇌이기에 염오되어도 능히 연기법에 머무니, 여(如)는 검고 흰 차별의 견해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뒤의 셋은 각(覺)과 사(捨)와 화(化)’라 함은
제7지는 깨달음[覺]을 얻었다고 이른다. 보살이 무상(無相)에 머물면 힘이 능히 염념(念念) 가운데 서른일곱 가지 깨달음의 갈래를[三十七學分] 얻기 때문이다.
제8지는 행사(行捨)라고 이른다. 보살이 공용이 없고 상이 없는 데 머물기 때문이다. 또는 정토(淨土)라고 이르니 보살의 방편의 행이 불퇴지(不退地)의 보살과 합하기 때문이다.
제9지는 중생을 교화한다고 이르니 보살이 능히 일체 중생들을 성숙하게 하기 때문이다.
‘열 번째에 네 가지의 이름’이 있다고 함은 다음과 같다.
첫째의 이름은 큰 신통이다. 보살이 큰 신통을 얻기 때문이다.
둘째의 이름은 원만한 법신이다. 보살이 한량없는 삼매의 문과 다라니의 문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셋째의 이름은 능현신(能現身)이다. 보살이 도솔천에 머무는 등 모양의 몸을 보였기 때문이다.
넷째의 이름은 직(職)을 받는 것이다. 보살은 부처님의 처소에서 직을 받기 때문이다.
[배움을 닦는 것과 배움의 과]
이미 보살이 지(地)를 의지하여 이름 세움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이 지를 따라 배움을 닦는 것과 배움의 과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순서를 따라 앞의 여섯 지(地)는
성품을 보며 세 가지의 학을 닦고
순서를 따라 뒤의 네 지는
과를 얻는 데 네 가지가 있다.
[釋] ‘순서를 따라 앞의 여섯 지는 성품을 보며 세 가지의 학을 닦는다’고 함은
보살이 초지에서 진여를 통달하고
제2지에서 증상의 계학(戒學)을 배우고
제3지에서 증상의 심학(心學)을 배우고
제4지와 제5지와 제6지에서 증상의 혜학을 배운다는 것이다.
지혜에는 두 가지의 경계가 있다.
하나는 법의 진실이니 이른바 고제(苦諦) 등의 네 가지 제와 두 가지의 연기로서, 이른바 역(逆)과 순(順)으로 열두 가지의 인연을 관하는 것이다.
두 번째의 경계는 또한 제2지와 제3지 가운데도 있다. 그러기에 그 지(地)에서도 또한 증상의 혜학을 건립한다.
그러나 제4지 가운데 보리의 분(分)에 혜의 증상이 있고,
제5지 가운데 제(諦)의 관찰에서도 혜의 증상이 있으며,
제6지 가운데 연기에서도 혜의 증상을 관한다.
그러기에 이 세 가지의 지에 증상 혜학을 건립하는 것이다.
‘순서를 따라 뒤의 4지는 과를 얻는 데 네 가지가 있다’고 함은
제7지를 의지하여 상은 없고 공용은 있는 머묾을 얻어서 제1의 과가 되고,
제8지를 의지하여 상도 없고 공용도 없는 머묾을 얻어서 제2의 과가 되며,
제9지를 의지하여 중생을 성숙하게 함을 얻어서 제3의 과가 되고,
제10지를 의지하여 두 문이 성숙됨을 얻어서 제4의 과가 된다.
[무류의 5음을 닦아 익힘]
이미 지(地)를 따라 배움을 닦는 것과 배움의 과에 대해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이 지를 따라 무류(無流)의 5음(陰)을 닦아 익힘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성품을 보고 세 가지의 몸을 청정히 함은
또한 앞의 여섯 가지의 지(地)에 있고
나머지 지에서는 나머지 둘을 청정히 하여
다섯 가지의 장애를 멀리 여의었다.
[釋] 초지에서 성품을 보는 것은 앞의 해석과 같다.
제2지에서 계의 몸이 청정해지고,
제3지에서 선정의 몸이 청정해지고,
제4지와 제5지와 제6지에서 지혜의 몸이 청정해지고,
뒤의 네 지와 부처님의 지위에서는 해탈의 몸과 해탈지견의 몸이 청정해졌다.
그것은 다섯 가지의 장애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다섯 가지의 장애’라 함은
제7지 가운데서는 상에 집착하는 무지(無知)로써 장애가 되고,
제8지 가운데서는 공용의 무지로써 장애가 되며,
제9지에서는 중생을 교화하지 못하는 무지로써 장애가 되고,
제10지에서는 두 문을 청정히 못함으로써 장애가 되며,
부처님의 지위에서는 장애의 무지로써 장애가 되는 것이다.
이른바 이 무지가 능히 성문과 연각의 지혜를 장애하기 때문이다.
여러 부처님은 일체의 경계가 걸림이 없음을 알아서 이 장애를 해탈하기 때문이다.
[성취되고 성취되지 못함]
이미 보살이 지(地)를 따라 무류의 5음(陰)을 닦음에 대해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이 지를 따라 성취되고 성취되지 못함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성취되지 못한 것과 성취된 것과
성취된 것에 다시 성취되지 못한 것과 성취된 것
지(地)와 같이 지(知)를 건립하니
분별과 무분별이다.
[釋] ‘성취되지 못한 것과 성취된 것’이라 함은 신행지는 성취되지 못하였고 나머지의 여러 지는 성취되었음을 이른다.
‘성취된 것에 다시 성취되지 못한 것과 성취된 것이 있다’고 함은 앞의 성취된 지(地) 가운데서 다시 성취되지 못한 것과 성취된 것이 있다는 것이다.
7지(地) 이전은 성취되지 못했다고 하겠으니 그것은 공용이 있기 때문이요,
8지 이상은 이를 성취된 것이라 하겠으니 그것은 공용이 없기 때문이다.
전에는 환희지(歡喜地)도 또한 성취라고 말하였으니, 이 뜻이 무엇입니까?
지(地)와 같이 지(知)를 건립하였다.
분별과 무분별이라 함은 지(地) 가운데 건립한 앎은 오직 분별인데 이 분별이 또한 무분별이니, 소집(所執)과 능집(能執)이 함께 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뜻에 따랐기에 성취라고 이른 것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여러 지(地) 가운데
닦아 익힘과 성취는
이 두 가지를 사의(思議)할 수 없다.
모든 부처님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釋] 보살이 여러 지(地) 가운데 각각 닦아 익힘과 성취가 있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지마다 다 사의할 수 없음이 있으니, 그것은 여러 보살이 안에서 스스로 증득하여 깨닫는 것이다. 이는 모든 부처님께서 아시는 것이요, 다른 사람의 경계는 아니기 때문이다.
[지에 들어가는 보살의 모양]
이미 보살이 지를 따라 성취되고 성취되지 못함이 있음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이 지에 들어가는 열 가지의 모양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밝게 믿고 하열함이 없으며
겁냄이 없고 또한 기다림이 없으며
통달하고 평등하며
치우침을 여의고 또한 집착을 여의며
방편을 알아서
또한 성인의 무리에 태어난다.
이와 같은 열 가지의 모양을
지마다 다 원만히 한다.
[釋] 지(地)에 들어가는 보살은 지마다 다 열 가지의 모양이 있다.
무엇을 열 가지라 하는가?
첫째는 믿음을 밝힘이요, 둘째는 하열함이 없음이요,
셋째는 겁냄[怯]이 없음이요, 넷째는 기다림이 없음이요,
다섯째는 통달함이요, 여섯째는 평등함이요,
일곱째는 치우침을 여읨이요, 여덟째는 집착을 여읨이요,
아홉째는 방편을 앎이요, 열째는 성인의 무리에 태어나는 것이다.
‘밝게 믿는다’고 함은 자기의 지위에서 밝음을 얻고 여러 법 가운데서 무지를 제거함이다. 그러기에 다른 지에서도 믿음을 얻어 뒤에 여러 지에 있어서 태어나기를 원하고 즐기는 것이다.
‘하열함이 없다’고 함은 깊고 미묘한 법을 듣고서 놀라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겁냄이 없다’고 함은 어려운 행을 행하여서 행이 극히 용맹하기 때문이다.
‘기다림이 없다’고 함은 자기 지위의 행을 일으켜서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다.
‘통달한다’고 함은 다른 지위의 방편을 능히 일으키기 때문이다.
‘평등하다’고 함은 널리 중생에 있어서 자기의 마음과 한가지이기 때문이다.
‘치우침을 여읜다’고 함은 귀로 헐뜯고 칭찬함을 들었을 때에 높고 낮음이 없기 때문이다.
‘집착에서 벗어난다’고 함은 전륜왕 등의 지위를 얻어도 애착하고 염오됨이 없기 때문이다.
‘방편을 안다’고 함은 모든 법이 얻을 수 없음을 알아서 부처님의 방편으로 삼기 때문이다.
‘성인의 무리에 태어난다’고 함은 모든 부처님의 도중(徒衆)에 항상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의 열 가지의 모양을 지마다 다 갖추어야 함을 마땅히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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