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자료(양숙이의 ‘서운네’)
그날 서운네는 오일장에서 자리다툼을 하느라 본전치기도 못 했다. 천근만근 지친 몸을 끌다시피 집에 오니 아들이 또 울고 있었다. 이번에는 한 살 적은 찬수에게 맞았단다. 그 아들이 어떤 아들인가. 스물여섯에 청상이 된 서운네가 밥뚜껑에 담을 양식도 없는 애옥살이에도, 팔자 고치러 못 가게 발목 잡은 삼대독자 아니던가. 서운네에게는 오무짜 같은 딸이 더 있지만 오직 아들 영식이 뿐이었다.
매번 속이 팥죽 끓듯 부글대지만 돈 없고, 힘없는 대다가 역성 들어줄 일가친척마저 없었다. 더구나 장사를 하다 보니 드러내놓고 말할 처지도 못 되어 벙어리 냉가슴만 앓았다. 평소 ‘아비 없는 호로 자식 소리 안 듣게 남에게 해코지 하지 말고 바르게 살라.’고 했던 말이 후회도 되었다. 저런 얼간이 같은 아들을 믿고 살자니 앞날이 아득했다. 생각할수록 복장이 터지고 속에 천불이 났다. 섣달 그믐날 단대목장을 못 보는 한이 있어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연만이 같은 자슥아! 대가리를 깨서 물어줄망정 제발 찔찔 짜면서 오지 마라.”
악에 바친 소리가 담장을 넘어갔다. 아마도 고향 서운 쪽에 ‘연만이’라는 어수룩한 아이가 있었는가 보다. 호리 낭창한 몸매에 버들잎 같던 서운네의 성격이 점점 드세졌다.
당장 내일 아침 땟거리 걱정을 할지라도 시골에서는 엄두도 못 낼 태권도장에 아들을 등록시켰다. 어머니 말씀이 법인 줄 아는 아들은 읍내에 있는 태권도장에 시오리 길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구장창 걸어 다니며 품새를 올렸다. 연습을 한답시고 윗목에 쌓아둔고구마 rkakisl는 샌드백이 되고, 눈에 보이는 대로 차고 때리며 피나는 훈련을 했다. 어는 날은 분통같은 방에서 획 돌면서 고구마 가마니를 찬다는 것이 시렁에 매달아 놓은 메주를 냅다 찼다. 그 바람에 채 마르지 않는 메줏덩어리가 벽에 착 달라붙고, 사방으로 후두둑 튀었는데도 서운네는 꾸짖지 않았다.
이듬해 추석 전날이었다. 서운네가 대목장을 일찌감치 파장하고 집에 왔다. 삼대 구 년 만에 전煎도 몇 가지 부치고 송편도 한 되 만들 요량이었다. 그렇다고 명절 쇠러 올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들 영식이가 중학생이 되고 보니 찬물만 떠놓고 기도하던 남편 제사가 영 마음에 걸려서 이다. 적막만 흐르던 서운네 삽짝 밖이 갑자기 소란스러웠다.
“서운네, 서운네”
동네 소식통인 뒷집 쌍둥이 할머니가 고무신을 질질 끌며 숨이 턱에 차도록 뛰어왔다.
영식이와 희철이가 싸움이 붙었단다. 덩치 큰 희철이가 솥뚜껑만 한 주먹을 내밀자 영식이가 살짝 피했다. 그리고는 오히려 나비처럼 붕 날아서 오른발로 어깨를 찍어 내리자 폭삭 꼬꾸라지는 희철이 옆구리를 왼발로 한 번 더 걷어찼다. 그러자 그 큰 덩치가 논 구덩이에 나가 떨어져 개구리처럼 쫙 뻗었다고 한다. 그 서슬에 옆에 있던 아이들 누구 하나 말리지 못하고 구경만 하더란다.
언젠가 홧김에 ‘대가리 깨라’고 일렀는데 허리를 걷어 찼던 모양이다. 하필이면 그 아이가 동네 제일 부자인 방앗간집 아들이었다. 내리 딸만 여섯 낳고 늘그막에 본 아들이라 금이야 옥이야 하는 꼭지 막냇동생이었다. 연락을 받았는지 방앗간 집 영감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영식이는 이미 도망을 간 뒤였다. 예전에는 희철이가 싸움할 때는 늘 희철이 편만 들던 아이들이 웬일인지 이번에는 영식이 편을 들었다. 희철이가 먼저 싸움을 걸었다는 말에 영감은 연방 혀를 끌끌 차며 돌아갔다.
추석 날, 한나절이 넘어서야 영식이가 슬그머니 집에 들어왔다. 겁이 나서 어디 으슥한 곳에 숨어 있다가 큰 탈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나 보다. 살가운 정 한 번 베풀지 않던 서운네가 고슬고슬한 햇살밥 위에 조기 살을 발라서 얹어 주었다. 차례상에 절 한 번 못 한 것이 뭐 그리 대수인가. 금메달이라도 딴 것처럼 속으로는 대한민국 만세를 몇 번이나 불렀는지 모른다. 웬지 듬직해보이는 아들을 보니 그간의 서럽던 체증이 한꺼번에 내려간 듯했다. 서운네가 영식이에게 조용히 당부했다.
“다시는 사람을 패지 말거래이.”
그 일이 있은 지 사십 년이 훨씬 지났다.
“고추 마이 따놓고 참기름도 짜놨으니 이번 추석에 꼭 오거래이. 영식이더러 너거 누부 마중 나가라 캤다.”
깻묵 같은 엄마 전화에 매운 고추를 먹은 듯 속이 아리다.
<읽기>
양숙이의 ‘서운네’를 읽어셨지요. 오늘은 문장 공부를 해 봅시다.
‘서운네’에서 사용한 언어(단어)를 보기로 합시다
문장을 중심으로 읽기를 해 봅시다. 사용한 언어들이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주고 받는 말들입니다. 문장을 아름답게 꾸미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언어들이다 보니 질박하면서도(아름답게 꾸민 미문이 아님)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수필을 배우면 언어 선택을 무척 강조합니다. 나는 ‘글은 그 사람의 인격임으로 품위 있고, 격이 높은 언어를 사용하자’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서운네’에서는 품위보다는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들을 선택하였습니다.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본전치기’ ‘천근만근 지친 몸’ ‘호리 낭창한’ 따위의 말들은 품위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서민들의 생활 속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들입니다. 이외에도 ‘호로 자식’ ‘해코지’ ‘얼간이’ 같은 말도 품위보다는 일상 언어로 보입니다.
(격이 있고, 품위 있는 언어라면, 옛날의 양반네가 사용하는 언어가 생각납니다. 그런 언어에는 가식의 냄새가 납니다. 조선시대의 문학작품에는 그런 언어(한문의 사자성어 같은)를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
‘서운네’에서 대화체 문장을 하나 가져와 보겠습니다.
“이 연만이 같은 자슥아! 대가리를 깨서 물어 줄망정, 제발 찔찔 짜면서 오지 마라.”
전통적인 수필 이론에서는 될 수 있으면 대화체는 사용하지 말자고 하였습니다. 대화체는 사투리나, 품위 없는 언어들을 그대로 가져오는 수가 많으므로 수필 이론에서 요구하는 정제된 언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여간에 양숙이의 ‘서운네’를 읽으면 우리의 일상 생활이 내 앞에서 그대로 펼쳐집니다. 거부감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양숙이의 글을 좋은, 잘 쓴 문장이라고 하지 않습니까.(제가 듣기로는 문학상 수상 작품으로 뒤에 검토할 김희자의 등피가 아닌 서운네를 선정하였다고, 많은 수필인들이 뒷말을 하였답디다.) 보수적인 수필이론이 격이 높은 단어, 품위 있는 문장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1930년 대에 문학에서 수필이라는 장르가 태어날 때부터 주장해온 이론입니다. 지금, 글쓰기를 배우시는 분들은 변화를 시도해볼 때도 되지 않았을까요.
또 하나는 우리의 인식이. 문장 표현에서 수사를 많이 사용하여 문장을 아름답게 꾸미는, 즉 미문을 잘 쓰면,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수필공부하러 오시는 분들도 이처럼 아름다운 문장을 만드는 법을 배우러 오신 분이 많을 것입니다.
나는 수필에서도 일상의 삶이, 있는 그대로 느껴지도록 글을 써자고 주장해 왔습니다.(소설적 기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양숙이의 ‘서운네’를 잘 쓴 글이라고 평하였습니다.
<뜯어보기>
일반적으로 글을 구성하는 기본 틀을 ‘기승전결’이라고 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서양식으로 말하자면, 서두-전개-절정-결어 입니다. 일반적으로 결어에 글의 주제가 나타납니다.
화자가 이야기(글의 줄거리)를 이끌고 가는 일인칭 기법이지만, 주인공은 내가 아닌 제 3자 이다. 양식으로는 일인칭 형식의 소설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소설로 분류하기에도 난점이 있으므로, 나는 이런 형식의 글을 소설 형식의 수필이라고 보았습니다.
전체로는 ‘어머니를 그리는 글’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글을 사모곡‘이라고 말합니다. 수필에는 사모곡 형식의 글이 차고 넘칩니다. 그만큼 누구나 한, 두 번은 써본 소재가 어머니입니다.
작가가 화자이지만 사건의 주인공은 어머니인 ’서운네‘이고, 어머니가 중심이 되어서 이야기가 만들어졌습니다. (기승전결의 승으로 전개이다.) 그것도 아들인 화자의 남동생이 성장하는 과정에 희비가 교차하는 어머니를 그려내면서, 어머니에 대한 작가의 그리움을 담았습니다. 절정의 단계는 아들의 성장을 통해서 얻는 어머니의 기쁨으로 표현했습니다.
마지막 결어는 ’깻묵 같은 엄마의 전화‘입니다. 이 결어로 이 글은 어머니를 그리는 자신의 글이 되었습니다. 주제가 사모곡이 된 것입니다
이 글은 글쓰기의 일반적인 양식처럼,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회상하는 형식입니다. 짧은 서두와 결어이고, 전개와 절정이 이야기를 구성하면서, 우리의 감성을 건드려 줍니다.
(앞에서 공부하였던 서두-전개-절정-결어의 부분을 글에서 찾아보는 것도 나의 글쓰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글은 문장을 아름답게 꾸미므로 독자에게 감동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들어서 전해 줌으로 감정을 자극했습니다.
**글 읽기는 독자의 권한이고, 독자의 선택임으로, 여러 선생님께서도 이 글을 내 의견에만 따르지 말고 자기나름으로 읽어보십시오.
첫댓글 서운네 삼대 독자 영식이가 태권도 배운 것처럼 저도 어릴 적 태권도장에 다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이 글의 화자는 영식이고 주인공은 어머니지요?
소설 형식의 수필이라 조금 헷갈리네요.
요즘에 수필을 배우시는 분들은 언어 선택을 어떠하라고 배우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배울 때는 수필에서 언어 선택은 비속어나, 격이 낮은 언어, 외국어 등등을 기피하라고 했습니다. 대화체에는 쌍말이 많이 들어감으로, 대화체도 피하고 ----
그러나 양숙이의 수필 글은 현장감을 주고, 우리에게 훨씬 더 친숙하다는 생각입니다.
이 수필도 화자는 작가입니다. 양숙이씨 입니다.
양숙이씨가 수필 속 서운네이군요.
제가 이해력이 많이 부족한 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