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운반, 세우기
기중기가 없던 시대에 이스터 섬 사람들이 어떻게 석상을 조각해서 운반하고 세웠을까?
물론 유럽인들도 그 장면을 목격하지 못해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은 까닭에 정확한 방법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섬사람들 사이에 구전으로 전해지는이야기들(특히 석상을 세우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
완성 과정을 추론해볼 수 있는 채석장의 석상들,
다양한 운송법에 대한 최근의 실험들 등을 근거로 우리는 나름대로 추측해볼 수 있다.
라노라라쿠 채석장에서는 아직 암반과 분리되지 않고,
약 60센티미터 가량의 좁은 작업 통로로 둘러싸인 미완성 석상들이 눈에 띈다.
조각가들이 연장으로 사용한 듯한 손잡이가 달린 곡괭이도 채석장에 흩어져 있다.
얼굴로 만들어질 윗부분은 대략 깎아냈지만 아랫부분은 긴 암맥을 통해
저 아래 벼랑가지 이어진 돌덩어리에 불과한 것도 있다.
하여간 석상들은 그 단계에서 얼굴 코, 귀가 차례로 조각되고 그 후에 팔과 손, 요의(要義)가 조각되었다.
그 단계에서 석상의 아랫 부분을 벼량까지 연결시키는 암맥을 끊어냈다.
그리고 석상의 운송이 시작되었다. 운송 과정의 석상들에는 아직 눈구멍이 없었다.
석상을 아후가지 옮기고 세운 후에야 눈구멍이 조각되었다.
1979년 소니아 아오아(Sonia Haoa)와 세르조 라푸 아오아(jSergio Rapu Haoa)는
석상과 관련해서 놀라운 유물을 발굴햇다.
붉은 암재로 눈동자를 박아 넣은 하얀 눈 하나를 아후 근처에서 찾아앴다.
뒤이어, 비슷한 눈의 파편들이 발굴되었다.
그런 눈이 석상에 박히는 순간부터 석상을 한층 섬뜻한 느낌을 자아냈다.
뭐든지 꿰뚫어보며 상대의 눈을 멀게 만들 듯한 시선이었다.
그러나 극소수의 눈만이 발굴되었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그런 눈은 실제로 거의 만들어지지 않은 듯하다.
성직자들이 소수의 눈을 간직하고 있다가 의식을 치를 때만 눈구멍에 끼어넣었 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그 흔적이 뚜렷한 운송로는 채석장에서 시작되어,
언덕을 오르내리는 수고를 피하기 위해서 등고선을 따라 형성되어 있으며,
가장 긴 운송로는 라노라라쿠에서 서쪽 해안의 아후까지로 14.5킬로미터 이다.
무거운 돌을 이렇게 먼 거리까지 옮겼다는 사실이 놀랍게 여겨지겠만
스톤헨지, 이집트의 피리미드, 테오티후아칸, 잉카 문명과 올맥 문명의 구조물 등에서 보듯이
선사 시대의 다른 민족들도 무척 무거운 돌들을 운반했다.
각 경우마다 운송 방법이 그런대로 추론 가능하다.
이스터 섬의 경우에는 토르 페이에르달을 필두로
근 .현대의 학자들도 실제로 석상을 운반해보면서, 석상 운반에 관한 다양한 이론들을 실험했다.
헤이에르달은 운송 과정에서 석상을 훼손시킨 까닭에 그의 이론은 실패한 이론이었다.
그 후의 학자들은 석상을 세우거나 눕혀서, 나무 썰매를 이용해서 윤활류를 바르거나
그렇지 않은 롤러 트랙을 이용해서, 혹은 고정시킨 가로대를 이용한 방법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석상을 운반했다.
내 생각에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은 조 앤 반 틸버그가 제시한 방법이다.
그녀의 이론에 따르면 이스터 섬 사람들은
태평양 섬 사람들이 숲에서 베어낸 통나무를 그 자리에서 카누처럼 안을 파낸 후
해안까지 운반하는 방법으로 널리 사용하던 '카누 사다리''를 변형시켰다.
'카누 사다리'는 한 쌍의 평행한 나무 레일을 고정된 나무 가로대(움직이지 않은 롤러)에 연결시킨 것으로
사람들은 그 위에 통나무를 올려놓고 끌었다.
뉴기니에서 나는 섬 주민들이 커달나 나무를 베어내고 안을 파내 카누처럼만든 후,
그런 사다리로 수백 미터 위의 숲에서 해안지대까지 1.5킬로미터가 넘은 길을 따라
카누를 옮기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다.
또한 하와이 사람들이 카누 사다리로 옮겼던 커다란 카누들이
이스트 섬에서 평균 크기의 모아이들보다 더 무거웠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조앤 반 필버그가 제시한 방법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조 앤 반 틸버그는 그런 카누 사다리를 만들고,
나무 썰매 위에 석상을 눕혀 밧줄로 묶은 후에 카누 사다리에 올려 끄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리고 섬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그 방법을 실험해 보앗다.
50~70명이 하루에 다섯 시간씩 끌고 한 번 끌 때마다 썰매가 4.5미터 가량 움직이자
12톤의 석상을 1주일 후 14.5킬로미터까지 운송할 수 있었다.
조 앤 반 틸버그와 섬 주민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카누 사다리를 당기는 사람들의 일치된 호흡이었다.
카누를 젓는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노를 저어야 하는 것과 똑같은 원리였다.
이런 이론을 원용하면, 파로처럼 큰 석상을 운반하려면 500명의 성인이 동원되어야 했다.
이스터 섬의 한 씨족이 대략1,000~2000명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인력만으로도 큰 석상의 운반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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