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히포의 어거스틴(Augustine, 354-430) 감독은 뛰어난 지성을 가졌지만 영혼의 안식은 얻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도 그는 영혼이 괴로워 친구가 선물로 준 성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때 이웃 아이의 음성 같은 것이 들려왔다.
“집어 들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
어거스틴은 본능적으로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깨닫고, 성경책을 폈는데 로마서 13장 13절의 말씀이 눈에 확 들어왔다(롬 13:13-14). 이 말씀은 너무나 자신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책망하는 말씀이었다. 그는 그 체험을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더 이상 읽지 않았다. 더 읽을 필요가 없었다. 이 말씀은 광명한 확신의 빛으로 내 마음을 비추어 내 속에 있던 모든 의심의 어두움을 물리쳐 주었다." 이후 어거스틴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1)
속 사도이자 사도 요한의 제자로 알려진 폴리캅(Polycarp, 69-155)은 , 요한계시록 2:8-11에 언급된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다.『폴리캅의 순교』에 보면, 그는 순교 직전 기도 중에 환상을 통해 곧 일어날 일을 보았다. 그는 베고 있던 베개에 불이 붙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곧 로마 당국에 체포되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 “나는 산 채로 불타 죽을 것이다.”2)
콘스탄틴 황제(Constantine The Great, 272-337)는 전쟁 중, 어느 날 정오에 하늘에서 십자가 방패를 보았고 거기에 "이것으로 정복하라"(Conquest by This)는 환상을 보았다. 그는 물론 군사들도 보았다. 그가 그것이 무슨 뜻인가를 의아해 하던 중 그 날밤에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셔서 똑같은 표적을 보여 주시면서 그 모양으로 만들어 모든 적에 대비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곧 금과 보물로 그 형상을 만들었으며 이후 A.D. 300년의 전쟁에 대승하여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는 기초가 되었다.3)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가인 존 낙스(John Knox, 1513~1572)의 예언도 유명하다. 존 낙스는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그레인지 지방의 윌리암 커컬디 공(公)이 회개하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며칠 후 그대로 이루어졌다.4)5)
당시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사들 중에는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사무엘 러더포드(Samuel Rutherford. 1600-1661)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사이자, 웨스트민스터 의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위원으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후 ‘신앙고백’) 작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신학자이다. 러더포드는 웨스트민스터 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예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제3의 계시’에 대해 기록했다.6)
설교 황제라 불리는 영국의 찰스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의 예언은 섬세하고 정확했다.7) 스펄전은 어느 날 설교하던 중, 갑자기 회중 속에 앉아있는 면식이 없는 한 사람을 의도적으로 가리키면서 이렇게 외쳤다.
“저기에 구두를 만드는 어떤 남자가 앉아있습니다. 그는 주일에도 가게 문을 엽니다. 그 가게는 지난 주일 오전에 문을 열어서 9펜스를 벌어서 4펜스를 남겼습니다. 그는 4펜스 때문에 사탄에게 영혼을 팔았습니다.”
이후, 도시의 선교사 한 명이 이 구두 가게 주인을 만난 적이 있다. 구두 가게 주인은 자신이 어떻게 회심했는가를 간증했다. 그(구두 가게 주인)는 어느 주일에 예배 드리러 가서 예배당 중앙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스펄전 목사가 마치 아는 사람처럼 자기를 빤히 쳐다보면서 ‘내가 구두 가게 주인이며 주일에 가게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정도는 문제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 스펄전 목사가 그날 그가 9펜스짜리 물건을 팔아서 4펜스를 남겼다고 말하자, 그는 하나님이 스펄전 목사를 통하여 자기 영혼에게 말씀하신다는 깨달음이 왔다. 그래서 그는 다음 주일에는 가게 문을 닫았다. 다시 교회에 가기가 두려웠지만 주님이 그를 반겨주셔서 영혼 구원을 받았다고 했다. 스펄전은, 자신도 전혀 모르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때로는 자신이 전혀 생각지 도 않은 말을 한 경우가 열 번도 더 넘는다고 했다. 성령의 감동으로 그렇게 말했다고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스펄전은 때로는 사람들의 생각은 물론, 교회 문에서 두 사람이 나눈 대화 내용까지 알 정도였다. 또 다른 경우는 도적에 관한 이야기이다. 설교 중 스펄전은 갑자기 한 청년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보게 젊은이, 자네가 끼고 있는 장갑은 값을 치르지 않은 것이군. 그것은 주인에게서 훔친 것이야!”
설교 후 젊은이는 창백하고 당황한 모습으로 스펄전 목사에게 상담 요청을 하여 장갑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후 자백했다.
“이번 일이 처음입니다. 앞으로 절대로 다시 훔치지 않겠습니다. 저에 대한 소문을 내시지는 않겠지요? 제가 도적이었다는 사실을 알면 어머니가 저를 죽일 겁니다.”
하나님은 스펄전의 예언을 통해 이 청년이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게 하신 것이다.
한경직 목사(1902~2000)는 숭실대학 3학년 여름 방학 때 황해도 구미포에 휴양을 갔다가 혼자 해변을 거닐던 중 세미하고도 강권적인 음성을 들었다. 8)
"하나님 뜻대로 사는 백성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복을 받는다."
이에 대해 이후 그는 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 수상 연설문(1992년)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날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습니다만, 제가 평소와 같이 해변가를 걸어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너무도 갑자기 저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 때의 상황을 잘 설명할 수 없지만, 저는 하나님을 섬기라는 분명한 부르심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신의주 제2교회에서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 당한 후 해방이 될 때까지 3년 간 보린원(고아원) 원장으로 생활했다. 여기에서 그는 시간을 정하고 언덕에 올라 기도하고 묵상하는 것이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이상한 환상을 보았다. 언덕 밑으로 삼천리 강산이 한 눈에 보이는데 흰 돌로 지은 교회당이 그 강산을 꽉 메우고 있었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눈을 떤 후 순간적으로 '일본은 틀림없이 망하고 조국은 분명히 독립한다. 독립된 조국은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을 스쳤다고 한다. 이후 해방이 된 1949년 3월24일 기공 예배를 드려 지은 건물이 바로 지금 서울에 있는 석조건물의 영락교회당이다.
석유왕 존 D. 록펠러(John D. Rockefeller, 1839-1937)는 초기에 광산업을 운영했는데 기대했던 광물은 나오지 않고 임금이 체불되자 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킬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록펠러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9)
“주님, 저는 십일조도 잘하고 주님을 잘 섬겼는데 왜 이런 어려운 일이 생깁니까?”
“때가 되면 열매를 거두리라.”
록펠러는 이 음성을 들은 후 주변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계속 파내려던 중 갑자기 땅에서 검은 덩어리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석유를 파낸 것이다. 이후 그는 44세에 미국 석유산업의 90%를 차지하는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되었다.
미국 남부지역에서 면화 사업의 번창으로 인해 땅의 질소가 고갈되었다. 그때 조지 워싱톤 카버 박사(George Washing Carver, 1864~1943)는, 땅콩은 질소가 없는 땅에서도 잘 자라고 또한 질소도 재생산하므로 땅콩 재배를 권장하여 많은 사람들이 땅콩 재배를 하였는데 땅콩 풍년으로 인해 농가들이 다 망하게 생겼다. 10)
카버 박사는 기도했다.
“오, 하나님 왜 땅콩을 심게 하셨습니까?”
“잔소리 말고 너는 땅콩 한 줌을 갖고 실험실로 들어가서 계속 연구하라.”
그는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땅콩 버터, 땅콩 크림, 땅콩 식용유, 땅콩 구두약 등을 비롯하여 모두 105가지의 땅콩 식용품과 200가지의 땅콩 실용품을 개발하였다. 카버 박사는 1860년에 흑인 노예의 자식으로 생일도 모른 채 태어났지만 1940년에 죽을 때는 미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흑인 농학자가 되었다.
샌더스 대령(Colonel Sanders, 1890~1980)은 거듭되는 사업의 실패로 지쳐있었다. 그는 63세에 진지한 기도를 하시 시작했다. 11)
“주님, 저는 나이도 많은데 이 나이에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기도 중에 닭들이 날아가는 환상이 보았다. 그래서 닭 튀김 장사를 시작하여 성공했다.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KFC)은 이렇게 탄생되었다.
일용직 노동자 출신인 척 리프카(Chuck Ripka)는 하나님의 음성에 한걸음 한걸음 순종한 결과, 백화점의 가구영업사원, 은행의 모기지 담당 간부를 거쳐 마침내 은행장까지 되었다. 이후 그는 하나님의 쓰임을 받아 미네소타주 엘크시의 엘크 고등학교와 엘크 시를 변화시켜서 뉴욕타임스(NYT)에서는 그를 주인공으로 한 “일터에서의 믿음”(Faith at work)이란 특집기사를 싣기도 했다. 12)
그의 이야기가 알려지자 미국은 물론 세계 도처에서 그를 강사로 초청했고 미국의 CBS, CNBC, Good Housekeeping 및 영국의 런던타임스(The London Times) 등에서도 그에 대한 특집기사를 실었다. 척 리프카는 현재 Rivers International Development Community Bank의 CEO, 수출입회사인 Ripka Enterprises의 CEO 및 국제선교단체인 Rivercenter International Christian Network의 대표로서 일터와 선교단체에서 하나님 나라 확장에 충성하고 있다.
리프카는 말한다. “주님에 대한 순종과 신뢰가 제 인생을 변화시켰습니다. 이것들-순종과 신뢰-덕분에 아무런 희망도 없던 20대의 청년이 공사장의 일용직 노동자에서 국제 은행가로 성공하고, 지방 은행에서 시작하여 국제급 은행으로 발돋움하는 금융제국을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주님이 저의 순종과 신뢰를 통해서 제 가족, 이웃, 사업, 학교, 내가 도시 및 주 정부를 변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국제일터사역협회 회장인 오즈 힐스만(Os Hillsman)은 뉴욕타임스에 일터사역의 모델로 척 리프카를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13) 힐스만은 “척 리프카의 삶은 이론이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을 경험한 것을 실천한 것에 대한 간증이다”고 말했다.
저명한 개혁신학자인 R.C. 스프롤(R.C. Sproul)은 “온 세상에 가서 살아있는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베스타(미래의 아내)도 너와 함께 데리고 가라”는 음성을 들었다.14)
부산 수영로교회의 정필도 원로 목사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성공적으로 목회를 하고 은퇴했다. 정 목사는 『교회성장연구소』와의 인터뷰에서 정 목사는 교회성장에 관한 질문에 대해 ‘수 차례에 걸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한 것이 교회성장에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오늘날 하나님의 음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교인 1만 명 정도의 건실한 목회를 하다가 얼마 전 은퇴한 000 목사는 은퇴 후 오랫동안 교제한 모 권사의 예언을 따라 현재 지방에서 교육 및 성령사역을 통해 제2의 사역을 멋있게 감당하고 있다.
이런 예는 무수히 많다.
필자의 경험
필자도 이런 경험들이 더러 있었다. 필자가 집사일 때 개척교회에 출석하면서 새벽기도에는 잘 나가지 못했다. 워낙 밤 체질이라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예배 드리러 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때다. 한두 번 가다가 중도에 하차하는 일이 잦았다. 그날도 새벽기도에 가겠다고 다짐하고 눈은 떴지만 이내 잠들고 말았다. 그런데 잠시 꿈을 꾸었는데 담임목사님이 나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쿠, 나가야 되겠구나"하면서 후닥닥 일어나서 새벽 기도에 참석했다.
미국에 주재원으로 와서 생활하다가 그만두고 개인 사업을 하려니 이모저모로 쉽지 않았다. 그때는 사업 성공에 관한 설교 말씀과 자기계발 서적에 몰두할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너무나 기막힌 꿈을 꾸었다. 필자가 꿈의 주인공이 되어 어느 조그만 꽃밭을 지나 밖으로 나가다가 우연히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는데 깜짝 놀라고 말았다. 파랗고 청명하기 그지없는 하늘에 엄청나게 큰 무궁화 한 송이가 화려하고 찬란한 색깔을 발하면서 공중에 떠 있는 것이 아닌가? 필자는 너무나 엄청난 장관에 넋을 잃고 말았다. 꿈에서 깨어 난 후 기뻐 외쳤다.
"야, 이제 내 사업이 끝내주게 잘 되겠구나.”
그러나 이것이 세상적인 것이 아니라 한국의 미래에 대한 영적인 꿈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무궁화는 한국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신학교 다니던 중 어느 날 저녁에 샤워하러 가는데 갑자기 필자의 마음속에 "너는 내 것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이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나의 소명을 확인해 주시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비록 여러 방면으로 소명을 확신하고 신학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예기치 않게 하나님의 위로의 음성을 들었다는 사실이 기뻤다.
오늘날에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꿈, 환상, 음성, 환경, 다른 사람,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는 말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물론 하나님은 기록된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런 기본 위에 하나님은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음성을 통해 우리에게 위로, 권면, 책망, 경고의 말씀을 주시거나 새로운 방향 설정이나 비전 또는 중대한 결정을 결심하게 하신다.
위에 든 예들은 필자가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전에 오랜 세월에 걸쳐 띄엄띄엄 들은 하나님의 음성들 중에서 몇 가지를 예로 들어 본 것이다. 이때만 해도 어떤 위로나 중요한 결정이나 방향 설정이 필요할 때 가끔씩 들은 이 말씀들이 나에게 위로를 주고 새로운 결정을 내리고 방향 설정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런 음성들을 자주 들은 것은 아니지만 전혀 듣지 못하는 사람에 비하면 자주 들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뿐만 아니라 가끔 어떤 사람 옆에 붙어 있는 악령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러면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쉬워졌다. 그러나 이맘때만 해도, 비록 주변에 가끔 음성을 듣고 예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필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거나 그런 은사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지는 않았다. 그런 은사는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주는 은사로 생각했고 또 그런 은사를 어떻게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가끔 어떤 집회에서 아이들이 환상을 보고 천국 구경했다는 간증은 들었지만 어른이 그런 체험을 했다는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또한 미국인의 집회에서 미국인 강사들이 예언하고 지식의 말씀을 선포해도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음성을 본격적으로 듣게 된 결정적 계기
그러던 중 하나님의 음성 듣기에 대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이 일어났다. 교회 개척을 앞두고 하나님이 어떤 자매를 알게 해주셨는데 이 자매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이 자매(편의상 M이라 하자)의 여동생인 J는 뛰어난 은사의 소유자로서 하나님의 음성을 자유자재로 듣는 사람이었다.
J는 때로는 멀리서도 어떤 사람이 무슨 대화를 했는지를 알아맞히기도 하며(왕하 6:12 참조), 상대방이 마음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가도 알아맞히었다. 그러면서 M이 내가 설립한 개척교회의 초기 멤버로 출석하면서 교회의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해주었는데 자연히 그런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와 많은 마찰을 일으켰다.
예를 들어, 필자가 그때 막 유명해지기 시작한 미국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 목사나 윌로우크릭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의 책에서 말한 것처럼, 교회의 비전을 정하고 목표를 설정해 놓은 것을 보고 그는 "그것은 구 목사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라고 정면으로 대응했다.
나는 기가 찼다. 아니, 담임목사가 기도하면서 성경적으로 중요한 사항을 비전으로 삼고 실천 목표까지 세웠는데, 자기가 무엇인데 그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마음속으로 서운하고 언짢았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하면 그의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곤하여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아이디어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내가 설교중심의 일반목회에 더하여 은사목회로 전환하는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또한 M은 내가 주일에 가족들과 언쟁을 하고 나오면 그것까지 알아서 예배가 끝난 후에 "목사님, 오늘 아침에 누구하고 싸웠죠?"라고 하니 어안이 벙벙하였다. 나중에 알아보았더니 필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자기의 마음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때 필자는 아직 영적으로 둔하여서, 왜 하나님이 나의 마음 상태까지 M에게 알려주시며 도대체 M이 그런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또한 그 당시 우리는 교회를 위해 40일 작정 심야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도가 끝난 후에 M은 동생인 J를 통해서 우리의 기도 제목 중 무엇이 응답 받았고 무엇이 응답 받지 못했는지조차 다 알고 있었다. J는 내가 사는 미국의 동부와 정반대인 서부에 살고 있는데 그녀는 우리의 모든 것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니 나는 감히 J에게 근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가끔 그녀에게 전화를 하면 40분에서 한 시간에 걸쳐―지금 생각하니 예언의 말을 전해 준 것인데―준비도 없이 설교 비슷하게 예언의 말을 쏟아놓으니 어이가 없었다.
또한 놀라운 것은 신학을 공부하지도 않은 평신도 집사인 J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면서 기록된 성경 말씀을 풀이한 것을 테이프로 들어보니 혀를 차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 은혜롭고 성경적으로 풀이하여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최고의 주석서 열 댓 권을 보고 정리하고 요약했을 정도로 탁월한 강해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필자는 어렴풋이 미국의 유명한 청교도 목사들 중에서 마담 잔느 귀용이 J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성경을 주석한 것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기록이 생각나서 J도 바로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인가 보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몇몇 성도들 중에 이런 은사를 받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성경을 기록하신 성령께서 그들에게 성경의 풀이까지 해주시니 정말 보석처럼 빛나는 성경 강해가 된 것이다. 필자도 나중에 은사를 받은 후에 기록된 말씀을 이런 식으로 강해하고 풀이해 보니 나 자신이 오히려 많은 은혜를 받을 수가 있었다.
"J는 정말 별종이구나.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수도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필자는 그런 은사를 구하거나 나에게도 ‘그런 은사를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가끔 미국의 성령 집회에 참석할 때, 강사 중에 지식의 말씀의 은사나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 부러웠다. "가끔 한 두 번씩 듣는 것이 아니라 언제 나도 저들처럼 자유자재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을까?"라고 꿈꾸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요망사항이었지 간절하게 사모하고 구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이후에도 하나님은 가끔씩 음성을 들려주셨다. 교회가 어려워 40일 작정 기도를 하는 중, 38일째 가서 "네 기도가 응답되었느니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기뻐한 적이 있다. 또한 식사를 하다가 무심결에 어떤 사람이 필자에 대해 예언해 준 말을 재확인해 주시기라도 하듯 "내가 너로 ~가 되게 하리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다시 한번 필자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필자가 친구 대하듯 하나님과 자유자재로 대화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필자가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시작한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기도원에서 가까운 목회자 몇 명이 기도모임을 하는 중에, 중국 선교사로 계시는 Y 목사가 간증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필자는 깜짝 놀랐다. 그는 이전에 회개훈련을 강조한 어느 목사와 똑같은 방법으로 사역했는데 수많은 영혼 추수의 열매를 맺었다는 간증을 했다. 나는 마치 몽둥이로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그래도 그 회개훈련을 열심히 하고 연구도 많이 했는데 그는 그처럼 열매가 풍성한데 왜 나에게는 열매가 없는가? 사역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서도 정작 내 영혼을 제대로 관리는 데는 소홀했구나."
이런 생각이 드니 하나님 앞에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렇다. 이제라도 동기를 순수하게 하여 내 자신을 먼저 깨끗하게 해보자. 하나님이 해 주시는 '그 무엇'보다 내가 먼저 하나님이 원하시는 '어떤 사람'이 되어보자"는 결심을 했다.
이후 필자는 새벽기도나 일상기도 시간에 다시 한번 회개의 피치를 올렸다. 필자는 이것을 회개훈련이라기 보다는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 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살아나는 새마음을 갖는 훈련 즉 ‘새마음 훈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롬 12:2; 엡 4:22-24 등). 우리의 성화는 곧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죄에서 멀어져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야 하는데 그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새마음 훈련이다.
로마서 12장2절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한다. 또한 에베소서 4장22-24절은 우리가 옛사람의 성품이나 삶을 버리고 새사람의 성품이나 삶을 가지기 위해서는 심령(마음)으로 새롭게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필자는 행위의 죄는 물론 특히 마음의 죄, 생각의 죄 등 죄의 뿌리의 회개에 몰두했다. 나는 비장하게 결심하고 하루에 세 번씩 더러운 죄악들을 보혈로 씻고 성령으로 채워주시기를 간구했다.
그러기를 한 삼 개월 정도 했는가? 그날도 새벽예배를 마치고 새마음 훈련에 몰두했다. 이때 필자는 항상 두 권의 노트를 준비했다. 하나는 설교 말씀을 위해서이다. 이때는 주일에 강해설교를 했기 때문에 본문을 이미 정해 놓은 바다. 그러므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정해진 본문을 묵상하면서 성령이 마음속에 주시는 생각을 기록해 놓는다. 그리고 난 후 생각을 정리하여 필요하면 설교 대지도 만들고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토요일에 집중적으로 정리를 한다. 주석은 바로 사용하지 않고 생각이나 교리를 정리하는 정도로만 참고한다.
또 한 권은 정해진 기도제목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적는 노트이다. 이맘때쯤 비록 음성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여러 생각들―이것도 하나님의 음성의 일종이다―을 주셨기 때문에 이것들을 적는다. 이것들을 나중에 정리해 보면 기도 응답도 되고 사역에 대한 방향 설정에도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하던 어느 날, 그 날도 먼저 새마음훈련을 마치고 설교 본문 묵상을 마친 후, 기도 제목을 놓고 기도한 후 혹시나 들려주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생각나는 대로 손이 움직이는 대로 적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나도 모르게 생각이 끊어지지 않았다. 적어 놓고 보니 마치 성경에서 하나님이 다윗이나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것 같았다. 너무나 신이 났다. 필자가 평소에 알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이 사람은 이렇고 저 사람은 저렇다는 말씀을 주셨다.
필자는 자신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꼬박꼬박 대답해 주셨다.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한 번 듣고 응답 받았다는 확신을 가지기 위해 작정기도도 하고 금식기도도 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음성이 술술 들리는 것이 아닌가. 이때는 90년대 중반으로 아직도 한국 교계에 음성듣기나 예언사역이 활발하지 않을 때였다.
필자가 이 은사를 달라고 그렇게 구할 때는 주시지 않더니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기 위해 철저하게 새마음 훈련을 하니 필자가 구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보너스로 이 은사를 주신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식으로 음성을 듣고 예언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여튼 필자는 새마음훈련의 덤으로 은사까지 얻는 수지를 맞은 것이다. 물론 새마음훈련을 통해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염려와 불안을 극복하고 심령천국을 누리는 축복은 지금까지 누리고 있다.
하나님과 대화의 물꼬가 터지면서 하나님은 필자를 훈련시키시느라고 그러시는지 필자가 생각하지도 않고 구하지도 않은 것까지 막 알려주시는 바람에 한 동안 진땀이 났다. 새벽기도를 중에, 필자가 묻지도 않았는데 "오늘 누가 오지 않는다"라는 말씀을 주신다. 그러면 결말이 날 때까지 조바심이 난다. "과연 이루어질까?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그날은 내가 들은 음성 대로 그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또 어떤 경우에는, 필자가 누구에게 전화를 걸려고 하면 "걸지 말라"는 음성을 들려주신다. 이 음성을 무시하고 전화를 걸면 그 사람의 형편이 좋지 않은 때에 전화를 하여 걸지 않은 것보다 못한 씁쓸한 기분을 가질 때가 있었다. "아, 하나님이 이런 일까지 세밀하게 간섭하시는구나. 정말 머리털까지 세시는 하나님, 허락 없이는 공중에 나는 새조차 떨어지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이시구나."
정말 신기했다. "야, 드디어 내가 하나님과 대화하는 수준이 되었구나!" 성경에서 다윗이 적과 전쟁할 때 '하나님 칠까요 말까요,' '쳐라, 내가 그들을 너에게 붙이노라'는 식으로 대화하는 것이 바로 옆에서 일어난 일처럼 느껴졌다. 멀리 계시는 하나님,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친구나 연인과 대화하듯, 지금도 우리와 대화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확신이 섰다.
예언 사역에 발을 딛다
이후 하나님은 필자에게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하는 여러 사람들과 다양한 환경을 통해 많은 훈련을 쌓게 해주셨다. 또한 필자는 미국이나 한국에서 출판된 하나님의 음성듣기와 예언사역에 관한 책이나 자료들을 많이 수집하여 집중적으로 읽고 그들의 경험이나 가르침을 내 것으로 만들면서 하나님 음성듣기 훈련과 예언사역의 기초를 마련했다.
아직도 그렇지만 이맘때만 해도 한국 교계는 아직도 기도원 등에서 하는 예언이나 투시의 은사를 ‘직통 계시’라고 비난하면서, 이런 자들이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다고 여길 정도로 예언의 은사에 대해 닫혀 있었다.
이때만 해도 하나님의 음성듣기나 예언사역에 대한 대부분의 책은 현장 목회자·사역자들이 쓴 간증적이고 실천적인 책들이 거의 전부였다. 그런데 정통 개혁주의 신학자인 웨인 그루뎀(Wayne Grudem)이 1988년에 신약시대에도 예언의 은사가 지속된다는 사실을 신학적, 학문적으로 주장하면서 대표적인 기적중지론자인 리차드 개핀을 비판한『예언의 은사』를 출간했다. 1994년에는 기적계속론적 입장에서 개혁주의 조직신학을 평이한 문체로 집필한『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을 출간하자 예언의 은사를 포함한 기적행하는 은사는 이제 현장 사역자들의 손에서 전문적인 학자들의 손으로 넘어가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어서 잭 디어(Jack Deere), 고든 피(Gordon D. Fee), 로드만 윌리암스(J. Rodman Williams), 새무얼 스톰즈(Samuel Storms), 맥스 터너(Max Turner) 등 쟁쟁한 신학자들이 기적중지론을 비판하면서 교회시대에도 예언의 은사를 포함한 기적행하는 은사들이 지속된다는 저서들을 속속 출간하기 시작했다. 또한 존 파이퍼(John Piper), 마크 드리스콜(Mark Driscoll) 등은 기적계속론적 신칼뱅주의를 주도하고 있고, D.A 카슨(D.A. Carson)이나 번 포이트레스(Vern Poythress)는 중도적이지만 기적계속론을 지지하고 있다.
또한 장로교의 대표적인 신앙고백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도 private spirits(사적 계시, 개인 예언)를 인정하면서 이것들을 성경에 비추어 분별하라고 기록하고 있다.15)
예언의 은사에 대한 성경 기록은 많다.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행 2:17-18).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행 19:6).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 12:10, 1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전 14:1).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고전 14:5).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롬 12:6).16)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살전 5:19-20).
필자는 방언을 먼저 받고 한참 후에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 방언만 받았을 때는 사도행전이나 성경을 보면서 성령을 받은 표적은 방언이라는 사실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예언의 은사가 오늘날에도 계속되거나 필자 자신이 예언을 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웨인 그루뎀의 『예언의 은사』를 읽은 것도 신학적 관심에서였지 실천적 관심에서는 아니었다.
그런데 필자가 예언의 은사를 직접 받고 보니 예언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일기 시작했다. 위에 예로 든 예언 관련 구절들을 보면서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데 왜 지금까지 이런 구절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성경에 아무리 기록되어 있어도 누가 그 구절을 밝히 드러내어 풀어주지 않거나 본인 자신이 경험이 없으면 그 구절은 대충 그냥 무관심하게 넘어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기적중지론자들처럼 관심을 가져도 자기들에게 은사가 나타나지 않으므로 은사의 지속을 부인하는 쪽으로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예언에 관한 성경 말씀을 연구하고 관련 서적들도 보면서 예언의 영역도 상당히 넓고 복잡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사람들의 관심도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음성을 듣기만 하면 만사가 형통할 것이라고 음성을 과신하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으면 순종하겠다’고 하는데 ‘성경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은 직접 들은 음성에 순종하기가 더 힘들다’고 말해 준 적도 있다. 어떤 사모님은 칼라 환상을 보고 싶어서 먼 지방에서도 매주 세미나에 참석하기도 했다.
어떤 여자 목사 한 분은 처음에는 자기 말로, TV를 켜도 화면에 아무 것도 나오지 않듯 자기 마음에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 ‘먹통’이었다. 그러나 6개월에서 일년 정도 필자와 같이 훈련한 후 음성듣기와 대화는 물론 이제는 움직이는 칼라 환상도 자유자재로 보게 되었다.
여 목사님이 세미나에서 배운 대로 교회에서 교인들을 상대로 실시한 결과는 놀라웠다. 그때 교회의 리모덜링(remodeling)이 필요하여 교인들의 참여가 필요했는데, 목사님은 교인들에게 음성듣기를 통해 리모덜링에 참여하게 했다. 그랬더니 90 퍼센트 이상의 교인들이 음성듣기를 통해, 누구는 바닥을, 누구는 천정을, 누구는 어느쪽 벽을 담당하라는 음성을 들어서 리모덜링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었다고 한다.
예언 세미나를 통해 훈련을 받은 어느 목사님은 요즈음 목회하는 맛이 난다고 한다. 하나님이 교인들의 사정을 알려주셔서 적절한 상담을 하니 교인들이 너무나 좋아하더라는 것이다.
“우리 목사님, 요즈음 많이 신령해지셨네.”
필자가 음성을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한 90년대 중반만 해도 한국 교계에서는 능력 은사는 물론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더욱 희귀했었다. 필자는 전도사 시절에 은사를 사모하면서 방언은 상대적으로 쉽게 받았지만 다른 은사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사모하고 구하여서 받았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저에게 은사를 주시면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껏 나누어주겠습니다.”
하나님이 필자의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필자가 개최하는 집회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여기(서은혜 목사와 공동 집회) 오면 은사가 너무 쉽게 열린다고’들 했다.
지방에 거주하는 어떤 사모님은 5년 동안 방언 통변 은사를 사모했는데 서은혜 목사를 통해 5분만에 통변의 은사를 받고 좋아했다. 어떤 구역장 집사님은 교회의 훈련을 통해 음성을 듣게 된 후, 구역원들에게 상담 및 조언을 잘 해주고 있다.
언젠가 우리에게 예언 훈련을 받은 목사님이 교회의 장로 한 분을 모시고 왔다. 이 장로님은 교회에 헌신적이고 헌금도 많이 하는데 목사의 목회 방침에 대해 수시로 브레이크를 걸어서 힘들다면서 우리 장로님이 하나님의 음성을 좀 듣게 해달라고 사전에 부탁했었다. 그래서 장로님의 동의 하에 안수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장로님은 음성을 듣기 보다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자신을 보는 그 예수님이 잠시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이더니 곧 슬퍼하시는 모습이더란다.17)
한참 후, 장로님이 자초지종을 말했다. 예수님이 자기가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개인 집도 팔아서 헌금할 만큼 많은 헌금을 한 것은 기뻐하셨지만 기뻐하시지 않는 부분들도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한참 회개하고 났더니 예수님이 다시 기뻐하시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장로님은 새로운 경험에 대해 너무나 신이 나서 “오늘 제가 크게 한턱 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언젠가 내적치유와 새마음 회개 세미나를 할 때였다. 교회에 출석하는 K집사가 친구 집사 한 분을 예배에 모시고 왔다. 이 분은 이제 막 집사가 되어서 교회에서 직분도 맡고 봉사도 하고 있으므로 아직 치유나 회개에 대해서는 열려있지 않았다. 그러나 필자가 강의 중에, “요즈음 많은 분들이 기도 중에 예수님을 보십니다. 그러나 어떤 모습의 예수님을 보느냐도 중요합니다. 본인의 내면의 상태에 따라 기뻐하시는 모습, 슬퍼하시는 모습, 화내는 모습, 고개를 돌린 모습이 보일 수 있습니다.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시는 것은 회개하라는 신호입니다.”
그런데 이 집사는 새벽 기도 중에 필자가 한 말이 생각이 나서 자기도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란다. 그래서 눈을 감고 기도했더니 예수님의 모습이 보였는데 어떤 모습이었는가? 고개를 돌린 모습이었단다. 이 집사는 혼비백산하여 한 주 내내 생각하는 모든 죄를 회개했더니 그제야 예수님이 고개를 돌리시면서 씩 웃으시더란다.
언젠가 성령사역 세미나를 할 때이다. 아는 목사 한 분이 친구 목사를 데리고 참석했다. 안수기도 시간에 그 친구 목사의 순서가 되었다.
“저는 신학도 다르고, 교단이나 교회에서 그런 것들을 좋아하지 않고, 저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도 기도는 받겠습니까?”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필자는 통상 하듯이 ‘은사가 임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안수 했다. 그리고 잊었다. 얼마 후, 아는 목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친구 목사가 수지 맞았다는 것이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그때 안수기도 받은 후 방언이 터지고 음성을 듣고 환상도 보게 되어 너무 좋아하더라는 것이다.
물론 예언의 은사를 오남용하는 사람도 많지만 제대로 활용하면 예언의 은사처럼 유익한 은사도 드물다. 그런데 일부 골수 기적중지론자들은 예언 사역의 단점과 오류만 수집하여 마치 ‘음성을 듣고 예언을 하는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여론을 몰고 가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잘못된 목사, 장로 및 교회의 중직들, 돈 선거로 당선된 총회장 등의 사례들만 잔뜩 모아놓고 ‘그러므로 목사, 장로, 교회의 중직 및 총회장은 모두 잘못되었으므로 척결해야 하는가?’ 아무리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셔도 ‘용서 받은 죄인’을 통해 역사하므로 오남용이 없을 수 없다.
세상에서도 효율이 높은 것은 위험하다. 자전거 보다 자동차가 더 위험하고, 장작 보다 가스가 더 위험하다. 오지의 선교도 위험하다. 위험하지만 효율이 높고 꼭 필요하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것이다. 돈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고, 싸우고, 상처 받고, 헤어지지만 돈 없애자는 사람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예언의 은사가 위험하므로 사용을 중지하자는 말은 돈이 위험하므로 사용하지 말자는 주장처럼 비겁하고 어리석은 주장에 불과하다. 위험한 것의 대안은 ‘금지’가 아니라 ‘적절한 통제’이다.
사도 바울도 예언의 유익을 알았기 때문에 모든 은사 중에서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권면했던 것이다.
"사랑을 추구하며 성령의 기적행하는 신령한 은사들을 시기할 정도로 간절히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하려고 하라"(고전 14:1, 원어와 문맥에 의한 해설 번역)
개역 성경은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라"고 밋밋하게 번역했지만 문맥을 감안하여 헬라어 원어 대로 번역하면 위와 같은 뜻이 된다.
또한, 개인 예언은 성경급 예언과는 달리 틀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분별하여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라고 했다.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고전 14:29).
“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0-22).
그런데 기적중지론자들은 예언의 은사는 성경의 완성과 함께 사도시대에 종결되었고, 은사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주시는 것이므로(고전 12:11), 사람이 구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고 경험도 없는 자들의 무지의 소치이다.
만일 그런 논리라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에 의해 받는 것이므로 사람은 가만히 있기만 하면 하나님이 알아서 구원을 해주시는가? 물론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지만(엡 2:8), 당사자의 믿음을 통해 이루어진다(요 3:16; 롬 1:17). 은사도 마찬가지다. 물론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에 의해 구하지 않아도 주시는 경우도 있지만(행 2:4; 10:46), 당사자의 사모함과 학습 효과와 안수 기도를 통해 얻어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행 19:6; 고전 14:1). *
3) “In hoc signo vinces(이것으로 내가 정복하리라).” https://en.wikipedia.org/wiki/In_hoc_signo_vinces
4) Wayne Grudem, Appendix Seven: “Some Evidence for the Existence of the Gift of Prophecy at Various Points in the History of the Church.” The Gift of Prophecy in NT and Today, Kindle edition.
5) ibid.; Jasper Ridley, John Knox (Oxford: Clarendon, 1968), 43.
6) Wayne Grudem, The Gift of Prophecy; Samuel Rutherfurd, A Survey of the Spiritual Antichrist. Opening the Secrets of Familisme and Antinomianisme in the Antichristian Doctrine of John Saltmarsh (et al) (London, 1648).
7) Wayne Grudem, Appendix Seven: “Some Evidence for the Existence of the Gift of Prophecy at Various Points in the History of the Church.” In The Gift of Prophecy.
8) 김수진, 『아름다운 빈손 한경직』(홍성사, 2000).
9) 김종춘, 『 1만명 먹이는 하나님의 경영』(도서출판 진흥, 2004), 37-38.
10) ibid., 84-85.
11) 김종춘, 『 1만명 먹이는 하나님의 경영』(도서출판 진흥, 2004), 36-37.
12) Chuck Ripka, God out of the Box (Charisma House, 2007).
16) 골수 기적중지론자인 존 맥아더는 물론 대부분의 기적중지론자들은 칼뱅의 주석을 따라 여기서 말하는 ‘예언’을 ‘설교나 가르침의 은사’로 풀이하는데 필자를 은사주의자들은 단어 그대로 예언의 은사로 해석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구요한 저, 『기적의 은사를 구하라』를 참조하기 바란다.
17) 사람과의 관계도 ‘얼굴’이란 단어로 많이 표현한다.
“그 사람을 보고 얼굴을 돌리더라.” “사랑하는 연인을 보는 순간 그의 얼굴에 기쁨이 넘치고 생기가 돌더라.”
성경에 보면 하나님도 자녀와의 관계를 표시할 때 ‘하나님의 얼굴’이라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민 6:25-26).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대상 16:11).
“여호와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마시옵고~ “(대하 6:42).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 7:14).
“너희가 만일 여호와께 돌아오면 너희 형제들과 너희 자녀가 사로잡은 자들에게서 자비를 입어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리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신지라 너희가 그에게로 돌아오면 그의 얼굴을 너희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시리라 하였더라”(대하 30:9).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욥 13:24).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말미암아 기뻐 외치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의 공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욥 33:26).
“그(예수)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계 1:16).
물론 이런 것들은 상징적인 표현이겠지만 영의 세계에서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이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