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김하늘
동화작가 되면 좋은 점
아동문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면 그냥 동화작가라고 한다. “동화도 쓰고, 동시도 쓰고, 청소년소설도 쓰고, 역사책도 쓰고, 그림책도 써요.” 지루해한다. 아동문학가나 어린이책 작가라고 하면 막연해한다. 그래서 여기서는 그냥 동시, 동화, 그림책 등등 모든 어린이 청소년 독자 대상 책을 만들거나 쓰거나 그리는 사람을 통칭해서 편의상 동화작가라고 하자.
상대가 경계를 거둔다.
동화작가가 막 되었을 무렵, 궁예를 취재하러 어느 산성 복원 공사 현장에 갔을 때, 사진을 막 찍어 대니 현장 감독이 헐레벌떡 달려와 잔뜩 경계하는 눈으로 어디서 나왔냐 하기에 동화작가라고 했더니 곧바로 얼굴이 펴지며 공사 과정에서 알게 된 모든 지식을 다 들려주었다. 추임새 몇 번으로 거들었을 뿐인데 묻지도 않은 것들까지.
세월호 참사에 분노한 수많은 동화작가들이 안산 분향소 서명대를 지킬 때도, 광화문 광장에서 노란 엽서를 만들 때도, 한 뼘 걸개를 내걸었을 때도, 세월호 이야기 책을 만들었을 때도, 릴레이 단식을 제안했을 때도, 기억의 벽을 만들 때도, 단원고 약전을 쓸 때도, 현수막, 도예, 출판사 사장님, 유가족들, 시민들, 단체들 모두모두 의심이나 거부감 전혀 없이 지지와 협력을 해 주었다.
가난해도 비난받지 않는다.
아이가 어릴 때 “아빤 왜 돈이 없어?” 한 적도 있고, 둘레 사람들도 무능한 내 경제 능력을 안쓰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동화작가라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동화작가니까 가난해도 무능한 것은 아니라는 안도다. 원래 경제 무능자인데 동화작가라서 가난한 것이니 괜찮다고 여겨 준다. 감사하게도.
새벽에 귀가해도 이웃들이 불안해하지 않는다.
동화를 처음 배우던 시절, 토요일에 합평 모임을 하고 술을 마시다가 새벽에 집에 들어가면, 작은 아파트라 하필이면 한 달에 한 번인 주민 청소 날과 겹쳐서 내가 상습적으로 외박한다고 여기게 되었다. 가정 있는 어른에게 외박은 부정 이미지일 수밖에 없었는데 동화작가라는 안해 말에 모두들 안심을 했고, 도리어 나를 더 친근하게 여겨 주었다. 지금 사는 동네에서도 낮에 어슬렁거리는 젊은(?) 남자 정체를 궁금해하던 차였는데 가족들이 이사를 오자 안해한테 물어보더란다. 반응은 어디서나 같다.
사람들이 동화작가를 좋게 여기는 것은 선배 작가들이 오직 좋은 작품과 올바른 삶으로 열심히 길을 닦아 놓은 덕분이다. 무한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 선배님들, 사랑합니다!
신기하게 바라본다.
용산 참사가 났을 때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모임(더작가)’을 만들어 현장으로 나갔다. 여러 희망버스에도, 시민단체들과 함께하는 선언들에도 여러 번 나섰다. 선언문 아래에 적힌 노동이나 인권, 환경 단체들 사이에 자리 잡은 ‘더작가’를 신기해했다. ‘더작가’가 만든 동화책 『박순미 미용실』(한겨레아이들, 2010), 『비정규 씨, 출근하세요?』(사계절, 2012)도 동화작가가 아닌 사람들은 대부분 신기한 활동으로 여겼다. 그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너무나도 낯설었던 것이다. 지금도 ‘더작가’를 같이 했던 작가들에게 크나큰 존경심을 가지고 있으며 나에게도 큰 자부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동화작가를 이슬만 먹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참이슬 주로 먹는데.
현실 문제에 눈 감아도 욕먹지 않는다.
동화작가들은 맑고 고운 어린이 감성에 호소하는 글을 쓰려니 곱고 고운 심성과 순결한 영혼일 수밖에 없으니까 혼탁한 세상사에는 나서지 않아도 된다고 여겨 준다. 좋은 글만 쓰면 자기 소임을 다하는 것이라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동료 작가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불이익을 당해도 떼로 덤벼드는 일 따위는 안 해도 된다. 나라꼴이 엉망이 되거나 말거나, 심지어 직접 소비자 독자인 어린이가 고통당하는 것에 맞서서 어린이 인권선언 같은 것조차 안 하는데도 아무도 욕하지 않는다. 작가는 글로 모든 걸 말한다는 논리로 다 덮어 버릴 수 있다.
굶어 죽지 않는다.
시나리오 작가가 굶어 죽은 적이 있다. 연극하는 사람들은 늘 배가 고프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동화작가는 굶어 죽었다는 소리 못 들어봤다. 참 좋은 직업이다.
다들 풍족하게 살기 때문이거나 가난하면 동화작가를 안 하기 때문일 것이다. 동화 쓰기를 포기하고 죽었으면 동화작가가 죽은 게 아니라 자연인이 죽었으니 동료로서 관심 같은 건 안 가져도 된다.
이것들 말고도 동화작가가 되면 좋은 점은 차고도 넘친다.
광화문 광장에 텐트를 치고 ‘어린이문학 작가방’이라고 문패를 붙이고 나서부터는 신기하게 바라보는 눈들과 더 많이 마주쳤다. 문을 열어 놓고 앉아 있으면 지나다 허리를 숙여서 들여다보기도 하고, 텐트 앞에 나가 앉으면 고생한다며 격려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슬만 먹을 것 같은 곱디고운 동화작가들까지 이렇게 나선 걸 보면 얼마나 엄중한 일인가.’ 한다.
동화작가라고 하면 상대로부터 보통은 아하! 탄성이 나온다. 동경일 수도 있고, 동정일 수도 있다. 동경도 받고 동정도 받고, 아무것도 안 해도 비겁하다 소리 안 듣는 동화작가가 나는 좋다. 나라가 엉망이어도 앞장서서 싸우자는 동화작가 단체 하나 없고, 하다못해 시국선언 할 동화작가 연대조차 없어서 데모질에 참여하는 몇몇 작가들이 대단한 투사 같아 보이는 동화작가가 나는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