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털 파카’ 이게 처음 나온 것이 몇 년도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오리털 파카의 등장은 겨울의류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리털이 나오고 뒤에 거위털이 나왔지만 겨울에 이런 다운 패딩을 안 입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저도 두 개가 있지만 사실 요즘은 잘 입지 않습니다. 옷이 너무 부해서 그러잖아도 몸이 비대한데 이 옷을 입으면 남이 보기에 두 사람으로 보이는 게 솔직히 두려워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주로 알리에서 구입한 파카를 입고 다닙니다.
겨울에는 누가 뭐래도 따뜻한 것이 최고일 것입니다. 그런데 다운 패딩이 폼이 나질 않아서 요즘엔 다운을 압축한 패딩류가 주류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오리털, 거위털 패딩에 대한 기사를 하나 읽었습니다.
<오리털 패딩 하나를 먼저 뜯기로 했다. 성분 표시를 보니 오리 솜털이 75%, 오리 깃털이 25%였다. 솜털은 오리 가슴팍의 가볍고 보드라운 털이고, 깃털은 바깥 부분을 덮는 털이란다. 흔히 쓰는 덕다운(down)이란 게 솜털이 들어갔단 뜻이다. 통상 솜털과 깃털을 합쳐 만들고 비율은 패딩마다 조금씩 다르다.
패딩 안쪽을 칼로 북 찢었다. 털이 바로 나올 줄 알았더니 아녔다. 안에 볼록볼록한 하얀색 옷이 하나 더 있었다.
그걸 다시 갈랐더니 하얀 오리털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제 꺼낼 차례였다.
손에 닿은 첫 느낌은 무척 폭신하고 부드러웠다. 한 움큼씩 집어 꺼내는데, 여기저기로 달아나 공기 중에 떠다니며 달라붙었다. 옷은 물론이고 얼굴이며 머리털에도 붙었다. 도배지에도 붙는 걸 보며 아내 얼굴이 떠올랐다. 등에 서늘한 땀 한 줄기가 흘렀다.
부유하는 오리털이 코끝을 간지럽혀 재채기가 나왔다. 폐에 오리털이 가득 찬 상상을 했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다. 방역 마스크를 쓰고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등 부위 오른쪽과 왼쪽, 그리고 가슴 부분까지 오리털을 다 꺼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양팔 부분에도 털이 가득 차 있었다. 다 집어내기가 힘들었으나 최대한 놓치지 않으려 했다. 털 하나도 허투루 넘어갈 수 없었다.
그리 오래 패딩을 입었는데 내용물을 마주하는 건 처음이었다. 고작 한 벌,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오리털은 이렇게나 많았다. 눈 내린 겨울 산처럼 쌓였다. 생각보다 너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넣어야만 따뜻했을까. 창문을 활짝 연 뒤 털들을 보며 멍하니 앉아 쉬었다.
마음을 다잡고 갈색 빛바랜 거위털 패딩을 집었다. 이것도 뜯어보기로 했다. 성분 표시를 보니 거위 솜털이 90%, 깃털이 10%였다. 모자엔 라쿤(너구리) 털도 달렸다.
아까처럼 등 부위 안감부터 뜯었다. 올록볼록한 흰 옷이 또 있었다. 칼로 갈랐더니 이번엔 거위털이 모습을 드러냈다. 빛깔은 오리털보다 좀 더 노르스름했다. 감촉은 똑같이 보들보들했고 가볍게 떠다녔다.
거위털 패딩은 털이 더 많이 나왔다. 롱패딩이 아님에도 그랬다. 목을 감싸는 부분과 모자까지 거위털이 촘촘하게 들어 있었다. 이래서 따뜻했구나 싶었다. 잘 모를 땐 그냥 좋았었다. 가르고 꺼내고, 또 가르고 다시 꺼냈다. 고된 작업이었다.
빵빵했던 패딩은 그러는 새 홀쭉해졌다. 대신 왼편엔 거위털 한 무더기가 쌓였다. 털 무더기 안에 손을 넣었다. 따뜻했다. 난데없이 털을 뜯겼을 거위들을 생각했다. 서글펐다. 따뜻한데 슬픈 기분은 처음이라 낯설었다.
이 많은 털은 오리와 거위가 내지른 무수한 비명으로 만들어졌다. 전 세계 오리털과 거위 털의 80%가 중국에서 생산된단다.>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이 기사를 쓴 기자는 사람들이 겨울에 따뜻하게 지내기 위해서 죄 없는 오리와 거위를 너무 많이 죽인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한 것 같습니다.
오리와 거위는 주로 중국에서 키워서 털을 뽑는다고 하는데 이게 야생 조류는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즉 털을 뽑기 위해서 사람들이 부화시켜 키운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먹는 닭이나 돼지와 다를 것이 별로 없을 겁니다. 그리고 야생에서 태어나는 짐승들 중에 대부분 성체가 되도록 사는 것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30% 이상은 안 될 것입니다.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이 자기 식성에 따라 먹지 않는 것은 좋지만 자기들이 안 먹는다고 해서 고기 먹는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리나 거위를 생각해서 그 털로 만든 옷을 입지 않는 것은 본인의 자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이 입는 것을 비판하거나 비난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순전히 사람의 취향이기 때문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