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제3의 카카오톡 나오려면 망 중립성 지켜져야"
이석채 전 KT 회장은 2011년 11월 스마트폰 메신저 카카오톡 사용자가 3000만명을 돌파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분통을 터뜨렸다.
2009년 국내에서 처음 아이폰을 도입해 스마트폰 열풍을 일으켰는데,
정작 카카오톡이 KT 통신망을 무료로 활용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과실을 따먹었기 때문이다.
당시 KT는 카카오톡을 차단하거나 속도를 느리게 하는 방안을 내부에서 깊숙하게 검토했으나, 결국 그 계획을 접었다.
그 대신 카카오톡에 대응할 수 있는 대체 서비스를 다른 통신사들과 함께 개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카카오톡이 트래픽 과부하를 유발하는 것은 물론, 통신사의 수익원이던 메시지 시장을 장악하면서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2012년 12월 통신사는 통합 스마트폰 메신저 조인(JOYN)을 선보였다.
KT,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등 국내 통신사들은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넷망 사업자(ISP) 역할을 하고,
네이버, 다음카카오 등 온라인 업체들은 인터넷 서비스 업체에 해당된다.
또 스마트TV를 생산하고 관련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삼성전자도 인터넷 서비스 업체 역할을 하기도 한다.
국내 망 사업자와 인터넷 서비스 업체의 망중립 갈등은 2012년 KT와 삼성전자 사이에 일어났던 스마트TV 서비스 제한 시비 등
몇건이 발생했으나, 현재는 물밑에 가라앉아 있다.
하지만 양쪽 이해관계는 첨예하게 달라 언제든지 수면 위로 올라와 망중립 전쟁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에서도 미국처럼 시민단체, 스타트업, 인터넷 서비스 업계가 망중립성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다.
이들은 망중립성이 유지되지 않는 경우 경쟁력 있는 스타트업, 소규모 기업이 출현할 환경이 나빠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제2, 제3의 카카오톡과 같은 서비스가 나오기 위해서는 망중립성 원칙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며 "초기 스타트업에 망 비용을 부담시킨다면, 자유로운 발상과 혁신을 담은 서비스가 나오는 것이 어려워지게 된다"고 말했다.
반면 인터넷망 사업자들은 카카오톡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트래픽을 유발하는 스타트업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생겨
전체 트래픽 질을 떨어뜨릴 것을 우려한다. 아울러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해도 정작 자신들의 수익은 늘지 않기에
누가 중장기적으로 망에 거액을 투자하겠느냐며 억울해한다.
KT 김희수 경영연구소 상무는 "차별화한 상품을 만드는 것은 비즈니스의 고유 활동인데,
망중립 원칙이 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면서 "망 사업자들이 투자 여력을 잃어 결과적으로는 인터넷 혁신을
둔화시킬 것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인터넷 전문가들은 사물인터넷(IoT) 흐름도 망중립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잠재 요인이라고 본다.
사물인터넷은 자동차, 냉장고, 온도계 등 모든 기기를 인터넷에 연결하는 것이다.
인터넷망 서비스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며, 망 운영자와 망 이용자가 또다시 망중립을 놓고 싸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사물인터넷 시대를 앞두고 망중립성에 대한 중간점검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홍대형 서강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망중립성 원칙은 오래전 전화 시대에서 출발해 유선과 무선통신으로 이어지면서
통신, 인터넷의 발전과 시대적 상황에 따라 진화해왔다"면서
"언젠가는 망중립성에 대한 논의를 다시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