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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5월 8일 일요일, 맑음,
*걷기- 27째 날
*라구나(La Laguna) ~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
*이동거리 : 22km.
*누적거리 : 659km.
아침 6시 30분에 숙소를 나섰다. 서늘한 아침이다. 지대가 높은 곳이라서 그런 것 같다. 완만한 경사지 도로를 오른다. 공기는 참 쾌적하다. 스페인에 와서 아침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미세먼지 같은 것이 없는 쾌적하고 상큼한 아침 공기가 늘 좋다.
오르막을 걸어올라 갈리시아(Galicia)로 진입하는 마지막 길이다. 해발 1,330m 고지에 있는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 마을을 기대하며 걸어간다. 드디어 경계석(Punto de enttada a Galicia)을 만났다.
카스티야 레온 지방에서 갈리시아 지방으로 넘어간다. <베가 데 바카르세 시 의회는 행복한 여행을 기원합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만나요.> 라는 글이 나무판에 적혀 있다.
산티아고 160.948km, 이제 갈리시아 지방의 순례길 표지석도 만난다. 소수점 세 자리까지 거리를 세밀하게 표시go 놓았다. 발카르세 계곡과 오세브레이로는 앞으로 경험하게 될 독특한 갈리시아 문화를 맛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준다.
대서양 너머에서 서풍이 불어오는 갈리시아 산맥이다. 날씨는 급변하여 비가 자주 오고 소나기와 뇌우가 있기도 하며 두터운 산안개가 끼기도 한다. 시골 벌판엔 작고 친숙한 들이 있고 양이나 돼지, 거위, 닭과 더불어 소가 풀을 뜯는 목장이 있다.
해안에 가깝기 때문에 파프리카를 곁들여 삶은 문어와 조개 요리 등 해산물 요리들이 탁월하다. 또한 갈리시아는 켈트 족이 사는 다른 지역, 특히 아일랜드의 서쪽과 여러 가지로 역사적, 지리적 유사성을 보인다.
너무 척박해서 대가족 형태의 인구가 모두 먹고 살 수 없기에 이민의 물결이 펴져 나갔다. 이곳에서는 여자들이 시간을 쪼개어 트랙터를 운전하거나 황소 떼를 치면서 요리를 하고 바까지 운영한다.
소수민족이 사용하는 갈리시아어를 보존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갈리시아는 물질적으로 빈곤한 곳이지만 영적인 풍요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시골 풍경엔 고인돌과 마모아스(mamoas)가 가득하다.
정착민이 만든 석조예배당이다. 거기에 길가 십자가가 장엄한 분위기를 더하며, 갈리시아의 깊은 신앙을 되새기게 한다. 금방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 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돌 십자가(Cruceiro do Cebreiro)가 우리를 환영한다.
유럽지도 돌 판도 만난다. 십자가 묘비석도 만났다. 여성 순례자 조각품(Escultura "La Peregrina")이 우리를 반긴다. 라 코르냐 출신의 조각가 미겔 코우토의 작품이다. 돌담 위에 앉아있는 형상이 뭔가 쓸쓸해 보인다.
돈 엘리아스 발리냐 신부의 흉상 앞에 섰다. 라구나 데 카스티야를 출발하면 순례의 마지막 지역인, 갈리시아 지방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오 세브레이로는 성체와 성배의 기적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또한 카미노를 걷는 순례자에게 오 세브레이로는 한 명의 인간이 만들어낸 드라마틱한 기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오 세브레이로에서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부활시킨 선구자 돈 엘리아스 발리냐의 흉상을 볼 수 있다.
그는 오 세브레이로의 교구 신부로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부활시키는 일에 자신의 인생을 바친 사람이다. 노란색의 페인트로 칠한 화살표 표시를 처음 만들었으며, 카미노에 대한 연구를 체계적으로 조직하여 ‘카미노의 친구 협회’를 설립하고 강화한 인물이다.
실로 그의 이러한 노력이 없었더라면 현재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소수의 신앙인의 순례 길로 남아있을 것이다. 단 한 명의 노력으로 카미노 부활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작지만 매년 수많은 순례자들이 반드시 들린다는 이 마을은 로마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소박한 전통을 보여주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간직하고 있다. 더욱이 오 세브레이로 근교에는 오스 안카레스 산맥이 펼쳐져 있다.
울창한 숲을 가로지며 시원하게 흐르는 개울이 있고, 2,000미터에 달하는 고지엔 대뇌조, 곰 같은 동물들이 산다. 가벼운 등산로가 여러 개 조성되어 있어 등산을 좋아하는 순례자들이 행복해 질 수도 있는 곳이다.
오 세브레이로의 기적 이야기가 있다. 카미노 순례자들 사이에서 많이 알려져 있는 이야기다. 날이 궂은 어느 날 한 순례자가 마을에 도착하여 성당에 미사를 보러 갔다.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며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고,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할 것이라고 하자 순례자는 기도를 올리며 성체의 신비가 실제로 일어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미사를 집전하던 사제가 하늘에 성체를 바친 후 경배하고 눈을 뜨자 성체는 고기 한 조각으로 변해있었고, 성배에는 포도주가 피로 변하여 가득 차 있었다.
이 기적은 유럽 전체에 널리 알려졌고 수많은 참배객이 이 성당을 찾아와서 크리스털로 장식한 주전자와 은으로 만든 보관함을 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욕심 많고 고집 센 이사벨 여왕은 기적의 성배와 성체를 담은 접시를 탐냈다.
여왕의 명령으로 군인들은 성배를 바쳐야 했단다. 성배를 등에 실은 노새가 라 파바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성배는 다시 오 세브레이로의 성당 안에서 현재까지 보관되고 있다고 한다.
해발 1,330m에 위치한, 일명 산타 마리아 왕립 성당은 연대가 9세기 까지 올라가는 순례 길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성당이다. 오세이브레이로의 기적과 관계있는 성반과, 성작이 전시되어있다고 한다.
산타마리아 왕립 성당은 오래된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라미레스 양식이 남아있는 로마시대 이전 건축물이다. 세 개의 신랑에 궁륭으로 덮여 있는 지붕과 종탑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당 내부에는 12세기에 만들어진 성모상,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체 접시와 성배, 카톨릭 왕 페드로 2세가 산티아고로 순례하는 동안 봉헌했던 보물함이 보관되어있다. 또 다른 성체의 기적 이야기도 있다.
14세기 어느 추운 겨울날, 계곡 아래 마을 Barzamaior에 사는 신앙심 깊은 가난한 농부가 험한 눈보라 속에서 미사에 참석하려고 성당을 찾았다. 신앙심이 깊지 않은 사제가 멸시의 눈초리로 이 추운 날 이것을 받아먹고, 마시려고 올라왔느냐는 생각을 했다.
밀떡과 포도주를 내밀자 그 순간 밀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하고 또한 성당 안의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상도 이 기적적인 광경에 고개를 앞으로 기울여 내려다보았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성모상이 앞으로 기울어졌다고 한다.
1486년 카톨릭 군주가 순례 중, 독실함과 찬미의 표시로 은제 성 유물 함을 두고 갔는데, 이 함에는 성체 유사품을 보관해 두었고 그것이 성찬식에서 실제로 그리스도가 임하였음을 표시한 것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그 후 O'Cebreiro는 순례자들의 헌신의 중심지가 되고 매년 9월 8~9일에 열리는 성모와 기적을 기리는 축제가 열리는 곳이 되었다. 이 축제는 바그너(Richard Wagner)의 오페라 '파르시팔(Parsifal)'의 주제가 되었다.
이 성당에 모셔진 교구사제 돈 엘리아스 발리냐 샴 페드로(Don Elias Vaina Sam Pedro) 흉상이 있다. 1486년에는 이사벨라 여왕이 산티아고 순례 여행 중에 이곳에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 있는 건물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이 성당은 교구사제 돈 엘리아스 발리냐 삼페드로(1929-1989)가 잠들어 있는 장소로 더 알려져 있다. 신부의 흉상 앞에는 색칠한 돌들이 많이 보인다. 그림, 글씨를 적은 돌들이다. 그 옆에는 여러 개의 기념 판이 붙어있는 기둥이 있다.
성당 앞에는 작은 촛불들이 빛을 내고 있다. 성당 옆에는 묘지들이 있다. 교회 맞은편 개보수 된 파요사(갈리시아 특유의 초가집)안에 박물관이 있다. 파요사를 재건축하여 만든 건물이다. 몇 백 년 동안 사용되었던 갈리시아 지방의 삶의 양식을 보여준다.
파요사는 스페인에 남아있는 건축물 중 가장 원시적이고 오래된 구조물이다. 로마시대부터 있었던 파요사스(전통초가집)를 둘러본다. 먼저 돌로 원형이나 타원형의 작은 구조물을 쌓고, 가운데에는 길고 둥글게 땋은 밀짚으로 원추형 지붕을 세운다.
지붕은 직접 돌 벽에 닿아 있고 꾸오미라고 하는 나무로 만든 기둥이 원추형 지붕을 지탱하며 한가운데 솟아 있는 건축물이다. 고대 켈트인들이 주거용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가축이 함께 생활했다.
굴뚝이 없이 가운데 모닥불을 피우는 극단적인 형태의 원시 건축물이다. 기본적으로 3개의 공간이 있었다. 가족들이 거주하는 공간, 짐승들이 거주하는 공간, 작업을 하는 공간이다.
밀집을 계속 갈아야하기 때문에 작업공간이 있고, 주방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공간에 있었다고 한다. 난방도 되고 식사도 하고 연기가 밀집해 자동 흡수되는 굴뚝은 없는 구조다. 내려다보는 주변 경치는 일품이다.
돌로 만들어진 집 앞에는 철판으로 만들어진 순례자 상이 있고 돌 판으로 만들어진 의자도 있다. 여기는 모든게 다 돌이다. 초가의 전통 가옥과 함께 붙어있는 건물은 알베르게 겸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석상으로 다듬어 만든 산티아고 상이 있다.
초가로 만들어진 전통가옥은 보면 볼수록 멋져 보인다. 작은 호텔 건물에는 문어 그림을 그려 놓았다. 아마도 문어요리 전문점 인가보다. 돌 판으로 만든 지붕도 인상적이다. 여러 채의 초가 전통가옥을 만난다.
159.6km, 159.7km. 두 개의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오른쪽 아래 159.6km는 도로를 따라가는 오리지널 코스이고, 왼쪽 위 159.7km는 아레아 산을 오르다가 소나무 숲을 따라 내려가는 대체 코스다.
대체 코스를 따라 아레아 산을 오르면서 오른쪽 구릉에 포근하게 안겨 있는 바르사마이오르 마을을 조망한다.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정말 멋지다. 맑은 하늘에 탁 트인 전망은 눈뿐만 아니라 마음도 시원하게 한다. 아스팔트 왼쪽 길을 따라 간다.
언덕 위 왼쪽에는 성당 같은 건물이 보인다. 길은 계속 내려간다. 잡목 숲길을 통과한다. 숲길은 참 예쁘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 떼가 펼쳐져 있다. 마을이 나타난다. 리냐레스(Liñares) 마을이다. 한때 린넨 교역용 아마를 재배했던 작은 촌락이다.
농기구와 트랙터가 마당에 가득하다. 샘터가 왼쪽에 있고 정면에 보이는 건물에는 카사 하이메(Casa Jaime) 슈퍼마켓이 있다. 오른쪽에는 숙소 리나르 도 레이 알베르게(Albergue Linar do Rei)가 보인다.
산토 에스테보 데 리냐레스 성당(Igrexa de Santo Estevo de Liñares)이 보인다. 작지만 오래되 보이는 성당의 돌담이 두껍게 있다. 성당안 마당에는 묘지들도 있다. 산티아고 156.367km 표지석이 보인다. 평온한 풍경이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굉장한 장관이다. 산 중턱에 아침 안개가 자욱이 깔리면 그 위로 솟은 봉우리들이 하늘을 떠다니는 섬처럼 영묘한 광경을 자아낸다. 태양 빛이 안개를 모두 휩쓸어간다. 산악지대, 특히 갈리시아 지방의 날씨는 변덕이 심하다.
1년 중 어느 때건 ‘모든’ 날씨에 대비해야한다. 트리야카스텔라(Triacastela) 19.5km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에 놓인 인상적인 순례자 기념비가 광활한 갈리시아 지역과 그 아래 깊은 계곡을 굽어보고 있다.
순례자 기념물 (Alto de San Roque, Monumento al Peregrino)은 거대한 자연 앞에서 바람에 날아갈 듯한 모자를 잡고, 힘차게 지팡이를 잡고 걸어가는 순례자 모습이다.
이 조각은 계곡에 눈이 와서 봉우리가 모두 눈에 덮여도 순례자의 앞길을 밝혀주는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해발 1,270m다.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은 순례자치고, 산 로께 언덕(Alto de San Roque)의 근사한 순례자 조각상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지 않은 사람은 분명히 없을 것이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도 순례자의 감동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이 언덕의 풍경은 조각가 아꾸냐가 만들어놓았단다. 구름이 능선 위를 흐르며 동상 주위를 지나면 그림 같은 풍경이 만들어진다. 길가에 예쁜 꽃들이 피어있다.
초록색 풍경과 파란 하늘이 진하다. 도로와 나란히 난 길을 계속 걸어가면 오스피탈에 닿는다. 오스피탈 데 라 콘데사(Hospital de la Condesa) 마을이다. 과거에는 순례자 병원이 이 마을의 자랑거리였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이렇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그리스도교 순례자들을 위해 지어진 최초의 병원이 있었다는 이유로 명성이 자자한 마을이었지만, 이제 남은 볼거리라고는 돌 지붕으로 된 종탑과 산티아고를 받쳐든 십자가가 있는 흥미로운 성당뿐이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노란 화살표만 보인다. 알베르게 식당(O Tear - Bar restaurante)을 찾아 들어간다. 내부가 어두운데 아주 고급스러워 보인다.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1.4유로다. 견과류 한께 커피를 마시며 좀 쉰다. 화장실도 다녀온다.
카페 내부는 잘 그려진 동네 모습이 걸려있다. 독특한 마을 모양과 일하는 주민들의 모습들이다. 잘 쉬었다간다. 마을 성당, 산 후안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ial de San Juan)을 지난다.
1130년부터 존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정확한 건축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검은 돌을 이용해서 만든 성모상이 있다.오른쪽 성당을 끼고 또 걸어간다. 오솔길이다. 지붕이 덮인 공동묘지도 나온다.
산 후안 데 파도르넬로(San Juan de Padornelo)라고도 불리는 파도르넬로는 중세 성 요한 기사단의 본거지였다. 기사단이 사용하였던 오래된 성당은 시간이 흐르면서 공동묘지가 되었다.
오래된 건물 내부에 공동묘지를 만든 것은 흔히 볼 수 없는데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은 교인들의 무덤을 위해 사용되어 오랫동안 귀족이나 성직자에게는 거의 개방되지 않았다.
산 쇼안 데 파도르넬로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 Xoan de Padornelo)이다. 이 성당은 파도르넬로에 있던 성 요한 기사단이 관할하던 전원풍 성당이었다.
16세기 재건축을 할 때에도 성당 내부의 심플한 바로크 양식 제단화를 보존했으며 성당건물 옆으로는 타원형 평면의 특이한 공동묘지를 만들었다. 포이오 고개(Alto do Poio 1,335m)가 나온다.
포이오 언덕에 있는 산타 마리아 도 포이오 호스텔이 있다. 사람들이 부드러운 빵과 후레쉬 오렌지 주스, 따듯한 커피로 떨어진 당을 보충하고 기력을 회복하고 순례길을 이어간다.
올라온 언덕을 내려다 보며 잠시 쉬어간다. 차길 오른쪽으로 시골길을 내려간다. 걷기에 편한 길이다. 도로에 들어서서 조금만 더 걷다가 오른쪽으로 꺾으면 폰프리아로 향하는 오솔길이 나온다.
알베르게 식당 건물(Casa Galego Alojamiento.)이 나타난다. 폰프리아(Fonfría) 마을이다. 또 하나의 전형적인 갈리시아 마을이다. 농기계를 갖고 있는 농가도 나온다. 좁은 고원지대의 마지막에 위치하여 골짜기로 내려가기 직전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몇 백 년 동안 순례자들에게 프리아 푸엔떼 (Fria Fuente; 차가운 물)를 제공해주었던 샘터가 있었다. 현재에는 가축용수로만 사용하고 있다.
원래 이 마을의 이름은 ‘폰프리아 델 카미노’(Fonfria del Camino)였으나 지금은 ‘델 카미노’라는 부분이 없어지고 ‘폰프리아’로 불린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기 위해서 순례자는 이 마을을 지나가야만 한다.
현재는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드나 16세기 이 마을에는 순례자를 위한 병원이 있었다. 병원에서는 순례자에게는 불, 소금, 물, 담요 두 장과 침대를 제공했으며 환자에게는 이 외에도 빵 네 조각과 계란, 버터를 제공했다고 한다.
폰프리아 산 후안 성당에는 은으로 도금된 성작이 보관되어 있다. 이 성작에는 “소이 데 폰프리아 (Soy de Fonfria; 난 폰프리아 출신이다)”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이 성작의 기원이 언제이며 새겨진 문구가 무슨 뜻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새로 잘 지어놓은 레볼라 알베르게(Albergue A Reboleira)도 보인다. 노란 민들레 꽃 밭이 나온다. 개도 어슬렁 거린다. 식당(Casa Lucas) 집도 지난다. 언덕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고개 길을 간다. 언덕 위 초지가 평화롭다.
의자가 있는 쉼터를 지난다. 주도로와 평행한 길을 따라 계속 걷다가 오른쪽으로 꺾으면 비두에도(Viduedo) 마을에 닿는다. 카사 키로가(Casa Quiroga) 식당에 사람들이 많다.
우리도 좀 쉬어가기로 했다. 실외 탁자에 주스 한 잔(2유로)을 갖고 와 앉았다. 길 건너편에 긴 막대기 3개를 걸쳐 놓은 울타리가 보인다. 제주도의 대문 정낭이 생각난다.
산 페드로 데 비두에도 소성당(Ermida de San Pedro do Biduedo)이 있다. 돌로 지어진 역사가 느껴지는 아담한 성당이다. 십자가도 없고 종도 없다.
그러나 유적으로 등재된 성당이라 안내판이 붙어있다. 자동차를 세차하는 주민이 있다. 젊은 아가씨가 막대기를 들고 황소들을 몰고 간다. 참 싱싱한 장면이다. 개도 따라간다. 내리막 길이다.
이제 길은 더 가팔라지는데, 서쪽으로 펼쳐진 전원 풍경이 장관을 이룬다. 돌로된 이정표를 지나자마자 교차로가 나온다, 아름다운 숲길을 지나니 초원이 예쁜 길이 이어진다.
완만한 길이다. 넓은 비포장 신작로로 이어진다. 언덕 초지에는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산티아고 142.673km 표지석이 나타난다. 피요발(Fillobal)마을이다. 주도로를 가로질러간다. 피요발 외곽을 따라 걷다가 주도로와 다시 합류한다.
오레오라는 둥글거나 사각형의 나무나 돌로 만들어진 고가식 곡물 창고를 만난다. 고목 사이로 걷는 길이다. 그늘이 좋다. 파란 꽃들도 싱싱하게 피어있다. 고사리가 많이 올라와 있다.
오솔길이 예쁘다. 잘려진 가지를 친 고목이 엄청크게 덩어리로 있다. 그 다음으로는 숱한 순례자와 가축들의 발걸음에 닳고 닳은 옛 카미노를 타고 아스 파산테스에 도착한다.
파산테스(Pasantes) 마을의 성당 파산테스 채플 성당(Capela de as pasantes)이 있다. 전통 가옥 돌집들이 운치가 있어 보인다. 아치가 있는 집도 있다. 들판에는 소와 목동이 보인다.
라밀 마을을 지나간다. 이 길은 화강암으로 벽을 두른 좁은 통로다. 평화로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원시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이 짙은 그늘을 드리운 고색창연한 오크나무와 밤나무 숲이 굳건히 지키고 있다.
800년 된 밤나무가 마을을 알리고 있다. 나무 조각품 같다. 살아 있는 고목이다. 돌집에는 카미노 표시만 색깔이 있다. 139.350km 표지석이 있다.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 마을이다. 우리의 목적지다.
트리아카스텔라는 해발 600m 까지 내려온 것이다. 마을의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중세의 트리아카스텔라는, 세 개의 성이 있을 정도로 번성한 마을이었다.
현재 남아있는 유적은 하나도 없다. 10세기에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는 이 마을은 13세기 알폰소 11세에 의해서 재건되고 부흥했다고 전해진다.
마을 근교에는 채석장이 있다. 과거 이 마을에는 석회암이 많아서 중세의 순례자들은 이 마을에서 돌을 날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대성당을 건축 할 수 있도록 도왔다.
트리아카스텔라에는 수많은 모텔과 순례자를 위한 알베르게가 넘쳐난다. 최상급 해산물 요리와 전통술이 유명하다. 마을의 입구에는 1993년 산티아고의 해에 만들어진 4층짜리의 근사한 알베르게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너무나 친절하게 순례자를 환대한다. 더위와 피곤함에 지쳐 들른 순례자는 트이라카스텔라의 작은 바에서 가슴 따스한 친절과 배려를 받을 수 있다.
오 세이브로의 급한 내리막길에 지친 순례자들이 하룻밤을 보내기에 가장 이상적인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세 트리아카스텔라는 여관 주인들과, 여관 주인의 아내들, 일꾼들이 합심하여 순례자들에게 사기를 쳤다고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벌을 받아 하나님의 감시하에 평생토록 순례자들에게 공짜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해야 했다고 한다. 우리 숙소는 알베르게 콤플렉소 사코베오(Complexo Xacobeo Albergue & Pensión)이다.
새로 생긴 네트워크 호스텔로 카미노 상에 위치해 있다. 바 겸 식당인 사코베오와 붙어있다. 오후 1시에 도착한 것이다. 숙소 내부는 넓다. 8인실이다.
11유로를 지불했다. 짐을 풀어 놓았다.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린 후에 동네를 둘러 본다. 점심을 먼저 먹기로 했다. 먹어봐야 한다는 문어 요리 폴포(polpo)와 가리비 샴브리나스(zamburinnas), 고추 튀김 피미엔토(pimientos)를 콜라와 함께 주문했다.
그저 그런 맛이다. 먹어봤다는데 만족을 한다. 20유로다. 골목길에는 식당들이 있는데 이 집에만 사람들이 바글바글 거린다. 돈을 긁어모으는 것 같다.
산티아고 로만시아 성당(Iglesia Romanica de Santiago)을 찾았다. 3개의 아케이드가 지탱하는 견고하고도 아름다운 탑이 있는 성당이다.
정확하게 몇 년도에 만들어진 건축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마을 입구의 공동묘지 가운데에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돌로 건축된 소박한 전원풍 성당으로 성당의 내부에는 복음서를 들고 있는 산티아고 성인의 순례자상이 보관되어있다.
주도로로 돌아가니 알베르게 아이체네아(aitzenea)가 있다. 아이체네아는 바스크어로 전통가옥이란 뜻이란다. 바스크인 건축가가 전통 석조가옥을 개조한 집이다.
골목길을 걷다가 마을 끝 부분에서 대장간을 만났다. 전통가옥인데 표시(ancient smithy)가 되어있다. 전통가옥 Antiga Ferraría이라 표시되어있다.
목각 순례자 상도 만났다. 두 갈래 길 표시가 있다. 삼거리에서 두 갈래 길이다. 왼쪽은 사모스 방향으로 진행하고, 오른쪽은 산 실 방향으로 진행한다.
짧은 길을 선택하리라 맘 먹는다. 식수대가 보인다. 십자가 산티아고 상 옆에 순례자 상(Monumento a Santiago)이 있다. 시청사(Ayuntamiento de Triacastela) 건물도 보인다.
그 옆에 예쁜 우체국 건물도 보인다. 원형 돌 창고가 보인다. 영어로 dovecot 비둘기 집이라고 씌어있다. 주도로로 가니 돌 십자가 상(Cruceiro de Triacastela)도 보인다.
다시 골목길로 내려온다. 급수대 옆에 넓은 정원을 갖고 있는 알베르게도 있다. 골목길에 작은 미니 트럭이 주차해 있다. 슈퍼마켓에 가서 물을 샀다.
1.5유로다. 숙소에서 좀 쉬다가 이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점심 때 갔던 식당으로 간다. 저녁 6시 30분이다. 이번에는 순례자 메뉴를 주문했다. 돼지고기를 선택했다.
12유로다. 동네 골목길을 돌아다닌다. 조용하고 깨끗한 마을이다. 저녁 9시가 넘어야 해가 넘어간다.